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토리얼 곁의 감각
김신재
삶을 취약하게 만드는 조건들은 주거난, 부채, 이자, N잡, 번아웃, 직업병 같은 구체적인 생활의 단어들과 함께 일상 곳곳에 스며 있습니다. 어떤 곤경은 드라마의 소재조차 되지 못하고, 설명할 수 없는 막막함은 통계 수치로 드러나지 않습니다. 문학은 보이지 않는 빈곤과 계급의 문제를 꾸준히 다뤄왔지만, 그에 대한 우리의 언어는 여전히 빈약하거나 ‘각자도생’의 구조를 벗어나지 못하기도 합니다. 할 수 있는 자가 (스스로를) 구하라.
이번 호에서는 오랜만에 ‘빈곤’이라는 하나의 주제를 중심으로 여러 지면을 꾸렸습니다. 여기에 더해진 ‘투자’라는 또 다른 축은 빈곤에 관한 우리의 시야를 더 넓힙니다. ‘해상도 높은 장면’에서 소설 쓰는 단요와 사진 찍는 현다혜는 2050년대라는 근미래를 배경으로 금융, 경제, 정치의 시스템과 알고리즘만큼이나 가늠하기 힘든 빈곤의 복잡성을 그려냅니다. 우리가 아는 빈곤이나 풍요의 이미지란 시대에 따라 달라지는 “순전한 이미지”에 불과한지도 모릅니다. ‘통로’에서 이승철은 금융투자를 통해 삶의 불안정성을 해소하려는 청년 투자자들의 ‘탈출’과 ‘자유’에 대한 추구에 주목하며, 개별화되고 특권화된 선택지를 넘어 이를 어떻게 집합적이고 보편적인 ‘엑소더스(exodus)’로 재구성할 수 있을지 궁리합니다. 아리아드네의 실을 따라 미궁을 빠져나온 테세우스처럼 필자들이 펼쳐둔 실마리를 함께 따라가보시기를 권합니다.
‘비평 교환’에서 안온과 연혜원의 대화는 빈곤과 부를 대립항으로 그려온 대중 미디어의 전형적 재현을 넘어, 그 중간의 풍부한 스펙트럼을 재사유할 필요에 대한 공감으로 이어집니다. 두 필자는 “부와 정상성이 온갖 스펙터클을 창조할수록 빈곤과 소수자성은 특수성과 구체성을 잃는 상황”을 지적하면서 ‘빈곤 클리셰 부수기’가 다양한 삶에 대한 선택과 상상력의 공간을 여는 일임을 환기합니다. ‘문학하는 사람들’에서 황모과는 기존 계약 관행에서 작가의 처지를 짚으며, ‘집필’이라는 불안정 노동을 사각지대에 방치하는 대신 그 가치를 정당하게 인정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자고 제안합니다.
결핍과 상실을 경험한 사람들은 종종 서로를 알아봅니다. 기준영과 박상영의 소설은 “자신도 모르는 새 곁을 내어주는 사람들”을 포착한다는 점에서 잇닿은 선율로 이어집니다. 임솔아의 시는 자신의 바깥에서, 직접 겪지 않은 일들로 무한해집니다. ‘리뷰와 비평’에서 박숙경은 한국 아동 청소년 문학에서 전통적으로 다뤄져온 ‘우리’라는 영역을 확장하여 동물, 이주민, 난민 어린이를 아우르는 새로운 지도를 그립니다. 이를 통해 불안을 조장하는 혐오 담론을 넘어 가난을 미래의 가능성으로 전환하여 생각해볼 여지를 마련합니다. 김영미와 정다연의 시, 김지완과 위해준의 동화에서 각각의 만남이 어떻게 스치고 반복되는지도 주의 깊게 봐주시면 좋겠습니다.
『지금 여기 함께 있다는 것』에서 인류학자 제임스 퍼거슨은 새로운 사회적 의무의 토대로 ‘현존(presence)’이라는 관점을 제안합니다. 그는 ‘우리’라는 감각의 확장을 통해 연대의 폭을 넓히는 것을 넘어 ‘여기’라는 감각을 중심으로 정치를 재구성할 필요가 있다고 말합니다. “우리 중의 하나”이기 때문이 아니라 우연히 “여기 우리와 함께 있기 때문”에, 그러니까 누군가가 곁에 가까이 있는 상황 자체가 나눔과 분배라는 사회적 의무를 강제한다는 것이지요. 취약성과 고통마저 함께 따라오는 이 과정은 연민이나 공감이 아니라 오히려 귀찮음이나 짜증을 불러일으킵니다. 하지만 그는 “모든 문제점까지 함께 공유한 상태로 비자발적으로 공존”한다는 것의 가능성에 주목합니다. 마지못해 곁을 내어주는 일이 타인과 나 자신을 함께 구하는 일이 되기도 할까요?
이번 호에서는 오랜만에 ‘빈곤’이라는 하나의 주제를 중심으로 여러 지면을 꾸렸습니다. 여기에 더해진 ‘투자’라는 또 다른 축은 빈곤에 관한 우리의 시야를 더 넓힙니다. ‘해상도 높은 장면’에서 소설 쓰는 단요와 사진 찍는 현다혜는 2050년대라는 근미래를 배경으로 금융, 경제, 정치의 시스템과 알고리즘만큼이나 가늠하기 힘든 빈곤의 복잡성을 그려냅니다. 우리가 아는 빈곤이나 풍요의 이미지란 시대에 따라 달라지는 “순전한 이미지”에 불과한지도 모릅니다. ‘통로’에서 이승철은 금융투자를 통해 삶의 불안정성을 해소하려는 청년 투자자들의 ‘탈출’과 ‘자유’에 대한 추구에 주목하며, 개별화되고 특권화된 선택지를 넘어 이를 어떻게 집합적이고 보편적인 ‘엑소더스(exodus)’로 재구성할 수 있을지 궁리합니다. 아리아드네의 실을 따라 미궁을 빠져나온 테세우스처럼 필자들이 펼쳐둔 실마리를 함께 따라가보시기를 권합니다.
‘비평 교환’에서 안온과 연혜원의 대화는 빈곤과 부를 대립항으로 그려온 대중 미디어의 전형적 재현을 넘어, 그 중간의 풍부한 스펙트럼을 재사유할 필요에 대한 공감으로 이어집니다. 두 필자는 “부와 정상성이 온갖 스펙터클을 창조할수록 빈곤과 소수자성은 특수성과 구체성을 잃는 상황”을 지적하면서 ‘빈곤 클리셰 부수기’가 다양한 삶에 대한 선택과 상상력의 공간을 여는 일임을 환기합니다. ‘문학하는 사람들’에서 황모과는 기존 계약 관행에서 작가의 처지를 짚으며, ‘집필’이라는 불안정 노동을 사각지대에 방치하는 대신 그 가치를 정당하게 인정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자고 제안합니다.
결핍과 상실을 경험한 사람들은 종종 서로를 알아봅니다. 기준영과 박상영의 소설은 “자신도 모르는 새 곁을 내어주는 사람들”을 포착한다는 점에서 잇닿은 선율로 이어집니다. 임솔아의 시는 자신의 바깥에서, 직접 겪지 않은 일들로 무한해집니다. ‘리뷰와 비평’에서 박숙경은 한국 아동 청소년 문학에서 전통적으로 다뤄져온 ‘우리’라는 영역을 확장하여 동물, 이주민, 난민 어린이를 아우르는 새로운 지도를 그립니다. 이를 통해 불안을 조장하는 혐오 담론을 넘어 가난을 미래의 가능성으로 전환하여 생각해볼 여지를 마련합니다. 김영미와 정다연의 시, 김지완과 위해준의 동화에서 각각의 만남이 어떻게 스치고 반복되는지도 주의 깊게 봐주시면 좋겠습니다.
『지금 여기 함께 있다는 것』에서 인류학자 제임스 퍼거슨은 새로운 사회적 의무의 토대로 ‘현존(presence)’이라는 관점을 제안합니다. 그는 ‘우리’라는 감각의 확장을 통해 연대의 폭을 넓히는 것을 넘어 ‘여기’라는 감각을 중심으로 정치를 재구성할 필요가 있다고 말합니다. “우리 중의 하나”이기 때문이 아니라 우연히 “여기 우리와 함께 있기 때문”에, 그러니까 누군가가 곁에 가까이 있는 상황 자체가 나눔과 분배라는 사회적 의무를 강제한다는 것이지요. 취약성과 고통마저 함께 따라오는 이 과정은 연민이나 공감이 아니라 오히려 귀찮음이나 짜증을 불러일으킵니다. 하지만 그는 “모든 문제점까지 함께 공유한 상태로 비자발적으로 공존”한다는 것의 가능성에 주목합니다. 마지못해 곁을 내어주는 일이 타인과 나 자신을 함께 구하는 일이 되기도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