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상을 차린다고 며칠 전부터 분주했어요. 뭐 먹고 싶은 게 있냐고 소애에게 물었더니 칼칼한 육개장이 먹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왜 하필 육개장일까. 매운 음식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애가 웬일로 육개장이 다 당길까 싶었는데 예전에 소애가 했던 얘기가 떠올랐어요. 스무 살에 서울로 올라와서 일 년 정도 고모네 집에 얹혀 지낼 때 고모가 끓인 육개장이 칼칼하니 참 맛있었는데 객식구라 어쩐지 많이 먹기가 눈치 보였다고, 집에서 끓인 육개장을 실컷 먹어보고 싶다고 했던 얘기요.
   고사리랑 토란대, 대파 팍팍 넣어서요.
   주문이 구체적이더라고요. 그 애는 좀처럼 부탁을 하지 않거든요. 알고 지낸 지가 오 년 가까이 되는데 손에 꼽을 정도니까요. 소애가 처음으로 했던 부탁이 기억나요. 며칠 신세를 질 수 있냐는 거였는데 먼저 사정을 말하지 않길래 말하고 싶지 않은가보다 하고, 더는 묻지 않고 같이 지내기로 했죠. 그때 소애는 야간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어서 집에서 마주칠 일도 거의 없었어요. 퇴근하고 돌아오면 깨끗하게 정돈된 집과 예약 취사를 해놓은 밥, 된장찌개나 계란말이 같은 반찬 두어 가지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어요. 현관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서서 집안을 가득 채운 갓 지은 밥 냄새를 맡았던 늦은 저녁, 사람 사는 집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 집에 사는 내가 사람이라는, 그동안 내가 사람처럼 살지 못했다는 자각에 코끝이 뻐근해졌어요.
   소애는 새벽 세 시가 넘어서야 들어왔어요. 나를 깨울까봐 발소리를 죽이고 느릿느릿 움직이며 샤워를 하고 두유 한 팩을 꺼내 마시고 잠이 들었죠. 열흘쯤 지나고 소애가 지낼 방을 구했다고 캐리어에 짐을 정리하는데 어쩐지 섭섭하더라고요. 같이 가줄까? 했더니 혼자 갈게요, 했어요. 걸어서 십오 분 정도 떨어진 곳이라고 자주 놀러오겠다고 하면서 제 몸통만한 배낭을 지고 캐리어를 끌고 나갔어요. 어쩐지 그애가 멀리 떠나는 것만 같아서 집 앞 골목까지 따라나섰어요. 가끔 그애가 멀게 느껴질 때가 있어요. 기대어 왔으면 할 때조차 고집스럽게 혼자이기를 자처할 때요. 그런 면이 언니를 닮았다는 생각을 자주 해요. 가파른 내리막길로 점점 사라지는 소애의 뒷모습을 한참 지켜봤던 기억이 나요. 그 밤에 떴던 달 모양도요. 방구석 어딘가에 잠자코 떨어져 있을 것 같은, 잘린 손톱 모양의 가는 그믐달이었어요.
   언니. 언니는 거기서 어떻게 지내요?

   육개장 만드는 법을 검색해보니 이게 만만치가 않겠더라고요. 일단 재료들을 다 넣고 끓일만한 큰 냄비가 집에 없었어요. 혼자 사는 살림에 그런 냄비를 쓸 일이 없잖아요. 냄비를 하나 살까 싶어서 통장을 확인해 봤죠. 퇴직금과 남아 있는 실업급여를 합쳤는데도 잔액이 참 초라하지 뭐예요. 잔액을 보고 나니까 되려 번듯한 냄비 하나 꼭 장만해두고 싶어지더라고요. 이때가 아니면 또 언제 살까 싶고요. 쇼핑몰을 구경하는데 냄비 종류가 그렇게 다양하다는 걸 새삼 알게 됐어요. 신세계더라고요. 이만큼 살아왔어도 모르는 세계가 여전히 많다는 게 놀라워요. 냄비 안쪽이 코팅되어 있고 압력솥처럼 뚜껑을 잠글 수 있는 것으로 골랐어요. 편수 냄비와 세트로 사도 가격 차이가 얼마 안 나서 에라, 하고 비장하게 결제를 눌렀죠. 그게 쇼핑의 신비잖아요. 하나보다는 둘이 더 저렴할 때가 있고, 양이 적은 것보다 많은 게 더 쌀 때가 있잖아요. 그런 상품을 발견하면 일단 장바구니에 담긴 하는데 결제하려고 보면 씁쓸해져요. 지금 당장 필요하지 않은 물건들을 이 비좁은 집에 쌓아둘 걸 생각하면요. 물건은 쌓여 있는데 내 가난은 더 불어나 있는 기분이랄까요. 일 인분의 삶이라는 건 소비를 하기에도 비축을 하기에도 적당하지 않은 것 같아요. 지금도 싸다고 사놓은 치약이며 휴지, 짜장라면, 생리대, 기억나지 않는 물건들이 집 구석구석을 채우고 있어요.
   육개장 재료는 그저께 마트에 가서 사 왔어요. 신선식품이니까 또 생일상이니까 직접 보고 고르고 싶었어요. 토란대가 없어서 대신 숙주를 샀어요. 요즘 대파는 한 단에 팔천 원 가까이 해요. 한우 양지머리에 고춧가루, 곁들여 마실 술, 소애가 좋아하는 팥소가 든 찹쌀떡과 흰 절편, 필요한 것 몇 가지를 담았더니 금세 십만 원이 넘었어요. 언젠가 언니가 그랬죠. 버는 돈하고 쓰는 돈이 가치가 다른 것 같다고요. 버는 건 변비 같고 쓰는 건 숨 쉬는 것 같다고요.
   지금도 가난하긴 마찬가지지만 우리 학교 다닐 때는 정말 돈이 없었잖아요. 학교 근처에 있던 카페 상파올로에서 비엔나커피 한 잔씩을 시켜 놓고 네다섯 시간은 기본으로 앉아 있었잖아요. 블랙으로만 마시면 속이 쓰리니까 비엔나커피를 마시라고, 크림이 있으니까 속도 든든해지고 리필도 해준다고 말했던 진지한 언니 표정과 말투가 아직도 생생해요.
   둘 다 돈이 없어서 배가 고파도 먼저 밥 먹자는 얘기를 잘 안 꺼냈잖아요. 그러다 누군가 밥을 사는 날이면 특별한 이벤트라도 되는 것처럼 설레했죠. 졸업 후에도 언니는 희곡 써서 받은 돈, 시나리오 써서 받은 돈, 다른 일로 번 돈 말고 글 써서 번 돈이 생기면 꼭 나한테 밥을 사 줬어요. 일본식 돈가스 정식이나 양념갈비, 해물탕 같은 걸 사 주면서 늘 그랬잖아요. 아프지 마. 안 아픈 게 최고야. 요즘 내가 소애에게 가장 많이 하는 말이 그거예요. 아프지 마. 안 아픈 게 최고야. 안 아픈 게 돈 버는 거야.
   그때를 생각하니까 슬픈데도 왠지 웃음이 나요. 지나온 일이니까 그런 걸까요. 아니면 너무 오래 그런 기억들과 함께 살아와서 그런 걸까요. 오륙 년 전쯤인가 언니와 카페 상파올로 얘기를 했었잖아요. 우리 참 진상이었지. 그때 주인아저씨가 정말 좋은 분이었어. 내가 주인이면 우리 같은 손님 너무 싫었을 텐데. 그렇게 말하면서 언니도 웃었었죠. 웃다가 내 빈 잔을 내려다보며 언니가 그랬어요. 그러고 보니 우리 일관되게 가난하네. 빈 잔을 채워주며 언니가 쓰게 웃었죠. 언니가 시나리오 계약금을 받아서 대패삼겹살 식당에서 술을 샀던 그날이 가끔 생각나요. 우리는 우리 가난을 안주 삼아서 새벽까지 술을 마셨죠. 그날 소주가 왜 그리 달았나 몰라요. 술이 달면 늙은 거라면서요. 내가 언니 빈 잔을 채우며 그랬죠. 술이 써도 늙어. 술맛을 몰라도 늙고. 다 늙어.
   그날 후로 한참 동안 언니를 만나지 못했어요. 전화를 걸어도 문자를 남겨도 연락이 닿지 않았는데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어요. 언니는 종종 그렇게 사라지곤 했으니까. 그렇게 세상에서 흔적을 지워 버린 사람처럼 지내다가 어느 날 불쑥 밥 먹을까, 하고 연락해오곤 했으니까요. 그때 난 언니가 본래 그런 사람이라고만 생각했어요. 왜 더 깊이 의문을 가지지 않았을까요. 언니를 믿어서, 아니 믿고 싶어서였을까요. 아니 나 하나 감당하기 벅차서, 비겁한 줄도 모르고 비겁해서 그런 거였겠죠. 그렇게 시간이 흐르는 사이 나는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사회복지사 공부를 시작했어요. 솔직히 사회복지사에 무슨 뜻이 있어서는 아니었고 뒤늦게라도, 뭐라도 직장다운 직장, 안정된 밥벌이를 해야겠다는 생각에서였어요. 그때 언니가 곁에 있었다면 언니는 아무 말 없이 나를 건너다보다가 물었겠죠. 언니한테만은 듣고 싶지 않은 그 말을 언니는 하고 말았을 거예요.
   그래도 계속 쓸 거지?

   소애가 도착하려면 다섯 시간 정도 남아 있었는데 육개장을 끓이는 건 처음이라 준비를 시작했어요. 요즘은 뭐든 천천히 하려고 해요. 딱히 급할 게 없기도 하고, 급한 일이 생겨도 일부러 천천히, 천천히, 주문을 외우면서 해요. 밥 먹을 땐 밥만 먹고 텔레비전 볼 땐 텔레비전만 봐요. 그랬더니 조금씩 생각이란 걸 다시 하게 되더라고요. 요즘 생각에 잠길 때면 언니 생각을 자주 해요. 언니 생각을 할 때는 언니 생각만 해요.
   레시피를 찾아보니까 먼저 고기 핏물을 빼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양지머리를 물에 담가 뒀어요. 사실 이렇게 질 좋은 한우는 처음 사봐요. 고기 자체를 잘 사지 않기도 하지만요. 주로 반조리 식품을 사거나 시켜 먹으니까 육질을 눈으로 직접 볼 일이 거의 없었죠. 그마저도 퇴사한 후에는 하루에 한 끼는 채식으로 먹으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재료를 씻고 썰고, 볶거나 삶는 일이 인생 마지막 과제인 것처럼 정성을 다해서 요리를 해요. 만든 음식을 수행하듯 정성을 다해서 먹어요. 내가 인생에서 중요하다고 여겼던 것들의 목록이 바뀌어가고 있다는 생각을 요즘 많이 해요.
   핏물이 빠지는 동안 육개장과 반찬에 쓰일 재료들을 씻고 다듬었어요. 핏물을 뺀 고기를 물로 헹구는데 그래도 생일인데 미역국이 있어야 덜 섭섭하겠다 싶더라고요. 고기를 삼 분의 일 정도 따로 떼어두었어요. 찬장에서 마른미역을 꺼내 불려두었고요. 시간이 넉넉할 줄 알았는데 그렇지도 않겠더라고요. 나물 세 가지에 전까지 부치려면요. 욕심을 과하게 부렸던 것인지도 몰라요. 그래도 꼭 한번은 이렇게 한 상 떡 벌어지게 차려 보고 싶었어요. 어디까지나 내 수준에서지만요.
   그저께부터 불려놓은 고사리가 제법 나근나근해졌더라고요. 삶아서 먹기 좋게 자르고, 무도 나박나박, 대파도 길쭉길쭉 썰어놓고 숙주도 씻어 채반에 받쳐두었어요. 매운 고춧가루를 넣어서 양념장도 만들었고요. 새로 산 냄비에 물을 받아 양파, 파뿌리, 통후추를 넣고 양지머리를 삶았어요. 고기를 삶으면서 거품도 꼼꼼하게 걷어냈죠. 불 앞에 서서 국자로 거품을 걷어내며 육수가 우러나는 걸 지켜봤는데 어느새 한 시간이 후딱 지나 있더라고요. 퇴사하고 나서는 시간이 그렇게 흘러요. 수세미로 부엌 후드를 청소했더니 한 시간, 물에 락스를 풀어 욕실을 청소했더니 두 시간, 옷장에서 안 입는 옷을 골라냈더니 세 시간, 그런 식으로 시간이 뭉텅뭉텅 잘려나가요. 가끔 엄마가 전화해서 물어요. 뭐 하고 있냐고. 그럼 매번 같은 대답을 해요. 있어. 그냥 있어.
   일과가 단순해졌어요. 이상하죠. 바쁘게 살 때는 하루가 참 더뎠는데 말이에요. 퇴근하고 돌아와 시 한 편 쓰겠다고 새벽까지 앉아 있으면 시간이 나에게 짓궂은 장난을 치는 것 같았거든요. 시도, 잠도 미래도 오지 않을 거라고, 다만 늙어갈 거라고 내게 말하는 것 같았거든요. 시를 생각하지 않아도 쓰지 않아도 읽는 것조차 하지 않아도 하루가 가요. 실은 너무 잘 가요. 기어코 가고 만다는 건, 가면 영영 돌아오지 않는다는 건 불안한 안심 같은 거더라고요. 불행한 행복 같은 거요. 언니. 내가 다시 쓸 수 있을까요. 내 시와 화해할 수 있을까요. 아, 너무 내 얘기만 하고 말았네요.
   언니, 거기 하루는 어떻게 흘러가요?

   삶은 양지머리를 한 김 식히고 결대로 찢어두었어요. 어느 요리 블로그를 보니까 육수 냄비를 베란다에 내놓으면 기름이 위로 뜬다고 해서 그렇게 해봤어요. 베란다 냉기에 서서히 기름이 굳더라고요. 생각해 보면 당연한 건데 그런 사소한 걸 직접 해보면 정말 신기한 거 있죠. 베란다로 나간 김에 창밖도 한번 내다봤어요. 며칠 전 내린 눈이 아직 다 녹지 않았더라고요. 올겨울엔 눈이 자주 내렸네요. 눈이 오면 이 동네가 참 예쁘잖아요. 언덕 위 집에 사는 몇 안 되는 장점이에요. 육수 위에 뜬 기름을 걷어내고 육개장에 들어갈 채소를 양념장에 버무렸어요. 준비한 재료를 모두 냄비에 넣고 끓이기만 하면 완성이라니 뭐 대단한 일도 아닌데 괜히 뿌듯해지더라고요. 한 시간 넘게 푹 끓였다가 소애가 오기 전에 한번 더 데우면 딱 알맞을 것 같았어요.
   언니에게 소애 얘기를 몇 번 한 적은 있지만 우리가 함께 만난 적은 없었죠. 언니와 오랜만에 만나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내가 소애 얘기를 꺼내면 언니는 아, 그 음악 하는 친구? 하고 장단을 맞춰 줬어요. 때때로 상상하곤 해요. 우리 셋이 만났다면 어땠을까. 내가 좋아하고 또 부러워하는 두 사람과 함께 술자리를 만들어 서로를 소개해 줬다면 어땠을까 하고요. 언니와 소애는 되찾은 반쪽처럼, 물에 스며드는 잉크처럼 서로에게 이끌렸을까요. 우리가 함께한 술자리에서 나는 홀로 은근한 소외감을 느꼈을까요. 어쩌면 그런 옹졸한 내 속내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 자신을 속이고 셋이 만나는 자리를 피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뒤늦게야 했어요. 나는 두 사람 사이에서 내가 작아질까 봐 겁을 먹었던 거예요. 두 사람이 내게 보내는 애정을 조금도 뺏기고 싶지 않았던 거죠. 나 참 우습죠.
   소애를 어떻게 알게 됐는지 언니에게 자세하게 얘기한 적이 없는 것 같아요. 사회복지사를 준비하면서 광화문에 있는 한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할 때였어요. 꽤 크고 유명한 곳이었죠. 소애와 나는 같은 아침 근무조였어요. 아침 근무조만 일곱 명인 작지 않은 매장이었는데 출근 시간이면 난리도 아니었죠. 아이디 카드를 목에 건 직장인들이 커피를 사러 몰려와 줄을 섰어요. 2분 30초 안에 주문받은 음료가 나가야 했기 때문에 정신이 하나도 없었죠. 작은 실수도 주문이 밀려드는 상황에서는 큰 구멍이 되곤 하니까요. 다행히 같은 근무조 친구들이 대부분 베테랑이어서 호흡이 잘 맞는 편이었어요. 특히 소애와 잘 맞았어요. 언니도 여러 아르바이트를 전전해 봐서 알잖아요. 일터에서 일 호흡이 잘 맞는 사람을 만나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요. 뭔가를 해주었으면 할 때 이미 소애가 그 일을 해놓고 벌써 다른 일을 하고 있곤 했어요. 소애는 귀신같달까, 네다섯 수 앞을 보는 것 같았어요. 매장에서는 다들 소애를 좋아했어요. 다른 조에서 알바 펑크가 나면 가장 먼저 소애에게 연락을 할 정도였으니까요. 소애는 지금도 말수가 적은 편이지만 그때는 더 했죠. 늘 묵묵하고 눈치가 빠른, 몸집이 작은 그애가 매장 구석구석을 오가며 에스프레소를 뽑고 쓰레기를 치우고 조각 케이크를 포장하는 모습을 볼 때면 잘 길든 기계처럼 조용하고 매끄러워 보였어요. 단둘이서 긴 대화 한 번 나눠 본 적 없었을 때도 그 애가 살아온 내력이 보이더라고요. 노동에 숙련된 몸, 어떤 환경에든 자신을 기꺼이 끼워 맞출 줄 아는 마음 같은 거요. 그건 네가 그런 사람이라서 보이는 거야. 아마도 언니는 그렇게 말하려나요.
   폭풍 같은 출근 시간이 지나고 나면 점심시간까지 여유가 조금 생겼는데 그럼 한 사람씩 돌아가면서 짧은 휴식을 가졌죠. 소애는 맞은편 건물 후문에 있는 비공식적인 흡연 구역까지 가서 담배를 태우고 들어오곤 했어요. 소애가 노래를 만들고 부른다는 걸 알았을 때 내가 물었죠. 담배를 피워도 괜찮으냐고요. 소애가 희미하게 웃었어요. 당연히 안 괜찮죠. 그래도 일단은 숨을 좀 쉬어야 하잖아요. 그애는 담배 한 갑을 사서 거의 한 달 동안 피웠어요.
   언니, 생각나요? 같이 술을 마시다가 언니가 담배를 태우러 나가면 나도 따라서 밖으로 나가곤 했잖아요. 담배를 끼운 언니의 두 손가락과 자욱하게 번지는 연기를 멍하니 지켜보곤 했잖아요. 그럼 언니는 간접흡연이 더 위험하다고 들어가라고 하면서도 결코 서두르는 법 없이, 필터 끝이 타들어갈 때까지 아주 천천히 담배를 피웠잖아요. 연기를 뿜으며 위를 올려다보는 언니 얼굴은 마치 하늘에 모르는 단어가 쓰여 있기라도 한 것처럼 호기심으로 가득했어요. 간혹 달이 떴네, 아니면 달이 없네, 하고 혼잣말하듯 중얼거렸죠. 그런 언니를 건너다볼 때면 내가 언니를 사랑하고 있는 게 아닐까, 속으로 나한테 묻곤 했어요.
   소애는 요즘 앨범 준비 때문에 안국동에 있는 브런치 카페에서 설거지 아르바이트를 해요. 일자리를 구하고서 하루에 네 시간만 일하면 되고 보수도 센 편이라고 좋아했죠. 일한 지 한 달쯤 지났을까요. 소애에게 전화가 왔는데 대뜸 한숨을 쉬었어요.
   언니. 사람들이 음식을 정말 많이 남겨요. 설거지도 설거진데 버리는 게 일이에요. 버려지는 음식을 계속 보는 게 이렇게 마음을 힘들게 할 줄은 몰랐어요. 뭐랄까. 너무 쉬워요. 버리고 버려지는 게요.

   육개장이 예상했던 것보다 제법 맛있게 끓여졌어요. 육개장이 끓는 동안 작은 냄비에 미역국도 끓였죠. 미역국은 자주 해 먹는 편이라 쉽게 끓였어요. 시금치와 콩나물을 데쳐 무치고 무나물도 볶았어요. 두부는 들기름을 두르고 넓적하게 구웠고요. 애호박전은 언젠가 예능 프로에서 본 것을 따라 해봤어요. 다른 과정은 다 똑같은데 납작납작 썬 애호박 속을 동그랗게 파내고 명란젓을 넣어 부치는 거예요. 엄마가 보내 준 김치도 썰어놓고 한 팩에 만팔천 원 하는 금실 딸기도 씻어 두었죠. 잊을까봐 마트에서 사 온 떡도 꺼냈어요. 언니도 딸기를 좋아했죠. 비싸서 혼자 있을 땐 안 사 먹고 나한테 놀러 올 때나 산다고 했었잖아요.
   딸기 하니까 생각나요. 재작년에 소애랑 사천 본가에 다녀온 적이 있어요. 큰아버지가 사천에서 딸기 하우스를 크게 하시거든요. 부모님이 이십 년 넘게 하던 세탁소를 접고 낙향한 지 얼마 안 됐을 때예요. 한번 내려오라고 엄마한테 여러 번 전화를 받은 참이기도 했고 소애와 짧게라도 여행을 다녀오면 좋겠다 싶었거든요. 그즈음 소애는 많이 가라앉아 있었어요. 앨범을 내려던 계획이 이런저런 사정으로 엎어졌고 삼 년 정도 만났던 애인과도 헤어졌죠. 게다가 치과 치료 때문에 예상치 못한 큰돈이 나간 상태였어요. 밤마다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해서 부쩍 야위었고요. 그 와중에 아르바이트며 기타 강습을 쉴 수가 없으니 몸도 마음도 괜찮을 리가 없었죠. 내가 돈이라도 많으면 급한 데 쓰라고 얼마쯤 쥐여 주고 싶은데 그럴 수가 있어야죠. 대신 만날 때마다 연금복권을 세 장씩 사줬어요. 무력하더라고요. 내가 할 수 있는 게 그애 안색을 살피거나 괜찮냐고 묻거나 아니면 아무것도 묻지 않는 것뿐이라는 게요. 말이, 언어가, 시가 다 무슨 소용인가 싶었죠. 그러다가 어느 날엔가 조금은 충동적으로 소애에게 말했어요. 나 부탁이 있는데. 본가에 같이 가줄래?
   본가에 머무는 내내 소애와 나는 일꾼들처럼 열심히 일만 했어요. 큰어머니와 엄마가 차려 주시는 세끼에다 새참까지 꼬박꼬박 받아먹으면서 딸기를 따고 상자를 접고 딸기를 포장하고 상자들을 옮겼죠. 저녁상을 물리고 나면 누가 먼저랄 것 없이 곯아떨어졌고요. 큰아버지가 놀러 와서는 뭘 그렇게 본격적으로 일을 하냐면서 일당을 두둑이 챙겨 주셨을 정도니까요. 달큼한 냄새로 가득한 비닐하우스 안에서 붉게 영근 딸기를 똑똑 따면서 간혹 못난이 딸기는 입속에 넣기도 하면서 다른 고랑에서 일하고 있는 소애를 힐끔 쳐다봤어요. 소애는 손등으로 연신 이마를 훔치면서 딸기를 한 알 한 알 야무지게 따고 있었죠. 얼굴빛이 상기되어 보이는 것도 같았어요. 내 착각이었는지도 모르지만요. 서울로 올라와서 우리는 며칠 허리를 앓았어요. 서로 허리에 파스를 붙여 주면서 깔깔거리며 웃었던 기억. 자고 가라는 내 말에 그래도 잠은 내 집에서 자야죠, 하며 현관에서 신발을 신던 소애. 소애가 현관문을 열다 말고 잘 자라며 나를 안았어요. 소애와 내 품 사이에서 매우면서도 시원한 파스 냄새가 났어요. 언니와 함께 갔어도 참 좋았을 거예요. 언니가 썼던 시나리오의 한 장면에 딸기 하우스가 나왔을지도 모르죠.

   음식을 그릇에 담아 상을 차리기 시작했어요. 전기밥솥이 쉑쉑거리며 뜨거운 김을 뿜어냈죠. 냉장실에 있던 소주를 냉동실로 옮기고 평소엔 잘 쓰지 않는 수저 받침대도 꺼내서 상 위에 숟가락과 젓가락을 나란히 놓았어요. 작은 상이 빈틈없이 가득 찼어요. 어질러진 부엌을 정리하고 머리를 고쳐 묶었어요. 손을 씻고 있을 때 현관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어요.
   와, 잔칫상이네요.
   김이 오르는 육개장 그릇을 받으며 소애가 웃었어요. 입을 동그랗게 오므리고 오오, 하면서 밥상을 둘러보기만 했죠.
   먹자.
   먹기 아까운데요.
   아까울 것도 많다. 소주?
   아, 더 좋은 게 있어요.
   소애가 배낭에서 상자 하나를 꺼내 내밀었어요.
   술에서 그윽한 배 향이 난대요.
   샀어?
   네. 언니도 좋아할 것 같아서요.
   안 아끼고 잘했네. 고맙네.
   작년에도 언니가 생일상 차려 줬잖아요.
   그랬네. 내년에도 내가 차리려고.
   소애가 우하하 웃으면서 내 빈 잔에 술을 따랐어요. 나도 소애의 빈 잔에 술을 따랐죠.
   축하해, 전소애. 태어난 거, 살아온 거, 살아 있는 거, 다.
   우리는 잔을 맞부딪친 다음 코를 잔 가까이 대고 냄새를 맡았어요. 그윽한 술 향기에 둘 다 눈이 커졌죠. 첫 잔을 깨끗하게 비운 소애가 말했어요.
   호사가 따로 없네요.

   언니. 소애는 술에 취하면 노래를 불러요. 기타가 있어도, 기타가 없어도 노래를 해요. 말수를 아껴 두었다가 노래를 하나 봐요. 혼자서 이 노래 저 노래를 끊이지 않고 불러요. 이소라, 장필순, 오소영, 정밀아. 만나본 적도 없는 가수들의 노래를, 우리 언니들의 노래라고 하면서요. 노래할 때 소애 목소리는 말할 때와는 사뭇 달라요. 더 맑고 가녀리고, 그런데도 더 단단해요. 듣고 있으면 말보다는 노래를 해야 하는 사람이구나 납득이 가요. 내가 그거 불러 줘, 하면 소애가 불러 주는 노래가 있어요. 언니도 잘 알 거예요. 그 노래를 내게 알려 준 사람이 언니였으니까요.
   사라지지 말아요 제발 사라지지 마라1)
   나는 늘 그 부분에서 울컥 마음이 솟구쳐요.
   사라지지 말아요 제발 사라지지 마라
   홀로 방에서 아니면 길거리에서, 인적 드문 어느 바닷가나 산 중턱에서 그 노래를 들었을 언니를 그려 봐요. 이 노래 한번 들어보라고 내게 말했던 언니 마음을 짐작해봐요. 그려보고 짐작해볼수록 나는 아무것도 알 수 없게 돼버려요. 왜 그때는 언니에게 물어볼 생각을 하지 못했던 걸까요.
   언니. 묻고 싶은 게 있어요. 지난 일 년 동안은 차마 물을 수가 없었거든요. 그랬는데, 오늘은 취기를 빌려볼까봐요. 그윽한 배 향이 나는 이 술은 꽤 독해서 소애와 나는 금세 취해 버렸거든요. 소애는 혼자 노래를 부르다가 깔깔 웃다가 조금 훌쩍거리다가 지금은 내 침대에 기대어 자고 있어요. 누워서 자라는데도 말을 안 듣고 괜찮다면서 정말 바닥이 좋다면서, 고개를 푹 떨어뜨리고 정수리를 보이며 졸고 있어요. 나는 거실 창을 조금 열어요. 바람이 밀고 들어와 배 향을 바깥으로 데리고 나가요. 찬 공기를 들이마시며 소애와 먹었던 상을 치워요. 그릇과 수저를 개수대에 담그고 육개장 국물과 딸기 꼭지가 떨어져 있는 상을 행주로 닦아요. 가스 불을 켜고 육개장과 미역국을 다시 데워요. 찬장에서 깨끗한 밥그릇과 국그릇, 반찬 접시를 꺼내요. 수저 한 벌도요. 한 사람을 위한 상을 정성을 다해 차려요.

   작년 소애 생일에 소애는 모처럼 잡힌 공연 때문에 지방에 가 있었어요. 우리는 생일 다음 날인 토요일에 만나기로 했어요. 몇 달 만에 만나는 거라 우리집에서 느긋하게 밥을 먹기로 했죠. 배달 음식을 시켜 먹을까 하다가 장을 봐서 간단하게라도 생일상을 차려 줘야겠다 싶었어요. 자그마한 케이크도 하나 샀어요. 퇴사를 보름 정도 남기고 있던 때라 몸은 고달파도 마음은 느긋했죠. 여느 날처럼 텔레비전 예능 프로도 보고, 침대에 누워 책도 좀 읽다가 졸음이 밀려와 스탠드를 끄고 누웠어요. 열한 시가 조금 넘어서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 왔어요. 핸드폰 너머에서 낯설면서도 아주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어요. 저, 최은주 큰언니예요.
   그 밤, 택시를 타고 부천에 있다는 언니에게 갔었잖아요. 그날 내 모습 너무 바보 같았잖아요. 언니도 봐서 알죠. 조의금을 챙겨 가지 못해서 현금인출기를 찾아헤매다가 계단에서 넘어지고, 무릎이 벌겋게 까여서 언니한테 절도 제대로 못 했잖아요. 언니 앞에서 고개도 못 들고 눈도 못 맞췄잖아요. 겨우겨우 떨리는 손으로 향을 꽂다가 향을 부러뜨리고 말았잖아요. 언니를 알고 지냈다는 낯모르는 사람들 사이에서 미지근한 육개장을 떠먹으며 앉아 있었잖아요. 질긴 대파를 오래오래 씹으면서 사람들이 하는 얘기를 들었잖아요. 옆자리에서 언니를 두고 이러쿵저러쿵 떠드는 말들이 들려오는데, 하나같이 정확한 사실은 없고, 무례하기 짝이 없어서 가서 면전에 소주를 뿌리고 싶은 걸 참고만 있었잖아요. 분명했던 건, 그 자리에 있는 어느 누구도 언니에 관해 정확히 알지 못했다는 거예요. 나조차도요.
   장지에는 가족들만 가길 원한다고 들었어요. 나는 이른 아침에 집으로 돌아왔죠. 돌아오는 택시에서 본 서울 거리, 내가 사는 익숙한 동네는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은 채로 완벽하게 달라져 있었어요. 이제 다시는 돌이켜지지 않을 세계, 언니가 남기고 간 나머지의 세계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어요. 그것을 내 몫의 세계로 인정해야만 했어요. 인정할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어요. 살아 있는 나는 이제 뭘 해야 할까. 언니가 없는데, 언니가 스스로 없기를 원했는데 살아 있는 나는 뭘 할 수 있을까. 살아 있는 나는, 살아 있으니 살아. 살아서 기억해. 네 몫의 삶이 실은 다른 삶의 여분이라는 걸 똑똑히 기억해. 그렇다고 너무 아끼지도 말고 너무 아까워도 말고, 살아 있는 나를 아끼지 말고 살아. 집에 와 외투를 입은 채로 책상 앞에 앉아 수첩에 그렇게 썼어요. 날짜를 보니 거의 이 년 만에 쓴 메모더라고요. 몇 시간 전, 언니 앞에서도 나오지 않던 눈물이 쉼 없이 쏟아졌어요.
   커튼을 치고 침대에 아무렇게나 누웠어요. 눈이 따끔거리고 허리며 팔다리가 쑤셔 왔어요. 살아 있어서 아픈 거였죠. 내 몸뚱이의 감각들이 그런 순간에조차 너무도 선명하다는 게 참을 수가 없더라고요. 이불을 뒤집어쓰고 한참을 또 울었어요. 그때 소애에게 문자 메시지가 연달아 왔어요.
   언니. 서울에 늦게 도착할 것 같아요. 오늘은 좀 봐줘요.
   생일이니까.
   울다가 깜빡 잠이 들었죠. 열두 시쯤 일어났어요. 커튼을 걷으니 방 안으로 노란 햇빛이 들어왔죠. 씻고 집을 정리하고, 아무렇게나 벗어둔 검은 정장도 다시 옷걸이에 걸었어요. 세 시쯤 도착한다는 소애를 맞을 준비를 했어요. 쌀을 씻으면서 생각했어요. 생일이니까, 오늘 말고 다음에. 오늘은 생일이니까.
   그렇게 일 년이 지나버렸네요. 사실은 말하기 무서워서였는지도 몰라요.
   상을 창가로 옮기고 어제 사다놓은 흰 전지를 깔아요. 음식이 담긴 접시를 하나씩 올려요. 육개장, 미역국, 밥, 시금치 무침, 콩나물 무침, 무나물, 애호박전, 두부 부침, 찹쌀떡, 절편, 딸기. 그리고 언니가 좋아하는 냉동실에서 막 꺼낸 차가운 소주, 늘 태우던 담배 한 갑.
   언니. 그날로부터 줄곧 언니에게 묻고 싶었던 말을 오늘도 하지 못할 것 같아요.
   침대 방에서 소애가 코 고는 소리가 나직하게 들리네요. 숨을 마시고 숨을 뱉는 소리가 담담하게 부르는 노래처럼 들려와요. 그 소리에 조금 안심이 돼요.
   은주 언니. 거기 있어요? 오늘 언니는 내 얼굴 볼 텐데 나는 또 못 보겠네요. 왔으면 서 있지만 말고 앉아서 한술 뜨고 가요. 늘 하던 것처럼 곁에서 천천히 담배도 한 대 태워요. 여기 하늘도 좀 올려다보고요.

   달이 떴네

안윤

밥을 사 먹이며 아프지 말라고 말해주던 언니들이 있다. 지금 내 모양의 상당 부분을 빚어 준 언니들. 이제는 나도 누군가의 언니가 되어서 언니라고 불린다. 언니, 하고 누군가 나를 부르면 나는 나의 언니들을 생각하고 세상의 언니들이 오늘 이 순간 모두 무사하기를 빈다.

2021/05/25
42호

1
디어클라우드, 〈사라지지 말아요〉, 2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