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화 한 켤레, 출입증 목걸이, 셔틀콕, 종이컵, 약통 등이 흩어져 있다. 그 뒤로 마을버스 한 대가 보인다. 운전석에 기사가 앉아 있고, 좌석은 모두 비어 있다.

장례식장에 도착했을 때까지만 해도 선배의 죽음이 실감나지 않았다. 구두를 벗는데, 누군가 바닥에 빨간 운동화를 뒤집어놓고 간 게 보였다. 형광빛의 번쩍이는 띠까지 둘러진 러닝화였다. 아무리 그래도 빈소에 러닝화는 좀 아니지 않나 생각을 하며 식장 안으로 들어섰다. 제단 위에 올려진 영정은 십오 년 전 입사할 때 사원증에 썼던 사진이었다. 슬프다기보다는 양심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헌화를 하고 선배의 가족들과 맞절을 했다. 와이프의 경우 좀 피곤하고 말간 얼굴이었으나 이른 나이에 남편을 앞세운 여자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선배의 자랑이었던 아들도 눈이 좀 부었지만 차분한 표정이었다.
  비교적 한산한 테이블을 골라 육개장을 먹기 시작했는데 선배의 와이프가 내 앞에 앉았다. 오며 가며 몇 번 보기는 했지만 딱히 각별한 사이는 아니라 할 얘기가 별로 없었다. 그저 묵묵히 국밥을 퍼먹는 내게 그녀가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심장 마비였어요.”
  “네?”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다…… 그렇게 됐어요.”
  “아이고……”
  “평소에도 변비가 심했거든요.”
  그 말을 듣는데 이상하게 뺨으로 눈물 한줄기가 흘러내렸다. 그야말로 지극히 선배다운 죽음이라, 선배가 죽었다는 게 진짜 실감나기 시작했다. 한 번 시작된 눈물은 좀처럼 멈추지 않았고 결국 오열로 이어졌다. 입을 막고 끅끅 소리를 내며 우는데, 사람들이 나를 쳐다보는 게 느껴졌다. 그러나 눈물을 멈출 수는 없었다. 선배의 삶이, 선배와 함께했던 내 삶의 한 챕터가 끝나버린 게 자명했다. 어느새 내 옆으로 자리를 옮긴 선배의 와이프가 가만가만 나의 등을 두드려주었다.
  “그이가 생전에 황 작가님 얘길 많이 했어요.”
  나는 탁자에 놓인 휴지를 뽑아다 코를 팽 풀며 대답했다.
  “무슨 말요?”
  “글을 좀…… 특이하게 쓴다고……”
  그제야 눈물을 멈출 수 있었다.

*

막 출발하려고 하는 마을버스를 막아섰다. 멈춰 선 버스의 앞문을 두드리자 문이 열렸다. 막차라 그런지 꽤 많은 사람이 타고 있었다. 운전석 바로 뒤 좌석만 하나 남아 있어 얼른 그 자리에 앉았다. 장례식장에 다녀온 사람치고는 운이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창문에 머리를 기댔는데 비포장도로를 달리는 탓에 이마에 진동이 느껴졌다. 거친 노면을 고스란히 느끼며 잠깐 졸았다.
  눈을 떠보니 버스가 어느덧 종점에 멈춰 서 있었다. 기사가 운전석에서 일어났다. 기사의 얼굴이 생각보다 너무 하얗고 어려 보여 얼른 눈곱을 뗐다. 기사가 그런 나를 보며 말했다.
  “너무 곤히 주무셔서 못 깨웠어요.”
  “죄송해요. 퇴근하셔야 할 텐데.”
  “아니에요. 손님이 아니었어도 어차피 퇴근은 못 해요.”
  “왜요?”
  “얘기하자면 좀 긴데…… 제가 사실 유령이거든요.”
  듣고 보니 하얗게만 보였던 얼굴이며 손가락이 실은 조금 명도가 옅다는 게 느껴졌다.
  “어, 정말 유령 맞으시네요.”
  “네네. 정신을 차려보니까 여기서 운전을 하고 있더라고요. 퇴근도 못 하고.”
  “퇴근을 왜 못 하세요? 저같이 조는 사람들 때문에요?”
  “아뇨, 그런 건 아니고…… 일종의 지박령 같은 게 아닌가 싶어요.”
  선배의 장례식장에서 묻어 온 게 아닐까 싶었는데, 그건 아닌 듯했다. 살면서 귀신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조금 당황스러웠다. 실은 살짝 무섭기도 했는데 나쁜 기운을 풍기는 것 같지는 않아서 과민반응 하지 않기로 했다. 기사가 내 맞은편 좌석에 앉아 길게 하품을 했다.
  “졸리세요?”
  “졸린 건 아니고, 조금 힘드네요. 운전을 오래 했더니.”
  “일은 얼마나 하셨는데요?”
  “몇 달 됐어요.”
  “하루에 몇 시간이나 운전을 하셔요?”
  “해가 지고 나서부터 막차 시간까지 몰아요. 거의 매일.”
  “주말도 없이요?”
  “네.”
  “세상에. 아무리 귀신이라도 노동권은 좀 지켜줘야 하는 거 아니에요?”
  “근데 별로 힘들진 않아요. 원래도 운전을 좋아했거든요. 운전기사 같은 걸 해보면 어떨까 생각도 했었고요.”
  “그게…… 왜 하고 싶었을까……”
  “자유롭잖아요.”
  “기사는 정해진 노선만 가야 하는데요? 심지어 마을버스는 코스도 되게 짧고 한정적인데……”
  “그러니까요. 죽고 나서야 알게 됐다니까요. 생전 버스를 타봤어야 뭘 알지……”
  “버스를 못 타봤어요?”
  “아예 못 타본 건 아니고요. 꽤 오래 안 탔어요. 아이돌이었거든요.”
  그 말을 들으니, 길쭉한 팔다리며, 남다른 이목구비 같은 게 좀 설명이 됐다.
  “그런데 어쩌다 돌아가시게 된 거예요? 많이…… 젊으신 거 같은데.”
  기사의 색이 조금 더 옅어졌다. 투명해진 채 골똘한 표정을 짓고 있는 기사를 보니, 아무래도 너무 사적인 질문을 한 거 같아서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죄송해요. 제가 너무 꼬치꼬치 캐물었죠.”
  “아니에요. 기억이 안 나서 곰곰이 생각하고 있었어요.”
  확실치는 않지만 마지막 앨범의 투어를 돌다 이 마을 어귀에서 교통사고가 난 것 같다고 했다.
  “투어라니…… 멋있다.”
  “생각하시는 돔 투어 이런 거 아니고…… 그냥 동네 마을 회관이나 오일장 같은 데를 도는 걸 투어라고 불렀어요. 마지막 공연도 요 앞에 배드민턴장에서 했고요.”
  배드민턴장이라면 나도 잘 알고 있었다. 우리집과 멀지 않은 곳에 있었고, 그곳에서 선배와 배드민턴을 치기도 했었다. 규모가 꽤 커서 분기마다 주차장에서 마을 장터가 열렸고, 가끔은 무대를 설치해 노래자랑이며, 경품 행사 같은 것도 벌였다. 한번은 나도 경품에 당첨되기도 했다. 상품은 마산 양조간장 한 박스였다.
  “여기저기 돌아다니시다 매일 같은 동네만 맴돌면…… 좀 지루하지 않으세요?”
  걱정스럽게 물어봤더니 의외로 상쾌한 표정으로 답이 돌아왔다.
  “익숙한 얼굴들을 보는 것도 좋긴해요. MBTI가 I거든요.”
  “I이시면 아이돌 하기는 힘들었겠다. 되게 많은 사람들 만나고, 팬 사인회 같은 것도 해야 하잖아요.”
  “어차피 오는 분들만 오셨어요. 마을버스랑 비슷한 정도의 규모로.”
  “정말…… 마을 단위의 사랑을 받으셨구나.”
  “그래서…… 마을버스 기사가 된 걸까……”
  “세계 투어를 도는 아이돌이었으면 파일럿 같은 게 됐을 수도 있겠네요.”
  “그러게요. 운명에도 정해진 사이즈 같은 게 있나봐요.”
  “비행기보다는 마을버스가 덜 고단할 거 같기는 해요. 운전하기엔.”
  “맞아요. 밤에는 이렇게 앉아서 놀 수도 있고. 가끔 동료 기사 분들이 자판기에서 커피를 뽑아다 주시기도 하고요.”
  “직접 뽑아 드실 수는 없는 거예요?”
  “네.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어떻게 된 일인지 여기 묶여버려서…… 버스 밖으로는 한 발자국도 나갈 수가 없네요.”
  그 말을 들으니 왠지 딱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열려 있는 하차 문으로 나가 서둘러 밀크커피 한 잔을 뽑아왔다. 기사는 다소 투명한 손으로 커피잔을 받아들더니 고개를 뒤로 젖히고 커피를 쭈욱 들이켰다.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기사가 내게 말했다.
  “따뜻하고, 맛있네요. 보답을 해드리고 싶은데…… 제 몸이 이런지라 뭘 해드릴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나는 골똘히 생각하다, 노래를 한 곡 불러주는 건 어떻겠냐고 물었다. 기사가 비장한 표정으로 운전석으로 향하더니 카 오디오를 켰다. 버스에 MR이 울려퍼졌다. 기사는 내가 잘 알지 못하는 노래에 맞춰 춤을 추기 시작하더니, 기어이 한 곡을 완창했다. 무대는, 훌륭했다. 나도 모르게 박수가 절로 나왔다. 기사가 자리에 앉아 평온한 얼굴로 헝클어진 머리칼을 정리했다. 힘든 기색이 없는 걸 보니 아마 꽤 실력이 있는 아이돌이었던 모양이었다. 평온한 기사의 얼굴을 보고 있노라니 눅눅했던 기분이 조금은 뽀송뽀송해지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나답지 않게 주제넘은 부탁을 하게 됐다.
  “커피 한 잔을 뽑아줄 때마다, 저한테 노래 한 곡씩 불러주면 어때요? 물론 일과 시간 후에.”
  “저희 제작비가 모자라서…… 활동 곡이 그렇게 많지는 않거든요.”
  “안무 없는 노래도 괜찮아요. 수록곡도 좋고요. 다른 가수들 커버 곡을 불러줘도 돼요.”
  “커버 곡 같은 경우는 새로 연습을 해야 해서 좀 품이 들기는 하는데…… 커피 말고 다른 건 없을까요?”
  이른 나이부터 사회생활을 해서 그런지 의외로 실속을 좀 챙기는 편인 것 같았다. 나는 골똘히 생각하다 답했다.
  “말동무를…… 해드리는 건 어떨까요?”
  “말동무요?”
  “네. 사실은 제가 돈도 없고…… 달리 가진 것도 없는데…… 그래도 작가거든요. 드라마 작가.”
  “작가시구나.”
  “네. 버스에 쭉 계시면 답답할 테니까, 세상 사는 얘기도 좀 해드리고 그러는 건 어떨까요? 말을 잘하는 건 아닌데, 엉뚱하다는 말은 가끔 들어요. 방송국도 다니고 그래서 쓸데없이 주워듣는 것도 많고요.”
  “생전에 방송국에 도는 찌라시나 루머 같은 걸 특히 조심하긴 했는데……”
  기사의 명도가 급작스레 옅어져, 조금 긴장했다. 한참을 희미하게 있다 이내 다시 진해졌다.
  “듣는 건 재밌죠. 좋아요. 노래 한 곡에 커피 한 잔. 플러스로 재밌는 얘기까지.”
  우리는 새끼손가락을 걸었다. 기사의 투명한 손가락에 내 손가락이 겹쳐지자 색이 확연히 달라 보였다. 아무래도 그의 퍼스널 컬러가 쿨톤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

집에 들어왔을 땐 1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씻고 누웠는데 도통 잠이 오지 않았다. 눈을 말똥말똥 뜨고 있는데 벽에 걸린 코트의 어깨 쪽에 희끗희끗한 먼지가 붙어 있는 게 보였다. 벌떡 일어나 박스테이프를 떼어다가 어깨춤을 훔쳤다. 테이프에 붙은 건 작은 깃털이었다. 아마도 패딩 점퍼에 들어 있는 오리털인 것 같았다. 장례식장 옷걸이에 코트를 걸어놨던 게 떠올랐다. 옷들끼리 부대끼던 사이 깃털이 옮아 붙은 모양이었다. 다시 자리에 누웠는데 이번에는 바닥에 먼지가 굴러다니는 게 보였다. 비질을 했다. 그러고 나니 정신없는 책상과 아무렇게나 너부러진 옷들이 눈에 들어왔다. 나도 모르는 새 방을 뒤집어엎었다. 땀을 뻘뻘 흘리며 버릴 옷을 분류했고, 아무렇게나 너부러져 있던 책들도 종류별로 예쁘게 꽂았다. 산더미처럼 쌓여 있던 원고들도 박스에 모아 담았다. 박스를 안고 쓰레기장으로 향했다.
  방송사의 극본 공모에 당선되고 난 후, 삼 년 동안 장편 대본을 썼다. 계약 기간이 끝나도록 연출이 붙지 않아 그대로 사장될 위기였는데, 선배가 내 대본을 집어 들었다. 이 년 동안 선배와 동고동락하며 대본을 고쳤고, 여러 번 편성의 기회를 엿봤다. 그러나 작품은 될 듯 말 듯 번번이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프로젝트의 선장이었던 선배가 죽었으니 내 작품도 완벽히 끝났다. 그 사실이 이제야 실감이 났다.
  쓰레기장에 박스를 내놓으며 혹여 누군가 원고를 유출하면 어쩌나, 파쇄기에 돌려야 하는 것 아닌가 싶기도 했는데, 제발 봐달라고 용을 써도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던 원고를 누가 빼돌릴까 싶어 미련 없이 뒤돌아섰다.

*

눈을 뜨고 보니 정오가 넘은 시간이었다. 핸드폰에 문자 메시지가 하나 와 있었다. 문 국장이었다. 오후에 잠깐 방송국에 들르라는 내용이었는데, 무슨 말을 할지는 뻔했다. 어제 입었던 검은 코트를 집어 들고 밖으로 나섰다.

드라마국을 가로질러 걸어가는데 백합 한 다발이 놓여 있는 책상이 눈에 띄었다. 온갖 잡동사니로 가득한, 선배의 책상이었다. 그 앞에 서서 선배의 가족사진이며 『논어』와 같은 책들을 뒤적였다. 그러다 책상 한구석에 셔틀콕이 구겨져 있는 게 보였다. 선배, 내가 알기론 그다지 운동을 즐기진 않았는데…… 나도 모르게 찌그러진 셔틀콕을 주머니에 집어넣어버렸다.
  국장실로 들어가자, 의자에 기대 자고 있던 문 국장이 눈을 번쩍 떴다. 달게 잤는지 입가에 허옇게 침이 말라붙어 있었다. 문 국장은 과장된 몸짓으로 나에게 소파에 앉으라 했다. 우리는 탁자를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았다. 문 국장이 양복을 입은 건 처음 보는 듯했다.
  “어제 장례식장 들르셨어요?”
  “무슨 소리야. 밤새 빈소에 있었는데. 황 작가 오는 것도 봤고.”
  “죄송해요. 경황이 없어서 못 알아뵀네요.”
  “아냐 그럴 수 있어. 아닌 게 아니라 황 작가 속이 속이겠어? 충식이가 황 작가 작품 메이드 하려고 얼마나 애썼냐. 일이 갑자기 이렇게 돼버렸으니 울고불고 난리 칠만 해.”
  문 국장이 위로랍시고 여러 말들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내 글에 남다른 감수성이 돋보이고, 문학적인 깊이가 있으며, 작금의 세태를 너무나도 투명하게 보여주고, 위트까지 남다르다고 했다.
  “난 황 작가 대본 너무 좋은데, 이번 판은 좀 운이 없었다. 임원분들이 마땅찮아 하시는 거 알고는 있었지?”
  매번 문 국장이 결사반대해 편성이 어그러진 걸 뻔히 알고 있는데, 저런 말 같잖은 소리를 잘도 했다. 유일하게 내 편이었던 선배가 죽었으니, 이제는 정말 끝난 거였다.
  “요즘은 센 게 먹히거든. 한눈에 확 들어오는 웹소설 같은 거. 로맨스나 타임루프물 같은 거. 아니면 오컬트 같은 걸 써봐, 황 작가……”
  끝도 없이 흘러나오는 헛소리가 듣기 싫어 바닥으로 시선을 떨궜다. 검은 양말을 신은 문 국장의 발치에 구겨진 빨간 운동화가 놓여 있는 게 보였다.
  면담(이라고 불리는 해고 절차)을 마친 뒤 작가실에 있는 내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독서대와 마우스패드 같은 것들을 쇼핑백에 담았다. 칸막이 너머로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졌지만 못 본 척했다.
  프런트 데스크에 출입증을 반납하고 나니 정말 모든 게 끝났다는 게 실감이 났다. 입구 옆의 커다란 쓰레기통에 들고 있던 쇼핑백을 통째로 집어넣었다.

*

막차 시간에 맞춰 마을버스 정류장에 섰다. 아이돌 출신의 유령 기사와 마주치기 위해 그런 건 아니었고, 대학 동기 보라를 불러다 맥주를 마시다보니 공교롭게도 시간이 그렇게 됐다. 보라의 경우, 우리 과의 다른 사람들처럼 대학을 졸업하고 산림청의 공무원이 됐다. 나와 선배만이 좀 특이 케이스라 모일 때마다 다들 우리 얘기를 한다고 했다. 보라는 선배가 죽었을 때도 놀라지 않았다. 원래부터 좀 비범한 구석이 있는 사람이라, 어떻게 죽어도 이상하지 않다고 했다.
  그런가. 선배가 그렇게 비범했나?
  생각하며 막차에 올라탔는데 기사의 옆 모습이 보였다. 기사는 지난번처럼 하얗고 투명한 얼굴로 운전을 하고 있었다. 승객들이 많은데 알은척을 하기도 좀 그래서 나는 여느 때처럼 운전석 바로 뒷자리에 앉아 꾸벅꾸벅 졸았다.
  눈을 떴을 때 버스 안에 익숙한 노래가 울려퍼지고 있었다. 엑소의 〈으르렁〉이었다. 기사는 후렴에 맞춰 열심히 안무를 추고 있었다. 나는 박수를 쳤다. 노래가 끝난 후 기사는 내 맞은편 좌석에 앉았다. 역시나 힘든 기색은 없었다.
  “이건 우리 때 노랜데. 어떻게 아세요?”
  “연습곡이었어요. 클래식은 영원한가봐요.”
  “하긴 얼마 전에 연말 시상식에도 나오더라고요. 그러고 보면 아이돌이라는 게, 생각보다 수명이 긴 직업일 수도 있겠네요.”
  “에이. 아무리 그래도 버스 기사만은 못하죠. 오전 조 기사님한테 들어보니까 사대보험도 내주고 정년도 보장된대요.”
  “작가보다 훨씬 낫네.”
  “그래도 다가오는 AI 시대에 살아남는 건 크리에이터들밖에 없다던데요? 자율주행 발전하면 저희 목숨도 끝인 거죠.”
  목숨이 끝난다는 평범한 수사가 괜히 의미심장하게 들렸다. 죽고 나서도 고용불안정과 생존 걱정을 해야 하는 건지, 아니면 그저 수사적인 토로에 불과한 건지 잘 구별이 되지 않았다.
  “제가 알기론 은행이나 동사무소도 못 가는 아이돌들이 많다던데, 기사님은 세상살이에 능숙하신 거 같아요.”
  “말도 마세요. 생전엔 그냥 바보였죠. 죽고 나서…… 그러니까 여기 이렇게 묶이고 나서 사회생활을 몇 달 하다보니까, 그나마 이것저것 알게 되는 것 같아요.”
  나는 버스 밖으로 나가 자판기에서 커피 한 잔을 뽑았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커피를 기사에게 건넸다. 기사는 후후 불며 커피를 마셨다. 별 시답잖은 소리만 했는데 시간은 벌써 새벽 1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커피를 다 마신 기사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내게 물었다.
  “가보셔야 하는 거 아니에요? 얼른 주무시고, 내일 출근하셔야죠.”
  “출근할 데가 없어요. 이제.”
  “어째서요?”
  “저랑 작품을 같이 하던 피디가, 죽었거든요. 대학 선배였는데, 다들 안 된다고 하는 제 대본을 믿어준 유일한 사람이었어요. 선배가 죽고 제작이 바로 중단됐고요.”
  “아이고, 어쩌다 그런 일이……”
  “어차피 재능도 없었고…… 언젠가는 이렇게 될 줄 알았어요. 지금까지 버틴 것도 그냥 오기였어요.”
  “여러모로…… 고민이 많으시겠어요.”
  “어제가 발인이었는데…… 선배는 지금쯤 어디 있을까요? 기사님처럼 어디 묶여 있고 그러려나요?”
  “저도 저 말고 죽은 사람을 본 적은 없어서……”
  “모르긴 몰라도…… 선배는 그냥 사라져버렸을 것 같아요. 미련도 여한도 없이. 생전 하고 싶은 일은 다 하고 사는 성격이었거든요.”
  “이를테면요?”
  “이를테면……”

선배가 50부작 대하 사극의 B팀 감독으로 일했던 때가 있었다. 당시 촬영 현장의 분위기가 심상찮았다. 장마도 아닌데 예보에도 없던 비가 오고, 철야 촬영을 하던 스크립터가 발목을 접질려 제작사와 방송국을 고소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주연 배우인 K가 말에서 떨어져 중상을 입었다. 보름간 촬영이 중단됐다는 소식이 작가실로도 퍼졌다. 그러던 중 선배가 내게 전화를 걸어왔다.
  “정현아, 너 운전면허 1종이냐 2종이냐?”
  수능을 치고 난 뒤, 학교 앞에서 물티슈를 나눠주며 호객하는 운전면허 학원에 넘어가, 1종 면허 시험을 덜컥 등록했었다. 두 번의 고배를 마신 끝에 간단히 붙었는데, 친구들이 배추 장사를 할 거냐고 놀려댔다. 선배에게 그 말을 해주자 방송국 본관 앞으로 나오라고 다급히 말했다.
  슬리퍼를 끌고 본관 앞으로 나갔더니, 보도용 승합차 한 대가 덩그러니 세워져 있었다. 그 앞에 서 있던 선배가 내게 말했다.
  “얼른 운전해. 지금 해남 가자.”
  슬리퍼를 신은 데다, 장롱 면허라 장거리 운전을 해본 적이 없다고, 갑자기 무슨 해남이냐고 말해도 소용이 없었다. 선배는 막무가내로 나를 운전석에 밀어넣은 뒤, 조수석에 타 내비게이션을 찍었다. 때때로 어딘가에 꽂히면 말릴 수 없는 선배의 성격을 잘 알기에, 나는 한숨을 쉰 뒤 차를 몰고 가기 시작했다.
  다섯 시간 동안 몇 번의 죽을 고비를 넘긴 뒤, 우리는 해남의 한 맹지에 도착했다.
  “역시 내가 땅을 잘 봤다. 산세가 좋다.”
  산이라기보다는 동산에 가까운 언덕 위에 서서 선배는 주변을 휘휘 돌아보았다. 커다란 넓적 바위를 발견한 선배는 갑자기 신고 있던 등산화를 벗더니, 절을 하기 시작했다.
  1배, 2배, 3배…… 삼십분이 지났을까, 108배를 바친 선배가 하늘을 향해 소리쳤다.
  “하늘님. 감사합니다.”
  의식을 마친 선배는 고개를 홱 돌리더니 동산의 중턱에서 뭔가를 캐고 있는 노년의 여성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신발을 구겨 신은 채 정신없이 그쪽을 향해가는 선배를 나도 허겁지겁 따라나섰다. 노년의 여성은 마늘을 캐고 있었다. 선배는 허락도 없이 그녀의 바구니에 든 마늘을 집어다 껍질을 까더니 내게 외쳤다.
  “육쪽마늘이 실하다.”
  뭐 어쩌라는 것인가, 싶었는데 선배는 요령 있게 농민과 흥정을 하기 시작했다. 내가 승합차를 몰고 오는 사이, 선배는 육쪽마늘 50킬로그램을 샀다. 무거운 마늘 더미를 승합차에 옮긴 채 다시 서울로 돌아왔을 때는 자정이 넘은 시간이었다. 선배는 마늘 더미를 이고 지고 우리집에 들어오더니, 얼른 마늘을 까라고 했다. 갑자기 마늘을 왜 까냐고 항변하는 내게 비장한 표정으로 말했다.
  “영험한 땅에서 난 물건이다. 이걸 먹이면 모든 일이 해결될 거다.”
  “누구한테요?”
  “누구긴. 스태프랑 배우 모두에게!”
  “아무리 그래도…… 생마늘을 먹일 수는 없지 않을까요? 냄새도 그렇고. 식감도 그렇고.”
  “그렇네……”
  환했던 선배의 얼굴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고심하던 우리의 눈에 들어온 건, 책상 밑에 놓여 있는 마산 양조간장이었다. 마을 장터에서 탔던, 처치 곤란의 경품. 결국 선배와 나는 마늘장아찌를 담그기로 결정했다.
  이후 우리는 밤새도록 눈물을 줄줄 흘리며 마늘을 깠고, 들통에다가 뽀얀 마늘을 담고 간장을 부어 장아찌를 담갔다. 일주일 뒤 우리가 담근 장아찌가 대하드라마 현장에 배포되었다. 소문에 따르면 선배는 마늘 알레르기가 있다고 거부하는 원로 배우에게까지 억지로 장아찌를 먹였다고 했다. 덕분에 가뜩이나 위태로웠던 선배의 평판이 땅에 떨어졌다고 했다. 선배의 말대로 맹지의 하늘님이 보우해준 탓인지 아니면 우연인지, 그 이후 거짓말처럼 순조롭게 촬영을 마칠 수 있었다.

기사가 얼굴에 미소를 가득 띄운 채 물었다.
  “장아찌 맛은 어땠나요?”
  “저도 못 먹어봤어요. 스태프들 나눠주기도 모자라다고, 선배가 홀랑 다 가져가버렸거든요.”
  “저도 한번 먹어보고 싶네요.”
  “혼백에게 마늘이 괜찮을지 모르겠네요. 흡혈귀에게는 확실히 안 좋은 것 같기는 하던데……”
  “다음에 담그시면 한번 가져와주세요. 실험해보죠 뭐.”
  “사실 레시피가 잘 기억나지 않는데…… 다음이 있으려나요?”
  “끝난 줄 알았던 일에도…… 언제나 다음이 있더라고요.”
  그의 삶을 비춰보면, 틀린 말은 아니었다. 나는 왠지 기묘한 빛깔로 변해버린 기사를 뒤로 한 채 버스에서 내렸다.

*

집에 들어오는 길 무심코 재활용 쓰레기장을 바라보았다. 요 전날 버려두었던 박스가 깨끗이 사라져 있었다. 박스 속을 가득 채우고 있던 원고는 지금쯤 어디로 향하고 있을까. 시 외곽의 공장으로 가고 있으려나? 아마도 며칠 뒤쯤에는 도저히 구조를 파악할 수 없는 신묘한 기계에 빨려 들어가, 회백색의 재생 용지로 다시 태어나게 될 테지. 흰 종이를 빼곡히 채우고 있던 검은 글자들이, 낱낱이 풀어지고 해체되는 과정을 상상해보려다, 그림이 잘 떠오르지 않아 그만뒀다.

*

다음 날, 나는 일어나자마자 배드민턴장으로 향했다. 구겨진 셔틀콕을 주머니에 담은 채였다. 입구에 위치한 키오스크로 입장료를 내고 경기장으로 들어가려 했는데, 직원이 나를 막아섰다.
  “배드민턴화를 신으셔야 해요.”
  “앗…… 지난번에는 괜찮았던 것 같은데……”
  “올 초부터 생긴 규칙이에요. 바닥이 자꾸 망가져서 어쩔 수가 없습니다.”
  “산 지 얼마 안 된 운동화인데…… 어떻게 안 될까요?”
  직원이 단호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지불했던 입장료를 환불받은 뒤, 배드민턴장 바깥으로 나왔다. 주머니에 있는 셔틀콕을 만지작거리는데, 찌그러진 부분이 왠지 더 찌그러져만 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바깥에 나온 김에 노면을 따라 찬찬히 걸었다. 이따금 마을버스가 지나가 슬쩍 반가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발길이 가는 대로 걷다보니 아파트 상가의 마트에 도달했다. 아이쇼핑이나 할까 싶어 들어갔다가 나도 모르는 새 커다란 카트를 밀며 장을 보게 됐다. 양념 조미료 칸을 지나가다 스테비아 설탕이 건강에 더 좋다는 얘가 떠올라 발걸음을 멈췄다. 그게…… 누가 했던 말이었더라? 건강 정보 프로그램이나 유튜브에서 본 걸까?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장례식장에 다녀오면 어깨 위로 굵은소금을 뿌려야 한다고 했던 말은, 요전 날 보라가 했던 얘기였다. 집에 굵은소금이 없는 것 같아, 제일 작은 봉지를 집어 들었다가 내려놓았다. 혹여 마을버스 기사에게 안 좋은 영향을 미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최악의 경우 기사가 아예 사라져버릴 수도 있었다. 실직한 마당에 막차 시간이 빨라지는 일까지 겪고 싶지는 않았다. 간이 모자랄 때에는 꽃소금이나 간장을 쓰면 될 터였다. 생각이 난 김에 양조간장과 의성 마늘도 좀 샀다.
  집에 오는 길에는 마을버스를 탔다. 양손 가득 짐을 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해가 지기 전이라 그런지 낯선 기사님이 운전을 하고 있었다. 야간의 유령 기사와는 달리 운전이 좀 험한 편이라 약간 멀미가 났다. 차선을 여러 번 바꾼 덕분인지 평소보다 훨씬 더 일찍 종점에 도착했다. 주간의 버스 기사가 내 어깨를 밀치고 하차문 밖으로 뛰쳐나갔다. 그리고 곧장 화장실로 달려들어갔다.
  아무래도 살아 있는 사람이 급할 일이 많기 마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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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 안에 앉아 4세대 아이돌 뮤직비디오 모음, 이라는 제목의 영상을 틀어놓고 마늘을 까기 시작했다. 화면이 바뀔 때마다 낯선 듯 익숙한 노래들이 흘러나왔다. 유령 기사와 닮은 얼굴을 찾아보았으나, 찾을 수 없었다. 손끝이 아릴 때까지 마늘을 깠다. 분명 예전에 선배와 함께 장아찌를 담갔음에도 불구하고 레시피가 잘 기억나지 않았다. 결국 유명 요리 블로그를 참고하기로 했다. 삼십 년 차 주부라는 블로거의 레시피에 따라 마늘 눈을 따고, 간장과 소주를 함께 끓였다. 식초와 홍고추를 곁들이면 좋다고 되어 있었는데, 홍고추가 있을 리 없었다. 고민하다 냉장고 한구석에 처박혀 있던 오이고추를 넣었다. 싱크대 아래에 놓여 있던 커다란 유리병을 끓는 물로 소독했다. 원래 유리병에는 홍삼 정옥고가 가득 담겨 있었다. 편성고를 쓰다 두 번이나 쓰러진 뒤, 엄마가 보내준 물건이었다. 귀한 음식이라고 매일 식후에 두 숟가락씩 퍼먹으라고 했는데, 너무 써서 몇 번 먹다 그만뒀다. 결국 곰팡이가 생겨 다 버리고 말았다. 그 병을 이렇게 쓰게 될 줄은 몰랐다. 소독한 유리병에 끓인 간장을 부었다. 나머지 재료들을 차곡차곡 집어넣고 뚜껑을 꽉 닫았다. 보름 정도 숙성 기간이 필요하며, 그 사이 누름돌 같은 걸 올려놔야 한다고 되어 있었는데, 집 안에 딱히 무게감 있는 물건이 없었다. 원고 뭉치며, 책 같은 걸 너무 섣불리 버린 건 아닌가 잠깐 후회가 됐다. 잠시 고민하다 주머니에 들어 있던 셔틀콕을 뚜껑 위에 올려놓았다. 우리집에 있는 물건 중에 가장 묵직한 물건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구겨진 셔틀콕이 유리병 위에 갸우뚱하게 섰다. 나도 모르게 고개를 갸웃하고, 병을 바라보았다. 쪽마늘에 붙어 있던 기포 하나가 수면 위로 올라왔다.
  노트북에서 익숙한 노래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요전에 마을버스 기사가 불렀던 노래인 것 같았다. 나는 화면에 뜬 그룹의 이름을 위키백과에 검색해보았다. 7년 차 5인조 남성 그룹. 본디 6인조 그룹이었다가 작년에 멤버 중 한 명이 교통사고로 사망했다는 설명이 쓰여 있었다. 회색으로 바래 있는 한 남자의 이름을 누르니, 개인 상세 페이지로 연결됐다. 생전 그룹에서 비주얼 센터의 롤을 맡았다고 했다. 연습생 기간이 긴 데 반해 댄스 실력이 시원찮아 뚝딱이로 유명하다는 말도 쓰여 있었다. 유령이기 때문에 동작의 정밀도가 떨어지는 줄 알았는데, 본디 춤을 잘 못 추는 사람인 모양이었다. 죽어서도 변치 않는 일들이 있었다.
  나는 그들의 대표곡을 검색해 플레이리스트를 만들었다. 그리고 유령 기사가 췄던 동작들을 떠올리며 더듬더듬 춤을 추기 시작했다. 어쩌면 다음번에 기사를 만나게 되었을 때 함께 춤을 출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박상영

2016년 문학동네 신인상을 받으며 데뷔했다. 소설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 『대도시의 사랑법』 『1차원이 되고 싶어』 『믿음에 대하여』를 썼다.

가장 빛나야 할 순간에, 가장 초라해져버린 사람들의 얘기를 쓰고 싶었습니다. 얼마 전 서른여덟 살이 되었고, 때때로 인생의 반짝거림에 총량이 있는 것 아닐까 하는 두려움에 사로잡히고는 합니다. 냉동 블루베리는 이제 잘 먹지 않습니다. 자신도 모르는 새 곁을 내어주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계속 쓸 작정입니다.

2026/03/18
78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