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유》 큐레이션
뒤돌아보는 마음
저는 자주 뒤돌아봅니다. 놓고 온 건 없나 두 눈으로 확인하고서도 마음이 놓이지 않아 기어이 돌아가 빈자리를 만져보고서야 떠납니다. 잠긴 문도 몇 번은 흔들어보고서야 안심합니다. 그렇게 하고도 다시 돌아간 적도 허다합니다. 믿음의 문제일까요? 미련의 문제 같습니다.
미련. ‘깨끗이 잊지 못하고 끌리는 데가 있는 마음’이라고 하네요. 미련이 자꾸 저를 끌어당깁니다. 잊지 못한 것들이 쌓여갈수록 당기는 힘도 강해져요. 저는 그만큼 과거를 자주 곱씹는 사람입니다. 자기 전에도, 길을 걷다가도 문득 문득이요.
얼마 전 방 정리를 하는데, 여기저기서 편지들이 나오더라고요. 제때제때 모아놨어야 하는데, 조금씩 모아놓고 또 잊고 또 다른 데 모으다 보니 이리저리 흩어져 있었던 편지들. 오랫동안 보관해온 편지들이 모인 상자가 있어 거기에 모으려는데, 이상하게 부치지 못한 편지들이 많았습니다. 쓰다가 틀렸나 싶어 살펴보면 그것도 아니고, 마지막에 스티커까지 잘 붙여 봉한 편지인데 잘 보니 제가 수신인이 아니라 발신인인 편지들이었습니다. 몇몇은 전해지지 못한 것들, 몇몇은 미처 다 쓰이지도 못한 것들이었어요. 끝내 전하지 못한 마음들이 그득한 종이들을 끝내 버리지 못하고 또 끌어안고 말았습니다. 이제는 이 고백들이 정말로 전해졌어야 했던 건지, 그저 욕심껏 전하고 싶었던 것뿐었는지도 헷갈립니다.
때를 놓쳐버린 고백은 때때로 빚처럼 느껴집니다. 하가람 작가의 「5월은 창가의 호랑이」의 호수도 전하지 못한 진실(혹은 진심)이 얹혀 열병을 앓아요. 고양이 ‘호랑이’가 창밖으로 뛰어오른 그날의 목격자였기 때문입니다.
문득 생각합니다. 고백은 1인분일까, 2인분일까. 내 안에 똘똘 뭉치고 다듬어져 무거울지언정 품고 있을 수 있는 마음과 내 그릇엔 가득 차다 못해 넘쳐흘러 전하지 않고는 못 배기는, 자기도 모르게 새어 나와버리는 그런 마음이 있으니 1인분도 2인분도 될 수 있겠네요.
이선진의 「만남의 뒤통수」에 등장하는 ‘지아’는 중학생 시절 육상 유망주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인근 중학교에서 스카우트되어 ‘당희’가 전학을 옵니다. 라이벌의 등장, 게다가 지아는 체형 변화까지 심하게 오며 기록이 곤두박질치는데요. 이 정도 정보로는 둘은 마주치기만 해도 으르렁대야 맞는 것 같은데, 지아와 당희 사이에는 다른 스파크가 튑니다.
호수와 지아에게, 아울러 준과 당희에게, 국화와 엄마와 이모에게. 어쩐지 위로받고 힘을 얻어 고마운 한편, 홀로 지고 있던 외로움을 멋대로 나눠 갖게 하여 빚을 진 마음으로.
관련 작품 바로가기
① 하가람, 「5월은 창가의 호랑이」 click
② 이선진, 「만남의 뒤통수」 click
③ 성연주, 「너와 나의 시차」 click
미련. ‘깨끗이 잊지 못하고 끌리는 데가 있는 마음’이라고 하네요. 미련이 자꾸 저를 끌어당깁니다. 잊지 못한 것들이 쌓여갈수록 당기는 힘도 강해져요. 저는 그만큼 과거를 자주 곱씹는 사람입니다. 자기 전에도, 길을 걷다가도 문득 문득이요.
얼마 전 방 정리를 하는데, 여기저기서 편지들이 나오더라고요. 제때제때 모아놨어야 하는데, 조금씩 모아놓고 또 잊고 또 다른 데 모으다 보니 이리저리 흩어져 있었던 편지들. 오랫동안 보관해온 편지들이 모인 상자가 있어 거기에 모으려는데, 이상하게 부치지 못한 편지들이 많았습니다. 쓰다가 틀렸나 싶어 살펴보면 그것도 아니고, 마지막에 스티커까지 잘 붙여 봉한 편지인데 잘 보니 제가 수신인이 아니라 발신인인 편지들이었습니다. 몇몇은 전해지지 못한 것들, 몇몇은 미처 다 쓰이지도 못한 것들이었어요. 끝내 전하지 못한 마음들이 그득한 종이들을 끝내 버리지 못하고 또 끌어안고 말았습니다. 이제는 이 고백들이 정말로 전해졌어야 했던 건지, 그저 욕심껏 전하고 싶었던 것뿐었는지도 헷갈립니다.
때를 놓쳐버린 고백은 때때로 빚처럼 느껴집니다. 하가람 작가의 「5월은 창가의 호랑이」의 호수도 전하지 못한 진실(혹은 진심)이 얹혀 열병을 앓아요. 고양이 ‘호랑이’가 창밖으로 뛰어오른 그날의 목격자였기 때문입니다.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는 솔직해지기가 어렵습니다. 호수 역시 “준이 자신의 표정에서 무언가를 알아챌까봐, 자신을 영영 멀리하게 될까봐 겁이 났”거든요. 거짓을 고한 건 아니지만, 솔직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가장 큰 잘못으로 느껴지니까요. 그리고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고, 자꾸 들여다보고 파헤치다보면 호수처럼 생각하게 됩니다. 진짜, 내 잘못은 없을까? 그러다보면 점점 무서워져서, 입 밖으로 꺼내기가 힘들어져요. 누구와도 나누지 못하고 오롯이 스스로 감내해야 하는 이 고통이 어쩌면 외로움일지도 모르겠습니다.호수는 상상한 적이 있었다. 매일 밤 ‘만약에’로 시작하는 수많은 가능성을 머릿속에 그리며 잠들었다. 만약에 호랑이가 집을 나간다면…… 만약에 호랑이를 훔쳐 바닷가에 버리고 온다면…… 그러니까 호랑이가 사라진다면. 그렇게 된다면 준을 소라와 멀어지게 하고 그의 발을 이곳에 묶어둘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호랑이를 되찾기 전까지는 준이 울산을 떠나지 못할 거라고. 하지만 정말로 그런 일이 일어나기를 바란 것은 아니었다. 그날 호수가 잘못한 일은 없었다. 없다고 생각했다.
(…)
만약에, 라는 단어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며칠을 부유하던 그 단어는 어느 날 호수의 머리 깊숙한 곳에 뿌리를 내린다. 그 단어는 과학책에서 본 끈끈이주걱과 같다. ‘만약에’는 순식간에 자라난다. 줄기를 뻗고 향기를 풍겨 다른 상상을 끌어들인다.―하가람, 「5월은 창가의 호랑이」 부분
호되게 앓고 끙끙대며 품었던 고백이지만, 호수가 자라 엄마와 사는 이 집을 떠나고 더 큰 도시로 가면, 시간을 착실히 밟으며 자라난 호수가 아직 그 집에, 그 기억에 남아 있는 호수를 발견하고 손을 내어주지 않을까요? 이렇듯 어떤 미련은, 끝끝내 손을 놓지 않고 구원의 손길로 다시 돌아갈 수 있다고 믿습니다.아니지. 그건 외로운 일이다. 내 마음을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하면서 누구에게든 털어놓고 싶어 하는 건.―하가람, 「5월은 창가의 호랑이」 부분
문득 생각합니다. 고백은 1인분일까, 2인분일까. 내 안에 똘똘 뭉치고 다듬어져 무거울지언정 품고 있을 수 있는 마음과 내 그릇엔 가득 차다 못해 넘쳐흘러 전하지 않고는 못 배기는, 자기도 모르게 새어 나와버리는 그런 마음이 있으니 1인분도 2인분도 될 수 있겠네요.
이선진의 「만남의 뒤통수」에 등장하는 ‘지아’는 중학생 시절 육상 유망주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인근 중학교에서 스카우트되어 ‘당희’가 전학을 옵니다. 라이벌의 등장, 게다가 지아는 체형 변화까지 심하게 오며 기록이 곤두박질치는데요. 이 정도 정보로는 둘은 마주치기만 해도 으르렁대야 맞는 것 같은데, 지아와 당희 사이에는 다른 스파크가 튑니다.
와. 이런 게 바로 2인분의 고백이겠죠. 어쩌면 제삼자인 제게도 영향을 주었으니 3인분짜리일지도요. 어쩌면 오타가 나도 사당이 사랑이 될까요. 그런데 지아의 마음은 이미 2인분이었는지, 3인분이 된 마음을 소화하기가 버거웠나 봅니다. 그래서 넘치는 마음을 당희에게도 건네는데, 어쩐지 다시 돌아오고 말아요. 그렇게 과식한 마음이 지아의 가슴에 제대로 얹혀버렸는지도 모르겠습니다.“지아 너 귀가 진짜 예쁘다고.”
“사람 귀가 예쁘면 뭐 얼마나 예쁘다고.”
“아냐, 예뻐.”
“어떻게 예쁜데?”
“네 귓바퀴에서 달리기하고 싶을 정도로 예뻐.”
―내일 5시, 사랑에서 만나.―이선진, 「만남의 뒤통수」 부분
그래서일지도 몰라요. 무거워진 마음은 자꾸 발을, 시선을 붙잡으니까요. 그런데요. 꼭 잘 달리려면 앞만 보고 달려야 하는 걸까요? 무언가를 쫓는 대신 쫓기는 기분으로 뛰면 안 되는 걸까요? 쫓기는 기분이라도 절대 뒤를 돌아보면 안된다는 걸까요. 아마 지금 달리는 것, 앞으로 돌진하는 것 외엔 모두 잡념이니 치워야 한다는 의미겠지만 어쩐지 자꾸 반기를 들게 됩니다.문제는 지아가 앞만 보고 달리는 사람이 아니라는 거였다. 잘 달리다 말고 뒤돌아보는 사람이라는 거였다. 그럴 때마다 코치는 너 이 새끼 뭐 하는 거야! 소리쳤고 지아는 자신이 지금 무슨 짓을 하는지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면서도 좀처럼 그 습관을 고치지 못했다. 순위에 대한 부담감 때문은 아니었다. 선두 자리를 뺏길까봐 그런 거면 차라리 낫지 꼴찌가 유력한 상황임에도 자꾸만 뒤를 돌아보게 되었으니까. 어느 날엔가 “근데 넌 진짜 왜 그러는 거야?” 하고 당희가 물었을 때 지아는 “그냥 뭐가 나를 쫓아오는 것 같아서. 그게 뭔진 모르겠지만” 하고 대강 얼버무렸다.―이선진, 「만남의 뒤통수」 부분
자꾸 뒤를 돌아보고 곱씹어보고 후회하는 일이 나를 갉아먹는 일이라고만 생각했는데, 호수와 지아를 보며 꼭 그렇지만은 않다고 믿게 되었습니다. 자꾸 생각하고 되새기는 만큼, 뒤로 당겨지는 만큼 앞으로 나아가는 힘이 생길 테니까요. 뒤로 쭉 당겨 바퀴를 감고서 팅 하고 질주하는 장난감 자동차처럼요. 미련을 동력으로 삼고 후회라는 부스터로 달려나가는.내가 비록 제자리로 돌아오긴 했지만 결코 제자리걸음은 아니야. 출발선으로 돌아오긴 했지만 앞으로 나아가지 않은 건 아니야.―이선진, 「만남의 뒤통수」 부분
호수와 지아에게, 아울러 준과 당희에게, 국화와 엄마와 이모에게. 어쩐지 위로받고 힘을 얻어 고마운 한편, 홀로 지고 있던 외로움을 멋대로 나눠 갖게 하여 빚을 진 마음으로.
우리 사이의 시차를 줄이는 일은 하나의 시간으로 모이는 것보다는 그렇게 줄어가려는 움직임에 방점이 찍히는 일이지 않을까, 라고 믿어보며. 저와 작품들 사이의 시차가 만들어낸 이 이야기가, 여러분이 《비유》를 즐기는 또 하나의 방식이 되어주기를 바랍니다.웹진 《비유》 소개글에는 ‘우리가 쓰는 것은 문학이고, 우리가 만드는 것은 문학과 연계하고, 문학을 확장하는 활동입니다’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문학이 다른 무엇과 연계하고 확장하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시차를 감수하게 됩니다. 텍스트가 이동하고 활용되며, 다른 장르의 문법 위에서 문학을 펼치고 재조립하는 일련의 과정에서 서로 간의 차이가 확연히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우리는 그런 차이가 만들어내는 모호함에 익숙하지 않았는지도 모릅니다. 《비유》를 통해 그런 모호함을 실험하고 새로운 시도를 지속하는 것이 기획자이자 독자로서 《비유》를 온전히 즐기는 것이 아닐까요?―성연주, 「너와 나의 시차」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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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하가람, 「5월은 창가의 호랑이」 click
② 이선진, 「만남의 뒤통수」 click
③ 성연주, 「너와 나의 시차」 click
음소정
홍대 앞 동네서점 땡스북스 점장. 독자를 기다리는 책들에 둘러싸여 일하고, 나를 기다리는 책들에 둘러싸여 산다. 손정승 전 점장과 함께 『고마워 책방』을 썼다. 취미는 산 책 들고 산책하기.
2026/05/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