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닥에 여러 벌의 옷과 분홍색 양말 한 짝이 널려 있다. 그중 줄무늬 잠옷 주머니 위에는 엄지손가락만큼 아주 작아진 할머니가 서 있다. 분홍색 상의를 입고 목에 손수건을 두른 할머니는 한쪽 손을 들어 반갑게 흔들고 있다.

할머니는 할머니의 장례식이 끝난 다음 날 나타났다. 이 말이 너무 이상할 거라는 걸 나도 안다. 하지만 그렇게밖에 말할 도리가 없다. 엄마 아빠와 함께 지쳐서 집으로 돌아왔고 장례식장에서 남아서 싸온 음식을 대충 먹은 후 내 방에서 바로 잠들었다. 작년까지만 해도 엄마와 같이 잤지만 엄마가 할머니 병원에서 지내는 일이 잦아지면서 자연스럽게 그렇게 됐다. 주변에 아직도 혼자 못 자는 애들이 많은데 이 부분은 내 자랑 포인트다. 암튼 그게 중요한 게 아니고.
  할머니는 내 잠옷 주머니에서 기어나왔다. 기어나왔다는 표현도 너무 이상할 거라는 걸 나도 안다. 하지만 주머니가 납작해서 할머니는 기어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까 정확히 어떻게 된 일인가 하면 할머니는 장례식 다음 날 내 엄지손가락만해진 사이즈로 팍 줄어든 채 내 잠옷 주머니에서 기어나왔다, 이 말이다.
  처음에는 잠결에 벌레인 줄 알았다. 온몸에 소름이 쫙 돋으면서 으아악 비명을 지르려는데 할머니가 내 이름을 불렀다.
  “이연아!”
  그제서야 나는 벌레라고 생각한 할머니를 자세히 뜯어봤다. 할머니가 집에서 자주 입던 분홍색 맨투맨 트레이닝복 세트(작년까지 내가 입던 건데 이제 분홍색은 안 입어서 할머니한테 넘겼다)에 목에 묶은 손수건, 무지개색 수면 양말까지 축소되었을 뿐이지 할머니의 착장 그대로였다. 기절할 일이었다. 동화책에서나 읽었던 엄지 공주가 실화가 되어 내 앞에 나타나다니. 내 정신이 나갔거나 꿈을 꾸고 있는 건가 싶었지만 그러기에 할머니는 지나치게 생생했고 내 정신은 말짱했다.
  “저승에 갔는데 살아생전 복을 많이 베풀었다고 소원을 하나 들어준다는 거야. 그래서 도로 살려내라니까 원래대로는 어렵고 눈에 잘 안 띄는 형태로는 가능하대. 근데 내가 원하는 단 한 명한테만 내 존재를 알릴 수 있대. 그래서 너를 찍었지. 다른 사람한테 내 모습이 들키면 바로 저승 송환이야. 치사스러워서 원.”
  “왜 나를 찍었어? 엄마 아니고?”
  “너랑 인사를 제대로 못 했잖아. 니 엄마는 병원에 있는 동안 매일매일 나한테 인사했어.”
  “뭐라고 인사했는데?”
  “고맙다고. 사랑한다고.”
  안방에서 울다 잠은 엄마 얼굴이 떠올랐다. 나는 사실 장례식장에서 많이 울지 않았다. 할머니가 사라진 게 하나도 실감이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직도 집에는 할머니 물건들로 가득하고 할머니 냄새도 사라지지 않았다. 할머니가 뜨다 만 수세미도 뜨개실 바구니도 할머니가 앉던 의자 바로 옆에 그대로다. 그래선지 누군가 영원히 만날 수 없다는 게 뭔지 잘 모르겠다. 그냥 엄마가 많이 울어서 마음이 슬펐다.
  “할머니 배고프다. 고구마 찐 거 좀 갖다줘.”
  나는 살금살금 주방으로 나갔다. 이른 아침이라 아무도 일어나지 않았다. 고구마는 한 무더기 있었지만 찐 고구마는 없었다. 냉장고와 찬장을 뒤지다 시리얼이 있길래 우유에 타서 갖고 방으로 돌아왔다.
  “우유 수영장에 빠져서 두번째 죽음을 맞이하고 싶지 않다. 내가 먹고 싶은 건 고구마뿐이야.”
  저승에서 살아 돌아온 할머니는 묘하게 까탈스럽고 뻔뻔해졌다. 평소 할머니는 매일 아침 고구마를 먹긴 했다. 고구마는 아무리 먹어도 물리지 않는다고 했다. 할머니의 ‘소울 푸드’ 같은 거다. 귀찮았지만 고구마를 쪄보기로 했다. 인터넷으로 고구마 삶기를 검색해 그대로 따라했다. 이십 분 정도 지난 후 젓가락으로 푹 찌르니 쑥 들어갔다. 처음치고 제법 잘됐다. 집게로 꺼내 그릇에 담아 할머니 앞으로 대령했다.
  “에어 프라이어로 십 분.”
  “에엥?”
  에어 프라이어로 다시 구워야 군고구마처럼 된다고 한다. 툴툴대며 고구마를 들고 다시 부엌으로 갔다. 내가 이렇게 시끄럽게 해도 엄마 아빠는 기절한 건지 나와보지 않는다. 겉바속촉이 된 군고구마를 할머니에게 바쳤다. 왕의 시중을 드는 무수리의 기분이 이런 것일까.
  할머니는 내가 잘라준 고구마에 달라붙어서 한참 고구마를 먹었다. 새끼손톱 반만큼이 사라지자 할머니는 배가 부르다고 했다. 노력 대비 허망한 식사량이었다. 우유 한 방울로 식사를 마무리한 할머니는 내 주머니에 들어가 다시 쿨쿨 잠들었다. 다시 잠들면 할머니가 사라져 있을까봐 무서워서 눈에 불을 켜고 잠든 할머니를 지켜봤다.
  그러다 나도 모르게 다시 잠들었나보다. 엄마가 깨우는 소리에 눈을 떠보니 주머니에 할머니가 사라지고 없었다. 이럴 줄 알았다. 사라진 할머니가 미워서―이럴 거면 다시 나타나지나 말지―주머니를 뒤지다 엉엉 울었다. 내가 울자 엄마도 같이 울었다. 엄마와 껴안고 한참 울고 있으려니 아빠가 나타나서 울멍울멍한 얼굴로 우리를 쳐다봤다.
  “당신도 이연이도 많이 힘들지…… 그래, 울어. 울어야 괜찮아진댔어.”
  할머니가 다시 나타난 건 그날 오후였다. 내 방 창문에서 자꾸 똑똑 소리가 들려 가보니 비둘기가 부리로 창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그리고 할머니는…… 비둘기 등에 타고 있었다.
  “할머니, 대체 어디 갔던 거야?”
  “비둘기 좀 길들이느라. 내가 기동력이 좀 있어야 하지 않겠니?”
  하긴 할머니는 일흔 살이 넘어서도 운전을 잘했다. 짙은 회색의 승용차에 온갖 잡동사니를 다 넣고 여기저기를 다녔다. 그러고 보니 그 승용차, 색깔이 비둘기색이었구나.

다음 날 학교에 가는데 할머니도 같이 간다고 고집을 부렸다.
  “하루 종일 집에서 심심해서 어떻게 있어? 이렇게 몸이 쪼끄매져서 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는데. 다른 사람한테 안 보이게 하려면 차라리 뭐 투명 인간으로 만들어주든가.”
  “그럼 나도 할머니를 못 보잖아.”
  “그건 그렇네.”
  그래도 진짜 같이 가기 싫었다. 하지만 내 마음과 상관없이 할머니는 겉옷 안주머니에 쏙 들어가 나올 생각이 없어 보였다. 할 수 없이 같이 등교했다. 가는 길에 할머니는 온갖 모든 일에 참견하고 싶어했다. 나는 할머니의 지시에 따라 넘어진 화분을 바로 세우고 굴러다니는 쓰레기를 줍고 3학년 아이와 횡단보도를 함께 건너주고 편의점을 찾아헤매는 할아버지에게 길을 알려드렸다. 내가 가만히 있으면 내 주머니 속에서 할머니가 손가락을 콱콱 깨물어 말을 안 들을 수 없었다. 엄청 아픈 건 아니었는데 따끔따끔 신경질 나는 통증이었다. 덕분에 십 분이면 갈 학교를 삼십 분이나 걸려 도착했다. 이렇게 세상만사에 오지랖을 부리다간 하루 이십사 시간이 부족할 판이었다. 할머니가 원래 그런 건 알고 있었지만 몸이 이렇게 쪼그매진 지금 나를 이용하면서까지 그런 삶의 방식을 포기할 수 없다면 곤란하다. 인적이 드문 학교 화장실 맨 끝 칸에 들어가 할머니와 진지한 대화를 나누었다.
  “손가락 좀 그만 깨물어!”
  “할 수 있는 일을 두고 왜 하지를 않아?”
  “그걸 왜 꼭 내가 해야 하는데?”
  “할 수 있으니까.”
  말이 안 통했다. 내일부터 할머니를 절대 데리고 나오지 않겠다고 결심하고 교실로 갔다. 친구들 여럿이 오랜만에 학교에 등교한 나를 아는 체 해줬다. 오늘은 반장 선거일이다. 그래서인지 아침부터 분위기가 어수선했다. 1교시가 시작하자 선생님이 반장 후보 등록을 받았다. 두 명 이상이 추천을 하면 후보로 등록된다. 스스로를 추천하면 다른 추천인 한 명만 있으면 된다. 나서는 걸 싫어하는 나는 종이에 낙서나 하며 후보들의 이름이 칠판에 오르는 걸 구경하고 있었다.
  “서이레를 추천합니다.”
  “저도 서이레 추천에 동의합니다.”
  선생님은 칠판에 ‘서이레’라고 썼다. 아이들이 웅성거려 둘러보니 이레를 추천한 아이들은 키득대며 웃고 있었고 그뒤로 얼굴이 새하얗게 된 서이레가 눈에 들어왔다. 서이레는 우리 학교에서 가장 수줍음이 많은 애다. 아무도 그애의 목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다. 학기 첫날 출석 부를 때도 이레는 조용히 손만 들지 이름에 대답하지 않았다. 아이들이 놀리려고 후보 등록을 한 것이다. 유치하게 이런 것도 장난이라고.
  잠시 후 반장 후보들이 나와 자기소개와 공약을 이야기했다. 서이레 차례가 되었다. 원하지 않으면 ‘후보를 사퇴합니다’라고 말하면 되는데 그럴 정신이 없는 건지 목소리가 안 나오는 건지 서이레는 제자리에 가만히 얼음 상태였다.
  “이레야, 반장 공약 멘트 못 하겠니?”
  담임 선생님의 물음에 이레를 후보로 추천했던 애가 냉큼 대답했다.
  “선생님, 그런 게 어딨어요, 기껏 추천했는데. 용기와 도전을 배울 나이라고 하셨잖아요.”
  “그게…… 경험 삼아 한번 해보는 것도 나쁘진 않긴 한데……”
  담임 선생님이 고민하는 표정이 되자 반 아이들 전부가 이레의 입만 쳐다봤다. 아까 새하얗던 이레의 얼굴이 지금은 새빨간 색으로 물들어갔다. 그때 할머니가 내 손가락을 또 콱 깨물었다. 뭔가 하라는 뜻이었다. 하지만 내가 굳이? 서이레가 안되긴 했지만 나는 어디까지나 제3자일 뿐이다. 모른 척 창밖을 바라보고 있는데 손가락에서 지금까지와 다른 차원의 찌릿함에 강렬하게 느껴졌다. 나는 감전당한 사람처럼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정이연 뭐야?”
  “……”
  이레를 바라보던 아이들이 모두 나를 쳐다봤다. 서이레도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기분 탓인지 모르겠지만 간절한 표정이었다.
  “……수, 수줍음이 많은 건 잘못된 게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친구를 놀리려고 물어보지도 않고 장난으로 후보 등록을 하는 게 더 잘못된 것입니다.”
  목소리가 떨렸다. 그래도 더이상 할머니에게 손가락을 물어뜯기고 싶진 않았다. 할머니는 라따뚜이에 나오는 쥐도 아니면서 나를 막 조종하려고 한다. 그래도 잘못된 일을 하라고는 안하니까.
  “도전할 자유가 있는 것처럼, 도전하지 않을 자유도 있어야 합니다.”
  내가 이렇게 말을 잘했던가. 할머니가 시킨 거긴 하지만 할머니가 나를 지켜보고 응원하고 있다 생각하니 평소보다 더 크게 용기가 났다. 나는 이레를 쳐다보며 조용히 물었다.
  “이레야, 후보 등록을 취소하고 싶으면 고개를 끄덕여줘.”
  이레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레의 이름이 칠판에서 지워졌다.
  그날 수업이 끝나고 이레에게 쪽지를 건네받았다. 너무너무 고맙다고, 언젠가 너처럼 용감하게 남들 앞에서 말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쪽지를 접어 가방 깊숙한 곳에 넣어두는데 자꾸만 실실 웃음이 났다. 열 손가락 끝이 간질간질해지는 기분이었다.
  “좋냐?”
  그걸 바라보던 할머니가 내게 물었다. 대답을 하지 않자 할머니는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너한테 오지랖의 기술을 전수하는 중이야. 나는 오지랖 무형문화재라고 할 수 있지.”

반장 선거일 이후로 오지랖의 재미를 조금 깨우친 나는 할머니가 손가락을 깨물기 전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기 시작했다. 할머니는 비둘기를 타고 시찰을 나가 필요한 일에 나를 끌어들이기도 했다. 길잃은 아이를 파출소에 데려다주거나 땅바닥에 떨어진 이불 빨래를 주워다주는 일 등이 그에 해당됐다. 감사 인사를 받는 것도 나쁘지 않았지만 무엇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한다는 건 꽤나 보람된 일이었다. 그건 나 자신을 좀더 좋아할 수 있는 일이기도 했다. 사람들은 의외로 할머니를 알아보지 못했다. 부주의하게 사람들 앞에서 주머니 밖으로 튀어나오거나 비둘기에 올라타기도 했는데 아무도 못 알아챘다. 봤더라도 분명 잘못 본 거라고 생각했을 거다. 그러니까 세상에는 잘 보려고 애써야만 보이는 것들이 있는 거다. 대충 봐선 절대로 못 찾는다. 덕분에 할머니가 정체를 안 들키고 내 옆에 있어 다행이지만.

할머니와 콤보로 다니며 마을의 안녕과 평화를 위해 고군분투하느라 한동안 바빴다. 그래서 엄마의 상태가 안 좋아졌다는 걸 시간이 좀 지나서야 알게 되었다. 나에게 티내지 않으려고 노력한 것도 있겠지만 바깥일에 골몰하다 집안일에 미처 신경을 쓰지 못한 나의 불찰이었다. 엄마는 할머니 장례식 이후로 일상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복직을 미루고 얼마 전부터 마음상담센터를 다니기 시작했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할머니의 뜨개실 바구니 옆에 오도카니 앉아 있다가 화들짝 놀라며 나를 맞이하곤 했다. 할머니는 지금 여기 내 주머니 안에 들어 있는데. 엄마에게 그 말을 해주지 못해 답답하기만 했다. 밤에 가끔 자다 깨면 엄마가 거실을 유령처럼 걸어다니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긴 한숨을 그림자처럼 매달고. 그런 밤이면 나도 엄마도 할머니도 모두 잠들지 못했다.
  “할머니한테 할말이 있는데 이제 할 수가 없어. 그래서 엄마는 괴로운 거야.”
  “내가 전해줄게. 나한테 말해주면 안 돼?”
  엄마는 말없이 내 뺨만 만지작거렸다. 전달되리라 믿지 않거나 직접 말하고 싶거나 둘 중에 하나겠지. 엄마가 말라가자 할머니도 덩달아 시름시름했다. 고구마도 잘 안 먹고 이전처럼 내 손가락을 세게 깨물지도 못했다. 둘이 한집에 살면서 서로를 걱정하는 모습을 가운데서 보자니 복장이 터졌다.
  할머니는 말라가는 대신 조금씩 흐려져갔다. 이대로 두었다간 물방울처럼 투명해질 것 같았다. 그러게 나한테 나타날 것이 아니고 엄마에게 갔었어야지. 하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할머니가 내게 와줘서 좋았다. 할머니가 내게 오지랖 부리는 법을 알려줘서 기뻤다. 그런 건 원래 전통적으로 할머니한테서 배우는 거니까. 달이 온 우주를 비출 만큼 커다랗고 밝게 뜬 밤, 나는 긴 고민 끝에 할머니에게 말했다. 엄마 앞에 나타나서 엄마의 말을 들어달라고.
  “그럼 내가 사라질 텐데?”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엄마가 할머니를 다시 한번 만나게 해주고 싶었다. 할머니를 너무너무 사랑하지만 엄마를 조금 더 사랑한다. 그래서 엄마가 엄마의 엄마를 얼마나 사랑하는지도 알 수 있었다. 사랑은 누군가의 마음을 상상하게 하니까 나는 엄마의 마음을 알 수밖에 없는 거다.
  방문을 조금 열고 내다보니 엄마는 할머니 전용 의자에 앉아 잠들어 있었다.
  “할머니, 이제 엄마한테 가.”
  할머니는 나를 한참 쳐다보더니 천천히 거실로 걸어나갔다. 몇 번이나 가다 뒤를 돌아봤다. 그때마다 손을 흔들며 안녕, 하고 나직이 인사했다. 할머니도 내게 손을 흔들었다. 반쯤 투명해진 할머니의 작은 몸으로 부드러운 달빛이 흘러들었다.
  “윤서야.”
  마침내 엄마에게 도착한 할머니가 엄마의 이름을 불렀다.
  “엄마?”
  “왜 이렇게 밥도 못 먹고 이러고 있어.”
  “엄마, 엄마.”
  엄마가 울었다. 조용히 방문을 닫았다. 할머니가 사라지는 것을 직접 보고 싶지 않았다.

다음 날, 눈을 뜨자마자 주머니를 뒤졌다. 할머니는 사라지고 없었다. 마음이 뻥 뚫린 도넛처럼 되었다. 할머니 장례식 때보다 오늘이 더 슬펐다. 한 번도 힘든 이별을 두 번이나 하려고 할머니는 내게 다시 찾아온 걸까. 학교에 가야 하지만 몸은 무겁기만 했다.
  “이연아, 이제 일어나야지.”
  엄마가 나를 깨우러 온 건 아주 오랜만이다. 장례식 이후 엄마는 내가 등교할 때까지 잠을 잤다. 침대에 앉아 나를 쓰다듬는 엄마에게서 달콤한 냄새가 났다.
  “팬케이크 구웠어. 얼른 일어나서 먹자.”
  “엄마 오늘은 컨디션이 좋아 보여.”
  “어제 꿈에 할머니가 나왔어.”
  그거 꿈 아닌데, 말하려다 눈물이 터질 것 같아서 그만뒀다.
  “부끄러운 이야긴데…… 엄마가 할머니 간병하다 힘들어서 할머니한테 나 오래 괴롭히지 말고 할아버지 만나러 가시라고 그랬거든. 그다음 날 할머니가 돌아가셨어. 엄마가 그런 말을 해서 할머니가 빨리 돌아가신 것 같아서 너무 괴로웠어.”
  그다음부터는 나도 아는 내용이다. 엄마의 괴로움을 덜어주기 위해 할머니를 만나게 해준 건 나니까. 어떤 말들은 말을 뱉은 사람에게 총알처럼 박혀서 그 사람의 영혼을 죽어가게 한다.
  “할머니가 뭐래?”
  “그런 말은 기억이 안 난대. 사랑한단 말이랑 고맙다는 말밖에 기억 안 난대.”
  “그 말도 엄마가 한 거지?”
  엄마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된 거다. 할머니가 기억하는 말들은 다른 말들이었다. 더 중요한 말. 더 진짜인 말.
  갑자기 오른손 둘째 손가락이 욱신했다. 할머니가 자주 깨물었던 손가락이었다. 뭔가를 하라는 신호였다. 나는 일어나서 엄마를 꼬옥 안아줬다. 엄마가 엄지손가락만하지 않아 두 팔로 꼬옥 안을 수 있어 다행이었다.
  그때 합리적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할머니는 사라진 게 아니고 투명 인간이 되어버린 거 아닐까. 그게 아니라면 내 손가락의 통증을 설명할 길이 없다. 마지막으로 봤을 때도 점점 투명해지고 있었어. 완전히 투명해진 할머니가 방금 내 손가락을 깨문 게 틀림없다. 촉감도 생생했다.
  ‘안녕, 할머니.’
  허공을 향해 살짝 손을 들어 또다른 형태로 나를 찾아온 할머니에게 인사했다. 안을 수도 만질 수도 볼 수도 없지만 여기에 할머니가 있다는 걸 확신할 수 있었다. 그럼 그렇지. 할머니가 그렇게 쉽게 고구마를 포기할 리가 없다.

조우리

동화와 청소년소설을 쓴다. 『4x4의 세계』로 창비 좋은 어린이책 대상을 수상했다. 『내 이름은 쿠쿠』 『꿈에서 만나』 『얼토당토않고 불가해한 슬픔에 관한 1831일의 보고서』 『사과의 사생활』 등을 출간했다.

이 동화는 서울문화재단 산하 연희창작문학촌에서 썼다. 몸통이 커다란 나무의 가지가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 새소리, 고양이 소리만 들리는 고요한 공간에서 동화를 쓰는 일은 내게도 마음을 치유하는 일이었다. 겨울의 한가운데를 지나며 내내 죽음에 대해 생각했다. 좋은 죽음과 이별에 대해. 사라진 사람들은 작은 기억의 조각들이 되어 끊임없이 출몰한다. 마침내 투명해져 이 세상 모든 것들 속으로 온전히 스며들 때까지 그 작은 조각들을 붙잡고 우리는 애도하고 간직하며 삶의 한가운데로 나아간다. 가장 깊이 가져본 사람만이 가장 깊게 잃는 법이다. 그것이 삶의 저주이자 축복임을 이제서야 어렴풋이 깨닫는다.

2026/05/06
79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