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끝난<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라는 드라마를 꽤 열심히 봤다. 집에 텔레비전이 없는데다 드라마도 잘 보지 않는 편인 나로서는 드문 일이었다. 집에 텔레비전이 있으면 그냥 틀어놓고 멍하게 보다가 내가 왜 이러고 있지? 하고 자괴감에 마음이 무거워지는 밤이 싫어 십 년 전 즈음에 텔레비전을 없앴다. 어느 날 오후 집 밖에서 들려오는 “가전제품 삽니다”라는 소리에 불현듯 벌떡 일어나 터무니없이 싼 값에 팔아버렸다. 그러나 막상 텔레비전을 없애고 가장 불편했던 건 유일하게 애청하던 프로그램인 <그것이 알고 싶다>를 볼 수 없는 것이었다. 얼마 안 가 불편함을 견디지 못하고 텔레비전을 볼 수 있는 인터넷 채널을 정기결제해서 <그것이 알고 싶다>만 꾸준히 보고 지내왔다.
   오랜만에 즐겨보는 드라마가 생기니 이것저것 궁금해지고 결말은 또 어떻게 끝날까 마음 졸이다가 검색도 해봤다. 그러다 안판석 피디가 김승일 시인의 시 「나의 자랑 이랑」에서 영감을 얻었다는 기사도 읽게 되었다. 「나의 자랑 이랑」은 원래도 좋아하는 시라서 역시 시의 힘이란! 하고 나까지 어깨를 으쓱했더랬다. 사랑에 관해서라면 시만한 것이 있겠는가. 그런데 그 시를 오랜만에 다시 읽었더니 이전에는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던 구절이 유독 와닿았다.

   일을 하고 살아야 한다는 것이, 네가 일을 할 줄 안다는 것이
   이상하게 생각되는 날이면


   일을 하고 살아야 한다는 것, 돈을 벌고 살아야 한다는 것을 이상하게 여긴 적이 나에게도 있었던가? 늘 그 부분을 못마땅하게 여겼지만 이상하다고 느낀 것은 아니었다. 일을 하고 살아야 한다는 건 내게 생각해 볼 거리조차 안 되는 그저 당연한 일이었다. (인간이라면 일을 해야지! 우리 집 어른들 말씀.)

   어린 시절 나는 꿈이 없었다. 어린 시절의 꿈이라는 말은 대부분 직업과 관련되어 있었다. 그 시절엔 꿈, 장래희망, 직업이라는 말이 동일한 의미로 쓰였다. 그러니까 나는 꿈이라는 게 뭔지 몰랐다. 꿈과 직업이 다른 것이라는 걸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다. 꿈이 뭐야? 라고 누군가 물어온 기억이 없다. 어쩌면 물었을지도 모르지만 나중에 어떤 직업을 가질 거야? 라는 질문으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돈을 많이 벌고 싶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세계여행을 많이 다니고 싶은 사람도 있을 것이고, 변호사가 되거나 빵집 주인이 되고 싶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평생에 걸쳐 일기를 쓰고 친구들에게 크리스마스 카드를 보내고 싶은 사람도 있을 텐데 그 시절 우리들의 상상력은 왜 그토록 빈약했을까. 대부분의 꿈은 선생님이나 공무원이나 스튜어디스, 의사, 간호사 등으로 요약되었다. 그런데 그게 정말 꿈이었을까.
   나중에 어른이 되면 뭘 하고 싶어? 어떻게 살고 싶어? 라고 누가 내게 물었을 때 책 많이 읽고 음악도 듣고 옷도 만들고 잡지도 만들고 영화도 많이 보고 싶다고 답할 수 있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지금 와서 드는 생각이다. 말하지 않고 생각하지 않으면 점점 멀어져가고 종래에는 그것이 무엇이었는지 도무지 알 수 없게 되어 버린다. 꿈 말이다.

   내가 어릴 적 가장 빠져들었던 일 중 하나는 아이들과 민물 새우를 잡는 일이었다. 저수지의 얕은 물가에 작고 투명한 민물 새우들이 있었다. 민물 새우를 잡으러 가면 해가 저무는 줄도 모르고 물속을 들여보다가 어두워질 무렵 불룩한 비닐봉지를 들고 돌아오던 저녁이 떠오른다. 어둠이 온 것을 아쉬워하며 내일 다시 와서 많이 잡아야겠다고 생각하는 아이의 발걸음은 단순한 기쁨으로 가득했다. 아이는 그 후에 만화책에 빠져 만화방에 살 때와 전자오락에 빠져 오락실에 살 때 비슷한 기쁨을 느낀다. 그리고 음악을 듣거나 책을 읽을 때 지속적으로 느꼈다. 그때 누가 꿈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나에게 정확히 가르쳐주었더라면 어땠을까. 민물 새우잡이가 되어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이십 대 중반이 되어서야 막연히 책과 음악과 관련된 일 혹은 예술 같은 걸 하면 어떨까? 라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당시에 나는 직장에 다니고 있었는데 직장인으로서의 삶이 좋지도 나쁘지도 않았다. 그때 나를 가장 행복하게 만들어준 것은 책과 음악이었다. 결국 지금 내가 글을 쓰는 사람으로 살고 있는 것은 재능을 발견해서가 아니라 좋아하는, 할 수 있을 것 같은 유일한 일을 해보기로 마음먹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바라는 삶은 일을 하지 않는 것, 돌이켜보면 백수에 가까운 삶이었다. 하지만 일을 하지 않고 돈을 벌지 않고 살 수는 없으니까 대신 조금 일하고 조금 벌고 사는 삶을 원했다. 나에게 더 많은 시간을 주고 싶었다. 읽는 시간, 듣는 시간, 자는 시간, 멍하니 보내는 시간들.

   「나의 자랑 이랑」이라는 시 속의 ‘너’는 손목이 아프도록 천 가방을 만든다. 좁은 방 안에 수북이 쌓여 있는 천 가방은 모두 내다 팔기 위한 것들이다. 일을 하고 살아야 한다는 것 때문에 너는 분노에 떨면서 겁에 질려서 운다. 세상을 향해 화를 내보기도 한다. ‘너’는 막 성인이 된 이십 대의 여성일텐 데 삼십 대의 너는 어떨까? 사십 대의 너는, 오십 대의 너는, 노년의 너는? 일을 하지 않고도 살 수 있는 걸까. 나보다 어린 너를 토닥거리고 안아주고 싶다. 하지만 네가 안심할 만한 어떤 말도 나는 해줄 수가 없다.

   얼마 전 시 속의 ‘너’와 같은 마음으로 우울하던 계절이 있었다. 돈을 벌어야 한다는 생각을 부쩍 많이 하게 되었다. 서울 생활, 노후 준비 이런 단어들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이렇게 살다가 무엇이 되는 걸까. 그러다가 지금 나의 꿈은 뭘까 라는 생각에까지 미쳤다. 돈이 많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하지만 돈을 많이 버는 것이 꿈이라면 너무 우울한 일이다. 그런데 나는 딱히 되고 싶은 것도 없고 여행을 좋아하지도 않으니 가 보고 싶은 곳도 없다. 그러니까 나는 꿈이 없는 사람이로구나. 꿈이라는 단어 앞에서 무력해지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며칠 전 자려고 누워 뒤척이다가 문득 내가 살고 싶은 삶은? 이라는 질문에 대한 이미지가 문득 떠올랐다. 오전에 테라스에 비스듬히 앉아 책을 읽고 있는 내 모습이었다. 그리고 불을 켜고 일어나 이런 메모를 적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눈을 비비고 세수는 하지 않은 채로 커피 한 잔을 끓여서 테라스 혹은 실외와 맞닿아 있는 곳에 위치한 비스듬히 누울 수 있는 의자로 간다. 의자 앞에는 다리를 올려놓을 수 있는 탁자나 의자가 필요하다. 거기 비스듬히 누워 발을 올리고 배에 쿠션을 올리고 책을 읽는다. 반드시 햇살과 그늘이 적당히 있는 오전 시간이어야 한다. 나는 대체로 아침에 일어나서 바로 식사를 하는 편이 아니기 때문에 한두 시간 그렇게 독서를 한다. 그리고 나서 음악을 켜두고 식사를 준비하고 밥을 먹고 집안일을 한다.

   그런데 적어 내려가다 보니 이런 게 꿈이라면 당장 시작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 책을 읽는 것이 내 꿈이라니. 이렇게 단순하고 쉬운 일을 못 하고 왜 불행한 사람의 더 불행한 마음속에 갇혀 있었을까. 내 집에는 베란다도 있으니 아침에 일어나기만 하면 되는 일이 아닌가. 아마도 그건 내가 스스로에게 무엇을 꿈꾸고 있는가 질문하기를 멈추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꿈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는 것조차 아예 잊고 살았던 것이다.

   일단 베란다를 대청소를 하기로 했다. 베란다가 있긴 하지만 그곳은 폐기물 적재소처럼 온갖 물건들이 쌓여있다. 버려야 할 물건들, 쓸모없는 물건들, 계절가전, 잡지들로 발 디딜 틈도 없는 것이다. 버려야 할 물건들과 더 이상 쓰지 않는 물건들을 버리고 바닥을 쓸고 닦고 의자와 탁자를 구입하는 이런저런 계획들을 세워보았다. 하루 이틀로는 가능할 것 같지 않았다. 게다가 가장 큰 문제는 오전에 일어나야 하는 것이다. 오전에 일어난다는 건 밤에 일찍 자야 한다는 뜻. 과연 할 수 있을까.

   그리고 또 하나. 가방을 가볍게 하기. 내 가방에는 늘 노트북과 충전기, 마우스, 책 몇 권과 텀블러와 필통, 파우치가 들어 있다. 에코백에는 그것들을 담을 수가 없다. 무거운 가방을 메고 다니다보면 어깨도 아프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더 고단하게 느껴진다. 무거운 가방을 내 삶에서 치워버려야 한다.

   아침에 일어나 독서하기와 가벼운 가방을 들고 다니기!
   처음엔 생각만 해도 가벼워지는 기분이었는데 마감이 닥치면 과연 할 수 있을지 슬슬 걱정이 밀려왔다. 마감 시즌이면 아침이 올 때까지 원고를 붙잡고 있다가 쓰러지듯 잠들었다 일어나 다시 무거운 백팩을 메고 카페를 전전하는 내 모습이 떠올랐다. 나는 나에게 더 많은 시간을 주고 싶은데. 읽는 시간, 듣는 시간, 자는 시간, 더없이 멍한 시간들을 더 많이 주고 싶은데. 시가 일이 되어버리면 정말 어떡하지? 시에게 미안해서 어떡하지? 시 앞에선 늘 아마추어가 되고 싶은데 너무 멀리 와버렸으면 어떡하지?

   일을 하고 살아야 한다는 것이 이상한 일은 아니지만 무슨 일이든 해야만 한다는 것은 아무래도 이상한 일이다. 그리고 좋아하는 일을, 좋아하는 사람을, 좋아하는 시간과 공간을 끊임없이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꿈꾸는 삶에 다가가고 있는 것이라는 지나치게 긍정적인 결론에 도달했다. 그러니까 이번 시즌 마감을 끝내고 나면 시작해 볼 생각이다. 지금 가장 좋아하는, 할 수 있을 것 같은 유일한 일을.

강성은

지난달 폭우로 집에 비가 샜다. 장마가 오기 전에 지붕 공사를 해야 한다. 베란다에 햇볕은 얼마나 뜨거울 것인가. 맥주가 없었다면 여름은 도무지 용서하기 힘든 계절이다.

2018/06/26
7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