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유-뷰view 함께 읽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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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진(사회, 본지 편집위원) : 반갑습니다. 어린이문학 좌담자로 모실 분을 고심했는데요. 보통 어린이문학 잡지에서는 동화, 동시 등 장르별로 따로 다루는데 이번 좌담에서는 둘을 함께 이야기해야 해서 좌담자 본인이 창작하는 장르가 아닌데도 작품을 두루 봐주셔야 했어요. 어려운 작업을 부탁드렸는데 이렇게 참석해주신 김준현 시인, 송미경 작가께 감사드립니다. 먼저 송미경 선생님은 동화뿐 아니라 희곡과 일러스트까지 활동 영역을 넓히고 계시지요. 요즘 하는 작업에 대해 좀더 여쭤보고 싶습니다.

송미경 : 저는 올해 영유아 보드북 글, 그림을 작업했고 만화책 작업도 했어요. 유아책과 만화책에 그림 그리는 데 집중하고 있고 옛이야기 희곡집 시리즈도 내고요. 잘하거나 못하거나를 떠나서 즐거움이 있어요.

김유진 : 글만 창작하는 것보다는요?

송미경 : 네. 다만 그러다보니 막상 창작 동화와 제가 다소 떨어져 있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렇게 외떨어져 있다가 좌담을 준비하면서 동시, 동화 작품을 읽으니 새로운 눈으로 보게 되더라고요.

김유진 : 장르를 넘나드는 창작의 즐거움을 들으니 반갑네요. 김준현 선생님은 동시, 시, 평론을 쓰고 계시지요. 근황을 듣고 싶습니다.

김준현 : 저는 육아를 하고 있어요. 아내랑 공동육아를 하고 있는데 요즘에 신경 쓰이는 건 육아 시간이랑 집필 시간 사이에 어떤 균형점 찾기예요. 사실 놀아주는 것밖에 없긴 한데 그것만으로도 체력에 한계가 있어요. 아이가 어린이집에 잠깐 가는 오전과 늦은 밤에만 작업을 하다보니까 흐름이 좀 끊기는 것 같아서 작업 시간에 대한 고민을 조금씩 하고 있어요. 이번에 《비유》 수록작을 검토할 때도 종이로 보는 게 아니다보니 밤에 침침한 상태로 커피 마시면서, 카페인의 힘을 빌려서 읽었어요.(웃음)

김유진 : 둘 다 이십사 시간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육아와 창작의 균형을 찾기가 참 어렵죠. 올해 《비유》에 실린 어린이문학 작품을 어떻게 보셨는지 이야기를 시작해볼게요. 전반적인 분위기나 특징이 있을까요? 《비유》라는 발표 매체가 가진 특별함으로 두 가지 정도 떠오르는데요. 먼저 웹진으로서의 성격이 있겠죠. 어린이문학에서는 웹을 플랫폼으로 이용하는 일을 찾아보기 힘든 데 비해서요. 두번째로는 어린이문학 단독 잡지가 아닌 어린이문학이 성인문학 작품들과 나란히 함께 자리하고 발표되는 장이라는 점에서도 《비유》 발표작들의 특징이 나타날 수 있을 것 같아요.

김준현 : 동화는 시의적인 지점이라든지 조금 더 현실적인 문제의식 같은 것들과 맞닿아서 같이 가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어요. 동화에서 드러나는 어떤 문제의식은 어린이들의 현실과 곧장 연결되는 경우가 많이 있는데 동시는 아무래도 그 지점에서 조금 다른 면이 있는 것 같아요. 동시에서는 일인칭 주체의 발화가 강하다보니, 그 목소리의 고유성이라고 할까요? 자기 개성에 더 무게중심을 두고 읽게 되는 것 같아요.

김유진 : 네. 두 분께서 동일하게 선정하신 동화 역시 아주 현실적인 배경을 갖고 있었어요. 작가들이 《비유》에 작품을 발표할 때는 아무래도 어른 독자도 고려하게 되겠고요. 즉각적인 전파력을 예상할 수 있으니 현실 문제를 담은 작품을 발표하기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근데 동시가 그렇지 않은 건 말씀처럼 서정 장르의 기본 성격이기도 하겠지만 2000년대 중반 최승호 말놀이 동시 이후 여전히 계속되는 동시의 경향으로 보이기도 해요. 이전에는 소위 ‘현실주의 동시’라고 부르던 경향이 지금은 작가, 독자, 평단 아무에게도 주목받지 못하는 상태죠.

송미경 : 요즘 제 관심사 때문인지 모르겠는데 작품이 표현하는 장면들이 눈에 선명하게 보이는가를 살피게 돼요. 동시를 읽을 때도, 동화를 읽을 때도 장면이나 공간이 분명하게 살아있는가. 요즘 시각적인 것을 새로운 기분으로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인 것 같은데요. 화자와 화자의 시선이 어떻게 이동하고 있고 어디에 고정하고 있는지, 어떤 흐름을 타고 있는지, 그 시선의 머묾이 짧은가, 긴가. 이런 걸로도 감상해봤어요. 문학 읽는 방식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으니까요. 작가가 독자에게 어떤 장면을 분명하게 보여줄 수 있다는 건 자기 안에서 그만큼 그 장면이 살아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이번에 유난히 그 지점에 초점을 맞추고 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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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수진, 「한지 조각보」click

김유진 : 이제 작품을 하나씩 살펴볼까요. 먼저 추수진의 동시 「한지 조각보」부터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두 분 모두 선정하신 작품이죠. 지난해 어린이문학 특집에 실린 작품인데, 이 특집에서는 동시와 동화 장르를 모두 창작하는 작가들의 동시와 동화를 나란히 실었어요. 한 작가가 어린이문학에서 그리는 세계가 장르에 따라 어떻게 달리 나타나는지, 그럼에도 어린이문학으로서 어떠한 교차점을 찾을 수 있을지, 그런 걸 실험하려는 의도로 기획했는데요. 이 동시로만 말씀을 나누어도 좋고, 나란히 발표된 동화 「일곱 번째 규칙」과 함께 보아도 좋겠구요.

송미경 : 저는 동시는 아무래도 잘 모르지만 그래도 얘기를 한다면 아까 얘기한 거랑 맥이 상통하는데요. 추수진의 동시는 눈앞에 장면이 그려지듯 굉장히 선명하게 표현이 되는데, 그 그림을 따라가다보면 아이의 마음을 느끼게 되는 지점이 좋았어요. 한편 모범적인 느낌도 있었어요. 흠이 없고 반듯함이 있죠.

김준현 : 모범적이라는 말씀에 동의를 하고요.(웃음) 일단 6교시 미술 시간이라는 구체적인 시공간으로부터 발화가 시작되는 게 좋았어요. “조각난 하루” 같은 말은 사실 어린이의 발화라기보다는 어른의 표현에 가깝잖아요. 긍정적인 해석을 내놓기 좋은 동시라는 생각도 들었어요. 물론 시인이 그것까지 의도하고 쓴 건 아니겠지만 “빨강 옆에 파랑/ 노랑 옆에 까망”과 같이, 서로 다른 색채, 서로 모난 것들끼리 모이면 한지 조각보가 된다는 게 재밌었어요. “한지 조각보”라는 이름 안에는 조각이 있지만 조각이 없다는 역설이 가능해진다는 게 재밌기도 했고요. 좌담의 처음을 여는 자리에서 이렇게 긍정적이고 깔끔하게 읽히는 동시로 열면 좋을 것 같았어요. 무엇보다 얘기하기가 수월한 동시일 것 같기도 했고요. 뒤에 다룰 김개미 시인의 시와는 다르게?

김유진 : 한편으로는 조각들이 조각보로 맞춰지면서 원래의 모남이 사라진다는 역설이 흔히 어린이에게 교훈적으로 이야기하는 ‘모난 돌이 정 맞는다’ 이런 의도로 오해되지 않을까 하는 면도 없지 않아 있었어요. 개인이 공동체로 통합되는 과정을 너무 서둘러 긍정하는 느낌도 있구요. 그런데 같이 발표된 동화 「일곱 번째 규칙」을 보면 조각난 마음들이 조각보가 되는 게 그런 의미가 아니라 어린이가 마음의 상처를 회복하는 과정으로 나오죠. 동화로 이 동시의 독해가 변화하는 지점을 스스로 관찰하면서 동시의 독해를 단정하지 말자는 생각을 또 한 번 했구요. 그런 한편 동화의 의미가 왜 동시에서는 풍부하게 드러나지 않았을까, 동화와 상대하는(?) 동시 장르의 한계에 대해서도 고민했어요.

김준현 : 네. ‘조각난 하루’라는 단어의 구체적인 정황이 동시 안에 들어 있는 게 아니고 동화에서 따로 다루어지고 있는 거죠. 그럼 동시를 읽는 것만으로는 ‘조각난 하루’가 바로 와닿는 감각은 아닌 건데요. 그런데 아마도 이 당시 특집 때는 동시랑 동화를 함께 청탁받아 한 지면에 싣게 되니까, 두 장르가 상호작용을 하는 걸 미리 염두에 두시고 이렇게 내신 게 아닐까? 이런 생각도 들었어요.

송미경 : 이 작품은 그 안에서 이미 잘 다듬어져 나왔기 때문에 독자에게 다른 여지를 좀 덜 남겨주는 면도 있어요. 읽으면서 새로운 것을 계속 발견하게 되는 시도 있는가 하면 기존 장면을 강화하는 시도 있는데 이 시는 후자에 속하는 것 같아요.

김유진 : 그런 세계도 확실히 필요하죠. 확고하게 선언할 수 있는 세계를 이야기하며 어린이 독자에게 세계에 대한 신뢰와 안정감을 주는 게 요즘 어린이문학이 발견해야 할 하나의 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상교, 「거울」click

김유진 : 이상교의 동시 「거울」도 얘기해볼까요?

송미경 : 제가 길을 다니면서 사진 찍는 걸 굉장히 좋아해요. 사실 요즘에 딱히 재밌거나 의욕이 있는 건 없거든요. 꾸준히 관심을 두는 건 사진인데, 담벼락에 버려진 거울 연작을 많이 찍어놓은 게 있어요. 그래서 이 작품의 이미지에 마음이 딱 달라붙는 느낌이 있었고요. 보통 거울이 버려지는 이유는 금이 가는 경우예요. 왜냐하면 프레임이 좀 망가진 건 테이핑을 해서 쓰는데 금이 가면 버려지죠. 그런데 금이 간 거울은 사실 타자에 의해서 버려지는 거란 말이에요. 그리고 거울은 온전하게 상을 비치지 못하면 의미가 없는 존재가 되는, 어떻게 보면 아주 납작한 존재예요, 모든 걸 담고 있지만요. 그런데 “밖으로 나와/ 담벼락에 기대 있다”는 말 자체가 마치 스스로 나온 것 같은 경쾌함을 가지고 있는 것이 좋았어요.
그리고 보통 거울을 다룰 때 그 소재를 내면으로 자꾸 응축시키려고 하는데 여기에서는 자전거가 들어왔다 나가고 아기가 왔다 가는 동적인 구도를 만듦으로써 그 경쾌함을 계속 유지하는 거예요. ‘금이 가서 버려졌다’는 건 가라앉아 있는 느낌이잖아요. 그런데 거기에 전혀 구애받지 않고 힘 있게 움직이는 느낌, 영상이 움직이는 느낌들도 좋았고요. 거울에 관한 시들을 마주하게 되는 일들이 많은데 거울이 주는 이미지가 대부분 비슷해요. 거울을 들여다보면서 반성하는 주체들이 많이 나오고 거울이 대상화되고 그치는 데 비해, 이 시에서는 온전히 거울이라는 사물 자체가 주인공이 돼서 좋았어요. 거울이 또 하나의 다른 생을 살고 있는 느낌? 거기에 어떤 연민이나 성찰, 이런 것이 아니라 그냥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살아 있는 한 존재로서 거울을 만나서 진짜 거울을 본 느낌이에요. 아, 「거울」과 함께 실린 「엄마께」도 좋았어요.

김유진 : 저도 말씀해주신 바대로 읽었고요. 이상교 시인의 시를 보며 종종 참 놀랍고 존경스럽다는 생각밖에는 들지 않을 때가 있어요. 사십 년 넘게 창작하시며 시인의 삶에서 늘 사물의 다른 의미를 찾아내시는 시선들이 기계적인 반전도 아니고 지나치게 사색적이지도 않고 정말 놀랍다는 말밖에 하기 힘들어요.

김준현 : 이상교 시인의 동시는 항상 직접 본 것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고, 그 점에서 육성으로 말하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죠. 이를테면 이 시의 경우에도, 시인은 아마 금간 벽거울을 봤을 거고 그걸 있는 그대로 얘기하지 않았을까요? 집에 있는 거울들은 대체로 똑같은 시간과 공간을 비추고 있는데 그게 꼭 정지된 시간처럼 느껴지잖아요? 일례로 히키코모리라면, 그렇게 집 안에서 안전하게 사는 것을 추구할 수도 있겠지만, 여기 ‘거울’처럼 다쳐서 밖으로 나왔을 때, 위험하다고 생각했던 바로 그 세상이 사실 이 거울의 정지된 시간을 흐르게 만들어요. 상처를 긍정하는 방식의 동시라는 점이 좋았어요. 상처를 치유해야 한다는 쪽으로 가지 않고, 이렇게 긍정할 수 있구나 싶었어요.


전율리숲, 「나비-통신」click

김유진 : 전율리숲의 동시 「나비-통신」을 볼까요. 시인이 영상도 함께 주셨고 시도 독특하죠. 동시와 시의 장르 경계라고들 흔히 얘기하는데 과연 이게 동시일까라는 질문도 해볼 만한 작품이에요. 신인이시고, 문학 장에서는 활동 경험이 없지만 음악 평론으로 등단하신 적이 있고요. 그래서 본인의 작업을 이렇게 나란히 해주신 것 같습니다.

송미경 : 저는 영상은 나중에야 보았고 시를 먼저 접했어요. 그때 노래 같다고 생각했어요. “어서 집으로 와/ 어서 집으로 와” “나는 방에 있어/ 나는 방에 있어” 이런 말들이 반복되면서 쭉 흐르는데요. 다르게 시를 해석할 여지도 있지만 그보다는 말을 입 안에서 굴리는 재미로 읽는 데 의미를 둔 것 같아요. 그리고 제목이 ‘나비-통신’이잖아요. 이 시가 좋았던 것 중 하나가 제목을 모르고 읽으면 정말 새로운 시가 돼요. 저는 그런 시가 재밌거든요. 「나비-통신」의 첫번째 연이 특히 그래요. 전혀 다른 이미지, 한 존재를 기다려주고 있는 어떤 인물처럼 생각돼서 재밌었어요. 좀 색다른 영화, 단편보다 훨씬 짧은 영화 같은 느낌들을 가졌어요.

김유진 : 노랫말이기도 한 시의 목소리가 감미로우면서도 자유로워요. 만약 “어서 집으로 와”가 밥 먹으라고 부르는 엄마의 목소리라면 이 분위기일까,(웃음) 우리는 어떤 목소리로 어린이를 부르고 있을까, 무엇을 나누자고 부르나, 하는 생각도 드네요.

송미경 : 저는 “어서 집으로 와” “나는 방에 있어”의 연결이 제 사춘기 시절이 떠오르면서 한 사람이 자기 자신과 주고받는 것으로 인지해보기도 해서 재미있었어요.

김준현 : 저는 영상을 먼저 봤어요. 독립영화 감성이 느껴졌다고 할까요? 보통 이렇게 좌담을 하거나 평론을 쓸 때는 어떤 식으로든 말을 의미로 정착시키는 작업을 해야 되는데, 아까 송미경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저도 이 동시를 다른 여러 가지 의미로 정착시킬 수 있긴 하겠지만, 말 자체가 굴러가는 지점이 그저 재밌었어요. 나비가 어디에도 정착하지 않는 것처럼 이 작품은 의미에 정착하지 않고 흐르는 노래에 가깝단 느낌이 들었어요. 요즘에는 ‘동시요’ 혹은 이외에도 동시를 노래로 바꾸는 작업들이 많이 이뤄지고 있는데 그와는 층위가 좀 다른 작업이라는 생각도 들었어요. 그러니까 한 장르에서 다른 장르로 옮겨오는 작업을 거치지 않아도 되는, 경계선에 있는 동시. 어린이들은 그저 그 말 자체가 주는 리듬감을 좋아할 때도 있거든요. 말맛이라고 해야 할까요? 이 시도 만약에 어린이들이 읽는다면 재밌어 할 것 같아요. 이 영상의 독특한 감성도 어린이에게 더 독특한 방식으로 전달될 것 같구요.

김유진 : 저도 이 작품을 읽으며 동시로 만든 노래들을 떠올리고 비교해봤어요. 대개는 먼저 동시라는 텍스트가 있고, 노래로 만드는 건 이후에 별개로 진행되는 작업이죠. 어린이와 좀더 텍스트를 나누고 소통하기 위해서요. 근데 「나비-통신」의 동시와 노래는 시라는 것, 노래라는 것을 그저 감각하게 하는 작품이 될 것 같아요.

송미경 : 잔잔하게 흘러가는 방식이라 질리지 않고 계속 반복해서 봤을 때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돼요. 굳이 해석하자면 이렇게 저렇게 할 수 있지만 안 하게 되는 이유가 시가 그 어떤 것도 선명하게 보여주지 않았기 때문이거든요. 그런데 그 지점 때문에 독자가 어떤 날씨에 있느냐 어떤 느낌에 있느냐에 따라 어떤 때는 외롭고 쓸쓸하게, 어떨 때는 경쾌하고 자유롭게 시를 느낄 수 있어요. 여기서 마련해놓은 풍경이나 분위기가 잘 펼쳐져 있기 때문에 독자가 자기 마음을 가지고 들어가서 놀다가 나오게 하는 거죠. 리듬이 강하면 그냥 그 비트를 따라가잖아요. 반면 잔잔한 곡을 들으면 자기만의 서사를 펼치잖아요. 어떻게 보면 단점일 수 있는 지점이 효과적으로도 작용한 듯해요. 눈에 확 띈다기보다는 반복해서 들으면 또 새로운 맛을 느낄 수 있는 시예요.


박은경, 「삐뚤어진 눈썹」click

김유진 : 또다른 작품으로는 박은경의 동시 「삐뚤어진 눈썹」 선택해주셨어요.

송미경 : 이것도 모범적인 동시로 읽혔던 것 같아요. 이 감을 언어로 규정하진 않지만 ‘이런 것은 동시다’라고 말할 때의 그걸 가지고 있어요. 눈에 띄어서 선정했어요.

김준현 : 말씀하신 ‘이건 동시다’ 같은 느낌의 반열에 드는 동시가 많지 않은 것 같다는 느낌이 드는 이유가 뭐냐면, 어떤 동시들은 아예 언어 자체가 설익은 느낌, 그러니까 아예 문학적 글쓰기라고 부르기 힘든 작품들이 너무 많아서 ‘이건 동시다’ 정도만 봐도 반가울 때가 있어요. 너무 설익은 상태인 작품들 그러니까 문학 작품의 선 안에 들어가기가 애매한 작품들이 꽤 많은데, 비단 웹진 《비유》만을 얘기하는 게 아니라, 문예지에 발표되고 심지어 단행본으로 나온 동시집의 동시들이 그런 선에 있는 경우가 많아서요. 제가 한겨레 수업을 하면서 동시는 사실 프로와 아마추어의 경계선이 거의 없는 것처럼 보인다고 많이 말씀을 드리거든요.

김유진 : 경계가 없다는 말씀은 다 아마추어라는 얘긴가요?(웃음)

김준현 : 네, 하향평준화로 가는……

송미경 : 맞아요. 언어가 불명확하거나 쉽게 가면 동시라고 하는 경우들이 있어서.

김준현 : 관대한 것 같아요, 동시 장르가. “이 정도면 꽤 괜찮은 동시입니다.” “너무 좋은 동시예요.” 이런 말들 이상으로, 조금 더 기대치를 높여도 좋지 않을까 싶어요.

김유진 : 처음에 《비유》는 신인 작가나 비등단 작가의 작품도 만날 수 있고, 그런 문학 제도적인 면뿐만 아니라 작품 역시 실험적으로 시도해나가는 자리가 되는 걸 중심으로 삼았어요. 안전한 청탁의 길을 가지 않은 거죠.(웃음) 그러자니 어린이문학의 작가 풀은 어른 독자 대상 문학에 비해 참 적고, 신인은 더 그렇다는 걸 여실히 느꼈어요. 사실 새로운 작가를 찾기가 더 힘드니 그쪽에 힘을 실으려고 한 것이었는데요. 다시 작품 이야기를 해보면 이 작품이 모범적이라는 건 또다른 의미로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교훈적이라는 뜻으로요. 삐뚤어도 괜찮다는 메시지를 명확하게 전달하고 있잖아요. 그럼에도, 엄마 아빠의 사랑과 나의 존재로 돌아오는 과정이 마지막을 조금 편안하게 만들어주었구요. 좀더 말씀 나눠주실까요?

송미경 : 얘기할 게 다소 적어요.

김준현 : 맞아요. 이 시가 얘기를 다 하고 있어서.

송미경 : 게다가 사실은 “똑바르지 않아 다행이야”라고 마지막까지 해줘서요.

김준현 : 그러니까 저희는 동시 읽기의 즐거움보다는 구체적인 메시지를 전달받은 것 같아요.

송미경 : 그림을 그려놓고 테두리 선을 강하게 하는 느낌인데 그걸 조금 빼주고 화자가 거울 앞에 표정을 짓는 과정에 더 몰입하게 해줬으면 더 재미있어질 것 같아요. 한편 지금으로서도 단단한 면은 이 시의 장점이에요.

김준현 : 이렇게 내면이 단단한 어린이가 분명 멋지기는 한데요. 저는 화자가 정말 삐뚤어져 있는 눈썹을 가지고 있으면 이렇게 당당하게 얘기하지 못할 것 같아요. 내적 갈등이 좀더 핍진하게 그려지면 더 설득력이 있을 것 같은데 이렇게까지 내면이 단단한 어린이가 조금은 현실감이 없다는 느낌이 들어요.

송미경 : 맞아요. 그래서 딱 반듯한 느낌이에요.

김유진 : 반듯한 삐뚤어짐이요.

송미경 : 그래서 “똑바르지 않아 다행이야”, 이 말이 너무 똑바른 느낌이 있죠.

김유진 : ‘반듯한 삐뚤어짐’이나 ‘똑바른, 똑바르지 않음’은 2000년대 이후 어린이문학 전반에 공통된 특징이기도 한 것 같아요. 어린이문학이 어른의 교훈과 계몽에서 벗어나 어린이의 주체성을 지향해야 한다는 인식을 공유하면서 안티-테제의 주제의식이 고정화되었다고 할까요. 하지만 계몽의 내용만 달라졌지 계몽의 태도는 여전해요. 어린이의 주체성을 강조한 걸로 어린이의 문학으로서의 역할을 완수했다고 여기지 말고 다 같이 계속 고민해보았으면 하는 지점입니다.


김개미, 「꽃의 아리아」 「눈 온다」click

김유진 : 김개미 시인의 동시 두 편을 볼까요?

송미경 : 「눈 온다」가 너무 좋았어요. 재밌는 게, 김준현 선생님이 「눈 온다」와 함께 발표된 「꽃의 아리아」를 뽑았어요.

김유진 : 어느 시가 더 좋은지 서로 한번 말씀해주시는 게 어떨까요?(웃음)

송미경 : 둘 다 좋더라고요, 그래도 「눈 온다」가 더 좋았어요. 읽는데 울컥하고 들어오는 지점이 있더라고요. 어떤 장면을 우리한테 보여주기만 했는데 마음을 울리는 게 너무 좋았어요. ‘이런 감정을 느끼세요’라고 강요하지 않으면서 그냥 그 행위, 동작을 통해 느낌에 이르게 해요. 잘 보여준 거죠. 그 보여줌에 위압이 없이 굉장히 내밀한 것을 보여줬는데 그 개인의 내밀함이 나에게까지 와서 닿는 전류가 흐르는 느낌. 아, 이런 거구나, 하고 와닿았어요.

김준현 : 둘 다 되게 좋았는데 「꽃의 아리아」는 화자도, 엄마도 입체적이고 상황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이 없고 이미지가 다채로운 것도 아닌데, 굉장한 흡인력을 갖고 있어요. “가지로 손가락을 찔렀어/ 아프길 기다렸어/ 피가 나길 기다렸어”라는 이 세 줄에서 벌써 그 성장이 가장 아픈 지점을 지나고 있는 특이한 아이, 그러니까 우리가 특이하다고 보는 소수자적인 아이의 냄새를 풀풀 풍기는 세 줄이 나와요. 또 어린이라고 하지 않고 “아주 조그맣고 아름다운 인간”이라고 자기를 표현하는 것도.

송미경 : 맞아요. 그거 너무 멋있었어요.

김준현 : “옛날 옛날”이라는 게 우화적인데 그럼에도 ‘왜 이렇게 세상의 어딘가에 있을 것 같지?’라는 생각이 들었고, 사실 『레고 나라의 여왕』이 김개미 시인의 다른 동시집과 비교해 인기가 없는 정도가 아니라 때로는 불편하게까지 받아들여지는 상황이긴 한데, 그 동시집을 읽으며 공통 감각을 느낄 수 있는 아이들이 있을 거예요. 김개미 시인은 성장의 가장 아픈 지점이라거나 보편이라는 의미에서 퇴색되어버린 어떤 것들 말고 구체적인 상황 안에 있는 어떤 어린이의 이야기를 하면서 이 사람은 진짜구나, 이 사람은 정말 현실의 어딘가에 있을 아이구나라는 걸 설득하는 힘이 있는 것 같아요. 「꽃의 아리아」도 우화거든요. 요즘에 누가 “아궁이”를 쓰고 “피 묻은 장미”가 있겠어요. 근데 말투가 너무 진실해서 믿어버릴 것 같은 거죠.

송미경 : 그리고 김개미 시인의 시 안에 있는 도발성이 주는 묘한 쾌감이 있어요. “나쁜 짓인 줄 알지만” “모든 장미를 다 좋아하는 건 아니란다” 이런 부분들이 그 어조를 딱 설정해 주고 인물이 살아 있게 만드는 힘을 주는 것 같아요.

김유진 : 제가 요즘 창작자로 가장 고민하는 지점이 어린이 화자의 입체성이어서 이 시의 화자에 눈이 번쩍 뜨였어요. 두 시 모두에서 “드라큘라의 시”라는 부제를 달고 드라큘라 화자를 등장시키는데 말씀처럼 소수자 정체성이 부각되잖아요. 그 소수자성이 어린이문학이 추구해온 ‘보편의 어린이’를 타파하고 있는 점도 좋구요.

김준현 : “눈물과 기도뿐인 엄마”가 있으면 어린이 입장에서는 시간이 안 가고 하루하루가 정말 길게 느껴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김유진 : 『레고 나라의 여왕』에서도 엄마가 중요하게 등장하죠. 수록작 「장갑」에서는 엄마의 과거와 나의 현재가 어린이라는 동일한 존재성으로 이어지는데, 여기서 드라큘라 화자는 엄마에 대한 기억을 계기로 자신이 어린이였던 과거를 회상해요. 엄마와 연결된 시간의 중첩들로 화자가 입체성을 띠게 되구요. 어른 독자 대상의 시도 함께 쓰는 시인들조차 이런 입체적인 면모를 시도하지 않은 채 어린이 독자에게 집중한다는 이유로 왜 늘 언어 형식과 세계를 한정짓는 동시를 쓰시는지……

김준현 : 사실은 시를 쓰시겠죠? 동시의 문제라기보다는 동시라는 장르에 대한 오해가 있다보니, 굳이 동시 장르가 아니라 어떤 현실에 대해서는 시로 쓰게 되는 것 같아요. 더 넓고 자유로운 면이 있으니까요. 김개미 시인 또한 동시와 함께 시를 쓰고 있기도 하고요.

김유진 : 그럼 김개미 시인에게서 시와 동시가 구별되는 지점은 뭘까요? 2000년대 중반 이후 어른 독자 대상의 시를 쓰던 시인들이 대거 동시를 쓰고, 이제 그분들의 동시가 현재의 동시로 대표되는데 자신들의 작품 세계 일부만 동시로 가져오면 동시로서는 아쉬운 일이죠. 동시를 다르게 접근하셨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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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숙현, 「우리 빌라, 오 키즈 존」click

김유진 : 이제 동화로 넘어가볼까요? 이숙현의 동화 「우리 빌라, 오 키즈 존」부터 말씀 나누겠습니다.

김준현 : 한 연재 칼럼에 노 키즈 존 이야기를 쓴 적이 있었어요. 아이랑 같이 카페에 갔는데 “여기는 노 키즈 존인가요?” 여쭤보니까 2층은 노 키즈 존이고 1층은 아니래요. 2층은 위험하니까 노 키즈 존인 거지 다른 뜻은 없는 것처럼 말씀을 하시고 카페 주인 분께서도 아기를 키운다고 하셨는데, 모든 걸 떠나서 ‘노 키즈’의 어감이 싫더라고요. “어린이 안전에 마음 써주세요”라거나 “키즈 케어 존”이라든지 다른 방식으로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강한 거부 의사가 대문짝만하게 있어서 힘들었던 차에 이 작품을 봤어요. 지금이야 저희 아기가 세 살이긴 하지만, 충분히 말을 알아들을 즈음의 어린이가 자기-존재를 단지 ‘연령’에 의해 거부당했을 때 어떤 느낌이 들까요? 그런데 이숙현의 작품을 읽으면서 이런 해결책도 가능하구나, 새삼 좋았어요. 그러니까 어린이가 주체가 되어서 문제 상황을 해결한 거잖아요. 이렇게 편지를 직접 쓰는 방식으로 조금이나마 바꿀 수 있는 세상. 물론 세상 전체의 구조를 바꿀 수는 없지만 ‘노 키즈’라고 적혀 있는 이 작은 한 가게의 문구를 바꾸기 위해 한 일련의 행위들이 좋았어요. 이렇게 할 수 있는 어린이가 있다면 참 좋겠다, 이 어린이는 이상적인 어린이일까 아니면 충분히 우리 현실에 있을 법한 어린이일까 하는 생각도 해봤고요.

송미경 : 이 작품을 보면서 주제를 떠나서도 즐길 수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했어요. 이국의 음식을 맛보고자 하는 아이들의 순수한 갈망이 있는데 저도 사실 아란치니가 뭔지 몰랐거든요. 아란치니, 아란치니 아이들이 그 말을 하고 있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은 거예요. 그리고 어른에게는 그냥 한 끼 식사가 아이들이 가게가 어떻게 생겼는지 토마토소스 통이 들어왔다 어떻다 들여다보고 하는 과정에 아이들이 너무나 살아 있는 거예요. 눈부셨어요. 단편으로서의 뛰어난 장면들, 한 조각을 반짝거리게 하는 것. 어릴 때 거울을 반사해 눈부신 놀이 하잖아요. 그런 작품을 만난 느낌이었어요. 이야기를 이끌고 가는 주체가 아이들이고 굉장히 자연스럽게 아이들의 방식으로 했죠. 한글과 영문 두 가지 우리 빌라라는 설정과 또 노 키즈 존을 자기네가 좋아하는 것, 아란치니 그림으로 가리고 “오 키즈 존”으로 만들어요. 이 과정에 전율이 있었어요. 모국어라는 것이 좋은 의미도 있지만 익숙하다는 것이잖아요. 근데 그 익숙함을 새롭게 아이들이 원하는 식으로 바꾼, 어떻게 보면 어른들이 만들어놓은 제도 자체를 유희적으로 바꾸고 그것이 하나의 큰 울림까지 오게 만드는 과정을 모국어와 영어가 같이 있는 것. ‘우리 빌라’ 글씨가 떨어져나가서 ‘으리’라고 읽히는 이런 상징성들이 풍요로워서 재밌었어요. 또 노 키즈 존이라는 주제 자체를 풀어나가는 것도 좋았지만 화자가 세상을 바라보고 우리한테 말하는 방식들 그리고 문장을 이끌어나가는 방식이 좋았어요. 아이들이 공사장 안을 보면서 하는 말들 있잖아요. 문이 달려 있고 손잡이가 금빛이고 우윳빛 커튼도 있고…… 아주 일상적인, 멋을 내지 않은 문장으로 인물의 감정을 살아 있게 만들더라고요. 그래서 단편 읽는 즐거움을 느꼈고요, 사건도 다른 거에 집중하지 않죠. 오로지 아란치니를 먹을 것인가 말 것인가에 집중한 것이 표면의 서사고 노 키즈 존이 오히려 숨은 것처럼 나와 있는 게 좋았어요. 이 정도로 선명한 주제와 좋은 시선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에 끌려가지 않으면서 문학적인 반짝임을 선사한 작품이라고 생각해요.

김유진 : 이야기는 비현실적일 정도로 낙관적이지만 현실 인식이 나이브하진 않은데요. 이게 동화 장르가 가질 수 있는 특권인 것 같아요. 하필이면 자기가 사는 빌라의 식당이 노 키즈 존이라잖아요. 한 건물에 살면서도 못 들어가는 억울한 상황은 사회적 공간을 점유할 권리가 있는 시민인 어린이에게 노 키즈 존이 얼마나 차별적인 공간인지를 명확히 상기시켜요. 또, 어린이가 단어를 바꾸며 의미를 전유하는 과정 안에서는 자본의 작동까지 비판적으로 읽어내는 시선이 보이구요.

김준현 : 개인적인 궁금증이 있는데요. 작품 중간에 아이가 쓰는 편지 부분 있잖아요. 본문과 다른 폰트이던데, 이걸 편집부에서 해주신 건가요? 폰트가 너무 매력적이어서.

고은(연희문학창작촌, 본지 진행팀) : 제가 이 작품의 게재를 담당했는데요, 작가가 원고를 주시면서 처음부터 폰트에 관해서도 요청을 해주셨어요. 어린이의 손 글씨와 비슷한 폰트를 작가와 상의해 골랐어요. 본문은 정인자체, 아이의 편지 부분은 윤초록우산어린이 만세체를 썼습니다.(웃음)

송미경 : “이연서” 이런 건 정말 손으로 쓴 것 같아요. 모쪼록 노 키즈 존 문제와 같이 이렇게 주제가 명확한 얘기는 진짜 하기 어렵거든요. 그런 점에서 「우리 빌라, 오 키즈 존」 잘 읽었습니다.

김유진 : 그리고 이 작품에서 열 살짜리 주인공이 영어를 못하잖아요. 우리 빌라도 영어로 못 읽어요. 다들 영어 유치원, 영어 학원 다니는 것만 같고 동화도 그런 어린이만 그렸는데, 그렇지 않은 어린이도 있다는 걸 말해서 좋았어요.


공진하, 「운동화 한 짝」click

김유진 : 공진하의 동화 「운동화 한 짝」도 어린이 현실과 밀접하게 관련된 주제를 담고 있죠. 장애아동의 학습권과 이동권을 말하고 있어요.

송미경 : 일단 흡입력이 있었어요. 운동화는 누구의 것일까 이게 진짜 궁금해서 끝까지 생각하면서 읽었어요. 보통 엘리베이터 서사에서는 많이 나오는 게 포스트잇이거든요. 친구를 만나고 싶어서 포스트잇에 “나 이사 왔어”라고 메시지를 남기는, 이런 비슷한 서사를 많이 만났어요. 그런 글씨로써가 아니라 운동화로써 어떤 존재를 만나게 된다는 설정에 호기심을 갖고 끌려갔던 것 같아요. 한편 인물 자체보다는 사건 자체에 관심을 갖게 되는 얘기였어요. 주인공들이 운동화 주인을 찾는 사건의 진행 방향에 집중하면서 읽었어요. 한편 아주머니의 입으로 자꾸 얘기가 나오는 부분은 좀 아쉬웠어요. 중요한 지점들 그러니까 연수도 가까운 학교에 가고 싶지 같은 얘기들을 할 때 아주머니의 입을 통해서 설명되니까 그 이야기 방식의 긴박성에 비하면 그 부분이 약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김준현 : 저도 전반부가 참 재밌었어요. 전반부는 말씀하신 것처럼 흡입력이 있었어요. ‘김연수’라는 아이가 어떤 존재인지 모르는 상황에서 단지 운동화 한 짝에 대한 추리 때문에 소영이랑 친해지고 김연수 덕분에 알게 되는 할머니 이야기 같은 부분들은 재밌었거든요. 그렇게 연수라는 아이를 만나는 데까지가 재밌었는데, 이후에 진행되는 이야기들이 조금은 예상 가능한 쪽으로 흘러가요. ‘연수’와 만나면서부터 곧장 이 아이가 겪고 있는 현실에서의 불편 같은 것들이 여백 없이 바로 나와버려요. 거기서 조금 호흡이 가빨라진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이 동네에 대한 부정이라든지 장애인 이동권이라든지 하는 지점들이 나올 것 같았는데 그대로 나오더라고요. 나왔는데 그 현실을 함께 맞닥뜨린 아이는 ‘쉽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정도에서 이야기가 마무리가 되었어요. 내적 갈등이 이 정도로 끝나는 게 그것대로 좋기도 했고 그러니까 이 아이의 어떤 현실을 나도 똑같이 받아들이고 공감을 바로 할 수 없는 상황 같은 것에 대한 이야기가 마지막에 나온 것 같아서 그 부분은 좋았는데, 여기까지 오는 과정이 조금 급박한 느낌이 들었어요.

김유진 : 연수가 “숨은 적 없는데”라고 말하는 게 장애인의 권리와 현실을 중의적으로 드러내듯이 중후반부도 그런 방식으로 재현되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한편 어린이 독자에게 명확히 말할 부분도 분명 있구요.

김준현 : 자꾸 설명해주고 싶은 어른의 한계인 것 같은데, 어른인 저 역시 이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 같기도 합니다. 이렇게만 말해서는 다 못 알아들을 것 같아서 괜히 더 설명해주고 싶은, 어른의 마음을 열심히 거부하는 중입니다.

김유진 : 어린이의 현실 문제를 전면에 내세운 작품들을 두 분 다 선정해주신 게 특별했어요.

송미경 : 단편은 단편만의 어떤 완결성, 단편이 도착할 지점이라는 게 있잖아요. 그런 것들이 완결된 하나의 느낌. 그러니까 어떤 긴 장편을 줄여서 얘기한 게 아니라는 걸 우리가 알면서도 썼을 때 그렇게 되는 이야기들도 있고 흩어진단 말이에요. 근데 여기서 운동화 하나로 어떤 곳에 도착하고 또 앞에는 아란치니 하나로 도착하고 결국 주제와 잘 엮인 것 같아요. 요즘에는 그런 생각도 들어요. 주제의식이 너무 밖으로 나오면 또 너무 그것만 보이긴 하지만 분명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시작한 이야기만의 어떤 힘이 있어요. 그것이 문학으로 표현된 걸 봤을 때 작가가 써낸 힘, 공들인 힘을 느끼게 되는 것 같아요.


이반디, 「햇살 나라」click

김유진 : 이반디의 동화 「햇살 나라」도 역시 두 작품처럼 어린이의 현실을, 특히 현실의 사건을 다루고 있지만 재현 방식이 달라요. 리얼리즘이 아닌 판타지죠. 《비유》 편집 과정에서 이 작품을 두고 판타지 형식이 현실의 비극을 낭만적으로 해결할 우려가 있다는 의견이 나왔어요. 어린이가 죽는 결말을 어린이 독자 입장에서 고려해야 한다는 의견도요. 그 지점들도 말씀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송미경 : 저는 그렇게 생각을 해요. 설득력 있게 그려졌느냐 아니냐의 차이였을 것 같아요. 근데 여기서는 여러 가지 요소들이 섞여서 소재가 소모된 느낌이 살짝 있어요.

김준현 : 〈카트〉라는 영화를 보면 마트 캐셔이자 한 가정의 가장인 ‘선희’와 두 아이가 나와요. 한 명은 남자 고등학생이고 벌써 현실을 알아요. 아르바이트를 해야 하고 돈 벌어야 하고 수학여행 못 가고 그런 것들을 아는데 그 밑에 동생 여자애가 있어요. 얘는 집에서 그냥 TV만 보고 있는 거예요. 보호자의 사정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방치되어 있는 아이인 거죠. 궁금해졌어요. 방치되어 있는 아이들은 그 시간에 무엇을 할까? 이 동화에서도 영화와 마찬가지로 엄마가 마트에서 일하는 걸로 나와요. 거기서부터 무거워지지 않게 이야기를 끌어가려는, 어떤 의도는 알겠지만 바람의 요정이라니, 요즘 시대에? 라는 생각이 일단 먼저 들었고요. 올해 여름에 사실은 비가 많이 내려서 서울은 좀 심각했던 상황이었죠. 그래서 방치되어 있는 보호받지 못하는 어린이가 마주하게 되는 재난 및 문제의식이 제게는 좀더 현실감 있게 다가왔어요. 그런데 여기서부터는 이 작품의 기존 전개와 무관하게 저의 고민이 시작된 것 같아요. 나라면 어디로 더 도약할 수 있을까? 낭만적이지 않게끔 그러나 어린이의 현실을 정확하게 얘기할 수 있을까? 저 혼자 평행 우주처럼 동화의 뒷부분, 다른 결말의 가능성을 자꾸만 생각해보았습니다. 이 동화 자체는 분명 시의성을 뚜렷하게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이지만, 저는 어떤 사건, 아니 사고가 일어났을 때 그게 어떤 진정성을 담을 정도의 말이 되기까지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작품은 그 무르익는 시간을 충분히 거치지 않은 채로 조금 급하게 나온 작품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조심스럽게 들었어요. 마지막에 이 죽음을 처리하는 과정도 조금 그랬는데요. 아무리 어린이를 위한 동화라고 해도 “이것이 세아가 진짜 공주가 된 이야기입니다”라는 문장으로 끝낸 게 많이 아쉬웠어요.

송미경 : 조심스러운 얘기일 수 있지만 삶의 문제를 작가가 관통한 느낌보다는 스쳐간 듯한 느낌도 좀 있어요. 게다가 요정이 나오고 햇살이 되고 하늘에 여신 아줌마 만나고 이런 요소들을 다 넣었어요. 그게 좀 날것으로 느껴져요.

김유진 : 아쉬운 면이 있어도 선정하신 이유가 있으셨을 텐데 이야기해볼까요?

김준현 : 도입부가 저는 좋았는데요. 다만 여기서 요정 이야기 쪽으로 말고, 조금 힘겹더라도 분명하게 현실을 얘기하면 참 좋겠다는 지점이 있었어요. 작품을 설명하는 키워드에 ‘2022년 여름’이라고 적혀 있듯이, 시의성이 있는 동화임은 분명하니까요. 특히 이런 재해가 누군가에게는 그저 지나가는 일인 반면, 누군가에게는 목숨이 걸린 문제라는 점을 생각하면요. 저는 도입부가 매력적이었고, 말하기 쉽지 않은, 여러 불편한 현실을 동화를 통해 드러내고자 한 작가의 마음에 눈길이 갔어요.

김유진 : 바로 직전의 사건이라 애도의 의도가 강하게 들어간 것 같아요. 어제 발생한 대형 참사를 떠올려보면 이 엄청난 비극을 어린이들에게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막막해요. 리얼리즘으로 재현하는 건 너무나 험난한 길일 것 같아 보이구요. 그리고 낭만화가 주는 위안도 분명 있잖아요. 소위 동화의 낭만성이란 게 요즘 들어서는 거의 삭제되고 소거되어버렸는데 그걸 좀더 발전적으로 가져올 만한 지점도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송미경 : 모든 작품에 또 명암이 있으니까 이 작품에서 쉽게 말할 수 없는 것을 불확실한 상태지만 언급하려고 한 애착이 느껴졌어요. 그런 한편 목숨이 달려 있는 부분은 더 많은 고민이 있었어야 되지 않을까. 작가의 본의는 충분히 저도 느꼈거든요. 근데 작품은 작품만으로 또 느끼고 해석되어져야 하죠. 또 아까 언뜻 언급하셨지만 어제 우리가 이태원 참사를 갑자기 겪었잖아요. 만약에 아이들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되나 했을 때 말문이 막히죠. 그런데 앞의 두 작품에서 노 키즈 존이나 장애인 아이의 이동권은 이야기성 안에서 주제가 살아 있고, 적절한 형식과 잘 어우러진 부분이 있다면 이 작품은 시의적으로 마음을 쏟다보니까 그 부분이 좀 날것으로 드러난 것 같아요. 이런 결말이 왔을 때 작가가 가진 애착은 알겠지만 이게 살아서 치유의 힘까지 가기 위해서는 후반부의 내용에 등장인물들에나 이런 고민들이 있으면 더 좋았을 것 같아요. 이런 이야기를 시도를 해준 것엔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김유진 : 세아가 죽는 장면, “하늘의 여신은 아기처럼 소중하게 세아를 앞주머니에 넣었습니다./ 그리고 먼먼 하늘을 날아 햇살 나라에 갔습니다.” 이 문장을 보면서 『오세암』(정채봉)의 결말인 길손이의 죽음이 떠올랐어요. 근데 오세암은 길손이의 죽음 이후에도 빨갛게 언 맨발을 보여주고, 그 다음 관음보살이 나타나서 길손이를 안아주고, 그제서야 다른 세계로 가는 과정이 나와요. 길손이의 장례식과 안타까워하는 누나 등 여러 단계가 길손이의 죽음을 의미화하는데, 이 작품은 단편이라는 분량 제한도 있었을 테지만 그런 단계가 없는 걸로 비교해 볼 수 있어요.

송미경 : 엄마와 세아가 “무섭지 않았어?” “엄마, 나 무서워!” 이런 것들이 드러났다가 바로 “햇살 나라의 공주”로 가는 온도 차, 격차를 매끄럽게 연결하는 고리가 좀 약했죠.

김준현 : 「우리 빌라, 오 키 즈존」에서는 한 걸음 한 걸음 움직임이 과하지 않으면서도 진짜 현실을 아이가 움직이고 행동하고 말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면 「햇살 나라」에선 저기 멀리서 그냥 보고 있는, 납작한 1차원적인 그 아이의 움직임이라는 생각도 들었어요. 원근의 문제겠지요? 물론 이 정도 거리에서, 현실을 바라보는 동화도 있는 거고, 이쪽을 더 수월하게 읽는 독자도 분명 있겠지요.


3

김유진 : 작품은 이 정도로 살펴보았구요. 앞으로의 《비유》에 바라는 점을 여쭤보고 싶습니다.

송미경 : 등단과 비등단을 구별하지 않고 문을 열어둔 그것이 《비유》의 가장 매력이라고 생각을 하고 모든 것이 바뀌더라도 그거는 계속 있었으면 좋겠어요. 왜냐하면 저도 등단을 했고 상을 받고 시작을 했지만 사실은 등단제도에 반대하는 입장이거든요. 얘기를 하자면 너무 길고 복잡한 얘기인데 진심을 얘기하자면 그래요.

김유진 : 어린이문학 장에서는 등단제도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나 변화가 일어나지 못했고, 여전히 제도로서 남아 있네요.

송미경 : 저는 《비유》가 이 부분에선 가장 큰 상징성인 것 같아요. 그리고 이상하게 《비유》 생각하면 되게 젊은 느낌이라서 여기 실린다는 건 ‘힙하게’ 느껴져요. 그 분위기가 유지되는 게 좋고요. 《비유》는 진짜 문학을 해보고 싶고 어떤 힘이나 권력에 구애받지 않고 문학에 대한 소통을 자유롭게 하고 싶은 이들이 모여서 만든 거라는 인상이 저에게 있어요. 근데 아이러니하게도 《비유》 발행처가 서울문화재단이라는 것을 지금 인지했네요.

김유진 : 1기, 2기 편집위원과 편집자, 재단 직원분들 모두가 애쓰신 결과죠.

송미경 : 계속 그렇게 해주시면 좋겠어요. 한편 문학잡지로서 《비유》는 이런 데 관심이 좀 있는 사람들이 아닌 대중에게까지 연결되기가 어렵다는 약점이 있긴 하죠.

김준현 : 송미경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부분에 저 역시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맨 마지막에 하신 말씀이, 결국 ‘이 모든 작업의 유의미가 잘 전달될 것인가, 일반 대중에게로 폭넓게 열려 있는가’인데요. 우리가 오늘 다룬 게 결국 어린이문학이니까, 어쩔 수 없이 어린이 독자를 생각해보게 됩니다. 웹진의 작품들이 과연 어린이 독자와 만나는 자리가 될 수 있을까 하고요.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수요를 알 수 없고 작품마다 조회 수가 있는 것도 아니니, 잘 읽히고 있는 건가 궁금해요. 그리하여 어린이 독자가 직접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지점도 살짝 있으면 좋겠다, 욕심을 더 내면 어린이가 좀더 읽을 수 있기 편한 플랫폼이면 좋겠다, 그 실재하는 어린이 독자의 목소리가 공존하면 좋겠다, 정도를 생각합니다. 한 문예지에 이 많은 걸 요청드리는 건 좀 욕심이죠. 여기 실린 어린이문학 작품의 독자층 대부분이 어른일 것 같기는 합니다.

김유진 : 《비유》의 독자 중 어린이 독자가 있을 수 있고, 그래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러기 위해서는 더 애써야 할 것 같습니다. 오늘 긴 시간 동안 말씀 감사합니다.

*본 좌담은 2022년 10월 31일 월요일 오후 2시 연희문학창작촌(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소재)에서 진행했습니다.

김유진, 김준현, 송미경

김유진: 공공기관에서 발행하는 웹진이 어린이를 포함한 시민 독자와 나눌 수 있는 문학이 무엇인지 고민하며 《비유》를 만들어왔습니다. 어린이에게 배우고 깨달은 일들을 동시와 평론이라는 양식으로 남기려고 합니다.
김준현: 이 현실에서도 어린이문학을 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어린이 옆에 오래 머무를 수 있는 동시와 동화가 많아지면 좋겠습니다.
송미경: 계속 제 자신을 의심하고 실험하면서 이 길을 가고 싶어요. 어제 알고 있던 답에 끌려가지 않고 새로운 답을 찾아가면서요.

2022/12/27
61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