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눈동자를 보고 있다. 11층에 멈춰 있는 엘리베이터 거울 속 눈동자는 내 눈동자다. 나는 눈동자를 살짝 째려보며 내 얼굴에 눈동자가 존재하고 있다는 걸 스스로에게 일깨운다. 눈동자가 있다는 걸 스스로에게 확인시켜주는 것만으로 안도감이 들기 때문이다.
  한순간 얼굴이 증발하듯 사라지고 두 눈동자만 덩그러니 우주에 떠 있는 두 행성처럼 거울에 남는다. 두 행성 사이에는 빛의 속도로만 측정 가능한 시차가 있다. 나는 멀미를 달고 사는데 두 눈동자 사이에 발생한 시차 때문이다. 게다가 두 눈동자는 진동 속에 있다. 내 얼굴이 베개 위에 돌처럼 놓여 있을 때조차 두 눈동자는 아래위로 진동하고 있다. 그래서 두 눈동자가 바라보는 사물들도 덩달아 진동한다. 의자, 문, 벽, 나무. 두 눈동자가 진동하는 한 세상에 고정된 것은 없다.
  내 눈동자의 진동 속도는 0.07초쯤 된다. 내 의지로 진동을 멈출 수 없지만 속도 조절은 가능하다. 눈동자에 들어가는 힘을 조절함으로써, 눈동자의 진동 속도를 세 배속 빠르게 할 수 있다.
  두 눈동자가 진동하며 오른쪽으로 쏠린다. 종종 있는 일로 왼쪽 눈동자보다 오른쪽 눈동자 시력이 그나마 좋아서다. 내가 보는 세상은 시력이 0.02인 오른쪽 눈동자가 보는 세상으로, 아홉 살 때 나는 안구진탕증과 함께 선천성 저시력 판정을 받았다. 그때까지 나는 세상이 간유리 너머로 들여다보듯 어렴풋하고 일그러져 보이는 걸, 흔들리는 걸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나는 세상이 원래 그렇게 몽롱하고 쉼 없는 진동 속에 있는 줄 알았다.
  엘리베이터가 출렁이더니 1층까지 곧장 추락한다.

습기를 잔뜩 머금은 바람에서 한여름의 짙은 풀냄새와 석유 냄새가 난다. 아파트에서 멀지 않은 곳에 주유소가 있다. 하늘, 구름, 태양, 초록빛 얼룩이 드문드문 떠다니는 벌판, 도로, 마을버스 정류장 표지판…… 또렷하게 보이는 것은 없지만 그렇다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것도 아니다.
  나는 하늘을 올려다본다. 내가 보고 있는 것은 하늘이 아니라 하늘에 깔린 색깔이다. 전체적으로 옅은 파란색이고 아래쪽으로 갈수록 짙어지고 있다. 서쪽 하늘에는 흰색과 옅은 회색이 언뜻언뜻 섞여 떠돌고 있다. 그리고 하늘 어딘가에서 까마귀가 날고 있다. 이곳에는 까마귀가 많고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 나는 혼자 날아가는 까마귀는 보지 못하지만 무리 지어 날아가는 까마귀들은 볼 수 있다.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는 도심에 조금 멀리 떨어진 외진 곳에 자리하고 있다. 가장 가까운 지하철역인 병점역까지 가려면 배차간격이 이십 분인 마을버스를 타고 십오 분쯤 가야 한다. 마을버스는 대형 마트와 자전거 부품 공장과 물류창고와 아파트 단지 두 곳을 지나고,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고 있는 벌판 사이로 난 6차선 도로를 달리다 병점역 앞에서 하차한다.
  나는 4차선 도로 옆 인도를 걸어 내려간다. 두 눈동자가 진동해서 나는 진동하며 걷는다. 그래서 두 발이 박히다 만 못처럼 헛돌고 있는 것 같다.
  안경을 쓰면 세상이 훨씬 선명하게 보이지만 나는 안경을 일부러 책상 위에 두고 나왔다. 안경을 쓰면 사물이 가로, 세로 1센티미터쯤 줄어들어 보인다. 줄어들어 보이는 것보다 흐리게 보이는 게 낫다. 특히 사람 얼굴을 볼 때 더 그렇다. 가로, 세로 1센티미터가 줄어들면서 찌그러진 얼굴은 내게 외계 생명체를 보는 것 같은 낯설고 기묘한 느낌을 준다.
  버스에서, 지하철에서, 패스트푸드점에서 나는 모르는 사람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곤 한다. 얼굴은 빗물 얼룩처럼 흐리다. 그래서 입술 색이 번지며 만들어내는 모양으로 표정을 짐작한다. 끈질기게 쳐다보다 보면 얼굴이 살짝 선명해지는 순간이 있다. 하지만 그 순간은 번개처럼 지나가버린다.
  사람들 얼굴은 물속 깊이 가라앉고 있는 물고기처럼 점점 흐릿해지고 뭉개지고 멀어지고 있다. 그것은 내 시력이 나빠지고 있다는 뜻이다. 아홉 살 때 0.08이던 오른쪽 눈의 시력은 점점 떨어져 스무 살이 되던 해 0.02로 떨어졌다.
  내가 사람 얼굴을 쳐다보는 것은 눈동자가 보고 싶어서다. 다른 사람들 얼굴에도 눈동자가 있다는 걸 확인하고 싶어서다.
  마을버스 정류장 표지판 너머 구름에 내 눈길이 간다. 모차렐라치즈 덩어리 같은 구름이 불쑥 내게 레의 눈동자를 떠오르게 한다.
  ‘레…… 그런 애가 있었지.’
  내가 레의 눈동자를 본 것은 우연이었다. 고등학교 삼 년 내내 같은 반이었지만, 레의 눈동자는 거의 항상 눈꺼풀에 덮여 있었다. (아마도) 카스텔라처럼 폭신하고 부드러울 눈꺼풀이 소리 없이 열리며 눈동자가 드러나는 순간이 아주 간혹 있었는데, 그때 그애의 눈동자를 봤다.
  레는 선천성 전맹으로 세상에 태어나 빛도 본 적 없다. 빨강, 노랑, 파랑 같은 색깔도 본 적 없지만 그애는 사과가 빨간색이라는 걸 알고 있다. 사과도 본 적 없는 그애는 ‘사과는 빨개’라고 말할 때 머릿속으로 뭘 떠올릴까? 레는 그냥 ‘사과는 빨개’라는 문장을 앵무새처럼 중얼거리는 게 아닐까?

레가 처음 내게 말을 걸어온 것은 내가 일반 중학교를 졸업하고 진학한 특수학교에서 같은 반이 되고 한 달쯤 지나서였다. 고작 다섯 명인 반 아이들 중 나를 제외한 네 명이 레처럼 빛조차 보지 못하는 전맹이었다. 저시력인 나는 소외감 같은 걸 느끼며 겉돌고 있었다.
  쉬는 시간에 레가 갑자기 높고 밝은 목소리로 내 이름을 불렀다.
  “파, 꿈에 네가 나왔어!”
  “내가?”
  “응, 어젯밤 내 꿈에 네가 나왔어.”
  “내가 어떻게 나왔는데?”
  “꿈에 네 목소리가 날 불렀어.”
  “……?”
  “레, 레, 레, 레……” 레는 음정을 높이며 자신의 이름을 불렀다. “네 목소리였어. 난 대답을 안 했어. 레, 레, 레…… 네 목소리가 계속 날 불렀어.”
  레는 내 모습을 본 적 없다. 교실에서 그애는 내 목소리를 듣고 내 존재를 알아차렸다. 그애처럼 선천성 전맹인 사람의 꿈에 누군가 나왔다는 것은 모습이 아니라 목소리가 들려왔다는 뜻이라는 걸, 나는 그애가 들려준 꿈 얘기를 듣고서야 알았다.
  “파” 하고 부르며 곧잘 말을 걸어오던 레가 나를 새침하게 대하기 시작한 것은 바다 얘기를 나누고 난 뒤부터였다. 여름방학을 보내고 다시 학교로 돌아온 나는 침울히 앉아 있었다. 1교시가 끝나자마자 레는 흥분한 목소리로 여름방학 동안 이모네 가족과 양양 앞바다에 놀러 갔던 얘기를 아이들에게 들려줬다.
  “나는 엄마가 새로 사준 노란색 수영복을 입고 바다에 들어갔어. 바다가 아주 파랬어. 바다는 파란색이니까.”
  “바다는 여러 색깔이야.” 나는 그냥 별생각 없이 그렇게 말했다.
  “여러 색깔?” 레가 차갑게 돌변한 목소리로 물었다.
  “한 가지 색깔이 아니라 여러 색깔. 파란색, 하얀색, 남색, 보라색, 은색, 회색……” 나는 초등학교 3학년 때 봤던 주문진 바다에 떠돌던 색깔들을 떠올리며 나열하듯 중얼거렸다.
  레도, 레의 말을 귀담아듣던 아이들도 조용해진 걸 깨닫지 못하고 나는 계속 중얼거렸다.
  “그리고 바다마다 색깔이 달라. 내가 봤던 바다들은 색깔이 다 달랐어.”
  레의 눈꺼풀이 올라가며 눈동자가 드러난 것은 그때였다. 그애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리더니 마른 나뭇잎이 말리듯 올라가며 눈동자가 드러났다. 꽃받침처럼 펼친 양 손바닥 위에 턱을 괸 그애의 얼굴은 내 얼굴과 무척 가까이 있었다. 게다가 나는 안경을 쓰고 있었다. 그애의 눈동자가 드러나는 순간 나는 몹시 놀랐다. 눈동자는 내가 그동안 봤던 눈동자들과 무척 달랐다. 나는 새의 눈동자를 보지 못했으면서 그애의 눈동자는 새의 눈동자 같다고 생각했다.

레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 졸업 후 나는 그애 소식을 전혀 듣지 못했다. 레와 단짝이었던 미의 소식은 두 주 전쯤 솔에게서 들었다.
  나는 솔에게 레의 소식을 물어보려다 만다. 내가 레에게 관심이 있다고 오해할지도 모른다. 4년제 대학교 사회복지학과에 진학한 솔은 불쑥 내게 전화를 걸어오곤 한다. 시각장애가 없는 학생들에 맞춘 학과 진도를 따라가느라 얼마나 답답하고 힘든지 털어놓다 전화를 끊는다. 일반 학생들은 한두 시간이면 충분한 과제를 작성해 제출하기 위해 솔은 대여섯 시간을 들여야 한다. 사회복지사가 되고 싶어서 그 학과에 진학했지만 전맹인 자신이 사회복지사로 살아가려면 얼마나 큰 인내와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지 뒤늦게 깨닫고 고민이 많다.
  레와 미는 여전히 친하게 지낼까? 솔이 전한 소식에 따르면, 미는 특수학교를 졸업하고 서울 여의도에 있는 보험회사에 헬스키퍼로 취직했다. 그애는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경기도 산본에서 여의도까지 지하철을 두 번 갈아타고 보험회사에 출근한다. 헬스키퍼 경력이 16년 차인 (미가 란 언니라고 부르는) 시각장애인과 함께 보험사 직원들에게 안마를 해준다. 미는 란 언니를 친언니처럼 따르고, 퇴근 후 그녀와 함께 극장에서 영화를 보고 쇼핑하는 게 커다란 즐거움이지만, 그녀와 함께 있으면 문득문득 이유도 없이 슬퍼진다. 그녀와 함께 지하철을 타고 가다 슬퍼져서 눈물을 흘린 적도 있다. 마흔 살인 란 언니는 미처럼 선천성 전맹으로, 노량진역 근처 오피스텔에서 혼자 살고 있다. 란 언니는 밤이 되면 심장이 녹아내리는 것처럼 외롭고, 나이가 들수록 자신이 더 외로워질 거라는 공포에 시달리다 불면증 약을 먹고 겨우 잠든다. 미와 란 언니는 요즘 꽃꽂이를 배우러 다니고 있다.
  “꽃들도 얼굴이 있다지 뭐야. 꽃들 얼굴이 가장 예쁘게 보이는 각도로 꽃들을 꽂아줘야 한다나…… 미는 손으로 만져서 얼굴을 느낀다네.
  “미는 잘 지내는구나.” 내가 무심히 중얼거린 말에 솔이 퉁명스레 대꾸했다.
  “그렇지도 않아.”
  헬스키퍼실에 찾아와 안마를 받는 직원이 하루 평균 네다섯 명이지만, 몸집이 왜소한 미는 헬스키퍼 일이 벌써부터 힘에 부친다. 그애의 키는 150센티미터 남짓이다. 그애는 지금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다. 그애가 헬스키퍼로 취직하고 부산에 살던 어머니가 그애를 찾아왔다. 미의 부모는 그애가 다섯 살 때 이혼했다. 그애는 외할머니에게 맡겨졌다.
  “정말 염치도 없지. 맹인인 딸이 자랄 때는 제대로 돌보지도 않더니 취직해 돈을 버니까 빌붙어 살려고 나타난 거잖아.”
  솔은 미의 어머니에게 분노를 드러냈다. 내가 별 반응이 없자 솔이 불쑥 물어온다.
  “파, 넌 어때?”
  “뭐가?”
  “대학생활 재밌어?”
  “그냥 그래.”
  “나보다는 훨씬 낫겠지.”
  “왜 그렇게 생각해?”
  “파, 넌 그래도 보이잖아.”
  그러고 보니 고등학교 2학년 때 통학버스에서도 솔은 비슷한 말을 내게 했다.
  “파, 넌 좋겠다.”
  “뭐가?”
  “넌 보이니까 혼자서 어디든 갈 수 있을 거 아니야.”
  “어디든?”
  “네가 가고 싶은 곳은 어디든.”
  나는 내 눈이 멀어가고 있는 걸 솔에게 말하지 않았다. 내 눈이 계속 멀어 빛조차 볼 수 없게 된다 하더라도 나는 그 소식을 솔에게 전하지 않을 것이다. 눈이 멀어가는 게 부끄러워서는 아니다. 눈이 멀어가고 있다는 데서 오는 불안과 공포, 슬픔을 온전히 이해받을 수 없을 테니까.
  눈이 멀어간다는 게 어떤 건지 솔은 모른다. 눈이 멀어 세상에 태어났다는 게 어떤 건지 내가 모르듯이.

솔, 너는 여전히 내가 세상 어디든 혼자서 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니?
  내가 정말로 가고 싶은 곳은, 혼자서 걸어가 닿고 싶은 곳은 지평선이야.
  하지만 솔, 나는 아직 지평선을 보지 못했어.


나는 시선을 최대한 길게 뻗는다. 먼 곳을 바라보면 시력이 좋아진다는 글을 책에서 읽은 뒤로 나는 길을 걸어가거나 버스를 타고 갈 때면 의식적으로 먼 곳을 바라보려 한다. 더 먼 곳, 더 먼 곳, 가장 먼 곳…… 바다에서 가장 먼 곳은 수평선이다. 땅에서 가장 먼 곳은 지평선이다. 나는 수평선은 봤지만 지평선은 보지 못했다. 주문진 앞바다 끝에 길게 곡선을 그리며 휘어지며 떠 있는 게 수평선이었다. 수평선 색깔은 기억나지 않는다.
  내가 지평선을 보지 못한 것은, 내가 태어나고 살았던 곳에 지평선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 살고 있는 곳에도. 도로, 물류창고들, 공장 건물들, 비닐하우스들, 아파트들에 가려져 지평선은 없다.
  내 눈은 먼 곳을 보지 못해서 멀어가고 있는 게 아닐까.

나는 마을버스 정류장을 지나 삼거리 쪽으로 걸어 내려간다. 삼거리를 중심으로 아파트들이 모여 있고, 삼거리에서 바깥으로 멀어지면서 아파트들이 드문드문하다.
  4차선, 6차선 도로가 벌판을 조각조각 가르며 뻗어 있다. 원래는 하나의 거대한 벌판이었지만, 쪼개지고 떨어져 섬처럼 떠도는 벌판들에는 신축 고층 아파트가 우뚝 서 있거나 지어지고 있다. 그냥 빈 채로 황량하게 버려져 있는 벌판도 있다.
 작년 가을, 부모님은 입주를 시작한 고층 아파트들로 이사했다. 그전까지 우리 가족은 수원터미널 근처 빌라에 살았다. 아파트에서 살아보는 게 꿈이던 어머니는 마스크 공장에서 포장하는 일을 하고 있다. 이곳 아파트로 이사하면서 어머니는 공장을 옮겼다. 부모님은 아파트를 분양받기 위해 은행에 꽤 빚을 졌다. 어머니는 내 눈 시력이 나빠지고 있다는 걸 모른다. 내 오른쪽 눈의 시력이 여전히 0.08인 줄 알고 있다. 어머니는 아무래도 내 시력이 언제까지 0.08에 고정돼 있을 거라고 믿고 있는 듯하다.
  나는 어쩌면 지평선을 볼 수 없는 게 아닐까. 수평선이 보였던 것은 그것이 가까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지평선은 수평선보다 멀리 있는 것이니까.

레, 넌 지평선을 본 적 있어?
  넌 새도 봤으니까.


“파, 우린 도의 새를 봤어.”
  여름방학 전이니까, 우리가 아직 바다 이야기를 나누기 전이었다. 친할머니가 돌아가셔서 나흘을 결석하고 다시 학교에 돌아온 내게 레는 그렇게 말했다.
  “파, 우린 도의 새를 봤어.” 레 옆에 마네킹처럼 가만히 있던 미가 돌림노래를 부르듯 말했다.
  도는 새를 길렀다.
  다혈질적이고 폭언을 퍼붓곤 하는 아버지 때문에 불안한 가정환경에서 자랐지만 항상 웃는 얼굴이던 그애도(그애의 다소 큼직한 입은 늘 활짝 벌어져 있었다) 졸업 후 헬스키퍼가 됐다. 레는 우리 반 남자아이들 중(고작 세 명이지만) 도가 가장 잘생겼다고 말하곤 했는데, 순전히 도의 목소리가 속삭이듯 부드럽고 다정해서였다. 음악 선생님은 도가 안드레아 보첼리 같은 성악가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하지만 그애의 부모님은 안드레아 보첼리를 모를뿐더러 자신들의 눈먼 아들이 노래를 얼마나 잘 부르는지 몰랐다.
  내가 별 대꾸가 없자 레가 다시 말했다.
  “파, 우린 도의 새를 봤어. 도가 어제 새장을 학교에 가져왔어. 새가 자꾸 우니까, 아버지가 화를 내며 새를 내다버리겠다고 했대.”
  “도의 아버지는 화를 너무 잘 내.” 미가 말했다. “도의 아버지는 화가 나면 화분도 부수고, 텔레비전도 부숴. 불쌍한 도……”
  “도는 아버지가 정말로 새를 내다버릴까봐 새장을 학교에 가져왔어. 교실에 들어서는데 새 울음소리가 들려서 깜짝 놀랐지 뭐야.” 레가 말했다.
  “난 새는 싫어.” 솔이 투덜거렸다.
  “사회 시간에 새가 자꾸 울었어. 내가 새를 만져보고 싶다고 조르니까, 사회 선생님이 교실 창문을 전부 닫았어. 교실 문도 다 닫고 새장에서 새를 꺼내 내 손바닥에 놓아줬어.” 흥분해 가빠진 숨을 토하고 나서야 레는 다시 말을 이었다. “난 깜짝 놀랐어. 새가 눈송이처럼 가벼워서.”
  “레, 새가 눈송이처럼 가벼울 순 없어.” 솔이 말했다.
  레는 솔의 말을 무시하고 계속 말했다. “새가 날아가지 않고 가만히 있었어. 난 새를 만졌어. 도의 새는 우유처럼 하얀색이야. 부리는……”
  “사회 선생님이 나보고도 새를 만져보라고 했는데 난 무서워서 싫다고 했어.” 미가 약간 풀 죽은 목소리로 말했다. “난 살아서 꿈틀거리는 게 무서워. 내 손가락을 물 것 같단 말이야. 난 물고기도 죽은 물고기는 안 무서운데 살아 있는 물고기는 무서워.”

레, 새의 부리는 무슨 색깔이었어?

레는 종종 ‘봤다’고 말하곤 했다. ‘내가 보니까 말이야.’ ‘내가 봤는데 말이야.’…… 그래서 그 애들이 누군가를, 또는 뭔가를 봤다고 말할 때 나는 그냥 무심히 흘려들었다. 하지만 그 애들이 내게 도의 새를 봤다고 말했을 때 나는 기분이 이상했는데, 정말로 도의 새를 봤다는 소리로 들렸기 때문이었다.

레, 지금 뭘 보고 있어?

교실 유리창으로 비쳐 들던 빛 속에 석고상처럼 앉아 있던 레의 등뒤에 대고 중얼거린 적이 있다. 교실에는 레와 나, 둘뿐이었다. 레는 교실에 자신 혼자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나는 숨소리도 내지 않고 내 자리에 앉아 있었다. 레의 고개가 들리더니 뒤를 돌아다봤다. 나는 안경을 쓰고 있지 않았다. 그래서 그애의 얼굴은 김이 서린 거울처럼 보였다.
  “누구야?”
  “……”
  “누구 있어?”
  “……”
  “아무도 없어?”

*

삼거리까지 50미터쯤 남겨두고 세발자전거만 한 뭔가가 슬그머니 들어선다. 개다…… 개는 제법 몸집이 있다. 자그마한 개였으면 내 눈에 띄지 않았을 것이다. 감자 색깔의 솜뭉치가 둥둥 떠가는 것 같은 개가 나는 그 개일 것만 같다. 엿새 전 병점역에 다녀오는 길에 웬 개가 6차선 도로를 느릿느릿 건너는 걸 봤다. 나는 병점역과 삼거리를 오가는 마을버스에 타고 있었다. 마을버스는 대형 마트 근처 횡단보도 앞에 신호를 받고 서 있었다. 6차선 도로로는 공장과 물류창고, 아파트 공사 현장을 오가는 덤프트럭들이 수시로 내달린다. 마침 텅 비어 있었지만 언제, 어느 쪽에서 덤프트럭이 무서운 속도로 달려올지 몰랐다. 개는 무사히 도로를 가로질러 맞은편 인도로 올라섰고 초록빛이 얼룩덜룩 번진 벌판으로 지워지듯 사라졌다.
  버려진 개일까? 외지고 한적한 데여서 일부러 이곳까지 찾아와 개를 버리고 가는 사람들이 있다.
  개를 버리는 것은 눈동자를 버리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저 개가 버려진 개라면 저 개를 버린 사람은 눈동자 두 개를 버린 것이기도 하다.
  며칠 전 새벽, 세면대 거울 속 내 눈동자를 들여다보며 나는 내 눈에 보이는 것만 세상에 존재한다고 믿기로 다짐했다. 그러므로 저 개는 존재한다. 별은 존재하지 않는다. 내 눈에 보일 때 별은 존재하는 빛이었지만, 내 눈에 보이지 않게 된 뒤로 우주 어디에도 없는 것이 됐다. 도의 새도 존재하지 않는다. 전맹인 레와 미가 보았다는 그 새를 나는 보지 못했으니까.
  개와 나와의 거리는 10미터쯤 된다.
  저 개는 어디서 와서 내 눈앞에 존재하는 걸까. 저 개가 언제까지 존재할지, 끝까지 따라가 보고 싶은 충동이 든다.

갑자기 착시가 일어나며 개가 빨간 점으로 떠오른다. 깜박, 깜박……

깜박, 깜박…… 직사각형 화면에 검은 점들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었다. 검은 점들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개미 떼가 이동하듯 흘러갔다. 한순간 화면이 꺼졌다 켜지면서 검은 점들 중 하나가 빨간 점이 돼 별처럼 깜박 떠올랐다. 빨간 점에 초점을 맞춰야 했지만 내가 초점을 맞추기 전에 빨간 점은 사라지고 다른 곳에서 떠올랐다. 열 살 때 종합병원 안과에서 받았던 그 검사 후 나는 시각장애인 판정을 받았다.

깜박, 깜박…… 나는 빨간 점으로 떠오른 개에게 초점을 맞추려 눈에 힘을 준다.

개는 삼거리를 지나 북쪽으로 난 4차선 도로 옆 인도를 따라 올라간다. 개는 다리 하나를 절룩이는 것 같기도 하다. 바퀴 하나가 빠진 네발자전거나 유모차처럼 균형이 무너져 있다.
  나는 개를 쫓아 성큼성큼 발을 내딛는다. 개와의 거리가 5미터쯤까지 좁혀지며 연필 소묘처럼 흐릿하던 실루엣이 조금 선명해진다.
  나는 걷는 걸 무척 좋아하고, 종일 걸을 수도 있지만, 잘 못 걷는 것처럼 걷는다. 형이 그러는데, 나는 걸음마를 익힌 지 얼마 안 된 아이처럼 걷는다.
  개와의 거리를 좀더 좁히려 보폭을 크게 벌리며 발을 놓던 나는 멈칫 선다. 개가 꼬리를 다리 사이로 늘어뜨리고 날 바라보고 서 있다. 개의 뭉개져 보이는 얼굴이 날 향하고 있다.
  개를 바라보는 내 눈동자의 진동이 빨라진다. 당황하거나 불안해지면 내 눈동자의 진동은 저절로 빨라진다. 눈동자가 빠르게 진동해 개의 실루엣이 여러 개로 흩어져 보인다. 한 마리가 아니라 대여섯 마리가 무리 지어 있는 것 같다.
  개는 날 바라보기만 할 뿐 짖지 않는다. 내 눈동자의 진동이 제 속도를 찾으며 개는 여러 마리에서 다시 한 마리가 된다. 불쑥 개에게 내가 보이지 않는 게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든다. 그래서 저 개가 짖지 않는 게 아닐까.
  사람들 모습이 흐려지듯, 내 모습 역시 흐려지고 있는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힐 때가 있다. 점점 흐려져 내 모습이 사람들 눈에 보이지 않게 되는 날이 올 것 같은 불길한 예감마저 든다.
  좀비 같은 존재로 사느니 유령 같은 존재로 사는 게 나을까? 교실에서 좀비 같은 존재이던 내가 아무 소리도 내지 않으면 전맹인 아이들은 내가 없는 줄로 착각했다. 교실에서 나는 ‘있다’는 걸 숨기려 일부러 숨소리를 아주 작게 내곤 했는데, 번번이 미에게 들키곤 했다. 그애는 소리에 무척 민감해서 내가 안경을 추어올리는 소리를 듣고도 나의 ‘있음’을 단박에 알아챘다. 미는 수줍음을 잘 타고 수업 시간에 선생님의 질문을 받으면 말을 더듬을 만큼 자신감이 없었지만 빨강머리 앤을 좋아해서 머리를 길게 땋고 다녔다. 그리고 레처럼 어서 스무 살이 되고 싶어 했다. 미가 스무 살이 돼 가장 하고 싶은 것은 화장이었다. 보지 못하는 자신의 얼굴에 화장을 하고 싶어 했던 미를 나는 어디서도 다시는 만나지 못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이유는 모르겠다. 그냥 그런 생각이 든다.

“파, 뭘 보고 있어?”
  도가 내게 그렇게 물었을 때 우리는 신호등이 바뀌기를 기다리며 횡단보도 앞에 서 있었다. 보행 지도 수업 시간이었고, 도의 손에는 흰 지팡이가 들려 있었다. 일주일에 한 번 우리는 학교 밖으로 나가 보행 지도 수업을 받았다.
  “뭘?”
  “그냥 네가 지금 뭘 보고 있는지 궁금해서.” 도가 말했다.
  “무지개.”
  “와, 무지개가 떴나보네?”
  마침 신호등이 바뀌었고 우리는 횡단보도로 발을 내딛었다. 도는 직선을 그리지 못하고 사선을 그리며 횡단보도를 건넜다. 도는 무지개를 본 적 없지만 그게 뭔지 책에서 봐서 알았다.
  내가 보고 있던 무지개가 하늘에 뜬 무지개가 아니라는 걸, 내 흔들리는 눈동자에 뜬 무지개라는 걸 나는 도에게 말하지 않았다. 내 오른쪽 눈동자에 눈물이 고이고 햇빛이 사선으로 비쳐 들면 무지개가 뜬다. 눈동자가 진동 속에 있는 데다 사시여서, 햇빛이 눈동자에 맺힌 눈물방울을 통과할 때 굴절과 반사가 일어나며 무지개가 뜨는 걸 거다.
  내 오른쪽 눈동자에 뜨는 무지개는 일곱 색깔이 아니라 다섯 색깔이다. 빨강, 노랑, 초록, 파랑, 보라. 처음 내 오른쪽 눈동자에 무지개가 뜬 건 일곱 살이던 여름 어느 날이었다. 나는 집 앞 놀이터에서 초록색 구름다리를 건너고 있었다. 세 살 터울인 형이 날 소리쳐 부르는 소리를 듣고 고개를 돌리는 순간 햇빛이 내 눈동자에 비쳐 들며 무지개가 떴다.
  그때 레와 단둘이 교실에 있을 때도 내 오른쪽 눈동자에 무지개가 떴었다.

도, 넌 뭘 보고 있어?

레, 넌 지금 뭘 보고 있어?

미는 란 언니를 바라보고 있을 것 같다. 그애가 란 언니를 바라보는 것은 그녀가 미래(未來)처럼 미 앞에 앉아 있기 때문이다.

무지개는 점자로 어떻게 쓸까?
  요즘 나는 점자를 배우는 문제를 두고 고민이다. 고등학교 때 과목 중에 점자 수업이 있었지만, 배우려고 하지 않아서 나는 점자를 읽지 못한다. 내가 점자를 멀리한 이유는 내 눈에는 글자가 보이기 때문이었다. 책이나 스마트폰을 콧등이 닿을 만큼 가까이 두고 한 글자씩 도장 찍듯 읽어야 하지만 말이다.
  초점이 흔들려서 나는 한 번에 한 글자만 읽는다. 그래서 읽는 속도가 무척 더디지만, 그래서 문장을 읽을 때 나는 한 글자도 빠뜨리지 않고 읽는다.

날 보고 있는 게 아니라면 저 개는 뭘 보고 있는 걸까. 나는 뒤를 돌아다본다. 내 뒤에 아무도 없다. 나는 문득 우주를 통틀어 눈동자를 가진 존재가 저 개와 나, 둘뿐이라는 상상을 해본다. 그러자 개의 눈동자는 어떻게 생겼을까 궁금해지며, 개의 눈동자가 보고 싶다.
  라는 내 눈이 멀 거라는 걸 예감했던 걸까? 그는 내게 진지하게 점자를 배워두는 게 좋을 거라고 충고했었다. 나처럼 선천성 저시력이었던 그는 서른세 살 되던 해 시력을 완전히 상실하고 전맹이 됐다. 그가 교사가 된 건 전맹이 되고 나서였다. 그는 우리에게 영어와 안마를 가르쳤다. 내가 점자를 읽지 못한다는 걸 우연히 알고 그는 나를 인체모형실로 불렀다.
  2층 복도 끝에 자리한 인체모형실은 거의 항상 창문이 전부 닫혀 있었다. 라는 수업이 없는 시간에 교무실이 아닌 그곳에서 혼자 머물곤 했다. 내가 인체모형실로 갔을 때 그는 진열장 앞 책상에 앉아 있었다.
  “파야, 나는 내 눈이 멀어가는 걸 느끼면서도 내 눈이 완전히 머는 날이 올 거라고는 생각 못 했어. 열세 살 때 0.03이던 내 눈은 이십 년이라는 긴 시간을 두고 서서히 멀었어. 옷에 달린 단추가 보이지 않더니, 옷에 프린트된 무늬가 보이지 않더라. 염색물이 빠지듯 옷 색깔이 흐려지더니 옷이 보이지 않았어. 나는 보이지 않는 옷을 내 몸에 입히며 내 눈이 결국은 완벽하게 멀었다는 걸 깨달았어.”
  나는 라의 어깨 너머 유리 진열장을 바라봤다. 문손잡이가 없어서 영원히 열 수 없을 것 같은 진열장 안에는 혈 위치를 나사못 같은 걸로 박아 표시한 전신 인체 모형이 전시돼 있었다. 두 발이 한 뼘쯤 허공에 떠 있는 인체 모형은 내게 섬뜩한 기분을 들게 했다. 아무 표정이 없는 벌거벗은 남자가 나사못을 몸 곳곳에 박고 서 있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이었다. 옆 진열장에는 태아 모형 다섯 개가 일렬로 진열돼 있었다. 자궁 속 태아가 점점 자라 마침내 자궁 밖으로 머리를 내밀고 세상에 태어나는 과정을 보여주는 태아 모형들을 보면서는 눈동자가 없는 아기가 태어나는 상상을 하곤 했다.
  라가 천천히 눈을 감았다 떴다. 그의 얼굴이 내가 아닌 다른 곳을 향했다. 라는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말하듯 중얼거렸다.
  “내게는 보려는 몸짓이 아직 남아 있어.”
  나는 라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보려는 몸짓말이야. 나는 보았던 적이 있으니까……”
  그만 일어서서 문 쪽으로 걸어가는 내게 그가 말했다.
  “파, 교실 불 좀 켜주겠니? 밝은 곳에 있고 싶네.”
  인체모형실 천장 형광등마다는 환하게 불이 들어와 있었다. 나는 교실 문 옆 스위치를 소리 나지 않게 꾹 눌렀다, 다시 탁 소리 나게 한 차례 더 눌렀다.

개는 다시 북쪽을 향해 걷는다. 개의 실루엣이 점점 흐려져, 지우개로 지우고 남은 자국처럼 흐려지고 나서야 나는 개를 쫓아 발을 내딛는다.
  학기가 바뀌고, 수학여행을 다녀온 지 얼마 안 돼 라가 학교를 결근한 일이 있었다. 점심시간이 지나고 아이들 사이에는 라가 사귀던 여자친구와 헤어졌고 그 충격으로 무단결근했다는 소문이 빠르게 돌았다. 이별의 이유를 몹시 궁금해하는 레와 미에게 솔이 말했다.
  “그냥 여자친구가 떠난 거야.”
  “왜? 왜 떠나?” 레가 물었다.
  “왜? 정말 몰라서 묻는 거야?” 솔이 되물었다.
  “왜 떠났는데? 왜? 왜?” 레가 솔에게 대답을 재촉했다.
  “맹인이니까 떠난 거야. 다른 이유 같은 건 없어. 라 선생님이 맹인이니까 여자친구가 떠난 거야.”
  “아니야, 사랑하지 않으니까 떠난 거야.” 레가 말했다.
  “레, 너 바보구나.”
  “솔, 바보는 너야. 그 여자는 라를 사랑하지 않아서 떠난 거야. 사랑하면 떠날 수 없어. 사랑하는데 어떻게 떠나?”
  레의 흥분한 목소리는 수업 시작을 알리는 음악 소리와 함께 교실에 울렸다.
  새로운 한 주가 시작되고, 궁금한 걸 참지 못하는 레가 영어 수업 시간에 불쑥 물었다.
  “선생님, 여자친구하고 헤어졌어요? 왜 헤어졌어요? 왜요?”
  수업에 집중하지 못하던 아이들의 얼굴이 라를 향해 들렸다. 하지만 교실에서 라를 볼 수 있는 학생은 나 혼자였다.
  “여자친구하고 헤어진 충격 때문에 학교에 안 나오셨던 거예요?”
  “레, 나는 바다를 보러 갔었어.”
  “바다요?” 솔이 물었다.
  “바다가 보고 싶어서 새벽 첫 고속버스를 타고 바다를 보러 갔어. 바다를 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못 봤어. 하지만 바다는 내 앞에 있었어. 밀려가고 밀려오며 내 앞에 있었어.”

라 앞에 보이지 않는 옷이 놓여 있다.
  옷은 레가 본 바다처럼 아주 파란색이다.
  옷은 밀려가고 밀려오며 라 앞에 놓여 있다.
  라는 옷이 밀려오길 기다려 손을 뻗는다. 그것을 들어 자신의 몸에 입힌다.


인체모형실에서 라가 입고 있던 옷은 파란색 반소매 티셔츠였다. 그리고 레는 여자친구가 라를 떠난 이유에 대해 결국 듣지 못했다.

아주 파란색 바다를 입은 라가 밀려가고 밀려온다.

개가 인도를 벗어나 벌판으로 들어간다. 노란색과 녹색 물감을 섞어 칠해놓은 것 같은 잎을 성글게 매달고 엇비스듬히 서 있는 나무로 다가간다.
  휑한 벌판에 생뚱맞게 서 있는 나무가 오래전 레가 다녀간 나무인 것만 같다. 레는 나무를 찾아갔다.
  “난 나무를 찾아갔어.”
  통학버스에서였다. 나는 레 때문에 짜증이 나 있었다. 통학버스가 출발하려는데 그애가 화장실에 가고 싶어 하는 바람에 통학버스 출발시간이 사십 분이나 늦어졌기 때문이었다. 레는 두 발로 서는 것이 불가능한 지체장애가 있어서 수업 시간에도 전동휠체어에 앉아 수업을 들었다.
  “내가 일곱 살 때, 내가 나무가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해하니까 엄마가 날 업고 나무를 찾아갔어.”
  레는 자신 때문에 통학버스의 출발 시간이 사십 분이나 지체됐다는 걸 모르고 있거나, 알지만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
  “나무가 멀리 있어서 엄마는 한참 걸어갔어. 엄마는 내게 나무를 만지게 했어. 난 나무가 만지기 싫었지만 나무를 만졌어. 나무는 서 있었어. 내가 만지는 내내 나무는 벽처럼 꼼짝 않고 서 있었어.”
  길을 걸어가다 나무가 서 있으면 나는 나무를 바라본다. 내가 나무를 바라보는 것은 내가 나무를 좋아하기 때문이 아니다. 나무가 내게 보이기 때문이다. 나는 보이는 것을 바라본다. 그때마다 나무들은 흔들리며 서 있었다. 개가 다가가고 있는 들판의 나무도 흔들리며 서 있다. 나무가 흔들리고 있어서 흔들려 보이는 것인지, 내 눈동자가 흔들려서 흔들려 보이는 것인지, 나는 모르겠다.

레, 내게 보이는 나무들은 하나같이 흔들리며 서 있어.

레는 어느 날 스무 살이 됐듯, 어느 날 서른 살이 될 것이다. 그리고 어느 날 마흔 살이 될 것이다. 도, 솔, 미, 그리고 나, 우리 모두 마흔 살이 될 것이다. 미와 도는 그때도 헬스키퍼로 일하고 있을까.
  나무 아래를 어슬렁거리던 개가 다시 인도로 나온다. 그리고 다시 북쪽을 향해 나아간다.
  바지 주머니 속 휴대전화기가 울린다.
  “어디야?”
  형이다.
  “어디야?” 내가 대답하기도 전에 형은 다그치듯 되묻는다.
  “모르겠어……”
  “뭐?”
  “어딘지 모르겠어.”
  “뭐가 보이는데?”
  “하늘, 구름, 도로, 벌판……”
  “그런 거 말고. 보이는 걸 말해 봐.”
  내가 초등학교 3학년일 때, 형이 방바닥을 기어가는 개미를 잡아 내 받아쓰기 공책에 놓아줬던 게 문득 떠오른다. 개미는 내가 검은 플러스펜으로 큼직하게 쓴 글자들 사이를 어지럽게 기어다녔다. 연필로 글자를 쓰면 내 눈에 잘 보이지 않아서 나는 초등학교 때부터 플러스펜으로 글자를 썼다. 형이 손가락으로 개미를 꾹 눌러 죽이더니 물었다. 보여?
  “뭐가 보이는지 말해보라니까.”
  “개.”
  “개?”
  “응, 개.”
  형이 한숨을 토하고 나서야 말한다. “멀리 가지 말고 그만 집에 들어와.”
  두 살 터울인 형은 나를 초등학생 취급하곤 한다. 눈 때문에 내가 멀리 가면 길을 잃을 거라고 생각한다. 일반 중학교에 다닐 때 나는 버스를 타고 등하교를 했는데, 엉뚱한 번호의 버스를 타고 낯선 곳까지 실려가 헤매고 있는 나를 형이 찾으러 온 적이 몇 번 있다. 나는 눈에 보이는 큰 건물들의 이름을 형에게 말했고, 형은 용케 날 찾으러 왔다. 달리는 버스의 번호는 내 눈에 포착되지 않는다. 서 있는 버스의 번호도 흐릿해서 나는 전체적인 윤곽으로 번호를 구분한다.
  “형.”
  “왜?”
  “형은 뭐가 보여?”
  “궁금해?”
  “응.”
  “난 아무것도 안 보여.”
  형은 그리고 통화를 끝낸다. 실용음악학과에 진학해 작곡가가 되고 싶었던 형은 아버지의 반대로 지방대학 행정학과에 입학했다. 물류창고에서 배송 물건을 분류하는 일을 하는 아버지는 형이 어서 대학교를 졸업하고 공무원이 되길 바란다. 전공을 재미없어 하는 형은 아버지가 그런 뜻을 내비칠 때마다 견딜 수 없어 하며 자신의 방으로 들어간다. 식사 때가 되도 나오지 않고 미친 듯이 기타를 친다.
  여름방학이 끝나갈 즈음, 형과 나는 짐을 꾸려 각자가 다니는 대학교로 떠날 것이다. 나는 중고등학교 시절 내내 형에게 하고 싶었지만 못 했던 말을 속으로 중얼거린다. ‘형, 너는 잘 보이잖아.’

집에서 더 멀어지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 나는 개를 쫓아 걸음을 내딛는다.
  도는 아직도 새를 기를까?
  왼손에 흰 지팡이를 들고(도는 왼손잡이였다), 오른손에는 밥솥처럼 커다란 새장을 들고 지하철역 출구 계단을 내려가는 도의 뒷모습이 내 머릿속에 그려진다. 새장은 텅 비어 있다. 습하고 퀴퀴한 바람이 저 밑에서부터 올라오는 계단은 깊고 깊다. 계단을 내려가는 도의 뒷모습이 지우개로 지우듯 조금씩 사라진다.
  내 스마트폰에는 도의 번호가 저장돼 있다.
  “파?” 상기된 도의 목소리에서 순수한 반가움이 배어나온다.
  “난 줄 어떻게 알았어?”
  “목소리가 네 목소리니까. 네 목소리는 세상에 하나뿐이니까.” 말끝에 도가 웃는다. 웃음소리가 무척 희미해서 들리지 않지만 나는 그애가 웃고 있는 걸 느낄 수 있다.
  “도, 잘 지내?”
  “나야 잘 지내지. 넌?”
  도의 목소리가 너무 다정해서 나는 나 자신에게 화가 난다. 학교를 졸업하고 나는 도에게 걸려오는 전화를 받지 않고 문자에 회신도 하지 않았다. 나는 번번이 부재로 응답하며 내 존재가 그애에게 부재로 남길 바랐다.
  “너 여전히 새를 기르니?”
  불쑥 내 눈이 멀어가고 있다고, 너의 눈처럼 빛조차 보지 못하는 날이 올지 모른다고 고백하고 싶다.
  “그럼! 내 새를 기억하는구나!”
  “도야, 난 네 새를 못 봤어. 네가 학교에 새장을 들고 온 날, 내가 결석했거든.”
  “그랬어? 너도 내 새를 봤으면 좋았을 텐데.” 도가 아쉬워한다.
  “난 못 봤지만 레와 미는 네 새를 봤지.”
  “응, 걔네들은 내 새를 봤어.”
  “도, 그 애들은 어떻게 네 새를 봤을까?”
  “응?”
  “그 애들은 어떻게 네 새를 봤을까?”
  “그러게……” 도가 말끝을 흐리다 금세 밝아진 목소리로 말한다. “파야, 난 요즘 내 새를 숲에 데려가는 게 소원이야.”
  “숲에?”
  “응, 숲에 데려가면 내 새가 행복해할 것 같아. 내 새가 새장 속에서 태어나, 새장 속에서 살다가, 새장 속에서 죽을 걸 생각하면 마음이 아파…… 두 달 전쯤에 새가 종일 울지 않아서 동물병원에 데려갔는데, 의사 선생님 말이 너무 늙어서 울지 않는 거라지 뭐야. 글쎄 내 새가 사람 나이로 치면 아흔 살은 됐을 거래. 내 새가 아흔 살 할머니였다니…… 숲에 데려가려고 이동식 새장도 샀는데 아무래도 나 혼자 새장을 들고 숲을 찾아가는 게 엄두가 안 나네.”
  “내가 같이 가줄까?”
  “응?”
  “숲에 내가 같이 가줄까?”
  “정말? 파, 네가 같이 가주면 숲에 갈 수 있겠다. 너는 보이니까. 난 목요일 빼고 언제든 되는데. 목요일이 쉬는 날이거든. 언제 갈까? 이번 주말은 어때?”
  내가 아무 대꾸를 않자 도가 말을 하다 만다.
  “파야, 스마트폰 너무 많이 보지 마.”
  “내가 스마트폰 많이 보는 거 어떻게 알았어?”
  “수업 시간에도 네 손가락이 스마트폰 액정화면을 터치하는 소리가 들려오곤 해서 알았지. 스마트폰 불빛이 눈에 안 좋대.”
  “도야……”
  “응?”
  “아니야, 잘 지내. 연락할게.”
  “으응…… 저기, 도야…… 숲에 꼭 같이 안 가줘도 돼.”
  “……”
  “혹시 강남 역삼동에 올 일 있으면 연락해. 내 직장이 역삼역 근처에 있거든. 넌 학생이고 나는 직장인이니까 내가 맛있는 거 사줄게. 근처에 무한리필 되는 돈가스 식당도 있어.”
  도와 통화하는 사이에 개는 멀어져, 솜뭉치 같은 게 둥둥 떠가는 것 같다. 멀어진 개를 따라잡으려 나는 걸음을 빨리한다. 진동하는 것은 내 눈동자가 아니라 세상이 아닐까. 지구가 초속 463미터의 속도로 돌고 있는데도 그 회전을 느끼지 못하듯, 멈춤 없는 진동을 사람들이 느끼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도야, 난 숲이 싫어. 숲에는 나무가 너무 많아. 난 나무 한 그루 없는, 멀리 지평선이 보이는 벌판을 마냥 걸어가고 싶어.

오늘 아무래도 내 오른쪽 눈동자에 무지개가 뜰 것 같다. 그리고 그 너머로 레의 뒷모습이 떠오를 것 같다. 꿈에서였지만 나는 왜 레를 부르고 불렀을까? 그리고 어째서 그애는 내가 부르고 부르는데도 대답하지 않았을까?
  바지 주머니 속 휴대전화가 울린다. 형일까? 진동이 멎고 조금 뒤 문자메시지 수신을 알리는 소리가 여덟 번 연달아 울린다.

(파야, 레와 미는 내 새를 보고 싶어 했어. 그래서 그 애들한테 내 새가 보였던 거야.)

(레가 그랬어. 미치게 보고 싶어 하면 보인다고.)

(내 새의 부리가 노란색이라는 걸 나는 레가 알려줘서 알았어.)

(레가 알려주지 않았으면 나는 내 새의 부리가 노란색인 걸 몰랐을 거야.)

(레가 그랬어. 노란색은 세상에서 가장 깨끗한 색이라고.)

(내 새의 부리는 세상에서 가장 깨끗해. 내가 한 번도 씻겨주지 못했는데.)

(파야 이건 비밀인데, 난 아직 내 새를 못 봤어.)

(숲에 가면 나한테도 새가 보일 것 같아.)

나는 스마트폰을 도로 바지 주머니에 밀어넣고, 개미처럼 보일 만큼 멀어진 개를 따라잡으려 두 발을 엇갈려가며 성급히 내딛는다.
  집에서 너무 멀어졌다는 걸 알지만 나는 개에게서 놓여나지 못한다. 개가 점점 흐려져 내 눈에 보이지 않을 때까지, 그러니까 존재하지 않게 될 때까지 나는 개에게서 놓여나지 못할 것 같다.

*

개와 나는 계속 북쪽으로, 북쪽으로 걸어 올라간다. 개와 나와의 거리가 100미터쯤에서 50미터쯤까지, 30미터쯤까지 좁혀진다.
  개가 뒤를 돌아다본다. 내가 그림자처럼 자신을 뒤쫓고 있다는 걸 눈치챈 것 같다. 개는 삼, 사 초 간격으로 뒤를 돌아다보면서도 마치 강물에 실려가듯 북쪽으로 꾸준히 걸어 올라간다. 내가 뒤쫓고 있는 게 신경 쓰이는 걸까? 내가 뒤쫓다 말고 가버릴까봐 신경 쓰이는 걸까, 개의 마음을 모르겠다.
  끊어질 듯 끊어지지 않고 뻗어 있는 인도에는 개와 나뿐이다.
  도로로는 차들이 띄엄띄엄 빠른 속도로 지나간다.

도야, 너 설마 새를 숲에 날려 보내고 싶은 건 아니지?

내 오른쪽 눈동자에 눈물이 차오르며 무지개가 희미하게 떠오른다. 빨강, 초록, 파랑…… 선명해지는 무지개를 지우려 나는 눈을 꾹 감았다 뜬다.
  덤프트럭이 시멘트 가루를 날리며 도로로 달려간다.
  개가 머뭇머뭇하더니 도로로 내려선다. 거의 동시에 승용차 한 대가 떠오르는 게 내 시야에 잡힌다.
  승용차가 개를 향해 몹시 빠른 속도로 달려오는 게 내 눈동자에 느껴진다.
  길게 울리는 경적 소리를 들으며 나는 황급히 고개를 돌린다. 하얗게 타오르고 있는 태양을 향해 두 눈을 부릅뜬다.

도야, 눈동자가 타들어가는 것 같아……

차가 급정거하는 소리.
  차 문을 거칠게 여는 소리, 차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것이 틀림없는 노랫소리, 구둣발 소리, 세상이 멈춘 것 같은 정적.

*

고등학교 2학년 겨울 방학식 날이었다. 병아리처럼 노란 털실로 짠 스웨터를 입고 내 맞은편에 앉아 있던 레가 말했다.
  “엄마가 내 방에 들어오더니 탁 하고 불을 켰어. 빛 속에 날 있게 하고 싶어서. 빛 속에 있는 날 난 볼 수 없지만 엄마는 볼 수 있으니까.”
  레의 목소리는 높고 높았다. 그애의 앞에는 언제나처럼 미가 가만히 앉아 있었다.
  마지막 수업만을 남겨둔 쉬는 시간이었다. 나는 레와 미가 자기들끼리 나누는 얘기를 흘려들으며 깨진 거울 조각 속에 잠든 물고기처럼 떠 있는 내 눈동자를 보고 있었다.
  “엄마는 빛 속에 있는 날 물끄러미 바라보다 내 방을 나갔어.”
  “물끄러미?” 미가 물었다.
  “말없이 바라보는 거 말이야.”
  “아아……” 미가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여섯 살 때, 엄마는 내가 빛이라도 보게 하려고 어떤 할아버지한테 날 데려갔어. 할아버지가 날 침대 같은 데 눕히고 내 눈 둘레에 바늘을 꽂았어. 하나, 둘, 셋, 넷, 다섯. 내 눈은 다섯 개의 바늘에 갇혔어. 엄마는 내가 일곱 살이 될 때까지 일주일에 두 번 날 할아버지한테 데려갔어. 그때마다 할아버지는 내 눈 둘레에 바늘을 꽂았어. 하나, 둘, 셋, 넷, 다섯!”
  “그래서 빛을 봤어?” 미가 물었다.
  “빛은 원래 볼 수 없는 거래. 우리는 빛을 보는 게 아니라 빛 속에 있는 걸 보는 거래. 빛 속에 있는 꽃, 나무, 새, 물고기……”
  “물고기?” 미가 물었다
  “물속에도 빛이 있대. 바다처럼 깊은 물속에도.”
  “아, 그래서 물고기한테도 눈이 있는 거구나.”

*

검은 점들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흐른다.

범람하는 검은 점들에 휩쓸려 내 두 눈동자도 떠내려간다.

깜박, 빨간 점이 구명튜브처럼 떠오른다.


내 두 눈동자가 빨간 점을 붙잡으려는 순간 그것은 개로 변신한다.

김숨

1997년 단편소설 「느림에 대하여」가 대전일보 신춘문예에, 1998년 「중세의 시간」이 문학동네신인상에 각각 당선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나는 나무를 만질 수 있을까』   『간과 쓸개』   『국수』, 장편소설 『듣기 시간』   『떠도는 땅』   『제비심장』   『잃어버린 사람』 등이 있다. 김현문학패, 대산문학상, 현대문학상, 이상문학상, 동리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K를 만나러 병점역을 찾아가던 날이 떠오릅니다. 폭우가 퍼붓던 날이었고, 지하철은 물살에 휘말려 떠밀려가듯, 어지럽고 낯선 풍경 속으로 달려갔습니다. K에게 뭘 물어야 할까? 내가 보지 못하는 것, K의 눈에만 보이는 것.
‘K야, 뭐가 보여?’
단 하나의 질문.
K는 아홉 살 때 선천성 저시력 판정을 받았습니다.
병점역에서 내려 마을버스를 타고 K가 사는 아파트 단지를 찾아가던 시간으로 되돌아가 소설을 다시 들여다봤습니다.
이 소설은 제 눈에는 보이지 않는, K의 눈에만 보이는 것들에 대한 기록이기도 합니다.
만나주고, 이야기를 들려준 K에게 깊은 고마움과 우정을 전합니다.

2024/07/17
68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