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쓰레기의 4월

   박성진

   쓰레받기 프로젝트를 기획하게 된 것은, 나무로 된 보기 드문 쓰레기가 우리를―즉 나와 박윤선을― 찾아왔기 때문이었다. 원목으로 된 피아노라니. 그렇게 근사한 쓰레기는 처음이었다. 그 멋진 쓰레기를 버렸던 멋쟁이 이웃은 그후로는 도통 쓰레기가 없는지 혹은 아예 이사를 가버렸는지, 나는 그렇게 취향 좋은 쓰레기는 아직 만나보지 못하고 있다.
   쓰레받기 프로젝트를 하는 동안에 주변 사람들과 쓰레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적은 거의 없었다. 쓰레기가 대화의 소재가 될 일이란 어지간해서는 일어나지 않는 것이다. 그럼에도 4월은 가히 쓰레기의 달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것 같다. 나는, 내가 아는 모든 이들은, 우리는, 쓰레기를 이야기했다. 회사에서도 집에서도 카페에서도 술집에서도 말이다. 그것도 매우 열정적으로.
   재활용이 되는 것과 재활용이 안 되는 것, 재활용이 되는 줄 알았는데 실은 안 되는 것, 재활용이 되기는 하지만 솔직히 안 했으면 좋겠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가 여기저기에서 들려왔다. 재활용이 될 줄 알고 애써 다듬어놓았지만 결국 버려야만 하는 것들이 참 많았다.
   4월의 절반에 이르는 기간 동안 아파트 단지에서는 스티로폼과 비닐과 플라스틱이 가득 담긴 쓰레기봉지를 볼 수 있었다. ‘봉지’라는 귀여운 이름으로 불리기에는 너무나 거대한, 내 키보다 더 큰 봉지들이었다. 투명한 봉지는 원래도 하얀빛이 감돌았고 그 안에 들어 있는 대부분의 쓰레기는 흰색이었다. 색감이 균일한 것이, 보기에 그렇게 나쁘지는 않았다.
   회사와 집에서는 쓰레기를 재활용하는 방법에 대한 재교육이 수시로 이루어졌다. 비닐을 벗기고, 칼로 뚜껑을 분리하고, 세척하고…… 복잡하다며 어려워하는 나에게 K팀장은 산뜻하게 설명했다.
   “대충하지 말고 열심히 하라는 말이에요.”
   재활용 방침을 열심히 따르다보니 어느덧 스티로폼과 비닐과 플라스틱이 가득 담긴 쓰레기봉지들이 아파트 단지에서 사라졌다. 나는 K팀장과 커피를 마실 때 “드디어 저희 아파트 단지도 쓰레기 수거를 해가게 되었어요!” 하고 전했다. 물론 그건 나의 열심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정책과 계약과 방침에 따른 결과일 뿐이라는 것을 잘 안다. K팀장 또한 그렇게 지적했다.
   “어머나, 정말요? 호호호.”
   “당연하죠, 순진하시기는.”
   민주당 경선 이야기에 빠져 있던 K팀장은 화제를 돌려, 지금껏 내가 저질렀던 순진한 실수들을 지적하기 시작했다. 나는 계속 호호호 웃기만 했다.
   그 주말에는 할머니를 방문했다. 할머니는 서울 강서구에 사신다. 특수학교 부지에 한방병원을 짓자는 공약을 내세운 김성태 의원의 지역구이지만 나도 할머니도 그런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우리는 항상 평화롭고 무해한 화제만을 나눈다. 언제 할머니가 돌아가셔도 후회되지 않도록.
   “재활용을 이런 식으로 내놓으면 안 돼욧! 전부 떼내세욧!”
   아, 그러나 지난 4월에는 참지 못했다. 나는 할머니가 모아놓은 재활용 쓰레기함을 뒤지며 하나하나 골라냈다. 이건 이래서 잘못됐고 저건 저래서 틀렸고, 요즘에도 이런 식으로 버리는 사람이 어디 있어욧! 다들 할머니를 욕할 거라구욧! 욕먹으면서 오래 살면 뭐가 좋나욧! 이렇게 소리를 질러도 할머니는 내 말의 반밖에 못 알아듣는다. 귀가 어둡지만 노인네처럼 보이기 싫다며 보청기를 끼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할머니는 평화롭게 말했다.
   “옛날에는 쓰레기를 위에서 아래로 던졌어.”
   아파트 복도에는 쓰레기를 버릴 수 있는 투입구가 있었고 각 세대들은 쓰레기봉지를 그 투입구에 넣었던 시절이 있었다. 지하의 쓰레기 보관함으로 떨어진 쓰레기봉지들은 매주 트럭에 실려 갔다. 미국 드라마 <프렌즈>에서도 그렇게 쓰레기를 버렸다.
   “언제 적 이야기를 하시는 거예욧!”
   그리고 실은 나도, 쓰레기봉지를 아래로 던진 기억이 난다. 쓰레기 투입구는 성인이라면 힘들겠지만 초등학교 저학년 어린이가 어깨를 들이밀면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컸다. 쓰레기를 버릴 때면 저 투입구 안으로 들어가면 어떻게 될까 생각했다. 쓰레기봉지가 잔뜩 쌓인 위로 푹신하게 떨어질 거니까 죽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투입구 안으로 쓰레기봉지를 넣고서 그것이 바닥에 닿아서 나는 ‘툭’ 하는 소리에 귀 기울이는 그 짧은 시간을 나는 제법 즐겼다. 그것이 사람이든 쓰레기이든, 낙하한다는 것은 매력적이다.


   쓰레기의 종착지

   박윤선

   지난 화에 이어서_

   띠리링!
   “어? 누가 문자를 보냈네?

   “심심하던 차에 잘됐군. 내일은 여기 가야지!”

   행인(이하 ㅎ): 시인 아저씨, 밖에서 뭘 하고 다니길래 이런 문자를 받아요?
   시인(이하 ㅅ): 응? 뭐가?
   ㅎ: 요즘 세상에 무슨 ‘빨갱이’예요? 전쟁은 끝났다니깐!

   ㅅ: 요즘 젊은 것들은 참…… 지난번 귤 껍데기 사태 기억 안 나나?
   ㅎ: 참…… 아저씨들이랑은 말이 안 통해!

   ㅎ: 그나저나 시인 아저씨, 나 곧 해외여행 가니까 머무를 곳 알아보세요.
   ㅅ: 어디 가? 언제 돌아오는데?
   ㅎ: 몰라요, 아저씨 같은 전쟁광들 때문에 다신 안 돌아올지도.

   ㅅ: 잠깐, 여행지가 프랑스의 A시야? 크하하하! 미친놈들 피해 간다는 곳이 거기야?

   ㅅ: 젊은이, 혹시 ‘헤네 드 구에’(Resnier de Goue. 1792~1811)라는 사람 들어봤나? 나폴레옹 시절 장군이었는데, 젊은이가 간다는 동네에 살았어. 인류 역사상 최초로 하늘을 난 사람이지.

   ㅅ: 이 사람이 어쩌다 비행에 관심을 가졌느냐 하면…… 영국군 침입에 대비해 공군을 만들고 싶어했다지. 근데 그 시절은 기구 정도가 겨우 발명되었을 때거든?

   ㅅ: 그래서 이 양반이 연구 끝에 날 수 있는 기계를 만든 거지. 그걸 매고 시험비행 한다고 성벽에서도 뛰어내렸는데, 그때 나이가 72세였다더군. 죽진 않았어. 한 300미터 날고, 착지하면서 다리 하나만 부러졌대. 그뒤로 10년은 더 살았어.

   ㅅ: 그뿐인 줄 아나? 자기 집에 누가 쳐들어올까봐 집 안 계단을 죄다 없애고, 층 전체를 올렸다 내렸다 할 수 있게 개조하기도 했다더군. 이 사람, 어떤 것 같아? 전쟁 때문에 정신이 살짝 돈 노인네 같지?

   ㅅ: 근데 말이야, 비행기가 지금처럼 아무나 다 타고 다닐 수 있도록 개선된 건 세계대전 덕분이라지? 지금 젊은이가 쓰는 인터넷도 처음엔 군사용이었다 하고…… 따지고 보면 현대 기술 문명에서 전쟁이랑 무관한 게 없어요!

   ㅎ: 아니, 그래서요? 전쟁이 좋단 소리예요?
   ㅅ: 누가 그렇댔나. 하도 우릴 너무 다른 사람 취급하는 것 같아서, 이 이야기 저 이야기 하게 된 거지. 딱히 다른 것 같지도 않은데 말이야.

   ㅅ: 그럼 이만. 그동안 고마웠소. 나는 집회 가서 갈 곳 찾아보겠소. 여행 잘하시구랴.
   ㅎ: 벌써 가세요? 짐은요?
   ㅅ: 나 짐 없어.

   멀어지는 시인을 보면서, 행인은 무슨 외국인이 한국말을 저렇게 잘할까, 근데 저 사람은 몇 살일까 생각했다. 며칠 뒤 시인은 행인에게 잘 곳을 찾았으니 걱정 말란 문자를 보내왔다.

   그리고 혹시 시간 나면 가보라며, 구에 장군이 시험비행을 위해 뛰어내렸다는 성벽 위치를 알려주었다.

   그곳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아찔하다고. 70대에 거기에서 뛰어내린다면 자살 생각이 나지 않았을까 싶다면서.

   여하간 그곳에 구에 장군 관련된 푯말이 있으니, 찾기 쉬울 것이라고도 했는데……
   “주소대로라면 여기 맞는데, 푯말이 어디 있단 거야?”

   “속은 건가? 그 아저씬 왜 있지도 않은 사람 이야기를 지어내고 그러는 거야. ……어라?”

   행인(이하 ㅎ): 저기, ‘최 안과’ 선생님 아니세요? 반갑습니다!
   최(이하 ㅊ): 허허, 누구신지? 저를 어떻게?

   ㅎ: 저는 내일 선생님을 뵐 시력검사 예약 환자입니다. 이날을 6개월이나 기다렸다구요!
   ㅊ: 흠, 시력검사라……

   ㅊ: 이봐요, 날 바보로 아는군! 시력검사는 핑계고, 당신 손목에 달린 비닐봉지 떼려고 온 한국 사람 아니오?
   ㅎ: 아, 그게 그러니까……

   ㅊ: 어쩐지! 이 동네에 웬 한국인이야 했지. 돌아가요. 그런 불법 시술 안 합니다!
   ㅎ: 하지만 최 선생님……

   ㅊ: 내가 그 시술 때문에 얼마나 곤란을 겪었는지 아시오? 여기까지 찾아온 사람이면, 내 사정을 대강 들었을 텐데요. 염치도 없지!
   ㅎ: 저도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ㅊ: 안타까우면 그냥 돌아가시오. 그깟 비닐봉지 달고 다니는 게 뭐가 힘들다고 여기까지 찾아오느냔 말이지!
   ㅎ: 제발요, 너무나 불편하고 힘들어서 찾아온 걸요.

   ㅊ: 불편하다? 비닐 썩는 데 100년이 걸린다는 거 아시오? 손목에서 비닐봉지를 떼어내주면 갖다버릴 거 아니오? 그 다음에 새 비닐봉지를 또 쓰고 버리고, 쓰고 버리고 하겠지. 지구는 얼마나 불편하겠어!
   ㅎ: ……할말이 없습니다.

   ㅎ: 그런데 선생님, 과학자들이 플라스틱을 먹어치우는 신종 효소를 발견했다던데요? 아마 비닐봉지도……
   ㅊ: 뭐라고? 그러니까 그 말은, 앞으로도 계속 편리한대로 쓰고 버리고 해도 된다 이거야? 난 잘못 없다, 이거냐고?

   ㅎ: 아뇨, 아닙니다!
   ㅊ: 당신, 계속 그러고 살 거야?
   ㅎ: 안 그러겠습니다, 절대로요. ……한 번만 잘 봐주시면 안 될까요?

   ㅊ: 허허, 좋소. 그 약속 지키시오. 그럼 시술을 어디서 비밀리에 한담.
   ㅎ: 감사합니다, 선생님!

   ㅊ: 이봐, 저 노란색 차 뒤로 갑시다.
   ㅎ: 어느 게 노란색인지……

   ㅊ: 거 참, 그냥 날 따라와요.

   몇 분이 흐르고 행인은 드디어 손목에서 비닐봉지를 떼어낸다.
   ㅎ: 만세! 최 선생님, 감사합니다!

   ㅊ: 이봐, 젊은이. ‘쓰레기는 쓰레기통에’, 알지?
   ㅎ: 물론이죠, 선생님. 저게 쓰레기통인가요?
   ㅊ: 허허, 당연하지!

   ㅊ: 거기다 버리고, 뚜껑도 잘 닫으라고. 자, 내일 예약해둔 시력검사는 취소시키겠소.
   ㅎ: 네, 그렇게 해주세요. 감사합니다.

   그렇게 행인은 한국으로 돌아가고……

   최 안과 선생은 하던 조깅 계속한다.


   _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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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결성된 프로젝트 팀으로 우리의 일상을 호기심 어린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고자 한다. 팀 이름은 영어의 ‘comment’(코멘트)와 불어의 ‘comment’(꼬멍)의 중의적 의미를 지녔다. 멤버인 박성진과 박윤선은 대학교 때 디자인을 전공하며 만났고 졸업 후에는 디자인과 무관한 길을 가고 있다. 박성진은 서울과 성남을 오가며 소설쓰기를 비롯한 다양한 글쓰기를 하고 있으며, 박윤선은 앙굴렘에서 일러스트와 만화가로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2018/05/29
6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