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격자
15회 까인의 발가락
“안녕하세요.”
“아, 안녕하세요. 그런데 어떻게 저를……”
“드디어 우리가 만났네요. 반갑습니다.”
“무슨 말씀이신지. 제 얼굴도 보여드리지 못하는 처지인데.”
“괜찮아요. 할 수 없는 일이죠.”
“저는 당신에게 발가락 밖에 보여드리지 못해요.”
“그래도 저는 알아요. 당신이 누구인지.”
“정말요? 어떻게요?”
“마을에 여러 차례 가서 사람들한테 물어봤어요. 추리능력도 발휘했죠.”
“그렇군요.”
“사실, 20년 전인 2000년에 당신을 만날 수 있었는데, 죄송해요.”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그때 20장의 사진을 구했는데, 당신 사진만 하얗게 지워져 있었어요.”
“저만요? 왜요?”
“아마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에서 복사를 해준 분이 실수를 한 것 같아요. 다른 사진을 워낙 어렵게 구한 터라, 나머지 한 장에 신경을 못 썼어요.”
“그래도 다행이에요. 20년 뒤에라도 끝내 저를 찾으셨으니까요.”
“한참 나중에 그곳을 방문하신 어떤 선생님이 그 사진을 제대로 복사해 가져온 덕분이죠.”
“고마운 분이군요.”
“그분의 도움으로 당신 사진이 지난해 어느 전시장에 걸렸는데 모두가 무심히 지나쳤죠. 하지만 저는 단숨에 알아봤어요. 바로 당신이 그 사진의 주인공임을.”
“저를 정말 아세요?”
“알아요. 당신은 남편과 함께 단둘이 살고 있었죠.”
“어머 맞아요.”
“남편은 당신보다 세 살 위였잖아요.”
“금실이 좋았던 우리 부부는 전쟁 중이지만 평화롭게 농사를 짓고 살았어요.”
“당신은 1904년생. 64살 할머니였죠. 당신 부부 사이엔 아이가 없었고요. 당연히 손주도 없었을 테고. 마음이 편한 부분도 있었겠네요?”
“잘 아시네요. 아들딸이 있는데 전쟁에 휘말리면 얼마나 애를 끓였겠어요.”
“운명이란 참. 힘없는 당신 부부가 그 일을 당하다니.”
“그러게나 말이에요. 순식간이었어요.”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죠?”
“밭에서 일을 하다 낯선 외국 군대가 몰려오는 걸 보았어요.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도망갔죠.”
“왜 군인들이 총을 쏘았죠?”
“모르겠어요. 고막이 터질 것 같은 총소리였다는 것만 기억나요. 무서워서 심장이 떨렸어요. 남편과 함께 집에 들어가 땅굴에 숨었어요.”
“들켰나요?”
“아뇨. 근데 집에 불이 나면서 너무 뜨겁고 연기가 가득차 숨이 막혀 견딜 수가 없었어요.”
“군인들이 초가집마다 불을 붙였다고 들었어요.”
“숨죽이고 있다가 땅굴을 나와 집밖으로 뛰쳐나왔지만 시뻘건 화염에 휩싸이고 말았지요. 불이 붙은 채로 몸부림을 쳤어요. 온몸이 활활 타는 고통을 아세요? 그러다 제 배가 뻥 터지면서 한가운데 구멍이 뚫리는 느낌을 받았어요. 총에 맞은 거죠. 그러고도 한참을 불에 탔어요. 얼마 뒤 머릿속 끈이 뚝 끊어졌어요. 그리고 몸 위로 무언가 서서히 내려와 앉았어요. 한없이 따뜻함을 느꼈어요. 아이러니하죠? 제 몸은 한없이 차갑게 식고 있었는데 말이에요.”
“집이 모두 불타 무너진 뒤, 재가 당신을 덮었군요.”
“마지막 온기를 기억해요. 다 부서지고 무너지고, 제 몸을 이불처럼 덮어준 재.”
“오른쪽 발가락만 남겨뒀지요. 재가 당신의 그 발가락마저 덮었다면 저는 당신을 찾지 못했을 테고 이름도 알지 못했을 거예요.”
“너무 신기해요. 발가락만 보고 어떻게.”
“2000년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을 통해 20장의 사진을 구했을 때, 당신의 사진은 하얗게 지워졌지만 당신 남편의 사진은 있었어요.”
“남편도 불에 탔나요?”
“차마 말씀을 못 드리겠어요. 눈뜨고 제대로 볼 수 없었어요. 얼마 전 누군가 페이스북에 그 사진을 올렸는데 ‘폭력적이거나 자극적 내용이 포함된 사진일 수 있다’는 이유로 차단되더군요.”
“슬퍼요. 너무 슬퍼요.”
“당신 남편뿐이 아니에요. 논에서 일하다 총에 맞고 쓰러진 1890년생 응우옌 응예는 숨이 끊어진 채 논바닥에 둥둥 떠다녔는데 일주일 만에 발견됐대요.”
“어머나. 저희 가족이랑 친했던 응예 아저씨.”
“머리통이 통째로 날아간 주검도 있었어요. 팬티가 내려간 채 총에 맞은 여성과 임신부도 발견됐고요. 10구가 넘는 주검은 우물 속에서 방치됐어요. 10살 이하 아이들도 20명 넘게 죽었죠. 그날 무려 74명이나 희생됐어요.”
“우리가 뭘 크게 잘못했나요? 왜 그랬대요?”
“저도 정확히 모르지만 당신들이 잘못한 것은 없어 보여요.”
“이해가 안 돼요.”
“앞에서도 말했지만, 저는 당신이 살던 마을에 갔어요. 그 사진들을 들고 말이에요.”
“그리워요. 그곳 마을과 사람들 모두. 다들 잘 있나요?”
“당신 또래 이웃들은 다 돌아가셨죠. 19년 전 처음 갔을 때, 아이들은 청년이 되고, 청년들은 노인이 되어 있더군요. 20장 사진 속에 있는 사람들 이름을 물어봤는데, 누군가 불탄 시신의 사진을 짚으며 당신의 남편이라고 했어요. 부부가 모두 불에 탔다고 증언하면서 말이죠. 당신의 남편은 누군가의 시아버지라 하더군요. 그 다음 순서 사진이 하얗게 지워진 당신 거였는데 결국 나중에 제대로 찾았으니 이제는 확신해요. 이 발가락은 당신 거예요.”
“덜 부끄럽고 덜 모욕적인 일인지도 모르겠네요. 제 벗겨진 살가죽과 산산이 부서진 뼈까지 전신이 드러나지는 않았으니 말이죠. 발가락만 보여서 어쩌면 다행이에요.
“당신의 기일을 기억하나요?”
“그게 그러니까, 1968년 1월 14일…… 그날은 아마……”
“기억하는군요. 정월대보름 하루 전이었죠. 그건 음력이고. 양력으로는 2월 12일이었어요.”
“이제 누가 저를 애도해줄까요? 자식이 없는데 말이죠.”
“걱정하지 말아요. 당신의 제사를 매년 지내주는 사람이 있어요.”
“누가요?”
“하푹마우. 1957년생 남성이에요. 7년 전에 만났어요. 당신의 사연을 잘 알더군요.”
“저는 전혀 모르는 사람인 걸요?”
“전쟁 이후에 마을에 이사 왔대요. 당신이 살던 집터에 살고 있어요. 죽은 영혼한테 잘해야 본인도 죽은 뒤 좋은 데로 가지 않겠냐고 하더군요. 그분이 당신을 위해 늘 기도해줘요.”
“감사하다고 전해주세요.”
“코로나19 때문에 지금은 베트남에 가기 어려워요. 다음에 마을에 가면 꼭 전해줄게요.”
“아주 조금 위안이 되네요.”
“참, 잊을 뻔했어요. 당신의 이름을 불러보지 못했네요. 보티까인, 보티까인.”
“고맙습니다. 까인으로 줄여서 불러주시겠어요?”
“까인.”
“제 발가락만으로 저를 찾아내 기억해주시고, 제 이름까지 불러주시다니.”
“까인. 늦어서 미안해요.”
“미안해하지 말아요.”
“그거 말고도 여러 이유로……”
“네?”
“미안하다고요, 까인.”
“뭐가 미안하죠?”
“당신이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그런 사진을 찍게 되어 정말이지…… 미안해요.”
“………………………………”
2020년으로부터 52년 전인 1968년 2월18일.
베트남공화국(남베트남) 북부 다낭시에 위치한 주월미군사령부 해병제3상륙전부대 벙커.
조사관 컴퍼넬리 소령이 살렘 담배를 입에 물고 찡그린 얼굴로 무언가를 응시하고 있다.
오른 손엔 사진 한 장이 들려 있다.
소령은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전화기 다이얼을 돌렸다.
“교환병, 디엔반 1번 국도 캡소대 소대장 연결해.”
“소령님. 소대장 전화 연결됐습니다.”
“실비아 중위? 도대체 이 사진 속에 뭐가 있다는 거야?”
“무슨 말씀입니까?”
“6일 전 사건 관련한 보고서 문서에 첨부한 그 20장의 사진 말이야.”
“네.”
“그중에서 E라고 표시한 사진을 지금 보고 있거든.”
“불에 탄 마을 전경 사진 말씀하시는군요.”
“그렇지. 설명문에는 한 명이 보인다고 적혀 있다. 아무리 봐도 없는데?”
“그러실 줄 알았어요. 저도 바로 못 찾아서 사진을 찍은 본 상병한테 물어봤었거든요.”
“아무도 없잖아.”
“있습니다. 잘 찾아보십시오.”
“없어.”
“돋보기 쓰셔야 하는 거 아닙니까?”
“중위, 자네 지금 나랑 농담하자는 건가?”
“앗, 죄송합니다. 잘 찾아보십시오. 가운데에서 왼쪽 아래로 조금 내려가면……”
“으음.”
“보이십니까?”
“이런, 아……”
“발가락 찾으셨죠?”
“………………………………”
Photo E - two villagers were found burned in this home, one visible in foreground.
-추신
이 글은 필자가 20년 조사 과정을 통해 확인한 사실을 토대로 추리와 추정과 상상을 덧붙여 구성한 픽션이다. 컴퍼넬리(J. M. Campanelli), 실비아(J. R. Sylvia), 본(J. Vaughn)은 2000년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에서 30년 만에 기밀 해제된 퐁니·퐁넛 사건 문서에 등장하는 미군 장교와 사병의 실명이다. 보티까인(Võ Thị Canh)은 그 문서에 등장하는 퐁넛 마을 주민이다. 한국군 해병 제2여단 1대대 1중대가 주변을 정찰하다 마을에 진입하고 빠져나간 1968년 2월 12일 온몸에 치명적 화상을 입고 사망했다. 총상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다. 보티까인의 것으로 추정되는 사진은 2000년 필자가 입수한 사진 묶음에서 유일하게 하얗게 지워져 있었다. 19년 뒤인 2019년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에서 온전한 사진을 구해 제공해준 성공회대 강성현 교수(동아시아연구소)에게 감사드린다.
고경태
Koh Kyoung Tae. 2000년 11월 《한겨레21》 기자로 베트남전 당시 한국군에 의한 잔혹행위 의혹이 담긴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 기밀해제 문서를 처음 보도했다. 2001년 4월 문서에 첨부된 20장의 주검 사진을 들고 사건 현장인 베트남 꽝남성 디엔반시 퐁니·퐁넛 마을에 가 사진 속 인물들의 이름을 확인한 뒤 그들의 사연을 담은 르포를 썼다. 2013년부터 이 문제에 관한 조사를 다시 시작한 뒤 2015년 2월 퐁니·퐁넛 사건의 세밀한 실상과 그 세계적 인과관계를 탐구한 『1968년 2월 12일』(한겨레출판)을 냈다. 이 책은 올해 6월 베트남에서 베트남어판으로 번역·출간되었다.
2020/08/25
33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