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내 손을 둥글게 만다
  엄지를 검지에 붙여서
  손안에 구멍을 만든다

  너는 구멍으로 모래를 흘려보낸다
  나는 모래가 지나가는 구멍이 된다

  입자가 곡선을 스칠 때
  얼핏 장면이 휜다
  모양이 아니라 재료가

  손에 모래를 쥐려고 하면
  그러면 안 된다고 한다
  흘려보내야 한다고
  가두면 안 된다고
  목적 같은 건 없고
  여긴 놀이터라고

  스스스
  스스스

  햇빛에 타는 피부의 냄새
  방금 전까지 나였던 것의 냄새
  너와 내가 수없이 자리를 바꾼다
  영혼 따위는 없지만
  나를 여기에 붙들어 매는 무언가가
  아주 진한 물결이 있다

  이 모든 게 놀이라면
  가슴에 난 구멍으로 계속
  모래를 흘려보내는 놀이

  밤의 놀이터에는
  짐승의 눈이 빛날까
  새들이 와서 눈 감을까

박술

2012년 《시와반시》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오토파일럿』이 있다. 김혜순의 『죽음의 자서전』을 독일어로 번역했다. 독일 힐데스하임 대학에서 철학을 가르치고 있다.

밤에 놀이터에 가보면 아이들은 없고 놀이만 있다.

2025/11/19
76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