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은 안부를 묻기에 좋은 겨울입니다. 올해 겨울은 유독 빠르게 지나갔어요. 겨울이라는 계절은 기억 속에서 대체로 희미하고, 희미하기 때문에 마음이 기울어집니다.
  이번 겨울에는 많은 장소에서 낯선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겨울을 통과하는 과정에서 만난 사람들의 표정은 설명할수록 어쩐지 흐려집니다. 그들은 창밖을 보는 대신 유리창에 서린 입김을 바라봤고, 눈 쌓인 도로가 회색의 진창으로 변할 때까지 그 자리를 떠날 것 같지 않았습니다.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다음 겨울에는 만나지 않을 것처럼 말이죠.

사건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 사라의 인스타에서 그가 처음으로 본 사진은 눈 쌓인 땅과 하얀 하늘, 흰 지평선. 끝없이 하얗기만 한. 그 사이에 서 있는 사람이었다. 사람이 아니었다면 온통 하얗기만 한 하늘과 땅의 경계를 알아채기 힘들었을 것이다. 똑같이 하얗다는 이유만으로 하늘과 땅을 구분할 수 없다니. 그는 생각했고, 그 사람이 사라인지 알 수 없었다.

더 깊은 밤과 덜 어두운 밤이 계속됐다.
내내 눈이 내렸다.

―윤해서, 「미세 골절」 부분

몇 년 전 홋카이도에서 일주일을 머물렀을 때 열 가지가 넘는 형태의 눈이 내렸습니다. 눈의 종류가 이렇게나 많다니, 여행 내내 중얼거리면서 도시와 골목을 걸었고요. 지금도 책방에 앉아 눈 내리는 창밖을 보고 있습니다. 이번 겨울은 눈이 많이 내려 반가우면서도 시린 느낌으로 시간을 보냈어요. 모든 걸 덮고, 모든 경계를 지우는 하얀 재앙이 내내 지속되기를 바라면서 말입니다.
  ‘더 깊은 밤’과 ‘덜 어두운 밤’만 계속되면 좋겠다, 그런 생각으로 하루하루를 보냈습니다. 나와 내 주위의 모두에게요. 그러다보니 어느덧 겨울의 중턱에서 이 글을 씁니다. 한겨울 설날에 삼베 옷감을 선물 받은 다자이 오사무는 여름까지 살아 있자고 다짐합니다. 순진하게만 생각했던 많은 다짐이 머릿속을 스치고 있습니다.

수리공은 풀린 나사를 조여 놓고 떠났다. 오전의 흔들림은 없던 일이라는 듯 책상은 말끔해졌다. 놀이터에 겨울 햇볕이 내려앉는다. 끓는 물처럼 서 있었다. 너를 큰 소리로 불렀다. 끓지 않는 물처럼 서 있었다. 나는 일 초 전 혼자 태어난 입김이었다. 표정들을 끌어안는 표정이었다. 너에게는 이름이 있었나. 나는 너를 외쳤나. 코피가 줄줄 흘러내렸다.

―박지일, 「감상 시절」 부분

겨울이 시작될 즈음 마산에 다녀왔습니다. 아니, 이제는 마산이라는 이름이 사라진 작은 도시에요. 기차역에 내리자 멀리 공장 굴뚝에서 연기가 흘러 하늘에 번지고 있었습니다. 책과 술을 함께 파는 곳에서 긴 시간 문장들을 낭독했고, 행사에 참여한 사람들과 오래 눈을 마주쳤습니다. ‘우리는 남겨진 게 아니야’라고 적힌 슬로건에 시선이 머물렀습니다. 과거 번성했던 호시절의 영광은 현재를 보내는 사람들과는 무관한 것 같았고, 장소를 옮기다 술집과 식당 사이에 위치한 의거 발원지 기념관이 눈에 띄었습니다. 다른 차원으로 향하는 포털을 마주한 것처럼 묘한 기분에 사로잡혀 얼마간 서 있었습니다.
  겨울은 안부를 묻기에 좋은 겨울입니다. 나는 오늘도 묻습니다. ‘일 초 전 혼자 태어난’ 당신은, 세계와 겨울을 어떻게 구분지어 살았느냐고. 나는 여전히 그 일이 어렵습니다. 세계 밖으로 벗어나려는 모든 노력이 물거품이 되면 좋겠습니다. 그럴 일은 없을 거라고 장담할 수 있습니다만, 다시 한번 말하자면, 나는 여전히 그 일이 어렵고 힘이 듭니다. 다음 겨울에는 안부를 묻는 나의 표정을 끌어안은 채, 세계의 겨울을 보내고 싶습니다.

관련 작품 바로가기
① 윤해서, 「미세 골절」click
② 박지일, 「감상 시절」click

민병훈

소설가. 소설집 『재구성』, 『겨울에 대한 감각』과 장편소설 『달력 뒤에 쓴 유서』를 출간했다. 본지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