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모구모구
3화 정체성-리뷰
전시 〈페터 팝스트〉에 다녀오다
Q0. 지금까지 뭐 했지?
리뷰 뭘까?
리뷰모구모구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기록으로 남긴다. 1화와 2화를 거쳐 ‘리뷰 뭘까?’ 하는 질문은 이렇게 구체화되었다.
“리뷰는 원본으로부터 얼마나 멀어질 수 있는가?”
“원본으로부터 멀어진 리뷰는 어떤 반응을 생성할 수 있는가?”
“우리는 리뷰로 대화할 수 있을까?”
이런 질문에 둘러싸인 리뷰모구모구의 마음을 사로잡은 전시가 있었다.
“무대라는 공간이 춤, 무용수에 대한 리뷰가 될 수 있을까?”
Q1. 전시를 어떻게 보았나?
주네 : 전시는 4개의 섹션으로 나뉘어 있었다. 각각의 무대는 나무, 소금, 풀, 꽃 등으로 가득 차 있는 공간이었다. 시각적 요소가 풍성해서 보기에 좋았지만 그곳에서 움직여야 하는 무용수의 입장에서는 장애물로 여겨질 것 같았다. 그런 무대 위에서 춤을 출 때 장애물은 무용수와 어떤 영향을 주고받을까? PINK 섹션의 카네이션 ‘위로하기’1) 라는 퍼포먼스는 장애물과 무용수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은 결과처럼 보였다. 각각의 장애물은 단순히 움직임을 제한하는 차원에서 존재하지 않고 무용수의 움직임과 상호작용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페터 팝스트가 만든 무대 위에 펼쳐지는 피나 바우쉬의 안무는 어떤 몸짓이었을까? ‘사진의 방’에서 제자리를 회전하며 움직이는 양면의 사진이 구현하는 순간의 동작들이 이 궁금증에 답을 해준다는 인상을 받았다. 비처럼 내리는 물을 맞으며 상승하는 듯한 역동적 자세를 취하기도 하고 장미꽃 언덕 위로 뛰어오르기도 하는 무용수들. 그들의 몸짓은 쏟아지는 물, 꽃 무더기와 상호작용하며 텅 빈 무대였다면 만들어내지 못했을 색다른 감각을 연출한다. 시각, 청각, 그리고 충분히 상상 가능한 촉각적 느낌으로.
시루 : 규격 안에서의 자유로움을 느꼈다. 모순적이지만 불가능한 말은 아닌 것 같다. 특히 회전하는 사진이 인상적이었다. 사진이 돌아가자 서로 다른 풍경과 풍경이 면을 맞대면서 새로운 공간이 펼쳐졌다. 사진이 돌아가면서 공간의 분할이 달라지고 사진의 양면들, 면면을 구성하는 장면이 매 초마다 달라졌다. 우리는 모두 각자 흩어져서 걸었는데 면을 맞댔다가 떨어지는 사진의 벽 사이로 사람들의 모습이 사진 찍히듯 눈에 박혔다. 동시에 공간을 구성하는 사진이 회전할 때마다 포착되는 장면 자체가 달라졌다. 그때마다 사람들의 정적이었던 상태가 다시 역동적으로 느껴졌다. 특히 남자가 알몸으로 지팡이를 쥐고 있는 사진이 기억에 남는다. 그 사진을 보면서 ‘사진 이미지로서의 몸’이 환기하는 육체성에 대해 생각했다. 나는 육체가 주는 가장 직관적 감각이란 촉각이라고 생각하는데 실물이 아닌 사진에서도 그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내가 보는 ‘몸’은 사진에 불과하지만 그것을 통해 몸의 냄새, 온기, 촉각적 감각을 떠올릴 수 있었다. ‘사진’이라는 시각적, 정적 감각으로부터 피부에 맞닿는 감각으로 확장되는 역동적 경험이 일종의 육체적 해방처럼 느껴졌다.
재구 : “나는 항상 그들을 위한 무대를 만들었고, 그들은 무대를 이어받아 나를 해방시켰다.” 전시관 옥상에 전시되어 있던 페터 팝스트의 말이다. 나는 이 말을 빌려 협업 그리고 해방의 관점에서 전시에 대해 말하고 싶다. 협업은 서로를 가장 강력하게 구속하는 일인 동시에 가장 자유롭게 해방시켜줄 수 있는 방법이다. 타인이라는 존재는 협업에서 제약으로 작용하기도 하지만 협업자가 나의 의도와 전혀 다른 방향으로 공동의 작업물을 발전시켜가기도 한다. 이를 지켜볼 때 나는 커다란 영감과 함께 해방감을 느낀다. 무대를 만드는 페터 팝스트 또한 자신의 의도를 배반하며 무대를 운용하는 무용수를 보며 같은 기분을 느꼈을 것 같다. 무대는 그 자체로 무용수에게 구속의 공간이지만 구속이 있기에 해방 또한 존재할 수 있다. 우리에게 주어진 구속을 우리는 어떻게 해방으로 이끌어갈 수 있을까? 이는 리뷰에도 적용되는 질문 같다. 리뷰는 원본과의 협업이다. 그래서 원본에 구속되지만, 리뷰는 원본의 손을 잡고 그것을 창작자가 미처 상상하지 못했던 차원까지 데려갈 수 있다. 구속을 명확하게 인지한 채 그로부터 최대한 멀리 달아나보고자 하는 힘으로 리뷰는 해방을 창조할 수 있다.
재은 : 나는 코리오그래피 그리고 힙합 장르의 춤을 추는 스트리트 댄서다. 스트리트 댄스는 파티 문화에서 시작된 것이기 때문에 정형화된 이론이나 동작보다 즉흥, 자유로운 표현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런데 전시를 보며, 모든 춤이 결국 무대, 음악이라는 제약에 항상 묶여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나는 음악에 완벽하게 맞추면서도 음악을 넘어서고 싶다는 모순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고 그를 몸짓으로 표현하고 싶었다.
리뷰모구모구
시를 쓰고 미래를 상상하는 재구, 리뷰를 많이 쓰고 의문을 던지는 시루, 덕질을 하고 대화를 중재하는 주네.
2019/10/29
2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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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INK 섹션의 무대 공간 바닥에는 움직이다가 건드리면 철사가 꺾이는 조화 카네이션이 가득 꽂혀 있었다. 누군가의 움직임에 의해 카네이션이 꺾였을 때 그것을 바로 세우는 것을 “카네이션 위로하기”라고 부른다. 이 퍼포먼스는 피나 바우쉬의 〈카네이션〉 무대에서 비롯되었고 이번에 우리가 다녀온 전시에서도 관객 참여형 퍼포먼스로 이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