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아버지의 개와 나는 나의 개와 함께 걷고 있는데. 블루베리밭을 내려가자 선착장이 나오고 아버지는 배를 타고 건너편으로 가고 싶어하는데. 건너편에는 아버지가 십 년 동안 직접 만들어둔 서른두 기의 무덤이 있다는데. 아버지는 오래전부터 내게 그 무덤들을 꼭 보여주고 싶어해왔는데. 그곳에는 종중이니 문중이니 내가 잘 모르는 어르신들이 묻혀 있다는데. 첩으로 살아온 할머니도 묻혀 있고 아직 살아 있는 나의 어머니와 아버지의 묘비도 있다는데. 선착장 매표소의 직원이 작은 창으로 고개를 빼꼼 내밀고는 개는 배에 탈 수 없다고 우리에게 말하는데. 그 말을 들으려고 나는 굳이 개들을 데리고 왔지. 내 개가 나를 보호해줄 것을 믿었지. 내 예상대로 우리가 타지 못한 채로 배는 출발을 하고. 아버지는 배가 멀어져가는 방향으로 걷고 싶어하고. 이 길을 따라가면 앉은뱅이 우물이 나온다면서 거기까지 가서 물을 한 잔만 같이 마시자고. 아버지의 개는 나의 개를 물고 싶어하고.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개가 튀어오를 때마다 아버지는 목줄을 당기며 허허 웃고. 나는 아버지와 떨어진 채 걷고. 아버지는 아버지가 만든 그 멋진 무덤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이제 죽어도 걱정이 없다는 듯이 이야기하고. 나는 아버지에게 엄마의 뱃살을 그만 놀리라고 엄마가 아빠 때문에 다이어트를 하겠다고 한다고 엄마가 투병 중이라는 사실을 제발 존중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지만. 앉은뱅이 우물에서 물을 한 잔 마신 후에 말하는 게 좋겠다 생각했지만. 아버지와 조금 더 멀어지면 적어도 그만큼은 아버지의 말이 안 들릴 것 같지만. 서른두 기의 무덤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지고. 우물은 나오지 않고. 여우비굴이니 호랑이굴이니 하는 것들이 나타나고. 아버지는 그 굴에 들어가보라고 하고. 갑작스런 소나기나 호랑이를 만날 때에 숨기 딱 좋은 곳이라고. 그 굴들은 사람 한 명이 겨우 들어갈 만큼 관만큼이나 자그마하고. 나는 그곳에 들어가고 싶지 않아서 나의 개만 쓰다듬고. 앉은뱅이 우물에 도착했을 때. 아버지가 플라스틱 바가지를 집어들 때. 우물이 아니라 우물 옆 웅덩이에 고인 물을 떠 마실 때. 이 물이 저 물이야. 이게 더 깨끗할걸. 아버지가 바가지를 내게 내밀 때. 크 시원하다. 마셔봐. 마셔보거라. 아버지는 두 다리를 크게 벌리고 목을 쭉 내밀고 입가가 축축해지고. 나는 웅덩이를 들여다보고. 아버지의 신발코가 빠져 있는 그 웅덩이를.

임솔아

시집 『괴괴한 날씨와 착한 사람들』 『겟패킹』, 단편소설 『엄마 몰래 피우는 담배』, 소설집 『눈과 사람과 눈사람』 『아무것도 아니라고 잘라 말하기』, 중편소설 『짐승처럼』, 장편소설 『최선의 삶』 『나는 지금도 거기 있어』, 산문집 『다시, 뒷면에게』를 출간했다.

2026/03/04
78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