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낭독회에 찾아가서 시인과 소설가들이 직접 읽어주는 그들의 이야기를 듣곤 합니다. 글쓴이의 목소리와 말씨, 특유의 빠르기로 그들이 썼던 글을 들어보는 경험은 꽤 특별합니다. 글을 읽으며 떠올렸던 어스름한 목소리가 선명한 목소리로 바뀌는 순간이기 때문입니다. 낭독의 시간은 길지 않아 늘 아쉽고, 더 많은 부분을 그들의 목소리로 듣고 싶다는 마음을 남기곤 합니다.
  그렇지만 때때로 그 낭독의 시간은 무언가 일치하는 순간이라기보다는 어긋나는 순간처럼 다가오기도 합니다. 쓰인 글과 소리 내 읽힌 글이 결코 같지 않다는 인상을 받거나, 낭독은 글과 무척 다른 사건이라고 느끼게 되는 경우도 있고요. 어떤 글은 목소리로 읽기 위해 쓰인 글이 아니라 눈으로 읽기 위해 쓰인 글 같다는 생각을 마주한 적도 있습니다. 그런 경험은 저에게 언젠가부터 이런 질문들을 심어두었습니다. 낭독을 위해 쓰인 글이 있을지. 목소리로부터 출발한 그렇지 않은 글과 어떻게 다를지.
  그간 《비유》에 실린 글들 중 일부는 ‘낭독’이라는 주제와 마주쳤다 떨어지기를 반복하며 문학을 들려주기를 시도합니다. 낭독이라는 단어를 검색해 얻게 된 이 글들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낭독을 활용합니다. 이미 쓰인 글을 낭독해 녹음하고 이를 다시 글로 옮기거나, 말한 것을 글로 옮기거나, 어딘가에서 채집한 말소리를 따라 쓰고 이를 재료삼아 이야기를 짓는 식입니다. 말함으로써 나타나는 이야기, 목소리가 관여하는 글. 어떤 이들은 이렇게 말하고 씁니다.

말은 무엇인가? 소리인가, 에너지인가, 정신인가, 생성의 의지인가, 폭발인가, 충돌인가, 생명인가, 물질인가. 말은 어떻게 빛과 어둠을 만들고, 하늘과 바다를 만들고, 땅과 식물을 만들고, 해와 달과 별을 만들고, 새와 물고기를 만들고, 동물과 사람을 만들고, 안식했을까.
2018년, 즙즙은 창세기 1장 1절부터 2장 4절까지의 텍스트를 읽었다. 신을 대신해 목소리를 냈고, 말과 세계를 오고가는 소리물질이 되었으며, 확장되는 시간과 공간 속으로 말 자체를 흘려보냈다. 태초에 말이 있었고, 말이 세상을 창조하였다고 한다. 최초의 인간에게 다시 한번 그 말을 들려주고 싶었고, 여기 그러한 시도가 있다.

―즙즙, 「어둠빛트(darkness-beat); 최초의 인간에게―「창세기」를 읽다」(‘씁즙즙쯥: 낭독의 즐거움’ 2화) 부분

이처럼 유력한 문장도 있는가 하면 거의 소리와 음절만 남아 그 의미를 헤아릴 수 없는 낭독도 있습니다. 그 낭독에 대해 즙즙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식물은 대답이 없었고 여자의 목소리는 주변의 소리에 파묻혀 들리지 않았다. (…) 이번엔 우리의 말들이 의미 없는 순수한 소리로만 남아 있길 바랐다. 소리에만 집중된 음절들을 발음해보자. 소리에만 집중해 음절들을 발음해보자. (…) 발음하기 힘들거나 한글로 표기할 수 없는 음절은 악보에 적히지 않았다.

―즙즙, 「식물낭독을 향하여―음절을 시도하다 문장에 이르다」(‘씁즙즙쯥: 낭독의 즐거움’ 3화) 부분

멜라겨해나의 소리채집 시리즈는 “‘겨 주고 겨 바꾼다.’라는 속담을 거울삼아 쓸모없다고 여겨지는 일상의 소리들을 채집해 가장 많이 나온 단어로 소재로 이미지를 만들고 글을” 썼습니다. 어느 초등학교의 운동장, 오전의 쉬는 시간에 이루어진 채집에서는 이런 소리들이 모였습니다.

야, 야. 너네가 술래야.
이노옴, 이노옴! 슈우웃!
야, 잡아당기니까 그렇지이.
야, 그렇게 하지 말라고오.
빨리 빨리.
야, 멀리 가지 마!
‘어’ 하면 치는 거다.
하나아, 두우우울……
아직, 아직.
세에한미이이이이.
니가 사과해애.
야, 그럼 정우 술래야.
야, 튀어!

여기서 주운 겨로 이들은 이런 소설을 씁니다.

우리는 기다렸다. 재수의 할머니가 나오기를, 귀먹은 재수 할머니가 문을 열고 나와 우리에게 외치기를.
뭐라고?
할머니가 나왔다. 우리는 소리쳤다.
할머니! 재수 있어요?
우리 재수?
할머니가 물었다. 우리는 똑같은 말만 되풀이했다.
재수 있어요?
너희들 누구냐?
재수 있어요?
재수 친구냐?
재수 있어요?
귀 먹은 할머니가 소리쳤다.
재수 없다!

―멜라겨해나, 「야」(‘겨’ 2화) 부분

안경은 낭독을 거쳐 다시 소설을 써내려갑니다. “안경은 2, 3, 4화의 일부분을 발췌하고 짜깁기하여 새로운 스크립트로 엮어내어 읽은 낭독 퍼포먼스를 소재 삼아 릴레이 소설을 작성했습니다”라는 말로 시작되는 소설 「바다는 그곳에 있었다」는 헛기침, 콧노래를 지나 어떤 목소리에 관해 씁니다.

침묵을 깨는 덴 역시 헛기침만 한 게 없다.
큼.
낮고 굵은 음이 허공을 가로질렀다.

침묵을 깨는 덴 역시 콧노래만 한 게 없다.
으흠흠.
어딘가 낯익은 멜로디가 시공을 휘감았다.

침묵을 깨는 덴 역시 헛기침만 한 게 없다.
톡톡톡.
짧고 통통한 검지가 테이블을 세 번 두드리자 우리 주변을 둘러싸고 있던 모든 장벽들이 와르르 무너져내렸다.

이윽고,

더듬더듬 목소리가 들렸다. 그것은 처음에 한 사람의 것이었다가 이내 두 사람의 것이 되었다. 곧이어 몇몇 존재의 목소리가 더해지면서 커졌다가 웅얼웅얼 기어들어가기를 반복했다.

―안경, 「바다는 그곳에 있었다」(‘뜻-밖의 오늘’ 5화) 부분

이들은 제가 《비유》에서 찾은 낭독에 관한 글들 중 일부입니다. 이들을 읽으며 낭독을 위한 글쓰기는 가능할지, 낭독으로부터 출발한 글은 읽기보다 듣기에 적합할지라는 막연한 질문에 대한 답을 얻을 수는 없었지만 이 글들을 조금 오래 들여다보면서 저는 조금 다른 것들을 얻었습니다. 이 글들을 다른 글과 비슷하게 정돈하려 하는 순간 다 사라져버릴 기분 좋은 어수선함을 즐겨보기도, 목소리가 개입하면서 따라 들어오게 된 여러 악보와 어떤 말들을 바삐 타이핑하는 영상을 두루 살펴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이들을 ‘낭독’이라 부르기 주저하게 되는 마음도 찾았습니다. 이미 마침표가 굳게 찍힌 글을 읽는 낭독, 따라서 끝난 글에 덧붙여지는 목소리로서의 낭독과 달리, 이들은 무언가를 시도하고 시작하게 해주는 첫 목소리에 가까워 보였습니다. 여기서는 낭독한 음절의 우연한 만남이 문장으로 이어지고, 찰나의 소리와 목소리가 이야기를 시작하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그 말소리들을 낭독 대신 더 좋은 이름으로 불러보고 싶지만 뾰족한 말을 찾지 못해 우선은 ‘시작을 위한 낭독’이라 이름 붙여 봅니다. 이 목소리들을 듣고 읽으며 저는 선명한 목소리가 다시 어스름한 목소리로 바뀌는 순간을 봅니다. 그리고 어떤 글들의 앞자리에 있었을지도 모를, 흩어져 사라지고 없는 어떤 목소리들을 상상합니다.

관련 작품 바로가기
① 즙즙, 「어둠빛트(darkness-beat); 최초의 인간에게―「창세기」를 읽다」click
② 즙즙, 「식물낭독을 향하여―음절을 시도하다 문장에 이르다」click
③ 멜라겨해나, 「야」click
④ 안경, 「바다는 그곳에 있었다」click

신예슬

비평가, 헤테로포니 동인. 『음악의 사물들: 악보, 자동 악기, 음반』을 썼고, 악보집 『비정량 프렐류드』 『판타지아』를 함께 쓰고 엮었다. 종종 드라마터그, 편집자로 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