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유》 큐레이션
주문을 주문하나니
오컬트 토크를 좋아한다. 주로 여덟 글자(四柱八字)나 타로카드를 뽑아 들고 친구들과 점을 치는데, 수천 년 동안 이어져온 문자와 이미지에 기대어 서로의 기대, 사랑, 욕정, 비밀, 불안, 고통을 꺼내 해석하고 희망을 빚는 행위가 주는 즐거움이 크다. 하지만 위정자들, 특히 내란수괴와 그 부인이 ‘무속 정치’를 해왔다는 사실이 파묘될 때마다 초조하다. 나의 길흉화복과 내란수괴의 길흉화복이 겨룰 때, 어느 힘이 더 클까? 심지어 내란수괴의 부인은 매달 한 회에 1억 5천만원을 들여 굿을 했다는데,1) ‘윤석열 퇴진’이라는 복(福)이 달아나지는 않을까? 《비유》에는 이 불안과 유사한 증상을 짚는 대목이 있다.
새해는 저절로 오지 않는다. 우리가 새해 인사를 나누고, 2025년이라고 적힌 달력을 걸고, 을사년이라고도 발음해보고, 연간 일정과 예산을 짜고, 서로의 나이를 세어주고, 떡국을 먹어야 비로소 맞이한다. 그렇게 12진법의 시간의 단위를 호명하는 실천과 문화와 역사와 제도가 촘촘히 엮여서, 새해라는 사건이 자연스러워진다. 지속한다. 거스를 수 없어진다. 새 세상도 그렇다. 누군가는 물러날 때를 알고 죗값을 치르고, 가난이나 장애나 인종을 이유로 구별 짓는 힘에 저항하고, 트랜스젠더퀴어와 함께 젠더 위기를 질문하고, 참사에 대한 공적 애도를 타협하지 않고, 내면화된 수치심에 질문을 던지고, 일상과 주변을 돌보고, 세상이 달라질 수 있다고 다시금 마음먹을 때 맞이할 수 있다.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하여, 이 문장들도 주문(sentence)일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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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김신식, 「시차증과 문학」 click
② 홍칼리, 「머뭇거리는 무당, 망설이는 예술: 들리는 이야기에 실리는 몸」 click
③ 서계수, 「지옥은 악마의 부재」 click
나도 일종의 시차증을 앓는다. 같은 나라에 살고 같은 언어를 쓰고 똑같이 한 해를 넘겨 지금 함께 을사년 초입을 보내고 있어도, 절대 마주보지 않을 정치적 염원과 차별을 마주하며 분노와 무력감을 느낀다. 정상생애주기를 정상 신체로 통과하는 이들의 목소리만 지나치게 대우받고, 그렇지 않은 시간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존재와 시간은 유령처럼 밀린다. 오컬트는 이러한 시차증을 섬세하게 다뤄왔다. 글 쓰는 무당 홍칼리도 《비유》에서 이렇게 말했다.같은 나라, 같은 도시, 같은 동네에 살고 있더라도 서로 마주보지 않은 시간을 통과하는 동안, 어느새 달라진 인생의 방향과 격차를 마주하며 우울감을 느끼는 것도 시차증이라 이야기하는 것 같았습니다. 문학도 이러한 시차증을 섬세하게 다룬다고 생각합니다.—김신식, 「시차증과 문학」 부분
그러니 각종 혐오 정치를 구사하며 정상의 자리를 꿰찬, ‘너무 정상적인’ 내란수괴와 그 부인이 오컬트를 이용하는 행위는 정상성의 망령을 불러들이는 일이다. 오히려 (세금 횡령이 의심되는) 거금을 들여 제 산통을 깨는 일이다. 그럴수록 무당 홍칼리가 아래처럼 호명한 ‘비명’에 더 시달리게 될 줄은 모르고.정상성에 밀려나 낙인찍힌 존재가 자신의 신성을 발견하는 과정은 그 자체로 정상성의 망령을 내쫓는 과정이기도 하다. 생각해보면 옛날부터 동네에서 ‘좀 이상한’ 이들이 스스로의 서사를 창조할 수 있는 무대를 마련해주고, 마을공동체와 우주적 연결감을 각성하며 함께 살아가도록 돕는 의식이 신내림 의식이었다.—홍칼리, 「머뭇거리는 무당, 망설이는 예술: 들리는 이야기에 실리는 몸」 부분
이런 비명과 영가와 영령들은 내란수괴 부부와 그 측근들, 지지자들이 손수 빚어왔다. 마침내 그가 계엄령 선포라는 주문을 외자, 이 비명들이 광장에 터져나왔다. 다만 이번에는 은폐되지 않고, 윤석열 탄핵 촉구 집회 발언대에서 모두의 이야기로 발화되었다. 그중에서도 “저는 노래방 도우미로 일하는, 소위 말하는 술집 여자입니다”라며 운을 뗐던, 지난해 12월 11일 부산 서면 집회에서 울려퍼졌던 선언은 특히 기세가 넘쳤다.인식하든 인식하지 않든 기억하든 기억하지 않든 모두가 누군가의 비명에 들린 채 살아간다. 욕망하다 죽고 저항하다 죽은 비남성 영가들, 수치심과 죄책감을 끌어안고 사라져간 환향녀, 성노동자, 창녀, 꽃뱀이라 불리던 영가들, 히스테리 환자나 악령이라고 판단되어 실험당하다 죽은, 미쳐보일까봐 웅크리고 있는 영가들, 죽어서도 구제 불능한 자살령이라고 낙인찍히는 자살한 영가들, 기괴하고 이해할 수 없는 울음소리를 내는 정신장애인과 비인간 동물 영가들, 축산업과 어업으로 학살되는 것에 저항하다 죽은 영령들, 살처분으로 압사당하는 돼지와 소와 오리와 닭 영령들에게 들린다.—홍칼리, 「머뭇거리는 무당, 망설이는 예술: 들리는 이야기에 실리는 몸」 부분
그는 이렇게 약자들을 호명함으로써 윤석열 퇴진을, 민주주의라는 길(吉)을 밝혔다. 이러한 연설들이 일종의 공적인 구마(驅魔) 의식이라면 복채(卜債)는 돈다발보다 값진, 십시일반으로 보탠 응원봉의 빛과 선결제로 채운 피와 살 그리고 광장에 나선 시간이었다. 시위 발언대에서 퀴어와 같은 소수자임을 밝히는 일이 퇴진이라는 목적과 ‘상관없는’ 정보라는 이유로 불편하다는 의견도 있는데, 이 호명이야말로 퇴진 그리고 퇴진 이후에도 민주주의를 두터이 다지는 주문이다. 프랑스 철학자 미셸 푸코에 따르면 약자란 본래부터 약자가 아니라 강자의 규범으로 ‘발명된’ 존재다. 오컬트 식으로 말하자면 퇴마되어야 할 장본인이 타자를 향해 부마자(付魔者)라고 손가락질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혐오 정치가 온전히 물러나는 복된 세상이란 멸시받던 정체성과 이야기가 환대받는 곳이어야 한다. 이 환대의 에너지는 수괴를 끌어내고 저지하는 강력한 염력이다. 《비유》에서 발견한 다음의 구마 지침도 참조해보자.오로지 여러분의 관심만이 약자들을 살려낼 수 있습니다. 쿠팡에서는 노동자들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파주 용주골에선 재개발의 명목으로 창녀들의 삶의 터전이 파괴당하고 있습니다. 동덕여대에서는 대학 민주주의가 위협을 받고 있고, 서울 지하철에는 여전히 장애인의 이동할 권리가 보장되고 있지 않으며, 여성들을 향한 데이트 폭력이, 성소수자들을 위한 차별금지법이, 이주 노동자의 아이들이 받는 차별이, 그리고 전라도를 향한 지역혐오가, 이 모든 것들이 해결되지 않는다면 우리의 민주주의는 여전히 완벽하지 못한 것입니다.2)
정말, 수괴의 퇴진은 악의 절각(切角)일 뿐임을 명심해야 한다. 모두가 국정농단의 귀환을, 계엄령의 부활을, 백골단의 후예를 목격했다. 이제야 악마가 부재한다고 믿는 그 순간 지옥문이 열린다. 그리하여 낙인찍힌 자들의 비명과 웃음이야말로 구원의 서이며, 이들의 목소리가 호시탐탐 주제 넘도록 해야 하나니.-반인반마 죽이는 법
1. 두 번 죽여야 함. 악마인 동시에 인간인 자들이니, 너는 악마로서의 그의 이름을 부름으로써 먼저 이 세상에서 몰아내고, 인간으로서의 그를 마저 죽여야 해.
2. 명심하도록. 악마를 먼저 죽여.
3. 네가 악마를 죽이는 방법을 물을까봐 적어둔다.
(+) 악마를 완전히 죽이는 건 불가능하다. 세상에서 잠시 몰아낼 수 있을 뿐이지.—서계수, 「지옥은 악마의 부재」 부분
새해는 저절로 오지 않는다. 우리가 새해 인사를 나누고, 2025년이라고 적힌 달력을 걸고, 을사년이라고도 발음해보고, 연간 일정과 예산을 짜고, 서로의 나이를 세어주고, 떡국을 먹어야 비로소 맞이한다. 그렇게 12진법의 시간의 단위를 호명하는 실천과 문화와 역사와 제도가 촘촘히 엮여서, 새해라는 사건이 자연스러워진다. 지속한다. 거스를 수 없어진다. 새 세상도 그렇다. 누군가는 물러날 때를 알고 죗값을 치르고, 가난이나 장애나 인종을 이유로 구별 짓는 힘에 저항하고, 트랜스젠더퀴어와 함께 젠더 위기를 질문하고, 참사에 대한 공적 애도를 타협하지 않고, 내면화된 수치심에 질문을 던지고, 일상과 주변을 돌보고, 세상이 달라질 수 있다고 다시금 마음먹을 때 맞이할 수 있다.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하여, 이 문장들도 주문(sentence)일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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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김신식, 「시차증과 문학」 click
② 홍칼리, 「머뭇거리는 무당, 망설이는 예술: 들리는 이야기에 실리는 몸」 click
③ 서계수, 「지옥은 악마의 부재」 clic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