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불확실한 어느 날의 기억



   코로나19가 세상에 퍼지기 전, 수진과 나는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하며 헤어졌다. 수진은 호주로 떠났고 나는 한국에 남았으나 우리는 곧 만날 것이라 생각했다. 언젠가 수진이 도쿄로 불쑥 찾아왔던 여름과 12월 어느 날, 역시나 여름이었던 멜버른에 수진을 만나러 날아갔던 날을 생생하게 기억하므로. 시간과 물질이 허락하는 한 우리는 반드시 만날 것이라고 함부로 확신했다.
   수진이 내게 코로나 이후를 함께 상상해보자고 제안했던 2021년 5월, 호주는 가을이 한창이었고, 한국은 봄이 끝나가고 있었다. 어쩐지 닮은 가을과 봄이었지만 7,020km를 떨어져 지내는 동안 세상은 많은 것이 바뀌어 있었다. 우리는 일상을 나누는 대신 잠시 침묵했다. 세계는 그 순간에도 빠르게 변해가고 있었다. 때문에 ‘파도’를 만들고 이 프로젝트에 뛰어든 건 당연한 건지도 모르겠다. 단 하나도 확신할 수 없는 현실을 극복할 수 있는 것은 불확실성을 인정해버리는 방법밖에 없었으니까. 그렇게 나는 미래연구로, 수진은 소설쓰기로 팬데믹 이후라는 망망대해를 들여다보기로 했다.


   1. 팬데믹 시대를 관통하는 주요 미래 이슈 찾기



   팬데믹 이후 작가의 미래를 전망하기 위해 우리는 다양한 ‘미래 이슈’를 찾고 각 이슈의 영향력과 불확실성을 측정하기로 했다. 여기서 말하는 미래 이슈란 향후 세상을 변화시킬 주요 사건으로서 앞으로 세계에 큰 파급력을 가져올 이슈, 혹은 앞으로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불확실한 이슈를 말한다.
   우리는 먼저 STEEP에 따라 카테고리별 두 개씩 미래 이슈를 선정했다.1) 각자 팬데믹 시대에 주요한 미래 이슈를 열 개씩 발굴한 뒤 관련 자료와 이슈 선정 이유를 공유하고 토론했다.

팬데믹 시대의 주요 미래 변수

S: 사회 T: 과학기술 En: 환경 Ec: 경제 P: 정치
공통 - 경제 양극화 심화 - AI 기술 발달과 무인화 - 자국중심주의 확산과 높아지는 국경
수진 - 정신 건강에 대한 관심 및 중요성 증가 - 가상현실 기술 활용 증가 - 경제정책 vs 환경정책- 물리적 이동 감소와 환경 개선 - 실업률 증가와 직업 구조 변화- 직업 불안정성으로 인한 거주의 유목화 - 인종 정체성 강화
윤하 - 여성의 경제 활동 축소 및 권리 하락 - 디지털 인프라 발달 및 활용 - 개인의 안전 vs 공공을 위한 환경 규제- 변이 바이러스 확산과 지속되는 팬데믹 - 빅테크 기업 성장과 정보 독식- 플랫폼 기업의 성장 - 통제사회


   1) 사회 : 양극화, 코로나 블루, 여성 노동

   사회 분야에서는 ‘경제 양극화 심화’가 공통 미래 이슈로 선정되었다. 코로나 이후 경제 양극화는 점점 가속화되고 있으며 이러한 격차는 국내뿐 아니라 국가와 국가 간에도 심해지는 추세이다.

   수진이 주목한 또하나의 이슈는 ‘정신 건강에 대한 관심 및 중요성 증가’였다. OECD Forum에서 발표한 자료를 보면 OECD 국가에서 코로나 이후 우울과 불안 경험이 급격하게 증가했음을 알 수 있다.2)
   또한 호주청년재단(The Foundation for Young Australians)에서 2020년 6월 18세부터 24세까지의 호주 청년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55%의 청년이 팬데믹이 정신 건강에 장기적으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염려하는 것으로 나타났다.3) 이는 팬데믹 이후 급증한 정신 건강 문제가 장기적으로 이어질 것을 시사한다.
   윤하가 주목한 것은 ‘여성의 경제 활동 축소 및 권리 하락’이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2021년 4월 발표한 보고 자료에 따르면 코로나19 위기 초기인 2020년 3월 핵심노동연령인 25세부터 54세까지 여성 취업자 수는 1년 전보다 54만1000명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4) 이는 코로나19 이후 여성 종사자 비율이 높은 서비스직의 충격을 반영한 결과인 동시에 가정 내 돌봄 부담이 늘어나 고용을 포기한 기혼 여성이 많음을 보여준다.

   2) 과학기술 : AI, VR(virtual reality), 디지털 인프라

   과학기술 이슈에서는 ‘AI 기술 발달과 무인화’가 공통 미래 이슈로 선정되었다. 코로나19 이후 자리잡은 비대면 문화와 함께 AI 기술은 사회 전 분야에 대한 무인화를 가속화하고 있다. 무인 계산대 등 서비스직뿐 아니라 2021년 하반기부터는 은행 업무에도 AI가 도입될 예정이다.5)

   이와 함께 수진은 ‘가상현실 기술 활용’을 윤하는 ‘디지털 인프라 발달 및 활용’을 주요 이슈로 보았다. 두 이슈 역시 비대면 문화의 확산과 함께 적극적으로 활용되고 있는 기술로서 원격의료, 온라인 교육, 로봇 활용, 메타버스 활용 등 과거에는 선택적으로 활용하던 기술을 이제는 보편적인 삶의 기준으로 옮겨오고 있다.6)

   3) 환경 : 환경과 경제 정책의 줄다리기, 끝나지 않는 팬데믹

   환경 이슈에서 수진이 주목한 것은 ‘경제정책 vs 환경정책’과 ‘물리적 이동 감소와 환경 개선’이었다. Australian Academy of Science에서는 코로나바이러스가 이산화탄소 연간 배출량의 감소를 유발할 것이며, 이는 20세기 이후 최대치가 될 것이라는 연구 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7) 이를 통해 ‘사회적 거리두기’에 따른 물리적 이동 감소가 환경 개선을 가져올 것으로 예측할 수 있으나 동시에 팬데믹으로 인한 경제 불황이 환경정책의 규제 완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8)

   윤하가 주목한 이슈는 ‘개인의 안전 vs 공공을 위한 환경 규제’와 ‘변이 바이러스 확산과 지속되는 팬데믹’이었다. 첫번째 이슈는 코로나19 이전 점점 강조되던 친환경 가치가 코로나19 이후 안전 쪽으로 선회한 변화에 주목한 것이었다. 일회용 마스크가 필수품이 되고 배달 문화가 일상이 되어버린 지금 환경파괴에 대한 걱정은 안전 보장보다 우선되지 않는다. 두번째 이슈는 변이 바이러스 등으로 팬데믹이 종식되지 않아 감염병 관리가 삶의 1순위가 되는 모습이었다. 코로나19는 끝나더라도 일상적으로 감염병을 대비하는 문화가 자리잡아 백신 접종 여부 등 건강 상태에 따라 공간 이용 범위가 달라지거나 체온 측정, 마스크 착용, 소독 등의 방역 문화 또한 계속 발달할 가능성이 있다.

   4) 경제 : 렌트형 주거, 플랫폼 비즈니스

   경제 이슈에서 수진이 주목한 것은 ‘실업률 증가와 직업 구조 변화’와 ‘직업 불안정성으로 인한 거주의 유목화’였다. 팬데믹으로 인한 실업률 증가가 장기적인 고용 불안정으로 이어지고 이에 따라 집을 구매하기보다 렌트하여 살아가는 주거 유목민이 증가할 것으로 전망한 것이다.9)
   윤하가 주목한 이슈는 ‘빅테크 기업 성장과 정보 독식’과 ‘플랫폼 기업의 성장’이었다. 빅테크 기업의 성장세는 2009년과 2019년 전 세계 시가총액 Top10 기업을 비교해 보면 알 수 있는데 2009년 두 개뿐이던 IT 기업은 2019년 일곱 개로 늘었으며, 코로나19 이후 빅테크 기업의 성장세는 더욱 커지고 있다. 구글 알파벳의 경우 코로나19 초기에는 타격을 입기도 했지만 2021년 2분기 실적을 보면 전년 대비 실적이 31%나 상승했으며 이는 2분기 역대 최고 실적이기도 하다. 빅테크 기업의 성장은 산업 구조의 변화를 보여줄 뿐 아니라 온라인 활용이 오프라인 세계만큼 중요해진 라이프스타일 변화, 정보 독점에 따른 소수 IT 기업의 영향력 확장까지도 전망해볼 수 있다.10)

   5) 정치 : 인종, 통제사회

   정치 이슈에서는 ‘자국중심주의 확산과 높아지는 국경’이 공통 미래 이슈로 선정되었다. 코로나19 이후 국가 간 이동이 제한되면서 과거의 활발한 국제 교류도 멈춰버렸다. 이러한 이동의 정체는 국가 간의 협력보다는 생존을 목표로 한 자국중심주의를 확산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보았다. 수진은 이러한 흐름이 1화에서 언급하였던 ‘인종 정체성 강화’로 이어진다고 예측하였고, 윤하는 공공의 안전을 우선시하기 위해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통제사회’로 갈 수 있다고 보았다.


   2. 팬데믹 시대를 대표하는 열일곱 개의 미래 이슈


   우리는 토론을 통해 위에서 발굴한 열일곱 개 이슈의 영향력과 불확실성을 측정했다.
   영향력은 해당 이슈가 가져올 사회적 파급력이 얼마나 큰가를, 불확실성은 해당 이슈가 가져올 변화가 얼마나 불확실한가를 측정하는 과정이었다. 불확실성이 높은 이슈란 과거에는 겪어본 적이 없는 사건이어서 예측이 어려운 이슈, 인과관계가 부족하여 불안정하고 양가적인 이슈를 뜻한다. 처음 이슈를 발굴한 기준이 팬데믹 시대를 관통하는 STEEP이었다면, 점수 측정은 우리의 원 주제로 돌아가 20년 후 작가의 미래와의 관련성을 보고자 했다. 점수 측정 결과가 담긴 그래프는 3화에서 공개되어 미래 시나리오를 만드는 데 사용될 것이다.


   3. 팬데믹 이후 미래는 어떻게 될까?


   우리는 토론을 통해 위에서 발굴한 열일곱 개 이슈의 영향력과 불확실성을 측정했다.
   우리는 지난 5월부터 지금까지 서로에게 이 질문을 던지고 있다. 팬데믹 이후 미래는 어떻게 될까? 어쩌면 우리는 또다른 질문에 매달리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앞으로 만들 네 개의 미래 시나리오 속에는 작가와 소설과 창작과 예술이 있겠지만, 동시에 그 미래 어딘가에 우리도 함께 살고 있음을 안다. 우리가 파도에 뛰어든 건 아마도 이 때문일 것이다. 그때 우리는 얼마나 달라져 있을까?



파도

한국미래전략연구소W 대표 황윤하와 호주에 거주하는 소설가 서수진은 팬데믹 이후 미래가 궁금해졌다. 미래를 만들어갈 수 있다고 믿는 미래연구자와 닫혀 있지 않은 미래로 뻗어나가는 소설을 꿈꾸는 작가가 만나 새로운 미래, 새로운 소설을 상상한다.

2021/09/14
46호

1
STEEP은 사회, 과학기술, 환경, 경제, 정치의 영어 이니셜을 딴 것으로 사회를 다각도로 볼 수 있도록 돕는 분류법이다.
2
Anthony Gooch & Francesca Colombo, "Addressing the hidden pandemic: The impact of the COVID-19 crisis on mental health", The OECD Forum Network, 2021, 5, 7. (링크)
3
The Foundation for Young Australians, "How Young People are Faring during COVID-19", fya.org.au, 2020, 6. (링크)
4
김지연(2021), 「코로나19 고용충격의 성별 격차와 시사점」, 한국개발연구원, 『KDI 경제전망』, 38(1), 국가정책연구포털, 61~68쪽.
5
신한은행은 2021년 9월부터 AI은행원 기능이 담긴 ‘디지털 데스크’ 200여대를 일선 점포에 배치키로 했다.
6
포브스(Forbes)는 2020년 4월 코로나19 이후 격변이 예측되는 미래 이슈 9개를 발표했는데 이때 발표된 이슈 대부분은 과학기술 변화와 관련된 것이었다. 1) 비접촉식 인터페이스 및 상호작용 확대, 2) 강화된 디지털 인프라, 3) IoT 및 빅데이터를 사용한 보다 나은 모니터링, 4) AI 기반 신약개발, 5) 원격진료, 6) 온라인 쇼핑 확대, 7) 로봇에 대한 의존도 증가, 8) 디지털 이벤트 증가, 9) e-스포츠의 부상. (링크)
7
Larissa Fedunik-Hofman, "What impact will COVID-19 have on the environment?", Australian Academy of Science, 2020, 5, 4. (링크)
8
Larissa Fedunik-Hofman, 앞의 글.
9
호주 청년들의 42%가 팬데믹으로 인해 장기적인 직업 계획을 세울 수 없다고 응답했으며, 66%가 지출 감소와 함께 라이프스타일이 변화했고, 33%가 렌트한 집에서 살아간다고 응답했다. The Foundation for Young Australians, "How Young People are Faring during COVID-19", fya.org.au, 2020, 6. (링크)
10
2021년 인터넷트렌드 발표에 따르면 국내 인터넷 검색엔진 시장 점유율은 네이버 58.1%, 구글 36.0%, 다음 3.4%이다. 2017년 점유율이 네이버 87.3%, 구글 0.2%였던 것과 비교하면 큰 변화라고 할 수 있다. 전 세계 검색엔진 시장 점유율의 경우 구글이 70~90%를 차지하는 것으로 추정된다.(미국 내에서는 2020년 기준 모바일 94% 차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