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촐한 생일 파티 1



   물이

   태어난다

   태어난 물은 이내

   죽었다가

   다시 태어난다

   곧 죽어

   물이 될 것이다

   태어났다가 태어나고 태어나 버릴

   죽었으나 죽을 예정이며 죽을 뻔한

   물의

   생일과

   기일이

   굴러가며

   계속

   서로를

   부른다





   조촐한 생일 파티 3



   적당히 다정한 문자
   몇 통

   다리를 뻗고
   한 눈을 비비며 다른 눈으로 읽는다

   익숙한 살냄새

   반대편에서
   깰 때까지 기다렸던 고양이가 얼굴을 갖다 댄다

   어제 읽다 만 소설에서는 생일마다 저에게 새 책을 선물하는
   사람이 서점에 간다

   나는 부엌으로

   오늘도 사과를 깎고
   견과류를 먹고
   고관절을 풀기 위해 가재처럼 골반을 회전한다

   택배 기사가 온다

   착불

   3500원짜리 안부

   샤워하는 동안 전화가 왔다, 미역국은 먹었냐고
   미역은 무슨

   오늘 치 노동이 전자 우편으로 도착해 있다

   착불

   비용은 이 아침의 평화

   태어난 날이니까 나는 나의 일을 조금 더 사랑하겠다
   하고 어제 읽은 소설 주인공 목소리로
   말해본다

   고양이가 운다

   얼른 밥 달라고

   사료를 주고 환기하고 안경을 닦고
   책상에 앉으면
   가을이 죽을 때 태어나는
   깍지벌레와 진액 때문에 화분 속 이파리가 천천히 죽고

   케이크가 도착한다
   링크를 타고 들어가니 매장으로 오시라고 아마도

   오늘은 못 먹을 예정이다

   독촉받기 전에
   오늘 치 문장을 써야 한다

   생일에 대한 시를 쓸까

   바람이 새어드는 창을 닫고
   과일 먹은 접시를 닦고
   광고인지 중요한 업무인지 모를 전화를 몇 통 받고
   익숙하게 점심 먹고 돌아와

   잠든다
   누가 목도 조이지 않았는데 알람 없이 일어나

   책상에 다시 앉는다

   일곱 시에
   숙제처럼
   근사한 저녁을 먹으러 가기 전까지 나는
   잠옷에 손을 넣어 건조해진
   허리를 몇 번 긁고

   떠들썩하지 않은 얼굴로

   첫 문장을 쓴다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은 아침이었고 축하받을 일이었다

이훤

시인. 사진가. 캣 대디. 2014년 《문학과 의식》에 다섯 편의 시를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양눈잡이』 『우리 너무 절박해지지 말아요』 등을 썼고 사진 산문집 『당신의 정면과 나의 정면이 반대로 움직일 때』를 쓰고 찍었다. 텍스트와 이미지의 관계를 고민하며 둘을 분리하거나 결부하는 작업을 만들어왔다. 사실은 그 모든 일보다 고양이와 보내는 시간을 더 좋아한다. 시카고예술대학에서 사진학 석사를 마쳤고, ‘Home Is Everywhere and Quite Often Nowhere’ ‘Tell Them I Said Hello’ 등의 개인전을 가졌다. 미국, 캐나다, 스코틀랜드 등에서 크고 작은 공동전에 참여했다. 정릉에서 스튜디오 겸 교습소 ‘작업실 두 눈’을 운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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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_leeHwon

2022/12/27
61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