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내건 룽따를 내가 바라볼 수 없는 날이 오겠죠

  카일라스에 다녀왔어요
  마지막일 거 같아요
  젊을 때는 처음이 많죠
  하지만
  이제는 마지막인 것들이 보여요

  죽음은
  바람이
  내 전부를 가지는 거예요

  바람은 자기가 책임질 철쭉을 키우고
  다시 데려가죠
  자신이 규정할 자두나무를 키우고
  다시 꺾기도 해요

  세상은 이해되도록 만들어지지 않았어요
  저기 보세요
  직박구리는 여전히 사느라 애를 쓰고
  망고 열매는 고요 그 이상으로 침묵해요

  내 과거와
  히말라야의 과거는
  바람 속에 있어요

  잘 죽은 자들만이 돌아와 펄럭이겠죠

  늦가을 구게1)
  그대는
  달이 뜨면 나타난다는
  영생의 땅으로 갔는가



  *티베트에서 높은 곳에 걸어놓는 기도 깃발. ‘바람(風)의 말(馬)’이라는 뜻이다.

허연

1991년 《현대시세계》로 등단했다. 시집 『불온한 검은 피』 『나쁜 소년이 서 있다』 『내가 원하는 천사』 『오십 미터』 『당신은 언제 노래가 되지』를 냈다. 현대문학상, 정지용문학상, 한국출판학술상 등을 받았다.

철학자 박이문은 한국 사회에서는 드문 유형의 지식인이었다. 그는 우리가 입만 열면 ‘세계화’라는 말을 떠들기 훨씬 이전에 이미 세계화된 인물이었고, 진정한 의미의 허무주의자였으며, 파벌을 가진 적 없는 단독자였으며, 한눈팔지 않고 연구와 창작에만 매달린 예술지상주의자였다. 그는 허무주의자이면서 왜 이렇게 성실하게 살았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하곤 했다.
"허무주의자가 더 열심히 살게 되어 있어. 궁극적인 의미나 목표가 무의미하기 때문에 매 상황에 최선을 다하는 거야. 절대적 해답은 어차피 없으니까. 부질없이 ‘숲’을 논하기보다 ‘풀’ 한 포기 한 포기에 집중하는 거지."

2025/08/20
7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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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세기부터 16세기까지 서티베트에서 번성했던 왕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