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ng의 예언은 매달 세 개의 이미지로 여러분께 공개됩니다. 예언이 여러분의 일상에 미친 영향을 공유하고 싶다면 다음의 링크(바로가기)로 접속해주세요. 더 많은 데이터는 더 정밀한 예언을 가능하게 합니다.(2000년 1월 1일 P의 첫 메시지)

   1

   쌍둥이는 섬에서 태어났다. 이십 년 전 일이다.
   섬에는 제대로 된 이름이 없다. 이름을 갖기에 너무 작고 고립된 섬이다. 그곳에서 태어난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몇 개의 별명을 이름처럼 삼아왔다고 한다. 강치도라거나, 작살 섬이라거나.
   작살이라는 단어는 육지와 마주하는 해안 절벽의 모양에서 유래한 듯하다. 아래에서 올려다본 절벽의 모양새가 길쭉한 삼각형으로 실제 작살의 윗부분을 닮았기 때문이다. 절벽의 겉면은 그야말로 작살이 난 모양, 이는 주기적으로 몰려오는 풍랑 때문이다. 사람들이 바다에게 이길 도리가 없던 시절에는 풍랑이 큰 문제가 되었다. 누구 하나 섬에 들어오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섬에서 난 사람들―불운한 사람들은 살아남기 위하여 온갖 일들을 익혔다. 벼랑에서 자라나는 식물들을 뜯어먹고, 오래 전 사라진 강치들은 작살로 사냥하여 구워먹었다. 그러한 역사들 또한 섬의 별명에 한 역할을 했을 것이다.
   지금 섬에는 창을 든 사람들도 강치도 없다. 인천 포구에서부터 밀려온 쓰레기들이 해안가에서 출렁일 뿐이다. 번쩍거리고 덩치가 큰 것들은 물속의 바위에 걸려 해초마냥 넘실거린다. 선박의 부품으로 보이는 쇳덩이로부터, 용도를 알 수 없이 거대한 포대자루까지 물 위에서 완만한 고리 모양을 그리며 흐늘거린다.
   종종 쓰레기가 아닌 것들도 섬으로 밀려오기도 한다. 드문 일이지만, 때로는 사람들도 떠내려오는 것이다. 쌍둥이의 어머니처럼.
   쌍둥이의 어머니는 서쪽 땅에서 왔다. 눈꺼풀이 짙고 눈썹은 굵었으나 팔다리의 뼈는 허약했다. 아이를 가진 지는 일곱 달 째였다. 배는 별 수 없이 불룩했다. 그해 여름 인천에 들어서 쌍둥이를 낳을 계획이었다. 청결하고 반짝이는 천장 아래, 소독약 냄새 속에서. 어머니를 태워온 사람들은 배를 섬의 해안가에 잠시 세웠다. 풍랑이 잦아들 때까지 기다리자고 했다. 여기서 인천까지는 반나절이면 가니까,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라고 이야기했다.
   다음 날 새벽 P!ng―널리 퍼지는 이름을 따르자면, P의 예언―이 섬에 당도했다. 예언이란 P라는 이름의 기계가 내놓는 세 장의 사진들로, 파도와 무너진 건물 따위의 정경을 담고 있다. 육지의 사람들이 바쁘게 이 사진들을 해석했다. 가장 신빙성 있는 이론에 따르면 이 사진은 ‘보다 심각한 뜻’, 그러니까 “흘러온 사람들이 우리를 무너뜨린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었다. 흘러온 사람이라니, 이 얼마나 풀이하기 쉬운 단어인가.
   쌍둥이의 어머니는 P에 대해서도, 예언에 관해서도 잘 몰랐다.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의 나라에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예언에 집착하는지 또한 알 리가 없었다. 그러나 서울에서부터 시작한 시위는 쉽게 끝나지 않았다. 육지의 사람들은 광장을 수두룩 채웠다. 배를 세운 사람들이 말하길, 큰일 났네, 지금 가면 죽어요. 당시 쌍둥이들은 배 속에 있었으므로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어머니만이 대표자로 답했다. 그래요, 하는 수 없죠. 그때 어머니는 스물아홉 살이었으며, 딱 그만큼의 삶밖에 경험해보지 못했다. 다가오는 세상은 낯선 에너지로 부글거리는 중이었고, 배 속이 움직일 때마다 심장도 이상한 박자로 뛰었다. 일 났네, 어머니는 생각했다. 자신의 배 속에서 자라나는 게 전혀 낯선 세계처럼 느껴졌던 것이다. 배 속의 것들은 폭삭 가라앉은 건물이나 뜻밖의 해일 같았다. 두 달 뒤 그는 작살 섬의 하나뿐인 병원에서 쌍둥이를 낳았다. 우리가 우리라고 부르는 우리를.

   우리는 어머니의 뼈와 내장을 허물고 나왔다. 사람들은 그렇게 태어난다. 여자들을 통해서. 다만 어떤 여자들은 그런 일을 버텨내기에 썩 약하다. 섬의 병원은 건물도 의사도 낡고 오래된 곳, 병원이라기보다 의원이라는 이름이 더 어울렸다. 현대 기술이나 철저한 위생 등의 단어와는 거리가 멀었다. 어머니의 몸은 약한 축에 속했다. 멍과 고통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런 것치고는 꽤 오랜 시간을 함께했다. 우리 외에도 섬에 떠밀려온 사람이 왕왕 있었으므로, 그들과 외곽의 빈 창고 안에다가 자리를 잡았다. 벽 사이로 방수포를 치고, 합판으로 댄 탁자며 침대 따위를 갖다두었다. 우리는 몸이 다 자라기 전부터 여러 가지 일을 배웠다. 힘을 쓰는 일은 무엇이든 익혔고, 청소도구들을 신처럼 다루었으며, 거대한 트럭들을 타고 섬을 돌아다녔다. 대신 모든 것은 숨어서 했다.
   P는 매달 예언을 내놓았다. 예언은 언제나 사진 세 장, 별다른 특징도 없어 보이는데 육지 사람들은 이것들을 풀이하는 일에 열을 올렸다. 식지 않는 유행이었다. P는 해석에 관하여 답하는 법이 없고, 예언이 맞는지 확인하는 방법은 실제로 미래를 맞이하는 일 뿐이었다. 미래는 언제 어디서나 마련되어 있다. 도박은 끝나는 법이 없었다.
   지난주 어머니는 우리에게 두 가지 물건을 건넸다. 제법 긴 숫자들이 찍힌 통장, 세 글자 이름이 찍힌 명함. 어머니가 말했다. 이 숫자들은 너희를 바다 너머로 건너가게 할 거야. 이 남자는 너희를 육지에서 살아남게 해줄 거고. 모든 것은 말 그대로 어머니 최후의 보루였다. 사실은 너희를 주는 대신 내가 쓰고 싶었는데, 하고 어머니는 말했다. 하지만 이왕 건너가는 것, 병든 몸 하나보다 건강한 몸 두 개가 가는 게 낫지 않겠느냐고.
   이레 후에 우리는 어머니를 불 속에 넣었다. 어머니는 잘 탔다. 너무 말라서 그런 것 같았다. 항아리에 부서진 어머니를 넣고서 배에 올랐다. 재를 뿌리고 다시 섬으로 돌아왔을 때는 이미 황혼녘이었다. 작살 섬의 해안가는 마지막 빛에 잠겨 어둑한 붉은색을 띠었다. 수평선으로 어선의 빛이 신호처럼 아물거렸다. 배들은 인천의 것, 섬에서도 훤히 보였다. 그토록 가까운 거리였다. 작살 섬의 의사는 어머니의 고통이 육지 병원에서는 쉽게 해결될 일일지도 모르겠다, 중얼거린 적 있었다.
   배에서 내린 뒤에도 우리는 오랫동안 해안가에 앉아 있었다. 우리 중 하나가 말했다. 예언이 새로 올라왔어, 그다음 상대방에게 보여주었다.

2020년 5월 P의 예언-이미지.

   ―이게 뭘까?
   ―글쎄.
   예언은 곧 검색어 순위에 오르고, 사람들은 풀이를 시작했다. 우리는 처음으로 그 짓거리에 참여해보기로 했다. 아직은 쌀쌀한 오월의 해안가에 앉아 사진들을 보았다.
   ―이 여자들은 어머니야. 이렇게 좁은 길을 지나서(손끝이 벽돌 건물들 사이로 난 통로의 사진을 가리켰다) 천국에 도착하고, 호령하는 거지.
   ―여자가 안고 있는 애는 누군데?
   ―그건 우리야. 햇볕을 바라보는 거지. 우리는 졸라 잘 살 거야.
   우리는 서로의 눈을 바라보았다. 어제까지는 어머니와 함께 있었다. 새벽부터는 어머니가 떠난 몸을 바라보며 P가 존재하지 않았을 세계를 상상했다. 어쩔 수가 없었다. 무너지는 벽이나 몰려오는 파도의 사진이 나타나지 않았더라면, 어머니는 지금 이 몸이면서 동시에 어머니 그 자체로 있지 않았을까 자꾸만 생각하게 되었다.
   우리 중 하나가 말했다.
   ―나는 P를 증오해.
   ―나도.
   ―기회가 된다면, 죽여버릴 거야.
   나도 그럴 거야, 그 말을 내뱉고서는 함께 일어났다. 한 명이 한 명의 손을 잡고 일으켜세워주었다. 우리는 어머니의 뼈 한 줌은 챙겼다. 작은 가방에 넣어서 큰 가방에 넣었다. 이것은 이제 우리와 함께 바다를 건널 것이다.


   2

2020년 5월 경기도, 사민은 P의 아카이브에서 알 수 없는 이미지를 발견한다.

   작업 노트
※스튜디오 풀옵션의 AI는 지난 5월, 구글의 뉴스 데이터를 모조리 빨아들인 뒤 재조립했다. 위의 세 가지 문장은 AI가 수집한 데이터를 완전히 다른 배열들로 새롭게 추출한 것이다. 이는 스튜디오 풀옵션이 본 프로젝트를 제작하는 첫번째와 두번째 단계에 해당한다. (〈p!ng〉의 프롤로그에서 나타나는 첫번째 단계 참고. 바로가기) 우리는 위 문장들을 구글에 던져 건져낸 이미지들을 P의 예언 삼아 1화를 제작하였다. 풀옵션의 AI와 P를 통해 두 세계는 미미하게 연결되고 있다. 위 모든 과정은 프로그래밍 언어 Python을 통하여 제작되었다.



스튜디오 풀옵션

텍스트와 이미지를 주고받으며 서로를 번역합니다. 가능한 멀리까지 공놀이를 지속하며 오해를 확장하고자 합니다. 글 쓰는 함윤이와 디자인 하는 김형도가 함께 만들었습니다.

2020/06/30
31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