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기획의 말
   ‘뜻-밖의 오늘’ 두번째 씨앗은 영화 〈라따뚜이〉(2007)의 ‘김지은’입니다. 영화의 서사가 펼쳐지는 주요한 장소인 레스토랑에 웅크리지조차 못한 채 배제되어 있는 이 존재는 과연 누구일까요? ‘뜻-밖의 오늘’ 2화에서는 20년 전 레스토랑의 입장을 거부당한 어린이 김지은을 주석 세계에 새로이 초대하고, 그의 특집 칼럼 〈서투름이 환대받을 수 있는 곳을 찾아서〉를 가상으로 작성, 게재합니다.

_안경 장희원



   서투름이 환대받을 수 있는 곳을 찾아서
      Le Journal 특집 칼럼│김지은 기자(문화부)│2022-08-09

영화 〈라따뚜이〉(2007) 속 등장인물이 Le Journal 일간지를 펼쳐 읽고 있다. ⓒ디즈니/픽사

   프랑스 최고의 정통 레스토랑이었던 구스토 레스토랑이 30여 년 만에 문을 닫는다. 많은 사람에게 알려진 사유는 바로 ‘식품위생법 위반’. 하지만 나는 구스토 레스토랑이 폐업할 수밖에 없는 또다른 이유를 열 살의 어린이였던 20년 전에도, 성인이 되어 수습기자의 신분으로 구스토 레스토랑을 방문했던 5년 전에도, 그리고 지금도 알고 있다.
   이곳에는 불변하던 것이 두 가지 있다. 첫번째는 창립자 오귀스토 구스토의 죽음 이후 손님의 요청 없이는 더이상 새로운 메뉴를 개발하지 않는다는 것, 두번째는, 레스토랑에서 어린이를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다. 20년 전1 나는 티 없이 해맑게 이곳에 들어섰지만, 곧이어 노키즈존 정책에 의해 ‘동반이 금지된 어린이’로 분류되어 발길을 돌려야 했다. 그리고 성인이 되어 다시 구스토 레스토랑을 찾아왔던 5년 전에도 여전히 어린이는 없었다. ‘어린이’는 사전적 의미로 4~5세부터 초등학생에 이르는 아이로 쉽게 지칭할 수 있지만, 생물학적인 나이가 아닌 사회 구성원의 일원으로 어린이를 정의할 때, 사람들이 가진 생각은 제각각이다. 그중 20년 전, 아니 어쩌면 이보다 훨씬 전부터 노키즈존의 푯말을 내걸어온 구스토 레스토랑이 정의하는 어린이는 어떠한가.
   구스토 레스토랑은 프랑스2의 정통 파인 다이닝(fine dining)으로, 손님들은 그에 걸맞은 예의 있는 식사 예절과 음식에 대한 격조 있는 태도를 갖춰야 했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서부터 레스토랑이 가진 유구한 역사의 기록을 공간에서 느끼고, 약 두 시간가량 이어지는 코스요리를 조용하고 우아한 태도로 음미하는 것, 이것이 바로 구스토 레스토랑이 지향하는 격조 있는 식사 예절이다. 화려하게 세공된 문3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자연스레 외투를 받아들며 메인 홀로 손님을 안내하는 웨이터의 응대, 레스토랑의 메인 홀을 은은하게 가득 채우는 4중주의 클래식 선율, 내부를 환하게 밝히고 있는 거대한 크리스탈 장식의 샹들리에, 엄숙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고급스러운 자줏빛과 황금색의 벽지와 카펫, 한 치의 실수와 오점도 허용하지 않을 것 같은 새하얀 테이블보, 그 위에 반짝반짝 빛나는 은식기와 유리잔들. 이 모든 것들은 한데 어우러져 구스토 레스토랑4의 정숙함과 우아함에 무게를 더했다.
   그리고 구스토 레스토랑은 이렇게 섣불리 판단했다. 이 아름다운 식사가 지속되는 두 시간 동안 어린이들이 아무런 실수 없이 조용히 식사를 마치지 못할 것이라고. 이곳에서 어린이는 구스토 레스토랑의 평화를 빼앗는 소란의 잠재적 원인이자, 통제 불가능하고 비문명화된 존재이다. 어른들이 정의한 질서와 규칙5을 이해할 수 없고 따르지 못하는 어린이의 실수를 구스토 레스토랑은 용납하지 않았다. 레스토랑의 창립자인 오귀스트 구스토는 요리가 새로운 예술적 창조물의 반열에 오르는 순간은 음식이 손님의 입에 들어가 비로소 직접 느껴지고 경험되었을 때라고 설파했지만, 어린이는 그 경험의 주체에 포함되지 않았다.6 어린이가 존재할 수 없었던 구스토 레스토랑은 결국 폐업을 결정했지만, 이후 구스토 레스토랑의 규칙을 이어받은 공간이 지금도 속속히 늘어나고 있다. 어린이는 부모의 손을 잡고 ‘노키즈존’이라는 푯말과 ‘키즈 프리존’ 등의 푯말을 따라 이리저리 방황한다. 어린이를 보호받아야 할 순수하고 귀여운 대상으로 생각하면서 한편으로는 내가 있는 식당이나 카페, 대중교통 옆자리에는 앉지 않기를 바라는 태도, 이것이 구스토 레스토랑에서부터 오늘날까지 이어져온 어린이를 바라보는 시선이다.

〈라따뚜이〉(2007) 속 구스토 레스토랑에서 메뉴를 고민하는 손님들과 웨이터의 모습. 단발머리의 붉은 옷을 입은 여성이 어딘가 불편한 듯 메뉴판을 응시하고 있다. ⓒ디즈니/픽사


   하지만, 어린이는 귀여움을 보여주는 미적 감상의 대상도, 가까이 다가오지 않았으면 하는 타자도, 좋고 나쁨을 판단할 수 있는 대상도, 그 어느 것도 아니다. 어린이는 자신만의 시간 안에서 세계를 열심히 빚어내고 있는 우리의 ‘동료 시민’이다. 성인이든 어린이든 우린 누구나 자기만의 세계를 만들어 나가며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이때 어린이는 이제 막 세계를 만들어 나가기 시작한 동료이며, 그렇기 때문에 이들은 조금 어리숙하고 서투를 수밖에 없다. 어린이는 하루에 열 번도 더 손에 들고 있는 것을 떨어뜨리고, 다소 부정확한 발음으로 무언가를 말하며, 웃음장벽이 낮고, 생리현상을 오래 참지 못하고, 감정에 솔직해서 화나거나 슬픈 일이 있으면 엉엉 울어버리기도 하는 어딘가 미숙한 동료이다. 그렇지만 어른들은 어른의 규율과 속도에 맞게 어린이가 각자의 세계를 빚어내도록 종용한다. ‘착한 어린이’ ‘얌전한 어린이’ ‘어른스러운 어린이’ ‘귀여운 어린이’ ‘애교 넘치는 어린이’ ‘울지 않는 어린이’ ‘씩씩한 어린이’ ‘어른 말을 잘 듣는 어린이’라는 수식어의 족쇄를 채운다. 구스토 레스토랑은 자신들의 수식어에 부합되지 않는, 파인다이닝의 순서와 규칙을 따를 수 없는 어린이의 실수를 한치도 용납하지 않으리라 결심하고 결국 이들을 레스토랑 밖으로 밀쳐냈다. 나아가 이들이 정한 규율의 날카로운 선은 어린이뿐만 아니라 그 주변인, 그리고 완벽히 규칙을 따를 수 없는 어딘가 어리숙한 모든 존재를 향해 뻗어나간다. 이 선은 20년 전에는 어린이를 동반했던 나의 부모님을 향해 있었고, 5년 전에는 레스토랑에 입장하긴 했지만, 함께 온 직장 상사에 비해 메뉴 주문이 서툴렀던 나를 향해 있었다. “누구나 요리할 수 있다”는 오귀스토 구스토의 명언은 레스토랑의 우아한 평화를 위해 “누구나 배제될 수 있다”로 변모했고, 그 끝에는 폐업만이 남았다. 타자를 환대하지 않는 레스토랑에 미래는 없다. 또다른 구스토 레스토랑들이 생겨나지 않기 위해 나는 이렇게 제안한다. 어린이를 어른이 만든 세계에 균열을 일으키는 존재가 아닌, 어떠한 수식어도 없이 ‘있는 그대로’의 동료 시민으로 바라보자고. 이러한 다짐 끝에 어린이들의 말소리가 어른이 섣불리 규정한 ‘소음’으로 치부되지 않고, 환대받는 울림이 되어 퍼져나가길 기대해본다.


1 매일 밤 잠들기 전, 달력에 엑스 표시를 하며 오늘을 손꼽아 기다렸다. 오늘은 아빠가 한국에서 엄마와 나를 보러 처음 프랑스에 오는 날이다. 엄마의 손을 잡고 쿰쿰한 냄새가 나는 파리 지하철을 여러 번 갈아타고 비행기와 사람들, 그리고 바퀴 달린 가방이 가득한 공항에 도착했다. 프랑스에 오고부터 엄마는 우리가 함께 외출할 때 한껏 더 예민해졌다. 지하철을 탈 때도, 사람이 많은 곳에 올 때도, 길을 걸을 때도 엄마는 항상 “안돼” “위험해” “가만히 있어” “조용히 해야 해” “얌전히 가자”라는 말을 몇 번이고 반복했다. 거리에 가득한 신기한 것들을 가까이에서 보고 만지고 싶은 걸 꾹꾹 참고 계속 가만히 있었는데, 또 가만히 있으라니 심술이 난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엄마가 프랑스에선 나한테 맨날 이런 말을 한다고 아빠한테 이르고 싶다.

2 아빠를 한국에 두고 엄마와 프랑스에 온 지 벌써 2년 가까이 되었다. 내가 여덟 살에서 열 살이 되었으니까. 엄마는 내가 피아노 레슨을 빼먹지 않고 열심히 따라가면 아빠랑 다 같이 살 날이 금방 다가올 거라 했다. 엄마는 원래 우리 가족이 함께 살았던 아파트 앞 상가의 모짜르트 학원 선생님이었는데, 어디를 가든 내가 피아노에 재능이 있는 천재라고 자주 말했다. 무대에서 연주를 마칠 때마다 날 보며 해사하게 웃는 엄마와 아빠의 얼굴을 보는 게 즐거워 나는 연습을 더 열심히 했다. 그리고 어느 날 엄마와 아빠는 나를 거실에 앉혀놓고 유명한 선생님께 피아노도 배우고 더 큰 무대에서 연주할 수 있는 프랑스에 가자고 했다. 그렇게 해서 오게 된 프랑스에 아빠는 없었다.

3 공항 게이트 문 사이로 아빠의 모습이 보이자 품속을 향해 전속력으로 내달렸다. 있는 힘껏 날 안아 들어올리는 아빠는 예전처럼 날 머리 위까지로는 번쩍 들어올릴 힘이 없는 듯했다. 내가 2년 사이 훌쩍 커버린 탓인가? 근데 곧이어 눈에 들어온 아빠의 팔다리는 이전보다 훨씬 마르고 배만 불뚝하게 튀어나와 있었다. 아빠가 가져온 바퀴 달린 가방 위에 앉아 타고 신나게 공항을 벗어나, 우리 식구는 파리 외곽의 형형색색의 낙서 글씨가 가득 칠해져 있는 르쿠르베(Le Courbet) 아파트의 302호로 향했다. 엄마는 아빠가 오기 전, 우리만의 비밀을 만들자 했다. 프랑스 생활의 즐거움을 아빠한테 알려주기에도 촉박한 시간이니 이번에는 아빠한테 말해주지 않기로 하자고. 우리의 첫번째 비밀은 엄마가 한국인 여행객한테 현지 가이드 일을 시작했다는 것, 그리고 두번째는 우리가 이곳에서 겪은 요상한 일들에 대한 이야기였다.

4 엄마와의 첫번째 약속을 지키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비밀이라고 해놓고 막상 엄마는 아빠를 위해 훌륭한 가이드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었다. 거기다가 평소 관광 코스에는 없던 특별한 장소가 아빠를 위한 파리 투어에 새롭게 추가되었다. 바로 ‘구스토 레스토랑’이었다. 이 식당 이름을 기억하는 건 엄마가 주말마다 구스토라는 사람이 쓴 요리책을 보며 내게 새로운 요리를 해주었기 때문이다. 처음 엄마가 주말마다 프랑스 요리를 하기 시작한 건 앙리에 선생님 댁에서 있던 일 이후부터였다. 그날은 평소보다 레슨이 길어져 선생님 댁에서 저녁을 먹게 되었는데, 그때 처음 나는 프랑스인들과 내가 먹는 방식이 다르다는 걸 온몸으로 느꼈다. 학교에서도 프랑스식을 먹지만, 식판 위에 밥과 반찬 대신 샐러드와 빵, 디저트로 메뉴가 바뀌었을 뿐, 한국이나 프랑스나 급식은 급식이었다. 그런데 앙리에 선생님 집에서는 크기가 제각각인 그릇들과 여러 개의 포크와 나이프로, 시간차를 두고 나오는 요리를 조심스레 먹어야 했다. 이 모든 것들이 신기하면서 한편으로 귀찮고 지루했다. 하지만 ‘얌전히 굴어야 한다’는 엄마의 신신당부를 떠올리며 끝까지 선생님 가족들이 먹는 걸 따라 하고 눈치를 살피며 저녁 식사를 마쳤다. 여간 피곤한 저녁이 아니었다. 엄마는 일을 마치고 나를 데리러 왔다. 저녁 식사에 대한 감사 인사를 전하던 엄마에게 앙리에 선생님은 엄마도 마치 레슨을 받으러 온 학생인 양 차분하게 프랑스식 식사 예절에 대한 일장 연설을 펼치기 시작했다. 무슨 말이었는지 졸음이 쏟아져서 잘 들리지 않았는데, 부드럽고 상냥한 목소리로 전해지는 잠을 달아나게 하는 문장 하나가 귀에 꽂혔다. “밥을 먹고서 이를 닦아야 하는 건 알고 있나요?” 엄마랑 약속한 두번째 비밀, 아빠에게 당장은 들려주지 않을 이야기 중 하나가 이날의 일이라는 걸 나는 알고 있었다.

5 프랑스 식사 예절은 주말마다 엄마가 해주는 프랑스 요리를 먹으며 자연스레 터득했다. 구스토 레스토랑을 가기 전 아빠에게 자랑스레 식사 예절을 알려주었던 사람도 다름 아닌 나였다. 하나밖에 없는 콩쿨용 드레스를 입고 레스토랑에 갈 준비를 마쳤다. 아빠는 구스토 레스토랑에 가는 길에 엄마와 나를 보며 잘 지내고 있는 것 같아서 정말 안심된다며 연신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엄마와의 비밀 작전이 거의 성공한 게 틀림없다.

6 엄마와 아빠를 향해 온화한 미소를 보이며 문을 대신 열어주던 웨이터의 시선은 아래에 있던 나에게로 향하자, 곧 어쩔 줄 몰라 하는 난처한 표정으로 얼굴이 일그러졌다. 미안해하는 듯하지만 동시에 단호한 표정으로 내뱉은 말은 “아이는 들어올 수 없다”는 것. 프랑스어가 능숙한 엄마는 격양된 목소리로 따져 묻기 시작했다. 실랑이를 벌이는 와중에도 이따금 골칫거리를 쳐다보는 듯한 웨이터의 시선이 내게 머물렀다. 웨이터와 엄마 사이의 작은 소음이 일자, 사람들이 밥을 먹다가 인상을 찌푸리며 나를 차갑게 쳐다봤다. 나는 사실 그런 눈초리가 마냥 놀랍거나 새롭지는 않았다. 엄마와 레슨 가는 길에 앙리에 선생님의 빛나는 대머리를 놀릴 때, 길에서 엄마 핸드백을 대신 들고 어른 흉내를 내며 까르르 웃을 때, 식당에서 가끔 포크를 실수로 떨어뜨릴 때, 이럴 때마다 이따금 느낄 수 있는 눈초리다. 우리의 비밀 작전이 실패할까봐 엄마에게 그냥 다른 식당에 가자고 손을 잡아 이끌려 하는데, 아빠가 내 손을 잡고 단호히 말했다. “아니야 지은아, 잘못된 건 우리가 아니라 이 사람들이야. 우리가 알려줘야 이 사람들도 고칠 수 있어. 그리고 저런 눈으로 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잘못되었다는 걸 우리가 알려주자. 엄마가 말로 알려주는 동안, 아빠랑 같이 3초 뒤부터 저 사람들을 향해서 ‘당신들이 잘못 생각하고 있어요’라고 눈싸움을 해보는 거야, 3, 2, 1 하면 시작이야, 알겠지?” 3초 뒤 시작된 눈싸움으로 아빠와 나는 식당에 있는 사람들을 무찔렀다. 그 사람들이 졌다는 것조차 모를 수 있다는 건 아무렴 상관없다. 분명히 맞서서 우린 그날 이겼고 구스토 레스토랑의 문을 당당히 박차고 나왔으니까.



   
작업 노트 2.




안경

보름, 지율, 희원은 줄곧 안경을 썼던 고도근시자들로, 비슷한 시기에 시력 교정술을 통해 한 꺼풀의 베일을 벗겨냈다. 세 사람은 선명해진 세계에서 여전히 희미한 존재를 찾아 나서기로 한다.
인스타그램 : @wescatterseed

2022/08/09
57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