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
빈 화분
나도 길러봤어
학교에서 나눠준 슬픔을
깊이깊이 심었더니
강낭콩처럼 잘 자랐어
겉흙이 마를 때마다
누가 나를 울리고
속흙이 마를 때쯤
내가 누굴 울려서
좀처럼 시들지 않았어
연둣빛 떡잎 떨어지고
줄기 따라 자라난 새잎이
나날이 생생하고 푸르러서
솔직히 무섭기도 했어
너무 쑥쑥 커서 이제
방에 빛도 들지 않는다고 울먹이는 친구랑
슬픔을 텃밭에 옮겨 심었어
나란히 쪼그려 앉아 햇볕을 쬐다
날짜와 이름을 적어두고 돌아왔어
빈 화분을 들고
학교에서 나눠준 슬픔을
깊이깊이 심었더니
강낭콩처럼 잘 자랐어
겉흙이 마를 때마다
누가 나를 울리고
속흙이 마를 때쯤
내가 누굴 울려서
좀처럼 시들지 않았어
연둣빛 떡잎 떨어지고
줄기 따라 자라난 새잎이
나날이 생생하고 푸르러서
솔직히 무섭기도 했어
너무 쑥쑥 커서 이제
방에 빛도 들지 않는다고 울먹이는 친구랑
슬픔을 텃밭에 옮겨 심었어
나란히 쪼그려 앉아 햇볕을 쬐다
날짜와 이름을 적어두고 돌아왔어
빈 화분을 들고
윤슬빛
『오늘의 햇살』 『갈림길』 『우리는 여름』 『우리는 매일 안녕 안녕』 『다음 공을 던질 차례』 『플랜b의 은유』 등을 썼습니다. 2026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동시가 당선되어 동시를 발표하기 시작했습니다.
주먹을 꽉 쥐고 서 있는 어린이, 책상에 엎드려 잠든 척하는 어린이, 구석진 데 쭈그려 앉아 있는 어린이에게 관심이 많습니다. 근데요, 그렇지만요, 그래도요, 그러니까 제 말은요…… 같은 말들을 좋아합니다. 어제의 어린이와 오늘의 어린이와 내일의 어린이를 상상하며 씁니다. 마음이 눌린 자리를 살살 도닥이는 작업들을 하고 있습니다. 눅눅하고 축축한 마음을 우리 같이 햇볕에 잘 말려보아요!
2026/07/15
80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