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모래 상자
네가 내 손을 둥글게 만다
엄지를 검지에 붙여서
손안에 구멍을 만든다
너는 구멍으로 모래를 흘려보낸다
나는 모래가 지나가는 구멍이 된다
입자가 곡선을 스칠 때
얼핏 장면이 휜다
모양이 아니라 재료가
손에 모래를 쥐려고 하면
그러면 안 된다고 한다
흘려보내야 한다고
가두면 안 된다고
목적 같은 건 없고
여긴 놀이터라고
스스스
스스스
햇빛에 타는 피부의 냄새
방금 전까지 나였던 것의 냄새
너와 내가 수없이 자리를 바꾼다
영혼 따위는 없지만
나를 여기에 붙들어 매는 무언가가
아주 진한 물결이 있다
이 모든 게 놀이라면
가슴에 난 구멍으로 계속
모래를 흘려보내는 놀이
밤의 놀이터에는
짐승의 눈이 빛날까
새들이 와서 눈 감을까
엄지를 검지에 붙여서
손안에 구멍을 만든다
너는 구멍으로 모래를 흘려보낸다
나는 모래가 지나가는 구멍이 된다
입자가 곡선을 스칠 때
얼핏 장면이 휜다
모양이 아니라 재료가
손에 모래를 쥐려고 하면
그러면 안 된다고 한다
흘려보내야 한다고
가두면 안 된다고
목적 같은 건 없고
여긴 놀이터라고
스스스
스스스
햇빛에 타는 피부의 냄새
방금 전까지 나였던 것의 냄새
너와 내가 수없이 자리를 바꾼다
영혼 따위는 없지만
나를 여기에 붙들어 매는 무언가가
아주 진한 물결이 있다
이 모든 게 놀이라면
가슴에 난 구멍으로 계속
모래를 흘려보내는 놀이
밤의 놀이터에는
짐승의 눈이 빛날까
새들이 와서 눈 감을까
박술
2012년 《시와반시》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오토파일럿』이 있다. 김혜순의 『죽음의 자서전』을 독일어로 번역했다. 독일 힐데스하임 대학에서 철학을 가르치고 있다.
밤에 놀이터에 가보면 아이들은 없고 놀이만 있다.
2025/11/19
76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