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는 사람의 희망이 조금씩 시들어가는 꽃봉오리 같다고 생각했다. 간절할수록 농락당하기 쉬웠다. 차라리 봉오리마다 꽃이 활짝 피어났더라면, 더는 꽃 생각에 사로잡히지 않을 수 있었을 텐데. 혹은 내내 사로잡힌 채 머무를 수 있었겠지. 봉오리가 맺히지 않았더라면 포기할 수 있었을까. 절망을 거듭할 수 있었을 텐데. 봉오리는 마침내 툭 벌어져 붉은빛을 입에 물었다. 어떻게 지내냐는 물음 뒤에 찾아오는 관성의 웃음처럼. 어려운 생활과 기로에 놓인 삶에 대한 이야기가 끝나기도 전에 뒤미처 따라오는 내일의 계획처럼. 하고 싶은 일을 못 하는 것에 치여서 살아. 서로의 배부른 몸을 닦아주고 다리 사이에서 흐른 피를 빨아주며 생이 다 끝나가는데도 한 번도 활짝 펴지지 못한 자매들처럼. 나는 이제 그런 것들로부터 벗어나고 싶어. 좀더 찌그러지지 않은 육체에 대한 갈망 같은 것으로부터. 화분 속 봉오리들은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 같이 시든 꽃잎을, 다 터진 입술 같고 말라빠진 주둥이 같은 꽃잎을, 기약 없는 만개에 대한 기다림을, 짐승의 생간처럼 뱉어내고 있었다. 바스러질 것 같은 우리가 겨우겨우 매달려 세계를 부지하고 있었다.

조혜은

2008년 《현대시》를 통해 작품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지키고 싶은 것을 가장 잘 지킬 수 있는 방법을 찾다보니 시를 쓰게 되었습니다. 시집 『구두코』 『신부 수첩』 『눈 내리는 체육관』 『털실로도 어둠을 짤 수 있지』가 있습니다.

지난봄, 익숙한 동네를 떠나 낯선 동네로 이사를 왔습니다. 늘 보던 사람들을 아주 가끔 볼 수 있었고, 새로운 장소에 가족이 함께 적응하는 동안 써야 할 순간을 자주 놓쳤습니다. 요즘은 이런저런 싸움을 멈추고 사람을 사랑하는 일에 대해 다시 생각하고 있습니다. 두 편의 시는 ‘최선’에 대해 생각하며 쓴 시입니다.

2026/01/21
77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