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심장 이슬
조앤 디디온은 죽은 남편의 구두를 처분할 수 없었는데,
언젠가 돌아올 남편이 그걸 신어야 하기 때문이었다.
이 행성에서 가장 똑똑한 사람들도 죽은 이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린다.
_마리아 투마킨, 『고통을 말하지 않는 법』1)
언젠가 돌아올 남편이 그걸 신어야 하기 때문이었다.
이 행성에서 가장 똑똑한 사람들도 죽은 이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린다.
_마리아 투마킨, 『고통을 말하지 않는 법』1)
낮에는 벌거벗은 몸처럼 어딘가에 숨어 있다
사랑하는 이여, 너는 어둠의 외투를 좋아하는구나
나 혼자 있는 밤에만 찾아오다니
태양이 아무렇게나 펼친 아침의 책장 위에 너는 없다
네가 먼저 일어나서 산책을 나가버린 것처럼
흐트러진 침대만 누워 있다
혹시,
너는 다른 집 식탁에 앉아 있는 거니?
거기서 우리의 반지가 커피잔 속 각설탕처럼 녹고 있는 거니?
곧 오겠다는,
약속의 말이 말라간다
밤새 꺼내놓은 접시 위의 빵처럼
시간이 흐르는데
날들이 지나가는데
겨울비가 여름비를 적시는데
너의 시계는 멈춘 채 책상 위에
너는 왜, 늘 여섯시지?
너는 왜, 죽어버렸지?
한낮의 유리 창문에 내 얼굴이 혼자 아른거리고
한낮의 둥근 천정으로 자정의 풍선들이 떠오르면,
침대가 네(四) 모서리에서 불면의 가스 밸브를 연다
밤이 빵 반죽처럼 부풀어오르고
우리는 또다른 별에서 만난다
동그란 뱀과 기다란 사과 껍질이 되어
부엌 찬장을 열자마자 그릇들이 와르르 쏟아지듯
내 영혼에 사랑을 너무 가득 담았나봐
이렇게 후회하는 일은 없을 거다
왜냐하면
끝없이 이어지는 이 별의 진주 목걸이 속에 너는 없으니까,
너는 이 별에 출연하지 않기로 결심했으니까,
너는 나를 닮은 자매와 도망쳤으니까,
아침이 늘 젖은 마분지 상자처럼 왔으니까
너는 내가 모르는 별에서
너는 내가 모르는 나와 입맞추며 사랑에 빠졌다
얼음처럼 단단해진 허공에 손가락으로
따스한 동그라미를 그리며
심장 이슬
심장 이슬
네가 벗어둔 가죽구두를 흠뻑 적시는
기억의 지네들이
새벽 문틈에 끼인 내 심장으로 몰려든다
네가 슬리퍼를 끌며 오가던 소리가
거실에 남아 있다, 우물 속 가라앉은 돌들처럼
사랑하는 이여,
유통기한이 한참 지난 통조림처럼
사람들이 내 슬픔을 가져다 버리라고 한다
진은영
철학을 공부했고 시를 씁니다. 조선대학교 문예창작학과에서 시를 가르칩니다. 지은 책은 시집 『일곱 개의 단어로 된 사전』 『우리는 매일매일』 『훔쳐가는 노래』 『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 산문집 『나는 세계와 맞지 않지만』 등이 있습니다.
2026/05/06
79호
- 1
- 서제인 옮김, 을유문화사, 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