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운 쪽으로 향하는 생물이
  숨어들어갈 구석이 없는 밝은 방
  온몸이 시커먼 짐승을 바로 찾을 수 있도록
  흰 벽지가 도배된 방
  도시의 가장 안쪽에 위치한 빈틈 없는 방
  삭막하고 건조하다는 인상을 주지만
  바꿔 말하면 단정하고 정돈된 방

  이 방을 알죠?

  부자유를 상기시키는 동시에
  기이한 안정감을 선사하는 방
  완벽하게 안전하고 완전히 청결한 방

  자신을 훼손할 방법이 단 하나도 없는 방

  날카로운 모서리란 존재하지 않는 방
  완벽한 정렬과 제자리만 존재하는 방
  모든 가구가 벽이나 바닥에 붙어 있어 들어올릴 수 없는
  움직일 수 없는 방 옮길 수 없는 방
  거울은 유리가 아니라 강철로 만들어져 방을 탁하게 비추고 아무리 내려쳐도 조각나지 않기에 살갗을 긁을 수 없는 아늑한 방

  이 방에서 상처를 입는 방식은
  절대로 깨지지 않을 거울로 몇 번이고 날아들어
  온몸을 쾅쾅 부딪치는 것
  팔뚝과 등에 시퍼런 멍이 드는 것

  피는 피부를 뚫고 흐르지 못한다 안쪽으로 안쪽으로만 고인다

  이 방에서 허락된 고통은 영원히 반복될 수 있다
  지속 가능한 자해만이 일어나는 방

  죽음 없는 방

  이 방에 와본 적 있죠?
  퍽 퍽
  둔탁한 소리
  인간 가루가 떨어진다

유선혜

1998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서울대학교에서 철학을 전공했다. 2022년 《현대문학》 시 부문 신인추천을 통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사랑과 멸종을 바꿔 읽어보십시오』가 있으며, 현재 대학원에서 문학을 공부하고 있다.

2025/10/01
75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