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유》가 새로 단장을 했다. 말하자면 새집이다.
  지난 2월 말에 63호(2023. 3)를 내보내고 안팎으로 재정비하는 시간을 가졌다. 웹페이지 디자인 및 시스템 개선, 독자를 대상으로 한 만족도 조사, 출판 종사자 인터뷰, 새 기획위원 위촉, 운영 인력 재구성, 편집 프로세스 점검과 보완 등이 진행됐다. 약 8개월의 시간이 소요되었는데 그 과정이 쉬울 리야 없다. 여러 사람의 수고와 노력으로 우여곡절을 넘어 《비유》는 여기에 이르렀다.
  창간부터 지금까지 편집자로 함께한 나에게는 개편 기간이 처음 가지는 방학과도 같았다. 달게 쉬고 달게 일했다. 창간 때쯤의 일이 새록새록 했다. 2017년, 김지은 편집위원의 제안으로 《비유》 기획팀(김나영, 장은정, 오영호)에 합류한 일, 디자인팀(신건모, 채희준)을 만나 매일같이 머리를 맞댄 일, 1호(2018. 1) 필진과 교정본을 주고받은 일, 눈이 몹시 내리던 날에 1호 게시 버튼을 누른 일, 업무를 나누어 짊어질 새 편집자(김잔디)가 구세주처럼 나타난 일 등 말이다. 그때 쏟은 열의가 이번 개편을 위해 온 집을 쓸고 닦은 정성과 닮아 보인다.
  창간호를 애틋하고 살뜰한 눈으로 다시금 살펴본다. 일부 작품의 문장을 아래에 옮기고 두런두런 이야기를 잇는다. 새집을 찾아와준 손님들께 잘 깎은 사과 한 접시 내놓는 마음이다.

반짝이는 눈동자 나타날 때면
쿵쿵 쿵! 가슴이 울렸지
혹시나 하고 두근두근
혹시나, 콩닥콩닥
혹시나 했다가, 역시나……

―연진영, 「제3자료실 18번 책장 네번째 칸 여섯번째 줄 2번 책」 부분

《비유》는 독자들과 호흡하며 제 모습을 찾고자 한다. “아무도 날 봐주지 않”는다면 “하나도 신나지 않”는다. “오른쪽왼쪽 앞뒤 위아래/ 친구들이/ 딱 붙어 있어도, 잔뜩 몰려 있어도” 그렇다. 수록된 귀한 글들을 “반짝이는 눈동자”로 읽어주기를, “겉만 보면 알 리 없”는 “내 속에 있는 비밀 이야기”를 기민하게 알아봐주기를…… 연진영의 동시를 빌려 바람을 밝힌다.

그제는 은사님으로부터 한 통의 메일을 받았다. 잘 지내고 있는지, 좋은 시 자꾸 익어가는 가을이라 믿네, 라는 글귀에 한결 가벼운 마음이 되어 답장을 드렸다.
요즘에는 바다보다 산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가을이라 그런가봐요. 지금까지는 매년 가을은 바다의 계절이었습니다. 가거나 가지 않거나 갈 수 있거나 갈 수 없을 때도요.

―김현, 「다섯 가지 힘을 하나로 모으면」 부분

얼마 전에 김현의 새 시집이 나왔다. 그의 산문에서 내가 좋아한 위의 구절이 떠올랐다. 시인에게 또 한 번 “좋은 시 자꾸 익어가는 가을”이 온 것이구나 싶어진 것이다. 나는 운이 좋게도 《비유》를 통해 많은 작품의 첫 독자가 된다. 작가가 한두 계절 이상 씨름하여 완성한 원고를 받아들면 어떤 숭고함이 느껴진다. 편집을 거치며 마음 나눈 작가들이 또다른 바다로, 산으로 나아가 계속해서 좋은 작품을 내놓는 것을 보면 응원하게 된다. 여전히, 힘껏.

……엄마는 요즘 뭘 바라고 기도해?
난 뭘 바라고 기도한 적 없다. 해야 하니까 하는 거지.
……왜 해야 해 기도를?
그건 나한테는 그냥 세상에 대한 인사 같은 거지. 잘 잤다는 인사. 잘 자라는 인사.
……엄마는 우리가 어떻게 되면 좋겠어?
글쎄. 이제 와서는 사는 건 모르겠고…… 그래도 우리가 가까운 곳에서 죽으면 좋겠다. 네가 오든가 내가 가든가 최대한 가까운 데서.

―최진영, 「어느 날(feat. 돌멩이)」 부분

읽은 지 오래되어도 살다가 문득 떠오르는 작품이 있다. 최진영의 소설이 그랬다. 원고를 받고부터 첫 호를 내보내기까지 여러 번 깊이 읽었음에도, 어느 날 문득 생각이 난다. 하던 일을 잠깐 멈추고 속절없이 읽어야 한다. 지구를 향해 날아오는 돌덩이로부터 저 대목에 이르기까지 읽기 속에 있는 시간이 유난히 좋다. 아, 그러고 보면 《비유》가 웹진이라서 다행이야. 언제 어디서든 꺼내어 읽기가 이토록 간편하니.

우리는 탄생과 소멸 사이에 있다. 《비유》 역시 그 사이 어느 한 지점에 있을 뿐이다. 거창한 건 모르겠고…… 우리가 처음과 같이 “최대한 가까운 데서” 인사를 나누면 좋겠다. “잘 잤다는 인사. 잘 자라는 인사”를 나눌 수 있는 거리에서.

접시에 놓인 사과와 포크가 그려져 있다.
잘 잤다는 인사, 잘 자라는 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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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연진영, 「제3자료실 18번 책장 네번째 칸 여섯번째 줄 2번 책」click
② 김현, 「다섯 가지 힘을 하나로 모으면」click
③ 최진영, 「어느 날(feat. 돌멩이)」click

남지은

본지 편집자로 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