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지방소멸 위에 놓인 지역 청년의 떠남과 남겨짐

지방소멸은 코앞에 들이닥친 위기로 표상된다. 나는 지방이 정말로 소멸하는지, 누가 지방소멸이 진실이라고 주장하는지, 왜 지방소멸을 말하고 있는지, 이런 상황에 지역 청년들의 삶과 마음은 어떠한지, 그들이 지방소멸 담론에 어떻게 개입하는지와 같은 질문을 가지고 있다. 단순한 위기 묘사가 아닌 지방소멸이라는 담론, 현상, 조건, 상황이 지역 현실을 조형하는 국면에 비판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봐서다. 지방소멸은 인구를 바탕으로 한 담론으로, 제도와 절차, 분석, 고찰, 계측, 전술을 구축해왔다. 그리고 지방을 도시와 구분되는 전근대적인 공간으로 다루며 인구 조절의 대상으로 삼았던 인구 억제 담론과 가족 계획사업에서부터, 가임기 여성인구를 분홍색 채도로 표기하면서 지역을 순위화한 대한민국 출산지도 등 저출산 담론과 지방소멸에 이르기까지 인구 통치는 계속해서 지역과 젠더를 타고 흘러왔다. 인구 조절과 관리를 중심으로 한 지방소멸 담론의 통치성은 지역 여성 청년의 정서, 감각, 행동 등 주체성을 조직하는 레짐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것은 지역 청년의 떠남과 남겨짐의 서사에서 드러난다. 지방소멸이 기정사실화되는 시대에 지역 청년의 이동, 특히 청년 여성 인구 유출은 위기의 징표로 작용한다. 그러나 그들의 이동 역시 생존의 위협에서 일어난 일인 바, 유출에 얽혀 있는 위기의 층위는 매우 복잡하다. 한국 사회 청년 앞에 놓여있는 현실적 어려움은 지역 청년들에게 가중된 위기로 직면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담론은 청년인구 유출 위기와 대응 필요성에 골몰해 있으면서 아이러니하게도 지역 청년이 떠나지 않는 것을 잔류, 남겨짐, 갇혀 있음 등으로 엮는 데 익숙하다. 지역에 사는 청년을 열망이 없는 잔류자나 실패자로 묘사하면서 본인 의지에 상관없이 뒤처지거나 무력한 주체로 그리는 건 더 이상 특별한 일이 아니다. 여기에는 가야 할, 이미 갔을 종착지와 목적의식이 상정되어 있다. 성공을 위해선 반드시 서울에 가야만 한다는 상상, 거기는 이곳과 분명히 다르리라는 행복의 약속이 서려 있다.
  행복의 약속은 그 경로에 있지 않은 존재를 부적합한 감정의 주체로 만든다. 이는 누군가의 삶을 스스로 설명할 수 있는 언어를 한계 짓는다. 나는 아주 최근까지도 또래 여성에게서 ‘아직까지 지역에 있다는 것은 몇 번의 실패로 여겨진다’는 말을 들었다. 사라 아메드는 행복의 약속이 우리 주변을 둘러싼 세계가 형성되는 방식에 영향을 미치고, 행복에 대한 기대는 미래에 대한 특정 이미지를 심어줌으로써 행복으로 안내할 특정 가치, 실천, 스타일, 열망 같은 대상을 생산한다고 했다.1) 이에 따르면, 지역은 행복을 약속할 수 없는 공간이다. 광주에서 나고 자란 예술인 동료 A는 〈상상서울〉이라는 다큐멘터리 연극으로 상상과 환상 속에서 전개되는 지역 청년의 서울에 대한 욕망을 작품화했다. 그는 연극 참여자에게 서울에서의 하루를 브이로그로 말해달라 요청했다. 상상은 내가 대도시에서 산다면 이뤘을 욕망의 모습들과 함께 지역에 있기 때문에 억눌리고 주저하는 감정과 장애물들을 함께 드러낸다. 그러나 브이로그가 행복의 약속을 맴도는 가운데 A가 발견한 것은 상상의 한계다. “아, 내 상상력이 여기까지밖에 안 되네?”
  지역 청년을 떠남과 남겨짐의 서사로 다루는 담론은 지역 청년이 가진 불안과 좌절이 지역을 떠남으로써 해소가능한 것, 행복은 결국 지역 바깥에서만 가능하다는 전제를 가지고 있다. 서울로 가라는 방향 지시적 행복은 자유를 위해 지역 밖으로 나가 위로 올라갈 수 있는 신체를 전제하며 계속 전진하라 말한다.2) 원주에서 대전으로 이주한 B는 “다른 지역으로의 이동은 서울밖에는 생각나지 않았고” 고향에 다시 돌아간다는 건 “모든 게 실패로 느껴졌다”고 했다. 행복의 약속을 설파하는 담론은 지역에 사는 것을 행복의 경로를 따라가지 못하는 지연된 상태, 기대되는 미래로부터의 단절을 의미한다고 말한다. 이런 논리에 따르면 지역 청년이 구사하는 감정은 절망이 될 수밖에 없고 행복을 추구하기 위한 대가를 치르지 않으려 하므로 지역에 ‘살고 있는’ 청년은 ‘남겨진’ 청년이 되어야 한다. 이 서술 방식은 지역 내부에서도 강하게 작동하며 지역에 사는 사람들 스스로 지역 살이를 평가절하하는 식으로 발현되기도 한다. 하지만 A의 멈춰버린 상상력이 그랬듯 모든 것을 줄 것만 같은 행복의 약속에는 역설적으로 가능성이 존재하지 않는다.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는, 우연에 의해 열려 있는 가능성 말이다.


2. 내가 문젯거리가 된다는 느낌

제자리로서 공간은 정체성을 설명하는 일부가 된다. 소속되어 있다는 느낌, 어딘가에 뿌리내리고 있다는 감각은 사람들에게 무척 중요하다. 그러나 지역 여성은 뿌리내림에 관한 복잡한 정동을 경험한다. 남원에 살면서 나와 협력적 자문화기술지를 쓴 C는 우리가 지역이라는 장소에서 경험하는 쓸쓸함, 이곳에 살지만 벗어나 있고 겉돌고 싶지 않지만 가까이 가기에는 부대끼는, 다른 곳으로 가고 싶으면서 안착하고 싶다는 이중 감각에 관해 이야기했다. A는 광주에서 “편안하다는 감각”을 느끼면서도 “떠나지 않았으면 늘 답답해하고 숨 막히고 변함없이 똑같은 모습을 보면서 나는 언제 떠날까, 내게 이곳을 떠날 빌미가 언제 주어질까만 고민했겠구나”하는 양가적 감정을 경험했다. 목포에서 활동하는 예술가 D는 “왜 나만 이 자리에 그대로 멈춰있지, 왜 혼자 남겨졌지”와 같은 알 수 없는 서글픔과 상실감을 경험했다. 지역 여성들은 제자리에 있으면서도 계속 밀려난 기분을 느껴야만 한다. 구례로 이주한 E는 자신이 적응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여성이어서인지 퀴어여서인지 이 지역이 문제인지를 도무지 알지 못한 채로 붕 뜬 기분을 느낀다. 안동에서 나고 자란 예술가 F와 대전에서 살고 있는 디자이너 G는 자신의 재능을 부정하거나 “여기에서 뭘 할 수 있지”라며 스스로를 다그쳤다.
  지역 여성들이 느끼는 막막함, 불안감, 우울함, 실패감, 열등감, 답답함, 지루함 같은 못난 감정(ugly feeling)은 개인적 감정의 에피소드가 아니라 정동의 언어‧신체적 표현이다. 자신이 ‘문젯거리’가 된다는 느낌과 같은 감각의 훼손은 중앙/지방의 위계화된 공간 구조와 결부된 정동적 징후다. 행복의 약속에 매인 삶은 지평선이 줄어드는 느낌을 동반한다. 이는 젠더화되고 지방화된 지역 여성의 삶을 표현한다. 아메드는 결혼과 출산, 정상가족 재생산의 요구가 행복한 삶에 필수적인 것으로 정향되어 있으며, 젠더화된 행복 대본에 따르지 않는 여성들은 불편하고 불행한 존재로 여겨진다고 말했다. 지방소멸 담론은 여성의 지역 정주와 이주를 특정한 방식으로 다루고 삶에 불안정성을 기입함으로써 불편한 감각을 가속화한다. 지방소멸의 정동이 부추기는 건 단지 지역이 사라진다는 위기감, 포기할 곳은 포기해야 한다는 낙오의 정서나 낙후 지역은 재생으로 회복되어야 할 문제의 장소라는 감각뿐 아니라 가임기 여성인 청년들이 지역을 떠나는 건 지방소멸을 초래하는 무책임한 일이라는 지표들의 재생산이다. 행복의 약속은 지역 여성에게 훨씬 더 복잡하게 드러난다. 성공한 미래를 위해서는 서울로 떠나야 하지만 제자리에 가만히 있으라는 역설은 지역 여성의 삶을 붙들어 맨다. 지방소멸 담론의 젠더 인식은 지역 여성의 돌봄노동, 저임금 노동, 불안정노동의 현실을 비가시화한다. 결혼과 출산, 육아에 맞춰져 있는 정책들은 비혼과 같은 여성들의 다른 삶에 관한 욕망을 고려하지 않는다. 안동에서 살고 있는 H는 “지역 여성이 가진 고민의 깊이와 넓이는 상상 이상이지만 미혼자라면 결혼을, 기혼자라면 출산과 육아를 강요받으면서 지역에서 사는 일은 결국 출구를 찾지 못하는 미로 같기만 하다”고 했다. 지역-젠더의 교차적이고 구조적인 불평등은 저출산-지방소멸 담론과 만나 집, 가정, 일터, 지역사회에 이르기까지 그들 삶 주변의 장소를 구성한다. 이것은 우리를 제약하는 느낌을 만든다. 이곳을 피할 다른 어딘가를 갈망하면서도 그 어디가 어떤 곳인지는 확실치 않은, 다만 확실한 것은 지금 이곳과 같지는 않다는 감각을 배태한다.3)
  하지만 이 감각은 지역을 떠날 정확한 이유를 설명하지 않는다. 인구 유출과 유입에 관한 정책 수립을 위해 여성들이 지역을 떠나는 이유를 찾는 데 몰두하고 괜찮은 일자리와 노동환경, 거주지, 소득 수준, 문화적 여건이나 인프라, 가부장적 분위기 등으로 그 이유를 열거하는 것이 그들의 삶과 완벽히 들어맞지 않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물론 여성들이 당면해 있는 어려움을 드러내는 중요한 요인들이지만, 예컨대 가부장적 분위기를 지역에만 해당하는 ‘지역문제’로 축소하여 환원할 위험이 있고 이런 방식으로는 지역이 여전히 전근대적이거나 시대착오적인, 동시적인 공간이 아니라는 담론적 재현에 포섭되기 쉽다. 내가 이렇게 판단하는 데에는 여성들이 스스로 떠나는 이유를 찾지 못하고 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A는 〈상상서울〉을 만들어 사람들을 모아 이야기를 들어봐도 “남의 이야기를 들어서 개중에 괜찮은 게 있으면 그 이유를 베끼려고” 해도 결국 지역을 떠날 이유를 찾지 못했다. 그는 광주에서 고양으로 이주했고 내게 “떠나기 위해 떠났다”고 했다. 떠나는 납득할 만한 이유를 찾지 못했지만 더 이상 이곳에서는 버틸 수 없을 것만 같은 지긋지긋함은 여전했기 때문이다. 그는 차라리 떠나는 이유가 “서울이라면 그럴 듯 해보인다”고 말했다. 떠나기 위해 떠나야 하는 상황은 서울에서 지역으로 오는 반대 경우도 마찬가지다. E가 구례로 이주한 계기는 삶의 템포에 어긋나는 공간의 빠른 속도, 높은 인구 밀도와 압도되는 감각 경험 때문이었다. 서울에서는 다른 종류의 고립을 느낄 수밖에 없었고 생활을 꾸리기에 숨이 벅찼다. 하지만 구례로 온 지금도 그는 여전히 다른 곳으로 떠날 고민을 하고 있다.
  지역 여성들은 그마다 처한 상황의 특이성에 따라 이동에 관한 갈망을 다르게 만들어낸다. 연구 현장에서 청년 여성에게 지역에 관해 갖는 느낌이나 감각을 묘사해달라고 했을 때 재차 알게 된 것은 모두 똑같은 방식으로 느끼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G가 충주에서 대전으로 떠나오면서 느낀 기쁨이나 신기함의 원인이었던 대학 진학은 대전에 줄곧 산 친구들에겐 우울함의 조건이었다. “나에게는 번잡하고 시끄러운 도시가 누군가에게는 조용하고 지루하고 떠나고 싶은 곳”처럼 여겨지는 경험은 계속 일어난다. 지방소멸을 감각하는 정도도 저마다 달랐다. 누군가에게 지방소멸은 별 감흥이 없는, 굳이 생각해 보자면 누릴 수 있는 문화적 여건의 부재로 갈음될 수 있는 정도라면 누군가에게는 동네에서 늘 보던 할머니의 죽음이나 나이 든 몸, 사라질 것만 같은 마을에 대한 무거움으로 실감된다. 복잡하게 나타나는 지역 내부의 정동은 지역 담론에 관한 역사, 감정과 정치, 거대한 규모의 사실들과 지역적 사실들의 관계에 대한 새로운 이해 방식을 요구한다. 지방소멸이 투사하는 위기의 정동을 거스르거나 공감하지 않음으로써 탈피하는 다양한 정동 양태는 지방소멸의 통치성이 지역 여성 주체의 행위성에 의해 굴절되는 방식을 보여준다.


3. 어차피 이정표대로 가도 거긴 안 나와4)

아메드는 행복의 경로를 따라가지 않는 경험, 우리가 속한 공간에 섞일 수 없는 경험이 행복에 대해 더 많은 것을 가르쳐줄 것이라고 말하면서 불행한 주체들, 그래서 세상을 더 저항적인 것으로 경험하는 신체들의 삶의 형식을 숙고함으로써 행복에 대해 다시 쓰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말한다.5) 그것은 행복에 대한 또 다른 행복에 관한 주장, 예를 들면 지역에서의 삶이 불행하지 않다는 증거 같은 것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다. 지역을 서울과 대비되는 전원적이고 풍요로운 장소, 창의적이고 도전적인 주체로 설정된 청년에 의해 희망으로 탈바꿈될 장소로 제시하는 것은 행복에 관한 주장에 지나지 않는다. 이렇게 보면 지역 청년은 여전히 잔류한 실패자와 변화의 개척자라는 양가적 표상 가운데 놓일 수밖에 없고 담론은 지역을 특정 장소로 표상하기에 성실하며 행복이 무언가를 약속한다는 것에는 변함이 없다.
  때문에 경로를 벗어나는 여성들, 불편함을 가지고 다른 방향성을 만드는 지역 여성들의 이야기가 필요하다. 이는 행복의 약속이 가진 불안정성에 질문함으로써 ‘가능성으로서의 행복’을 말하는 일이다. 이 가능성은 결코 단순화할 수 없는 지역 여성의 이동에 있다. 연구 현장에서 본 여성들의 이동 출발지와 도착지는 서울과 지방만이 아니었다. 대도시와 중소도시, 중소도시와 소도시, 도시와 농촌, 공간의 위계와 규모를 넘나들며 이주는 계속된다. 이사, 진학, 취업으로 인한 무수한 이주 경험, 일상생활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이동 경험, 끊임없이 이어지는 동네 산책은 복잡한 이동 경로를 그려낸다. 행복의 약속이 진입 방향이 정해진 단일선이라면 지역 여성의 삶에 지속적으로 일어나는 이동은 다차원적인 경로를 만든다. 중요한 점은 다른 장소에 도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경로를 그려나가는 일 그 자체다.6)
  나는 매일 어디로 어떻게 이동하냐고 물었다. G는 집과 집 앞 마트까지만 닿았던 행동반경을 친구들이 동네로 이사 오고 나서 조금씩 넓혀갔다. “공간을 탐험하는 스타일이 아니었던” 그는 친구들과 함께 최근에는 동네탐정이라는 이름으로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사람들과 만들어낸 친밀성은 공간에 녹아들고 그제서야 “내가 대전에 진짜 사는 것 같고 여기가 내 동네 같다”는 생각, “진짜 지역에 살고 있다”는 감각이 생겨난다. 여성들과 오랜 시간 지역에서의 직업 생활을 탐구해본 H의 말처럼 발 디디며 사는 감각은 “내 이야기를 들어주고 보듬어줄 수 있는 사람들을 만나는 지지력”에서 온다. 이 감각은 동시에 대도시에 대한 피로감을 생성한다. G는 잠시 서울로 이주했을 때 받은 “나의 시골스러움이 씻겨 내려가는 느낌”은 오래 지속되지 않았고 지금 와서 보면 그 삶은 “상상처럼 로맨틱하지 않았다”고 했다.
  지역 여성들이 택한 건 어차피 가도 나오지 않는 행복의 이정표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실패하더라도 정주하며 공간을 탐험하는 일이다. 여성들이 제자리를 떠났던 이유는 숨이 막혀서, 기존의 자리가 자신의 실존, 정체성과 맞지 않아 다른 자리를 시험해보기 위해서였다.7) 숨 쉴 구멍을 찾기 위해 행복의 약속을 떠남으로써 다른 행복을 찾는 것이다. 그러므로 종착지는 서울이 될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행복이 약속한 서울이 아니다. 여성들은 살고 있다는 감각을 위해 지역 내외의 이곳저곳으로 떠나기를, 뭔가 일어날 수도 있다는 느낌을 받아들이기를 원한다. 그때 찾을 수 있는 건 약속된 행복이 아니라 우연발생적으로 나타날 행복이다. ‘여기에서 좀 더 잘 살아가고 싶다’는 욕망은 지역 여성들이 서로 다른 방식으로 지식을 쌓고 나누며 서로를 사랑하고 미워하며, 엉키고 뒤섞이며 살기를 실현함으로써 나타난다.8)
  지역 여성들은 삶이 가지는 불안과 상실 같은 감정들을 더듬어가면서 자신의 삶에 관해 성찰하고 있다. D는 물이 있어야만 살 수 있는 미생물이 물이 말라가는 프레파라트 위에서 물막을 뚫기 위해 이동하는 시도를 보면서 자신의 지역 정주를 이입한다. 그러나 미생물이 물막을 뚫고 간 곳은 제자리에 불과하고 D는 심장이 쿵 내려앉는 느낌을 받는다. 하지만 그는 미생물을 보면서 돌고 돌아 다시 같은 장소에 왔어도 모든 걸 뚫고 나서 왔으면 똑같은 미생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지역 정주를 무용한 것으로 여기는 정상성에 대해 자신의 지역 살이를 다르게 의미화하는 시도는 새로이 제자리를 결정하는 이야기다.9) 탈서울, 탈지방, 탈한국으로 감행되는 여성들의 떠남은 다르게 살기를 열망하는 탈중심에 관한 것이다. 모든 선택에서 불안정하지만 대안적인 선택을 함으로써 대도시 규범성을 비껴가는 탈중심화 실천은 공간의 중심/주변에 관한 정상성을 흔드는 위치 조정이다. 여기에는 도린 매시가 말한 다른 이야기를 전개할 수 있는 여지, 다른 궤적을 형성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10) 지역과 불화하면서 행복의 관점을 재정향하는 시도 말이다.

권수빈

전남연구원에서 문화예술의 지역적 특성과 맥락, 정책을 연구한다. 지역 청년의 복잡한 이동성과 지역 살이, 지방소멸의 정동정치와 현장화된 감정들에 관심이 있다. 앞으로 지방소멸 담론에 비판하면서도 눈앞에 펼쳐진 지역의 변화를 피부로 느끼며 정말 사라지는 것이 무엇인지 쓰고자 한다. 「청년세대 연구에 지역이라는 교차로 놓기: ‘지방대학생/지방청년’에 관한 학술 담론 분석을 중심으로」(2020)와 「지역과 청년, 그리고 탈-활동: 청년 활동가 정체성의 균열과 문화정치적 재구성」(2022) 등을 썼다.

연구 과정에서 많은 동료를 만나 지역 여성으로서 구체적인 삶을 감각하고 있다. 여성들은 떠나고 남겨진 게 아닌 ‘산다’는 감각을 말하고 싶어 하는 내게, 떠남과 남겨짐에도 복잡한 정동이 얽혀 있음을 가르쳐주었다. 탈지방 담론에서 소외된 여성들의 이야기를 써달라는 요청에 쓴 이 글은 내가 만난 여성들과 어떻게 하면 지역에서 ‘다른 방식으로’ 잘 살 수 있을지를 모색하는 이야기다.

2026/05/20
79호

1
사라 아메드, 『행복의 약속: 불행한 자들을 위한 문화비평』, 성정혜·이경란 옮김, 후마니타스, 2025, 59쪽.
2
같은 책, 249쪽.
3
질리언 로즈, 『페미니즘과 지리학: 지리학적 지식의 한계』, 정현주 옮김, 한길사, 2011, 326-328쪽.
4
‘어차피 이정표대로 가도 거긴 안 나와’는 청주시립미술관에서 이루어진 전시(2025.11.27-2026.2.18)의 제목이다. “전시는 이전 세대가 설정한 경로와 규범이 과연 오늘의 우리를 기대한 목적지로 안내하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에서 출발한다. 삶과 예술이 예측과 계획과는 다르게 전개된다는 경험을 공유해온 젊은 작가들의 작업을 통해 길을 잃는 감각과 스스로를 의심하게 되는 상태를 하나의 동시대적 조건으로 조망한다.” 《월간미술》 493호, 2026, 54쪽.
5
사라 아메드, 같은 책, 29쪽.
6
클레르 마랭, 『제자리에 있다는 것』, 황은주 옮김, 에디투스, 2025, 40쪽.
7
같은 책, 35쪽.
8
신선아, 「부수고 짓고, 무너뜨리고 쌓고, 쓰고 고치고, 말하고 번복하며 배우기」, 《공생공락》 9호, 안동대학교 민속학연구소, 2024. 바로가기
9
클레르 마랭, 같은 책, 49쪽.
10
도린 매시, 『공간을 위하여』, 박경환·이영민·이용균 옮김, 심산, 2016, 33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