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학년 2학기가 시작되었다. 낮에는 여름 같고 밤에는 가을 같은 날이 이어졌다.
  도우리가 고개를 돌리는 선풍기를 따라 왼쪽으로 갔다 오른쪽으로 갔다 했다.
  도우리는 엄마와 함께 흰 칠이 벗겨진 2층짜리 다세대 주택에 살았다. 앞에는 길고양이들이 화장실로 쓰는 오래된 놀이터가 보이고 커다란 은행나무와 벤치도 있었다.
  도우리는 태블릿 앞에 앉아 만화를 보고 있었다. 엄마는 집에 있었지만 일 때문에 바빴다. 재봉틀을 돌리느라 집 안 가득 탈탈탈 소리가 났다. 오래된 선풍기는 왼쪽으로 고개를 돌릴 때마다 털털털 소리를 냈다. 창밖에 매미는 맴맴맴거렸다.
  탈탈탈 털털털 맴맴맴 소리 때문에 도우리는 태블릿 볼륨을 높였다. 그때 마침 만화가 끊기고 광고가 시작되었다.
  “유니세프 팀에 들어오세요. 당신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이 말이 나오기 전까지 도우리는 팔찌 광고인 줄 알았다. 유명한 배우, 가수, 운동선수가 반짝거리는 팔찌를 차고 자랑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팔찌는 유니세프 팀에 들어가면 주는 것 같았다.
  도우리가 큰 소리로 방에 있는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유니세프가 뭐예요?”
  “유니세프?”
  엄마가 재봉틀을 멈추지 않고 돌리며 되물었다. 한참 동안 답이 없다가 엄마 목소리가 들렸다.
  “아이들 도와주는, 그런 거 있어.”
  “아……”
  도우리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주민센터에서는 도우리에게 급식 카드도 주고 태블릿도 주고 일주일에 두 번 도시락도 배달해주었다. 공부방에서는 대학교 형아 누나들이 공부를 가르쳐주었다. 이제껏 도움만 받고 살았는데 드디어 도우리라는 이름에 맞는 무언가를 찾은 것 같았다. 마침내 자기도 도울 때가 됐다고 생각하며 도우리는 엄마가 일하고 있는 방으로 갔다.
  “저도 유니세프 팀에 들어가고 싶어요.”
  엄마가 코웃음을 쳤다.
  “하이고, 내 코가 석자인데 누구를 도우려고? 유니세프 보고 우리 좀 도와달라고 해라!”
  도우리가 삐죽거렸다.
  “나도 돕고 싶은데요.”
  엄마는 도우리 얼굴을 살피다 재봉틀을 멈추고 타일렀다.
  “아들, 밥 잘 먹고 숙제 잘하는 게 이 엄마 돕는 거야.”
  도우리는 힘없이 돌아서 방을 나왔다. 밥 잘 먹고 숙제 잘하는 건 맨날맨날 하는 거다. 그런 시시한 거 말고 뭔가 대단한 일을 하고 싶었다. 도우리에게 대단한 일이란 누군가를 돕는 일이었다. 도우리는 자기를 도와주는 모든 사람이 대단해 보였다. 벌써 2학년 가을이고 조금 있으면 겨울이 온다. 겨울이 지나면 3학년이 되고 새로운 1학년 동생들이 또 들어온다. 그 말은 도우리가 지금보다 더 형이 된다는 소리다. 그런데 언제까지나 도움만 받으며 살고 싶지 않았다. 누군가를 도와주고 싶었다.
  도우리는 잠시 고민을 하다가 공책 한 장을 찢어서 커다랗게 글씨를 썼다.
  도우리가 도우리
  그리고 그 종이를 가슴에 붙였다. 사람을 돕기 위해 꼭 유니세프 팀에 들어갈 필요는 없다.
  “잠깐 나갔다 올게요!”
  도우리는 엄마에게 인사를 하고 밖으로 뛰어나갔다. 이제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찾을 차례다.
  마침 1층에 사시는 할머니가 유모차 가득 짐을 싣고 경사진 곳을 오르고 계셨다. 집에 오려면 올라야 하는 비탈길이었다. 도우리는 신이 나서 할머니에게 달려갔다.
  “할머니 안녕하세요? 제가 도와드릴까요?”
  “오, 호호호. 우리 우리구나!”
  할머니가 도우리를 보고 우리 우리, 우리 우리 하면서 반가워하셨다.
  “그럼 이 할미 좀 도와줄래?”
  도우리가 할머니 대신 유모차를 밀려고 하자 할머니가 고개를 저었다.
  “너무 무거워서 우리 혼자 못 밀어요. 할미가 뒤에서 밀게, 우리가 앞에서 당겨줘.”
  도우리와 할머니는 힘을 합쳐 유모차를 집까지 끌고 갔다. 도우리는 뿌듯했다.
  “아이고 고마워! 우리 우리, 착하기도 하지.”
  할머니는 유모차에 실린 장바구니에 손을 집어넣고 뒤적거렸다. 그러곤 뭔가를 한 움큼 꺼내더니 도우리에게 건넸다.
  “엄마랑 나눠 먹어.”
  할머니가 준 것은 콩 세 알이었다. 몸도 쪼끄맣고 손도 쪼끄매서 할머니의 한 움큼은 딱 그만큼이었다. 콩 세 알이라니. 뿌듯한 마음이 콩 세 알만큼 작아지는 것 같았다. 콩 세 알을 엄마랑 둘이서 어떻게 나눠 먹을지도 고민되었다. 별로 받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할머니가, “어른이 주면 ‘감사합니다’ 하고 받는 거야.” 하고 말하는 바람에 “감사합니다” 하고 받았다. 그래도 할머니와 함께 유모차를 끄는 일은 재미있었다.
  도우리는 또 누구 도와줄 사람 없나, 하고 두리번거렸다. 햇살 때문에 얼굴이 잔뜩 찌푸려졌다. 이 동네는 사람이 통 보이지 않았다. 다들 아파트가 들어선 단지로 이사를 갔다.
  도우리는 터덜터덜 걸어 은행나무 아래 벤치에 앉았다. 따가운 햇살을 피할 그늘이 필요했다. 그늘 아래는 선선했다. 도우리는 벤치를 툭툭 치며 은행나무를 올려다봤다. 생각해보니 벤치도 은행나무도 도우리를 돕고 있었다. 벤치는 편히 앉을 수 있는 자리를 내주었고 은행나무는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주었다.
  “고마워, 벤치야 나무야.”
  그러다 문뜩 유니세프 팀이 떠올랐다.
  “도우리 팀에 들어올래?”
  그러곤 집으로 달려가 재봉틀 방에 떨어져 있는 자투리 천을 주워 모았다.
  “엄마, 저 이거 가져도 되죠?”
  엄마는 쉬지 않고 재봉틀을 돌리며 도우리를 힐끗 봤다.
  “으응, 근데 그건 가져다 뭐 하려고?”
  “팔찌 만들려고요.”
  도우리는 조그마한 손을 꼬물거리며 팔찌를 만들었다. 꼬리에 꼬리를 물며 연결된 자투리 천 팔찌! 앞으로 점점 커질 도우리 팀을 생각하며 팔찌를 여러 개 준비했다. 그리고 다시 밖으로 뛰어나가 벤치와 은행나무에 팔찌를 채워 주었다. 유니세프 팀의 팔찌가 반짝여서 멋있었다면 도우리 팀의 팔찌는 알록달록해서 예뻤다.
  “이건 도우리 팀이라는 표시야. 앞으로 잘해보자.”
  도우리가 은행나무와 인사를 하다 나무줄기에 붙은 굼벵이를 발견했다. 굼벵이는 탈피를 못 하고 허물을 몸에 낀 채 낑낑대고 있었다. 이러다 허물도 못 벗고 죽는 거 아닐까. 도우리는 걱정되었다. 도와주고 싶은데 허물을 억지로 벗겼다가는 굼벵이가 다칠 것 같았다.
  불현듯 유치원 때 배웠던 심폐소생술이 생각났다. 심폐소생술은 죽어가는 사람을 살릴 수 있는 방법이라고 했다. 그런데 굼벵이는 어디가 입이고 어디가 가슴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대충 굼벵이 몸 전체에다 입김을 불어줬다. 얼마나 불었을까, 머리가 어질어질할 즈음 꼬리까지 완전히 빠져나왔다. 굼벵이였던 매미는 눈에 초점이 없었다. 허물을 벗느라 너무 힘을 쓴 것 같았다. 도우리는 걱정스러운 눈으로 매미를 지켜봤다. 한참 뒤 정신을 차린 매미가 도우리를 보고 앞발을 휘저었다.
  “살았다! 내가 매미를 살렸어!”
  도우리가 기뻐하는데 매미가 계속 앞발을 휘저어댔다. 자기 말 좀 들어보라고 하는 것 같았다.
  “왜? 뭐가 필요해?”
  도우리가 묻자 매미는 자기 허물을 툭툭 건드렸다.
  “이거 가지라고?”
  매미는 그렇다는 듯 날개를 떨며 씨이이이 씨이이이이이 거렸다.
  굼벵이 허물이라니. 생명을 살렸다는 뿌듯한 마음이 굼벵이 허물처럼 허물이 된 것 같았다. 별로 받고 싶지 않았는데 순간 할머니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어른이 주면 ‘감사합니다’ 하고 받는 거야.”
  굼벵이가 자라서 매미가 되는 거니까 매미는 어른이다. 도우리는 “감사합니다”하면서 굼벵이 허물을 챙겼다. 그래도 굼벵이를 살린 일은 어지러울 정도로 신났었다.
  도우리는 또 누구 도와줄 사람 없나 두리번거렸다. 아니아니, 꼭 사람이 아니어도 상관없었다. 도움이 필요하면 그 무엇이든 상관없었다. 이리 기웃 저리 기웃하다가 바닥을 기어가는 지렁이를 발견했다. 지렁이는 비탈길을 가로질러 이쪽 놀이터에서 저쪽 텃밭으로 가고 있었다. 1층 할머니가 가꾸는 한 뼘짜리 텃밭이었다.
  지렁이가 몸을 구부렸다가 펼 때마다 비탈길 아래로 돌돌 굴러 내려갔다. 아, 몸통이 동그래서 슬픈 지렁이여! 텃밭을 향해 가고 싶은데 자꾸만 아래로 떨어지니 얼마나 속상할까. 뜨거운 태양 때문에 지렁이 몸이 말라가고 있었다. 그 냄새를 맡고 개미들까지 몰려왔다. 그대로 뒀다가는 개미 떼에게 잡아먹힐 것 같았다.
  도우리는 서둘러 지렁이를 텃밭으로 옮겨주었다. 하지만 개미 떼는 지렁이를 놔주지 않고 끈질기게 들러붙었다. 지렁이는 고통스러운 듯 몸을 비틀어댔다.
  도우리는 고민에 빠졌다. 개미도 먹고 살겠다고 그러는 건데 먹을 것을 빼앗을 수는 없었다. 그러다 문뜩 굼벵이였던 매미가 준 허물이 떠올랐다. 도우리는 주머니에서 그 허물을 꺼내 우글거리는 개미 떼 가까이 대주었다. 그러자 개미들이 지렁이를 놔주고 허물에 들러붙었다.
  “휴.”
  도우리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마터면 지렁이가 죽을 뻔했다.
  도우리는 뿌듯한 기분으로 지렁이를 지켜봤다. 지렁이는 꼬물거리며 젖은 흙속으로 파고 들었다. 그러다 꼬리만 흙 밖으로 내놓고 동글동글한 똥을 싸는 것 아닌가! 지렁이는 똥을 탑처럼 쌓아놓고 꼬리를 휘둘러댔다. 마치 ‘이 똥 너 가져라’ 하며 손짓하는 것 같았다. 지렁이 똥이라니. 지렁이 똥은 필요 없는데. 지렁이를 도운 뿌듯한 마음이 똥이 된 것 같았다. 별로 받고 싶지 않은데 순간 할머니 말이 떠올랐다.
  “어른이 주면 ‘감사합니다’ 하고 받는 거야.”
  지렁이가 큼직한 걸 보니 어른 지렁이 같았다.
  도우리는 “감사합니다” 하면서 지렁이 똥을 챙기려다 그만 똥 탑을 허물어트렸다.
  “앗!”
  도우리는 텃밭에 코를 박고 지렁이 똥을 주우려 했다. 그런데 손이 닿으면 닿을수록 똥이 부스러졌다. 어디까지가 똥이고 어디까지가 흙인지 알 수 없게 되었다.
  “아이참.”
  도우리는 텃밭 앞에 털썩 주저앉았다.
  “어떡하지?”
  지렁이가 준 선물을 챙기지 않고 그냥 가버리면 지렁이가 섭섭해할 것 같았다. 도우리는 한참을 고민하다가 지렁이가 들어간 땅에 입을 가까이 대고 큰 소리로 말했다.
  “지렁이야! 선물 고마운데! 가져갈 수가 없네! 네 선물은! 할머니 텃밭에 두고! 매일매일 보러 올게! 고마워!”
  그러다 문뜩 할머니가 준 콩 세 알이 떠올랐다.
  “선물은 한곳에 모아둬야지.”
  도우리는 지렁이 똥이 섞인 흙에 할머니가 준 콩 세 알을 콕콕콕 박았다. 콩 위에 흙을 솔솔 뿌리며 ‘도우리가 도우리’ 했던 일을 떠올렸다. 할머니를 도와 무거운 유모차를 같이 끌고, 허물을 벗느라 힘들어하는 굼벵이에게 숨길을 불어넣고, 개미 떼에게 잡아먹힐 뻔한 지렁이도 살려줬다.
  도우리는 빙그레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윤성은

2021년 불교신문 신춘문예 동화 부문에 당선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습니다. 그동안 쓴 책으로는 『금순이가 기다립니다』『안녕, 내 사랑!』『너의 작은 친구 이지룡』『하루하루 오하루: 새똥을 세 번 맞은 날』『봄날의 아콩이』가 있습니다.

2025/08/20
74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