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난생처음 구입한 어른 책은 전혜린의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였다. 중학교 1학년 때 국어 선생님한테 이야기를 듣고는 곧장 서점으로 달려갔더랬다. 문제는 그 책이 국한문혼용체가 일상적으로 쓰이던 시절 출간되어 조사를 제외한 거의 대부분의 단어가 한자로 되어 있었다는 것. 옥편을 옆에 두고 ‘회색빛 포도’ 같은 단어에 음을 달다가 결국 두 페이지도 읽지 못하고 내팽개쳐버렸다. 몇 차례 더 도전했으나 내 머릿속 전혜린은 스카프를 쓴 채 하숙집 입구에서 좀처럼 더 나아가지 못했다. 책을 끝까지 읽은 건 몇 년 후 전면 한글판이 나온 뒤였다. 이미 어른이 된 나는 전혜린이 조선총독부 친일 관료의 딸이었으며 약물 과용으로 서른한 살 나이에 요절했다는 것을 알고는 착잡한 심경이 되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하면 어리숙한 중학생에게 전혜린은 실존 인물이라기보다 나하고 전혀 다른 차원에 존재하는 문학적 캐릭터에 가까웠던 것 같다. 사실 중고등학교 때 교과서에서 접한 수필들도 대체로 내 삶하고는 거리가 먼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느릿느릿 방망이 깎는 노인에게 짜증을 내고는 뒤늦게 장인정신에 감탄하거나 마당의 낙엽을 태우고 목욕물을 데우며 삶을 되돌아보거나 무료한 한낮, 권태에 시달리다 줄줄이 앉아 똥을 누는 시골 아이들을 구경하거나, 내가 기억하는 한국의 ‘명수필’들이란 대개 어른 남성 작가들이 자신이 일상에서 느낀 깨달음과 가르침을 이러쿵저러쿵 늘어놓는 글이었다. 국어 시험 문제를 내기 딱 알맞은 길이와 내용의 글이었는지 몰라도 그 자체로 십대들에게 순수한 독서의 대상이 되기는 어려워 보였다. 오랫동안 ‘수필’이란 장르가 시, 소설, 희곡과 함께 문학의 큰 갈래로 이야기되기에는 다소 빈약한 분야가 아닐까 생각했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수필’이 갖는 고루한 느낌 때문인지 언제부터인가 에세이라는 장르명이 더 일반화되어 쓰이고 있다. 이제는 나도 서경식, 리베카 솔닛, 올리비아 랭 등의 에세이를 찾아 읽으며 무라카미 하루키도 소설보다 에세이에서 그 글맛이 더 돋보인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서점에 가면 국내외 가리지 않고 수많은 에세이가 출간되어 소설과 인문교양 사이에서 당당히 한 분야를 담당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가벼운 마음으로 독서를 하고 싶은 독자들은 흔쾌히 에세이를 집어 든다. 예술, 종교, 여행, 독서, 음식, 동물 등 선호하는 주제를 선택하면 수많은 목록이 줄줄이 대기중이기도 하다. 자기계발과 웰니스는 여전히 미심쩍은 개념이지만 동병상련의 마음을 나누고 직접적으로 위로하고 응원하는 심리 치유 용도의 에세이는 특히 젊은 독자들에게 널리 읽히고 있다. 가장 혼란스럽고 막막한 시기에 한 권의 책이 잠시라도 위안을 줄 수 있다면 그 또한 독서의 유용함일 터. 에세이는 독자와 소통하기에도, 근사한 문장력과 인문학적 내공을 자랑하기에도, 작가 자신의 고유한 삶을 드러내기에도 적절한 장르로 보인다. 유튜브와 SNS를 통해 누구나 자기 삶을 기꺼이 내보이고 공유하는 시대에 에세이야말로 요즘 독자들의 입맛에 딱 맞는 장르인지도 모르겠다.
  어린 시절 수필 장르에 번번이 거리감을 느꼈던 나로서는 청소년에세이 ‘해마’ 시리즈1)가 그 자체로 놀랍다. 청소년 독자를 정확히 타깃으로 하는 에세이라니, 학습법이나 동기부여를 다룬 실용서도 아니고? 그도 그럴 것이 어른 작가가 청소년 독자들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란 일단 내용과 태도 면에서 의심을 사기 쉽다. 어른 작가는 과연 어린 독자들에게 어떤 ‘유익한’ 이야기를 들려줄까. 어려서부터 줄곧 ‘맞는 말이지만 듣기 싫은 어른의 말’에 노출되어온 청소년 독자들은 과연 순순히 들어줄 것인가. 청소년소설도 있고 청소년시도 있으니 청소년에세이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러나 청소년시에서 장르 성립 여부를 두고 설왕설래가 있는 것처럼 청소년에세이 역시 작가의 목소리가 직접 드러난다는 점에서 청소년문학의 하위 장르로 볼 수 있을지 난감한 대목이 있다. 어른 작가가 쓰는 청소년에세이는 어떤 방식으로 청소년의 목소리를 담아낼 수 있을까?
  이 지점에서 해마 시리즈가 목표로 삼은 것은 바로 ‘기억’이다. 아마도 시리즈 명칭 역시 단기 기억을 장기 기억으로 전환하는 두뇌 기관 ‘해마’에서 따온 듯싶은데 서술 기억을 담당하는 해마에 문제가 생긴 사람은 새로운 기억을 처리하지 못하고 영원히 과거에 머물러 있게 된다고 한다. 이 시리즈에서 어른 작가는 자신의 오래된 기억, 즉 청소년기 기억을 통해 청소년 독자에게 말을 건넨다. 현재의 작가와 독자 사이에는 빈곤과 방임, 따돌림, 학습 부진, 품행 불량, 자퇴, 퀴어 정체성, ADHD 등 갖가지 문제 상황에 놓인 과거의 청소년이 있어서, 말하자면 두 가지 목소리로 말하는 셈이 된다. 따라서 듣는 이 역시 두 가지 소리를 동시에 수신한다. 결국 이 청소년에세이는 얼마나 조화롭고 아름다운 화음을 낼 수 있느냐에 따라 수신율이 결정될 것이다.
  서현숙, 홍승은, 김현, 김중미, 이원재, 정해나, 정지음, 김나훔 등 여덟 명의 저자들은 저마다 순탄치 않은 성장기를 거쳐 무사히 어른이 된 인물들이다. 교사, 작가, 만화가, 일러스트레이터 등 저마다 직업은 달라도 책을 낸 적이 있거나 창작에 종사하고 있어 청소년들에게 들려줄 만한 이야깃거리가 있다는 점도 공통점이다. 요컨대 이야기할 줄 아는 어른들이다. 『난처한 마음』의 서현숙과 『누군가 나의 미래를 상상하고 있다』의 이원재는 진로와 연애, 가정 문제 등 청소년들이 겪을 당장의 난처하고 고된 상황을 자신의 성장기 경험에 빗대어 이야기한다. 저자들이 현직 교사인 만큼 교사로서의 책임감과 애정을 가지고 학교 현장에서 만난 학생들의 이야기도 들려주지만 아무래도 교실 안에서 통용될 수 있는 수준의 적정선은 지키는 편이다. 집안이 망해도 정신을 바짝 차리고, 한번 삐끗해서 어긋나도 바로잡고 돌아가면 된다는 지당하신 말씀. 선생님도 너희처럼 공부하기 싫어서 농땡이치고 짝사랑 때문에 울고 그렇게 어른이 되었다는 이야기는 수업 시간에 끼어든 잡담처럼 적당히 흥미롭지만 교실에서 이야기할 수 있는 이상으로는 나아가지 않는다.
  그에 비해 김현의 『우리 반에도 있다』와 홍승은의 『그때도 틀리고 지금도 틀리다』는 학교에서 다루기 껄끄러운 문제에 과감하게 도전한다. 김현은 퀴어 정체성을 가진 청소년의 학교생활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이야기하는 동시에 그 속에서 경험한 로맨스를 애틋하게 기억해낸다. 과거 로맨스의 상대가 ‘퀴어 러브 스토리’에 등장하는 걸 좋아할지 궁금해하며 “어디 헤테로의 사랑만 자랑이 될 수 있나. 게이의 사랑도 자랑이 될 수 있는데”(『우리 반에도 있다』 68쪽)라고 눙치는 대목에서는 슬픔과 유머가 실은 동일한 뿌리를 갖는 게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우리 반에도 있다’는 선언이나 “우리 죽지 말고 살아요, 살아 있어요”(같은 책, 137쪽)라는 당부가 가닿는 곳에는 현재 어떤 지옥이 도사리고 있을지 짐작하게 되는 것이다. 작가 홍승은도 청소년 독자들을 향해 고등학교 자퇴와 청소년기 성적 체험, 만성 우울증 경험을 털어놓으며 사회적 정상성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한다. 모든 청소년은 학교에 있어야 할까? 탈학교 여성 청소년이 자신의 성적 욕구를 드러내는 일은 부적절한가? 우울증은 숨겨야 할 약점인가? 보통의 어른들이 외면하고 싶어 할 이야깃거리를 피하지 않고 직접적으로 발화한다는 점에서 이런 에세이가 갖는 의미는 분명하다. 강요된 정상성에서 벗어나는 일은 취약성이라기보다 강렬한 자유 의지를 보여주는 표지일 수도 있다. 그러니 주눅 들지 말자! 삐딱하다고 손가락질받던 아이가 무사히 어른이 되어 사회와 어른들의 거짓말을 하나하나 까발리며 “너의 호기심과 욕망은 또하나의 생의 에너지일 뿐이라고”(『그때도 틀리고 지금도 틀리다』 95쪽) 속삭여줄 때 현재의 청소년들은 얼마나 통쾌해할까.
  청소년기에 자신과 같은 동류를 발견하고 소통하는 일은 절대적으로 필요하지만 현실의 청소년들은 그들에게 요구되는 딱딱한 기준에 맞추느라 기진맥진하고 고립되어 있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적절한 내신 등급과 수능 성적, 고등학교 졸업장, 대학 합격증, 그럴듯한 직업을 얻으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까? 그럴 리 없다. 어떻게 해도 미래를 볼 수 없으므로 현재의 불안과 공포, 낭패감은 여간해서 사라지지 않는다. 문제적 청소년기 기억을 지닌 어른 작가가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때로는 죽고 싶을 정도로 힘들었지만 이제는 괜찮은 어른이 되어 청소년 독자에게 말을 건네는 존재. 그리하여 현재 청소년 독자들은 저자들의 과거 기억을 경유하여 자신의 미래를 상상할 수 있게 된다. 좌충우돌 ADHD 생존기를 다룬 『망하는 데도 한계는 있다』(정지음)와 연극 덕질의 찬란한 연대기를 다룬 『나의 오타쿠 삶』(정해나), 무계획과 열정으로 쌓아온 경력에 대해 이야기하는 『계획은 없습니다』(김나훔)의 작가들 역시 남들과 달라도, 불안정하고 즉흥적으로 살아도, 가끔은 일찌감치 망해버린 것 같아도 다 괜찮다고 이야기한다. 이들 작가들에게 무언가 이야깃거리가 있는 이유는 다들 어렵사리 청소년기를 통과해왔고, 어른이 되어 그 시기를 돌아보고 새롭게 바라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지금의 고통은 과거의 이야기가 되고, 오래된 이야기는 현재를 견디는 힘이 된다.
  저자들이 들려주는 이야기가 단순히 고난과 시련을 극복하고 참고 견디라는 교훈담에 머무르지 않는 이유는 결국 현재 작가들이 지닌 삶의 태도 덕분일 것이다. 어른 작가들은 으스대며 잔소리를 늘어놓는 대신 그저 자기 기억을 풀어놓는다. 『친구를 기억하는 방식』에서 김중미는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사귀어온 친구들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모든 이야기의 바탕에는 빈민 아동과 함께 살아온 활동가 김중미의 특별한 삶이 놓여 있다. “길게 살고 보니, 친구는 나이 따위에 구속되지 않는다”(『친구를 기억하는 방식』 85쪽)라고 말하는 작가가 자기보다 훨씬 어린 공부방 아이들을 친구로 받아들이고, 그 아이들이 자라 진짜 동료가 되는 과정을 지켜보노라면 당장 눈앞의 친구 문제를 한 발 떨어져 보게 되는 것은 물론, 모든 타인이 친구가 될 수 있음을 받아들이게 된다. 나이와 상관없이 누구하고든 친구가 되어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다면, 그렇게 배움과 협력, 연대가 가능하다면 나와 세계는 얼마나 많이 변화할 수 있을 것인가.
  어른들의 청소년기 이야기를 읽는 것은 시공을 거슬러 친구가 되는 길이기도 하다. 현재의 어른 작가가 과거의 기억 속 청소년을 그저 지나간 존재로 제쳐두지 않고 불러내 함께 나란히 앉아서 노래를 부른다. 현재의 청소년 독자는 그 화음에 귀를 기울이고 때로는 자기 목소리를 보탤 결심도 한다. 여기에 청소년이 아닌 독자 역시 슬그머니 끼어들 수 있는데 구조적으로 아동청소년문학의 독자는 실제 아동청소년이든 아니든 언제나 아동청소년이 ‘되어’ 읽기 때문이다. 오래된 기억 속에서 우리는 모두 청소년이(었)다. 그러므로 이곳에서는 시간이 선형적으로 흐르지 않고 과거와 현재, 미래가 동시에 존재하며 겹쳐 보일 것이다. 혹은 우리가 그렇게 볼 수 있게 될 것이다. 청소년에세이가 청소년문학의 한 갈래로 자리잡을 수 있을까? 아직은 단언할 수 없지만 아마도 그렇게 된다면 그 첫 발자국은 이 ‘해마’ 시리즈로 기록될 것이다.

김민령

서울에서 태어나 대학과 대학원에서 문학을 공부했다. 2006년 문화일보 신춘문예 동화 부문, 2010년 창비어린이 신인문학상 평론 부문에 당선되었다. 지은 책으로 『나의 사촌 세라』 『누군가의 마음』 『오늘의 인사』가 있다.

2026/09/16
8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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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산 출판사에서 기획한 청소년 에세이 해마 시리즈는 2025년 4월 네 권이 나오고 12월까지 순차적으로 한 권씩 추가되어 총 여덟 권이 출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