쌓이는 비시


   고대부터 지금까지, 인류 역사상 ‘시’라고 인정되고 명명되는 것들은 계속해서 쌓여왔다. 시는 지금도 누군가의 책상 위에, 혹은 다른 책들 위에 쌓이는 중이다. 한 사람이 태어나 글을 읽을 수 있게 된 시점부터 죽을 때까지 계속 시를 읽는다고 해도 이 세상의 모든 시를 읽을 수는 없을 것이다.
    비시 또한 마찬가지다. 게다가 비시는, 시라고 명명된 텍스트보다 그 수가 훨씬 많다. 그리고 비시는 너무나 종류가 다양하다! 명백히 어떤 기준으로 나눌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경고문은 때에 따라 설명문이 되기도 하고, 광고 또한 설명이자 경고가 될 수 있으며, 낙서도 시각에 따라 각양각색의 의미를 지닐 수 있다.
    프로젝트를 계속 진행하면서 비시들을 분류하는 것 자체에 대해 회의감이 들었다. 소외된 비시에 주목하는 것이 이 프로젝트의 의의 중 하나라 할 수 있는데 어떤 종류의 비시에 주목하느라 다른 비시에는 주목하지 못한다는 것이 안타까웠다.
    따라서 이번 화, 그리고 이어지는 다음 화에서는 제보된 비시들을 한 가지 주제로 엮기보다 다양한 상황과 맥락을 고려해 함께 살펴보기로 한다.


   - 손에 들어오는 : 손바닥에 놓을 수 있다. 쥘 수 있고 가까이에서 볼 수 있다. 


커피를 잘 못 마신다는 말을 하면, 커피를 즐겨 마시는 사람이 깜짝 놀라며 말한다. “어떻게 커피를 안 마시고 깨어 있을 수 있어?” 그에게 커피는 하루를 시작하기 위해 꼭 필요한 음료라고 한다. 사진의 컵 홀더 문구 또한 내일을 부탁할 만큼 커피가 중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커피를 생각하는 그의 심정이 딱 이런 심정일지 모르겠다. (K님 제보)

티슈만 있을 때는 모른다. 그러나 문구가 새겨진 티슈를 보고 깨닫는다. 아, 내 입에 뭐 묻었나? (K님 제보) 

대표적인 불조심 표어 중 ‘꺼진 불도 다시 보자’라는 표현이 있다. 그만큼 주의를 기울여 꺼진 불을 보라는 의미이다. ‘불’을 ‘배’로 바꾸니 다른 의미가 되었다. 배 꺼졌다, 밥 먹자. 이 안에 젓가락 있다. (K님 제보) 

토끼가 물티슈를 쓰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토끼가 좋아하는 물티슈라니,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된다. ‘둘째’라는 말은 옆의 토끼 그림과 합쳐져서 ‘둘째 토끼’라는 의미인가? 여기에 쓰인 글의 의미와 의도는 파악하기 힘들지만 토끼의 이미지가 물티슈로 전이되어 어떠한 ‘느낌’을 준다. 한마디로 귀엽다. (K님 제보)


   - 화면을 바라보는 : 컴퓨터 혹은 스마트폰을 통해서 본다. 눈으로 직접 보는 세상이 아니더라도, 이미 익숙한 세상이다.



MT 예산을 정리한 것 중 일부라고 한다. 마실 거리, 안주, 양주 제품의 이름을 하나하나 발음해보면 입 안이 새콤달콤해지는 것 같다. (GH님 제보)

신문 기사의 표제와 부제다. 한국의 직장생활을 묘사한 표제부터 눈에 띈다. 기사의 핵심을 요약한 부제에선 묘한 리듬감이 느껴진다. 조금 빠른 속도로 세 마디씩 이뤄진 음보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리오님 제보)

광명에서 동대구까지 간다는 정보를 화살표 기호 하나로 표현했다. 문장으로 연결된 것도 아니고 단어들만 제시되어 있는데도 여러 정보를 명확히 파악할 수 있다. (dlgus님 제보)


  벽을 보는 : 길을 가다 문득 눈에 들어온다. 발걸음을 멈춘다.


벽에 이 문구가 없었다면 그 자리에 작품이 있었는지도 몰랐을 것이다. 도난당한 작품은 어떤 작품이었을까? 조치중이라는데, 어떤 조치중인 거지? 범인은 잡았을까? (항상님 제보)

얼핏 보면 ‘오전을 열고 오후를 닫는다’는 말로 착각할 수도 있겠다. 글자가 네 귀퉁이에 넓은 간격으로 한 글자씩 배치되어 있고, 숫자는 정가운데에 배치되어 전체가 기하학적인 도형처럼 느껴지기도 한다.(리오님 제보)

메일을 쓸 때 습관적으로 쓰는 말이 있다. 바로 ‘감사합니다’이다. 그래서일까? ‘감사합니다’라는 말이 인사치레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하지만 이 제보에서는 인사치레가 아닌, 정말로 누군가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느껴진다. ‘덕분입니다’라는 말이 이어진 덕분에. (항상님 제보)


   이동하는 : 안의 공간은 멈춰 있다. 가끔 흔들리는 것 같기도 하다. 바깥이 움직인다.


이번 역과 다음 역을 표시하는 LED 전광판에 오류가 생긴 모양이다. 버스가 실실실실 웃는 것 같다. ‘잉?’은 제보하신 분의 말이다. (경님 제보)

   이것은 시인가 시가 아닌가?


   비시 인터뷰 : 당신이 생각하는 시가 아닌 것


   다른 사람들은 비시(非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이번 화에서는 소설을 쓰는 이문경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출판사에서 편집자로 일하고 있다. 시와 소설, 문학을 사랑한다.

   Q. 비시, 즉 시가 아닌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대학에 다닐 때 문학 관련 학과를 전공하면서, 어떤 것이 시인가에 대해선 많은 생각을 했다. 그러나 그 반대의 질문을 해본 적은 없었다. 그런 질문 자체가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많은 생각을 했지만 대답할 수 없다. 인터뷰어는 어떤가? 시를 쓰는 본인도, 본인 나름대로 이것이 시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을 걸러서 쓰는 것 아닌가?

   Q. 쉽게 대답할 수 없다. 특히 표현 측면에서 그렇다. 사람들은 시를 읽고 그중 마음에 드는 부분에 밑줄을 치거나 필사를 하며 읽는데, 본인은 그런 ‘시적인’ 표현을 생각해본 적도 만들어본 적도 없다. 그저 이걸 시라고 쓰고 우기는 것 같다. 그나저나 인터뷰이는 시를 읽을 때 밑줄을 치면서 읽는가?


    그렇다. 그러고 보니 사람들은 한 편의 시를 읽을 때 그 안에서도 마음에 드는 구절에 밑줄을 긋곤 한다. 그중에서도 가장 시적인 표현을 찾는 것이다. 그럼 그 안에서도 시가 걸러지는 것 아닌가? 시 안에서 또 시를 찾는 것이다.

   Q. 왜 어떤 부분에는 밑줄을 치고 어떤 부분에는 밑줄을 치지 않는가?


    일종의 핵심적인 문장이라고 생각해서 밑줄을 친다. 하나의 시를 밑줄 친 문장으로 압축할 수 있다. 그렇다면 비시는 압축할 수 없는 것인가?

   Q. 비시와 압축의 관계에 대해 더 말해줄 수 있는가?


    비시란 압축할 수 없고 밑줄 칠 수 없는 것, 즉 밑줄 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얼마 전의 일이 떠오른다. 파주 출판단지를 빠져나가는 퇴근길이었다. 문득 근처에서 일하는 친구 H 생각이 났다. 친한 사이였는데도 불구하고 그 친구의 회사가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더라. 그 사실이 새삼 이상하게 느껴졌다. “그러고 보니 H가 어디에서 일하는지 한 번도 알려고 하지 않았네.” 혼잣말처럼 내가 중얼거리자 옆에서 함께 걷던 친구들 중 하나가 나를 보며 이렇게 말했다. “언니, 방금 그 말 되게 시 같았어.” 나는 물론이고 다른 친구들 모두 그 말을 듣고 웃어 넘겼다. 그런데 집에 돌아와서도 그 장면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그 친구는 왜 그걸 시라고 생각했을까? 그 한 문장에 우리의 모든 상황이 압축, 표현되었기 때문이다.
    비시각각에 제보를 할 때도 이런 고민이 들었다. 비시라고 생각해서 찍었는데, 찍는 순간 이것이 시라고 생각되었다. 프레임 안에 들어오는 순간 하나의 시가 된 것이다. 비시각각 인스타그램에 제보된 많은 비시들을 보고 느낀 점이기도 하다. 비시를 다루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시가 이렇게나 많네?’ 느꼈다. 압축은 결국 내 생각, 내 시선에 의해 축소시키고 자르는 것이다. 그게 시라면, 비시는 그것이 작용하지 않은 것이다.

양지윤

비시(非詩)에 대해 탐구합니다. 시가 아니라고 일컬어지는 모든 텍스트를 다룹니다. 직접 목격한 비시 텍스트를 상시 제보 받습니다. 관련된 생각과 일화도 보내주세요. 함께 나누며 생각하고 싶습니다. 메일 jiyangyoon@gmail.com, 인스타그램 @bisi_write

2018/04/24
5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