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받기
5화(최종화) 다시, 쓰레기가 찾아왔다
서울, 쓰레기의 4월
박성진쓰레받기 프로젝트를 기획하게 된 것은, 나무로 된 보기 드문 쓰레기가 우리를―즉 나와 박윤선을― 찾아왔기 때문이었다. 원목으로 된 피아노라니. 그렇게 근사한 쓰레기는 처음이었다. 그 멋진 쓰레기를 버렸던 멋쟁이 이웃은 그후로는 도통 쓰레기가 없는지 혹은 아예 이사를 가버렸는지, 나는 그렇게 취향 좋은 쓰레기는 아직 만나보지 못하고 있다.
쓰레받기 프로젝트를 하는 동안에 주변 사람들과 쓰레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적은 거의 없었다. 쓰레기가 대화의 소재가 될 일이란 어지간해서는 일어나지 않는 것이다. 그럼에도 4월은 가히 쓰레기의 달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것 같다. 나는, 내가 아는 모든 이들은, 우리는, 쓰레기를 이야기했다. 회사에서도 집에서도 카페에서도 술집에서도 말이다. 그것도 매우 열정적으로.
재활용이 되는 것과 재활용이 안 되는 것, 재활용이 되는 줄 알았는데 실은 안 되는 것, 재활용이 되기는 하지만 솔직히 안 했으면 좋겠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가 여기저기에서 들려왔다. 재활용이 될 줄 알고 애써 다듬어놓았지만 결국 버려야만 하는 것들이 참 많았다.
4월의 절반에 이르는 기간 동안 아파트 단지에서는 스티로폼과 비닐과 플라스틱이 가득 담긴 쓰레기봉지를 볼 수 있었다. ‘봉지’라는 귀여운 이름으로 불리기에는 너무나 거대한, 내 키보다 더 큰 봉지들이었다. 투명한 봉지는 원래도 하얀빛이 감돌았고 그 안에 들어 있는 대부분의 쓰레기는 흰색이었다. 색감이 균일한 것이, 보기에 그렇게 나쁘지는 않았다.
회사와 집에서는 쓰레기를 재활용하는 방법에 대한 재교육이 수시로 이루어졌다. 비닐을 벗기고, 칼로 뚜껑을 분리하고, 세척하고…… 복잡하다며 어려워하는 나에게 K팀장은 산뜻하게 설명했다.
“대충하지 말고 열심히 하라는 말이에요.”
재활용 방침을 열심히 따르다보니 어느덧 스티로폼과 비닐과 플라스틱이 가득 담긴 쓰레기봉지들이 아파트 단지에서 사라졌다. 나는 K팀장과 커피를 마실 때 “드디어 저희 아파트 단지도 쓰레기 수거를 해가게 되었어요!” 하고 전했다. 물론 그건 나의 열심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정책과 계약과 방침에 따른 결과일 뿐이라는 것을 잘 안다. K팀장 또한 그렇게 지적했다.
“어머나, 정말요? 호호호.”
“당연하죠, 순진하시기는.”
민주당 경선 이야기에 빠져 있던 K팀장은 화제를 돌려, 지금껏 내가 저질렀던 순진한 실수들을 지적하기 시작했다. 나는 계속 호호호 웃기만 했다.
그 주말에는 할머니를 방문했다. 할머니는 서울 강서구에 사신다. 특수학교 부지에 한방병원을 짓자는 공약을 내세운 김성태 의원의 지역구이지만 나도 할머니도 그런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우리는 항상 평화롭고 무해한 화제만을 나눈다. 언제 할머니가 돌아가셔도 후회되지 않도록.
“재활용을 이런 식으로 내놓으면 안 돼욧! 전부 떼내세욧!”
아, 그러나 지난 4월에는 참지 못했다. 나는 할머니가 모아놓은 재활용 쓰레기함을 뒤지며 하나하나 골라냈다. 이건 이래서 잘못됐고 저건 저래서 틀렸고, 요즘에도 이런 식으로 버리는 사람이 어디 있어욧! 다들 할머니를 욕할 거라구욧! 욕먹으면서 오래 살면 뭐가 좋나욧! 이렇게 소리를 질러도 할머니는 내 말의 반밖에 못 알아듣는다. 귀가 어둡지만 노인네처럼 보이기 싫다며 보청기를 끼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할머니는 평화롭게 말했다.
“옛날에는 쓰레기를 위에서 아래로 던졌어.”
아파트 복도에는 쓰레기를 버릴 수 있는 투입구가 있었고 각 세대들은 쓰레기봉지를 그 투입구에 넣었던 시절이 있었다. 지하의 쓰레기 보관함으로 떨어진 쓰레기봉지들은 매주 트럭에 실려 갔다. 미국 드라마 <프렌즈>에서도 그렇게 쓰레기를 버렸다.
“언제 적 이야기를 하시는 거예욧!”
그리고 실은 나도, 쓰레기봉지를 아래로 던진 기억이 난다. 쓰레기 투입구는 성인이라면 힘들겠지만 초등학교 저학년 어린이가 어깨를 들이밀면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컸다. 쓰레기를 버릴 때면 저 투입구 안으로 들어가면 어떻게 될까 생각했다. 쓰레기봉지가 잔뜩 쌓인 위로 푹신하게 떨어질 거니까 죽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투입구 안으로 쓰레기봉지를 넣고서 그것이 바닥에 닿아서 나는 ‘툭’ 하는 소리에 귀 기울이는 그 짧은 시간을 나는 제법 즐겼다. 그것이 사람이든 쓰레기이든, 낙하한다는 것은 매력적이다.
쓰레기의 종착지
박윤선 지난 화에 이어서_
“어? 누가 문자를 보냈네?
시인(이하 ㅅ): 응? 뭐가?
ㅎ: 요즘 세상에 무슨 ‘빨갱이’예요? 전쟁은 끝났다니깐!
ㅎ: 참…… 아저씨들이랑은 말이 안 통해!
ㅅ: 어디 가? 언제 돌아오는데?
ㅎ: 몰라요, 아저씨 같은 전쟁광들 때문에 다신 안 돌아올지도.
ㅅ: 누가 그렇댔나. 하도 우릴 너무 다른 사람 취급하는 것 같아서, 이 이야기 저 이야기 하게 된 거지. 딱히 다른 것 같지도 않은데 말이야.
ㅎ: 벌써 가세요? 짐은요?
ㅅ: 나 짐 없어.
“주소대로라면 여기 맞는데, 푯말이 어디 있단 거야?”
최(이하 ㅊ): 허허, 누구신지? 저를 어떻게?
ㅊ: 흠, 시력검사라……
ㅎ: 아, 그게 그러니까……
ㅎ: 하지만 최 선생님……
ㅎ: 저도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ㅎ: 제발요, 너무나 불편하고 힘들어서 찾아온 걸요.
ㅎ: ……할말이 없습니다.
ㅊ: 뭐라고? 그러니까 그 말은, 앞으로도 계속 편리한대로 쓰고 버리고 해도 된다 이거야? 난 잘못 없다, 이거냐고?
ㅊ: 당신, 계속 그러고 살 거야?
ㅎ: 안 그러겠습니다, 절대로요. ……한 번만 잘 봐주시면 안 될까요?
ㅎ: 감사합니다, 선생님!
ㅎ: 어느 게 노란색인지……
ㅊ: 거 참, 그냥 날 따라와요.
ㅎ: 만세! 최 선생님, 감사합니다!
ㅎ: 물론이죠, 선생님. 저게 쓰레기통인가요?
ㅊ: 허허, 당연하지!
ㅎ: 네, 그렇게 해주세요. 감사합니다.
_끝
comment
2017년 결성된 프로젝트 팀으로 우리의 일상을 호기심 어린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고자 한다. 팀 이름은 영어의 ‘comment’(코멘트)와 불어의 ‘comment’(꼬멍)의 중의적 의미를 지녔다. 멤버인 박성진과 박윤선은 대학교 때 디자인을 전공하며 만났고 졸업 후에는 디자인과 무관한 길을 가고 있다. 박성진은 서울과 성남을 오가며 소설쓰기를 비롯한 다양한 글쓰기를 하고 있으며, 박윤선은 앙굴렘에서 일러스트와 만화가로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2018/05/29
6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