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영은 차를 갓길에 붙이고 비상등을 켰다. 조용한 가운데 비상등의 규칙적인 점멸 소리를 듣고 있자니 또 깜빡이 켜졌네 하던 혜진의 말이 떠올랐다.
   혜영은 며칠 전에 신숙의 전화를 받았다. 신숙은 아무리 코로나라도 그렇지 너희는 어째 엄마한테 연락 한번 없느냐, 목요일에 신애와 점심을 먹기로 했으니 너희도 시간 맞춰 나오라고 했다. 혜영은 알았다고 하고 혜진에게 전화했다. 혜진은 싫다고 했다. 그럴 줄 알았으므로 못 들은 양, 너 엄마 본 지 꽤 되지 않았느냐, 지난번에도 엄마하고 나하고 둘이서만 봤으니 이번에는 세 모녀 같이 만나자, 목요일 오전 열 시 반까지 네 집 앞으로 데리러 가겠다고 혜영은 조곤조곤 말했다. 혜진은 말없이 듣고 있었다. 전화를 끊기 전에 아무래도 미리 얘기해야 할 것 같아 그날 신애도 올 거라고 알려주었다.
   이모도 온다고?
   낮에는 사 인까지 가능하니까……
   왜 그런 말을 이제 하느냐고, 이모가 온다면 자기는 더 가고 싶지 않다고 혜진이 말했다. 혜영은 다시 못 들은 양, 엄마 본 지도 한참 되지 않았느냐, 지난번에 엄마하고 나하고 볼 때도 이모가 나왔었다, 우리 세 모녀 만나 점심 먹는 데 이모가 끼는 거라고 생각하라고 차근차근 말했다. 물론 가볍다면 가벼운 점심 약속이었지만 레슨 일이 끊긴 후 일 년 가까이 혜영 말고는 아무도 만나지 않고 사는 혜진으로서는 꺼릴 만도 하다고 혜영은 생각했다.
   끈질긴 온화함, 그게 혜진을 대하는 혜영의 오래된 방법이었다. 목소리를 높이지 않고 말의 속도를 유지하고 표정을 흩뜨리지 않는 게 중요했다. 음성 통화여서 표정까지 신경 쓸 필요는 없었지만 이미 세 가지가 세트로 굳어진 터라 혜진과 통화하는 내내 혜영은 밀랍 인형 같은 표정을 고수했다.
   하지만 가끔 삼 종 세트에도 균열이 발생했다. 혜진이 무턱대고 들이받으려고만 하거나 고집을 부려 대화 시간이 길어지면 혜영은 자기도 모르게 눈을 자주 깜빡거리는 버릇이 있었는데 그럴 때면 혜진은 놓치지 않고 또 깜빡이 켜졌네 했다. 어떻게 그런 말을…… 아무렇지 않게…… 혜영은 가슴속에 서서히 번지는 미지근한 불쾌감을 억눌렀다.

   백미러를 통해 골목에서 나오는 혜진이 보였다. 고개를 숙이고 주머니에 손을 찌르고 무겁게 걸어오는 혜진을 보자 밑도 끝도 없는 연민이 밀려왔다. 가끔 그럴 때가 있었다. 가까이서 보면 대책 없다 싶던 동생이, 화면 속 인물처럼 멀리서 다가오면…… 정처 없다 그런…… 쟤는 왜 가엾게…… 어디 딱 붙은 데가 없이……, 마음도 육신도…… 그런데 육신이란 말은…… 왜 갑자기 욕 같지, 그런 생각을 하는데 혜진이 앞문을 열고 탔다.
   어서 와.
   혜진은 말없이 안전띠를 맸다.
   출발할까?
   이번에도 말이 없었다.
   일어나느라 힘들었지?
   혜진은 들릴 듯 말 듯 으응, 하더니 그런 반응이라도 보인 자신이 혐오스러운지 흠칫 몸을 떨고는 차창 쪽으로 고개를 휙 돌렸다.
   
   혜영은 한동안 앞만 보고 운전했다. 차 안에는 내비게이션의 안내 음성만 울렸다. 요즘 들어 혜진이 급격히 사회성이 떨어진다고 느꼈지만 혜영은 절대 그런 말을 입 밖에 내지 않을 것이다. 자신만이 혜진과 세상을 이어줄 유일한 밧줄인 걸 아니까. 그런데도 쉽사리 마음이 가라앉지 않고 육신…… 육신…… 그 말이 자꾸 입안을 맴돌았고, 니 육신…… 니 육신…… 하면 왜 더 온전한 욕 같은지, 그런 생각만 들었다.
   재택근무를 하게 되면서부터 혜영은 차를 몰 일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 어제 오후에 미리 차에 시동을 켜고 내비게이션을 작동해 삼십 분간 모의주행을 했다. 그리고 혜진은 자기만 늦게 일어나는 줄 알지만 혜영 또한 재택을 하면서 오전에 일어나는 일이 드물었다. 그래서 오늘 못 일어날까봐 사흘 전부터 규칙적으로 수면제를 복용해왔다. 잠드는 데는 약간 효과가 있었지만 깨는 데는 전혀 효과가 없었다. 오늘 아침 여덟 시 반에 일어날 때는 죽고 싶을 만큼 힘이 들었다. 약속이고 뭐고 다 때려치우고 잠이나 푹 자고 싶다는 충동이 솟구쳤으나 혜영은 결국 일어났다. 혜진도 그랬을 것이다. 그래서 지금 함께 신숙을 만나러 가고 있으니…… 그러면 되었다.
   시내로 향하는 도로는 막히지 않고 흐름이 순조로웠다. 너무 일찍 도착하면 혜진이 또 불같이 화를 낼 텐데, 싶어 혜영은 안전을 위해 가급적 천천히 달렸다.

   안국역 주차장에 도착했을 때는 열한 시 반밖에 안 되었다. 약속 시간까지는 무려 삼십 분이나 남아 있었다. 혜영이 주차장에 주차하고 너무 일찍 왔네, 하자 예상과 달리 혜진이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일단 한 대씩 피울까?
   너 가져왔어?
   응. 언니는?
   나도 가져왔지.
   자매는 각자 가방에서 전자담배 홀더를 꺼내 담배를 꽂았다. 혜영은 차량용 공기청정기를 틀고 뒷자리 차창을 조금 열었다. 한 모금 들이마시니 기분이 좋아졌다. 아마 혜진도 일어나자마자 담배 한 모금 피울 여유도 없이 뛰쳐나오느라 오는 내내 그렇게 뾰족했던 건지 모른다. 그러자 이해가 되었다. 두 번째 모금을 빨아들이는데 휴대전화 벨이 울렸고 화면에 ‘엄마’라고 떴다. 혜영이 스피커폰을 켜자 신숙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차 안에 울렸다.
   영아! 니들 왜 안 와?
   네? 아직 삼십 분이나 남았는데…… 벌써 오셨어요?
   벌써 오다 뿐이니? 엄마가 니들 차 들어가는 거 봤는데 니들은 눈 뒀다 뭐하고.
   우릴 봤다고요?
   차 들어간 지가 언젠데 여태 안 나오고 있어? 엄마 지금 주차장 앞에서 기다리고 섰는데.
   지금 막…… 이제 나가려고요.
   아이, 엄마가 속상해서 못 살겠다.
   왜요?
   신애 얘가 이렇게 내 속을 썩인다.
   이모가 왜요?
   말하기 귀찮으니 얼른 나오기나 해. 전화 끊는다.
   통화가 끊기자 혜진이 얼른 한 모금 더 피우고 홀더에서 담배를 뽑았다. 혜영도 얼른 한 모금 더 피우고 뽑았다.
   못 말린다, 우리 엄마. 혜영이 말했다.
   혜진은 입가를 올리며 미소 비슷한 것을 짓고 있었는데 혜영은 그게 절대 미소가 아니라는 걸 알았다.
   엄마 진짜 귀신같지 않냐?
   혜영은 말없이 혜진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진짜 귀신같은 게, 내가 언제 약간 행복해지고 내가 언제 약간 기분 좋아지는지를 딱 노리고 있다가, 딱 재 뿌리는 시점을, 엄마는 귀신같이 알아.
   엄마가 무슨…… 혜영이 말했다. 뭘 그렇게 노리고 뿌리고…… 그럴 만큼 남의 일에 부지런한 분 아니야.
   그러니까 귀신같다는 거지. 의도가 없는데도 딱 그렇게 하니까.
   근데 이모는 오셨다는 건지 뭔지.
   거봐! 이모가 왔다 어쨌다 말이 없잖아? 그냥 이모가 또 자기 속을 썩였대. 세상천지에 전부 자기 속 썩이는 사람들뿐이야. 우리가 삼십 분이나 일찍 와도 소용이 없어. 자기 못 본 게 대역죄야. 엄마는 귀신처럼 내가 약간이라도, 효도까지는 아니야, 효도까지는 절대 아니고 그냥 불효라도 좀 덜 해보려고 하는 순간에 그 기회를 딱 빼앗는다. 운명이란 게 있다면 나한테도 엄마한테도, 아주 평생 이렇게 한없이 불우한 모양일 거라고!
   혜진의 속사포 같은 날 선 말을 듣고 있자니 혜영은 이상하게 불안하면서도 위로가 됐다. 그래서 코뚜레를 꿰듯 해서라도 데려왔나…… 나 대신 들이받으라고.

   신숙이 안국역에 도착해 신애에게 전화를 했을 때가 열한 시 십오 분쯤 되었다고 했다. 약속 시간까지 사십오 분이나 남았으니 어떡하나, 신애 얘는 어디쯤 오고 있나 싶어 전화를 했더니 신애는 벌써 도착해서 인사동을 둘러보고 있다고 했다. 혼자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는 반가움에, 나도 일찍 왔지만 넌 어쩜 더 그리 일찍 왔느냐고 하니, 윤서방이 따라나설까봐 자고 있을 때 나오느라 일찍 나왔다고, 언니 내가 그리로 갈까 아니면 만나기로 한 식당에서 만날까, 해서 신숙이 그 식당은 열두 시에 예약해놨으니까 이리 오라고, 영이가 차 가지고 온다고 했으니 다 같이 만나서 가자고 하니, 신애가 알았다고, 얼른 가겠다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는 것이다.
   제부가 안 온다니 신숙은 한시름 마음이 놓였다. 윤서방 앞에서 대놓고 말은 못해도 매번 신애를 만날 때마다 이번에도 얘가 윤서방을 달고 나오면 어쩌나, 그러니까 윤서방이 신애를 따라나서는 버릇이 든 지가 얼마나 되었나 모르겠는데, 일이 년은 훨씬 넘고, 삼사 년도 더 된 것 같은데, 아무튼 옛날 같으면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젊을 적에 너희 이모부란 인사는 제 친족 일에도 직계 일 아니면 꿈쩍도 안 하고 마냥 친구만 좋아라 하고 그렇게 밖으로만 나돌던 인사였느니라, 처가 쪽 일에는 더군다나 얼굴 비추는 일이 없고 어쩌다 죽지 못해 와도 자리에 앉지를 않고 뻣뻣하게 서서 어정버정하다 훌쩍 가버리고, 그러다 쉰 중반 넘으면서부터는 드문드문 어디 가보면 와 있고 어디 가보면 와 있고 하더니, 신애랑 둘이 만나는 자리에도 떡 하니 따라나오더라는 것이다.
   신숙이 갑자기 입가를 한껏 올리며 아유, 윤서방, 하는 바람에 혜영은 깜짝 놀라 혹시 길 건너편에 이모가 기어이 떨구고 왔다던 이모부가 나타났나 했더니 그건 아니었다. 아유, 윤서방이 이런 자리에 다 나오고 해가 서쪽에서 뜨겠네, 하면 그러게요, 처형 얼굴 잊어버릴까봐 왔습니다, 하면서 천연덕스럽게 느물거리더라며 신숙은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그때만 해도 괜찮았지, 밥만 먹고 나면 갔거든, 그러면 신애랑 둘이 찻집에서 이런저런 얘기도 하고 그랬는데 언제부턴가 밥을 다 먹고도 가지를 않고 찻집까지 따라붙더니, 환갑 넘으면서부터는 친구들도 자꾸 죽었다든가 죽어간다든가 그래 그런지, 근데 너희 이모부가 환갑이 언제였냐, 그때 환갑 기념으로 대만 여행 간다고 했던 게 삼사 년 전이었냐 영아, 아마 그렇지 싶은데 그때부터는 확실히 열에 아홉은, 너희 이모가 나갈 기색만 보여도 부둥부둥 따라나선다더라. 신숙이 궁여지책으로 신애와 비밀 작전을 짜듯 몰래 약속을 잡아 둘만 만나기로 하고 약속 장소에 가보면 제부가 앞서 나와 한 손을 번쩍 들어올리며, 아이고, 처형, 건강하시죠, 하며 인사를 하는 통에 놀라 질겁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아유, 윤서방이 또 나오셨네, 하면 실 가는 데 바늘 가야 한다느니, 늙으니 어딜 가도 부부동반이 좋다느니 듣기 싫은 소리를 해댔다고, 원, 세상에, 엄마 같은 과부는 어디 서러워 살겠니, 세상 어느 부부가 평생 해로한다고, 엄마가 역심이 나니 안 나니, 그래 몇 번이나 신애한테 왜 자꾸 윤서방을 달고 나오냐고 또 한번만 그래 보라고 눈물이 쏙 빠지게 야단을 쳐도, 따라나서는 걸 그럼 어떡하느냐고 이 바보가 잔뜩 울상만 짓는다고 했다.
   혜영과 혜진은 안국역 앞에서 신숙의 얘기를 들으며 이십 분 넘게 서 있었다.
   게다가 얘들아, 오늘은 신애랑 둘이 보는 것도 아니고 너희들하고도 같이 만나는 날인데, 하며 신숙은, 신애와 둘이 만날 때 제부가 끼는 것도 마땅찮지만 오늘같이 오랜만에 세 모녀 만나는데 그 인사가 끼여 헛소리를 하고 핏내 나는 고깃집에나 가자고 바람을 잡고 낮술을 마시고 주정을 하는 게 참 몸서리치게 싫다고 했다. 그 생각을 하니 신애가 윤서방이 따라나서지 못하도록 일찍 나온 게 더 기특해서 좋은 마음으로 기다렸는데, 오 분이 넘고 십 분이 넘도록 오지를 않았다고 했다. 어디 인사동 깊은 길로 들어갔나 싶어 다시 전화를 하니 신애가 우는 소리로 언니, 여기가 어딘지를 모르겠네, 내가 길을 놓쳤는가 봐, 했다. 뭐라고? 아니 얘 신애야, 네가 제정신이니, 우리가 여기서 얼마나 자주 만났는데 왜 길을 놓쳐, 하자 신애는 그러게, 그러게, 하더니 내가 지나가는 사람 아무나 붙잡고라도 길을 물어봐서 그리로 갈 테니 거기 있어 언니, 하고 전화를 끊었는데, 엄마가 어이가 없어서 얘가 왜 이러나, 그동안 길을 잘 찾아온 건 윤서방이 있어서 그랬나 싶기도 하고, 너희 이모가 엄마보다 네 살이나 어린데 벌써 치매가 오나 싶어 가슴이 벌렁거리기도 하고, 그렇게 끌탕을 하며 서 있는데 마침 영이 니 차가 이리로 들어오는 거야, 옆에 진이도 떡하니 타고 앉았길래 엄마가 손을 들고 여기, 진아, 엄마, 여기, 소리를 질러도 차가 설 기척도 없이 주차장으로 쌩하니 들어가니 엄마가 부아가 나니 안 나니, 아이, 근데 얘는 왜 아직도 안 와, 옛날부터 진짜 내 속을 더럽게도 썩여, 라고 신숙은 말했다.

   열두 시가 되도록 신애가 오지 않고 전화도 받지 않자 신숙은 모르겠다며 그만 식당으로 가자고 했다. 예약 시간이 다 돼서 어쩔 수 없네요, 하고 혜영도 동의했다. 신숙이 혜영의 팔짱을 끼고 앞서 걸었고 혜진이 그 뒤를 따랐다.
   중식당 원형 테이블에는 사인용 식기가 세팅되어 있었다. 신숙이 메뉴판을 대충 보는 시늉만 하더니 여기는 볼 것도 없이 양장피와 쟁반짜장과 짬뽕을 잘하니 그거 시켜서 셋이 나눠 먹으면 된다고 했다. 혜영이 혜진을 보며 그렇게 시킬까 묻자 혜진이 고개를 까딱했다. 직원이 와서 주문을 받으며 짬뽕은 매운맛과 순한 맛이 있는데 뭘로 시키실 거냐고 물었다.
   매운 거요!
   혜진이 냉큼 말하자 신숙이 대번에 아니, 안 된다, 하고 손을 저었다.
   신애 걔가 여기만 오면 번번이 매운 짬뽕을 시켜 먹어서 엄마는 맛도 못 봤잖니. 저는 내가 시킨 간짜장을 다 갖다 먹으면서 엄마는 짬뽕이 매워 한 입을 못 먹었다. 여기 짬뽕이 그렇게 시원하다는데.
   여기 짬뽕이 그렇게 시원하고 맵대?
   혜진이 기대에 차서 묻자 신숙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닥 안 맵대.
   엄마 매워서 못 먹었다며?
   아니, 그게 진이 니가 좋아하는 식으로다가 그렇게 무섭게 매운 게 아니고, 엄마처럼 매운 거 못 먹는 사람한테나 매운 거야. 니가 생각하는 그런 매운맛이 아니라니까.
   기다리다 못한 직원이 그럼 순한 맛으로 드려요, 묻자, 혜영이 그러지 말라는 눈짓을 하는데도 혜진은 본 척도 하지 않고 난 그래도 매운 거 먹을래, 나머지 시킨 건 두 분이 드시면 되잖아요, 했다. 혜영이 그럼 매운맛과 순한 맛 둘 다 시키자고 하니 신숙이 또 아니, 안 된다, 하고 손을 저었다.
   뭘 짬뽕을 두 개씩이나 시켜? 그럴 바엔 쟤 혼자 먹든 말든 짬뽕은 매운 걸로 시켜주고 여기 만두 잘한다니 그거나 한 접시 시키자.
   양장피와 쟁반짜장, 매운 짬뽕과 만두가 나왔다. 혜영이 신숙에게 양장피와 쟁반짜장을 덜어주고 혜진에게도 덜어주려는데 혜진이 됐다고 했다. 먹는 내내 신숙이 혜진에게 그렇게 매운 것만 퍼먹지 말고 양장피도 먹어보라, 짜장도 먹어보라 했지만 혜진은 말없이 매운 짬뽕만 먹었다. 혜영은 신숙이 시키는 대로 이것저것 다 먹어보고 맛이 괜찮다고 했다. 식사가 끝날 무렵 혜영이 하나 남은 만두라도 맛보라고 했지만 혜진이 끝내 먹지 않자 신숙이 쯧쯧 혀를 찼다.
   저거, 저거, 참 어려서부터 악지도 악지도 저런 악지가 없더니라. 안 먹으면 저만 손해지. 영아, 너하고 나하고 갈라 먹자. 여기 만두도 잘하네. 그렇지?
   그러네요, 혜영이 말했다. 혜진은 가만히 고개를 숙이고 있다 벌떡 일어나 나가버렸다.
   쟤, 쟤, 어디 가니?
   화장실 가나 봐요.
   후식 과일을 먹는 내내 혜진은 오지 않았다. 신숙이 그만 나가자고 해서 혜영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카운터에서 계산을 하는데 신숙이 계산대 위쪽에 붙은 메뉴판을 골똘히 올려보다 여기 생만두가 포장이 되나보다, 했다. 혜영이 그럼 포장하라고 하자 신숙이 그럴까, 일 인분만 포장해갈까, 했다. 언제 왔는지 뒤에 서 있던 혜진이 날카롭게 외쳤다.
   벌써 가? 이모 안 기다려?
   순간 혜영은 어리둥절해졌다. 먹는 내내 신애를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때 신숙의 전화벨이 울렸고, 혜영은 신숙의 휴대전화로, 언니, 나 더는 못 걷겠어, 하며 울먹이는 신애의 목소리가 흘러나오는 걸 들었다.

   어딘데? 어딘데 더 못 걸어? 우리 밥 다 먹고 나오도록 넌 왜 못 오고 있어? 언니가 니 만두도 하나 포장해줄까 하는데. 근데 어디라고? 어딘지를 왜 몰라? 떡집 앞이라고? 떡집 앞이라고만 하면 어떡해? 거기가 어디라고 우리가 너를 찾아가니? 아유, 넌 왜 이렇게 번번이 언니 속을 뒤집어놓니? 영이는 길을 잘 몰라서 거길 찾아갈 줄도 몰라. 이게 무슨 일이니? 세상에, 너 벌써 치매 왔니? 니 나이가 몇인데 벌써 치매가 와? 얘, 그럼 신애야, 윤서방 있잖아? 윤서방한테 전화해라. 길 잘 찾는 윤서방한테 전화해서 물어봐야지 별수없다. 윤서방한테 전화해. 응? 그렇지, 윤서방이 있지. 그래, 너한텐 윤서방이 있잖아. 언니랑은 이만 전화 끊고 바로 윤서방한테 전화해서 데리러 오라고 해. 알았지?

   혜영은 신숙을 집에 데려다주는 길에 북악스카이웨이를 경유해 드라이브를 시켜줄 예정이었다. 신숙은 좋아라 했지만 혜진은 우려했다.
   길 알아?
   내비가…… 있으니까.
   삼청동 길을 지나 구불구불 올라가다 혜영은 잠시 딴생각을 했던 것 같다. 신애 생각을 했던 것도 같고 어린 시절 생각을 했던 것도 같다. 무심코 왼쪽으로 핸들을 트는데 혜진이 다급하게, 언니, 오른쪽, 오른쪽, 하는 바람에 놀라 오른쪽으로 틀다가, 언니, 차, 차, 하는 말에 급브레이크를 밟았다. 오른쪽 차선에서 오던 차가 스칠 듯 지나가며 요란하게 클랙슨을 울렸다. 그 차를 보내고 우회전하는데 길의 경사가 짧고 가팔라 혜영은 가속을 밟았고 차가 요동쳤다. 그 바람에 차 유리에 고정해놓은 착탈식 내비게이션이 떨어지며 요란한 소리를 냈다.
   아닌 것 같은데…… 이쪽이……
   이쪽 맞아.
   떨어진 내비게이션 장비를 부여잡은 혜진이 지그시 이를 문 소리로 말했다. 언덕길을 올라가서야 혜영은 그 길이, 그 방향이 맞는다는 걸 알았고 자신이 왜 왼쪽으로 가려 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안전벨트에 묶인 채 두 손으로 내비를 받치고 있는 혜진의 얼굴이 잔뜩 일그러져 있었다.
   괴롭다 진짜. 내가 이래서 언니 차를 안 타는데.
   혜영은 차를 갓길에 세우고 비상등을 켰다. 혜진에게 내비게이션을 받아 차 유리에 고정하고 새로 작동시켰다. 뭐가 잘못되었는지 먹통이었다. 혜영은 이마를 짚고 기다렸다. 비상등의 점멸 소리를 듣고 있자니 눈꺼풀이 바르르 떨리고 참기 힘든 짜증이 솟구쳤다. 혜영은 잠시 차에서 내렸다. 니 육신…… 니 육신…… 악지도…… 악지도…… 그런 악지가…… 그런 말을 조용히 내뱉으며 눈을 천천히 깜빡였다. 여러 번 심호흡을 하고 표정을 밀랍 가면처럼 만들었다. 다시 차에 탄 혜영은 침착하게 내비게이션의 연결선을 뽑았다 다시 꽂고 작동 버튼을 눌렀다. 혜진은 보란듯이 몸을 틀어 차창에 얼굴을 바짝 대고 이상한 멜로디를 흥얼거리고 있었다. 뒷자리에서 신숙이 아이, 괜히 이리로 왔네, 밥 다 먹었으면 국으로 집에나 갔으면 좋을 걸, 엄마 팔자에 드라이브는 무슨, 하는데 휴대전화 벨이 울렸다.

   아유, 윤서방, 어떻게 됐어요? 신애 찾았어요? 오, 찾았어? 윤서방이 워낙 길을 잘 아니까 찾을 줄이야 알았지마는 대체 그 바보는 어디 가 있었대요, 응? 인사동이 아니라고? 아유, 그게 웬일이에요? 거기가 어디야? 아이고…… 어째, 울어? 신애가 운다고요? 으응, 응, 다행이네. 윤서방, 신애 걔가 잠시 잠깐 놀라서 그런 거지 별일 아닐 거예요. 예전부터 걔가 좀 깜빡깜빡은 했어요. 놀라고 당황해서 잠시 잠깐 그런 거니까 걱정하지 말고. 윤서방, 수고했어요. 운전 조심하고요, 네, 네, 들어가요, 그럼…… 내가 나중에 신애하고 통화할게요. 네, 네에……

   신숙이 전화를 끊자 혜진이 이모부가 뭐래, 하고 물었다.
   너희 이모 찾았단다. 지가 어디 있는지도 모르고 있더란다.
   어머, 어떡해? 어디에 있더래?
   뭐 신사동? 신성동? 뭐 그런 동네 떡집 앞에 앉아 있더래.
   신사동은 절대 아니고 신설동이겠네, 혜영이 말했다.
   그래, 영아. 신설동! 신설동이라더라. 거기가 대체 어디야?
   아마…… 혜영이 대답하려는데 혜진이 끼어들었다.
   이모가 계속 울고 있대?
   아니, 계속 울고 있는 건 아니고 윤서방을 보더니 막 울더란다. 차 타고 지금은 잔단다.
   이모 어떡하냐, 혜진이 중얼거렸다.
   아이, 그놈의 당뇨가 세상 더러운 병이라더니. 신숙이 쯧쯧 혀를 찼다. 너희 이모가 당뇨잖니. 당뇨 걸리면 치매도 그렇게 빨리 온다더라.
   그런 무서운 소리 하지 마. 아직 이모가 치맨지 아닌지 모르잖아?
   요즘은 젊은 애들도 그렇게 당뇨에 많이 걸린다더라.
   드디어 내비게이션이 작동했고 혜영은 차를 출발시켰다. 혜진은 틀었던 몸을 바로 하고 멍하니 앞만 보고 있었고 신숙은 복잡한 얼굴로 창밖에 눈을 두고 있었다. 구불구불한 북악스카이웨이를 지나는 동안 차 안에는 내비게이션의 안내 음성만 울렸다.

   혜영이 신숙의 아파트 현관 앞에 차를 세우고 돌아보자 신숙은 졸다 깬 얼굴이었다.
   엄마, 주무셨어요?
   아이, 자긴 누가 잤다고 그러니?
   다 왔어요.
   그래, 다 왔네.
   신숙이 안전벨트를 풀고 가방과 만두 봉지를 챙겨 내리려다 멈추었다.
   엄마, 왜요?
   운전하느라 우리 영이 고생 많았다.
   고생…… 은요?
   맛있는 것도 사주고 엄마 드라이브도 시켜주고 오늘 고마웠다. 우리 진이도 같이 나와 줘서 고마웠고.
   혜진이 아무 말도 하지 않자 대신 혜영이, 고맙긴, 무슨, 했다.
   그래, 조심히들 가거라.
   신숙이 차에서 내려 손을 흔들고 아파트 현관을 향해 걸어갔다. 혜영은 신숙이 현관문 안으로 들어갈 때까지 지켜보았다. 함께 지켜보던 혜진이 말했다.
   엄마 왜 저래?
   그러게…… 엄마도 늙나 보네.
   혜영이 차를 출발시켰다.
   엄마도 치매 오는 거 아냐?
   넌 애가…… 그런 무서운 말 하지 말라며?
   너무 이상하니까. 우리더러 고맙대잖아? 이모 때문에 잔뜩 겁나셨나?
   엄마 귀신같다며? 니가 불효하려는 거 딱 눈치채고…… 그 기회를 딱 뺏으려나 보지.
   언니도 나 치매 걸리면 엄마처럼 할 거지?
   혜진의 느닷없는 질문에 혜영은 순간적으로 머리가 하얘졌다.
   설마……
   어차피 길도 모르고 못 찾아올 거잖아.
   그건……
   혜영은 밀랍 인형 같은 표정을 유지하려 애썼다. 얘는 정말…… 자기 생각밖에 안 하네…… 자기 치매 생각밖에…… 혜영은 눈이 자주 깜빡거릴까봐 신경이 쓰였다.
   그래도…… 찾아가야지. 잠시 후에 혜영이 말했다. 우리는…… 윤서방도 없잖아.
   혜영의 표정을 유심히 살피던 혜진이 말했다.
   그건 그러네. 그런 의미에서 담배나 한 대 피울까?
   좋지.
   혜진이 혜영의 홀더에 담배를 꽂아 건네주었다. 혜영이 공기청정기를 틀고 뒷자리 차창을 조금 열었다. 혜진이 자신의 홀더에 담배를 꽂으며 물었다.
   이번엔 북악스카이웨이로 안 갈 거지?
   안 가지.
   둘은 짧게 웃었다. 사거리에서 혜영은 내비게이션의 안내에 따라 좌회전 차선에 접어들며 왼쪽 방향지시등을 켰다. 신호가 바뀌는 동안 자매는 규칙적인 점멸 소리를 들으며 조용히 담배를 피웠다.

권여선

세대를 격한 두 자매 이야기를 쓰면서, 두 쌍의 여성 관계가 교차할 때 드러나는 미묘한 뉘앙스가 흥미로웠다. 왜 복잡한 것은 애틋한가.

2022/01/25
50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