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아시아프로듀서플랫폼을 알게 된 것은 2014년 겨울, 한국의 한 포럼에서였다.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의 프로듀서들이 모여서 ‘프로듀서는 어떤 일을 하는가’에 대해 논의하며 서로 공통의 관심사를 찾고 함께 나누고 싶었던 고민과 생각들을 풀어놓는 자리였다. 여전히 생생하게 기억에 남는 대화 중 하나는 예술/예술가들의 작업에 프로듀서가 미치는 영향에 대한 토론으로, 프로듀서를 단순히 예술과 관객을 연결하는 유통자의 역할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예술이 가지고 있는 맥락들을 다양한 주체들과 연결하고, 창조적인 설계를 통해 이를 구현하는 창작자의 역할로 바라보는 점이 흥미로웠다. 토론에서는 매개자로서의 프로듀서, 창작자로서의 프로듀서, 프로듀싱의 전문화 등에 관한 이야기가 다층적으로 다루어졌다. 내가 하고 있는 일이 프로듀싱, 프로듀서의 일이라는 감각을 처음으로 느끼고 마치 새로운 발견을 한 것 같은 마음이 들기도 했다. 그로부터 몇 년 뒤인 2018년, 인도네시아에서 열린 아시아프로듀서플랫폼 캠프에 직접 참여하게 되었다.

아시아프로듀서플랫폼(Asian Producers’ Platform, APP)은 아시아-태평양의 공연예술 프로듀서들이 상호 교류하고 협력하는 동료 기반 네트워크이다. 2014년 서울에서 시작된 이래로 매년 아시아프로듀서플랫폼 캠프(Asian Producers’ Platform Camp, APP Camp)를 개최하여 참여 프로듀서들이 서로 만나고, 아시아에서 새로운 동료를 발견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왔다. 이 네트워크가 시작되던 시기는 국제교류가 활발해지고, 유럽이나 북미를 중심으로 한 공연예술계의 교류에 제법 익숙해져 있었지만 도리어 더 가까운 아시아의 동료들과 연결되는 일은 많지 않았던 때였다. 아시아에 대한 서로의 이해를 높이고, 함께 할 수 있는 일들의 폭을 넓히는 것이 처음 아시아프로듀서플랫폼이 만들어지던 시기의 큰 밑그림이었고, 국제교류를 하며 오랫동안 서로를 알고 지내던 아시아의 프로듀서들이 그 주축이었다.
  처음 4년 동안은 한국과 일본, 대만, 호주의 공공기관과 협력하여 재원을 확보한 뒤 매년 다른 도시에서 캠프를 개최했다. 한국에서는 독립 프로듀서 박지선과 최석규가 중심이 되었고, 첫 4년간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재정 후원의 파트너로 참여했다. 초반기의 캠프는 서울(2014), 대만 타이베이/이란(2015), 일본 도쿄/시즈오카(2016), 호주 멜버른(2017)을 거쳐 진행되었고, 이 시기의 참여자들은 기본적으로 캠프에 일회적으로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매년 지속적으로 참여하며 교류하고 관계를 쌓아가는 것을 목적으로 했다.
  아시아프로듀서플랫폼 캠프는 열흘 남짓의 기간 동안 아시아 여러 국가와 도시의 프로듀서들이 한곳에 머무르며 진행된다. 아시아와 각 국가, 도시의 지역 예술 현장에 대한 이해를 돕는 것과 동시에 프로듀서 간의 네트워크를 강화하며 프로듀서/프로듀싱을 창의적인 역할의 하나로 이해할 수 있게 한다. 참여자들은 다른 프로듀서들과 교류하며 서로에게 배우고, 해당 지역과 권역의 맥락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현장 연구를 진행하고, 예술과 더불어 관련된 여러 주제를 다루는 이야기들을 나눈다. 캠프의 구성은 단순한 네트워킹이나 일방적 발표와는 다르다. 참가자들은 주제와 관심사에 따라 그룹으로 나뉘어 지역 리서치를 수행하고, 로컬 예술가 및 프로듀서들을 만나거나 주제에 따라 공동 워크숍을 개최한다. 이는 캠프가 단지 학습과 정보 교환의 차원을 넘어서서 새로운 지식을 공동 생산하는 것으로 이어지게 한다. 그리고 이렇게 쌓아나간 지식은 각자의 현장으로 돌아가 저마다의 방식으로 변주되고 확장된다. 많은 동료가 아시아프로듀서플랫폼에서 만났던 이들과 연구, 개발, 창작 혹은 아이디어 교환을 이어나가고 있으며, 종종 어떤 이들에게는 기존의 로컬 생태계에서 벗어나 프로듀서로서의 새로운 방법론을 시도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정착하지 않음, 공동생활, 우정

캠프는 매년 특정 도시에서 열리지만, 고정된 공간이나 성과 지향의 구조를 갖고 있지는 않다. 대신 캠프는 어디에도 고정되어 있지 않은 유동성, 깊이 있는 만남과 연결을 지향한다. 이러한 포맷은 ‘페스티벌’이나 ‘아트마켓’과는 다른 것이다. 이동성, 개방성, 현장성, 그리고 느슨하지만 지속적인 연결이 그 핵심이다. 지역성과 관계 맺기의 깊이를 높이는 구조가 아시아프로듀서플랫폼이 해왔던 실험이라고 할 수 있다. 어쩌면 이 캠프를 프로듀서들을 위한 레지던시라고도 설명할 수 있겠지만 일반적인 레지던시와 아시아프로듀서플랫폼 캠프의 차이점은 이곳에서는 참가자들이 작지만 밀도 있는 공동체를 일시적으로 형성한다는 점, 그리고 궁극적으로 친구가 되는 것1)을 주된 목적으로 한다는 점이다. 이는 작품 창작이나 유통, 재원 조성 같은 명확한 성과를 목표로 하기보다 프로듀서로서의 나와 우리에 대해 오롯이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다.

긴 나무 테이블에 아시아프로듀서플랫폼에 참여한 이들이 앉아 있다. 참여자 중 일부는 각자의 자리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고, 또 다른 일부는 사진에 보이지 않는 이를 바라보고 있다. 사진에는 총 여덟 명의 참여자들이 보인다.
아시아프로듀서플랫폼 캠프에서 진행된 리서치 프로그램 중, ‘여유/공간을 가지기’ 워크숍이 진행중이다.

아시아프로듀서플랫폼은 동료 간 상호 작용을 중심으로 한 네트워크다. 종종 캠프에 참여하고 싶어서 문의하는 이들 중에는 이 프로그램이 정말 시간과 비용을 들여 참여할 만큼의 델리게이트2)들로 구성되어 있는지 궁금해하며 ‘어떤 기관이나 축제 등에서 참여하는지’를 묻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때 참여자들의 프로필을 언급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은 얼마나 유명한 기관과 단체에서 참여하는지보다는 어떠한 관심사와 동력을 지닌 프로듀서들이 참여하는지를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답을 하게 된다. 캠프의 참가자 모집을 할 때도 ‘소속을 묻는 문항’ 보다 ‘프로듀서로서의 개인의 목표와 질문에 대한 문항’이 더 중요하게 다루어진다. 여기서는 기관이나 조직에 속해 있건 그렇지 않건 참여자 개개인을 독립적인 주체로 바라본다. 실제로 ‘너는 어떤 축제/극장/조직에서 왔니’를 별로 묻지도 않고도 오랜 시간 서로의 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으며, 자연스럽게 캠프에서는 예술 생태계 안에 필연적으로 존재해왔던 위계가 사라지고 서로 존중하는 ‘동료 간 배움’(Peer-to-peer)이 일어난다. 캠프의 많은 참여자가 독립 프로듀서인 것도 어쩌면 이러한 문화가 있기 때문이겠다. (이곳에서만큼은 명함을 주고받으며 그럴듯한 문장으로 나의 소속 단체를 소개하지 않아도 되어서 마음이 편하다.)


이동성, 공유된 자원

처음 4년간 캠프가 공공과 협력하여 재원을 확보해두고 시작했던 것과는 달리 2018년부터는 전략과 구조를 바꾸어, 본격적으로 동남아시아의 도시들을 포함하여 네트워크의 물리적인 거점을 다양하게 확장하기를 시도했다. 재원 조성의 모델 역시 달라져야 했다. 자연스레 참가자들이 각자 마련한 지원금들과 국가별 여건에 따라 보다 다양한 파트너들과 협업하게 되었다. 새로운 그룹의 참가자들을 더 적극적으로 모집하며 참가자의 구성이 확대된 것도 이 시기부터 본격화되었다. 말하자면 아시아프로듀서플랫폼 캠프의 2기가 시작된 셈이었다.
  2018년 인도네시아에서의 캠프에 이어 2023년에는 태국, 2024년에는 말레이시아에서 캠프가 개최되었는데, 물리적인 거점이 다양해진 것3)은 더 다양한 권역의 프로듀서들이 캠프에 참여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했다. 개최지와 가까운 이웃 국가/도시의 프로듀서들이 좀 더 용이하게 이동할 수 있게 되자 필리핀, 베트남, 캄보디아, 인도 등 새로운 국가에서 처음으로 참여하는 이들이 이전보다 많아졌다.
  이 시기부터 캠프 참가 비용을 국가별 물가 수준에 맞추어 조정할 수 있게끔 한다거나, 공공 기금을 여유 있게 마련할 수 있었던 국가의 참가자들이 일부 비용을 추가하여 분담하는 등 다각도의 방식으로 ‘공동의 재원’을 조성하는 것이 전보다 더 활발해졌다. 이를 통해 아시아프로듀서플랫폼에서의 ‘이동, 이동할 수 있는 힘’은 개인의 자유가 아니라 공동의 책임이 됐다. 다양한 국가의 참여자들이 함께 할 수 있도록 접근성, 개방성을 고민하며 자원을 재분배하고 공유하는 것으로부터 ‘이동성’(mobility)이 ‘공유된 자원’(commons)이 되는 것을 지향한 셈이다.
  아시아프로듀서플랫폼 캠프의 참여자 선정은 오픈콜 형식으로 진행된다. 참여자들이 단기적으로 캠프를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캠프에 참여할 수 있도록 장려하는 것과 동시에 한 국가에서 너무 많은 인원이 참여하지 않게 인원을 안배하는 것을 함께 고려하며 매년 참가자를 결정한다.4) 다양한 경험치가 있는 이들이 서로를 만날 수 있는 세대 간 연결 역시 최근의 화두였고, 무엇보다도 스스로를 어떠한 프로듀서로 정의하고자 하는지, 그리고 아시아의 동료들로부터 무엇을 배우고자 하며 어떤 것을 연구하고 싶은지에 대한 내용도 빼놓을 수 없는 요소가 된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소속 기관이나 단체를 대표하는 것보다는 프로듀서 개인을 살피기에 주어지는 장점이다.
  앞서 언급한 ‘동료 간 학습 커뮤니티’(Peer-to-peer learning community)의 개념을 조금 더 자세히 풀어내면 아시아프로듀서플랫폼의 특징을 보다 잘 이해할 수 있다. 동료 간의 학습 구조, 동료 간의 네트워크, 수평적 관계 기반의 위계 없는 상호작용, 협력적 상호작용, 상호성에 기반한 지식 생산 구조 등이 이를 설명하는 말이겠다. 누구도 가르치려 하지 않지만 자기 경험을 내어놓고 서로에게 지식, 정보, 자원을 공유하며 자기 경험을 내어놓는 방식의 배움과 성장이 이루어진다.

아시아프로듀서플랫폼에 참여한 이들이 바닥에 앉아서 한 사람의 발표를 듣고 있다. 바닥에는 매트가 깔려 있으며, 참여자들은 편안한 자세로 앉아 있다. 발표자의 뒤쪽에는 무지개와 소년을 그린 그림이 그려져 있다.
아시아프로듀서플랫폼 캠프에서 진행된 ‘프로듀서의 선택’ 프로그램에서 참여자들이 각자의 생각과 아이디어를 공유하고 있다.


기여, 돌봄, 호기심

캠프를 비롯한 아시아프로듀서플랫폼의 프로그램들은 플래닝팀(Planning Team)이 중심이 되어 구상하고 운영해나간다. 플래닝팀은 이전에 캠프에 참여했던 이들 중 일부가 자원하여 활동하고 있는데, 캠프의 실질적인 구현에 필요한 인력 고용을 제외하고는 전원이 별도의 사례비 없이 자발적으로 기획과 운영에 참여한다. 총 11명의 플래닝팀 구성원5)들은 정기적으로 회의를 하며 장기적인 플랫폼의 전략을 수립하고, 각 국가의 참여자들과 소통하고 캠프와 캠프 이외의 리서치와 모임 등을 기획하며, 재원 조성과 커뮤니케이션의 일들을 나누어 맡는다. 자발적인 참여를 바탕으로 기획하고 활동하는 독립 구조체로 10여 년을 이어온 네트워크는 기존의 제도와 구조에서 벗어난 전복적인 시도이다. 어쩌면 이는 ‘기여’의 힘이 있었기 때문일 텐데 이러한 독립적인 구조는 정책이나 재원의 흐름에서 벗어나 하고자 하는 바를 지속해나가기 용이하다는 점에서 관료적인 측면이 있는 공공의 구조보다 도리어 더 오랫동안 지속되고, 사회와 환경의 변화에 더 빠르게, 더 유동적으로 대응하며 성장해나간다. 다만 한편으로는 정기적인 재원이 확보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은 여전히 과제로 남아 있다. 보다 안정적인 운영을 위해서 어떠한 방식의 효율을 찾을 수 있을지 고민하게 한다.
  아시아프로듀서플랫폼을 두 단어로 요약하자면 ‘돌봄’과 ‘호기심’을 꼽을 수 있다. 돌봄은 단순한 배려나 보살핌을 넘어 나와 우리, 그리고 아시아의 동료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감각하며 함께 살아갈 힘을 얻게 하는 동력이 된다. 서로를 돌보는 일은 그렇게 아시아프로듀서플랫폼이 가장 잘 해내는 일이 된다. 이곳에서 만난 이들은 우정을 쌓고, 서로의 영감이 되고, 서로에게 보내는 격려가 된다. 호기심은 우리를 끊임없이 성장하게 한다. 질문하는 힘을 바탕으로 새로운 것들을 배워나가는 일이 무엇보다도 중요함을 새삼 떠올린다. 끝없는 호기심과 배우려는 의지들이 가득한 이곳은 무언가를 시도해보고 싶게 만드는 영감으로 가득했다. 겉으로는 비생산적으로 보일 수 있는 이 시간들이, 실은 가장 깊은 생산의 토대가 된다.


아시아, 아시아에서 배운 것들

개인적으로 아시아프로듀서플랫폼에 참여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배움과 성장에 대한 욕구였다. 계속 활발하게 활동하는 프로듀서이고 싶어서, 새로운 것들을 배우고 연구하고 싶어서, 흥미로운 일들을 발견하며 자극을 받고 생생하게 살아있고 싶어서였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난 지금은 이유가 하나 더 추가되었다. 아시아의 친구들을 계속 만나고 싶고,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을 통해서 이 일을 지속할 수 있는 힘을 얻고 싶어서이다.
  서울, 타이베이, 이란, 도쿄, 요코하마, 멜버른, 족자카르타, 자카르타, 홍콩, 마카오, 광저우, 방콕, 페낭, 쿠알라룸푸르까지, 우리는 이 도시들에서 예술과 예술하는 이들, 이웃들을 만났고, 사회 전반의 제도를 관찰했고, 함께 도시 곳곳을 걸었으며, 여러 생각을 마주하고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다.
  도시마다의 뉘앙스는 달랐지만, 배운 것들은 모두 연결되어 있었다. 예술계 공공과 민간 사이의 균형과 협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고, 자생적으로 예술을 창작하고 협업하는 커뮤니티들을 만났다. 프로듀서의 역할과 창조성에 대해 다양하게 탐구하고 토론했으며, 도시와 지역에서 두드러진 예술적 경향과 주제에 대해 배웠다. 도시의 빠른 성장과 재개발, 젠트리피케이션의 이슈를 보며 동시대 여러 사회상을 연결하고 교차해서 바라볼 수 있었다. 예술 공간과 예술가 콜렉티브들을 만났고, 같고도 다른 생태계의 구조와 전략을 보고 배웠다. 정치적인 검열과 이에 저항했던 예술계의 동료들을 만났고, 예술계의 기존 구조를 넘어서기 위한 새로운 시도와 영감들을 얻었다. 아시아의 동료들과 함께 만드는 구조를 어떻게 상상할 수 있을지, 제도를 새로이 만들어내고, 기존의 고정관념을 넘어서며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갈 수 있을지를 이야기했다.

테라스 같은 공간에서 아시아프로듀서플랫폼에 참여한 각국의 프로듀서들이 함께 모여 찍은 단체사진. 50여명의 프로듀서들이 사진에 찍혀 있다.
아시아프로듀서플랫폼 캠프 2024 단체 사진

아시아라는 개념을 정의하고 경계를 긋기보다는, 아시아의 개념을 다양하게 이해하고, 아시아 권역에서 서로 연결되고 배울 수 있는 관계를 바라보는 일이 아시아프로듀서플랫폼이 하고자 하는 바였다. 어쩌면 서구권을 중심으로 기울어져 있었던 문화예술의 교류에 질문을 던지고 이웃의 동료들과 더 많은 대화의 장을 여는 것부터가 그 시작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시아의 다양한 국가와 도시에서 활동하고 있는 이들이 서로를 인지하고 각자 자리로부터 다시금 활동을 확장해나갈 수 있는 용기를 찾고자 했다. 아시아는 고정된 정체성이 아니라 계속 움직이고 살아 있는 질문으로 우리 곁에 남아 있다.


글을 마치며

제법 국제적인 규모의 공연예술축제에서 오래 일해왔지만 사실 내가 일했던 축제에서 아시아의 예술가를 만날 수 있는 기회는 적었다. 우리는 ‘국제’라고 이야기했지만 무대 위에서 보게 되는 이들은 대부분 북미 혹은 유럽 권역의 예술가들이었다. 아시아 공연은 티켓이 잘 팔리지 않는다는 소리를 듣기도 했다. 몇 년 전 예술계 탈식민화를 이야기하는 포럼에 참석했는데 이 자리에서 실제로 식민 지배를 당해야 했던 이들의 생각과 이야기를 듣기는 어려웠다. 가까운 아시아 이웃나라의 예술계 소식보다 먼 서구 권역의 예술계 소식이 더 빠르게 잘 전달된다. 정보와 이동성이 자본을 넘어서 공유된 자원이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한 것은 이런 사실들을 발견하기 시작하면서부터다. 어쩌면 우리가 이러한 불균형의 틈을 조금 메워볼 수 있을까? 아시아프로듀서플랫폼에 참여하면서부터 생각하고 실천하기 시작한 것들은 거창하지는 않다. 몇 년 전 싱가포르, 태국, 말레이시아의 동료들과 아시아의 신진 프로듀서들을 위한 국제교류 워크숍과 레지던시를 운영했고, 최근에는 처음으로 한국의 축제에서 필리핀, 한국, 말레이시아의 연극계 동료들과 공동창작 공연을 무대에 올렸다. 이전에는 만나지 못했던 동료들을 만나고 있고, 이전에 보지 않던 것들을 보게 하기 위해 관객들을 초대하고 있다. 관점을 확장하는 것, 실천으로 옮기는 것, 아시아가 무엇인지 말하는 것보다 아시아 안에서 여러 연결을 만들어내는 것이 내게 남은 즐거운 과제이다.


관련 링크 바로가기
아시아프로듀서플랫폼 Asian Producers’ Platform (APP) 홈페이지 click
아시아 프로듀서 플랫폼 인스타그램 click


임현진

거리예술, 공연예술 분야에서 활동하는 프로듀서이다. 경영학과 예술경영을 공부했고, 축제에서 국제교류 업무를 맡으며 예술계에서 본격적으로 일하기 시작했다. 현재는 국내외 예술가들과 협업하며 창작, 제작, 연구, 유통의 일을 하고 있다. 도시와 사회, 공공의 장소와 공동체에 관심을 두고 예술 프로젝트를 기획하며 공공공간예술의 연구와 발전에 기여하고자 한다. 예술가들의 연구와 실험을 위한 자리를 마련하는 일이 즐겁고, 프로듀서의 성장을 돕는 워크숍과 교육 프로그램을 설계하는 것을 좋아한다. 최근에는 신진 예술가와 기획자들의 성장에 관심을 두고 있으며 독립 프로듀서들의 콜렉티브인 '프로젝트 다리'를 설립하여 4명의 여성 프로듀서 동료들이 함께 성장하고 있다. @myunzee @project.dari

아시아프로듀서플랫폼은 ‘국경과 경계, 힘과 영향력’이 아닌, ‘예술, 연대, 교류와 협력’을 이야기한다. 지금의 정책이 이야기하는 생산 중심의 K-콘텐츠와는 제법 거리가 먼 일들이다. 아시아프로듀서플랫폼이 나와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글로 적어 내려가려 했는데, 어쩌면 독자가 기대하는 만큼의 이야기를 풀어내지는 못한 것 같다. 신뢰와 우정 같은 것들이 시장의 논리로는 잘 설명이 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고, 긴 호흡의 일들이 대부분이다 보니 무엇이 어떤 연관을 가지고 일어났는지 파악하는 것이 어렵기도 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전에는 미처 보지 못했던 세상을 보는 눈이 생겼다는 것, 그리고 이런저런 생각과 고민을 나눌 수 있는 동료가 있다는 것, 함께 해보고 싶은 일들이 많아졌고 조금은 더 프로듀서라는 일을 이어 나갈 힘이 생겼다는 것이다.

2025/08/20
74호

1
예술계에서 우정은 어떤 역할을 할까 되짚어 본다. 국제적인 규모의 축제, 마켓 등이 어떠한 종류의 크고 작은 성과를 목표로 두고 설계된다면 국제 네트워크들은 이와는 조금 다르다. 구체적인 장르 혹은 예술계, 특정 권역 전반의 동반 성장과 함께 다루어야 하는 이야기들을 깊이 있게 만들고, 참여자들이 서로를 이해하며 긴 호흡의 동료가 될 수 있게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2
아트마켓 등 국제행사에 참가 등록한 전문가 및 종사자들을 주로 ‘델리게이트’(Delegate)라고 통칭한다. 이를 직역하지 않고 우리말로 사용한다면 ‘등록 전문가’로 이해할 수 있겠다. 일반적으로 델리게이트는 축제나 극장 등 작품을 초청하는 일을 맡는 ‘구매자’(바이어 Buyer)와 예술가, 예술단체나 에이전시 등 작품을 홍보하고 판매하고자 하는 ‘판매자’(셀러 Seller)로 구분되곤 하는데, 많은 경우 전문가 개인보다는 조직이나 단체의 이름이 더 중요한 정보로 다루어진다.
3
연도별 아시아프로듀서플랫폼 개최지는 다음과 같다. 서울(한국, 2014), 타이베이/이란(대만, 2015), 도쿄/시즈오카(일본, 2016), 멜버른(호주, 2017), 족자카르타/자카르타(인도네시아, 2018), 홍콩/마카오/광저우(그레이터 베이 지역, 2019), 리서치 레지던시 프로그램(온라인, 2021-22), 방콕/치앙마이(태국, 2023), 쿠알라룸푸르/페낭(말레이시아, 2024), 대만 남부/오키나와(대만/일본, 2025 예정).
4
참여한 이들이 어떤 국가, 도시를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는지를 살펴볼 수 있는 구글 지도를 참고해볼 수 있겠다. Asian Producers Platform 2014-24 구글 지도. 바로가기 국가를 대표하는 이들로 참여자를 규정하기보다는 어떤 도시와 거점을 두고 작업하고 있는지를 살피고자 했다. 여전히 아시아프로듀서플랫폼은 아시아 전체를 대표할 수는 없다. 최근에는 인도의 참여자가 캠프에 합류하며 남아시아의 공연예술계와 더욱 연결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고 있다는 점이 반갑게 느껴진다. 다만 여전히 ‘아시아는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확정적으로 단언하지는 않으려고 도리어 노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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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프로듀서플랫폼 플래닝팀 구성원.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