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
고백과 거짓말
언러닝(Unlearning)하는 청소년시
김승일의 『나 우는 연기 잘하지』
김승일의 『나 우는 연기 잘하지』
1. 무작정 고백
『나 우는 연기 잘하지』(창비교육, 2025)는 김승일의 첫 청소년시집이다. 청소년 독자를 대상으로 하는 장르로서의 청소년시는 처음이지만, 사실 김승일의 시는 태생적으로 청소년성에 가까운 기질을 품고 우리에게 도착했다. 그의 첫 시집 『에듀케이션』(문학과지성사, 2012)은 집과 학교를 배경으로 비성년 화자와 또래 공동체를 통해 에듀케이션의 시적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에듀케이션’은 본래 뭔가를 채워넣는 것이 아니라 안에 잠재되어 있는 것을 밖으로 이끌어낸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첫 시집의 ‘시인의 말’에 적힌 문장, “내 심장 속엔 선생님이 있다”를 다시 새겨볼 필요가 있다. 진정한 에듀케이션이란 바깥 사회의 선생님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심장 속 선생님을 밖으로 꺼내는 일이라 할 때, 그것을 수행하기 위한 최적의 방법은 고백이다.
서정시의 전형적 문법인 고백을 에듀케이션의 방법론으로 전유하는 김승일의 전략은 청소년시집 『나 우는 연기 잘하지』에서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비유 없는 사실 진술과 일상적 직접화법을 구사하는 고백의 형식은 여전한데, 에듀케이션의 방법론으로 강조되는 것은 고백의 내용이 아니라 태도다. 고백이 마음속의 일을 숨김없이 드러내는 행위라지만 그것은 솔직함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안으로는 심장 속 선생님을 존중하는 자기 신뢰가 필요하고, 밖으로는 자신의 선생님을 꺼내 다른 이들에게 보여주는 용기가 필요하다. 시집에 수록된 에세이 「나보다 착한 나」에서 시인은 “내 시의 주인공들은 고백하는 방법을 알려주기 위해서 고백한다. 고백하는 방법을 배우기 위해서 고백한다.”라고 말한다. 그러니까 김승일의 청소년시는 서로가 서로에게 고백하는 방법을 가르치고 배우는 학교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 시집의 청소년 화자는 대체 얼마나 대단한 것을 고백하려고 이토록 용감한 것일까? 그는 자신의 보잘것없는 생각을, 자기도 모르겠는 마음을 고백한다. 부끄러움과 창피함을 무릅쓰고 더 알고 싶어서, 더 이해하고 싶어서 자꾸 고백한다. 가령 「좋은 생각」의 화자는 “백원만 달라고 해서 모으면/ 하루에 육만원이” 생길 거라는 “좋은 생각”을 실행에 옮겼다가 놀림 받은 일을 고백한다. “백 원은 너무 적은 돈이라서” “흔쾌히 나눠줄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의 예상은 미처 생각지도 못한 다양한 이유로 빗나갔다. 자신의 좋은 생각이 관철되지 않는 세상 앞에서 화자는 “더 좋은 생각이” 떠오를 내일을 기약한다. 이 시는 “좋은 생각”이라는 가설의 시행착오를 통해 세상을 이해하기 위한 “더 좋은 생각”으로 나아가는 화자를 보여준다. 그러니까 고백은 안에서 바깥으로 생각의 물길을 터 흐르기를 시도하다 막히면 돌아가고 다시 다른 물길 찾기를 거듭하는 에듀케이션의 여정인 것이다.
2. 어쩌다 거짓말
아무리 자신을 신뢰하고 용기를 낸다 해도 언제나 진실만을 고백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김애란의 소설 『이중 하나는 거짓말』(문학동네, 2024)에 나오는 ‘자기소개 게임’처럼 서로에게 낯선 세계가 관계를 트기 위해서는 거짓말이라는 촉매가 필요한지도 모른다. 고등학교 입학 이튿날의 어색한 공기나 선생님을 기다리는 지루한 교실의 정적을 깨뜨리는 것은 뜬금없는 거짓말이다. 김승일은 사소한 거짓말을 통해 타인의 예상치 못한 면모가 드러나는 순간을 포착한다. 「한유리의 박력」에서 갑자기 ‘나’를 반장 후보로 추천한 한유리는 ‘셀프 한 표’의 굴욕을 선사한 “무서운” 아이였고, 「우아인의 눈물」에서 심심해서 지어낸 가짜 종말론에 울음을 터뜨린 “착한 우아인”은 완벽한 눈물 연기로 ‘나’를 속인 고수였다. 한유리의 박력과 우아인의 연기력이 의외의 매력적인 면모를 드러낼 때, 미심쩍은 칭찬에 낚여 망신을 당하고 친구를 울렸다는 미안함에 쩔쩔매는 화자의 다정하고 순수한 내면도 함께 빛난다.
김승일의 청소년시에서 거짓말은 타인과의 거리를 좁히는 미끼이자 낯설고 어색한 상황을 전복하는 놀이다. 그러나 귀엽고 장난스러운 거짓말의 이면에는 이해받고 싶고 사랑받고 싶어서 전전긍긍하는 불안이 숨어 있다. 우리는 이해받지 못할까봐 두려워서, 지금의 내가 부끄럽고 못마땅해서 거짓말을 한다. 「괴로운 속독」은 이러한 속마음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그 책 읽어봤냐” “그 아이돌 그룹 아냐”라는 친구의 질문에 읽은 척, 아는 척을 해놓고 괴로워하는 화자는 거짓말을 진실로 만들기 위해 시험공부하듯 열심히 읽어보지만 거짓말의 속도를 따라잡기 힘들다. “아무것도 몰라도 사랑받고 싶어/ 물론 아무것도 모르는 건 싫어”라는 진심 어린 고백에는 지금의 ‘나’로 사랑받고 싶은 마음과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이 시집의 청소년들은 친해지고 싶어서, 잘 보이고 싶어서, 말 한마디라도 더 걸어보고 싶어서 거짓말을 하고, 자기가 나쁜 사람일까봐 무서워서, 혹시 내가 좋은 사람인가 싶어서, 또는 당당하고 매력적인 친구들이 부러워서 거짓말에 속는다. 이 “바보 같은 거짓말쟁이들이 밉지 않다”(「나보다 착한 나」)는 시인의 고백처럼 우리는 감정에 솔직하고 관계에 진심이고 자신에게 충실한 거짓말이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알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만우절 재방송”이라는 ‘시인의 말’은 의미심장하다. 이 시집 전체가 교복을 입고 학창 시절로 돌아가는 만우절 행사의 재방송이라는 뜻 같기도 하고, 진실과 거짓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드는 만우절 재방송 같은 시를 상연할 거라는 예고 같기도 하다. 어느 쪽이든 김승일의 청소년시는 기꺼이 거짓말에 휘말려 타자의 세계로 걸어들어가는 서툴고 다정한 관계의 리허설을 웃으며 즐기게 해준다.
3. 누구나 또래
김승일의 청소년 화자에게서 발견되는 또다른 독특한 점은 누구하고나 일관되게 평평한 관계성을 실현하고 있다는 것이다. 청소년은 가족이나 학교에서 기성세대와 위계 관계에 놓이며, 주로 훈육과 통제의 대상이 된다. 기성세대와의 갈등 및 또래 집단과의 결속력은 청소년기의 전형적 특성으로 간주된다. 그런데 이 시집의 청소년 화자들은 이러한 일반적 구도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것 같다. 그들은 친구든 선생님이든 어른이든 가리지 않고 모든 타자를 또래 관계로 포섭한다. 또래는 나이나 수준이 서로 비슷한 무리를 가리키는데, 화자는 나이나 역할에 의해 주어진 위계에 구애받지 않고 모든 사람을 동등한 또래로 대한다. 특히 전문적 권위와 경험의 우위를 지닌 학교 선생님과 팽팽한 또래의 관계를 보여줄 때 우리는 이상한 방식으로 평등과 평화가 재구성되는 쾌감을 느끼게 된다.
예를 들어 「단축 마라톤」에서 수업 시간에 “자기가 철인 3종 경기 선수라고” 큰소리치던 선생님은 마라톤 대회에서 화자에게 지고 나서 “그렇구나, 선생님은 천천히 뛰었단다”라고 응수한다. 이 순간 “웃긴다// 내가 이겼다”라는 화자의 선언은 선생님을 나랑 다를 바 없는 욕망을 지닌 존재로 위치 지운다. 한편 「배신」의 화자는 등굣길 버스에서 만난 담임 선생님이 깜빡 잠든 자기를 깨우지 않고 혼자 내려버린 것을 종점에 도착해서야 알게 된다. 당연히 기대되는 역할을 하지 않은 선생님 때문에 어리둥절해진 화자는 “학교 밖에서는 어색”한 내가 모르는 선생님, 이해할 수 없는 타자의 예외성을 깨닫게 된다. 「알아야만 해」의 화자는 성교육 시간에 “정말로 몰라서” “무서워서” 한 질문이 선생님을 곤란하게 만든 상황을 곱씹으며 “선생님도 나처럼 무서웠을까?/ 불쌍한 선생님”이라는 이해와 공감을 시도한다. 누군가를 아프게 할 수도 있다는 자신의 무서움과 어떻게 답해야 할지 몰라 얼굴이 빨개진 선생님의 무서움을 동일 선상에 놓고 똑같이 약하고 선한 인간의 내면을 생각하는 것이다.
김승일의 시에서 청소년 화자와 선생님의 관계는 제도적으로 주어진 역할에 갇히지 않는다. 선생님은 일상을 나누고 대화하며 알아가는 타자로서, 선생님 아닌 선생님으로서 화자들과 개별적인 관계를 맺는다. 학교 선생님만이 아니다. “나보다 몇 살밖에 안 많은 어른 친구”(「인터넷 친구」)하고도, “사주 봐주는 아주머니”(「사주 카페」)하고도, 친한 친구의 엄마하고도(「말싸움」) 상황과 맥락에 따른 각자의 입장에서 대등하게 대화하고 질문하고 설득하고 논쟁한다. 또래 관계에 기반한 이러한 대화 공동체는 지나치게 화해로운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실제로 갈등이나 억압이 없어서가 아니라 현실을 대하는 화자의 태도가 ‘쿨’하기 때문이다. 김승일의 화자는 상처받고 무너지고 극복하는 서사를 질문받고 깨지고 재정립하는 서사로 겪어낸다. 그리하여 엉뚱하고 당당한 삶의 주인으로 세상의 모든 또래들과 함께 인생이라는 수수께끼를 풀면서 앞으로 나아간다.
4. ‘시’라는 언러닝
최근 기존의 지식이나 낡은 관행을 버리는 ‘비움 학습’으로서의 ‘언러닝(Unlearning)’이 주목받고 있다. 이 개념은 모든 것이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에 새로운 관점으로 전환하기 위한 개인 및 조직의 성공 전략으로 각광받는다. 그러나 재학습을 위한 기능적 수단으로 전유된 언러닝을 적극적인 예술적 역량으로 탈환할 필요가 있다. 세계에 대한 인식론적 태도로서의 언러닝은 기지(旣知)의 것을 내려놓고 불확실성에 과감히 뛰어드는 미학적 실천으로서 의미를 지닌다. 사회 변화에 따른 재학습의 강박에 제도적으로 붙들려 있는 청소년 시기에 저마다의 삶의 맥락에서 자기만의 방식으로 탈배움을 수행하는 것, 김승일의 고백과 거짓말은 바로 이러한 적극적 언러닝으로서 청소년시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김승일의 화자들이 엉뚱하고 순진해 보이는 이유는 학습된 지식이나 주어진 관계성을 따르지 않고 자기 생각과 논리대로 말하고 행동하기 때문이다. 겉으로 바보 같아 보이는 이들의 행동은 관습과 규범이 보호해주는 안전망에서 벗어나 취약해지기를 감수한 선택이다. 취약성은 약함이나 부족함이 아니라 불확실하고 위험한 상황에 스스로를 열어놓는 결단이며, 불완전한 자신을 드러냄으로써 세상 및 타자와 직접 연결되려는 시도다. 이들은 자신만의 가설과 논리로 스스로를 분석하고 타인을 이해하고 사는 이유를 찾는다. “하다보면 못”하지만 “처음에는 잘하니까”라는 자기 분석을 바탕으로 “인생은 다들 처음이라서 다행이다/ 내가 진짜 잘 살 것 같다”(「처음 사는 인생」)는 그럴 듯한 결론을 도출해내기도 하고, “생각이 너무 많아/ 뭔가를 견디고 있는 것 같다”고 괴로워하다가 “왜 사는지 몰라서 힘들었는데/ 그걸 알려고 산다고 생각하니까/ 갑자기 좀 나아졌”(「사는 이유」)다는 것을 깨닫고 생각의 힘을 긍정하기도 한다.
언러닝은 머릿속 지식과 기억을 지우거나 비우는 것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학습된 지식은 몸에 배어 있고 감각을 지배하며 변화에 저항한다. 그래서 언러닝에는 불편함을 포용하고 무능력에 적응하면서 학습과 탈학습 사이를 오가는 리듬이 필요하다. 「샌들」에서 모래와 파도 사이를 오가며 “씻고, 더럽히고, 씻고, 더럽히고”를 반복하는 것은 언러닝의 리듬을 닮았다. “세상에서 가장 바보 같은/ 영원히 샌들 씻는 사람”은 언러닝을 유희하는,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시인의 모습 같다. 김승일 시인은 혼자만 재미있기 아까워서 시라는 언러닝의 놀이터로 청소년 친구들을 초대한다. “우리가 쓰러진 땅은 폭신폭신하고/ 웃음이 막 터질 거라고” 장담하면서 “친구가 어딨는지 몰라서/ 여기에 있으라고 시를 막 쓴다”(「여기서 만나」). 여러분이 학교에 있든 거리에 있든, 친구가 곁에 있든 떠났든, 자기가 밉든 사랑스럽든, “어쩐지 인생이 망한 것 같은/ 기분”이든 “다시 태어나는 것 같”(「샌들」)은 기분이든 여기서 만나자고 말한다. “여기”는 슬프지만 웃을 수 있는 세계, 실컷 고백하고 맘껏 거짓말하며 사랑하고 사랑받을 수 있는 시의 세계다.
『나 우는 연기 잘하지』(창비교육, 2025)는 김승일의 첫 청소년시집이다. 청소년 독자를 대상으로 하는 장르로서의 청소년시는 처음이지만, 사실 김승일의 시는 태생적으로 청소년성에 가까운 기질을 품고 우리에게 도착했다. 그의 첫 시집 『에듀케이션』(문학과지성사, 2012)은 집과 학교를 배경으로 비성년 화자와 또래 공동체를 통해 에듀케이션의 시적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에듀케이션’은 본래 뭔가를 채워넣는 것이 아니라 안에 잠재되어 있는 것을 밖으로 이끌어낸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첫 시집의 ‘시인의 말’에 적힌 문장, “내 심장 속엔 선생님이 있다”를 다시 새겨볼 필요가 있다. 진정한 에듀케이션이란 바깥 사회의 선생님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심장 속 선생님을 밖으로 꺼내는 일이라 할 때, 그것을 수행하기 위한 최적의 방법은 고백이다.
서정시의 전형적 문법인 고백을 에듀케이션의 방법론으로 전유하는 김승일의 전략은 청소년시집 『나 우는 연기 잘하지』에서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비유 없는 사실 진술과 일상적 직접화법을 구사하는 고백의 형식은 여전한데, 에듀케이션의 방법론으로 강조되는 것은 고백의 내용이 아니라 태도다. 고백이 마음속의 일을 숨김없이 드러내는 행위라지만 그것은 솔직함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안으로는 심장 속 선생님을 존중하는 자기 신뢰가 필요하고, 밖으로는 자신의 선생님을 꺼내 다른 이들에게 보여주는 용기가 필요하다. 시집에 수록된 에세이 「나보다 착한 나」에서 시인은 “내 시의 주인공들은 고백하는 방법을 알려주기 위해서 고백한다. 고백하는 방법을 배우기 위해서 고백한다.”라고 말한다. 그러니까 김승일의 청소년시는 서로가 서로에게 고백하는 방법을 가르치고 배우는 학교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 시집의 청소년 화자는 대체 얼마나 대단한 것을 고백하려고 이토록 용감한 것일까? 그는 자신의 보잘것없는 생각을, 자기도 모르겠는 마음을 고백한다. 부끄러움과 창피함을 무릅쓰고 더 알고 싶어서, 더 이해하고 싶어서 자꾸 고백한다. 가령 「좋은 생각」의 화자는 “백원만 달라고 해서 모으면/ 하루에 육만원이” 생길 거라는 “좋은 생각”을 실행에 옮겼다가 놀림 받은 일을 고백한다. “백 원은 너무 적은 돈이라서” “흔쾌히 나눠줄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의 예상은 미처 생각지도 못한 다양한 이유로 빗나갔다. 자신의 좋은 생각이 관철되지 않는 세상 앞에서 화자는 “더 좋은 생각이” 떠오를 내일을 기약한다. 이 시는 “좋은 생각”이라는 가설의 시행착오를 통해 세상을 이해하기 위한 “더 좋은 생각”으로 나아가는 화자를 보여준다. 그러니까 고백은 안에서 바깥으로 생각의 물길을 터 흐르기를 시도하다 막히면 돌아가고 다시 다른 물길 찾기를 거듭하는 에듀케이션의 여정인 것이다.
2. 어쩌다 거짓말
아무리 자신을 신뢰하고 용기를 낸다 해도 언제나 진실만을 고백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김애란의 소설 『이중 하나는 거짓말』(문학동네, 2024)에 나오는 ‘자기소개 게임’처럼 서로에게 낯선 세계가 관계를 트기 위해서는 거짓말이라는 촉매가 필요한지도 모른다. 고등학교 입학 이튿날의 어색한 공기나 선생님을 기다리는 지루한 교실의 정적을 깨뜨리는 것은 뜬금없는 거짓말이다. 김승일은 사소한 거짓말을 통해 타인의 예상치 못한 면모가 드러나는 순간을 포착한다. 「한유리의 박력」에서 갑자기 ‘나’를 반장 후보로 추천한 한유리는 ‘셀프 한 표’의 굴욕을 선사한 “무서운” 아이였고, 「우아인의 눈물」에서 심심해서 지어낸 가짜 종말론에 울음을 터뜨린 “착한 우아인”은 완벽한 눈물 연기로 ‘나’를 속인 고수였다. 한유리의 박력과 우아인의 연기력이 의외의 매력적인 면모를 드러낼 때, 미심쩍은 칭찬에 낚여 망신을 당하고 친구를 울렸다는 미안함에 쩔쩔매는 화자의 다정하고 순수한 내면도 함께 빛난다.
김승일의 청소년시에서 거짓말은 타인과의 거리를 좁히는 미끼이자 낯설고 어색한 상황을 전복하는 놀이다. 그러나 귀엽고 장난스러운 거짓말의 이면에는 이해받고 싶고 사랑받고 싶어서 전전긍긍하는 불안이 숨어 있다. 우리는 이해받지 못할까봐 두려워서, 지금의 내가 부끄럽고 못마땅해서 거짓말을 한다. 「괴로운 속독」은 이러한 속마음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그 책 읽어봤냐” “그 아이돌 그룹 아냐”라는 친구의 질문에 읽은 척, 아는 척을 해놓고 괴로워하는 화자는 거짓말을 진실로 만들기 위해 시험공부하듯 열심히 읽어보지만 거짓말의 속도를 따라잡기 힘들다. “아무것도 몰라도 사랑받고 싶어/ 물론 아무것도 모르는 건 싫어”라는 진심 어린 고백에는 지금의 ‘나’로 사랑받고 싶은 마음과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이 시집의 청소년들은 친해지고 싶어서, 잘 보이고 싶어서, 말 한마디라도 더 걸어보고 싶어서 거짓말을 하고, 자기가 나쁜 사람일까봐 무서워서, 혹시 내가 좋은 사람인가 싶어서, 또는 당당하고 매력적인 친구들이 부러워서 거짓말에 속는다. 이 “바보 같은 거짓말쟁이들이 밉지 않다”(「나보다 착한 나」)는 시인의 고백처럼 우리는 감정에 솔직하고 관계에 진심이고 자신에게 충실한 거짓말이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알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만우절 재방송”이라는 ‘시인의 말’은 의미심장하다. 이 시집 전체가 교복을 입고 학창 시절로 돌아가는 만우절 행사의 재방송이라는 뜻 같기도 하고, 진실과 거짓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드는 만우절 재방송 같은 시를 상연할 거라는 예고 같기도 하다. 어느 쪽이든 김승일의 청소년시는 기꺼이 거짓말에 휘말려 타자의 세계로 걸어들어가는 서툴고 다정한 관계의 리허설을 웃으며 즐기게 해준다.
3. 누구나 또래
김승일의 청소년 화자에게서 발견되는 또다른 독특한 점은 누구하고나 일관되게 평평한 관계성을 실현하고 있다는 것이다. 청소년은 가족이나 학교에서 기성세대와 위계 관계에 놓이며, 주로 훈육과 통제의 대상이 된다. 기성세대와의 갈등 및 또래 집단과의 결속력은 청소년기의 전형적 특성으로 간주된다. 그런데 이 시집의 청소년 화자들은 이러한 일반적 구도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것 같다. 그들은 친구든 선생님이든 어른이든 가리지 않고 모든 타자를 또래 관계로 포섭한다. 또래는 나이나 수준이 서로 비슷한 무리를 가리키는데, 화자는 나이나 역할에 의해 주어진 위계에 구애받지 않고 모든 사람을 동등한 또래로 대한다. 특히 전문적 권위와 경험의 우위를 지닌 학교 선생님과 팽팽한 또래의 관계를 보여줄 때 우리는 이상한 방식으로 평등과 평화가 재구성되는 쾌감을 느끼게 된다.
예를 들어 「단축 마라톤」에서 수업 시간에 “자기가 철인 3종 경기 선수라고” 큰소리치던 선생님은 마라톤 대회에서 화자에게 지고 나서 “그렇구나, 선생님은 천천히 뛰었단다”라고 응수한다. 이 순간 “웃긴다// 내가 이겼다”라는 화자의 선언은 선생님을 나랑 다를 바 없는 욕망을 지닌 존재로 위치 지운다. 한편 「배신」의 화자는 등굣길 버스에서 만난 담임 선생님이 깜빡 잠든 자기를 깨우지 않고 혼자 내려버린 것을 종점에 도착해서야 알게 된다. 당연히 기대되는 역할을 하지 않은 선생님 때문에 어리둥절해진 화자는 “학교 밖에서는 어색”한 내가 모르는 선생님, 이해할 수 없는 타자의 예외성을 깨닫게 된다. 「알아야만 해」의 화자는 성교육 시간에 “정말로 몰라서” “무서워서” 한 질문이 선생님을 곤란하게 만든 상황을 곱씹으며 “선생님도 나처럼 무서웠을까?/ 불쌍한 선생님”이라는 이해와 공감을 시도한다. 누군가를 아프게 할 수도 있다는 자신의 무서움과 어떻게 답해야 할지 몰라 얼굴이 빨개진 선생님의 무서움을 동일 선상에 놓고 똑같이 약하고 선한 인간의 내면을 생각하는 것이다.
김승일의 시에서 청소년 화자와 선생님의 관계는 제도적으로 주어진 역할에 갇히지 않는다. 선생님은 일상을 나누고 대화하며 알아가는 타자로서, 선생님 아닌 선생님으로서 화자들과 개별적인 관계를 맺는다. 학교 선생님만이 아니다. “나보다 몇 살밖에 안 많은 어른 친구”(「인터넷 친구」)하고도, “사주 봐주는 아주머니”(「사주 카페」)하고도, 친한 친구의 엄마하고도(「말싸움」) 상황과 맥락에 따른 각자의 입장에서 대등하게 대화하고 질문하고 설득하고 논쟁한다. 또래 관계에 기반한 이러한 대화 공동체는 지나치게 화해로운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실제로 갈등이나 억압이 없어서가 아니라 현실을 대하는 화자의 태도가 ‘쿨’하기 때문이다. 김승일의 화자는 상처받고 무너지고 극복하는 서사를 질문받고 깨지고 재정립하는 서사로 겪어낸다. 그리하여 엉뚱하고 당당한 삶의 주인으로 세상의 모든 또래들과 함께 인생이라는 수수께끼를 풀면서 앞으로 나아간다.
4. ‘시’라는 언러닝
최근 기존의 지식이나 낡은 관행을 버리는 ‘비움 학습’으로서의 ‘언러닝(Unlearning)’이 주목받고 있다. 이 개념은 모든 것이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에 새로운 관점으로 전환하기 위한 개인 및 조직의 성공 전략으로 각광받는다. 그러나 재학습을 위한 기능적 수단으로 전유된 언러닝을 적극적인 예술적 역량으로 탈환할 필요가 있다. 세계에 대한 인식론적 태도로서의 언러닝은 기지(旣知)의 것을 내려놓고 불확실성에 과감히 뛰어드는 미학적 실천으로서 의미를 지닌다. 사회 변화에 따른 재학습의 강박에 제도적으로 붙들려 있는 청소년 시기에 저마다의 삶의 맥락에서 자기만의 방식으로 탈배움을 수행하는 것, 김승일의 고백과 거짓말은 바로 이러한 적극적 언러닝으로서 청소년시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김승일의 화자들이 엉뚱하고 순진해 보이는 이유는 학습된 지식이나 주어진 관계성을 따르지 않고 자기 생각과 논리대로 말하고 행동하기 때문이다. 겉으로 바보 같아 보이는 이들의 행동은 관습과 규범이 보호해주는 안전망에서 벗어나 취약해지기를 감수한 선택이다. 취약성은 약함이나 부족함이 아니라 불확실하고 위험한 상황에 스스로를 열어놓는 결단이며, 불완전한 자신을 드러냄으로써 세상 및 타자와 직접 연결되려는 시도다. 이들은 자신만의 가설과 논리로 스스로를 분석하고 타인을 이해하고 사는 이유를 찾는다. “하다보면 못”하지만 “처음에는 잘하니까”라는 자기 분석을 바탕으로 “인생은 다들 처음이라서 다행이다/ 내가 진짜 잘 살 것 같다”(「처음 사는 인생」)는 그럴 듯한 결론을 도출해내기도 하고, “생각이 너무 많아/ 뭔가를 견디고 있는 것 같다”고 괴로워하다가 “왜 사는지 몰라서 힘들었는데/ 그걸 알려고 산다고 생각하니까/ 갑자기 좀 나아졌”(「사는 이유」)다는 것을 깨닫고 생각의 힘을 긍정하기도 한다.
언러닝은 머릿속 지식과 기억을 지우거나 비우는 것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학습된 지식은 몸에 배어 있고 감각을 지배하며 변화에 저항한다. 그래서 언러닝에는 불편함을 포용하고 무능력에 적응하면서 학습과 탈학습 사이를 오가는 리듬이 필요하다. 「샌들」에서 모래와 파도 사이를 오가며 “씻고, 더럽히고, 씻고, 더럽히고”를 반복하는 것은 언러닝의 리듬을 닮았다. “세상에서 가장 바보 같은/ 영원히 샌들 씻는 사람”은 언러닝을 유희하는,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시인의 모습 같다. 김승일 시인은 혼자만 재미있기 아까워서 시라는 언러닝의 놀이터로 청소년 친구들을 초대한다. “우리가 쓰러진 땅은 폭신폭신하고/ 웃음이 막 터질 거라고” 장담하면서 “친구가 어딨는지 몰라서/ 여기에 있으라고 시를 막 쓴다”(「여기서 만나」). 여러분이 학교에 있든 거리에 있든, 친구가 곁에 있든 떠났든, 자기가 밉든 사랑스럽든, “어쩐지 인생이 망한 것 같은/ 기분”이든 “다시 태어나는 것 같”(「샌들」)은 기분이든 여기서 만나자고 말한다. “여기”는 슬프지만 웃을 수 있는 세계, 실컷 고백하고 맘껏 거짓말하며 사랑하고 사랑받을 수 있는 시의 세계다.
오연경
문학평론가. 계간 《창작과비평》 비상임편집위원, 창비청소년시선 기획위원으로 활동하며 읽고 쓰는 일을 지속하고 있다.
이 글을 쓰기 전에 청소년시를 읽는 독자로서 나의 위치를 고민하느라 한참 동안 머뭇거렸다. ‘청소년 당사자 독자’와 ‘비청소년 독자인 나’ 사이의 간극을 생각하니 나에게 보이고 읽히는 것의 위치성이 도드라지게 느껴져서다. 시 읽기는 저마다 다른 것을 발견하는 일이지만 발견의 위치는 맹점을 품고 있다. 청소년 독자와 시선을 교환하며 함께 읽는 방법을 좀더 궁리해보아야겠다.
2026/09/16
81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