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던 미용실을 갈 수 없게 된 뒤로 머리를 기르기 시작했다. 긴 머리를 추구한 것이 아니라 머리가 알아서 자랐다. 허리까지 닿는 데 반년이 채 걸리지 않았다. 먹은 게 전부 머리로 가는 게 아닐까 싶을 만큼 빠른 속도였다. 그럴수록 환이 원장님이 자꾸만 보고 싶었다.
  처음 만났을 때 환이 원장님은 청담에 있었다. 그때는 원장이 아니라 실장이었다. 커트 3만원, 파마 7만원. 내가 감당하기에는 쉽지 않은 가격이었다. 그래도 한 달에 한 번 예약하고 환이 원장님을 찾아갔다. 원장님에게서 나는 향기가 좋았다. 밀짚으로 엮은 듯한 케이스의 향수를 무심하게 칙칙 뿌리는 걸 봤다. 찾아보니 ‘존 바바토스’라는 브랜드였다. 나도 사서 뿌려봤지만 그런 향이 나지 않았다. 미용실의 갖은 냄새가 섞이지 않아서인 것 같았다. 파마약과 중화제, 염색약을 비롯해 내가 알지 못하는 화학 성분이 미용실의 공기를 채우고 있었다. 환이 원장님이 향수를 열심히 뿌린 이유는 담배를 피우기 때문이었다. 나는 담배를 피우지 않지만 담배 피우는 사람 옆에서 풍선껌 부는 걸 좋아했다. 하지만 원장님을 따라나선 적은 없다. 온전한 휴식을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
  원장님은 청담에서 신사로, 신사에서 압구정으로, 압구정에서 상수로, 상수에서 다시 청담으로 자리를 옮겼다. 언젠가는 실장이 아니라 부원장이 됐는데 다음 숍에서는 예전처럼 실장이 되기도 했다. 그러다 결국에는 원장이 됐고, 나는 기쁜 마음을 담아 원장이 된 것에 축하를 건넸다. 환이 원장님은 감사의 답례 인사를 하면서도 시큰둥한 표정이었다. 당황한 내 얼굴을 읽은 원장님이 몇 마디를 덧붙였다. 진짜 원장이 아니라 직함일 뿐이라고. 대표 원장은 따로 있어서 큰 의미를 두고 있지는 않다고.
  언젠가 자신의 숍을 열고 진짜 원장이 될 거라고.
  그 말을 할 때 환이 원장님 뒤로 밝은 빛의 구름이 나타났다 사라지는 걸 보았다. 원장님을 따라다니며 칠 년의 세월을 보냈지만, 나는 그동안 풍선껌이나 불고 있었다. 누군가 저렇게 먼 곳을 보고 있을 때 나는 그 사람의 뒷모습만 쳐다본 거다. 가슴속에서 뭔가가 끓어오르며 벅찬 깨달음이 나를 덮쳤다. 아아, 역시 우리 원장님이 최고구나! 미용실을 옮기려야 옮길 수가 없었다.

나는 정말로 풍선껌을 불었다. 그게 내가 가장 잘하는 일이고 다른 일은 하지 않았다. 학교 졸업하고 이 년은 취직하려고 애썼다. 남들처럼 원서를 내고, 남들 따라서 면접을 다니고, 남들처럼 낙방의 쓴잔을 마시기도 했다. 그러다보면 남들이 그렇듯 어렵사리 어딘가에 합격할 줄 알았다. 애초에 목표한 곳은 아니지만 막상 들어가고 나니 정이 들어 회사 자랑을 하고 다니는 신입사원이 될 줄 알았다. 남들이 다 그러길래 나도 그럴 수 있을 것 같았다. 안 되더라. 고되고 외로웠던 시기를 애틋하게 그리워할 기회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첫 면접을 위해 찾아간 미용실에 환이 원장님이 있었다. 면접을 앞둔 떨림과 기대를 처음 보는 원장님 앞에서 쏟아내듯 고백했다. 바보처럼 번번이 낙방할 줄도 모르고 매번 그랬다. 원장님은 진심 어린 응원을 보내줬다. 원장님께 받은 응원이 오갈 데 없어진 이후로 풍선이 더 크게 불어지는 것만 같았다. 원장님이 숍을 옮길 때마다 그를 만나기 위한 비용은 조금씩 올라갔다. 파마가 11만원이 됐다는 이야기를 전하며 원장님은 멋쩍어했다.
  “직장인분들이 이직하면서 연봉 올리는 거랑 비슷해요. 저보다 더 잘 아시겠지만.”
  나는 그저 밝게 웃었다. 더할 나위 없이 동의하는 표정을 지었다. 환이 원장님은 내가 취업하지 못한 상태인 걸 알지 못했다. 알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진작에 취업한 것처럼 행동했다. 예약은 무조건 주말에 잡았고 존재하지 않는 상상의 상사를 만들어 원장님과 함께 욕했다. 원장님이 마침내 자신의 숍을 열고 진짜 원장이 됐을 무렵, 내 상상적 허구의 직급은 대리였다. 두 번이나 진급에 실패하고, 믿었던 이사가 헤드헌터의 꼬임에 넘어가 다른 데로 팔려간, 끈 떨어진 신세의 만년 대리였다. 이직을 고려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첫 직장에 대한 바보 같은 순정으로 갈팡질팡하는 사람이 바로 나였다.
  연기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드라마를 열심히 보면 회사생활에 대해 남들만큼 알 수 있었다. 어색하거나 어설픈 구석이 있을 수 있지만 상관없었다. 원장님이 아는 회사도 드라마 속에 있는 듯했다. 회사원에 대한 일반적인 설정에 따르면 (내가 다니는 것으로 돼 있는 수준의) 중견기업은 연차가 쌓일수록 월급이 늘어난다. 덕분에 파마 가격이 14만원으로 인상됐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도 나는 침착한 태도를 유지할 수 있었다. 날씨 이야기를 하고 건강 이야기를 했다. 그러다 14만원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14만원은 누구에게라도 제법 큰돈이었다. 파마를 한 번 할 때마다 14만원을 받는 원장님에게도 말이다.
  “14만원이면요, 저 같은 경우는 5성급 호텔 뷔페에 갈 거예요. 가서 킹크랩 집게를 엄청 먹을 거예요. 너무 짜서 나중에는 입에서 소금이 막 나올 거예요. 그래도 계속 먹는 거죠.”
  나는 원장님의 꿈이 제법 소박하다고 생각했다. 겨우 호텔 뷔페라니. 원장님에게 어울리는 식사는 한미정상회담의 국빈 만찬 정도는 되어야 했다.
  “저는 통장에 잘 넣어뒀다가 다음번 머리하러 올 때 쓸래요.”
  내 대답에 원장님은 금방 눈물이라도 쏟아낼 것처럼 과장되게 감동한 표정을 지었다.
  “제가 진짜 손님 덕분에 힘이 나요. 요새 저처럼 일주일에 하루 쉬고 일하는 선생님 거의 없어요. 진짜 잘 나가는 선생님 중에 일주일에 딱 3일 하는 분도 계시거든요? 근데 저는 그거 완전 낭비라고 생각해요. 몸 성할 때 바짝 벌어야죠. 저는요, 진짜 10억만 딱 모으고 전부 때려치울 거예요. 현금으로 10억요. 그다음에 대출 땡겨서 꼬마 빌딩을 하나 사고, 이자는 월세로 메꾸면서 생활비도 좀 하고. 건물값 오르면 팔고 더 큰 건물 사고……”
  “잠깐만요. 때려치운다고요? 미용실을요?”
  깜짝 놀란 나는 정색하며 물었다. 하지만 환이 원장님은 내가 느낀 당혹감을 눈치채지 못한 모양이었다.
  “제가 진짜, 열여덟에 미용 시작해서 손가락 다 곱아가며 겨우 여기까지 왔잖아요. 오죽하면 군대에서도 이발병을 했어요. 가끔은 내가 너무 불쌍해. 나 유럽도 한 번 못 가보고 제주도도 한 번밖에 못 가봤어요. 내 꿈이 뭔지 알아요? 수영장 딸린 호텔에서 한 달 내내 수영만 하는 거예요. 하루 아니고 일주일 아니고 한 달. 한 달 꽉 채워서.”
  “저는요?”
  “글쎄요, 손님은…… 또 손님 나름대로 휴가를……”
  원장님은 그제야 이상한 낌새를 알아차린 듯했다.
  “그게 아니라 머리요. 원장님이 때려치우면 제 머리는 어떻게 해요.”
  “아니 뭐…… 말이 그렇다는 거죠. 저 은퇴하려면 한참 멀었어요. 가게 내느라 빚 엄청 졌어요.”
  원장님은 변명하는 사람처럼 방어적으로 대답했다. 내가, 다른 사람도 아닌 내가 그를 그렇게 만든 거다. 그저 한 달에 한 번 파마나 하러 오는 주제에. 고작 14만원을 주고 그의 소중한 세 시간을 빌리는 거면서. 내가 지상 최악의 인간임을 스스로 증명하고 난 뒤 자괴감에 빠져 있는 동안 원장님은 내 침묵을 가늠하느라 힐끔거리며 눈치를 살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다시는 환이 원장님을 볼 수 없겠구나. 그럴 수밖에 없다는 걸 깨달았다.
  “원장님 저는 사실 풍선껌을 불어요.”
  나는 목소리를 높여 밝게 말했다.
  “와! 저도 어릴 때는 풍선껌 진짜 잘 불었는데. 지금도 잘 불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런 건 몸이 기억하잖아요. 자전거 타기처럼요.”
  원장님은 기뻐하며 대화에 동참했다. 어색했던 분위기가 풀어져 안도하는 것 같았다.
  “저는 거의 프로처럼 불어요. 큰 풍선을 오랫동안 부풀려놓을 수 있어요. 제 얼굴을 완전히 가릴 수도 있구요.”
  “대단하네요. 그럼 무슨 동호회? 같은 걸 하세요? 풍선껌 동호회? 요즘 회사들은 사내 동아리 같은 게 많던데 같이 풍선껌 불어도 좋겠어요.”
  “글쎄요. 저는 잘 몰라요. 회사를 안 다니거든요.”
  “아, 퇴사하셨구나.”
  “아니요. 저는 회사를 다녀본 적이 없어요. 한 번도요.”
  “대리…… 아니에요?”
  “아니에요. 저는 풍선껌을 불어요. 그게 전부에요. 앞으로는 미용실에 올 수 없을 것 같아요. 회사에 다니지 않아서 월급이 없고 돈이 없어서 14만원 주고 파마할 수 없어요. 나쁜 뜻으로 속인 건 아니에요. 미안합니다.”
  거울 속 나를 보는 환이 원장님의 눈동자가 방황하듯 흔들리는 게 느껴졌다. 그의 곤란이 느껴져 내 마음도 괴로웠다. 조금만 참아줘요. 조금만 나를 견디면 끝나요. 환이 원장님이 입술을 떨며 말했다.
  “깎아드릴게요. 머리 말고 돈을요. 오래 저를 찾아주셨잖아요. 처음 봤을 때처럼 7만원만 내세요.”
  “그러고 싶지 않아요. 원장님은 14만원만큼의 파마를 해내는 사람이에요. 저는 그걸 반값에 받을 자격이 없어요.”
  그때부터 파마약 바르고 중화할 때까지 뭐가 어떻게 됐는지 기억이 하나도 나지 않는다. 내 눈에서 눈물이 줄줄 흘러서 보조 스태프가 크리넥스를 갖다줬는데 거의 반 통은 쓴 것 같다. 원장님도 울었다. 모든 것이 예전처럼 돌아갈 수 없고 많은 것이 한꺼번에 바뀌었다는 걸 그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한 손에 빗, 한 손에 가위를 들고 있어서 어깨로 자기 눈물을 훔쳐내느라 옷이 투명하게 비칠 정도로 젖었다.
  원장님은 계산하고 가게를 나서는 나를 입구까지 따라왔다. 그가 허리를 깊이 숙여 인사했다.
  “감사합니다.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나는 돌아서서 원장님께 깊이 숙이며 맞절했다.
  “그동안……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가을이었다. 여름이었을 수도 있다. 봄이나 겨울이었다면 내가 분명히 기억할 텐데.

환이 원장님에게 안녕을 고한 뒤로도 나의 일상은 바뀐 게 없었다. 매일 공원에 나가 풍선껌을 씹었다. 벤치에 앉아 등을 기대고 하늘을 향해 한숨을 내뱉었다. 아무리 크게 풍선을 불어도 내 몸은 떠오르지 않았다. 당연했다. 입에서 나오는 건 헬륨이 아니라 이산화탄소였으니까.
  언젠가부터 내가 앉은 벤치 근처에 바이올린 켜는 여자가 나타났다. 그는 제법 전문가 같은 솜씨로 영화 〈기쿠지로의 여름〉 OST인 〈Summer〉를 연주했다. 피치카토 주법을 쓰는 원곡을 바꿔 활로 문질러 연주했다. 다른 것은 하지 않았다. 오직 〈Summer〉 한 곡만 한 시간에 한 번씩 총 세 번을 연주하고 자리를 떴다. 모자를 뒤집어놓거나 바이올린 케이스를 열어놓지 않았다. 사람이 모여들어 감상할 때도 있고 오직 내가 유일한 관객일 때도 있었다. 그러거나 저러거나 아랑곳하지 않고, 여자는 〈Summer〉 한 곡만 매시 정각에 연주했다. 풍선껌을 불다가 팡, 하고 터져버리면 연주에 방해가 될까봐 숨쉬듯 천천히 풍선을 불었다. 그렇게 몇 주가 지나고 우리는 연주를 시작하기 전 간단하게 눈인사하는 사이가 됐다. 어쩌다 비 오는 날이나 몸살 기운이 있으면 공원에 가지 못하기도 했다. 내가 없어도 여자는 〈Summer〉를 연주했을 것이다.
  여느 날처럼 공원에서 풍선껌을 불고 있는데, 여자가 와서 눈인사를 했다. 웬일인지 바이올린 켤 낌새를 보이지 않았다. 여자는 벤치에 앉아 등을 완전히 기대고 하늘을 향해 눈만 껌뻑거렸다. 나랑 무슨 약속을 한 것도 아닌데 배신감이 들었다. 그러다 무슨 안 좋은 일이라도 생긴 게 아닐까 생각이 들자 좌불안석이 됐다. 팡. 팡. 팡. 팡. 평소 같지 않게 경박한 리듬으로 풍선껌을 터뜨렸다. 여자가 내 쪽을 힐끔 보며 말했다.
  “오늘은 연주 안 해요.”
  “왜요?”
  “활털이 끊어졌어요.”
  “갈면 되잖아요.”
  “뭐 하러요.”
  “썸머를 연주해야죠.”
  “왜요?”
  “내가 듣고 싶어요.”
  여자는 나의 대답이 의외라고 했다. 자신의 연주를 진지하게 듣고 있는 줄 몰랐다는 거였다. 나는 내친김에 그의 연주에 대해서 제법 자세한 피드백을 줬다. 바이올린 혼자 연주하는 탓에 사운드가 좀 빈다는 걸 강조했다. 그렇다고 MR 같은 걸 틀어놓으면 진정성이 확 떨어지고, 멜로디언 주자라도 찾아 협주하면 독고다이만의 뚜렷한 개성이 옅어져 이도 저도 아닌 모양새가 될 게 뻔했다. ‘독고다이’라는 단어를 정확히 사용했다. 〈기쿠지로의 여름〉이 일본 영화기 때문에 그게 더 어울렸다. 나는 여자가 그곳에서 오래 더 좋은 연주를 해주기를 바랐다. 공원에서 듣는 바이올린의 선율이 어느덧 내 생활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와 내가 도모다찌라도 된 기분이었다.
  활털이란 걸 새로 가는 데 돈이 얼마나 드는지는 모르겠지만, 필요하다면 내가 대신 지불할 생각도 있다고 제안했다. 실제로 내 통장 잔고는 제법 여유가 있는 상태였다. 매달 가던 미용실을 가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자는 내 쪽을 유심히 보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돈은 필요 없어요. 당신의 머리카락을 주세요. 엄청나게 길고 질겨 보이는 직모네요. 거의 말총인가 싶을 정도로 두꺼운 모질이에요. 이보다 나은 활털을 찾기도 힘들 것 같은데요.”
  엥? 머리카락을? 목적이 있어서 기른 것이 아니므로 내어주는 건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어디 가서 어떻게 자른단 말인가. 나는 환이 원장님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 머리를 맡길 준비가 되지 않았다. 심지어 나 자신에게조차 내 머리를 자르게 하고 싶지 않았다. 어쩌면 이렇게 영영 머리가 멋대로 자라나도록 내버려둘 생각이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Summer〉를 듣고 싶었다. 두 가지 모두 내게 절실했다. 결단을 내려야 했다. 아무래도 과거보다는 미래를 생각하고 싶었다. 그게 현재의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일이었다.
  여자와 함께 공원 근처의 아무 미용실에나 들어가 머리를 싹둑 잘랐다. 머리를 받아든 여자가 한 움큼을 집어 빗으로 곱게 빗고, 가방에 있던 공구로 활털을 갈았다. 전에 쓰던 끊어지고 삭은 활털이 미용실 바닥에 흩어져 있던 머리카락과 나란히 뒹굴었다. 원장님이 냉장고에서 자두를 꺼내왔다. 머리에 비닐을 뒤집어쓴 파마 손님이 여자의 섬세한 손길을 보며 어머나, 어머나어머나, 하며 감탄했다. 여자는 작업을 마무리한 뒤 새로운 활털에 송진을 쓱쓱 발랐다. 바이올린을 조율하고, 소파 위에 설치된 폭이 넓은 거울 앞에서 〈Summer〉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햇볕을 오래 쬐어 색이 바랜 해바라기 그림 아래 미용 의자와 한 세트인 거울 세 개가 나란히 마주보고 놓여 있었다. 연주를 하는 여자와 연주를 듣는 나와 자두를 깎는 원장님과 어머나 하던 손님이 전부였지만, 엄청나게 많은 사람이 그곳에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거울과 거울이 서로를 비추며 거기 있던 사람들을 백 제곱으로 만들어냈다. 모두의 전생을 합친 것만큼 많은 관객이었다. 그곳, 내가 다시 머리를 자르게 된 ‘매리 미용실’에서 〈Summer〉는 다섯 번이나 반복해 연주되었다.

그날 이후로 나의 일과에 약간의 변화가 생겼다. 공원에서 풍선껌을 불다가 3시 반이 되면 어슬렁어슬렁 매리 미용실로 향했다. 머리를 자르든 안 자르든 소파에 걸터앉아 원장님과 수다를 떨었다. 매리 미용실의 원장인 강매리 원장님은 무슨 일이 있어도 오후 4시에 맥심 모카 골드 한 잔을 마시는 사람이었다. 가위를 들고 있다가도 별안간 내려놓고 커피를 탔다. 단골들은 그걸 알고 4시 근처에는 일부러 미용실에 오지 않았다. 아니면 나처럼 커피를 마실 생각으로 4시 조금 전에 왔다.
  매리 미용실은 단층 건물 전부를 사용했다. 열 평 남짓 되는 작은 가게였다. 골목 맞은 편에 숙주나물을 키워 파는 공장이 자리했는데 공장이라 봤자 미용실보다 아주 조금 큰 정도였다. 새벽이면 숙주나물을 실어 가는 냉장 탑차가 미용실과 숙주 공장 사이에 차를 대고, 그때는 좁은 골목 양방향으로 어떠한 차 또는 자전거조차 다닐 수 없었다. 미용실 유리문에 색이 바랜 비자, 마스터 카드 스티커가 붙어 있고, 유니언페이 스티커는 반쯤 뜯겨나가 있었다. 환풍기가 부지런히 돌아가며 파마약 냄새를 골목으로 밀어냈다.
  내가 자꾸 매리 미용실에 간 이유는 바이올린을 연주하던 여자가 더이상 공원에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가 건넨 피드백을 적극적으로 반영하고, 내 머리로 만든 활털을 쓰기 시작한 이후로 그는 점점 유명해졌다. 많은 사람들이 찾는 연주자가 됐고 그를 보기 위해 먼 곳에서 비행기를 타고 오는 사람도 생겼다. 여전히 여자가 연주하는 곡은 〈Summer〉 하나뿐이었지만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기에 충분했다. 공연 전문 기획사가 여자를 위한 전속 매니지먼트를 제공했다. 여자는 기사 딸린 그랜드 카니발을 타고 전국 투어를 시작했다. 나는 기쁘면서도 내심 풍선껌을 불며 그의 연주를 듣던 시절을 그리워했다.
  강매리 원장님은 내가 매일 풍선껌만 불고 있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바이올린 연주를 듣지 못해 속상하면 직접 바이올린을 연주하라는 말도 했다. 그런 생각은 한 번도 해보지 못해서 조금 놀랐다. 공룡을 좋아한다고 공룡이 될 수 있는 건 아니지 않나. 좋아한다고 다 내 것으로 만들려고 하면 좀 추한 사람이 되지 않나. 어차피 세상일 다 내 맘대로 안 되는 것 아닌가. 강매리 원장님은 책망하는 투로 나의 소극적인 자세를 나무랐다.
  “내가 지금 이렇게 미용실 원장 하고 있지만 한때는 대학병원에서 진료 보는 교수였어. 한다고 생각하면 할 수도 있고 못 할 수도 있는데 못 한다고 생각하면 절대 할 수 없잖아.”
  “원장님 의대 나왔어요? 공부 엄청 잘하셨구나.”
  “아니. 의대 안 나왔다. 하지만 나는 항상 의사가 되고 싶었지. 내 소원이었어. 간절히 바라니까 결국엔 이뤄지더라. 너도 네가 원하는 게 뭔지 곰곰이 생각해봐. 한 번으로 끝나는 희망은 없거든. 왔다가 여기 아닌가보다 하고 뒷걸음질 치는 기쁨은 없어. 너한테 온 것은 온전히 너만의 것이야. 그게 바이올린 연주가 될는지 누가 알겠니? 해보지 않고서는 절대 모르는 거야.”
  원장님의 말투는 차분하고 지적이라 묘하게 설득력이 있었다. 대학병원 의사였다는 말은 믿기 힘들었지만, 저런 말투로 병을 진단하고 치료를 지시하면 누구든 믿고 따를 것 같았다. 그래서 집에 돌아가 당근 마켓에 구인 글을 올렸다. ‘바이올린 1대1 지도해주실 분’이라는 제목의 글이었다. 생각해보니 바이올린 켜는 법을 배우려면 바이올린이 있어야 했다. 역시나 당근에서 5만원짜리 중고 바이올린을 구했다. 창고에 오래 있었다는 바이올린은 생각보다 외관이 깨끗했고 활털에서 쉰내가 나는 걸 제외하면 하자는 없었다. 제법 바이올린다운 바이올린이었다.
  구인 글을 보고 몇 개의 메시지가 들어왔다. 가격이 맞으면 일정이 맞지 않았고 일정이 맞으면 가격이 부담스러웠다. 나는 매일 아침 공원에 가서 풍선껌을 불고, 오후 4시에는 매리 미용실에서 커피를 마셔야 하고, 공원에 돌아가 해가 질 때까지 풍선껌을 마저 불고 나면 8시는 돼야 집에 돌아왔다. 환이 원장님에게 가지 않아 쌓여 있는 돈이 있었지만(매리 미용실은 커트 2만원, 파마 5만원이었다), 파마보다 큰돈을 지불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게 고민하고 있던 차에 뜻밖의 메시지가 왔다. 처음에는 뭔 소리인가 싶었지만, 생각할수록 무심히 넘길 수가 없었다.

사실 저는 바이올린에 대해 전혀
모릅니다.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습니다. 하지만 인생에서 정말로
중요한 건 뭘까요? 오늘 아침에
눈을 떴을 때 태어나길 잘했다고
생각했습니까? 내일 하루를 생각하면
기대감에 마음이 부풀어오릅니까?
그렇지 못하다면 당신은 잘못 살고
있습니다. 인생에는 바이올린 연주보다
더 중요한 것들이 있습니다. 저를 만나
한 차원 높은 삶으로 도약할 수 있는
지혜를 가져가세요. 단 한 번
한 시간의 만남이 인생을 바꿉니다.
12만원에 모십니다.


이 사람을 만나지 않고는 배길 수 없었다. 곧장 답장을 보내 약속을 잡았다. ‘장미 다방’으로 향했다. 공원 옆 사거리 모퉁이에 있는 것으로 나오는데, 그런 장소가 있는 줄도 몰랐다. 다방 하면 왠지 쌍화차가 있을 것 같아서 쌍화차를 먹고 싶다고 생각했다. 어느 드라마에 다방에서 파는 십전대보탕을 좋아하는 할아버지가 나왔던 기억이 났다. 아주 오래전에 본 드라마라 자세한 건 기억나지 않지만, 그 할아버지는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 때문에 대추차나 생강차가 아닌 십전대보탕을 시켰던 거였다. 혹시 장미 다방의 메뉴판에 십전대보탕이 있더라도 모른 척할 생각이었다.
  지하에 있는 다방으로 내려가니 간신히 버티고 있다는 인상의 형광등이 희미하게 실내를 비추고 있었다. 의자 대신 놓여 있는 소파도, 모자이크 무늬가 들어간 테이블도 아주 오래돼 보였지만 매일 쓸고 닦는 듯해서 구질구질한 느낌은 아니었다. 나와 만나기로 한 사람은 회색 중절모로 자신을 알아볼 수 있을 거라고 했다. 다방의 유일한 손님은 숱이 빽빽한 흰머리의 늙은이 하나뿐이었다. 그 늙은이가 나를 보고 헛기침을 길게 하더니 중절모를 머리에 얹었다. 맞은 편 자리에 앉자 테이블 위에 명함을 내려놓고 내 쪽으로 밀었다. ‘청춘 컨설턴트’라는 직함이 적혀 있었다. 아는 청춘이 있더라도 너무 옛날 청춘이라 내게는 별 도움이 안 될 것 같은데. 나를 빤히 바라보며 입을 다물고 있길래 먼저 말을 꺼냈다.
  “바이올린을 배우는 것보다 중요한 게 뭔데요?”
  “그렇게 살지 않는 거지.”
  “그렇게가 어떻게 인데요.”
  “너처럼.”
  “저를 아세요?”
  “너 같은 사람들을 잘 안다.”
  “제가 뭘 어쨌는데요.”
  “그러는 거 아니다.”
  어처구니가 없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노인네가, 아무것도 모르는 주제에…… 나에 대해 모든 걸 알고 있다니.
  늙은이는 그때부터 일장 연설을 늘어놓았다. 바르게 살아야 하는 이유, 역지사지하며 배려하는 법, 내가 먼저 솔선수범할수록 발전해가는 우리 사회 등등. 철 지난 쌍팔년도 건전가요의 한 대목 같으면서도 꽤나 울림이 있었다. 좋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정말 나쁜 사람이 되고 만다는 대목에서는 나도 모르게 무릎을 쳤다. 당신은 좋은 연설가라고 그에게 칭찬을 건넸다. 늙은이는 당연한 일이라 대꾸할 말이 없다는 듯 입을 삐죽 내밀었다. 그러더니 타인을 함부로 평가할수록 자신도 남에게 함부로 평가받을 거라며 입조심하라고 했다. 평가받을수록 없던 결점도 생겨나고 미움받는 사람이 되는 건 한순간이라고 했다. 나는 그런 것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않는 편이었다. 솔직한 내 생각을 말했다.
  “사람들은 저를 아무 이유 없이 좋아하거나 미워하지 않을 거예요. 저에 대해 모르잖아요.”
  “사람들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구나.”
  청춘 컨설턴트가 자기 생강차를 다 먹고 쌍화차를 시켜달라고 해서 시켜줬다. 약속한 시간이 다 되어서 늙은이가 자기 손목에 얹어놓은 낡은 시계를 자꾸만 쳐다봤다. 사실 나도 대화를 이어나갈 만한 화제가 떨어졌다고 느낀 참이라 그날의 만남을 종료하기로 했다. 현금으로 뽑아온 12만원을 줬다. 그는 자못 진지한 표정으로 만원짜리 열두 장을 세어나갔다. 왼손으로 지폐 끝을 고정하고, 오른손 엄지로 지폐 한장 한장을 소중하게 밀어냈다. 확인이 끝나자 중절모 끝을 살짝 잡아 내게 인사하더니 유유히 장미 다방을 빠져나갔다. 뭔가 속았다는 기분이 들었다. 갑자기 막심한 후회가 밀려들었다.
  바이올린을 배웠어야 하는데.

강매리 원장님은 내가 바이올린을 배우지 않은 것에 적잖이 실망한 눈치였다. 요즘 애들은 원장님 때처럼 전투적으로 인생을 살지 않아서 감안을 좀 해주셔야 한다고 했다. 나의 그런 대답이 또 원장님을 화나게 한 모양이었다. 그제야 늙은 청춘 컨설턴트가 괜한 말을 한 게 아님을 깨달았다. 사람들은 이유 없이 누군가를 좋아하거나 미워하기도 한다. 그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더라도 말이다. 그렇다면 나에 대해 아는 사람은 대체 얼마만큼 나를 미워할 수 있단 말인가. 원장님이 당장에 미용실에서 나를 쫓아낸다 해도 할말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장 여기서 나가라. 다시는 얼씬할 생각도 마.”
  그렇다고 그렇게 금세 진짜 쫓아낼 줄은 몰랐다. 나는 정말 사람들에 대해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원장님의 목소리에 차가운 분노가 담겨 있었다.
  “매리 미용실을 처음 열 때 내겐 꿈이 있었어. 대학병원 의사로는 살 수 없게 됐지만 부끄러운 삶을 살지는 말자고 다짐했지. 의사도 이발사도 흰 가운을 입는 건 마찬가지니까, 미용사로도 누군가를 도우며 살 수 있다고 믿었어.”
  “원장님. 그럼 저를 도와주세요.”
  “너한테 기회를 줬잖아. 바이올린을 배우라고.”
  “배울 거예요. 저한테는 시간이 조금 필요한 것뿐이에요.”
  “이제는 더이상 누군가를 기다리고 싶지 않아.”
  “원장님.”
  “나가.”
  “원장님. 저는 못 나가요.”
  “나가. 안 나가면 내가 나갈 거야.”
  “제발요.”
  “그래. 내가 나간다.”
  원장님은 가위 한 자루 챙기지 않고 매리 미용실을 떠났다. 그리고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그곳에서 아주 오래 기다렸다. 단골손님들이 가게에 들렀다가 원장님이 없어서 그냥 돌아갔고, 나 때문에 원장님이 떠났다며 나에 대해 모르는 사람이 수군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다시 머리가 자라기 시작했고 누구에게도 내 머리를 잘라달라고 부탁하지 않았다. 슬픔이 지나다니는 문처럼 나를 통과해 바람이 세게 불었고 이제까지 하지 않던 많은 생각을 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두 나를 떠나는 이유는 뭔지.
  나를 떠나는 사람들을 자꾸만 사랑하는 이유는 또 뭔지.
  원장님을 다시 만나면 묻고 싶었다. 왔다가 여기 아닌가보다 하고 가는 행복은 없다면서요. 원장님을 대신해 내가 그인 것처럼 대답했다. 기다리라고 해서 그냥 거기 있는 행복도 없는 거야.

그리고 머리는 계속해서 자랐다. 그게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인 것처럼. 어느새 발을 덮을 정도로 자랐다. 자라고 또 자랐다. 내가 미용실에서 한 걸음도 움직이지 않는 동안 내 머리가 먼저 그곳을 벗어났다. 정수리에서 비죽 솟은 머리가 환풍구를 타고 건물 밖으로 비어져나갔다. 담쟁이덩굴과 엉키고 미끄러지듯 땅으로 흘러 숙주나물 싣는 사람을 지나쳤다. 바닥을 기어가는 머리카락이 땅을 가리고 잔디 사이로 뻗었다. 내가 가본 적 있는 모든 곳은 나의 머리로 뒤덮였다. 사람들은 나를 한심해하고 미워하고 힐난하다가 어느덧 내 머리를 밟고 생활하는 게 익숙해져서 나를 욕하는 것에 흥미를 잃었다. 계절이 여러 번 바뀌고 내 머리 위에 낙엽과 눈송이와 꽃가루가 번갈아 쌓여갔다. 사람들은 잔디 위를 걷듯이 내 머리를 밟는 것에 익숙해졌고, 내 머리가 강을 건너는 걸 보고도 더이상 소리 지르지 않았다. 나와 나의 머리는 계속 멀리 넓어졌고 내가 모르는 곳에서 수많은 사람의 발아래를 지나가게 됐다. 시계와 도계를 넘어가던 내 머리는 언젠가 어느 곳에서 환이 원장님을 만난다. 환이 원장님은 여전히 누군가의 머리를 자르고 있다. 전처럼 넓고 깨끗한 미용실은 아니다. 뜯겨나간 페이지가 많은 패션잡지가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고, 그마저도 일 년 전에 발행된 과월호다. 열대처럼 웃자란 식물이 계통 없는 화분에서 산소를 마구 뿜어낸다. 환이 원장님의 미용실에 강매리 원장님이 들어오며 밝게 인사한다. 둘은 서로 알고 지낸 지 오래된 사람처럼 반갑게 인사하고 어색함 없이 입을 맞춘다. 미용실 한구석에 놓인 티브이에 〈Summer〉를 연주하던 여자가 내가 모르는 곡을 연주한다. 강매리 원장님이 내가 저 여자를 안다며 손뼉 치고 좋아한다. 환이 원장님이 손님의 삐죽삐죽한 머리를 다듬으며 곁눈질한다. 그리고 웃는다. 내가 한 번도 본 적 없는 환한 얼굴로 웃고 있다. 내게는 한 번도 보여주지 않은. 티브이 속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하던 여자가 정면을 응시한다. 연주는 중단된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누구의 목소리도 없는 정적. 여자의 손에 들려 있던 바이올린은 어디로 갔지. 천천히 얼굴을 향해 줌인 되는 화면. 그가 독백을 시작한다.
  이렇게 다시 만나도 당신을 사랑할 수 있고.
  아예 모르는 사람처럼 지나칠 수도 있다.
  처음 만난 그때처럼 거짓말할 수도 있고.
  꽃을 건넬 수도 있다.
  어떤 것이든 할 수 있다.
  내가 이곳에서 꼼짝 않고 당신이 떠난 자리를 지키는 동안은.
  아아, 그래서 나는.
  기어코 당신을.
  어쩌자고 이렇게.

김홍

2017년부터 소설을 발표했다.

누구에게나 그런 원장님이 있으니까요.

2025/11/19
76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