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토리얼 착륙 시도
서윤후
얼마 전 여름휴가로 다녀온 제주도에서는 유동룡미술관이 가장 인상에 남았습니다. 유동룡은 재일한국인 건축가로 생전 자주 오갔던 오사카 공항 이름에서 성을 빌려온 ‘이타미 준’이라는 이명으로도 활동해 더 잘 알려져 있습니다. 한국과 일본을 수도 없이 오가며 자신이 마주한 숱한 경계를 허물고 연결하고자 분투했던 그의 세계를 상세하게 만나볼 수 있는 전시였습니다. 예술은 근원적으로 무언가를 표현하고, 느끼고, 바라보는 과정에서 세계와 연결되는 우연의 결속력을 안겨줍니다. 그것이 때로는 삶을 나아가게 하는 원동력이 되고, 가볼 수 없는 곳의 교두보가 되며, 무언가를 창조하는 발판이 되기도 합니다. 유동룡도 자연과 사람을 이으려는 건축을 실천했습니다. 시간과 공간이라는 두 축 사이에 공허하게 놓인 인간을 입체적으로 이해하려는 착륙 시도였을 것입니다. 저는 여기에 입각하여 이번 웹진 《비유》 81호의 작품들을 읽었습니다. 그 도착은 정착이 아니라 다른 출발을 위한 경유지로서, 이야기는 우리에게 다시 떠날 자유를 부여하기도 합니다.
“사실 나는 그의 이야기를 계속 듣고 싶었다. 그의 이야기는 어떤 사실보다 마음을 움직였다. 절실하고 진실했다. 그래서 나는 그의 이야기가 어떻게 마무리되는지 알고 싶었다.”(전지영, 「완행」)
전지영의 소설 「완행」에서 ‘나’는 전화 한국어 수업을 통해 만난 ‘경모’의 아들 찾기 과정을 건너들으며 칠 년 전 채석장 폭발 사고로 잃은 자신의 아버지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중첩시킵니다. 언어를 교환하는 수업 서비스 특성상 그의 연락처도 알 수 없고, 그 이야기 또한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는 의심은 자신이 굳게 믿어왔던 진실 혹은 지어낸 이야기를 돌이켜보는 혼란으로 변해갑니다. 그리고 자신의 이야기 끝에 도달하고자 하는 어떤 마음으로 번지기 시작합니다.
문학이 지닌 이야기가 우리의 도착할 수 없는 어떤 마음을 (목적지도 모른 채) 견인하게 해준다는 점에서, 문학 읽기를 착륙의 시도로 이해해보게 됩니다. 수긍하고 싶은 것이 많은―설명 불가능한 진실―의문 속에서 끊임없이 움직이고 이동하는 이수명, 윤유나의 시와 김성은의 동시, 임수현의 동화, 오하나의 청소년 소설을 만나보셨으면 좋겠습니다.
다중언어로 문학적 세계를 구축하는 여러 작가와 작품을 경유하며, 한국어라는 외국어를 짚는 작가이자 번역가 한국화의 ‘비평 교환’은 활주로의 스키드 자국을 만나는 것처럼 생생하게 다가옵니다. ‘통로’에서는 과학관을 기억의 차원으로 재해석하는 국립중앙과학관 학예연구사 강연실의 글이 인간의 삶과 함께 누적되어온 과학의 역사를 세밀하게 이야기합니다. 우리 존재를 다른 차원에서도 만나게 해주는 과학의 실마리가 우리를 더 많은 곳에 착륙하게 했다는 진실을 새삼 깨닫습니다. ‘문학하는 사람들’에서 편집자 최원호는 “내면 세계의 국경을 넓히는” 세계문학을 우리가 드나들 수 있는 구멍으로 만드는 일로 기획하고 소개한 이야기를 전합니다. 이 진솔한 이야기가 문학의 효용에 대해 되새겨보게 만듭니다.
‘해상도 높은 장면’에서는 주정현, 최은빈 두 사람의 청각적 기억을 재구성하는 텍스트 스코어를 만나볼 수 있습니다. 악보의 엄격한 지시에서 벗어나 연주자의 다양한 반응과 즉흥적인 해석을 음미할 수 있는 이들의 텍스트 스코어는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자율성을 지니고 일상의 침묵, 자연스러운 소리까지도 흡수한다는 점에서 누구에게나 개방된 이야기가 됩니다. 그 자유로움이 활달한 운동성을 입고 입체적으로 구현됩니다.
시인 김승일의 청소년 시집과 청소년 에세이 시리즈를 조명하는 ‘리뷰와 비평’에서는 청소년 문학이 우리를 어디로 데려가는지, 우리는 그 이야기에서 무엇을 데려올 수 있는지에 대한 가능성을 짚어볼 수 있습니다. 청소년이라는 현재 독자와 청소년을 지나온 성인 독자가 어디에서 재회할 수 있는지 가늠하며, 청소년 문학이 장르로서의 구획이 아니라 마치 ‘공항’이라는 장소처럼 확장될 수 있는 여지를 가진 대기 장소라는 것을 새삼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오늘도 이야기를 통해 착륙을 시도하려는 당신에게, 당신이 가지고 있는 이야기에도 오랜 비행 속에서 읽어낸 하늘의 안색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 어떤 날, 도착하지 않을 각오로 무고하게 걸어갈 적에 설명할 수 없던 당신 마음으로 착륙하려는 이야기가 여기에 있다는 것을 꼭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잘 도착했고, 잘 가라는 인사를 이야기에 접어 보내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런 관제탑을 지나고 있습니다.
“사실 나는 그의 이야기를 계속 듣고 싶었다. 그의 이야기는 어떤 사실보다 마음을 움직였다. 절실하고 진실했다. 그래서 나는 그의 이야기가 어떻게 마무리되는지 알고 싶었다.”(전지영, 「완행」)
전지영의 소설 「완행」에서 ‘나’는 전화 한국어 수업을 통해 만난 ‘경모’의 아들 찾기 과정을 건너들으며 칠 년 전 채석장 폭발 사고로 잃은 자신의 아버지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중첩시킵니다. 언어를 교환하는 수업 서비스 특성상 그의 연락처도 알 수 없고, 그 이야기 또한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는 의심은 자신이 굳게 믿어왔던 진실 혹은 지어낸 이야기를 돌이켜보는 혼란으로 변해갑니다. 그리고 자신의 이야기 끝에 도달하고자 하는 어떤 마음으로 번지기 시작합니다.
문학이 지닌 이야기가 우리의 도착할 수 없는 어떤 마음을 (목적지도 모른 채) 견인하게 해준다는 점에서, 문학 읽기를 착륙의 시도로 이해해보게 됩니다. 수긍하고 싶은 것이 많은―설명 불가능한 진실―의문 속에서 끊임없이 움직이고 이동하는 이수명, 윤유나의 시와 김성은의 동시, 임수현의 동화, 오하나의 청소년 소설을 만나보셨으면 좋겠습니다.
다중언어로 문학적 세계를 구축하는 여러 작가와 작품을 경유하며, 한국어라는 외국어를 짚는 작가이자 번역가 한국화의 ‘비평 교환’은 활주로의 스키드 자국을 만나는 것처럼 생생하게 다가옵니다. ‘통로’에서는 과학관을 기억의 차원으로 재해석하는 국립중앙과학관 학예연구사 강연실의 글이 인간의 삶과 함께 누적되어온 과학의 역사를 세밀하게 이야기합니다. 우리 존재를 다른 차원에서도 만나게 해주는 과학의 실마리가 우리를 더 많은 곳에 착륙하게 했다는 진실을 새삼 깨닫습니다. ‘문학하는 사람들’에서 편집자 최원호는 “내면 세계의 국경을 넓히는” 세계문학을 우리가 드나들 수 있는 구멍으로 만드는 일로 기획하고 소개한 이야기를 전합니다. 이 진솔한 이야기가 문학의 효용에 대해 되새겨보게 만듭니다.
‘해상도 높은 장면’에서는 주정현, 최은빈 두 사람의 청각적 기억을 재구성하는 텍스트 스코어를 만나볼 수 있습니다. 악보의 엄격한 지시에서 벗어나 연주자의 다양한 반응과 즉흥적인 해석을 음미할 수 있는 이들의 텍스트 스코어는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자율성을 지니고 일상의 침묵, 자연스러운 소리까지도 흡수한다는 점에서 누구에게나 개방된 이야기가 됩니다. 그 자유로움이 활달한 운동성을 입고 입체적으로 구현됩니다.
시인 김승일의 청소년 시집과 청소년 에세이 시리즈를 조명하는 ‘리뷰와 비평’에서는 청소년 문학이 우리를 어디로 데려가는지, 우리는 그 이야기에서 무엇을 데려올 수 있는지에 대한 가능성을 짚어볼 수 있습니다. 청소년이라는 현재 독자와 청소년을 지나온 성인 독자가 어디에서 재회할 수 있는지 가늠하며, 청소년 문학이 장르로서의 구획이 아니라 마치 ‘공항’이라는 장소처럼 확장될 수 있는 여지를 가진 대기 장소라는 것을 새삼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오늘도 이야기를 통해 착륙을 시도하려는 당신에게, 당신이 가지고 있는 이야기에도 오랜 비행 속에서 읽어낸 하늘의 안색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 어떤 날, 도착하지 않을 각오로 무고하게 걸어갈 적에 설명할 수 없던 당신 마음으로 착륙하려는 이야기가 여기에 있다는 것을 꼭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잘 도착했고, 잘 가라는 인사를 이야기에 접어 보내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런 관제탑을 지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