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프스산맥에 중국집 차리기



   아르바이트하던 가게에서 잘리고 가게를 나서기 전
   얼음물 좀 마셔도 되겠습니까 물었다
   물을 마시면서
   세상에는 야무지지 못한 사람도 있는 것입니다
   쯧, 훈수를 둔 뒤 사장의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그 후로도 나는 몇 번쯤 고용되었고
   하루에 몇 시간씩 노동했다
   사는 게 좋았던 적
   사는 게…… 설렜던 적
   있다

   창백한 복도 같은 표정들에게
   올여름에는 눈사람을 만들고 싶습니다
   썰렁해진 분위기에도 입에 얼음을 물고 웃었지 입술이 찢어지도록
   나는 가끔 온몸에 아이젠을 두른 사람

   이 집은
   천국에도 체인점이 생겼으면 좋겠다
   그런데 내가 천국에 가지 못하면 어쩌지?
   괜찮아, 너만 못 가는 거 아니야
   이런 식의 위로는 신기하고 곧이어 맞아 맞아 호응했다
   널 죽이면 천국엔 못 가겠지……
   웃는 얼굴에 침 뱉기는 어렵지만 웃는 얼굴로 침 뱉기는 참 쉽다
   그런데 왜 어떤 가게들은 집이라고 불리는 걸까? 술집 꽃집 찻집
   가엾은 사장님 중국집에 갇혔네

   남부럽지 않은 그릇 개수를 세며 깨끗이 닦았다
   매일 설거지하고 청소하고 손님을 응대하는데
   침대에 누워도 잠들지 못하는 건 슬픈 일이다

   밤이
   방까지 몰고 온 안개에 얼굴을 파묻는다
   나는 빚이 있단 말이야 바보야 빚은
   푹신푹신하다

   물 끓는 소리가 빗소리처럼 들린다
   물은
   끓기 전과 끓은
   후, 언제가 더
   맑음?

   전전하던 이 집 저 집 통째로 데리고서
   스위스 같은 북유럽 국가에 가고 싶다 빙하가 흐르는 알프스산맥을 두 눈으로 보고 싶다
   죽기 전에 못 가보면 어쩌지?
   괜찮아, 너만 못 가는 거 아니야

   어 그래, 좀
   위로가 되네

   손님이 남긴 얼음물을 버리고
   빙하 생각을 하다가
   나는 산맥처럼 엎드려
   거대한 잠 속으로

   어서 오세요
   문발이 걷힌다
   고글처럼 커다란 안경을 추켜올린다





   땅콩다운 땅콩



   책상 앞에 앉아서 책도 읽고 술도 마신다 버섯 모양 전등은 빛을 포자처럼 퍼뜨린다 책 속에서 죽은 사람이 죽은 사람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조금 뒤, 죽은 사람은 죽은 사람의 뺨을 툭툭 치면서 아 이 사람아 이제 정신 좀 차려 봐 말한다 그런데 이거 혹시…… 나한테 하는 소리인가

   그래 나는 여전히 술을 좋아하고 제정신일 리가 없다! 친절한 태도로 거절당한 날에는 혼자 맥주를 마시면서 운다 땅콩을 안주 삼아서 운다 나는 왜 이렇게 벗겨지기 쉬운 껍질을 가진 걸까 흑흑거리다가 껴안을 게 없어서 버섯 모양 전등을 껴안고 아 뜨거워 욕지기를 내뱉는다

   친구들은 내게 어른스럽게 굴라고 말했다
   그러나 어른스러운 어른이라는 말은 사랑스러운 사랑이라는 말만큼 이상하다

   갑자기 사랑은 왜?
   갑자기라는 부사 좀 사용하지 마 갑자기 갑자기 하지 좀 마 갑작스러워서 갑자기인 거니까
   죄송해요…… 갑자기 자문자답해서 갑작스러우셨죠?

   술 마시고 쪼그려 앉아 울다가 술 마시고 쪼그려 앉아 우는 사람과 눈 마주치면 무안하다 죽은 사람이 죽은 사람과 눈 마주친 것처럼
   
   여기서 팁 하나
   장례식에서 하면 안 되는 행동 1위는 부활이라고 한다 죽었다가 살아나면 모두가 무안해지니까

   다시 죽어!
   네! (철퍼덕)

   나는 여전히 책상 앞에 앉아 있고 무척이나 제정신이다 책 속에서 죽은 사람들에게 조의를 표하지 않는다 허구의 죽음일 뿐이니까 껍질을 벗기고 한 알 두 알 땅콩을 먹는다 여주산 땅콩이라고 여주 맛이 나지는 않고 땅콩 맛이 난다 그런데 전등은 왜 하필 버섯 모양으로 생긴 걸까? 전등답지 않게

   생각에 잠길 무렵
   전등이 깜빡깜빡하더니 저절로 소등된다
   사람 무안하게

고선경

나는 행운을 껍질째 가져다줍니다

2022/06/28
55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