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빨 20개, 소원 19개
   이빨이 흔들린다. 손을 대봤다. 살살 흔들린다. 이빨을 밀어냈다. 세게. 더 세게. 아프다. 이빨이 빠지면 진짜 일곱 살이 된다.
   낮 밥은 짜장밥과 단무지다. 단무지는 맛있다. 씹는 게 재밌다. 단무지를 깨물었다.
   “아야!”
   입안에 있는 걸 뱉었다. 단무지만 나왔다. 이빨은 잇몸에 매달려서 달랑거렸다. 아이들이 둘러앉았다. 선생님과 나만 가운데에 앉았다.
   “동생들은 이 안 빠졌지? 선재 형아 이 빼는 거 잘 봐.”
   까만 눈동자들이 나만 보고 있다. 선생님이 말했다.
   “아, 해봐!”
   입을 벌렸다. 준우도 입을 벌렸다. 이빨 사이사이가 까맣다. 준우는 이빨이 세 개나 빠졌다. 날마다 자랑한다. 하지만 오늘은 내가 부러울 거다. 태린이가 나를 봤다.
   선생님이 말했다.
   “더 벌려 봐. 움직이지 말고.”
   선생님이 실로 이빨을 감았다. 입을 벌리고 있으니까, 아프다. 입이 찢어질 거 같았다. 침이 흘렀다. 삼킬 수도 없었다.
   “선재야?”
   선생님이 씩 웃었다.
   “네?”
   선생님이 갑자기 실을 확 잡아당겼다.
   “아야!”
   이빨이 톡 빠졌다. 이상한 맛이 난다. 입속에 손을 대봤다. 빨간색이다. 피, 피가 묻었다. 아프다. 갑자기 너무 아프다. 태린이랑 눈이 마주쳤다. 태린이가 눈을 크게 뜨고 있었다. 눈물을 꾹 참았다. 웃었다. 울다가 웃으면 똥구멍에 털 난다고 했는데…… 이가 빠진 자리에는 하얀 솜이 꽂혔다.
   “축하해. 드디어 이 빠졌네.”
   내 손에 이빨이 올라왔다. 동그란 노란색이다. 신기하고 이상한 기분이다. 이빨을 소중히 비닐봉지에 넣었다.
   “오빠, 무슨 소원 빌 거야?”
   태린이가 물었다.
   “장난감, 울트라변신파워합체메가톤!”
   나는 선물을 딱 세 번 받는다. 생일, 어린이날, 크리스마스. 이번엔 네 개다. 이빨이 빠졌으니까. 준우는 이빨이 세 개 빠졌다. 울트라변신파워가 세 개나 된다. 내 장난감은 울트라변신파워합체메가톤이 될 거다. 준우 꺼 보다 더 셀 거다.

   “내 이빨, 짠!”
   엄마에게 이빨을 내밀었다.
   “그래요? 어쩌지요?”
   엄마는 전화 통화 중이었다.
   “나 이빨 빠졌다.”
   입도 크게 벌렸다. 엄마는 나를 슬쩍 봤다. 알았다고 손짓만 했다.
   “네……”
    엄마가 전화를 끊었다.
   “나 이빨 빠졌다고? 흥, 치, 피, 나빠!”
   엄마가 말했다.
   “가방을 잃어버렸어. 어떡해?”
   “또?”
   엄마가 고개를 끄덕였다. 엄마는 날마다 뭔가를 잃어버린다. 어린이집에 식판도 안 가져간다. 가끔 이불도 안 챙긴다. 잠옷이 없어서 속옷만 입고 잔적도 있다.
   “가방에 지갑이랑 다 들어있는데, 노트북까지……”
   엄마가 입을 내밀었다. 엄마가 몸을 숙이고, 내 눈을 쳐다봤다.
   “잠깐만 집에 있을래? 엄마 가방 찾으러 나갔다 올게.”
   나는 고개를 저었다.
   “7살이잖아. 이제 혼자 있는 것도 연습해야지.”
   “싫어. 괴물 나온단 말이야.”
   나는 엄마 손을 잡았다.
   슈퍼 아줌마가 혀를 찼다.
   “분명히 가방 메고 갔어요. 장바구니도 들고……”
   세탁소 아저씨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두고 가신 물건 없어요.”
   엄마는 내 손을 꽉 잡았다. 엄마 걸음이 더 빨라졌다.
   1층 지윤이 아줌마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우리 집에는 가방을 아예 안 가져왔는데?”
   가방은 어디에도 없었다.
   “어떡해? 노트북 때문에 꼭 찾아야 하는데……”
   엄마가 한숨을 쉬었다.

   한 밤만 자면 된다. 드디어 소원이 이루어질 거다. 창밖을 봤다. 아직 캄캄하다. 일찍 자면 아침도 빨리 온다. 이빨을 베개 밑에 넣었다. 베개를 베고 누웠다. 다시 일어났다. 이빨은 잘 있었다. 다행이다. 다시 반듯하게 누웠다. 꼼짝도 하면 안 된다. 머리를 움직이면 베개가 흔들릴 거다. 베개가 흔들리면 이빨이 빠질 수도 있다.
   엄마가 내 옆에 누웠다. 엄마는 아무 말이 없다. 내 이빨이 빠진 날인데, 엄마는 축하도 해주지 않았다. 엄마가 팔을 내밀었다. 나는 고개를 똑바로 하고, 천장만 봤다.
   “팔베개 안 해?”
   “안 돼. 베개 밑에 이빨 있어. 움직이면 안 돼.”
   엄마가 풉 웃었다. 나는 양손으로 베개 끝을 꽉 잡았다. 베개가 움직이면 안 된다. 이빨이 베개 밖으로 나오면 안 된다. 내 이빨이 엄마 베개 밑으로 가면 안 된다. 그러면 이빨 요정이 엄마 소원을 들어줄 거다. 내 소원을 엄마에게 줄 수는 없다.
   “아 참, 이빨 요정한테 소원 빌었어?”
   엄마가 물었다.
   “아니……”
   “어서 소원 빌어.”
   “응.”
   내 소원은 장난감, 울트라변신파워합체메가톤이다. 백 밤 동안이나 생각한 거다. 엄마가 내 머리를 살살 만졌다.
   “선재는 좋겠다. 이빨 요정한테 소원도 빌 수 있고.”
   “엄마도 빌면 되잖아.”
   “이빨이 안 빠져.”
   “엄마 소원은 뭐야?”
   “가방 찾기. 제발 있어야 할 텐데. 어휴, 잠도 안 온다.”
   오늘 처음 이빨이 빠졌다. 소원 한 개를 빌 수 있다. 나는 이빨이 많다. 준우보다 많다.
   “엄마, 이빨이 몇 개야?”
   “글쎄, 20개쯤?”
   “그럼, 나는 소원 20개 이뤄지는 거네?”
   “선재는 좋겠다. 엄마는 이빨이 더 안 빠져.”
   엄마가 갑자기 웃었다.
   “아니, 빠지면 큰일이지.”
   나는 소원 20개를 빌 수 있다. 장난감이 20개 생길 거다. 이빨 요정이 내 소원을 들어줄 테니까. 엄마가 내 가슴을 토닥토닥했다. 눈이 자꾸 감긴다. 베개 밑에 이빨은 잘 있을까? 설마 엄마 베개 밑으로 가진 않았겠지?
   소원을 빌어야 하는데, 엄마는 이빨이 안 빠진다. 그런데 엄마 가방은 어떡하지? 노트북은 엄마가 가장 아끼는 물건인데…… 이빨 요정에게 엄마 소원을 빌어 줄까? 내 소원은 20개나 이룰 수 있으니까, 하나만 엄마 줄까? 아 졸리다. 소원을 빌어야 하는데……

   오늘은 좋은 날이다. 이빨 요정이 소원을 들어주는 날이다. 엄마 베개를 들었다. 이빨이 보이지 않았다. 이빨 요정이 내 이빨을 가져갔다.
   엄마가 부엌에서 아침을 준비 중이었다.
   “엄마, 가방 찾았지?”
   “그게 무슨 소리야?”
   엄마 전화가 울렸다.
   “어머, 진짜요?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엄마 앞에는 아무도 없는데, 엄마는 여러 번 고개 숙였다.
   “내 말이 맞지?”
   “설마 우리 선재가 엄마 소원 빌었어?”
   엄마가 나를 안았다. 나도 엄마를 꼭 안아 주었다. 나는 아직 이빨이 19개나 남았다. 소원 19개를 이룰 수 있다. 장난감 19개가 생길 거다. 다음 소원은 울트라변신파워합체메가톤이다.

  2. 용용이, 안녕!


   용용이를 처음 만난 곳은 마트였다. 초록색 공룡 인형이 눈을 반짝였다. 꼬리가 뾰족한 게 멋졌다. 그날부터 용용이는 내 친구가 되었다. 용용이는 착하다. 내가 흘린 것도 먹는다. 물총 놀이도 같이 한다. 치카치카도 용용이랑 하면 참을 만하다. 잠에서 깼을 때, 늘 용용이가 곁에 있다. 쉬를 싸서 엄마한테 혼날 때도.

   어린이집에서 주말 지낸 이야기를 했다.
   “용용이랑 팽이 돌렸어.”
   준우가 콧구멍을 후비며 물었다.
   “용용이가 누구야? 형? 동생?”
   “친구, 같이 살아.”
   예솔이가 물었다.
   “인형이야? 상상 친구?”
   “응.”
   예서가 선생님처럼 말했다.
   “7살은 상상 친구랑 노는 거 아냐.”
   우연이가 말했다.
   “동생들이나 상상 친구랑 놀지!”
   눈이 따끔따끔 아팠다. 7살은 상상 친구랑 노는 게 아니다. 사람 친구랑 노는 거다.

   식탁 의자에 앉았다.
   “골고루 먹어.”
   엄마가 말했다. 깍두기를 쏘아 봤다. 매워서 먹기 싫다.
   “왜? 용용이 주려고?”
   엄마가 용용이를 내 옆에 앉혔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용용이는 인형이다. 깍두기를 못 먹는다. 용용이가 나를 빤히 봤다. 반짝이던 눈이 축 처져 있다. 나는 슬며시 고개를 돌렸다.
   팽이를 꺼냈다. 엄마가 용용이를 내 옆에 또 앉혔다.
   “용용이랑 같이 해.”
   용용이는 팽이를 돌릴 수 없다. 용용이는 인형이니까. 7살은 인형이랑 놀면 안 된다. 용용이와 헤어질 거다.

   엄마가 화장실에 갔다. 나는 용용이를 들었다. 용용이를 침대 밑에 밀어 넣었다. 책을 펼쳤다. 책을 덮었다. 블록을 꺼냈다. 다시 블록을 넣었다. 용용이가 침대 아래 있다. 침대가 있는 안방에는 들어갈 수 없다. 나는 소파에 엎드렸다. 용용이는 잘 있을까? 침대 밑은 캄캄한데. 안방에서 위잉 소리가 들렸다. 엄마가 어느새 용용이를 들고 왔다.
   “청소기 돌리다가 찾았어.”
   용용이를 내게 안겼다.
   “침대에서 떨어 졌나 봐. 어두운데, 무서웠겠다.”
   엄마가 말했다. 용용이는 무서울 수 없다. 용용이는 인형이다. 나는 용용이 몸에 묻은 먼지를 털어 주었다.

   엄마가 베란다로 나갔다. 용용이를 데리고 옷 방으로 갔다. 겨울옷 상자를 열었다. 용용이를 넣었다. 지퍼를 닫았다. 방을 나가려다가 다시 갔다. 옷상자 지퍼를 열었다. 아무래도 용용이가 답답할 거 같았다. 거실로 나왔다. 용용이는 괜찮겠지?
   엄마가 빨래를 갰다. 나는 종이접기를 했다.
   “어머, 용용이 친구 만들어 주려고?”
   나도 모르게 또 공룡을 접고 있었다.
   “용용이가 그렇게 좋아?”
   용용이가 좋다. 하지만 더이상 같이 놀 수는 없다. 나는 7살이니까. 엄마가 옷을 들고 옷방에 갔다.
   “어머, 용용이 여기 있네!”
   엄마가 용용이를 들고나왔다.
   “옷 박스 안에 있지 뭐야? 지퍼가 열려 있어서 보이더라.”
    엄마가 용용이를 건넸다. 나는 용용이를 안았다. 용용이 몸이 휘어져 있다. 옷에 눌린 거 같다. 용용이 몸을 펴줬다.

   엄마가 음식물 쓰레기봉투를 들고 나갔다. 나는 용용이를 안았다. 가슴이 쿵쿵 뛰었다. 용용이 가슴에서 나는 소리 같았다. 아니 내 가슴 같았다.
   “미안해. 진짜 7살이 될 거야.”
   용용이를 쓰레기통에 넣었다. 뚜껑을 닫았다. 방으로 뛰어 들어갔다. 이불을 뒤집어썼다. 용용이한테 미안했다. 그런데 잠이 솔솔 왔다.
   아빠 목소리에 잠이 깼다.
   “짠, 용용이 여기 있네!”
   아빠가 용용이를 들고 서 있었다.
   “용용이가 쓰레기봉투 안에 있더라.”
   용용이 몸에 얼룩이 졌다. 엄마가 꼬리를 만졌다.
   “왜 요즘 자꾸 용용이가 사라지지?”
   엄마가 말했다. 나는 돌아누웠다. 진짜 7살이 되고 싶은데, 용용이랑 헤어지는 건 힘들다.

   잠에서 깼다. 내가 용용이를 또 안고 있었다.
   아빠랑 도서관에 가려고 집을 나왔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혔다.
   “잠깐!”
   엄마가 용용이를 내밀었다.
   “용용이랑 같이 안 가?”
   “……”
   “왜? 같이 가야지.”
   “그렇게 좋다더니, 이제 싫어?”
   아빠가 물었다.
   “그건 아닌데…… 동생들이나 상상 친구랑 놀지.”
   엄마와 아빠가 웃었다.
   “왜 웃어? 기분 나쁘게.”
   엄마와 아빠가 마주 봤다. 이번에는 눈으로 웃었다.
   “알았어. 아빠가 데리고 갈게.”
   아빠가 용용이를 안았다.

   공룡이 제일 좋다. 용용이도 공룡이다. 공룡 인형이다. 공룡 책을 펼쳤다. 멋진 티라노사우르스가 보였다. 용용이가 나를 빤히 보고 있었다. 도서관에서 노래가 나왔다. 노래가 들리면 나가야 한다. 공룡 책을 책꽂이에 꽂았다. 바닥에 있는 용용이를 안았다. 용용이를 공룡 책 옆에 세웠다. 용용이가 옆으로 넘어졌다. 용용이를 다시 세웠다. 용용이 꼬리를 쓰다듬었다.
   “용용아, 잘 있어.”
   도서관을 뛰쳐나왔다.
   “아들, 같이 가.”
   아빠가 뒤따라왔다.
   집에 오자, 엄마가 물었다.
   “용용이는?”
   “아차, 깜빡했다. 도서관 문 닫았는데, 어쩌지?”
   아빠가 머리를 긁적거렸다.
   “걱정 마. 내일 꼭 찾아줄게. 괜찮지?”
   엄마가 물었다. 당연히 괜찮다. 드디어 상상 친구랑 헤어졌다. 이제 진짜 7살이 될 거다.

   저녁 먹고 누웠다. 엄마가 내 등을 쓰다듬었다.
   “걱정 마. 잘 있을 거야.”
   엄마가 불을 껐다. 용용이는 캄캄한 도서관에 있다.
   “엄마, 불 켜줘.”
   이불을 덮었다. 용용이는 이불이 없다. 도서관은 추울 거다. 용용이가 늘 자는 쪽에 이불을 덮어 주었다.
   자다가 쉬가 마려워서 깼다. 용용이가 안 보였다. 날마다 옆에서 잤는데, 이제 없다. 용용이는 잘 있을까? 괜찮을 거다. 용용이는 인형이다. 밥도 안 먹고, 잠도 안 잔다. 무섭지도 않다.

   월요일은 도서관이 쉬는 날이다. 용용이는 두 밤이나 집에 없었다. 화요일에 도서관에 갔다.
   “없다고요? 정말요?”
   엄마 목소리가 떨렸다.
   “찾으면 꼭 연락주세요.”
   엄마가 전화번호를 남겼다.
   용용이가 사라졌다. 이제 상상 친구가 없다. 사람 친구하고만 놀게 되었다. 진짜 7살이 되었다.
   “괜찮아?”
   “응……”
   엄마가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대단하네. 우리 아들. 용용이랑 잠시도 못 떨어지더니……”
   다섯 밤을 잤다. 전화가 안 왔다. 처음엔 용용이 생각이 많이 났다. 나중에는 조금만 났다. 그런데 열 밤 잔 날, 전화가 왔다.
   “책꽂이 뒤로 떨어졌었나 봐요. 청소하다가 찾았어요.”
   도서관 선생님이 말했다.
   “세상에, 우리 용용이”
   엄마가 용용이를 와락 안았다.
   “용용이 찾아서 너무 좋다. 그지?”
   용용이가 나를 빤히 쳐다봤다. 나는 슬쩍 고개를 돌렸다.

   집에 오는 길에 놀이터에 들렀다. 그네에 앉았다.
   “밀어줘.”
   엄마가 그네를 밀었다.
   “세게는 말고, 무섭단 말이야.”
   그네 타기는 무섭다. 다른 7살들은 잘 타는데, 나는 떨어질까 봐 겁난다.
   “할머니, 할머니, 할머니!”
   파워맨 옷을 입은 꼬마가 울었다. 나는 꼬마에게 다가갔다.
   “울지마.”
   꼬마가 용용이를 쳐다봤다. 나는 용용이를 내밀었다. 꼬마가 눈물을 뚝 그쳤다.
   할머니가 꼬마한테 말했다.
   “형 거니까, 돌려주자.”
   꼬마가 입을 내밀었다. 용용이를 내게 주며, 다시 훌쩍거렸다.
   “용용이 좋아?”
   꼬마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름이 용용이야? 멋지다.”
   나는 꼬마에게 용용이를 건넸다. 꼬마가 웃으며 용용이를 꼭 안았다.
   “정말 괜찮겠어?”
   엄마가 물었다. 나는 꼬마에게 말했다.
   “용용이 보고 싶을 때, 보러 가도 돼?”
   “응, 형아. 고마워!”
   꼬마가 용용이를 안고, 타박타박 걸어갔다. 꼬마가 걸을 때마다 뭉툭해진 용용이 꼬리가 살짝살짝 보였다.
   “내 친구, 용용이 안녕!”

  3. 7살이니까!


   “일어나. 옷 입어!”
   엄마가 깨웠다.
   “입혀 줘.”
   몸을 돌렸다. 엄마가 쌀쌀맞게 말했다.
   “7살은 스스로 하는 거야.”
   옷장을 열었다. 공룡 그림 옷으로 골랐다. 바지는 파란색을 집었다. 바지를 폈다. 그런데 세모가 안 보였다. 세모가 뒤쪽인데……
   “어디가 앞이야?”
   “……”
   “엄마, 어디가 앞이냐고?”
   바지를 보여주었다.
   “긴 쪽!”
   7살이니까 양치질도 스스로 했다. 아침밥은 미역국과 김치였다. 미역국에 밥을 말았다.
   “김치도 먹여야지.”
   엄마가 김치를 가리켰다.
   “씻어줘.”
   “안 돼. 7살은 김치 안 씻고 먹는 거야.”
   “제발.”
   나는 두 손을 모았다.
   “학교 가는 거 연습이야.”
   “밥 먹을 때, 선생님이가 다 보고 있어?”
   “당연하지!”
   김치를 숟가락으로 떴다.
   “안 돼. 젓가락 써야지.”
   젓가락으로 겨우 김치를 집었다. 젓가락이 덜덜 떨렸다. 힘을 꽉 줬는데, 김치가 미끄러졌다. 입 앞에 다 왔는데…… 김치를 손으로 집어 먹었다. 혀가 따갑고 아팠다. 눈물이 핑 돌았다.
   “설마 7살이 매워서 우는 거야?”
   눈물을 삼켰다. 물을 다섯 번 먹었다. 그래도 매웠다.

   어린이집에 가려고 현관문을 열었다.
   “정선재, 신발!”
   엄마가 불렀다.
   “바꿔 신었잖아?”
   오른발과 왼발 신발이 바뀌어 있었다.
   엘리베이터 단추를 눌렀다. 엘리베이터 벽에 내가 보였다. 7살이 되니까, 더 멋진 거 같았다. 나는 파워맨처럼 했다. 오른손 주먹을 앞으로 뻗었다. 왼쪽 다리는 뒤로 뺐다.
   “하 하 핫, 나는 정의의 용사!”
   윗집 할아버지가 엘리베이터에 탔다. 할아버지랑 눈이 마주쳤다.
   “안녕하세요?”
   씩씩하게 인사했다. 나는 7살이니까. 할아버지가 큼큼 기침을 했다.
   “참 얌전하게 생겼는데……”
   엄마가 고개를 숙였다.
   “이제 7살이니까 잘 안 뛸 거에요.”

   7살은 좋다. 어린이집에서 제일 큰 형이다. 형주 엄마가 손을 흔들었다.
   “선재야, 7살 축하해!”
   “형아, 7살 축하해!”
   민형이가 달려왔다.
   “선재가 제일 큰 형이네. 동생들 잘 부탁해.”
   선생님이 말했다. 이제 나는 7살이다. 최고 큰 형님이다.
   오전 간식은 방울토마토였다. 제일 싫어하는 거다. 지우 입안에 토마토가 많다. 볼이 울퉁불퉁하다. 나는 방울토마토를 꿀꺽 삼켰다.
   “우와, 오빠 대단하다.”
   7살은 맛없는 것도 먹어야 한다. 그래도 괜찮다. 동생들이 알아주니까.

   나들이 시간이다. 오늘은 텃밭으로 갈 거다. 나는 준우 옆에 섰다. 이번에 준우랑 제대로 겨뤄 볼 거다. 내가 어린이집에서 제일 빠를 거다. 형들이 졸업했으니까.
   “선재는 이쪽으로 와.”
   선생님이 단우 옆을 가리켰다.
   “7살 형이니까, 4살 동생 잘 챙겨줘.”
   아쉽지만 단우 손을 잡았다. 단우 바지가 축 처져 있다. 기저귀 찬 엉덩이와 빵빵한 볼이 귀엽다.
   “출발, 자 조심하고!”
   어린이집을 나섰다. 단우가 손을 뺐다. 나는 다시 단우 손을 잡았다. 작은 손이 내 손에서 자꾸 빠진다. 여기저기 뛰어다닌다.
   “이단우, 안 돼!”
   나는 단우를 잡으려고 이리저리 뛰었다. 뒤쪽에서 차 소리가 들렸다. 단우 손을 꽉 잡았다. 갑자기 단우가 차 쪽으로 뛰어갔다.
   “안 돼!”
   단우가 꼼짝 못 하게 끌어안았다. 단우가 자꾸 몸을 뺐다. 차가 지나갔다. 다시 걷기 시작했다. 단우가 또 내 손을 놓았다. 물웅덩이에 들어갔다.
   “안 된다고!”
   단우를 잡으려다가 물웅덩이에 빠졌다. 운동화와 바지가 축축했다. 나는 젖는 거 싫어하는데……
   “어머, 단우 다 젖었네.”
   준우가 말했다. 준우 짝꿍은 5살 성은이다. 4살은 아기라서 더 힘들다. 텃밭은 가까운데, 단우와 가는 길은 멀다.
   어린이집으로 돌아왔다. 단우 바지가 다 젖었다. 바지를 벗겼다. 그런데 단우는 똑바로 앉지도 않았다. 갑자기 단우가 뒤로 벌러덩 누웠다.
   “이단우, 괜찮아?”
   단우가 배시시 웃었다.
   “안되겠다.”
   선생님이 단우를 데리고 갔다. 나도 동생 잘 볼 수 있는데……

   7살은 좋다. 어린이집에서 낮잠을 안 잔다. 동생들은 잠을 자고, 우리는 7세 활동을 한다. 7살만 하늘방에 모였다.
   선생님이 말했다.
   “공책에 자기 이름을 써 봐요.”
   나는 공책에 이름을 썼다.
   “저 사 자?”
   인영이가 내가 쓴 걸 보고 말했다.
   “정선재는 사자래.”
   아이들이 웃었다. 창피했다.
   “내가 써 줄 테니까 따라 써봐.”
   인영이가 한 글자씩 써 줬다. 나는 인영이가 쓴 글 위에 덮어썼다. 쓸 때마다 공책을 이리저리 돌렸다. 동그라미도 삐뚤빼뚤, 선도 반듯하지 않다. 선생님이 다가왔다.
   “선재도 이제 글씨 알아야 하는데……”
   푸른방에서 코 고는 소리가 들렸다. 갑자기 졸렸다. 나도 동생들처럼 자고 싶다. 7살 공부는 힘들다.

   저녁 시간에 엄마가 말했다.
   “씻고, 옷 갈아입고 있어.”
   “엄마, 어디 가?”
   엄마가 쓰레기봉투를 들었다.
   “안 돼. 무섭단 말이야.”
   “7살이잖아. 이제 혼자 있는 것도 연습해야지.”
   엄마가 내 어깨를 잡고 말했다.
   “띠리리”
   현관문이 닫히는 소리가 났다. 거실 한 가운데 서 있었다. 방에서 괴물이 나올 거 같았다. 눈을 감았다. 눈을 감으니까 더 무서웠다. 베란다로 갔다. 문을 열고 엄마를 기다렸다. 작은 검정 동그라미 머리가 왔다 갔다 했다.
   ‘엄마일까? 아니다. 엄마일까? 아니다.’
   구불구불 갈색 머리가 나타났다.
   “엄마, 엄마, 엄마!”
   엄마는 돌아보지 않았다.
   “띠띠띠 띠 띠 띠”
   현관문이 닫히는 소리가 났다.
   “엄마? 엄마야?”
   나는 꼼짝을 못하고 우두커니 서 있었다.
   “우리 선재, 잘 참았네. 진짜 7살 됐네.”
   엄마가 나를 안았다. 나는 훌쩍훌쩍 눈물이 났다.
   “바지가 젖었잖아? 오줌 쌌어?”
   엄마가 나를 떼어냈다.
   “7살이……”
   “나 7살 안 할 거야!”
   울다 보니 울음이 계속 나왔다.
   “알았어. 알았어. 안 해도 돼.”
   엄마가 눈물을 닦아주었다.
   “엄마는 7살이 마법 같았어. 7살이라고 하니까 우리 선재가 다 잘해서.”
   “진짜 7살 안 해도 돼?”
   “그럼 천천히 해. 오늘은 엄마가 씻겨주고, 옷도 갈아입혀 줄게.”
   “꾸부려봐.”
   엄마가 끙 소리를 내며 앉았다. 엄마 어깨에 올라탔다. 엄마에게 업혀서 화장실로 갔다.
   “7살이 가끔 실수해도 돼?”
   “당연하지. 40살도 날마다 실수해.”
   7살은 좋다. 실수해도 되니까.

박수진

많은 사람이 나이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어떤 나이든 그 나이에 부여된 책임이 뒤따른다. 7살은 학교에 갈 준비를 하는 나이다. 어린이집에서도 제일 큰 형에 해당된다. 6살과 다른 큰 변화를 경험하게 된다. 7살의 아이의 삶의 무게는 어떤 것일까? 아이들에게, 아니 나에게 나이가 주는 중압감에서 벗어나도 좋다는 이야기를 건네고 싶었다.

2019/07/30
20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