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부터 어느새 마지막 3차 포럼까지 지난 4개월의 여정 동안 ‘위험포럼’의 매개자로서 가장 많이 고민하고 씨름했던 것은 ‘불분명함’이었다. 흘러가는 과정상의 불분명함뿐 아니라 내게 요구된 역할과 원칙이 어떤 것인지 완전히 이해하고 참여한 것도 아니다. 그러나 처음 ‘위험포럼’에 참여를 제안받았을 당시, 나는 이 기획의 모호함과 불분명함에 이끌렸고 또 기대하게 되었다. 여러 지원사업을 겪으며 각종 서류와 형식적인 절차들에 신물 나 하던 찰나, 총괄 기획자로부터 ‘위험포럼’의 취지나 방법론에 대한 설명을 들었을 때는 해방감을 느끼기도 했다.
  ‘위험포럼’의 첫날, 기획자가 소개한 ‘공동창작’의 가치는 다음과 같다. “서로 질문하고 영향을 주고받는 과정에 그 의미를 둡니다. 창작 과정에서 위험을 감수한 인상적인 단상을 자유롭게 기록하고 공유합니다.” 내가 이해한 ‘위험포럼’의 취지는 이게 뭔지 모르는 채로, 혹은 언젠가 그 이후 단계에서나 알게 된다는 것 하나뿐이었다. 어쩌면 알게 되지 못할 수도 있다. 내가 시민들과 함께하는 예술 활동에서가 아니라 창작자들이 모인 곳에서 기대한 유일한 것이라면, 만일 그 안에서의 예술적 감각이라는 것이 가능하다면, ‘그게 뭔지 모르는 채로’ 해내는 것. 또는 ‘그 이후 단계’를 본능적으로 지각하는 감각에 가까운 것이었다. 특히 예술가 개인이 혼자 해나가는 게 아니라 함께하는 과정에서 자신조차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발생하는 과정 말이다. 사실, ‘위험포럼’은 완벽한 기획이 아닌, 불완전한 기획이었다. 그러나 나는 이 불완전함이 정책사업 내에서 유연한 시도가 가능하다는, 제도 속의 여백을 보여준 사례라고 해석한다. 이 여백이 일정 부분 허락하고 제공하는 예술가의 자율성이 있는 것이다.
  하지만 창작자들의 반응은 예상과 달랐다. “한 달에 최소 몇 번이나 만나야 하나요?” “제출해야 하는 일지가 한 달에 몇 개라고요?”와 같은 질문을 던졌고, 나 역시 ‘그게 중요한 걸까요?’라고 되묻지 못하고 기획자에게 확인하러 가는 씁쓸한 순간도 있었다. 사실 내가 기대한 것은 사업설명회에서나 제시할 법한 지침이나 원칙 따위는 온데간데없이, ‘위험포럼’의 제안을 귀찮아하거나 지루해하고 기획자의 철학과 취지를 이해하고 실현해내는 것이 아니라 ‘위험포럼’의 유연함을 철저하게 이용하기를, 그리고 매개자로서 그 장면을 목격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시도를 전폭적으로 지지하고 싶었다.
  그러나 예술가들은 이 제도 속의 틈새에서 신명 나게 놀거나 자발적으로 움직이기보다는 기획자나 매개자의 절대적인 존재를 원하기도 했다. 제도가 허락하는 가변성이 창작자들에게는 또 다른 막막함과 피로였던 것이다. 한 창작자는 오히려 제한이 있을 때 훨씬 더 많은 가능성을 제시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며, 제한은 억압이 아니라 조력이라고, 오히려 ‘위험포럼’의 자유나 자율성이 자신을 가로막고 있다고 했다. 어느새 요구하기보다는 요구받는 것이 익숙해졌으며, 오로지 우리에게 필요한 방향과 규칙만을 찾는 데 급급한 것이다.
  한편, ‘위험포럼’에서 매개자를 맡기로 하면서 스스로 설정한 제1의 원칙은 제한하거나 개입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위험포럼’ 오리엔테이션에서 제시된 매개자의 역할은 다음과 같다. 지원하기, 관찰하기, 정리하기, 일정 관리, 원활하게. 즉, 온화한 매개자나 관찰자로서의 역할을 부여받은 것이다. 그러나 몇몇 창작자들은 도대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정확한 지침이나, 심지어는 결과물을 요구받는 것이 차라리 좋겠다며, ‘과정 중심의 공동창작 프로젝트’가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 어렵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위험포럼’이 제시한 원칙은 다음과 같았다.

안 해본 방법을 선택하기
하기 어려운 질문을 해보기
대답하기 어려우면 중얼거리기
숨겨둔 것 꺼내기
더 낯설고, 더 불안한 것 즐기기
작업에 대해 비판적 태도 유지하기

유연함을 비롯한 이 ‘위험포럼’의 원칙들은 누군가에게는 버거운 일이었다. 한 창작자는 “‘자유’가 뭔지 모르는데 자유롭게 하라니 괴롭다”라고 털어놓기도 했고. ‘위험포럼’이 형성한 ‘솔직할 수 있는 가상의 구역’은 또 다른 갈등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일부 창작자들은 ‘위험포럼’의 원칙이 ‘무례’하고 위험하다고 느끼면서, “무례하지 않은 솔직함”을 강조하거나, “기본예절이 단단한 사람이 되리라!” 다짐하기도 했다. 한 창작자는 나에게 이 ‘위험포럼’의 원칙이 자신과 맞지 않아 피곤하고, 너무 어려운 일이라고 털어놓기도 했다. 이 무례하지 않아야 한다는 ‘예의’는 생각보다 완강하고 튼튼했다.
  여기서 질문 하나. ‘위험포럼’의 원칙은 정말 무례한 것인가? 예의 바르지 않은데도, 혹은 예의 바르지 않아야만 깊은 곳에 닿을 수 있다는 착각과 선입견은 생각보다 광범위하게 퍼져있었다. 자신의 예민한 구석을 건드리는 이야기는 솔직함을 가장한 무례함이라 평하고, 불편한 감정을 일으키는 방식의 대화는 회피하곤 했다. 사실, 이 ‘위험포럼’에 동행하는 창작자들은 참여함으로써 ‘위험포럼’의 원칙에 암묵적으로 동의한 것이지만, 그것을 받아들이고 수행하는 것은 별개의 일이었다.
  그러나 이때, 흥미로운 것은 각 그룹이 모일 때마다 작성한 일지의 역할이다. 이 일지는 기획자나 매개자, 서울장애예술창작센터에서 포럼의 과정을 확인하고, 정책 사업 특성상 필요한 아카이브를 목적으로 수행된 것이다. 그러나 창작자들은 이 일지 안에서 “사실은……”이라고 운을 떼며 서로의 상호작용에서는 차마 말하지 못한 숨겨둔 속내를 고백했다. 면대면 상호작용에서는 불가능에 가까운 ‘위험포럼’의 원칙이 일지라는 글쓰기 행위에서는 지켜지고 또 시도되었다. 무례해도 괜찮은, 솔직한 의견을 드러내고, 비판하고 비평하며, 궁금증을 쏟아내고 오토크리틱을 하기도 했다. 일지야말로 진짜 위험함을 시도하고, 솔직한 생각과 마음을 드러낼 수 있는 장치가 된 것이다. 한 창작자는 “일지라는 문서 안에서 마음을 열어가는 것을 느낀다. 요즘의 나에게 필요했던 하나의 과정임을 고백하고 싶다”라고 털어놓기도 했다.
  일지에는 털어둔 속내를 감추고, 여전히 만나서 말하기를 주저하지만, 그럼에도 창작자들은 모였다. 파주로, 대학로로, 연희로, 신당으로 그들의 몸은 움직이고 있었다. 이렇게 만나 창작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아니다. 예술가로서 살아가는 일, 각자가 안고 있는 고통에 관한 이야기,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를 할 뿐이다. 이 과정에서 나눈 대화는 예술가들로 하여금 현실의 무게에서 벗어나는 기회가 된다. 생계에 관한 고민, 작업과 평판. 삶의 무게와 과업들로부터 탈피해 현실의 삶 속에서 먹고 살아야 하는 무게에 짓눌려 있는 창작자들에게 이러한 만남, 사교의 자리는 잠시나마 현실의 짐을 벗어 던지고 자유로운 존재가 될 수 있게 했다. 또 함께 밥을 먹고, 차를 나눠 타고, 함께 산책하거나 전시를 보러 가기도 하고, 각자의 면면을 마주하면서 서로를 예술가보다는 한 명의 인간으로 바라보게 됐다.

파주의 한 카페에서 유다영, 니키노, 임미정, 이나래가 함께 둘러 앉아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오리엔테이션 이후 처음으로 만나 서로의 작업과 근황을 더욱 자세히 소개하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파주에서 만난 유다영 모둠

하지만, 갈등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작가들은 여전히 공통의 영역을 찾기 위해 분투했고, 여전히 불편하거나, 잘 모르겠다고 말하며 “감정적인 피로의 연속”을 겪었다. 크고 작은 갈등도 쌓여갔다. 이 일련의 과정들을 지켜보면서 매개자로서 무언가 해야만 한다는 압박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방임해서는 나아가지 못하니 적절히(?) 간섭해야 했다. 결국 나는 각자 다루는 재료도 다르고, 한 자리에 모이기도 어려운, 관심사나 생각도 다른 이들에게 책상에 앉아 글을 써보는 시간을 제안했다. 글쓰기의 형식이 끌어내는 말하기는 일지를 통해 창작자들의 솔직함을 엿본 매개자가 궁리한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창작자들에게 제안한 ‘릴레이 글쓰기’라는 형식은 일지를 통해 창작자들의 솔직함을 엿본 매개자가 궁리한 것이다. 그리고 이 제안을 할 때 나는 창작자들을 신뢰하기로 했다. 자리를 마련하기만 한다면, 그들이 보여줄 이야기는 무궁무진할 것이라고.
  각자 한 시간 반씩, 네 명의 작가가 연속해서 릴레이로 글을 써내려가는 과정에서 어떤 글이 쓰일지는 예측 불가능했다. 창작자의 자기 생각과 감정 그리고 의지에 달린 일이었다. 그러나 책상 앞에 앉아 이어 달리는 이 과정이 분명히 조성하는 의식적, 무의식적인 상태가 있었고, 은연중에 넌지시 드리우는 것들이 있었다. 이 릴레이에서 창작자들은 자신에게 중요한 재료가 되는 카메라, 모빌, 보풀 등을 가져와 책상 위에 늘어놓았다. 서로가 던져놓은 장치와 단서들을 눈앞에 두고 자리를 잡고 앉아 창작자들은 단어와 문장들을 쓰기 시작했다. 앞서 쓴 사람의 글에 답하기도, 앞선 이야기와는 관련이 있는 듯 없는 듯 자신만의 세계를 펼쳐내기도 했다. 누군가는 어렵사리 장애를 마주하기도 하고, 누군가는 글이 아니라 쓰고 싶은 글의 목차만 나열하면서 이야기를 꺼내지 못해 몸부림치기도 했다. 또, 어떤 이는 눈물을 보여 곁에서 말없이 안아주기도 했다. 말을 걸기도 하고,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하면서 창작자들은 시트 속 글이 지워지고, 고쳐지고 다시 적히는 과정을 하나하나 다 응시하게 됐다. 화자와 청자가 서로 엎치락뒤치락하는 대화의 방식과 다르지 않았다.
  얼굴을 맞대고는 하지 못했을 종류의 이야기들이 이 릴레이 글쓰기를 통해 닿았는데, 이 ‘비대면’의 상황에서야 대면하게 된 생각과 감정들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이 과정에서 한 창작자는 너무 솔직했기 때문에 당장이라도 지워버리고 싶다며 후회했고, 또 다른 이는 자신이 어렵사리 털어놓은 이야기에 대한 응답을 받지 못해 속상해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쏟아져나온 감정과 생각들은 무척 강렬한 것이어서 생각보다 더 많은 시간과 에너지가 필요했다. 창작자들은 “너무 개인적인 생각과 감정을 쏟아내서 스스로 다시 읽는 게 힘들다”라고 털어놓기도 했지만, 어쩌면 드러내는 과정을 통해 언어화할 수 있는 거리를 확보했다는 것일 수도 있다. 그리고 이 릴레이는 지금도 진행중이다. 한국과 프랑스, 이른 아침과 늦은 밤, 각자의 장소와 시간에서, 시차를 두고 쌓여가고 있다. 수동성과 능동성, 의지와 의무가 서로를 요청하면서.

서울문화재단 서울연극센터 다목적실에서 유다영, 임미정, 니키노가 릴레이 글쓰기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이날 세 사람은 한 책상에서 2시간씩 돌아가며 글을 썼고, 나머지 시간에 다른 구성원은 곁에서 자유롭게 머무르는 시간을 보냈다. 이나래 작가는 프랑스에 있어 화상회의를 통해 참여하였다. 이 화면은 전체 과정을 기록한 결과물 〈내가 살아있었을 때〉의 스틸샷으로, 니키노는 글을 쓰고 있고, 유다영은 니키노를 촬영하고 임미정은 스트레칭을 하고 있다.
서울연극센터 다목적실에서 열린 유다영 모둠의 릴레이 글쓰기 퍼포먼스

‘위험포럼’의 초기에 나는 매개자로서 창작자들의 불만과 질문, 갈등을 해결하고자 했다. 동의와 합의를 끌어내고, 공동의 것을 찾아주려 하고, 심지어는 제안하고, 만들어주려 했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앞으로 예술가들이 보여줄 완성된 작품보다 현시점에서 아카이브를 목적으로 쌓인 작가들의 불평과 불만, 자기 고백이 가득 담긴 중얼거림, 끄적임에 끌린다. 이러한 작업이야말로 ‘위험포럼’의 원칙을 가장 잘 이해한 결과물이며, 불완전하고, 고민하고, 씨름한 흔적들이야말로 오히려 예술 창작 과정의 자원이 아닌가? 만일 공통의 관심사가 있었고, 충분한 공감대와 합의를 이루었다면 효율적이고 원활했겠지만, 그렇지 못했기 때문에 우리는 서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부유했다. 나와 타인에 관해 탐구하고, 개인의 서사나 철학에 관한 이야기를 한참이나 나누게 됐다. 그리고, 결국 이 대화의 끝은 결국 자기 자신에 대한 이해로 나아간다. 주로 혼자서 작업해왔던 이는 자신이 한번도 누군가와 마음 맞춰 함께 해본 경험이 없었음을 깨닫고, 적지 않은 공동창작 경험을 가진 이는 “내가 누군가보다 더 낫지 않다. 다 다를 뿐. 그 다름에 대해 중립적으로 설명해야 할 것이다”라고 스스로 되뇌인다. 아무리 서로를 이해하고자 노력하더라도 어디까지나 오해일 것이다. 하지만 절대 이해할 수 없어서 우리는 더 이야기할 수 있고, 이해할 수 없으므로,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공동창작에서의 실패란 지극히 정상적인 과정이다. 그 실패가 갈등과 상처를 담고 있다고 해도, 이것 역시 과정 안에서 새롭게 태어날 수 있다. 창작자들이 이렇게 모여 서로의 작업을 관찰하고 대화를 나누는 일, 이러한 만남과 소통이 중요한 이유는 결국 창작자의 예술론과 정체성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모든 창작자가 각자의 질문과 고민을 자기 작업 안에 품고 있을 때, 이는 사회적인 것일 수도 있고, 어떤 경우 지극히 개인적인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이 더 큰 질문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혼자서 답을 찾는 것보다는 다른 이들을 만나 영향력을 주고받는 관계망의 설정이 중요하다. 모여서 대화하고 놀면서, 동시에 각자의 작업 속에서 질문을 던지고 떠올리게 되는 것들, 이런 대화가 바로 공동창작이다.
  ‘위험포럼’에서의 공동창작에는 여전히 공동도, 창작도 없다. 그런데도 이 부침과 부대낌 덕분에 비로소 ‘위험포럼’은 있었는지 없었는지도 모를 목적을 달성했다고 볼 수 있다. 이 과정에서 누구의 의견이 더 좋고 나쁘냐, 누구의 말이 옳냐는 것을 판별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서로를 참조하고, 대조하고, 뒤섞는 시도를 하는 것이다. 표면적으로는 동의와 합의의 과정이지만, 동시에 이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창작자들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들은 공동창작이 무엇인지 모르는 것이 아니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그들은 기획자와 매개자에게 다시금 묻는다. 도대체 공동창작이 무엇이냐고.
  요컨대 공동창작의 과정은 계속해서 만나고 이야기 나누지만, 처음 만나는 것처럼 낯설게 느껴지는 일이며, 이미 지나간 길인데도 아까 그 길이 아닌 것처럼 느껴지는 길. 때로는 아예 갈 길을 잃어버리는 길. 그리고 또 이곳에서 살아야 하는 길이다. 이 부대낌을 감내하고 만나는 세계가 중요하다. 이 기획은 예술가 개인들이 모여 삶과 사회에 관한 이야기들의 아카이브를 만들어낸 듯하다. ‘위험포럼’은 비판과 넋두리, 뒷담화와 반성 사이에서 안전하게 속내를 털어놓을 수 있는 자리이며, 동료와 친구 그 어딘가에서 결국 타인과 함께 살고 대화하는 방식 중 하나다. 최근 이러한 자리와 기회가 우리에게 있었나? 이 예술가들의 부대낌, 만남과 대화가 담긴 기록을 만남으로, 글로, 따라가 보는 일은 매개자로서,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나에게 많은 영감을 주었다. 이러한 자리가 꼭 서울장애예술창작센터일 필요는 없을 것이다. 앞으로 곳곳에서 ‘위험포럼’이 더 많이 생겨나길, 더 많이 부대끼고, 투덜거림이 쌓이기를.

지가영

예술과 사회, 문화매개를 공부하고 있다. 문화매개자의 역할과 역량이 무엇인지 고민하면서 이론과 실천 사이를 오가며 배우고 있다. 문화매개실천연구소의 일원이자 사회참여적음악가네트워크(SEM네트워크)의 운영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2024/02/21
65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