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물고기 함수
그들은 내게 보다 정확한 설명을 요구했다. 나로서는 이 이상 해줄 수 있는 말이 아무것도 없었다. 최선을 다해 당시의 상황을 묘사하고 설명했지만 어느 누구도 내 말을 납득해주지 않았다. 그렇게 오전부터 시작된 면담이 지루하게 이어지고 있었다. 잠깐의 휴식을 가진 뒤 세미나실로 돌아오자 한 남자가 내게 다가와 자신을 심리학 박사라고 소개했다.
“미안하지만 당신의 이야기를 다시 자세히 들어봐야겠는데요.”
나는 한숨을 쉬었다. 그러고는 사건을 찬찬히 되짚어보았다. 달리 변할 것이 없는 것을 알면서도.
그날의 마지막 비행은 시카고오헤어 공항으로, 도착 시각은 저녁 열한시 십칠분이었다. 이상 물체를 감지한 것은 기체가 안전궤도 진입하고 40분 후였다. 처음에 나는 계기판에 묻은 얼룩으로 착각하고 닦으려 했다. 하지만 이내 비행 물체라는 것을 깨닫고는 기장인 기현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기현은 계기판을 확인한 뒤 속도를 늦추고 레이더 자료를 관제탑에 보냈다. 우리는 별걱정 없이 피드백을 기다렸다. 철새 떼가 이동이라도 하나 싶었던 것이다. 그러기에는 고도가 지나치게 높아 적잖은 걱정이 뒤따르긴 했다. 철새들은 대체로 3,000피트 상공에서 이동했고, 때때로 7,000피트 상공에서도 눈에 띄긴 했지만 드문 일이었다. 무엇보다 지금 그들은 삼만 이천 피트에 있었고, 그 정도 상공에서 이동하는 새떼들은 아직 보고된 바 없었다.
나는 관제탑에 사실 확인을 바란다는 말을 반복해 전달했다. 십여 분 뒤, 관제탑에서는 알 수 없는 비행물체라는 답변과 함께 궤도 수정을 지시했다. 다행히도 물체는 반경 20미터 밖에서만 이동을 보이고 있었다. 자동운전을 해지하고는 관제탑의 지시대로 항로를 변경했다. 기현이 승객들에게 안내방송을 하는 사이 나는 풍속과 풍향 등을 점검했다. 기현이 엔진을 가속화하며 기체의 방향을 틀기 직전이었다.
“선배, 보셨어요? 방금?”
나는 너무 놀란 나머지 사석에서의 호칭이 튀어나왔다. 그러나 기현은 노련한 기장답게 곧장 정신을 수습하고 이 사실을 관제탑에 보고했다.
“삼만 이천 피트, 좌표 GS708. 물고기로 추정되는 물체들이 떠 있다. 확인 바란다.”
나는 방금 본 것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구름 한 점 없는 푸른 하늘에 물고기―혹은 물고기로 추정되는 물체―들이 떠 있었다. 헐리벗이나 청새치만큼이나 거대한 크기였다. 지느러미와 꼬리는 투명하리만치 파랬고, 두 눈은 붉은색이었다. 몸체는 마치 보라색 커튼이 출렁이는 것처럼 보였다. 물고기는 유유히 움직이고 있었다. 너무도 자연스러운 광경이었다. 마치 이제껏 하늘이라 칭했던 것이 실은 수면인 듯 느껴질 만큼 자연스러웠다.
우리는 일지를 작성한 후 비행장과 약 3킬로미터 떨어진 래디슨 호텔로 이동했다. 각자의 방에서 짐을 푼 뒤 새벽까지 영업하는 레스토랑 겸용 바에 들어갔다. 그날의 메인디시를 주문할 때까지도 나는 낮에 보았던 광경에 대해 애써 회피하고 있었다. 그러나 웨이터가 들고 온 하얀 접시 위에 다소곳이 놓인 잉어 한 마리를 보자 외면했던 물고기의 이미지가 강렬하게 되살아났다.
잉어 살은 지나치게 부드러워 몇 번이나 혀로 잇몸을 핥았다. 기현은 평소와 다름없이 느긋하게 접시를 비우고 있었다. 기현이 와인 한 병을 더 주문했을 때 나는 마지막 남은 잉어 살을 음미하며 물었다.
“그 물고기떼 말이에요. 도대체 뭘까요?”
“글쎄, 모르지.”
“분명 물고기였는데 말이에요.”
“그래, 물고기였지.”
“하늘에 물고기라니 말이 안 돼요.”
“말이 안 되지.”
특별한 대답을 기대한 것은 아니었지만 내 말을 되풀이하는 기현 때문에 맥이 빠졌다. 더군다나 오늘은 형의 기일이었다.
형과 나는 부모도 가끔 헷갈릴 정도로 닮은 일란성 쌍둥이였다. 다섯 살 무렵, 우리 가족은 계곡으로 여름 피서를 떠났다. 어머니는 뭐든 두 개씩 구비해 다녔는데 그날따라 가져온 튜브 공 하나가 말썽이었다. 구멍이 났는지 공기를 주입해도 계속 바람이 샜던 것이다. 아버지가 우리에게 가위바위보를 제안했다. 먼저 공을 차지한 사람은 나였다. 진 것이 분했던 형은 한참을 씩씩거리다가 어디선가 구해온 나무막대기로 물속을 헤집으며 놀았다. 비명이 들린 것은 그로부터 몇 분 뒤였다.
얼마 떨어지지 않은 거리에 형이 있었다. 나는 형의 비명소리를 듣자마자 물속을 헤치며 뛰어갔다. 수심이 깊지도 않았다. 그러나 내가 도착했을 때 형은 이미 작은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작은 물고기들과 함께.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어머니는 한 달 동안의 조사 끝에 형의 시신을 포기했다. 장례식에서 쓰러진 어머니는 끔찍한 열병 속에서 형의 존재를 재편집했다. 어머니가 깨어났을 때 형의 존재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것이 어머니가 살아갈 수 있는 마지막 방편이기는 했다. 아버지는 장례식을 치른 후 쌍둥이 사진을 모조리 불태워버렸고, 짝을 이루던 물건과 옷가지도 내다 버렸다. 그런 와중에도 나는 도무지 형이 죽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그저 본능이었고, 직감이었다.
웨이터가 빈 접시를 치워갔다.
“예수가 먹은 최후의 만찬이 뭐였는지 아세요? 물고기였어요.”
내가 말했다. 기현은 후식으로 나온 커피를 마시며 나를 지그시 쳐다봤다. 나는 이어 본래 기독교 최초의 상징은 십자가가 아니라 익투스였다고 설명했다.
“익투스는 히브리어로 ‘물고기’를 뜻해요. ‘예수 그리스도, 하느님의 아들이며 구세주’라는 히브리어 기도 문구의 첫 번째 글자를 따서 만든 아나그램이죠.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십자가는 14세기가 돼서야 굳어진 거예요.”
덧붙여 구약에서 인간은 바다에 사는 물고기로 비유되어 있고, 신약에서 물고기는 인간을 나타내고 있다고도 말했다. 기현은 한동안 침묵을 지키다가 일단 데이터는 넘겼으니 좀 기다려보는 편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호텔 방으로 돌아와 플로리다 최남단 키웨스트의 항행을 떠올리기 위해 노력했다. 머릿속이 복잡할 때면 플로리다의 해변 상공을 떠올리는 것이 무엇보다 효과적이었다. 그러나 끝없이 이어진 데이토나 비치마저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따듯한 햇살과 부드러운 모래가 느껴질라치면 어느 순간 파도가 눈앞까지 다가와 모든 것을 휩쓸어갔다. “자신의 삶에서 무엇이 중요한지 우리는 거의 깨닫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 다른 사람을 괴롭히는 것은 아니다. 종일 물속에서 헤엄치고 있는 물고기가 물에 대해 무엇을 알겠는가?” 아인슈타인의 말은 정확했다.
나는 아버지에게 여러 차례 형이 살아 있다고 주장했다. 처음에 아버지는 연민과 슬픔이 뒤섞인 눈빛으로 나를 다독였다. 그러나 두 번째는 탄식하며 나를 무시했고, 세 번째는 격분하며 주먹을 휘둘렀다. “멍청한 소리 그만해라!” 아버지가 심신이 불안정한 어머니를 대신해 형의 영정사진을 찾을 때도 나는 비협조적이었다. 쌍둥이인 탓에 항상 같은 옷을 입힌 것이 화근이었고, 일란성의 미묘한 차이를 아버지는 알지 못했다. 아버지는 몇 개의 사진을 가져와 내게 물었고, 나는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아버지는 나를 채근하는 대신 내 얼굴과 사진을 대조해가며 고심 끝에 사진 한 장을 골라냈다.
한 인간의 존재를 지우는 것은 물리적으로 힘든 일이었다. 세월의 흐름에 맞춰 자연스럽게 떠난 이와 그렇지 못한 이의 차이는 너무도 자명했다. 아버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어머니는 불현듯 형의 존재를 생각해냈다. 그런 날이면 집 안 공기의 밀도는 더없이 무거워서 나는 방에서 나올 수가 없었다. 내가 집 안을 돌아다님으로써 형의 부재를 어머니에게 더 각인시켰기 때문이다. 나는 어머니가 슬픔에 지쳐 잠자리에 들 때까지 방에서 요의를 참곤 했다. 시간이 지나면 나아지리라 기대했지만 어머니의 시간은 일정 시기에 멈춰 있었다. 결국 아버지는 어머니를 병원에 입원시켰다. 당분간이라고 내게 말했지만 그 말은 끝내 지켜지지 않았다.
병원에서의 어머니는 심적으로 안정돼 보였다. 그러다 점점 나를 형으로 알아보기 시작했다. 나는 어머니의 환한 미소를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했으나 내 존재에 대해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도대체 그날 사라진 이가 형이 맞는 것인지 의심이 들었다. 더이상 아버지에게 형이 살아 있다고 말할 필요조차 없었다. 내가 형이었으니까. 아버지가 서류상으로 지운 이도 나였고, 심사숙고해 고른 형의 영정사진도 실은 내 사진이었다.
아버지는 실수라고 말했다. 어머니에게 신경 쓰느라 정신이 없어 그만 내 이름을 지우고 말았다고. 어머니가 나를 형으로 인지하는 것도 서로를 위해 좋지 않냐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아버지에게는 정말로 대수롭지 않은 일이었다. 형이나 나나, 나나 형이나 실은 매한가지인 셈이었다. 차마 어머니에게 나는 형이 아니라고 말할 용기도 없었다. 나는 그저 정지한 동전처럼 보이기 위해 애쓸 뿐이었다. 완전히 정지한 것처럼 보이는 동전이 실은 끊임없이 진동하고 있다는 것을, 외부 세계를 단절시키지 않는 한 물체가 온전히 정지해 있는 순간은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헛된 환상을 지키기 위해 노력해야 했다.
형에 대한 꿈도 수도 없이 꿨다. 형은 외눈박이 노인으로 나타날 때도 있었고, 작고 연약한 여자아이로 나타날 때도 있었다. 어떤 때는 오래된 떡갈나무였고, 어떤 때는 버들가지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있는 참새였다. 나는 언제나 형의 존재를 단번에 알아차렸다. 때때로 꿈이 너무 생생한 나머지 꿈이 현실이고, 현실이 꿈인 것처럼 느껴질 때도 더러 있었다. 그때마다 우주는 물질이든 진공이든 초양자장으로 가득하기 때문에 상호 연결되어 있다는 말을 되뇌었다. 이런 양자 얽힘이 사실이라면 숨어 있는 세계에 실재하는 형의 모습을 보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폐허가 된 도시를 헤맨 적도 있었다. 생기 없는 도시였다. 나는 무너진 건물들 사이에 주린 배를 움켜쥔 채 웅크리고 있었다. 쥐새끼 한 마리 없었다. 손바닥만한 벌레들이 간혹 얼굴 위를 지나갔지만 그것들을 잡을 수 없을 정도로 몸에 기력이 없었다. 다음날, 잠에서 깨어났을 때 나는 알 수 없는 허기를 느꼈고 닥치는 대로 먹었다. 그럼에도 허기는 사그라지지 않았다. 그렇게 일주일 뒤 허전한 느낌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그리고 그날 밤 교통사고가 일어났다. 아버지는 오랜만에 조수석에 어머니를 태우고 바다로 향했다. 결혼기념일이었다. 그날 유난히 많은 눈이 내렸다. 예보에 없던 폭설이었다. 길은 미끄러웠고, 가시거리는 좁았다. 그러나 노련한 운전자들은 날씨에 겁먹지 않았다. 그것이 문제였다. 트럭믹서 두 대가 연달아 아버지의 승용차를 밟고 지나갔다.
심하게 훼손된 시신은 화장하는 수밖에 달리 도리가 없었다. 나는 화덕에서 장시간 태운 부모의 유해를 받아 형이 사라졌던 계곡으로 향했다. 그곳에 유해를 뿌리면서 이제 더이상 혼란을 겪지 않으리라 결심했다. 그 순간 물고기 한 마리가 튀어 올랐다. 나는 놀라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미처 뿌리지 못한 유해가 손안에 퍼석거렸다.
그 후, 도망치듯 유학길에 올랐다. 그곳에서 유코를 만났다. 당시 나는 아버지의 바람대로 미래를 설계해나가고 있었다. 이미 아버지가 항공 비행사 자격증을 따기 위한 준비를 마련한 뒤였기도 했거니와 별다른 선택지도 없었다. 당연하게도 나는 수업에도, 외국 생활에도, 음식에도 무엇 하나 적응하지 못했다. 한 시간에 몇백 달러씩 나가고 있다고 생각을 하면서도 도통 집중을 할 수가 없었다. 착실하게 수업을 듣긴 했으나 머릿속은 텅 빈 채였다.
유코는 박사학위를 위해 미국으로 건너온 일본인이었다. 오사카 출신이었고, 성격이 무척 밝고 활달했다. 몸집은 작았지만 눈에 총기가 넘쳤고, 걸음걸이가 바르고 깨끗했다.
그녀와의 첫 만남은 허름한 술집에서 이루어졌다. 입구도 좁은 골목 깊숙한 곳에 위치한 술집에 들어갔을 때 나는 이미 만취 상태였다. 그녀에게 접근한 이유를 어렴풋이 짐작하자면 아마도 장소와 어울리지 않게 학구적인 분위기를 풍겼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그녀에게 시비를 걸었다. 공부를 하려면 도서관에 갈 것이지 왜 술집에 와서 분위기를 흐리냐고 따졌다. 내가 기억하는 것은 거기까지였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인근 공원의 잔디밭이었고, 곁에 유코가 있었다.
술이 깨자 파노라마처럼 내 행동들이 나를 짓밟고 지나갔다. 나는 바로 사과했다. 그러면서 우리가 어떻게 이곳에 있는 거냐고 조심스레 물었다. 그녀는 화를 내던 내가 갑자기 울며 매달리기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고 말했다.
“다들 우리를 헤어진 연인으로 봤거든요. 당신을 데리고 서둘러 나왔죠.”
유코는 나를 어르고 달래 인근 공원까지 데려왔다.
“형이 죽었나요?”
유코가 물었다.
“아뇨.”
내가 단호하게 대답했다.
“하도 애타게 형을 찾길래 죽은 줄 알았죠.”
그날, 나는 처음으로 형에 대한 이야기를 타인에게 꺼냈다. 막상 말을 하기 시작하자 그다지 대수롭지 않은 일로 여겨졌다. 유코는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를 푸는 앤드루 와일즈처럼 내 이야기를 신중을 기해 들었다. 이야기를 모두 마쳤을 때 그녀가 말했다.
“라이프니츠는 이유 없이 일어나는 일은 없다고 믿었어요. 그는 모든 새로운 상태가 이전의 상태와 수학적 법칙으로 묶인다고 생각했죠. 형이상학적 근거에 따라 우주 안의 모든 것들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거죠. 그러니 당신이 그렇게 믿는 것도 무리는 아니에요.”
우리는 곧 연인이 되었고, 영화관이나 미술관, 노천카페 등을 돌아다니며 데이트를 했다. 나는 안정을 되찾아갔고 수업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그녀와 대화할수록 무언가 채워지는 느낌을 받았다. 모든 것이 새로웠고 흥미로웠다. 그녀의 전공까지도 우리를 이어주는 끈처럼 여겨졌다.
그녀의 전공은 ‘라이프니츠의 미적분학’이었는데 술에 취하면 냅킨이나 영수증 뒷면에 수학 공식을 적는 버릇이 있었다. 그때그때 떠올린 생각들을 잊지 않으려고 메모하다보니 생긴 주사라고 했다. 어느 날, 그녀는 데킬라 넉 잔을 마신 후 라이프니츠가 파스칼의 아이디어를 이용한 회전체 겉넓이를 구하는 수식을 써 내려갔다. 구간을 동일한 폭 △x를 갖도록 n등분하여 부분곡면의 선분 L1을 x축 주위로 회전시켰다. 그녀는 빳빳한 냅킨에 볼펜으로 그린 그림을 가리키며 회전체 겉넓이를 근사하는 일반적인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나는 스카치를 스트레이트로 마시던 중이었다. 숫자와 기호는 히에로니무스 보스의 그림처럼 기묘하고 아름답게 보였다. 완성된 그림은 정면으로는 물고기, 세로로는 곡선이 아름다운 호리병 모양이었다. 그 그림은 구적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 아니라 형의 존재를 일깨워주는 메시지처럼 보였다.
물고기가 찾아온 것은 오후 3시가 넘어서였다. 선잠이 들었다가 낯선 기척에 눈을 떴다. 호텔방 정면 창문으로 현미경으로 확대해 놓은 것 같은 물고기의 보랏빛 눈동자와 마주쳤다. 눈빛이 너무 맑고 순수한 나머지 악해 보일 정도였다. 호흡하는 아가미 사이로 붉은 살점이 두드러져 보였다. 끊임없이 움직이는 푸른색 지느러미는 바람에 날리는 머플러 같았다.
입을 벌린 채 멍하니 있자 물고기는 다시금 창문을 머리로 거세게 들이받은 후 아가미를 벌렸다. 공기가 물결이 이는 것처럼 파동했다. 거의 반사적으로 일어나 창문을 열었다. 습기를 머금은 바람이 얼굴을 때렸다. 창문 앞에서 비켜서자 거대한 물고기가 몸체를 움직였다. 물고기가 창문을 통과하자 비늘 몇 점과 점액질이 떨어졌다. 한 세계가 다른 세계로 넘어오는 듯한 기묘한 광경이었다. 그것은 어처구니없으면서도, 경이로웠다.
물고기가 호텔방에 머무른 시간은 고작해야 몇 분이었다. 물고기는 방안을 천천히 한 바퀴 돈 뒤 내 얼굴을 몇 초간 응시했다. 그런 뒤 들어올 때와 마찬가지로 유유히 창문을 빠져나갔다. 바닥에 떨어진 물방울만이 방금 물고기가 다녀갔다는 유일한 흔적이었다. 나는 호텔 커피숍으로 내려가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 생각을 정리할 셈이었지만 이미 답은 나와 있었다. 나는 커피를 아주 느긋하게 마신 뒤에 유코에게 전화를 걸어 그간 있었던 일을 설명했다.
“이곳에 더 있고 싶어. 휴가를 쓸 생각이야.” 내가 말했다. “불확정성 원리 때문에 전자가 어느 순간에 어디에 있는지 정확하게 예측할 수 없다고 그랬잖아. 모든 것을 확률로만 설명할 수 있을 뿐이라며. 그런데 그 확률이 지금 여기에 있어.”
그녀는 화가 나면 깊은 심호흡을 하는 버릇이 있었다. 그 긴 날숨이 여기까지 느껴졌다. 그녀가 딱딱한 어투로 되물었다.
“어느 정도나요?”
“나도 잘 모르겠어.”
“제가 예전에 불확정성에 대해 말하긴 했었죠. 전자는 관찰되기 전까지는 어느 곳에나 있으면서 어느 곳에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데니스 오버바이의 말을 인용했던 것도 같네요, 그렇죠?”
“어, 그랬지.”
“전자는 관찰될 때까지는 존재하지 않는 셈이라고도 했던 것 같은데, 맞나요?”
“어, 맞아.”
“말도 안 되는 확률에 매달려 있는 사람이 당신 가족에게는 관찰하려는 의지조차 없어요. 당신에게 우리 가족은 존재하지 않는 셈이나 마찬가지죠. 안 그런가요?”
대답도 하기 전에 전화가 끊겼다.
유코에 대한 걱정 때문에 일순간 결심이 흔들렸다. 그렇지만 유코는 내가 형에 대해 얼마나 절실한지 알고 있었다. 지금 당장이야 화가 나겠지만 이해해줄 것이라 믿었다. 유코와 결혼한 것도 결국 형 덕분이지 않은가. 유코의 으름장에도 불구하고 휴가를 쓰려 했지만 몇 가지 행정상 문제가 있었다. 나 대신 탑승할 부기장을 지금 당장 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일단 집으로 돌아가 유코와 얼굴을 맞대며 다시 얘기하고 오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유코가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은 뒤로 연락이 닿지 않았기 때문에 은근슬쩍 걱정과 두려움이 밀려왔다.
한국으로 돌아가는 날, 평소보다 일찍 미팅 장소에 도착해 기상도 정보를 확인했다. 뒤이어 기현이 도착했다. 승무원들이 다 도착하자 디스패치 브리핑이 시작됐다. 운항 관리사가 오늘 비행에 필요한 출발지와 항공로, 목적지의 날씨, 비행 루트, 탑재 연료의 양, 대체 공항 등에 대해 말했다.
기체가 이륙했을 때 나는 헛것을 보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기현이 방향타를 틀라고 소리쳤을 때 내 앞에 나타난 물체가 물고기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방향타를 좌우로 틀었다. 그러나 무슨 일인지 더 강한 난기류가 형성되었다. 난기류를 빠져나가기 위해 또다시 꼬리날개의 방향타를 좌우로 급격하게 틀었다. 소용없었다. 그럴수록 엄청난 공기의 저항이 느껴졌다. 큰 폭음이 귀를 강타했을 때 나는 오늘 탑승한 승객들의 수를 헤아렸다. 265명이었다. 그리고 기체는 이륙한 지 91초도 되지 않아 추락했다.
1979년 오헤어 공항에서 출발한 아메리카 191편 항공기가 273명의 사상자를 낸 일이 있었다. 기체는 이륙 도중 1번 엔진이 분리되었고, 분리된 엔진이 유압 파이프를 강타하면서 유압액이 모두 새어나갔다. 조종 불능으로 추락한 것이다. 그리고 한 달 전, 오헤어 공항에서 발생한 사고는 강한 난기류에 의한 것이라고 잠정 결론이 났다. 내가 깨어나기 전까지는.
나는 한 달 만에 극적으로 의식을 차렸다. 내가 깨어나자 한동안 수그러들었던 매스컴의 열기에 다시 불이 붙었다. 그들은 보다 정확한 사고 원인을 알고 싶어 했다. 블랙박스를 판독했지만 명확한 사고 원인을 찾을 수 없었던 것이다. 의사는 사고에서 살아남은 자가 단 두 명이라고 설명했다.
“외교부에서 근무하는 오십대 여성과 당신이에요. 노부인은 체력도 노쇠한 데다 기체 파편이 심장 부근을 관통하는 바람에 여전히 혼수상태랍니다. 그에 비하면 당신은 운이 좋은 편이에요.”
나는 천장에 하얗게 반사되는 전등을 응시한 채 의사의 말을 듣고 있었다. 내 두 다리에는 붕대가 감겨 있었다. 다리를 움직여보려 했으나 허사였다.
“하체가 마비됐습니까?”
내가 물었다.
“일단은요.”
의사가 대답했다.
나는 의사가 말한 운이 좋다는 말에 대해 다시 한번 곱씹었다. 의식을 차린 뒤에는 각종 검사를 받았다. 기자들과 운항관계자들의 면담 요청이 쇄도했다. 그때마다 의사는 아직은 무리라는 말로 돌려보냈다. 보호자인 유코의 면회는 당연히 허락되었으나 어쩐 일인지 연락이 닿질 않았다. 큰 사고였으니 틀림없이 뉴스를 봤을 터인데 이상한 일이었다. 어쩌면 내가 휴가를 썼다고 말했기 때문에 탑승하지 않았으리라 생각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생존자 명단으로 확실히 방송이 되었을 테니 역시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휠체어에 의지해 몸을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스스로 몸을 움직이며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는 너무 놀라 복도를 지나가는 간호사에게 이곳이 어디냐고 물어야 했다. 간호사는 내가 되살아났다는 기쁨에 장난치는 줄 알고 천국이라며 농담을 했다. 그러나 나는 진심이었다. 두 다리의 신경이 모두 끊어졌다는 사실도 잊고 뛰쳐나가려 했다. 내가 바닥에 엎어지자 간호사가 일으켜주며 씁쓸한 어투로 말했다.
“이제는 익숙해지셔야 할 텐데요.”
“물고기가 떠 있어요!”
나는 휠체어에 다시 앉은 뒤 정신을 가다듬고 말했다.
“네, 그러네요.”
간호사가 건성으로 대답했다.
“보라구요! 하늘에 물고기가 떠 있잖아요!”
내가 소리치자 간호사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줄곧 떠 있었다고 대답했다.
“저게 무슨 문제라도 되나요?”
“여기가 도대체 어딥니까?”
내가 부르짖자 그제야 간호사도 내 말이 농담이 아닌 것을 느낀 모양이다. 일단 나는 병실로 옮겨졌고, 곧이어 주치의가 왔으며 추가적인 검사가 이루어졌다.
이곳은 내가 알던 세계가 아니다. 그러나 물고기를 제외하면 모든 것이 놀라울 만큼 유사했다. 그들은 사고 도중 물리적 혹은 정신적 충격으로 인해 내 뇌 신경에 문제가 발생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응고화되었던 기억 중 몇 개가 손상된 것 같다는 것이다.
“그럴 리가요. 오히려 새로운 정보를 저장하기 위해 시냅스가 작동하고 있는 것 같은데요.”
내 의견은 가볍게 묵살되었다. 나는 상담과 검사를 받기를 반복했다. 그들은 내가 알게 된 새로운 사실들에 대해 말해볼 것을 종용했다. 나는 현재로서는 그것뿐이라고 대답했다.
“밖으로 나가면 또 모르지요.”
더이상 내 상태에 차도가 없자 주치의는 우선 운항관계자들과의 면담을 허락했다. 저들은 사실을 알 권리가 있고, 나는 유일한 생존자이자 책임자로서 대답해줄 의무가 있다는 것이다. 주치의는 내 건강에 이상신호가 있다면 그 즉시 모든 것을 중단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렇게 잡힌 면담이었다. 면담은 병원 내에 있는 세미나실을 빌려 진행되었다. 나는 사건 당일을 비롯해 그전에 내게 일어났던 기이한 현상에 대해서도 상세히 설명했다. 그러나 그들과 나는 세계를 이해하는 전제조건부터가 달랐다. 물고기가 하늘에 떠 있는 기이한 현상이 그들에겐 지극히 자연스러운 세계의 일부였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내 주장은 명백한 오류가 있는 명제인 셈이었다.
“몇백 년 동안 우리는 물고기들과 함께 살았습니다. 물고기가 해를 끼칠 가능성은 적은 게 아니라 전무합니다.”
그들의 설명이었다. 앞에 앉아 있는 세 명의 관계자들은 모두 한결같이 내 말을 경청했다. 그들의 태도는 훌륭했으나 때때로 내 이야기에 출구가 막힌 비상구를 발견한 표정을 지었다. 이야기가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 심리학 박사가 물었다.
“그런데 유코는 누군가요?”
“제 아내입니다만.”
그는 내 대답에 살포시 미간을 찌푸린 후 서류를 확인했다.
“서류가 잘못된 게 아니라면 당신은 미혼으로 되어 있는데요.”
나는 얼마나 많은 독립변수가 존재하는지 알지 못했다. 이 세계에서 나는 불완전한 종속변수에 불과했다. 독립변수가 무엇인가에 따라 나는 계속 변할 수밖에 없었다. 다음 주에 박사와 개별 상담을 하기로 하고 면담은 일단락되었다. 그들이 모두 세미나실을 빠져나간 뒤 나는 한동안 생각에 잠겨 있었다. 묻고 답하고 공격하고 방어하는 생각 끝에 이곳은 내가 알던 세계가 아니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러나 바람이 빠져가는 풍선과도 같은 확신이었다.
밖으로 나오자 길고 깨끗한 복도가 이어졌다. 나는 엘리베이터를 잡아타고 1층에 내려 인파가 북적이는 접수대를 지나 지상으로 나왔다. 사람들이 마치 택시를 잡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물고기에게 인사했다. 나는 깊게 심호흡을 했다. 내 담당 간호사가 다가와 오랜만에 좋은 날씨라고 말했다.
“다들 얘네들 덕분이지요. 공기를 열심히 정화해주거든요.”
나는 간호사처럼 손을 들어 물고기에게 인사했다. 거대한 물고기가 내게 다가왔다. 명확한 사실은 이것뿐이었다. 하늘에는 물고기가 산다.
“미안하지만 당신의 이야기를 다시 자세히 들어봐야겠는데요.”
나는 한숨을 쉬었다. 그러고는 사건을 찬찬히 되짚어보았다. 달리 변할 것이 없는 것을 알면서도.
그날의 마지막 비행은 시카고오헤어 공항으로, 도착 시각은 저녁 열한시 십칠분이었다. 이상 물체를 감지한 것은 기체가 안전궤도 진입하고 40분 후였다. 처음에 나는 계기판에 묻은 얼룩으로 착각하고 닦으려 했다. 하지만 이내 비행 물체라는 것을 깨닫고는 기장인 기현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기현은 계기판을 확인한 뒤 속도를 늦추고 레이더 자료를 관제탑에 보냈다. 우리는 별걱정 없이 피드백을 기다렸다. 철새 떼가 이동이라도 하나 싶었던 것이다. 그러기에는 고도가 지나치게 높아 적잖은 걱정이 뒤따르긴 했다. 철새들은 대체로 3,000피트 상공에서 이동했고, 때때로 7,000피트 상공에서도 눈에 띄긴 했지만 드문 일이었다. 무엇보다 지금 그들은 삼만 이천 피트에 있었고, 그 정도 상공에서 이동하는 새떼들은 아직 보고된 바 없었다.
나는 관제탑에 사실 확인을 바란다는 말을 반복해 전달했다. 십여 분 뒤, 관제탑에서는 알 수 없는 비행물체라는 답변과 함께 궤도 수정을 지시했다. 다행히도 물체는 반경 20미터 밖에서만 이동을 보이고 있었다. 자동운전을 해지하고는 관제탑의 지시대로 항로를 변경했다. 기현이 승객들에게 안내방송을 하는 사이 나는 풍속과 풍향 등을 점검했다. 기현이 엔진을 가속화하며 기체의 방향을 틀기 직전이었다.
“선배, 보셨어요? 방금?”
나는 너무 놀란 나머지 사석에서의 호칭이 튀어나왔다. 그러나 기현은 노련한 기장답게 곧장 정신을 수습하고 이 사실을 관제탑에 보고했다.
“삼만 이천 피트, 좌표 GS708. 물고기로 추정되는 물체들이 떠 있다. 확인 바란다.”
나는 방금 본 것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구름 한 점 없는 푸른 하늘에 물고기―혹은 물고기로 추정되는 물체―들이 떠 있었다. 헐리벗이나 청새치만큼이나 거대한 크기였다. 지느러미와 꼬리는 투명하리만치 파랬고, 두 눈은 붉은색이었다. 몸체는 마치 보라색 커튼이 출렁이는 것처럼 보였다. 물고기는 유유히 움직이고 있었다. 너무도 자연스러운 광경이었다. 마치 이제껏 하늘이라 칭했던 것이 실은 수면인 듯 느껴질 만큼 자연스러웠다.
우리는 일지를 작성한 후 비행장과 약 3킬로미터 떨어진 래디슨 호텔로 이동했다. 각자의 방에서 짐을 푼 뒤 새벽까지 영업하는 레스토랑 겸용 바에 들어갔다. 그날의 메인디시를 주문할 때까지도 나는 낮에 보았던 광경에 대해 애써 회피하고 있었다. 그러나 웨이터가 들고 온 하얀 접시 위에 다소곳이 놓인 잉어 한 마리를 보자 외면했던 물고기의 이미지가 강렬하게 되살아났다.
잉어 살은 지나치게 부드러워 몇 번이나 혀로 잇몸을 핥았다. 기현은 평소와 다름없이 느긋하게 접시를 비우고 있었다. 기현이 와인 한 병을 더 주문했을 때 나는 마지막 남은 잉어 살을 음미하며 물었다.
“그 물고기떼 말이에요. 도대체 뭘까요?”
“글쎄, 모르지.”
“분명 물고기였는데 말이에요.”
“그래, 물고기였지.”
“하늘에 물고기라니 말이 안 돼요.”
“말이 안 되지.”
특별한 대답을 기대한 것은 아니었지만 내 말을 되풀이하는 기현 때문에 맥이 빠졌다. 더군다나 오늘은 형의 기일이었다.
형과 나는 부모도 가끔 헷갈릴 정도로 닮은 일란성 쌍둥이였다. 다섯 살 무렵, 우리 가족은 계곡으로 여름 피서를 떠났다. 어머니는 뭐든 두 개씩 구비해 다녔는데 그날따라 가져온 튜브 공 하나가 말썽이었다. 구멍이 났는지 공기를 주입해도 계속 바람이 샜던 것이다. 아버지가 우리에게 가위바위보를 제안했다. 먼저 공을 차지한 사람은 나였다. 진 것이 분했던 형은 한참을 씩씩거리다가 어디선가 구해온 나무막대기로 물속을 헤집으며 놀았다. 비명이 들린 것은 그로부터 몇 분 뒤였다.
얼마 떨어지지 않은 거리에 형이 있었다. 나는 형의 비명소리를 듣자마자 물속을 헤치며 뛰어갔다. 수심이 깊지도 않았다. 그러나 내가 도착했을 때 형은 이미 작은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작은 물고기들과 함께.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어머니는 한 달 동안의 조사 끝에 형의 시신을 포기했다. 장례식에서 쓰러진 어머니는 끔찍한 열병 속에서 형의 존재를 재편집했다. 어머니가 깨어났을 때 형의 존재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것이 어머니가 살아갈 수 있는 마지막 방편이기는 했다. 아버지는 장례식을 치른 후 쌍둥이 사진을 모조리 불태워버렸고, 짝을 이루던 물건과 옷가지도 내다 버렸다. 그런 와중에도 나는 도무지 형이 죽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그저 본능이었고, 직감이었다.
웨이터가 빈 접시를 치워갔다.
“예수가 먹은 최후의 만찬이 뭐였는지 아세요? 물고기였어요.”
내가 말했다. 기현은 후식으로 나온 커피를 마시며 나를 지그시 쳐다봤다. 나는 이어 본래 기독교 최초의 상징은 십자가가 아니라 익투스였다고 설명했다.
“익투스는 히브리어로 ‘물고기’를 뜻해요. ‘예수 그리스도, 하느님의 아들이며 구세주’라는 히브리어 기도 문구의 첫 번째 글자를 따서 만든 아나그램이죠.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십자가는 14세기가 돼서야 굳어진 거예요.”
덧붙여 구약에서 인간은 바다에 사는 물고기로 비유되어 있고, 신약에서 물고기는 인간을 나타내고 있다고도 말했다. 기현은 한동안 침묵을 지키다가 일단 데이터는 넘겼으니 좀 기다려보는 편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호텔 방으로 돌아와 플로리다 최남단 키웨스트의 항행을 떠올리기 위해 노력했다. 머릿속이 복잡할 때면 플로리다의 해변 상공을 떠올리는 것이 무엇보다 효과적이었다. 그러나 끝없이 이어진 데이토나 비치마저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따듯한 햇살과 부드러운 모래가 느껴질라치면 어느 순간 파도가 눈앞까지 다가와 모든 것을 휩쓸어갔다. “자신의 삶에서 무엇이 중요한지 우리는 거의 깨닫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 다른 사람을 괴롭히는 것은 아니다. 종일 물속에서 헤엄치고 있는 물고기가 물에 대해 무엇을 알겠는가?” 아인슈타인의 말은 정확했다.
나는 아버지에게 여러 차례 형이 살아 있다고 주장했다. 처음에 아버지는 연민과 슬픔이 뒤섞인 눈빛으로 나를 다독였다. 그러나 두 번째는 탄식하며 나를 무시했고, 세 번째는 격분하며 주먹을 휘둘렀다. “멍청한 소리 그만해라!” 아버지가 심신이 불안정한 어머니를 대신해 형의 영정사진을 찾을 때도 나는 비협조적이었다. 쌍둥이인 탓에 항상 같은 옷을 입힌 것이 화근이었고, 일란성의 미묘한 차이를 아버지는 알지 못했다. 아버지는 몇 개의 사진을 가져와 내게 물었고, 나는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아버지는 나를 채근하는 대신 내 얼굴과 사진을 대조해가며 고심 끝에 사진 한 장을 골라냈다.
한 인간의 존재를 지우는 것은 물리적으로 힘든 일이었다. 세월의 흐름에 맞춰 자연스럽게 떠난 이와 그렇지 못한 이의 차이는 너무도 자명했다. 아버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어머니는 불현듯 형의 존재를 생각해냈다. 그런 날이면 집 안 공기의 밀도는 더없이 무거워서 나는 방에서 나올 수가 없었다. 내가 집 안을 돌아다님으로써 형의 부재를 어머니에게 더 각인시켰기 때문이다. 나는 어머니가 슬픔에 지쳐 잠자리에 들 때까지 방에서 요의를 참곤 했다. 시간이 지나면 나아지리라 기대했지만 어머니의 시간은 일정 시기에 멈춰 있었다. 결국 아버지는 어머니를 병원에 입원시켰다. 당분간이라고 내게 말했지만 그 말은 끝내 지켜지지 않았다.
병원에서의 어머니는 심적으로 안정돼 보였다. 그러다 점점 나를 형으로 알아보기 시작했다. 나는 어머니의 환한 미소를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했으나 내 존재에 대해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도대체 그날 사라진 이가 형이 맞는 것인지 의심이 들었다. 더이상 아버지에게 형이 살아 있다고 말할 필요조차 없었다. 내가 형이었으니까. 아버지가 서류상으로 지운 이도 나였고, 심사숙고해 고른 형의 영정사진도 실은 내 사진이었다.
아버지는 실수라고 말했다. 어머니에게 신경 쓰느라 정신이 없어 그만 내 이름을 지우고 말았다고. 어머니가 나를 형으로 인지하는 것도 서로를 위해 좋지 않냐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아버지에게는 정말로 대수롭지 않은 일이었다. 형이나 나나, 나나 형이나 실은 매한가지인 셈이었다. 차마 어머니에게 나는 형이 아니라고 말할 용기도 없었다. 나는 그저 정지한 동전처럼 보이기 위해 애쓸 뿐이었다. 완전히 정지한 것처럼 보이는 동전이 실은 끊임없이 진동하고 있다는 것을, 외부 세계를 단절시키지 않는 한 물체가 온전히 정지해 있는 순간은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헛된 환상을 지키기 위해 노력해야 했다.
형에 대한 꿈도 수도 없이 꿨다. 형은 외눈박이 노인으로 나타날 때도 있었고, 작고 연약한 여자아이로 나타날 때도 있었다. 어떤 때는 오래된 떡갈나무였고, 어떤 때는 버들가지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있는 참새였다. 나는 언제나 형의 존재를 단번에 알아차렸다. 때때로 꿈이 너무 생생한 나머지 꿈이 현실이고, 현실이 꿈인 것처럼 느껴질 때도 더러 있었다. 그때마다 우주는 물질이든 진공이든 초양자장으로 가득하기 때문에 상호 연결되어 있다는 말을 되뇌었다. 이런 양자 얽힘이 사실이라면 숨어 있는 세계에 실재하는 형의 모습을 보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폐허가 된 도시를 헤맨 적도 있었다. 생기 없는 도시였다. 나는 무너진 건물들 사이에 주린 배를 움켜쥔 채 웅크리고 있었다. 쥐새끼 한 마리 없었다. 손바닥만한 벌레들이 간혹 얼굴 위를 지나갔지만 그것들을 잡을 수 없을 정도로 몸에 기력이 없었다. 다음날, 잠에서 깨어났을 때 나는 알 수 없는 허기를 느꼈고 닥치는 대로 먹었다. 그럼에도 허기는 사그라지지 않았다. 그렇게 일주일 뒤 허전한 느낌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그리고 그날 밤 교통사고가 일어났다. 아버지는 오랜만에 조수석에 어머니를 태우고 바다로 향했다. 결혼기념일이었다. 그날 유난히 많은 눈이 내렸다. 예보에 없던 폭설이었다. 길은 미끄러웠고, 가시거리는 좁았다. 그러나 노련한 운전자들은 날씨에 겁먹지 않았다. 그것이 문제였다. 트럭믹서 두 대가 연달아 아버지의 승용차를 밟고 지나갔다.
심하게 훼손된 시신은 화장하는 수밖에 달리 도리가 없었다. 나는 화덕에서 장시간 태운 부모의 유해를 받아 형이 사라졌던 계곡으로 향했다. 그곳에 유해를 뿌리면서 이제 더이상 혼란을 겪지 않으리라 결심했다. 그 순간 물고기 한 마리가 튀어 올랐다. 나는 놀라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미처 뿌리지 못한 유해가 손안에 퍼석거렸다.
그 후, 도망치듯 유학길에 올랐다. 그곳에서 유코를 만났다. 당시 나는 아버지의 바람대로 미래를 설계해나가고 있었다. 이미 아버지가 항공 비행사 자격증을 따기 위한 준비를 마련한 뒤였기도 했거니와 별다른 선택지도 없었다. 당연하게도 나는 수업에도, 외국 생활에도, 음식에도 무엇 하나 적응하지 못했다. 한 시간에 몇백 달러씩 나가고 있다고 생각을 하면서도 도통 집중을 할 수가 없었다. 착실하게 수업을 듣긴 했으나 머릿속은 텅 빈 채였다.
유코는 박사학위를 위해 미국으로 건너온 일본인이었다. 오사카 출신이었고, 성격이 무척 밝고 활달했다. 몸집은 작았지만 눈에 총기가 넘쳤고, 걸음걸이가 바르고 깨끗했다.
그녀와의 첫 만남은 허름한 술집에서 이루어졌다. 입구도 좁은 골목 깊숙한 곳에 위치한 술집에 들어갔을 때 나는 이미 만취 상태였다. 그녀에게 접근한 이유를 어렴풋이 짐작하자면 아마도 장소와 어울리지 않게 학구적인 분위기를 풍겼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그녀에게 시비를 걸었다. 공부를 하려면 도서관에 갈 것이지 왜 술집에 와서 분위기를 흐리냐고 따졌다. 내가 기억하는 것은 거기까지였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인근 공원의 잔디밭이었고, 곁에 유코가 있었다.
술이 깨자 파노라마처럼 내 행동들이 나를 짓밟고 지나갔다. 나는 바로 사과했다. 그러면서 우리가 어떻게 이곳에 있는 거냐고 조심스레 물었다. 그녀는 화를 내던 내가 갑자기 울며 매달리기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고 말했다.
“다들 우리를 헤어진 연인으로 봤거든요. 당신을 데리고 서둘러 나왔죠.”
유코는 나를 어르고 달래 인근 공원까지 데려왔다.
“형이 죽었나요?”
유코가 물었다.
“아뇨.”
내가 단호하게 대답했다.
“하도 애타게 형을 찾길래 죽은 줄 알았죠.”
그날, 나는 처음으로 형에 대한 이야기를 타인에게 꺼냈다. 막상 말을 하기 시작하자 그다지 대수롭지 않은 일로 여겨졌다. 유코는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를 푸는 앤드루 와일즈처럼 내 이야기를 신중을 기해 들었다. 이야기를 모두 마쳤을 때 그녀가 말했다.
“라이프니츠는 이유 없이 일어나는 일은 없다고 믿었어요. 그는 모든 새로운 상태가 이전의 상태와 수학적 법칙으로 묶인다고 생각했죠. 형이상학적 근거에 따라 우주 안의 모든 것들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거죠. 그러니 당신이 그렇게 믿는 것도 무리는 아니에요.”
우리는 곧 연인이 되었고, 영화관이나 미술관, 노천카페 등을 돌아다니며 데이트를 했다. 나는 안정을 되찾아갔고 수업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그녀와 대화할수록 무언가 채워지는 느낌을 받았다. 모든 것이 새로웠고 흥미로웠다. 그녀의 전공까지도 우리를 이어주는 끈처럼 여겨졌다.
그녀의 전공은 ‘라이프니츠의 미적분학’이었는데 술에 취하면 냅킨이나 영수증 뒷면에 수학 공식을 적는 버릇이 있었다. 그때그때 떠올린 생각들을 잊지 않으려고 메모하다보니 생긴 주사라고 했다. 어느 날, 그녀는 데킬라 넉 잔을 마신 후 라이프니츠가 파스칼의 아이디어를 이용한 회전체 겉넓이를 구하는 수식을 써 내려갔다. 구간을 동일한 폭 △x를 갖도록 n등분하여 부분곡면의 선분 L1을 x축 주위로 회전시켰다. 그녀는 빳빳한 냅킨에 볼펜으로 그린 그림을 가리키며 회전체 겉넓이를 근사하는 일반적인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나는 스카치를 스트레이트로 마시던 중이었다. 숫자와 기호는 히에로니무스 보스의 그림처럼 기묘하고 아름답게 보였다. 완성된 그림은 정면으로는 물고기, 세로로는 곡선이 아름다운 호리병 모양이었다. 그 그림은 구적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 아니라 형의 존재를 일깨워주는 메시지처럼 보였다.
물고기가 찾아온 것은 오후 3시가 넘어서였다. 선잠이 들었다가 낯선 기척에 눈을 떴다. 호텔방 정면 창문으로 현미경으로 확대해 놓은 것 같은 물고기의 보랏빛 눈동자와 마주쳤다. 눈빛이 너무 맑고 순수한 나머지 악해 보일 정도였다. 호흡하는 아가미 사이로 붉은 살점이 두드러져 보였다. 끊임없이 움직이는 푸른색 지느러미는 바람에 날리는 머플러 같았다.
입을 벌린 채 멍하니 있자 물고기는 다시금 창문을 머리로 거세게 들이받은 후 아가미를 벌렸다. 공기가 물결이 이는 것처럼 파동했다. 거의 반사적으로 일어나 창문을 열었다. 습기를 머금은 바람이 얼굴을 때렸다. 창문 앞에서 비켜서자 거대한 물고기가 몸체를 움직였다. 물고기가 창문을 통과하자 비늘 몇 점과 점액질이 떨어졌다. 한 세계가 다른 세계로 넘어오는 듯한 기묘한 광경이었다. 그것은 어처구니없으면서도, 경이로웠다.
물고기가 호텔방에 머무른 시간은 고작해야 몇 분이었다. 물고기는 방안을 천천히 한 바퀴 돈 뒤 내 얼굴을 몇 초간 응시했다. 그런 뒤 들어올 때와 마찬가지로 유유히 창문을 빠져나갔다. 바닥에 떨어진 물방울만이 방금 물고기가 다녀갔다는 유일한 흔적이었다. 나는 호텔 커피숍으로 내려가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 생각을 정리할 셈이었지만 이미 답은 나와 있었다. 나는 커피를 아주 느긋하게 마신 뒤에 유코에게 전화를 걸어 그간 있었던 일을 설명했다.
“이곳에 더 있고 싶어. 휴가를 쓸 생각이야.” 내가 말했다. “불확정성 원리 때문에 전자가 어느 순간에 어디에 있는지 정확하게 예측할 수 없다고 그랬잖아. 모든 것을 확률로만 설명할 수 있을 뿐이라며. 그런데 그 확률이 지금 여기에 있어.”
그녀는 화가 나면 깊은 심호흡을 하는 버릇이 있었다. 그 긴 날숨이 여기까지 느껴졌다. 그녀가 딱딱한 어투로 되물었다.
“어느 정도나요?”
“나도 잘 모르겠어.”
“제가 예전에 불확정성에 대해 말하긴 했었죠. 전자는 관찰되기 전까지는 어느 곳에나 있으면서 어느 곳에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데니스 오버바이의 말을 인용했던 것도 같네요, 그렇죠?”
“어, 그랬지.”
“전자는 관찰될 때까지는 존재하지 않는 셈이라고도 했던 것 같은데, 맞나요?”
“어, 맞아.”
“말도 안 되는 확률에 매달려 있는 사람이 당신 가족에게는 관찰하려는 의지조차 없어요. 당신에게 우리 가족은 존재하지 않는 셈이나 마찬가지죠. 안 그런가요?”
대답도 하기 전에 전화가 끊겼다.
유코에 대한 걱정 때문에 일순간 결심이 흔들렸다. 그렇지만 유코는 내가 형에 대해 얼마나 절실한지 알고 있었다. 지금 당장이야 화가 나겠지만 이해해줄 것이라 믿었다. 유코와 결혼한 것도 결국 형 덕분이지 않은가. 유코의 으름장에도 불구하고 휴가를 쓰려 했지만 몇 가지 행정상 문제가 있었다. 나 대신 탑승할 부기장을 지금 당장 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일단 집으로 돌아가 유코와 얼굴을 맞대며 다시 얘기하고 오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유코가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은 뒤로 연락이 닿지 않았기 때문에 은근슬쩍 걱정과 두려움이 밀려왔다.
한국으로 돌아가는 날, 평소보다 일찍 미팅 장소에 도착해 기상도 정보를 확인했다. 뒤이어 기현이 도착했다. 승무원들이 다 도착하자 디스패치 브리핑이 시작됐다. 운항 관리사가 오늘 비행에 필요한 출발지와 항공로, 목적지의 날씨, 비행 루트, 탑재 연료의 양, 대체 공항 등에 대해 말했다.
기체가 이륙했을 때 나는 헛것을 보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기현이 방향타를 틀라고 소리쳤을 때 내 앞에 나타난 물체가 물고기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방향타를 좌우로 틀었다. 그러나 무슨 일인지 더 강한 난기류가 형성되었다. 난기류를 빠져나가기 위해 또다시 꼬리날개의 방향타를 좌우로 급격하게 틀었다. 소용없었다. 그럴수록 엄청난 공기의 저항이 느껴졌다. 큰 폭음이 귀를 강타했을 때 나는 오늘 탑승한 승객들의 수를 헤아렸다. 265명이었다. 그리고 기체는 이륙한 지 91초도 되지 않아 추락했다.
1979년 오헤어 공항에서 출발한 아메리카 191편 항공기가 273명의 사상자를 낸 일이 있었다. 기체는 이륙 도중 1번 엔진이 분리되었고, 분리된 엔진이 유압 파이프를 강타하면서 유압액이 모두 새어나갔다. 조종 불능으로 추락한 것이다. 그리고 한 달 전, 오헤어 공항에서 발생한 사고는 강한 난기류에 의한 것이라고 잠정 결론이 났다. 내가 깨어나기 전까지는.
나는 한 달 만에 극적으로 의식을 차렸다. 내가 깨어나자 한동안 수그러들었던 매스컴의 열기에 다시 불이 붙었다. 그들은 보다 정확한 사고 원인을 알고 싶어 했다. 블랙박스를 판독했지만 명확한 사고 원인을 찾을 수 없었던 것이다. 의사는 사고에서 살아남은 자가 단 두 명이라고 설명했다.
“외교부에서 근무하는 오십대 여성과 당신이에요. 노부인은 체력도 노쇠한 데다 기체 파편이 심장 부근을 관통하는 바람에 여전히 혼수상태랍니다. 그에 비하면 당신은 운이 좋은 편이에요.”
나는 천장에 하얗게 반사되는 전등을 응시한 채 의사의 말을 듣고 있었다. 내 두 다리에는 붕대가 감겨 있었다. 다리를 움직여보려 했으나 허사였다.
“하체가 마비됐습니까?”
내가 물었다.
“일단은요.”
의사가 대답했다.
나는 의사가 말한 운이 좋다는 말에 대해 다시 한번 곱씹었다. 의식을 차린 뒤에는 각종 검사를 받았다. 기자들과 운항관계자들의 면담 요청이 쇄도했다. 그때마다 의사는 아직은 무리라는 말로 돌려보냈다. 보호자인 유코의 면회는 당연히 허락되었으나 어쩐 일인지 연락이 닿질 않았다. 큰 사고였으니 틀림없이 뉴스를 봤을 터인데 이상한 일이었다. 어쩌면 내가 휴가를 썼다고 말했기 때문에 탑승하지 않았으리라 생각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생존자 명단으로 확실히 방송이 되었을 테니 역시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휠체어에 의지해 몸을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스스로 몸을 움직이며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는 너무 놀라 복도를 지나가는 간호사에게 이곳이 어디냐고 물어야 했다. 간호사는 내가 되살아났다는 기쁨에 장난치는 줄 알고 천국이라며 농담을 했다. 그러나 나는 진심이었다. 두 다리의 신경이 모두 끊어졌다는 사실도 잊고 뛰쳐나가려 했다. 내가 바닥에 엎어지자 간호사가 일으켜주며 씁쓸한 어투로 말했다.
“이제는 익숙해지셔야 할 텐데요.”
“물고기가 떠 있어요!”
나는 휠체어에 다시 앉은 뒤 정신을 가다듬고 말했다.
“네, 그러네요.”
간호사가 건성으로 대답했다.
“보라구요! 하늘에 물고기가 떠 있잖아요!”
내가 소리치자 간호사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줄곧 떠 있었다고 대답했다.
“저게 무슨 문제라도 되나요?”
“여기가 도대체 어딥니까?”
내가 부르짖자 그제야 간호사도 내 말이 농담이 아닌 것을 느낀 모양이다. 일단 나는 병실로 옮겨졌고, 곧이어 주치의가 왔으며 추가적인 검사가 이루어졌다.
이곳은 내가 알던 세계가 아니다. 그러나 물고기를 제외하면 모든 것이 놀라울 만큼 유사했다. 그들은 사고 도중 물리적 혹은 정신적 충격으로 인해 내 뇌 신경에 문제가 발생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응고화되었던 기억 중 몇 개가 손상된 것 같다는 것이다.
“그럴 리가요. 오히려 새로운 정보를 저장하기 위해 시냅스가 작동하고 있는 것 같은데요.”
내 의견은 가볍게 묵살되었다. 나는 상담과 검사를 받기를 반복했다. 그들은 내가 알게 된 새로운 사실들에 대해 말해볼 것을 종용했다. 나는 현재로서는 그것뿐이라고 대답했다.
“밖으로 나가면 또 모르지요.”
더이상 내 상태에 차도가 없자 주치의는 우선 운항관계자들과의 면담을 허락했다. 저들은 사실을 알 권리가 있고, 나는 유일한 생존자이자 책임자로서 대답해줄 의무가 있다는 것이다. 주치의는 내 건강에 이상신호가 있다면 그 즉시 모든 것을 중단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렇게 잡힌 면담이었다. 면담은 병원 내에 있는 세미나실을 빌려 진행되었다. 나는 사건 당일을 비롯해 그전에 내게 일어났던 기이한 현상에 대해서도 상세히 설명했다. 그러나 그들과 나는 세계를 이해하는 전제조건부터가 달랐다. 물고기가 하늘에 떠 있는 기이한 현상이 그들에겐 지극히 자연스러운 세계의 일부였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내 주장은 명백한 오류가 있는 명제인 셈이었다.
“몇백 년 동안 우리는 물고기들과 함께 살았습니다. 물고기가 해를 끼칠 가능성은 적은 게 아니라 전무합니다.”
그들의 설명이었다. 앞에 앉아 있는 세 명의 관계자들은 모두 한결같이 내 말을 경청했다. 그들의 태도는 훌륭했으나 때때로 내 이야기에 출구가 막힌 비상구를 발견한 표정을 지었다. 이야기가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 심리학 박사가 물었다.
“그런데 유코는 누군가요?”
“제 아내입니다만.”
그는 내 대답에 살포시 미간을 찌푸린 후 서류를 확인했다.
“서류가 잘못된 게 아니라면 당신은 미혼으로 되어 있는데요.”
나는 얼마나 많은 독립변수가 존재하는지 알지 못했다. 이 세계에서 나는 불완전한 종속변수에 불과했다. 독립변수가 무엇인가에 따라 나는 계속 변할 수밖에 없었다. 다음 주에 박사와 개별 상담을 하기로 하고 면담은 일단락되었다. 그들이 모두 세미나실을 빠져나간 뒤 나는 한동안 생각에 잠겨 있었다. 묻고 답하고 공격하고 방어하는 생각 끝에 이곳은 내가 알던 세계가 아니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러나 바람이 빠져가는 풍선과도 같은 확신이었다.
밖으로 나오자 길고 깨끗한 복도가 이어졌다. 나는 엘리베이터를 잡아타고 1층에 내려 인파가 북적이는 접수대를 지나 지상으로 나왔다. 사람들이 마치 택시를 잡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물고기에게 인사했다. 나는 깊게 심호흡을 했다. 내 담당 간호사가 다가와 오랜만에 좋은 날씨라고 말했다.
“다들 얘네들 덕분이지요. 공기를 열심히 정화해주거든요.”
나는 간호사처럼 손을 들어 물고기에게 인사했다. 거대한 물고기가 내게 다가왔다. 명확한 사실은 이것뿐이었다. 하늘에는 물고기가 산다.
참고문헌
권지영, 「라이프니츠의 미적분학 발견원리에 대한 고찰」, 순천대학교 교육대학원 논문.
토마스 데 파도바, 『라이프니츠, 뉴턴 그리고 시간의 발명』, 박규호 옮김, 은행나무.
권지영, 「라이프니츠의 미적분학 발견원리에 대한 고찰」, 순천대학교 교육대학원 논문.
토마스 데 파도바, 『라이프니츠, 뉴턴 그리고 시간의 발명』, 박규호 옮김, 은행나무.
김은우
어쩌다가 글을 쓰게 되었는지 가끔 생각합니다.
어쩌다가 이런 글이 되었는지 항상 생각합니다.
2019/08/27
21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