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Queening / 그루잠
Queening
명 1 공주의 복화술
그녀 입술에서 나의 목소리가 나옵니다 아니 내가 그녀의 목소리입니다
선인장 같은 성기를 베어문 그녀의 입 안 가득 수억 개의 이름이 터져나왔고
그녀의 목구멍에 내가 걸린 것은 단순한 우연입니다
두 번 다시 그녀는 오럴을 하지 않습니다 피투성이 된 채 가시 박힌 그 입술을 누가 사랑해줄 수 있겠습니까
상징을 잃어버린 입술은 복화술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비밀은 이제 나를 거쳐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나는 관음증을 앓는 인형 그녀의 비밀이 아닌 것까지 하나하나 볼 수 있습니다
더 많은 비밀이 생길수록 내가 사는 집이 커집니다 나의 이름은 절대 녹지 않지요
U 2 스마일 어게인, 데스마스크
매일 태엽 감는 소리가 들려. 잔소리 좀 그만해 거울을 보며 소리쳤어. 뒤통수에 꽂혀 있던 태엽은 이미 끊어진 지 오래전인데 이상하게도 머릿속에는 자꾸 태엽 감기는 소리가 들려. 아빠 죽으면 안 돼 그 자리에 있어줘. 대신 돌아오지 않는 엄마가 죽어버렸으면 좋겠어.
뒤통수를 만지면 탯줄이 떨어져나간 흔적이 있어. 엄마는 나를 양팔이 없게 낳았지. 터질 것 같은 소리의 세계를 막을 양팔이 내겐 없어. 등 뒤에서 가면들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 무참히 깨지는가 하면 어떤 것들은 둔탁하게 떨어지지. 가면 하나가 비명을 질렀어. 엄마의 가면은 아니야. 나는 한 번도 엄마의 가면을 본 적이 없으니까.
세상을 갉아먹으며 도착한 끝. 낮과 밤에게 번갈아가며 겁탈 당하던 매일. 결국 나는 도착한 거야. 이곳에는 아무것도 없어. 그저 나를 비추는 거울 하나. 시끄러워 그만 좀 해 이젠 나가줘 맨질맨질한 나밖에 보이지 않아. 그러고 보니 가면 안의 엄마의 얼굴도 모르겠어. 엄마는 내 등 뒤에만 있었어. 엄마, 엄마는 언제 죽어? 보이지 않아서 사라져주지도 않는 걸까. 원하는 것이 없는데, 태엽 소리는 멀어지는데 또다시 밤이 다가오고 있어. 몇 밤이 지났는지 셀 수 있는 축축한 손가락이 내겐 없는데. 분명 등 뒤에서 엄마의 가면이 떨어지는 소리 혹 깨지는 소리가 날 때 마주한 거울에서 내 얼굴이 나타나겠지. 그렇게 되면 우선 이 터질 듯한 태엽 감기는 소리부터 죽여버리겠어. 그러니 제발 머리가 터질 때까지, 키가 부러질 때까지 태엽을 감아줘
그루잠1)
가능하면 납작하고 부드러운 돌이 좋았다. 형이 물수제비를 연습할 때마다 나는 두 다리를 모으고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냇가에서 돌을 골라 그의 손에 쥐여주고 물이 거부하는 횟수를 기록했다. 우린 형제처럼 붙어다녔지만 실제로 그 말을 들은 적은 몇 없다. 그 말을 한 사람 모두 뒤통수에 큰 돌을 선물 받았기 때문이다. 피에 젖은 돌이 생기면 아끼던 나무 상자에 몰래 넣어두곤 했다. 우리는 서로의 살냄새를 맡는 것이 좋았다. 교복 상의가 물에 떠내려갈 때에도 우리는 웃을 뿐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형의 생일, 조금은 투박한 돌을 선물했다. 돌은 여느 때보다 먼 곳까지 날아갔지만 그 모습을 지켜보느라 기록하는 것을 놓치기도 했다. 돌가루가 잔뜩 묻은 손을 핥자 피에서는 단 향이 났다. 고아도 아닌 우리를 돌보는 건 우리뿐이었다. 귀신 들린 피아노처럼 눈에 일던 경련. 그의 모습이 음악같이 느껴졌다. 그를 형이라 부르지 않게 된 저녁. 폐장된 놀이동산으로 그는 나를 이끌었다. 아무 말 없이 걸었고 칼에 찔린 듯 밤이 찾아왔다. 그에게 내줄 부드러운 가슴이 없다는 것이 슬퍼 혼자 돌아온 기억만 난다.
산에서 이름 모를 여자의 시체가 발견되었단 뉴스를 볼 때마다 자꾸 그가 생각난다. 나는 지금도 무엇이든 기록하는 취미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숫자도 나이를 먹는 듯 자꾸 부드러워지는 내 글씨체. 문득 물 밖으로 튀어나온 아이가 내 이름 대신 아빠라고 소리친다.
이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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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3/27
4호
- 1
- 잠시 깬 후 다시 자는 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