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린 꽃이 담긴 망사 주머니가 까딱거린다. 나는 차 뒷좌석에 앉아 룸미러에 매달린 그것을 멍하니 보고 있다. 무슨 꽃을 말려 넣은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차에서 나는 달큼한 냄새의 출처가 그것이라고 짐작할 뿐이다. 멀리서 요란한 사이렌 소리가 달려온다. 명치 쪽으로 서늘한 기운이 떨어진다. 차 안에 붉고 푸른 빛이 어른거리나 싶더니 그것은 이내 우리를 빠르게 지나쳐 간다. 연달아 두 대의 구급차가 지나가는 걸 보고 있을 뿐인데 속이 울렁거리기 시작한다. 입안에 침이 고인다. 사나운 꿈을 꾸다 깬 것처럼 나는 몸을 떤다. 바닥에 쏟아진 토사물과 옷가지들이 어지럽게 널린 거실의 풍경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아직도 코끝에서 탄내가 맴도는 거 같다. 눈을 감고 차창에 머리를 기댄다. 부드러운 엔진 소리가 발바닥을 타고 올라온다. 서늘하고 조용한 진동이 나를 다소 느슨하게 만든다. 나는 긴 숨을 내뱉는다. 방향 지시등이 달각거린다.
   좀만 참아. 거의 다 왔으니까.
   별말이 없던 이모가 그렇게 말한다. 물론 도착하는 곳이 우리집은 아니다. 지금 내가 꿈을 꾸는 것도 아니라는 말이다.

   *

   무서운 속도로 코너를 돌고 있다. 뒤집힐 위험이 있기는 하지만 핸들을 살짝 풀었다 꺾으면 속도를 줄이지 않고도 코너를 돌 수 있을 거 같다. 불쑥 튀어나오는 장애물쯤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수백 번도 더 달려 본 길이다. 길은 끝없이 이어진다. 기묘할 정도로 파란 하늘에는 몇 개의 구름이 엉성하게 매달려 있다. 가짜 같은 가짜다. 그것들을 따돌리는 일은 의외로 쉬워서 장면은 빠르게 바뀐다. 나는 어느새 돋보기를 들고 창가에 앉아 있다. 햇빛을 모아 불을 붙일 심산이다. 라면을 끓이려면 불이 있어야 하니까. 성공해본 기억은 없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지금은 뭐든 가능할 것 같은 기분이다. 흐르는 콧물을 깊이 들이켠다. 목구멍으로 끈적한 것이 꿀떡꿀떡 넘어간다. 식은 죽을 먹는 것처럼. 아니, 죽의 질감은 기억나지 않는다. 어쩌면 한 번도 먹어보지 않은 걸 수도 있다. 먹어보지 못한 것, 해보지 못한 것, 가보지 못한 곳. 나에게는 그런 게 많다. 그런 게 많다는 사실도 스스로 알게 된 건 아니다. 나는 남들의 말을 비교적 열심히 듣는 편이다. 남들이라고 해봤자 엄마나 센터 선생님, 학교 선생님, 의사 선생님 정도가 전부지만 그들을 만나는 것만으로도 일주일이 다 간다. 그나마 요즘은 직접 만나는 대신 통화를 하거나 인터넷을 이용해 면담을 할 수 있어서 한결 여유가 생겼다. 물론 대면이나 비대면이나 상관없이 그들은 말하고 나는 듣기만 한다. 무엇인가 물으면 대개 고개를 끄덕인다. 간혹 나에게 그림을 그리게 하거나 이상한 놀이를 시키는 선생님도 있지만 그 정도는 감수할 수 있다. 중요한 건 누구에게나 인사를 잘하고 대답을 잘하는 것이다. 그것만 잘하면 거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니 햇빛으로 불을 만든다 해도 별일은 없을 거다. 나는 단지 라면을 끓이고 싶은 거니까. 종이에서 가느다란 연기가 피어오른다.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한다. 연기가 굵어진다. 굵어진 연기를 후후 분다. 타들어가는 종이에서 불씨가 어른거리기 시작한다. 그때 엄마가 문을 열고 들어온다. 나는 불씨가 붙은 종이를 뒤로 감추며 다가오는 엄마에게 말한다. 이건 진짜 같은 가짜야. 진짜 가짜라고. 내 말을 들은 척하지 않는 엄마는 내 손을 낚아챈다. 뺏길 수 없다. 처음으로 내가 만들어낸 불이다. 나는 엄마를 있는 힘껏 밀친다. 드러누운 엄마가 종잇장처럼 얇아진다. 나는 가운데에서부터 타들어가기 시작하는 엄마를 보며 서 있다. 이건 가짜야.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 입술을 간신히 떼며 다시 한번 말한다.
   가,짜,라,고.
   무엇인가 따끈한 것이 내 얼굴을 핥는다. 비릿하고 고소한 냄새가 난다. 천천히 눈을 뜬다. 낯선 천장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다. 부스스 일어나 주변을 돌아본다. 책상이 놓인 벽 한 면이 책으로 빼곡한 방이다. 혼자 깨어나는 일은 익숙하지만 낯설기 그지없는 아침이다. 내 얼굴을 핥다가 침대에서 내려간 개가 문을 긁는다. 개의 이름이 뭐였더라. 나는 기억을 더듬는다. 엉뚱한 것들이 떠오른다. 들것을 든 사람들, 검은 유리창 바깥에서 번쩍거리는 불빛. 잠옷 차림으로 현관문을 여는 사람들, 그치지 않고 들리는 울음소리. 나는 생각을 털어내듯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나 어제 입었던 스웨터와 바지를 다시 챙겨 입는다. 스웨터를 목에 끼우는 동안 흐릿한 탄내가 끼친다. 탄. 어디선가 주워 왔다는 개의 이름은 탄이다. 개가 긁는 문을 연다. 등을 돌린 채 서 있는 이모가 보인다. 이모는 누군가와의 통화에 열중해 있다. 자꾸 콧물이 흘러 다시 후루룩 콧물을 들이켠다. 기척을 느낀 이모가 나를 돌아보더니 말한다.
   어머, 얘. 그거.
   뭘 말하는 건지 알 수가 없어 나는 어리둥절한 채로 서 있다.
   코피잖니.
   엉겁결에 손으로 코를 문지른다. 찝찔한 냄새가 목구멍을 넘어온다. 개가 캉캉 짖는다. 이모는 전화기를 든 채로 내게 물티슈를 내민다. 아무렇게나 코를 막고 서 있으려니까 어쩐지 좀 서러운 기분이 된다.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지만 당장 돌아가기는 어렵다는 걸 안다. 그 정도는 아는 나이다. 통화를 마친 이모가 머리를 아무렇게나 쓸어넘기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린다.
   정말 평생에 웬수다, 웬수.
   이모의 평생 원수가 누구인지 알 수 없지만 어쩐지 기운이 빠진다. 혹시 내가 뭘 잘못한 걸까. 코피를 일부러 낸 건 아닌데. 나는 이모의 눈치를 살피며 화장실 문을 연다. 저절로 입이 벌어진다. 레버가 없는, 처음 보는 모델의 변기 때문이다. 일체형 변기를 처음 본 건 아니다. 그러나 감탄이 나올 만큼 부드러운 곡선의 변좌도 그렇고 체온을 감지해 자동으로 물이 내려가는 기능의 모델은 처음 접한 것이다. 신기하기 그지없다. 변좌에 손을 대었다 떼면서 몇 번이나 물을 내려본다. 그때마다 변기의 물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시계 방향으로 빨려들어간다. 시계 방향으로 물이 돌다니. 가슴이 뛴다. 나는 홀린 것처럼 다시 물을 내린다. 빙글빙글 도는 물줄기를 보고 있으면 답답한 마음이 조금은 가라앉아서 멈출 수가 없다. 어느 장소를 가든 화장실의 변기를 확인하는 버릇이 언제 생겼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소용돌이치는 물줄기를 들여다보고 있는 동안은 거기가 어디든 마음이 편해진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잠시나마 지난 밤이 아득해진다. 사나운 소리를 내며 변기의 물이 차오른다.
   이제 좀 살겠네.
   캔맥주를 딸 때마다 그렇게 말하던 엄마가 그랬던 것처럼 나는 중얼거린다.

   *

   도시의 가장 끄트머리에 살던 엄마와 내가 이모가 사는 동네로 이사를 온 건 3년 전쯤이었다. 살던 곳을 떠나는 아쉬움이나 미련보다는 가까운 친척이 생긴다는 설렘이 더 컸다. 엄마도 다소 신이 난 기색이었다. 우리가 살게 될 집은 막다른 골목 끝에 위치한 빌라의 꼭대기 층이었다. 지붕의 경사면을 따라 거실과 방의 벽 한 면이 비스듬히 기울어서 가구 놓기가 마땅찮다고 투덜대면서도 엄마는 표정이 밝았다. 이제 다 잘 될 거라고 했다. 뭐가 잘 될 건지 알 수 없지만 모처럼 활기찬 엄마가 보기 좋았다. 나도 덩달아 신이 났다. 이젠 빈집에서 혼자 엄마를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 이모네 집은 걸어서 15분 거리의 아파트 단지 내에 있었다. 우리도 곧 그런 곳에서 살 수 있을 거라고 했다. 3년만 딱 기다려. 일을 마치고 돌아온 엄마는 가끔 막걸리를 들이켜며 그런 말을 하고는 했다. 그러나 그 3년은 해가 바뀌어도 줄어들지 않았다. 우리는 여전히 한 면의 벽이 비스듬히 기운 집에 살고 있다. 잠에서 덜 깬 채 일어나다 종종 머리를 부딪치는. 어쩌면 엄마는 너무 자주 부딪쳐서 머리가 이상해진 걸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런 일을 벌일 리 없다.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긴 한숨을 내쉰다. 두고 온 게임기 생각이 간절하다. 이모네는 게임기가 없어서 한쪽 콧구멍을 틀어막은 나는 하얀 소파에 다리를 다소곳이 모으고 텔레비전를 본다. 온통 하얀색 일색인 집이라 뭘 해도 편하지가 않다. 노란 재킷을 입은 여자가 노란 재킷을 팔고 있다. 엄마는 한 번도 그런 옷을 걸친 적이 없다. 청바지에 검정이나 회색 티. 엄마가 옷걸이에 쌓아놓은 옷들은 그런 게 전부다. 이제 가볍고 화사해질 계절이에요. 텔레비전 속의 여자는 말한다. 화사하다는 말의 뜻을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화면 속 여자의 표정을 보니 대략의 의미는 알 것 같다. 그건 엄마에게는 없는 것이다. 엄마가 5만 9천 9백원짜리 노란 재킷으로 화사해질 수 없을 거라는 사실도 안다. 노란 재킷을 입은 엄마는 도무지 상상할 수가 없다. 지금 엄마의 상황도 상상하기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이모에게 상황을 묻고 싶은 마음과 모른 척하고 싶은 마음이 번갈아 가며 나를 괴롭힌다. 불안해진 나는 다리를 떨기 시작한다. 엄마가 영영 깨어나지 않으면 어쩌나. 그러면, 나는 어떻게 사나.
   동구야.
   네.
   이모 보여?
   당연한 걸 묻는 이모를 외면하면서 나는 고개를 끄덕인다. 이모는 내가 잘 안 보인다고 한다. 그 또한 이유를 알 수 없어 나는 할 말이 없다. 이모가 내 앞머리를 쓸어넘긴다. 이렇게 잘생긴 이마를 왜 감추냐는 거다. 나는 황급히 고개를 털어 이마를 덮는다. 모처럼 마음에 드는 머리 스타일이었다. 머리카락이 눈을 자주 찌르기는 하지만 사람들을 대하기에는 이쪽이 한결 편하다. 나는 사람들과 눈 마주치는 걸 꺼리는 편이다. 뭔가 할 말이 남은 듯 나를 빤히 바라보는 이모의 눈길을 피해 나는 망설이던 질문을 빠르게 내뱉는다.
   엄마는요? 언제쯤 집에 갈 수 있어요?
   엄마는 자고 있대. 며칠 더 있어야 할 거 같아.
   소매의 보풀을 뜯으며 이모는 지나가는 말처럼 그렇게 말한다. 어쩐지 맥이 빠진다.

   *

   내가 잘못 생각했어.
   뭘.
   의지라도 하라고 이리 오라고 한 건데 더 나빠지기만 하잖아.
   어쩐다니.
   집도 엉망이더라고. 옷가지들은 죄 바닥에 널려 있고 술병은 쌓여 있고.
   아이고 미친년, 아직도 그 버릇 못 고쳤다니? 사람 안 될 거 차라리……
   아우 엄마, 욕 좀 하지 마요. 엄마에게도 책임이 있어.
   아니, 내가 뭘.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냐.
   됐어요. ……그만두자.
   할머니는 긴 한숨을 쉬고 이모는 그런 할머니를 외면한다. 할머니는 자신이 뭘 잘못했냐는 말을 자주 하는 편이다. 그 말을 들은 이모나 엄마는 대개 입을 닫았다. 엄마의 입버릇은 다 자기 잘못이라고 말하는 건데 어쩌면 그건 할머니의 영향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잘못한 게 없는 할머니와 모두 자기 잘못인 엄마는 별로 친하지 않다. 가까이 살면서 알게 된 사실이다. 할머니는 무슨 일이 생기면 이모부터 찾았다. 그건 오늘도 마찬가지다. 그래서인지 나도 할머니와의 거리도 좀처럼 좁혀지지 않는다. 클수록 제 아비를 빼다 박는다는 말도 듣기 싫다. 누구도 꺼내지 않는 말을 할머니는 잘도 한다. 대개 아빠와 관련된 말들이다. 그때마다 귀를 막고 싶다. 나는 티비의 볼륨을 높인다. 지금 할 수 있는 건 그거밖에 없다. 이번 주 수업은 온라인으로 대체됐고 확진자가 나오는 바람에 당분간 돌봄센터도 문을 닫는다. 평소 같으면 마음껏 게임을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을 텐데. 그런 생각을 하면 당장이라도 집에 가고 싶다. 혼자 끼니를 해결하고 잠드는 것에는 익숙하니까. 그러나 한편으로는 두렵다. 지난밤의 흔적이 그대로 남았을 집에서 내가 과연 뭘 할 수 있을까. 어디선가 타는 냄새가 난다. 자리에서 일어나 황급히 주변을 둘러본다. 그런 나를 이모와 할머니가 보고 있다.
   타는 냄새가 나요.
   이모와 할머니가 잠시 코를 킁킁댄다.
   안 나는데?
   나요.
   어제 놀래서 그런 거야. 괜찮아.
   그들은 식탁 의자에 앉은 채로 나를 향해 그렇게 말한다. 이모와 할머니가 사는 동네로 이사를 오고 나서도 잘되는 건 없었다. 할머니는 엄마를 보면 잔소리를 끝없이 늘어놓았고 이모도 생각했던 것만큼 살가워지지 않았다. 수시로 그들에게 전화를 걸어 일과를 늘어놓던 엄마도 나와 비슷한 생각이었는지 어느 순간부터인가 그들과의 통화가 뜸해졌다. 술 마시는 횟수가 는 즈음이었던 것 같다.
   나는 모르겠다. 죽든지 말든지. 평생 지 멋대로 살았으니 이번에도 알아서 하겠지.
   할머니는 그렇게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이모는 아무런 대꾸가 없다. 눈을 가릴 수 있어서 다행이다. 내 표정을 들키고 싶지 않다. 현관문 앞에서 신발을 신던 할머니가 흘깃 나를 본다.
   그 머리 좀 어떻게 하면 안 되냐?
   나도 대꾸하지 않는다. 혀를 차며 문을 열고 나가는 할머니를 보고 있던 이모가 휴대전화를 집어들며 묻는다.
   짜장면 괜찮지?
   나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인다. 사실 짜장면은 썩 내키지 않는다. 엄마가 돌아오는 시간은 대중없었고 그때마다 끼니를 혼자 해결해야 했던 내가 가장 자주 먹은 음식이기 때문이다. 배달된 짜장면은 대개 면이 불어 비비기가 쉽지 않았다. 소스가 겉도는 면을 삼키는 일은 어쩐지 서글펐다. 갑자기 엄마가 보고 싶다. 누운 채로 술과 음식을 토해내며 경련하던 어젯밤의 엄마 말고 3년만 딱 기다리라고 장담하던 엄마. 모처럼 쉬는 날이면 배 터지게 고기를 구워주던 엄마. 엄마는 왜 그런 짓을 한 걸까. 다 잘 될 거라고 했지만 잘 된 건 하나도 없다. 나는 참았던 울음을 터뜨린다. 한번 터진 눈물이 좀처럼 그치지 않는다. 이모는 그런 나를 식탁으로 데려가 휴지를 건넨다. 가슴이 답답하다. 숨이 가빠온다. 아무 곳에서나 울지 않기로 엄마와 약속한 적이 있다. 울면 안 된다. 나는 손바닥으로 연달아 내 뺨을 친다. 울음을 그치는 데에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어머 얘, 왜 그래 너.
   이모가 내 손목을 붙잡으며 말한다. 나는 그 손을 뿌리치고 얼얼한 내 뺨을 다시 친다. 살과 살이 부딪칠 때마다 뭔지 모를 감정이 자꾸 목구멍을 타고 넘어온다. 목이 타는 것처럼 아프다. 이모가 다시 내 손을 잡는다.
   그만, 그만해.
   아무것도 모르면서 뭘 그만하라는 말일까. 나는 묻고 싶다. 그러나 나는 그런 걸 묻는 법을 모른다. 다만 끝없이 어둡고 매캐한 방에 갇힌 기분이다. 아무리 기다려도 햇빛 한 점 들어오지 않는 방. 두드려도 문이 열리지 않는. 그런 방에서 그렇게 지낸 적이 있다. 세상은 위험하고 엄마는 일을 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괜찮았다. 언제나 엄마는 돌아왔으니까.
   멀찍이 앉은 이모가 내 등을 토닥거린다.
   괜찮아. 괜찮아질 거야.
   모아 놓은 알약을 한꺼번에 털어넣은 엄마가 비틀거리며 불을 내는 걸 이모는 보지 못했으니까 그런 말을 쉽게 하는 거다. 연기가 가득 찬 집에 있어보지 않았으니까. 무엇인가 태우느라 시뻘겋게 불꽃이 일렁이는 가스레인지에 물을 부은 건 나였다. 119를 부르고 이모에게 전화를 한 것도 나였다. 경련하는 엄마의 팔다리를 주무른 것도, 모두 나였다. 개가 내 발등을 핥는다. 긴 한숨 소리가 들린다. 누구의 한숨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끝없이 피곤하다. 벨이 울린다. 개가 짖기 시작한다. 한 번 버려진 적이 있다는 개. 그 개가 된 기분이다.

   *

   동구야.
   네.
   니 아비랑은 연락하니?
   ……가끔 게임하다가 만나요. 만나면 ……게임 머니도 보내주고.
   그게 뭔데.
   엄마, 게임하는데도 돈이 들어요. ……아직도 그러며 사나 보네.
   이모가 빨래를 개며 무심히 끼어든다.
   어이구, 어디서 그런 종자를 만나서……
   할머니는 말끝을 흐리며 내 눈치를 살핀다.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척 개를 쓰다듬고 있다. 할머니의 그런 말은 이제 익숙하다. 익숙하지만 들을 때마다 뜨거운 것이 치솟는다. 이럴 때는 게임을 해야 하는데. 나는 표정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에 간다.
   애가 영……
   거기에서 할머니의 목소리는 끊긴다. 문을 닫으면 편안해지는 세상. 화장실은 내게 그런 곳이다. 이곳에 있는 동안은 아무도 말을 걸거나 나무라지 않는다. 변좌에 손을 댔다 뗀다. 요란한 소리를 내며 흘러나온 물이 소용돌이친다. 언젠가 엄마와 본 영화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변기 속으로 들어가 다른 세상에 떨어진 주인공의 표정만 분명하게 기억나는 영화다. 부럽다. 그 장면에서 엄마는 그렇게 중얼거렸고 나는 근사하다고 생각했다. 몇 번이나 영화를 돌려볼 정도로 나는 그 장면에 푹 빠져 있었다. ……왜 하필 변기인지는 모르겠다. 그저 이곳에 있으면 불안하거나 불편한 마음이 덜해지는 걸 느낄 뿐이다. 변기 속으로 들어가고 싶다. 바깥에서 웃음소리가 들린다. 누군가 웃고 있다. 그게 나는 아니다.

   *

   5일 만에 돌아온 엄마는 이제 일을 하러 나가는 대신 종일 청소를 하고 있다. 그런 모습이 낯설어서 나는 몰래 엄마의 행동을 살핀다. 물론 그날 일에 대해서는 서로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 종일 울어대는 휴대전화를 모른 척하는 엄마는 이모나 할머니와도 별로 말하고 싶지 않은 눈치다. 이유는 모른다. 이유를 묻고 싶지도 않다. 전처럼 조용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뿐이다. 분주하게 집안을 오가는 엄마와 수시로 울려대는 휴대전화 때문에 좀처럼 게임에 집중하기가 어렵다.
   동구야.
   등 뒤에서 엄마가 나를 부른다. 엄마가 내 이름을 부른 건 오랜만이다. 나는 돌아본다. 그때 서야 엄마의 머리가 희끗희끗하다는 걸 깨닫는다. 기분 탓인지는 몰라도 엄마는 며칠 사이에 전혀 다른 모습이 되어 있다.
   ……아빠랑 좀 지내면 어때?
   나는 내 귀를 의심한다. 술에 취하면 엄마는 종종 나를 끌어안고 세상에 우리 둘뿐이라는 말을 자주 했다. 엄마는 지금 그 세상 밖으로 나를 쫓아내려고 하는 걸까. 이모와 할머니가 수군거리던 바에 따르면 양육비도 준 적 없는 아빠다. 그런 아빠가 나를 받아줄까. 아니, 엄마와 나, 내가 아는 세상도 우리뿐인 세상이다. 나는 완강하게 고개를 젓는다. 그런 일은 없을 거다. 그런 나를 물끄러미 보던 엄마가 두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리며 긴 한숨을 쉰다.
   왜 그런 말을 해?
   나는 묻는다. 묻지 않을 수가 없다.
   그냥, 그냥 너무 피곤해서.
   나 때문에 피곤하다는 얘긴가. 어쩐지 억울한 기분이다. 나는 엄마를 괴롭힌 적이 없다. 시키는 건 꼬박꼬박했고 뭘 사달라고 보챈 적도 거의 없다. 지금 쓰고 있는 게임기도 이모가 사준 거다. 또래 애들 중에 라면을 끓이거나 밥을 할 수 있는 애도 거의 없을 거다. 그 사실을 엄마는 알까. 내가 어떤 마음으로 지난 며칠을 보냈는지 엄마는 도대체 알기나 하는 걸까.
   ……약도 피곤해서 먹은 거야?
   엄마가 물끄러미 나를 쳐다본다. 기운 벽을 따라 햇빛이 들이친다. 햇빛을 받은 엄마의 머리가 노랗게 빛난다. 티비에서 봤던 노란색 재킷이 떠오른다. 역시 엄마는 노란색이 별로 어울리지 않는다.
   미안해.
   엄마는 얼굴을 찡그리며 그렇게 말한다. 그런 대답을 듣고 싶었던 건 아니다. 가슴이 답답해서 숨을 크게 쉬어 본다. 엄마의 정수리와 얼굴 언저리를 맴돌던 햇빛이 엄마의 목으로 내려가도록 우리는 서로 별말이 없다. 바깥에서 나는 온갖 소리가 엄마와 나 사이로 끼어든다. 학원 차에서 아이들이 내리고 누군가가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골목으로 나온 여자들이 자신의 아이들을 부르는 소리를 듣다가 문득, 엄마가 이제는 3년만 딱 기다리라는 말 같은 건 하지 않을 거라는 걸 깨닫는다. 어디선가 생선 굽는 냄새가 새어든다. 나는 천천히 화장실로 가 변기의 레버를 누르고 그 앞에 주저앉는다. 물이 돈다. 하루하루가 오늘과 다르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 다시 레버를 누른다. 배가 고프다.

   *

   엄마가 아파서 그런 거니까…… 네가 잘 돌봐야 해. 무슨 일 생기면 이모에게 꼭 전화하고.
   언젠가 이모는 그렇게 말했다. 엄마가 보란 듯이 약을 또 삼킬 거라는 사실을 미리 알기라도 한 사람처럼. 12시가 좀 지난 시간이다. 콜록거리던 엄마는 문에 기대 비스듬히 누워 있다. 가스 밸브를 확인한다. 이번에는 약만 먹은 모양이다. 나는 보란듯이 여기저기 떨어져 있는 알약을 주우며 휴대전화를 찾는다. 119에 신고를 하고 이모에게 상황을 설명하는 일은 지난번보다 수월하다. 그들이 들어오기 쉽게 현관의 신발을 정리한 다음 화장실로 들어간다. 레버를 누르면 언제나 소용돌이치는 물줄기. 곧 물이 차오를 것이다. 얼굴을 묻고 숨을 참으면, 모든 일이 끝나 있을지 모른다. 아니면 다른 세상으로 떨어지거나. 나는 긴 관을 지나 전혀 다른 세상으로 가게 될 거다. 차오른 물에 얼굴을 담근다. 변기를 더듬어 레버를 다시 누른다. 요란한 소리를 내며 물이 빨려들어간다. 어두운 구멍이 점점 넓어진다. 아무 생각도 하지 않으면, 그곳에 갈 수 있다.

김선재

영화를 본 후 영화 제목은 잊어버린다. 내가 올랐던 산 이름도 기억하지 못한다. 명사가 자꾸 멀어진다. 매 순간 다시 글을 배우는 아이의 심정으로 살고 있다.

2022/04/26
53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