옛날 옛적 아주 머언 옛날이야기가 아닙니다. 일 년 전 가을이 막 시작될 때였어요. 북한산에 살던 호랑이는 오랜 고민 끝에 드디어 결심했어요. 사람이 되기로요. 아직도 산에 동물이 산다는 게 여간 놀라운 일이 아니죠? 동물 대부분이 사람이 된 것도 오래된 이야기니까요. 여전히 고라니, 멧돼지 등 산에서 사는 동물들은 가끔 〈나는 자연에 사는 동물이다〉란 프로에 출연하기도 하죠. 옛날과 똑같은 모습으로 살아가는 야생 동물의 삶을 그대로 보여주며 장수 인기 프로그램으로 자리 잡은 지도 오래고요. 호랑이도 오늘 드디어 사람이 되기로 결심했답니다. 그래서 북한산 바로 아래 점집 ‘용하다 용해’ 웅녀 할멈을 찾아갔어요.
   이제 산에 진짜 동물들은 얼마 남지 않았어요. 모두 웅녀 할멈 도움으로 사람이 되었거든요. 그런데 소문에 의하면 몇 해 전부터는 사람이 동물이 되어 산에서 산다는 비밀 아닌 비밀도 간간이 들려왔어요. 모두 쉬쉬하는 말이라 아직 뉴스에 나오거나 하진 않아서 진실은 아무도 몰라요. 북한산 아래 웅녀 할멈 점집은 20년 전만 해도 낡은 빌라였는데 이제는 100층짜리 건물이 되었어요. 웅녀 할멈이 동물들을 사람으로 만들어주고 엄청난 부자가 되었거든요.
   호랑이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100층을 눌렀어요. 100층에 내리자 ‘웅녀 할멈 점집’이라는 간판이 무지개색으로 반짝였어요. 호랑이는 예의 바르게 문을 똑똑 두드렸고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들어갔어요. 곰처럼 생긴 할멈이 호랑이가 올 줄 알고 있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호랑이를 반겼어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호랑이는 무릎을 꿇고 웅녀 할멈께 청했어요.
   “왜 사람이 되고 싶으냐?”
   웅녀 할멈이 안타까운 눈빛으로 물었어요.
   호랑이가 낮게 으르릉댔어요. 사무실이 조금 흔들렸어요.
   “산에 먹을 게 없어서 굶는 게 일이에요. 다들 도시로 내려와 사람이 되었어요. 산에는 이제 동물들이 얼마 없어요. 사람이 되면 매일 배불리 먹을 수 있다고 해서 사람이 되려고요.”
   “다들 똑같은 이유구나. 목구멍에 풀칠하려면 사람이 되지 않고는 배길 수 없긴 하지. 준비는 되었느냐?”
   “네.”
   호랑이는 잽싸게 귀를 내려 접고 다소곳이 꼬리를 말았어요. 착한 호랑이처럼 보이고 싶었거든요.
   웅녀 할멈은 누가 들을세라 호랑이 귀에 속삭였어요.
   “사람이 되려면 세 가지가 필요하다. 첫째, 스마트폰이 있어야 한다. 둘째, 아이디가 있어야 한다. 셋째, 유튜브에 ‘좋아요’를 백만 개 받아야 한다. 알겠느냐? 이것이 사람들에게 사람으로 인정받는 길이다. 사람들에게 사람으로 인정받으면 짐승이라도 사람이 될 수 있다. 반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사람은 사람이라도 짐승 취급을 받는 곳이 사람 사는 세상 이치니라.”
   웅녀 할멈은 서랍에서 스마트폰을 꺼내서 호랑이에게 쥐여 주며 계약서를 내밀었어요.
   “너는 사람이 되고, 네가 사람이 되어 유튜브 수입이 생기면 그걸 복비로 받기로 하지. 호랑이에게 잘해주라는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단군 어르신의 유언에 따라 유튜브 방송에 필요한 건 최대한 지원해 주마. 참 글은 읽을 줄 아느냐?”
   “그럼요, 아시잖아요. 산에 사는 우리 동물들이 사람 말과 글을 배운 지 오래되었다는 걸요. 사람 말과 글을 모르면 살아갈 수 없는 시절이죠. 옛날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은 아니니까요.”
   “다행이구나, 여기 계약서다. 읽어보고 사인하도록 하여라.”
   계약서는 100장이 넘게 빼곡하게 뭐라고 뭐라고 쓰여 있었어요. 호랑이는 읽어보지도 않고 계약서에 새끼발가락 지장을 꾹 찍었어요. 글을 읽을 줄이야 알지만 언제 100장을 읽고 있겠어요. 게다가 조상 대대로 인연이 있는 웅녀 할멈이 자신에게 해를 끼칠 것 같지 않을 거 같기도 하고, 굶지 않고 배불리 살 별다른 뾰족한 수도 없었거든요.
   웅녀 할멈은 만족스럽게 미소 지으며 따라오라며 일어났어요.
   호랑이는 웅녀 할멈이 안내하는 대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 100층까지 내려갔어요. 지하는 진짜 동굴보다 더 어두침침하고 시큼한 냄새가 났어요. 복도 양쪽으로 문이 꼭 닫힌 방들이 많았어요. 모두 사람이 되고 싶은 동물들이 사람이 되기 위해 유튜브를 찍고 있는 방이라고 했어요. 호랑이는 지하 제일 끝 21번 방을 배정받았어요. 방문을 여니 시큼하고 오래된 곰팡내가 확 퍼져나왔어요. 웅녀 할멈은 코와 입을 막고 호랑이를 떠밀며 말했어요.
   “사람이 되면 지상의 방을 배정해줄 것이야. 열심히 해보거라.”
   방에는 식탁 위에 스마트폰과 노트북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어요. 환풍기가 쉴 새 없이 돌아가는 소리만 빈방을 가득 채웠어요.
   일단 의자에 앉은 호랑이는 유튜버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유튜브를 보며 공부했어요. 일전에 산에 버려진 스마트폰을 주워 와이파이가 잡히는 곳을 찾아내 다른 동물들과 함께 영화도 보고 사람이 된 동물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근황도 찾아보곤 했었기 때문에 스마트폰을 다루는 건 문제도 아니었어요.
   다음날 웅녀 할멈이 와서 물었어요.
   “아이디는 정했느냐?”
   “네, 아이디는 ‘어흥이’로 하겠습니다.”
   “음, 나쁘지 않구나. 방송 주제는 잡았느냐?”
   어흥이는 먹방을 찍겠다고 했어요. 유튜브 속 여러 콘텐츠 가운데 먹방 하나는 잘할 자신이 있었거든요. 또 먹방은 변함없는 대세라고 들었어요. 어흥이는 먹는 건 그 누구보다 자신 있었어요.
   그날 오후 택배 물품들이 21번 방으로 들어왔어요. 먹방을 찍을 수 있는 각종 음식 재료들과 가스버너, 냄비, 솥, 수저 등으로 21번 방은 가득 채워졌어요.
   어흥이는 ‘좋아요’를 많이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밤낮없이 공부했어요. 영상 하나를 올릴 때마다 최대한 많은 검색 태그를 달았어요. 어흥이 먹방, 먹 스타 어흥이, 쿡 스타 어흥이, 맛 스타 어흥이 등, 그리고 사랑스럽게 나오는 카메라 각도도 익혔어요. 어떻게 해야 댓글을 유도할 수 있는지도 인기 유튜브를 보며 공부했어요.
   “요즘 사람들은 글자가 많으면 싫어하는구나. 후후, 다행이다. 나도 싫은데. 영상 위주로 하고 글은 짧게.”
   어흥이 먹방은 한 달이 지나니까 ‘좋아요’가 천 개가 넘게 달렸어요. 멧돼지나 고라니 유튜버는 최근 몇 년간 많아졌지만, 호랑이 유튜버는 처음이어서 금방 입소문이 났거든요.
   어흥이는 정말 행복했어요. 온종일 맛난 걸 잔뜩 먹었거든요. 웅녀 할멈이 알려준 배달 앱을 스마트폰에 깔고 이것저것 종류별로 다 주문해보았어요. 웅녀 할멈이 유튜브를 찍기 위한 배달 음식은 무한정으로 결제 가능하다며 배달 앱도 깔아줬거든요. 21번 방엔 끝도 없이 초인종이 울리고 배달 음식들이 도착했어요. 세상에서 팥떡이 제일 맛난 걸 줄만 알던 어흥이의 하루하루는 놀라움의 연속이었어요. 피자, 햄버거, 불고기, 떡볶이, 라면, 과자, 김밥, 짜장면…… 세상에 사람들은 이렇게나 맛난 걸 매일 먹고 산다니 진작 사람이 될 걸 그랬어요. 게다가 스마트폰 앱을 손가락으로 누르기만 하면 문 앞으로 배달까지 다 된다니, 그동안 산에서 굶주리면서 왜 그렇게 열심히 먹이를 구하러 뛰어다녔는지 자신이 한심하단 생각이 들었어요. 비록 햇빛도 바람도 들지 않는 환풍기 소리만 웅장하게 울리는 지하 100층의 방이지만 맛난 걸 배 터지도록 먹는 이곳이 천국 같았어요. 어흥이에겐 맛난 걸 맛있게 먹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일이자 재능이니까요.
   어흥이는 배달 음식이 도착하면 책상 위에 놓고 스마트폰 카메라를 켜서 녹화와 동시에 먹기 시작했어요. 잘 먹는 어흥이에게는 응원의 댓글들이 빗발쳤어요.
   - 블루밀크 : 어흥이, 먹는 것도 시원시원하게 잘 먹어서 맘에 든다. -
   - 찰떡 : 우와, 새벽 2시에 피자랑 치킨 먹기 있기 없기? -
   - Ara : 20분 만에 치킨 10마리 먹어치운 어흥이, 최고! -
   - MJ : 먹방은 어흥이를 따라갈 자가 없다. 인정! -
   - 호잇 : 역시 고라니나 멧돼지가 찍는 먹방과는 비교 불가 -
   - 팥죽할멈 : 옛이야기에 나오는 팥떡 팥죽 먹는 거 보고 싶다. 어흥아 -
   구독자들이 달아준 댓글을 읽으며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게 이런 거구나 싶었어요. 인기란 누려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거예요. 마음이 온종일 구름 위를 방방 떠다니고 세상이 무지갯빛으로 보이는 게 바로 인기의 힘이란 걸요. 댓글을 읽고 또 읽으면 마음에 힘이 불끈 솟았어요. 구독자가 달아준 댓글에 어흥이는 하트와 대댓글로 보답했어요. 늘어나는 ‘좋아요’ 수와 댓글을 보며 인정받으면 인정받을수록 더더욱 인정받고 싶다는 마음과 칭찬받고 싶다는 마음이 커졌어요. 이상하게 관심이 커질수록 아직 충분하지 못하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어요.
   - 팥빙수 : 라면 직접 끓여먹는 어흥이 라이브로 보고 싶어요. -
   이 댓글을 본 어흥이는 유튜브 라이브를 켜고 가스버너 위에 냄비를 놓고 물을 끓였어요.
   - 모카라테 : 에게, 냄비가 작네? -
   어흥이는 댓글을 보고 얼른 냄비를 치우고 커다란 가마솥으로 바꿨어요. 구독자가 실망하게 하고 싶지 않았어요. 구독자의 기쁨이 곧 어흥이의 기쁨이니까요. 커다란 솥에 라면 100개를 끓여서 먹기 시작했어요. 라면 10개 먹는 인기 먹방 유튜버보다 10배는 더 잘하고 싶었고 10배는 더 칭찬받고 싶었거든요. 구독자가 준 ‘좋아요’ 하나가 정말 어흥이를 행복하게 해줬어요. 처음에 어흥이는 배가 고파서 입에 풀칠이라도 하고 싶어서 사람이 되고 싶었지만, 뭐든지 배불리 먹을 수 있는 지금은 ‘좋아요’를 받는 기분이 먹는 것보다 좋은 것이란 걸 알았어요. 하지만 인기 유튜버가 되기란 정말 쉬운 일이 아니었어요. 라면을 30개까지 먹을 때는 정말 맛있게 먹었지만 30개가 넘어가자 나중엔 무슨 맛인지 알 수가 없었어요. 마지막엔 정말 죽지 못해 먹었어요. 곧 온몸에 힘이 빠지면서 배 속이 뒤틀렸어요. 그러다 갑자기 방귀가 뿌르르 뿡뿡 콰아앙 터져나왔어요. 그런데 이상한 건 어흥이가 실수로 방귀를 뀐 뒤로 ‘좋아요’가 엄청나게 늘어난 거예요. 그다음부터 어흥이는 직접 요리를 한 후 먹는 쿡방 후 먹방을 찍었어요. 점점 더 많이 먹고 방귀는 더 대차게 뀌었어요. 방송 전에는 일부러 방귀 잘 나오는 보리밥을 한 바가지 먹었어요.
   “먹방 후엔 방귀지! 할 수 있다!”
   콰앙 콰르르르 뿡뿡뿡.
   - 빨간 모자 : 어흥이 방귀 소리 시원~ 하다 -
   - 콩이 : 어흥이 트림 소리도 궁금 궁금 -
   어흥이는 댓글을 보고 방귀 소리, 트림 소리, 콧방귀 소리까지 삼중 세트로 연습했어요. 점점 더 자극적인 음식을 점점 더 많이 점점 더 요상하게 먹었어요.
   콰앙 콰르르르 뿡뿡뿡 꺼어억 크엉 푸쉬쉬이.
   사람들은 어흥이 몸에서 나는 모든 소리에 열광했어요. 어흥이 방귀, 소리 트림, 소리 콧방귀 소리가 커질수록 ‘좋아요’ 수도 빠르게 늘어났어요.
   - 체체 : 춤추며 먹기 도전해봐라, 어흥아 -
   구독자들은 절대 멈추지 않았어요. 언제나 새로운 걸 원했죠. 어흥이는 최신 가요를 보며 춤을 익혔어요. 춤추며 방귀 소리, 트림 소리, 콧방귀 소리를 박자에 맞춰서 냈더니 ‘좋아요’ 수가 폭발적으로 늘어났어요. 어흥이는 신나서 이제 물구나무서서 먹기, 꼬리로 냄비 들고 먹기, 던져서 받아먹기, 외발로 서서 먹기, 누워서 혀만 날름거리며 먹기, 엎드려서 먹기, 곰 흉내내며 먹기, 고양이처럼 먹기 등 날이면 날마다 새로운 먹방에 도전했어요. 얹히고 체할 때도 있었지만 구독자의 ‘좋아요’는 아픈 것도 잊게 했어요.
   어흥이는 이제 소화제를 달고 살았어요. 그래도 좋았어요. ‘좋아요’만 받을 수 있다면 뭐든 다 좋았어요.
   어느새 가을이 절정을 향하고 아름다운 단풍이 세상을 수놓았어요. 산에 살 때 어흥이는 바위 위에 늘어지게 누워 단풍 구경을 즐겼었어요. 하지만 지금 어흥이는 단풍이 드는지도 모른 채 스마트폰만 들여다봤어요. 요리하고 먹고 찍고 스마트폰으로 댓글 관리하다 보면 하루하루가 순식간에 지나갔어요.
   어흥이가 웅녀 할멈을 찾아온 지 두 달이 지나자 ‘좋아요’가 70만 개가 넘었어요. 웅녀 할멈은 장하다며 어흥이를 칭찬해줬어요. 웅녀 할멈에게 칭찬받으니 세상을 다 가진 느낌이었어요. 웅녀 할멈의 칭찬은 구독자 10만 명의 ‘좋아요’만큼 기분이 좋았어요.
   그러던 어느 날 이런 댓글이 달렸어요.
   - 맴맴 : 마늘과 쑥을 먹는 착한 호랑이 보고 싶어요. -
   어흥이는 깜짝 놀라서 못 본 척 넘겼어요. 조상 대대로 제일 싫어하는 음식이 그 악명높은 마늘과 쑥이었고, 어흥이는 태어나서 한 번도 먹어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댓글에 엄지척이 어마어마하게 올라갔어요. 그리고 쑥과 마늘을 먹어달라는 댓글 요청이 쇄도했어요. 어흥이가 계속 못 본 척 다른 동영상만 찍으니까 악플이 달리기 시작했어요.
   - K : 어흥이 배가 불렀구나. 구독자 마음은 안중에도 없고. 산에나 가라. -
   - 크르릉 : 머리통에 똥만 차서 사람이 되고 싶으면 사람이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해야지. -
   - 체리 소녀 : 관종 어흥이, 어흥이 사람 되면 사람 망신 다 시키는 거다. -
   악플들을 본 뒤로 어흥이는 잠을 잘 수 없었어요. 70만의 사랑을 받으며 하루하루를 날아갈 것 같은 기분 속에 살았기에 구독자들을 실망시키는 건 정말 두렵고 아픈 일이었어요. 꿈속에서도 어흥이 주위로 사람들이 잔뜩 몰려와서 악담을 퍼부어댔어요. 게다가 어렵게 올렸던 ‘좋아요’ 수도 빠른 속도로 줄기 시작했어요. ‘좋아요’는 줄고 ‘싫어요’가 쭉쭉 올라갔어요. ‘좋아요’가 줄어들고 ‘싫어요’가 늘어나는 걸 눈으로 확인할 때마다 가슴이 무너져내리는 것 같았어요. 매일 ‘좋아요’ 수를 확인하면서 도축장에 끌려가는 기분을 느꼈었어요. 배고픈 고통보다 ‘좋아요’가 줄어드는 고통이 훨씬 괴로웠어요. 어흥이는 눈물을 흘리며 생마늘과 쑥을 먹기 시작했어요. 정말 끔찍한 맛이었어요. 아리고 쓰고 온몸이 뒤틀리는 고통스러운 맛이었어요. 그리고 설사를 해댔지요. 그동안 찐 살들이 쏙 빠졌어요. 정말 괴롭기 짝이 없었어요. 차라리 굶고 말지 마늘과 쑥은 정말 먹고 싶지 않았어요. 그러다가 어흥이는 좋은 생각이 반짝하고 떠올랐어요. 사실 어흥이는 그동안 쿡방을 찍으며 요리에 눈을 떴어요. 기름에 마늘을 튀겨먹고 쑥은 전을 해 먹으니 먹을 만했어요. 그래서 퓨전 요리를 선보였어요. 마늘 치킨, 마늘빵, 쑥 불고기, 쑥떡, 마늘 불고기 등을 요리해서 신나게 먹었어요.
   - 체리 소녀 : 우와, 우리 어흥이 똑똑하기까지 하다! -
   어흥이의 재치 있는 요리에 사람들은 다시 열광했어요. 어느새 ‘좋아요’가 80만 개로 다시 늘어났어요.
   - 깡충깡충 : 마늘, 쑥, 캡사이신 한 바가지 넣고 라면 먹어주세요. -
   짓궂은 독자가 올린 댓글에 엄지척이 막 올라갔어요. 어흥이는 라면이라면 얼마든지 먹을 수 있었어요. 커다란 솥에 물을 팔팔 끓여서 라면 10개를 넣고 마늘, 쑥, 캡사이신 한 바가지를 넣었어요. 캡사이신이 그렇게 매운 줄 몰랐던 어흥이는 눈물 콧물을 질질 흘리다 결국 라면을 반도 먹지 못했어요. 그랬더니 바로 실망했다며 공포의 악플이 달리기 시작했어요. 그 뒤로도 구독자들은 더 맵고 더 강렬한 걸 원했어요. 어흥이가 구독자의 요청에 응하지 않으면 거만해졌다며 순식간에 ‘좋아요’ 수가 빠져나가고 ‘싫어요’ 수가 가파르게 올라갔어요.
   어흥이는 매일 ‘좋아요’ 수가 하나라도 줄까 봐 전전긍긍했어요. ‘좋아요’ 수가 늘더라도 악플이 달린 날은 꿈에서도 악몽에 시달렸어요. 점점 잠들지 못하는 날이 많아졌어요. 온종일 뭔가 불안하고 심장이 쿵쾅쿵쾅 뛰고 진정이 되지 않았어요.
   - 팥죽할멈 : 반만년 전 어흥이 조상님이 실패한 도전, 지금 다시 도전해 주세요. 골방에서 불 끄고 아무것도 안 하고 생마늘 생쑥 먹기 도전해 주세요. 도저언~! 퓨전요리 노노. -
   조상 대대로 내려오던 굴욕의 흑역사에 다시 도전하란 댓글을 본 어흥이는 등줄기가 서늘해졌어요. 어흥이는 못 본 척하고 넘어가려 했어요.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지난번처럼 댓글에 엄지척이 어마어마하게 올라갔어요. 게다가 생쑥과 생마늘을 100일 동안 먹어달라는 댓글 요청이 쇄도했어요. 이 요청에 응하지 않으면 또 ‘거만 어흥이’라며 악플이 엄청나게 늘어날 거고 그동안 모은 ‘좋아요’ 수가 팍 줄어들 거라 생각하니 방법이 없었어요. 이제 20만만 더 채우면 어흥이는 사람이 될 수 있으니까요. 게다가 어흥이 발에서 털이 숭숭 빠지고 발톱이 짧아지고 발가락이 가지런해지고 굽은 등은 펴지고 있었어요. 사람처럼요. 어흥이는 이를 악물고 젖 먹던 힘까지 다해 구독자들의 기대를 채워주기로 마음먹었어요. 눈물을 흘리며 백 일 동안 생마늘과 생쑥만 먹으며 골방에서 한 발짝도 나가지 않고 유튜브만 찍었어요. 그리고 도전을 받아들인 후 정확히 백 일 뒤 어흥이는 드디어 ‘좋아요’ 백만 개를 받았어요. ‘좋아요’가 백만 개째 찍히던 그 순간 온몸의 털이 숭숭 빠지고 뼈가 뒤틀리고 등이 곧게 서고 팔다리가 길어지고 살이 매끄러워지더니 어흥이는 알몸이 되었어요. 머릿속으로 사람이 되는 상상을 백만 번도 더 한 것 같았지만 막상 진짜 사람이 되니 머릿속이 하얘졌어요. 드디어 어흥이는 그렇게 원하던 사람이 됐어요. 호랑이 역사상 처음으로 호랑이가 사람이 된 거예요. 어흥이는 털이 없어서 그런지 왠지 부끄러웠어요. 택배 상자를 뜯어 몸을 감싸고 웅녀 할멈이 있는 100층으로 올라갔어요.
   웅녀 할멈은 사람이 된 축하 선물로 어흥이에게 옷 한 벌과 최신형 스마트폰을 주며 1층에 있는 새로운 방으로 안내했어요. 드디어 땅 위로 올라온 거예요. 방에는 커다란 창문도 있었고 창으로 햇빛이 쏟아져들어왔어요.
   “사람이 된 걸 축하하네. 자, 이제 이곳이 자네 방이야. 그런데 계속 사람으로 살고 싶으면 ‘좋아요’가 백만을 유지해야 한다. ‘좋아요’가 백만 아래로 떨어지면 다시 호랑이로 돌아가.”
   “네에? 그런 게 어디 있어요?”
   웅녀 할멈은 계약서 87쪽을 펴 빨간 펜으로 줄을 치며 말했어요.
   “여기, 계약서에 이렇게 분명히 쓰여 있잖아. 이 세계가 원래 그래. 죽을 때까지 인정받기 위해 노력해야 해. 한번 인정받은 걸로 끝이 아니야. 사람들 마음은 하루에도 수백 번 부침개 뒤집듯 바뀌거든. 죽을 때까지 인정받기 위해 노력해야 하지. 사람들한테 사람으로 인정받지 못하면 사람대접받기 힘들어. 사람탈을 쓰고도 짐승처럼 살아야 해.”
   사람이 된 뒤에 유튜브에는 축하 댓글들이 줄줄이 달렸어요.
   - 팥죽 할멈 : 드디어 사람이 된 어흥이, 축하 축하! -
   - 빨강 모자 : 반만년의 서러움을 날려버린 영웅 어흥이 -
   먼저 사람이 된 고라니와 멧돼지들도 축하 댓글을 달았어요.
   그렇게 어흥이는 사람이 된 뒤에도 매일 아침에 눈 떠서 잠들기 전까지 유튜브 영상을 찍고 댓글을 달았어요. 날마다 어떻게 하면 사람들 기대를 채워주고 더 인정받아서 ‘좋아요’를 더 받을 수 있을지, 또 어떻게 하면 사람들에게 미움받지 않을 수 있을지 눈치보며 밤낮으로 고민하느라 머리카락까지 숭숭 빠졌어요. 그런데도 이유 없이 어흥이를 미워하고 악플을 다는 사람들은 늘어났어요. 호랑이가 사람이 된 걸 싫어하는 사람들이 많았거든요. 사람들은 호랑이가 사람보다 더 잘사는 게 꼴 보기 싫었어요. 그렇게 꽃이 피는 줄도 모르고 봄이 지나가고 있었어요.
   어느 날 어흥이는 유튜브 댓글에 대댓글을 달다가 창문에 뭔가 어른거리는 걸 봤어요. 하늘하늘 노란 나비가 춤을 추며 날고 있었어요. 어흥이는 자기도 모르게 넋을 잃고 자유롭게 날고 있는 나비를 하염없이 바라봤어요. 나비는 아무것도 그 누구도 신경쓰지 않고 햇살과 꽃향기를 즐기고 있었어요. 어흥이는 바람이 온몸의 털을 간질이고, 풀 냄새에 콧구멍을 벌렁거리고, 파란 하늘을 올려다보며 들판에 누워 콧노래를 부르던 때가 간절히 그리워졌어요.
   다음날 어흥이는 웅녀 할멈에게 스마트폰을 돌려줬어요.
   “사람으로 평생 배부르게 살 수 있는데 여기서 포기하려고?”
   “‘좋아요’가 싫어요. 저는 그냥 호랑이로 살고 싶어요.”
   “굶어 죽을걸? 자네 아무래도 마음에 병이 온 것 같군. 약부터 먹게.”
    웅녀 할멈은 약 한 뭉치와 물을 건넸어요. 호랑이는 뒤로 물러나며 약을 받지 않았어요.
   “인적이 드물어 살기 좋은 산을 찾아볼 거예요. 이 넓은 지구 어딘가에 제 한 몸 기댈 곳 분명 찾을 수 있을 거예요.”
   “그건 안 돼!”
   웅녀 할머니 표정이 갑자기 돌변했어요. 웅녀 할머니는 계약서를 들이밀었어요.
   “여기 계약서 봐봐. 100쪽 3번째 줄. 이 계약은 호랑이가 죽을 때까지 유지된다. 계약에 관한 수정 권한은 오직 웅녀 할멈에게만 있다.”
   사람이 된 어흥이는 기가 막혔어요. 웅녀 할멈의 꼼수에 속았다는 생각에 화가 치밀었어요. 어흥이는 화가 나서 계약서를 찢으려고 했어요. 힘이 곰처럼 센 웅녀 할멈이 계약서를 낚아챘고, 어흥이 손에 억지로 스마트폰을 쥐여 1층 방에 다시 밀어넣었어요. 그리고 밖에서 문을 잠가버렸어요.
   방 안에 갇힌 어흥이는 억울해서 훌쩍훌쩍 울기 시작했어요. 습관처럼 다시 스마트폰을 봤어요. 몇 날 며칠을 훌쩍이며 우느라 유튜브 관리를 하지 않는 동안 ‘좋아요’와 구독자 수가 빠르게 빠져나갔어요. 구독자들은 그사이 새로 유튜브를 시작한 용에게 몰려갔거든요. 인류 역사상 최초로 용이 유튜브를 시작했거든요. 용도 사람이 되지 않고는 지구에서 살아남을 길이 없다고 생각한 거죠. 어흥이는 발에서부터 다시 호랑이 털이 나기 시작했고, 발가락은 뭉툭해지고, 강하고 거친 발톱이 돋아나기 시작했어요. 다시 호랑이로 변하기 시작한 거예요. 몸이 견디지 못할 만큼 아파왔어요. 한참을 통증으로 바닥을 뒹굴다 스르르 잠이 들었어요.
   곰곰이 생각하다 자기가 원래 엄청 힘이 센 호랑이였다는 걸 깨달았어요. 어흥이는 얼른 스마트폰을 꺼내서 어흥이 계정을 탈퇴했어요. 그리고 잠긴 문을 박살 내버렸어요. 오랜만에 힘을 썼더니 속이 다 후련했어요.
   우두두둑
   어흥이는 고개를 한 바퀴 휘익 돌리고 미련 없이 건물을 나섰어요. 사람이 되고 싶은 여우와 들개가 건물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어요. 어흥이는 지그시 눈을 감고 고개를 흔들었어요.
   ‘끝없이 ‘좋아요’를 받으려고 안달하며 사는 건 정말 지옥 같아. 차라리 배고픈 게 나아.’
   어흥이는 몇 달 만에 건물 밖으로 뛰쳐나왔어요. 햇살이 폭포처럼 쏟아내려서 한참 동안 눈을 뜰 수 없었어요. 어흥이는 부르르 빛바랜 털을 털고 커다랗게 기지개를 켰어요. 그리고 오랜만에 큰 소리로 울면서 산으로 성큼성큼 춤추듯 뛰어갔어요.
   “어흥-.”
   
   쏴아……후두두둑.
   어흥이는 빗소리에 잠에서 깼어요. 눈을 뜨자마자 자연스럽게 스마트폰을 확인했어요. ‘좋아요’가 다시 백만을 넘기고 있었어요. 댓글은 만개가 넘어가고 있었어요.
   어린 왕자 : 와우, 다시 호랑이가 되는 어흥이! 신기하다. -
   어흥이가 라이브를 켠 채로 잠이 들어 사람에서 호랑이로 다시 변하는 모습이 생방송되고 있었던 거예요.
   자기도 모르게 꼬리가 살랑거리고 입꼬리가 올라갔어요.
   역시 ‘좋아요’가 좋아요.

이지음

‘좋아요’라는 달달한 굴레에서 벗어나고 싶은데 점점 더 얽매이고 있습니다. 큰일입니다! 제 글을 읽고 ‘좋아요’라고 말해주시면 참 좋겠습니다.

2022/12/27
61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