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문학은 불편한 문학이다. 좋은 문학은 익숙해서 당연했던 감각을 낯설게 만든다. 낯익은 세계가 문득 편협한 세상으로, 왜곡된 세계로 보이기 시작한다. 보이지 않던 틈새가 그간 누락했던 삶의 현장이 되고 들리지 않거나 소음에 불과했던 소리가 누군가의 목소리가 된다. 앞서서 세상을 개혁하지는 않아도 천천히 다른 세상을 열어간다. 문학의 이런 매력을 아날로그 감성에 대한 애호로 보기도 한다. 시간을 단축하고 최대한의 효력을 발휘하도록 하는 효율의 논리와는 다른 감각이라는 것이다. 문학에 대한 애호가 아날로그 감성에 대한 추구와 연결된다는 생각은 문학에 대한 애호가 특정한 소수의 것일 뿐이라는 평가로도 이어진다. 적지 않은 문예지가 종이 잡지 형식을 여전히 고수하는 이유나 온라인상에서 신작을 만날 기회가 좀처럼 늘어나지 않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문학에 대한 애정이 종이로 된 책에 대한 애호와 닿아 있는 것처럼 여겨지기 때문일 것이다.
  좋은 소설이자 불편한 소설인 2023년 아쿠타가와상 수상작, 이치카와 사오(市川沙央)의 소설 『헌치백』에서 중증의 중년 여성 장애인의 목소리는 “종이책을 증오한다”고 선언한다. ‘눈이 보이고, 책을 들 수 있고, 책장을 넘길 수 있고, 독서 자세를 유지할 수 있고, 서점에 자유롭게 사러 다닐 수 있어야 한다’는 건강성을 요구하는 독서 문화를 증오한다고 덧붙인다. 등뼈가 휘지 않은 사람을 위한 독서에 대해서는 상상도 해보지 않은, 특권성을 깨닫지 못하는 ‘서적 애호가’들의 무지한 오만함에 독설을 날린다.1) 더 나은 세상을 꿈꾸는 문학이 그 세상을 사는 존재들에게 가닿을 방법에 대해 얼마나 깊게 고민하고 있는가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웹진 《비유》가 온라인상에서 다양한 장르의 신작을 만날 수 있는 공간이라는 사실이 새삼 소중하게 다가온다.
  2023년 3월호를 발간하고 시스템 재편을 위한 휴간에 들어갔을 때, 편집위원장으로서 마음을 졸였던 게 사실이다. 공공기관에서도 효율의 논리가 강조되고 가시적 성과가 논의되기 시작했다. 온라인상에서 문예지를 지속적으로 운영하는 일이 타당성 없는 일처럼 여겨지기 쉬웠다. 돌아올 것을 굳게 약속했던 많은 온라인 형태의 잡지들이 끝내 폐간의 수순을 밟게 되는 데에는 그럴 만한 사정들이 있을 것이리라. 《비유》 63호가 어쩌면 마지막 호가 되어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보다 더 근본에서 온라인 공간이 사라진다면 거기에서 소통되던 문학들마저 흔적 없이 사라져버릴지 모른다는 우려와 아쉬움을 떨치기 어려웠다. 그래서인지 다시 발간된 《비유》 64호에 실린 작품들만큼, 아니 그보다 더 《비유》 63호에 실린 작품들에 애틋한 마음이 든다. 더없이 소중한 《비유》라는 공간이 이어지고 지속되기를 바라게 된다.
  그저 그 공간이 유지되기만 하면 된다는 말이 아니다. 더 많은 독자에게 다가가려는 시도가 《비유》를 만들어왔고, 지속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리라. 돌이켜보자면 문학과 아동문학, 장르문학과 비평을 한 자리에서 읽게 하고 특집으로 꾸렸던 일도 다양한 독자에게 가닿고자 한 《비유》의 의미 있는 시도였다. 무뎌진 감각을 낯설게 한 상상력 가운데 장르문학 특집으로 꾸려진 《비유》 48호(2021. 12)를 이런 의미에서 새삼 주목하게 된다. 구한나리, 박해울, 심너울, 서계수, 정해연, 그리고 최의택 작가는, 이런 구분도 무색해졌지만, 이제 장르문학이라는 범주를 넘어선 독자들에게도 친숙한 이름이 되었다. 특집의 형식이 아니더라도, 청소년들에게 남몰래 인간관계를 되짚어보게 하며 누군가의 꿈에 나타나야만 원인 불명의 일시적 기면증에 걸리게 된다는 귀여운 상상력을 담은 조우리의 「꿈에서 만나」(《비유》 30호, 2020. 6)나, 빙하가 녹고 모두가 기후 난민이 된 미래에는 인구 절벽과 노동 인구 절대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가사도우미로 일할 수 있는 여성들만 300년을 사이에 둔 과거로 시간여행이 가능해진다는 악몽 같은 상상력을 전하는 오정연의 「도메스틱 헬퍼」(《비유》 44호, 2021. 8)도 덤처럼 놓칠 수 없는 재미를 선사한다.



그렇게 해서 너는 합리적인 것으로 여겨지는 선택을 했다. 겨울의 곁을 지키는 일 대신 너는 겨울 자체를 보존하기로 했던 것이다.
너는 남은 에너지를 총동원해 새로운 모듈을 생성했다.
너는 나를 생성했다.
그리고 내게 모든 것을 맡겨버렸다.
그래서 발생하게 되었다. 그러니까 이 이야기는 말이다.

―최의택, 「한겨울 낮의 꿈」 부분


발병 초기 보고된 바로는 ‘상세불명의 기면 증상’으로 임시 명칭은 최초 발병 지명을 따 ‘대치기면증’이었다. 하지만 낙인 효과를 우려한 WHO에서 병명에 지역 이름을 넣는 것을 피하도록 권고해 곧 NARC-19로 대체되었다. 첫 환자인 K양의 발병 이후 거주지인 대치동을 중심으로 무서운 속도로 퍼지기 시작해 대치동 학생들의 40% 이상이 전염되고 곧이어 서초, 방배, 역삼동을 거쳐 강남, 강동, 중랑, 마포로 퍼져나갔다.

―조우리, 「꿈에서 만나」 부분


치즈로 변한 부모님은 꼭 네모난 노란 벌레 같은 모습이더군요. 구멍이 송송 뚫린 샛노란 치즈에 가느다란 사지가 달려 있었고, 한 면에는 정교히 조각한 것처럼 부모님의 얼굴이 박혀있었죠. 냄새는 또 어찌나 지독하던지! 어떤가요. 퍽 끔찍한 꿈 아닌가요?

―조예은, 「치즈 이야기」 부분


마지막으로 사람들에게 남기고 싶은 말이 있다면,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것이다. 급하게 먹은 음식은 체하고, 급하게 챙긴 짐에는 무언가 빠져 있기 마련이고, 급하게 죽어버리면 제대로 죽지도 못하니까. 농담처럼 들리겠지만 사실이다. 어제 새벽, 나는 급하게 죽어버리는 바람에 이승을 떠돌게 되었다.

―임선우, 「커튼콜, 연장전, 라스트팡」 부분


관련 작품 바로가기
① 최의택, 「한겨울 낮의 꿈」click
② 조우리, 「꿈에서 만나」click
③ 조예은, 「치즈 이야기」click
④ 임선우, 「커튼콜, 연장전, 라스트팡」click

소영현

읽고 쓴다.

1
이치카와 사오(市川沙央), 『헌치백』, 양윤옥 옮김, 허블, 2023, 37-3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