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실 안쪽에서 카르멜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실은 처음부터 카르멜라의 소리를 들은 것은 아니었고 어딘가 모르게 앓고 있는 소리를 들은 것이 먼저였다. 불안한 낌새를 느끼긴 했으나 아니라고 무시하는 사이 카르멜라가 기어코 나를 부른 것이었다. 나는 시간을 확인했다. 오전 청소를 마치고 오후 청소에 가기까지는 두 시간 남짓 남아 있는 상황이었다.
  언니, 이거……
  카르멜라가 입구를 막던 몸을 살짝 비켜 세우자, 세면대 간접 조명 아래에서 기스가 난 새 변기 커버가 은은하게 그 무늬를 빛내고 있었다. 부드러운 매직 블록으로 기스가 난 부분을 균등하게 쓸어내리기도 했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카르멜라는 멋쩍은 듯이 잔머리 하나 삐져나오지 않은 머리를 젖은 손으로 쓸어넘겼다. 그녀의 검은 손등과 달리 새하얀 손바닥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카르멜라 뒤로 보이는 광경을 보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전에도 여러 번 있었던 일이기에 다시금 물은들 어차피 카르멜라의 대답은 똑같을 것이었다.
  깨끗이 하려다가……
  내가 어떻게 된 일인지 물을 때마다 그녀는 항상 그렇게 말했다.

카르멜라는 필리핀에서 온 필리피나로 청소 일을 하면서 나와는 거의 매번 파트너가 되는 사이였다. 나보다는 스무 살 정도가 어렸고, 키가 작지만 옹심이 같은 부분이 있어서 남들보다 청소에 과하게 힘을 쏟았다. 그리고 그 때문에 항상 사고를 쳤다. 사고를 칠 때마다 그녀의 이유는 늘 같았다. 변기 커버를 닦다가 기스가 났을 때에도 방충망 청소를 하다가 망이 나갔을 때에도 거실 전등 갓을 깨트렸을 때에도 전부 깨끗이 하려던 것이 사고의 이유가 됐다.
  그녀의 한국어 발음은 외국인 특유의 어눌함 같은 것이 없었고 높낮이나 어감 처리 또한 칠 년 동안의 한국살이가 그대로 묻어나 있었다. 그러나 그녀의 발음과는 상관없이 나는 그녀의 그런 대답을 들을 때마다 어쩐지 이해하기 어려웠는데, 그녀의 고동색 눈동자를 바라보고 있으면 내 이해와는 별개로 그게 진짜라는 생각―정말로 깨끗이 하려고 그랬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정말 깨끗이 하려다가 그랬다고?
  나는 그저 그 말만 반복할 뿐이었다.
  어쨌거나 종합하면,
  비데 겸용 커버이기에 칠만원 이상은 부를 것이고, 거기에 기사의 방문 설치 비용 삼만원에, 여타 출장비를 합하면 오만원으로, 아마 최대치의 가격을 부른다면 오늘 오후 청소까지 두 탕 뛴다고 해도 카르멜라에게 떨어지는 돈은 거의 없었다. 그보다 그들이 문제였다.
  걔들이 지랄 좀 하겠다.
  나는 카르멜라를 보며 말했다.

걔들은 우리에게 일감을 주는 남자애들을 칭하는 말이었다. 청소 용역 업체의 하청의 하청의 하청으로 현장으로, 사람 배정하는 일을 담당하는 남자애 둘인데 전자 담배를 입에 물고 사는, 목소리만 컸지 얼굴 어딘가에 겁이 많아 보이는 애들이었다. 그들은 꼭 카르멜라를 보면 한마디씩을 하곤 했는데 더러운 농담인지 아니면 진짜로 카르멜라가 궁금한 것인지 잘 알 수 없었다. 그 둘은 꼭 쌍둥이처럼 닮아 있었고―게다가 특이하게 서로 비슷한 옷을 입었고―나는 그들의 말을 대부분 흘려들었다. 좋을 게 없으니까.
  나와 카르멜라가 한 팀이 된 것도 그들이 한국인 한 명과 외국인 한 명을 항상 짝으로 지어주었기 때문이었다. 몇 년 전만 해도 외국인 노동자가 청소를 해준다고 해서 따지는 이들이 없었는데 이제는 외국인 노동자가 있는지 확인하고 외국인 노동자가 배정된다고 하면 괜히 눈살을 찌푸리고 이것저것 따지는 사람들이 늘었다. 나는 청소에서 장비나 물품을 따지는 것도 아니고 국적을 따진다는 것이 웃겼지만 그렇다고 하면 그런 것이었다. 업계에서 의뢰인들은 조선족보다는 차라리 필리핀이나 태국 사람을 좀더 선호했고 그들보다는 나이가 많든 적든 한국인을 선호했다. 그리고 그중에서 한국인 여자를 선호했다.
  나는 기스가 난 커버를 휴대폰으로 찍었다. 현장 사진은 내 담당이었다. 사진을 찍을 때마다 카르멜라가 뒤에서 움찔거리는 것만 같았다.
  너무 죄송하다고만 하지 말고, 물어준다고 해. 어차피 물어준다고 하면 걔들이 손해 보는 것도 없잖아.
  나는 카르멜라에게 말했다. 내가 그녀에게 가르쳐줄 수 있는 건 없지만 기왕이면 이런 것들은 알려주고 싶었다. 나보다 한국 생활에 더 익숙한 카르멜라였지만 어떤 때는 뻔뻔한 것이 한국 생활에서 꽤 먹힌다는 것까지 알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 카르멜라는 자기를 이 사회에서 항상 을도 아닌, 병정 정도로 생각했다. 그리고 나는 그런 마음을 모르지 않았다. 그런 면에서 카르멜라와 나는 같았다.

청소가 거의 끝나갈 때쯤 숨을 돌릴 겸 담배라도 피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청소 일을 시작하면서 배우게 된 것은 담배가 유일했다. 다 늦은 나이에 담배를 배웠다는 것에 남들은 뭐라고 말하곤 했지만 나는 나쁘지 않았다. 말마따나 이미 다 늦었는데, 뭐.
  내가 밖으로 나서자 카르멜라가 뒤를 따랐다. 걸을 때마다 발이 아파왔다. 보름 전부터 왼쪽 새끼발가락 안쪽에 혹 같은 것이 느껴졌다. 전에 티눈이 났던 자리였기에 그런 것쯤이겠거니 생각했는데 이번에는 살짝 닿기만 해도 몸서리가 처질 정도로 아팠다. 요즘에는 몸이 다 그랬다. 전에 아프다가 사라진 것들이 다시금 같은 자리에서 활개를 치는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쉰넷, 점점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을 완전히 실감할 수는 없었지만 아픈 것을 무시하다 보면 언젠가 몸이 빈정대는 느낌을 받기는 했었다. 좋지 않은 집을 청소할 때처럼 틈이 많아진다고 해야 할까. 재채기하는 사람처럼 몸이 풀어져 있다고 해야 하나. 아무튼 순발력에 있어서는……, 확실히 의심스럽기는 하다. 순발력은 이제 나에게 기대하기 어려운 항목으로 넘어간 것 같다. 대신 천천히 그리고 좀 느려도 정확하게 행동하려고 노력한다.
  우리 같이 몸 쓰는 사람들은 병원에 자주자주 가야 한다니까. 요 앞에 한의원 잘하잖아.
  그 때문인지 언젠가 같이 일하던 수다스러운 여자의 말이 요즘은 자주 떠올랐다. 나는 그녀의 이름은 몰랐지만 그녀의 얼굴은 잘 기억했다.
  그녀는 나보다 나이가 많았으나 얼굴은 내 또래와 같은 얼굴이었다. 그녀의 나이는 예순 정도일 텐데, 어떤 면에서 보면 나보다 훨씬 어려 보였다. 그녀도 그것을 아는 눈치인지, 나와 일할 때면 조금씩 과시하는 것처럼 몸을 가벼이 움직이거나 윤기가 도는 피부를 자랑하기도 했다. 나는 그녀가 내 앞에서만 자랑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아마 다른 사람이었다면 그녀는 자신을 그렇게 뽐내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그 여자를 무시할 수도 있었지만 실은 조금은 부러운 느낌이 들었다. 어떻게 살았는지에 따라 늙어가는 얼굴도 달라진다는데, 같이 청소 일을 하면서도 여자의 피부는 마치 청소 일을 하는 사람과는 멀어 보였다. 여자는 청소하는 사람 같이 느껴지지 않았다. 말하자면 청소하는 사람은 나의 지금 모습에 가까웠다. 굵은 은실 같은 새치가 군데군데 덮여 있고 양 뺨에 흑자가 보이거나 살이 많지는 않으나 가죽이 늘어난 모습이었다. 나도 어렸을 때 나와 같은 이들을 많이 본 적 있었다. 빨랫줄에 걸린 오래된 면티 같은 이들의 모습을.
  나도 한때는 거울 속의 내 모습을 보고 가슴 속에 버섯만한 용종이 자라나는 기분이 들었던 적도 있었다. 아마 청소 일을 처음 시작하던, 십여 년 전쯤에는 그랬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었다. 거울 속의 나는 가끔 발전기가 꺼진 공장같이 느껴지기는 했으나 그마저도 뒤돌아서면 금방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뭐랄까, 정말 무언가를 감추기 위해 뒤를 돌면 진짜 까먹어진다고 해야 하나. 단순해진다고 해야 하나. 단순한 척해진다고 해야 하나. 그래도 가끔 거울 속의 내가 나는 마음에 들 때도 있었다.
이만하면 그래도……, 놀라 자빠질 정도는 아니어도, 뭐. 내가 그렇다고 모르는 놈들한테 그 여자처럼 돈을 척척 가져다준 것도 아니고. 그 정도 바보도 아니고.
나는 중얼거렸다. 내 앞에서만 잘난 척하던 여자는 일 년 전쯤 보이스 피싱이라는 사기에 당한 적 있었다. 자세한 내용은 모르지만 어떤 것이기에 돈을 턱 하니, 아무 의심도 없이 보냈으려나. 그렇게 앞에서 똑똑한 척, 잘난 척하던 여자가 도대체 어떤 것이길래, 나는 생각했다.

카르멜라는 담배를 피워 문 채, 왼쪽 발을 조금씩 절뚝이는 나를 가만히 쳐다보았다.
  뭘 그리 빤히 봐.
  나는 카르멜라에게 말했다. 카르멜라는 말없이 그저 웃다가 시선을 다시 자신의 발끝으로 두었다. 카르멜라는 나에게 왜 그러냐고 묻지 않았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가만가만 살아가도 어쩔 수 없이 왜, 가 따라붙는 이들도 있는 법이었다. 그렇기에 나 또한 그녀에게 애써 질문하지 않았다. 게다가 각자 맡은 바를 끝내기만 한다면, 우리 사이에 말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안 뒤로부터는 점차 그 말수도 줄여나갔다. 그렇다고 해서 그녀에 대해서 아예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그녀에 대해서 아는 것은 몇 가지는 되었다. 칠 년 전쯤 대대적으로 필리핀 사람들이 한국에 입국하여 그들의 일자리를 찾으러 왔을 때, 그 대열에 껴 있는 사람 중 하나였다는 것, 그때 카르멜라의 나이가 만으로 스무 살이었고 필리핀에서도 잘 알지 못하는 지방 도시에 살았다는 것, 그곳에 아직 어린 동생들이 둘이나 있다는 것이었다. 카르멜라는 동생들을 아가, 라고 자주 표현했다. 그 말투에는 어쩐지 굳센 카르멜라에게서 보지 못했던 애틋함 같은 것이 느껴졌다. 그렇기에 그녀에게 가끔 그녀의 고향 이야기를 꺼내면, 처음에는 조금 신이 나서 이야기하는 듯싶다가도 말미에는 간결하게,
  언니 거기 가면 돈이 없어,
  라고 말하면서 말을 마쳤다. 이곳에서 버는 돈의 절반 이상은 다 동생들의 몫이었다. 그렇기에 간혹 청소를 할 때마다 어디서 들었는지는 몰라도 애가 서넛 있는 한국인 엄마라도 몸에 들어앉은 것처럼, 이 집은 애 키우기 좋다, 바닥이 미끄러우면 안 돼, 햇빛이 잘 들어야 해, 같은 말들을 혼자 뱉곤 했다.
  카르멜라는 구조가 어떻든 거실에 큰 창이 있는 집과 아이의 흔적이 남아 있는 집을 좋아했다. 아이가 가지고 놀았던 장난감이 남아 있던 집이나 아이의 살냄새가 나는 집에 가면 카르멜라는 청소를 시작하기 전에 한동안 멍하니 넋을 놓고 집의 구석구석을 바라보곤 했다. 그리고 나는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어딘가 묘한 기분이 들었다. 그 기분은……, 글쎄. 나는 그 기분을 무엇이라고 불러야 할지 몰라서 매번 그 장면에 멈춰 서 있곤 했다.

*

일이 끝났을 때쯤은 이미 손가락 마디마디가 벌겋게 부어 있었다. 하루 두 탕의 청소를 끝내서가 아니라 한동안 일을 쉬지 않은 탓이었다. 봄에는 유독 일이 많았다. 새집을 구하고 새집으로 이동하는 사람들이 많은 시기였기 때문이었다.
  카르멜라와 오후에 잡혀 있는 청소까지 같이 이동할 수는 없었다. 카르멜라는 오전 청소를 마치고 사무실에 불려갔다. 실수에 대한 처리를 위해서였다. 현장 사진을 받은 남자애 둘은 카르멜라에게 전화를 걸어 무어라고 한참을 쏟아냈다. 카르멜라에게 무슨 말을 했는지 모르겠으나 수화기 밖으로 길길이 날뛰는 목소리가 새어나왔다.
  카르멜라는 통화 내내 보상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지 못했다. 카르멜라는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결국 카르멜라에게 아무것도 알려주지 못한 것 같아 어딘가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너무 수그리진 말고.
  나는 괜히 그 말을 다시 꺼냈다. 도움이 되지 않는 말이었다. 카르멜라는 나를 보고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벌써 그러면 안 되는데. 벌써 그렇게 가기도 전에 기가 죽으면 안 되는데.
  너무 미리 기가 죽으면……
  나는 하려던 말을 하다가 말았다.

카르멜라가 가고 나는 마리아와 새 팀이 되어 오후 청소에 배정되었다. 마리아 또한 필리핀에서 온 필리피나로 카르멜라보다도 어리고 말랐으며 어딘가 의기소침해 있었지만 키가 장대만큼 컸다.
  그녀는 나를 보고는 짧고 어눌하게, 안녕하세요, 라고 소개하고 끝냈다. 그리고 간간이 시켜주세요, 라고 말했다. 나는 마리아가 시켜주세요, 라는 말을 자동적으로 뱉을 때마다 뒤에서 낄낄거리던 남자애 둘을 떠올렸다. 그애들한테는 독한 향수 냄새와 어딘가 쩐내가 동시에 풍겼다.
  그들은 항상 나와 카르멜라 혹은 마리아가 함께 있을 때마다,
  언니, 언니가 짝꿍 잘 알려줘야지, 라거나 한동안 일이 있어 청소를 나오지 않을 때면 언니, 짝꿍을 너무 외롭게 두지 마, 같은 식으로 야지를 부렸다.
  나는 카르멜라와 팀이 되었을 때와 마찬가지로 마리아에게 이것저것을 물어보거나 말을 걸지 않았다. 대신 마리아에게는 청소를 좀 대충해달라고 부탁했다.
  너무 세게 박박 닦으려고 하지 말고, 그냥 대충 힘닿는 데까지만 해줘. 나머지는 내가 할 거니까.
  마리아는 내 말에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오후에 배정된 아파트는 창이 크고 햇볕이 잘 들었다. 아무 짐도 없는 황무지 같은 새 아파트지만 이 집에 들어와서 살게 될 누군가가 궁금했다.
  해가 잘 들어, 언니.
  창을 크게 만드니까.
  나는 조금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상설 시장에 들러, 콜라비 두 통과 알배추 한 통을 샀다. 걸을 때마다 왼쪽 발이 계속 아파왔다. 왼쪽 신발이 좀 작아진 것이 어쩐지 발이 부어오른 것 같았다. 병원에 가는 방법도 있었지만 신발을 한 사이즈 크게 산다면 그것 또한 방법인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나는 상설 시장 귀퉁이에 있는 싼 대형 신발 매장 앞을 기웃거렸다. 그러나 들어가지는 않았다. 나는 조금 더 참는 것을 택했다. 그편을 선택하는 것이 나에게는 쉬웠다. 병원에 가고 싶지는 않았다. 병원에 가면 모든 것이 선명해지는 기분이 싫었다. 아픈 나와 지금의 나를 설명하는 의사를 마주하고 있으면 괜히 진이 빠졌다. 무언가들을 참으면서 안 것인데 나는 그런 것들을 참아내는 것에 일가견이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꽤 잘 참았다. 시간이 좀 걸리기는 했지만 참으면 그런대로 밍숭맹숭하게 잘 살아졌다. 어쩌면 그게 나의 방식이었다. 텅 빈 것 같아 보여도 나름 나만의 내공이었다. 미련해 보여도, 아무나 할 수 없는. 단순해 보여도, 어려운……
  왼쪽 발을 끌수록 콜라비와 알배추가 든 검은색 비닐봉투가 부스럭거렸다. 나는 왼쪽 손에 들고 있던 비닐봉투를 오른손으로 바꿔들었다. 부산스럽게 부스럭거리는 사이, 휴대폰에는 부재중 전화가 와 있었다. 희수였다.

콜라비와 알배추는 희수를 위한 재료였다. 희수는 나와는 중학교 동창이자 동거인이었다. 따로 구색을 갖추고 결혼식을 올리지는 않았지만 같이 산 지는 삼십 년이 넘어가고 있었다. 삼십 년, 그저 남들처럼 살기에도 바빴다. 무언가를 딱히 정하지 않아도 희수와 내가 어차피 쭉 이렇게 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자, 그 외에 번잡스러운 것들에 시들한 마음이 들었다.
  그냥 이대로 사는 거지, 결혼식은 무슨……
  툭툭 던지는 말이지만 나는 희수가 밉지 않았다. 미웠으면 벌써 미웠겠지.
  희수는 나를 오랜 시간 곁에서 지켜본 사람 중 하나였다. 유일한 가족이었던 엄마가 죽은 이후로는 희수가 나의 유일한 가족이었다. 희수도 마찬가지였다. 둘째 형이 죽었을 때 희수는 참 많이도 울었다. 나는 그렇게 서럽게 눈물을 쏟는 희수는 처음 보았다. 그때부터인가, 희수는 말수가 부쩍 줄었다. 그에 따라 나도 말수가 줄었다. 꿀 먹은 벙어리 둘.
  희수와 나도 수다스러웠던 적이 있었다. 한때는 말로 시간을 때우던 때도 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다 젊었을 때의 이야기다. 그리운 이야기다. 그립지만 돌아가고 싶지 않은 이야기다.

*

시간이 지날수록 희수와 나는 필요한 말만 했다.
  나 사랑해?
  언젠가 젊었을 때에는 희수에게 그렇게 물은 적도 있었는데. 이십 년도 더 된 그 질문을 떠올리자 아직도 얼굴이 가려운 기분이었다. 나는 아무도 보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입 밖으로, 주책이네, 주책, 이라고 소리내어 말했다. 그래도 그때는 그게 이상하지 않았겠지, 생각하면 어딘가 쓸쓸해졌다.
  사랑, 나는 갑자기 웃음이 새어나왔다. 사랑 그게 뭘까나, 나는 웃겼다. 같이 오래 살면 그게 사랑이고, 같이 오래 살면서 이런저런 모습들을 다 견디면 그게 사랑이었다. 나는 희수를 견뎠고 희수도 나를 견뎠다. 그런데 또 시간이 지나고 보니, 무엇을 얼마나 견뎠는지 그것조차 점점 가물가물해졌다. 그런 때는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결국 아무것도 남지 않았을까 봐. 삼십 년, 희수와 나 사이에 무엇이 남았나……
  소싯적에 건달을 한다고 까불던 희수는 경력 이십 년 차의 중장비 기사가 되어 있었다. 그사이 어떤 굴곡들도 많았지만 큰일이 아니어서 다 잊어버렸다. 다만, 지금의 큰일이라고 한다면 희수가 너무 절제를 안 해서 자꾸만 살이 더 찐다는 것이었다. 중년에 걸쳐진 나이에 절제를 안 한다는 것은 뒤가 없는 느낌이었다. 요즘은 끼니 때마다 반주를 하던 것이 한두 병으로 늘었고 잠도 잘 자지 않았다. 갑자기 자고 일어나면 베개가 젖을 정도로 까만 코피를 쏟는다거나 하는 일도 있었다. 희수는 나이가 들어서, 피곤해서, 라는 이유를 댔지만 나는 내심 걱정이 되었다. 티브이에서 언젠가 본 의사는 술 좋아하고 고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콜라비와 양배추가 좋다고 말했다. 나는 끼니에 한 번씩 그 재료들을 살뜰히 끼워넣었다.
  밥 먹어.
  밥 먹자.
  우리는 그 말을 제일 많이 했다.

나는 상설 시장 뒤쪽으로 계속 걸었다. 그러곤 불이 꺼진 세탁소 앞에 가만히 서 있었다. 미나 세탁소. 나는 그 간판을 천천히 뜯어보았다. 아주 오래전, 한때 희수와 나 사이에 아이를 생각하며 지은 이름도 미나였다. 그러나 이름만 있을 뿐 우리에게 아이는 없었다. 아이……, 아이를 원하는 데에 큰 이유는 없었다. 조막만한 것을 어르고 달래고 먹이고 씻기고 그런 일을 나도 하고 싶었다. 그런 일에 사랑을 붙이고 싶었다. 내 속에서 나왔지만 잘 아는 것, 잘 모르는 것이 뒤섞인, 내가 희수에게 느끼는 그런 감정을 다시금 느끼고 싶었다. 그러다 나도 모르게 불어나는 마음들을 어찌할 바 모르겠는 일들이 일상이 되었으면 싶었다. 그런 당혹스러운 기분을 간직하고 싶었다. 매일 매일 지치는 일 말고, 참아내는 일 말고. 나도……, 그러고 싶었다. 몸에 좋다는 것을 먹기도 했고 내내 잠만 자기도 했었지만 소식이 찾아오지는 않았다. 둘 다 피곤하게 살던 탓이겠지,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마음을 접었다.
  그게 벌써 언제 적이었나.
  나는 갑자기 그때를 생각하며 그 앞에 멈춰서 내가 조금 우스웠다. 요즘 들어서는 갑자기 옛일들이 테이프를 감듯이 다시 반복되는 것 같았다.
  민아?
  아니, 미나.
  민하?
  아니, 미-나.
  그 옛날 희수는 맥주잔을 들고는 발그레 웃고 있었다. 미나는 희수가 지은 이름이었다. 자기처럼 받침이 없는 이름이 좋다고 희수가 지은 이름이었다. 나는 아직도 그때를 떠올리면 맥주잔을 들고 있던 희수의 모습이 눈에 선한 것 같았다. 그때 희수는 지금과 달리 얄쌍한 모습이었다. 요즘은 불쑥 그런 기억들 때문에 자주 멈춰 있곤 했다. 잠이라도 온다면 좋으련만. 요즘은 잠도 금방 깨고, 한번 깨면 쉽게 잠들지 않았다. 나는 기억이 반짝하고 떠오를 때마다 무서운 기분이 들었다. 이제 와서, 뭘 한다고. 나는 잠깐 멈춰 섰다. 불 꺼진 쇼윈도에 검은색 비닐봉투를 든 내 모습이 흐릿하게 보였다. 군청색 후리스에 분홍색 패딩 조끼를 입은 내가 그 앞에 서 있었다. 그 모습이 꼭 노인네 같았다. 나는 그 앞에서 이리저리 몸을 왔다 갔다 움직였다. 쇼윈도에 서 있는 내 모습이 진짜 나 같아서 나는 어딘가 조바심이 났다.

집으로 돌아왔을 때 희수는 잠들어 있었다. 요즘은 잠바만 벗어두고 베개도 없이 안방에 몸을 누인 채 잠을 잤다. 희수의 몸에서는 늘 흙냄새가 났다. 얼굴에는 어디서 묻은 것인지 알 수 없는 실지렁이 같은 먼지들이 잔뜩 붙어 있었다. 나는 포크레인 위에 올라앉은 희수를 잠깐 생각했다. 희수의 일도 나와 마찬가지로 반복의 반복이었다. 희수는 몹시 지쳐 보였다. 하기야, 내가 본 희수는 한 번도 지치지 않은 적이 없는 얼굴이었다. 나는 희수의 발에 신겨 있던 양말을 벗겨냈다. 희수의 양말이 축축히 젖어 있었다.
  밥은 먹고 자야지.
  나는 희수를 흔들어 깨웠다.
  잠깐 좀 냅둬봐……
  기척을 느낀 희수가 다시 돌아누웠다.
  밥은 먹고 자라고.
  ……
  인나. 인나.
  자꾸만 재촉하자 희수가 잠깐 눈을 뜬 채 인상을 찡그렸다. 인상을 팍 구긴 희수는 희수의 나이대보다 훨씬 늙어 보였다.
  나, 집 오는 길에 미나 세탁소 봤다. 미나, 세탁소.
  나는 갑자기 뜬금없이 그 말을 뱉었다. 그러고는 힘주어서 다시금 말했다. 그러나 희수는 그 말에 아무런 미동도 없었다.
  기억하지?
  나는 희수의 종아리를 잡고는 흔들었다. 옆에 놓아둔 콜라비와 양배추가 담긴 비닐봉투가 시끄러운 소리를 냈다.
  기억하냐고. 기억하지?
  뭐라는 거야.
  미나 세탁소 할 때, 미나. 기억나냐고.
  나는 희수의 어깨를 획 돌아 세웠다. 그러자 희수가 벌떡 일어나서 나를 노려보았다.
  기억 안 나. 세탁소가 뭐, 어쨌다고. 기억 안 나. 또 쓸데없는 소리 하려거든, 다른 데 가서…… 쯧.
  희수는 짜증이 난다는 듯 돌아누운 채 중얼거렸다. 그러나 그것도 얼마 안 가 금방 잠에 빠져들었다.
  그냥 자. 죽을 때까지 자.
  나는 뒤돌아 누운 희수에게 말했다. 뒤돌아 누운 희수의 모습이 꼭 노인 같아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매번 그런 식이었다. 나는 희수가 짜증나고 싫다가도 안쓰럽고 슬펐다. 너무 많이 안다는 건 그런 걸까.
  나는 희수에게 바짝 다가갔다. 희수의 숨에서 젖은 풀냄새가 났다.
  너 좋아하는 굴비 구워줄게. 안 일어날래?
  ……

*

다음 달, 완공을 앞둔 새 아파트 입주 청소 건을 받아 남자애 둘이 급하게 소집 회의를 열었다. 사무실에는 카르멜라도 와 있었다. 남자애 둘은 번갈아 가며 상황에 대해서 설명했다.
  다들 상황은 아시죠? 진짜 뭐 빠지게 열심히 해도 본전이라는 거. 우리가 다 그렇잖아.
  남자애 둘은 그렇게 말하며 간략한 첫 시작을 알렸다. 그 말에는 여러 가지 말들이 섞여 있었다.
  정부에서 외국인 노동자를 고용하도록 허가받은 업체는 몇 되지 않았다. 게다가 거기에서 정식으로 사람을 고용하게 되면 임금 또한 오르는 것이 문제였다. 특히나 임금 관련 감시도 무시하지 못했다. 보여주기식 감시가 일하고 싶은 사람들의 주머니에 구멍을 뚫었다. 감시가 엄하면 임금 감당하기가 어려워 당연히 외국인 노동자 고용 수가 주는 것은 당연한 처사였다. 결국 사람을 빌린다는 식으로 운영되는 하청 업체가 있어야 우리도 그 외의 사람들도 모두가 먹고 사는 구조였다. 이곳은 하청의 하청의 하청이었다. 건당 수가 많아야 그나마 제대로 돈을 가져갈 수 있었다. 그마저도 없어서 힘든 것이 지금이었다. 남자애 둘은 사람을 값싸게 빌려준다는 것을 꼭 파견이라는 있어 보이는 말을 붙였다. 앞에서 그런 말을 쓴다는 것을 즐기는 것 같기도 했다.
  그들의 말은 이러했다. 곧 준공을 앞둔 공실 아파트의 청소 건이 있다는 건 있는 힘껏 소화할 수 있는 대로 몸을 굴리자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 최대한 많은 차수를 처리하는 것이 그들의 관건이자 모인 이들의 관건이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한 가지가 더 있었다. 최대한 컴플레인 적게 받기. 차라리 청소 해놓은 티가 나도록 두기. 사람이 사는 곳에는 원래 먼지가, 티끌이 있기 마련인데……, 나는 그 말을 속으로 삼켰다. 하청의 하청의 하청이라는 것은 그만큼 머리 자르기도 쉬웠다.
  그들은 이렇게 저렇게 팀을 꾸렸다. 몇 달 치의 반복되는 스케쥴이 대대적으로 적혀 있었다. 하얀 칠판에 일하는 이들의 이름이 빼곡히 들어찼다. 그중에서 카르멜라는 거의 쉬는 날이 하나도 없었다. 나는 카르멜라를 보고는 손으로 그의 어깨를 툭툭 쳤다. 얇은 가디건을 입은 카르멜라는 괜찮다는 듯이 그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쉬는 날 없이 이 많은 걸 다 어떻게 해.
  나는 카르멜라를 보며 말했다. 보드마커를 들고서 침을 튀기고 있는 남자애 둘이 나와 카르멜라 쪽을 쳐다보았다.
  일해야 돈 벌어.
  카르멜라는 죄라도 지은 것처럼 고개를 숙인 채 조용히 말했다.
  너 못해, 이거. 골병 나.
  나는 말했다. 그러자 앞에 서 있던 남자애 둘이 인상을 찡그렸다.
  언니들, 수다는 나가서 떠시고 집중 좀 해보세요. 이번 건 진짜 중요합니다. 저번에 컴플레인 걸려온 것도 보면 전부 다 창틀 얘기인데……
  나는 그들의 이야기와는 별개로 카르멜라를 쳐다보았다. 카르멜라가 어설프게 미소를 지었다.
  너 진짜 이럴 거니?
  나는 괜히 화가 난 사람처럼 그렇게 말했다. 그러자 카르멜라가 토끼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일해야지, 나……
  그녀의 고동색 동공이 나를 바라보았다.
  얘가 진짜……
  나는 입술을 앙다물었다. 갑자기 속에서 무언가 끓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얘가 진짜, 왜 이래?
  나는 말했다.
  무릎 위에 살포시 포개놓은 카르멜라의 손은 엉망이었다. 엄지손톱뿐만 아니라 모든 손톱 끝이 마치 얇은 종잇장을 찢어놓은 것처럼 군데군데 얇게 찢겨 있었다. 카르멜라의 눈동자에는 여전히 당혹스러움이 가득차 있었다.
  언니……, 나 아가들…… 아가들 때문에.
  카르멜라는 나를 보며 뒷말을 흐렸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숨을 몰아쉬면서 카르멜라를 등지고 앞을 바라보았다. 카르멜라가 뒤에서 안절부절못하는 것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카르멜라의 아가들, 이라는 말에는 진한 무언가가 묻어 있었다. 자신의 속에 있다가 바깥으로 꺼내진 어떤 것처럼.
  그때 나는 왜 속에서 뜨거운 것이 솟아나는 기분이 들었는지는 잘 알 수 없었다. 왜 그랬을까. 대신 벌어다줄 것도 아니면서. 그럴 것도 아니면서. 뭐 한다고. 그애한테 그런 기분을 느꼈을까.

*

가만히 있어도 온몸에 열이 훅훅 끼쳤다. 갱년기라면 이미 지났다고 생각했는데 요즘 들어 갑자기 열이 오르더니 잘 떨어지지 않았다. 기분이 오락가락했다. 희수는 나에게 그게 나이가 드는 것이라고 했다. 다 호르몬 문제라고 했다. 나는 화장실 거울 앞에 가만히 얼굴을 가져다 댔다. 나는 손가락으로 뺨을 쓸어보았다. 부드럽기는 했으나 종이처럼 건조했다. 나는 얼굴을 요리조리 훑어보았다. 그러곤 입을 오물오물거리기도 했다. 나는 한참을 입을 바라보았다. 입이 마치 늘어난 고무처럼 전보다 쪼그라져 있었다. 아무리 이렇게 저렇게 움직여봐도 옹졸하게 내려간 것이 우울해 보였다. 구석구석 살뜰히도 나이가 드는 것 같았다. 좀 덜 부지런하면 좋으련만.
  염병.
  나는 재작년 요실금으로 병원을 찾았다가 결국에는 큰 수술을 했다던 누군가를 떠올렸다. 그 또한 청소하면서 만난 내 또래 중 하나였다. 그녀는 처음 만난 나에게 내밀한 속 이야기를 훤히 내놓았다.
  처음에 요실금으로 고생 꽤나 했지. 맨날 기저귀 입는 게 쉬운 일은 아니잖어. 그래서 병원에 갔는데 글쎄 요실금은 무슨. 자궁이 밑으로 내려앉아서 요실금까지 생긴 거더라구.
  그녀는 말했다. 그녀는 보라색 자수 꽃이 새겨진 털모자를 쓰고 있었다.
  결국 끌어올려서 다시 그 자리에 묶어놓는 수술을 했지. 병원 가면 괜찮은 곳이 없어. 알고 보면 다 병이지, 다 병.
  나는 그녀의 말을 듣고는 가만히 잠자코 있었다. 그녀는 내가 굳이 대답하지 않아도 수다스럽게 자신의 말들을 이어갔다. 그러다 가만히 있던 나에게 물었다.
  좀 어때, 성한 데가 없지?
  나는 말하지 않았다. 그러자 그녀가 나를 이리저리 살피더니 웃기 시작했다.
  아이고, 성한 데가 있겠냐구!
  그녀는 무엇이 그렇게 웃긴지 한참을 웃었다. 나도 모르게 고개가 떨구어졌다.
  근데 자기는 부끄러움이 많은가봐, 아직 쑥스러운가봐.
  그녀는 말을 마치고는 아무렇게나 쪼그려 앉았다. 바지를 입은 그녀의 엉덩이가 기저귀로 두둑해 보였다.
  나는 거울 앞에 다가가 혀를 쭉 내밀어도 보았다. 괴상한 모습의 내가 눈에 들어왔다. 나는 가까이 다가가 잘 살펴보았다. 나이가 들면 온몸에 주름이 진다더니, 혀도 예외는 아니었다. 굵은 주름이 잡힌 혀가 눈에 들어왔다. 내 혀는 이제 막 바짝 말라가는 낙엽 같았다. 아무도 없는 집에 인기척이 들렸다. 나는 화들짝 놀라 괜히 거울에서 멀어졌다. 갑자기 창피함이 온몸을 감쌌다. 부끄러움이 많은가봐, 그 말이 머릿속을 스쳤다. 그런가. 이 나이에 창피한 게 너무 많은가.
  나는 다시 고쳐 앉았다. 앉은 자리 밑에는 손톱 깎기와 조그만 가위가 놓여 있었다. 나는 왼쪽 발을 쭉 뻗어보았다. 발끝이 마치 오래된 통나무 같았다. 새끼발가락 옆에 돌멩이 같은 혹이 욱신거렸다. 말랑하던 혹이 이제는 딱딱한 껍질에 덮인 것 같은 모습이었다. 나는 손톱 깎기로 혹 위의 살점들을 살살 뜯어냈다. 두꺼운 살점을 파내고 파내자, 그제야 굵은 고름이 터져나왔다. 나는 눈을 질끈 감고는 손으로 그것들을 쭉쭉 짜냈다. 짜낼 때마다 눈가에 눈물이 찔끔찔끔 고여왔다.
  미련하기는……

*

새 아파트는 그 구조가 특이했다. 거실로 들어가는 입구가 너무 비좁은 데 비해 거실은 그 활용도를 알 수 없을 정도로 컸다. 청소는 계속되었다. 거실은 이상하게 닦으면 닦을수록 지저분한 먼지가 잘 달라붙는 느낌이었다. 나는 이번에도 카르멜라와 같은 팀이 되어 아파트를 구석구석 청소했다. 카르멜라는 물론 나 외에도 다른 이들과도 팀이 되었다. 카르멜라는 매일 같이 일을 했다. 카르멜라의 해야 한다, 는 말은 진짜 같았다. 나는 이상하게 그런 카르멜라가 미웠다.
  이 아파트는 네가 다 하겠다. 돈 모아서 이 아파트도 하나 사지 그래.
  나는 말도 안 되는 빈정을 떨었다. 그러나 카르멜라는 내 말에 그저 웃어 보였다. 미소, 청소 업체의 이름처럼 카르멜라는 미소가 참 예뻤다. 그런데 그런 미소와는 다르게 나는 자꾸만 카르멜라를 보면 이상한 울화가 치밀었다.
  진짜 니 애라도 돼?
  나는 카르멜라를 볼 때마다 차오르는 그 말을 끝까지 비밀처럼 뱉지 않았다.
  나는 전보다 카르멜라를 쌀쌀맞게 대했다. 그러나 한국 생활에 익숙한 카르멜라는 속도 없이 나를 아무렇지 않게 대했다. 그건 다 어디서 배운 걸까. 나는 아무것도 알려준 것이 없었다.
  왼쪽 발을 딛을 때마다 진득한 고름이 삐져나오는 것 같았다. 신발을 벗어놓고 발을 보면 항상 진물과 피딱지가 엉겨붙어 있었다. 나는 하루에도 양말을 몇 번씩 갈아 신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참는데도 품이 많이 드는 것 같았다. 더는 못 참을 것 같은 순간도 몇 번 오기도 했다. 고름은 짜냈기에 괜찮아질 줄 알았는데 같은 자리에서 계속 차올랐다.
  나는 구석에 가서 고름을 짜내기 시작했다. 고름을 짜내는 일이 습관이 되어 있었다. 휴지를 집고 새끼발가락을 꽉 집으면 억, 소리가 저절로 나왔다. 카르멜라는 그 소리에 잠깐 내 쪽을 보았지만 내색하지는 않았다.
  희수는 내 발을 볼 때마다 한숨을 쉬었다.
  너는 사람이 왜……
  말을 다 하지도 않았는데 희수의 한숨에 많은 말들이 들어 있는 것 같았다. 그 속엔 나를 견디고 있는 말이 절반 이상이었다. 그래도 견딘다는 것이 남았네, 나는 생각했다.

나는 상설 시장에서 매번 같은 것을 샀다. 콜라비 두 통과 양배추. 그리고 신발도 샀다. 하루는 발에 편하다는 신발을 사기도 하고, 땀이 차지 않는 가벼운 신발을 사기도 했다. 그러나 그다지 소용은 없었다. 집에 가면 희수는 잠만 자고 있었고 나는 이상하게 가슴이 계속 답답했다. 머릿속에는 카르멜라가 이중창을 탈거한 후에 열심히 창을 닦는 모습이 둥둥 떠다녔다.
  속 시끄럽게.
  어느새 혼잣말이 많이 늘어 있었다.
  나는 자고 있는 희수 옆에 가만히 누웠다. 목구멍이 따갑고 눈물이 스물스물 올라오는 것 같았다. 희수와 이렇게 누워 잔 것이 삼십 년, 그런데 요즘 들어 자꾸만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자꾸만 뭐가 아쉽고, 자꾸만 아무 일이 없는데도 슬펐다.
  나는 희수에게 괜히 혼자 말을 걸었다. 희수는 마치 코에 나뭇가지라도 걸린 것처럼 색색거리는 숨을 열심히 뱉기만 했다. 나는 혼자서 이말 저말을 뱉기 시작했다. 카르멜라가 사고를 친 이야기, 일하는 사람들 이야기, 누군가 사람도 들지 않는 새 아파트의 구석에 똥을 싸놓은 이야기, 그게 개의 똥이 아니라 분명 사람의 것이었다는 이야기, 그리고 언젠가 갔던 병원에 대한 이야기까지.
  나는 언젠가 희수가 알지 못하는 그 이야기에 대해서 시작했다. 따지고 보면 십 년도 더 된 때였다. 나조차도 잘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였다.
  한, 십 년 전쯤인가. 병원에 갔었거든. 생리치고는 피가 너무 많이 나오데. 아픈 것도 정도껏이지 그때는 진짜 기절을 하겠더라고.
  나는 희수의 이마를 한번 짚고는 말을 계속 이어갔다.
  계속 불편하셨어요? 의사가 나한테 물어보더라고. 그래서 네, 그랬지. 얼마나요? 라고 하길래 그냥 계속 그랬던 것 같다고 했거든. 생리할 때마다 순간 눈앞이 까매지기도 하고. 아프면 잠도 잘 못 자고. 그랬더니 초음파 보니까 근종이 많다고 하더라고. 근종이라는 게, 지들 혼자서 커졌다가 작아지는데 그것 때문에 아팠을 거라고. 아프면 바로 오지 그랬냐고. 그러고 물어보더라고 임신 계획 있냐고. 그때가 마흔쯤이니까 나이도 있고 멍해져서 있는데.
  나는 거기까지 말을 하고 잠깐 뜸을 들였다. 눈을 감고 있는 희수가 우는 사람처럼 슬퍼 보였다. 나는 희수의 눈썹을 손으로 쓸고는 다시 말을 시작했다.
  멍해져서 그냥 있는데, 나한테 혹시 계획이 있냐고 물어보더라고. 근데 내가 그때 아예 없지는 않아요, 그랬지. 그러더니만 진통제만 준다고 경과 지켜보자고 하고 끝났지. 아예 없지는 않다고…… 나는 거기까지 하고 말을 멈추었다. 희수는 여전히 곤히 잠에 빠져 있었다.
  그때 왜 그랬지? 아예 계획이 없지 않다고, 내가……
  나는 눈을 감고 있는 희수에게 다시금 물었다.
  그때 왜 그랬지?
  희수는 아무 말이 없었다. 나는 희수에게 한 번 더 물었다.
  그때 왜 그랬지…… 미쳤나보다.
  나는 눈을 감고 있는 희수를 바라보았다. 희수는 너무 피곤해 보였다. 천천히 죽어가는 사람처럼.

*

나도 자꾸만 피곤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집에만 오면 이상하게 냄새가 나는 듯한 기분 때문에 한 시간 넘게 화장실에서 나오지 않았다. 따듯한 물을 틀어놓고 그 아래 오랫동안 서 있었다. 발에서는 묽은 진물이 계속해서 흘렀다. 나와는 반대로 희수는 씻는 시늉만 했다. 희수는 노인 같다가도 몸만 커다란 갓난아이 같았다. 그게 어떨 때는 우스웠는데 어떨 때는 무서워졌다.
  노인네 티 내지 마.
  나는 가끔 아무렇지 않게 티브이를 보고 있는 희수에게도 그렇게 말했다.

나는 카르멜라와는 종종 팀이 되었다. 카르멜라는 돈 귀신이라고 붙은 것처럼 일에만 매달렸다. 나는 그런 그녀에게 더 쌀쌀맞게 굴었다.
  돈 귀신이 단단히 붙었지?
  나는 현장에서 그녀를 만나면 일부러 그렇게 운을 뗐다. 그러면 카르멜라는 아무 말도 없이 그저 싱긋 웃어 보였다. 카르멜라는 이제 꽤 한국 사람 같았다. 속도 없고 비위도 잘 맞추고.

하루는 일이 다 끝났는데도 카르멜라가 내 뒤를 따랐다. 나는 카르멜라를 뒤로하고 빨리 걸을까도 했지만 그러지 않았다. 카르멜라는 나보다 걸음이 조금 느렸다. 그 덕에 나도 천천히 걸었다. 왼쪽 발이 아프기는 했으나 이제는 익숙한 지경이라 괜찮았다. 내가 잘하는 것……, 나는 웃겼다.
  해가 진다는 조짐도 없이 주변이 온통 까맣게 어두워져 있었다. 카르멜라와 아파트 단지를 빠져나와 한참을 걸었다. 봄이라기보다는 덜 추운 겨울 같았다. 카르멜라와 나는 아무 말도 없이 그저 방향이 같은 사람들처럼 걸었다. 카르멜라는 집으로 가는 길 중간에 아무 정육점에 들러 혼자 먹기에 벅찬 양의 고기를 샀다.
  그걸 혼자 다 먹게?
  나는 카르멜라에게 말했다. 카르멜라는 배시시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렇게 웃으며 고기를 귀한 것처럼 들고 가는 카르멜라를 힐끔힐끔 훔쳐보았다. 나는 그런 모습의 카르멜라가 귀여웠다.
  언니.
  한참을 걷다가 헤어질 때가 되었을 때, 카르멜라가 나를 불렀다. 나는 카르멜라의 갑작스러운 부름에 고개를 돌렸다.
  언니.
  나는 카르멜라를 빤히 쳐다보았다.
  언니 아프지 마.
  나는 그 말에 적잖이 놀랐다. 카르멜라가 옆에서 들고 있던 고기를 나누려는 제스처를 취했다. 나는 그런 카르멜라에게 손사래를 쳤다.
  너 먹어. 너.
  내가 말리자 카르멜라는 부산스러운 움직임이 천천히 멈추었다. 카르멜라와 헤어지고 용답역 앞에 서 있었다. 엉덩이가 축축해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상설 시장에 들러 돼지고기와 술을 샀다. 나는 희수가 오기 전에 고기를 굽고 소주를 가득 따라 마셨다. 한 잔, 두 잔, 세 잔, 마실수록 가슴 어딘가에서 고름이 나오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 이유를 알 수 없어서 나는 괴로웠다.

봄도 금방 끝이 보이는 것 같았다. 카르멜라는 그 이후로도 바빴다. 아파트는 입주자들이 하나둘씩 들어왔고 상가도 천천히 들어찼다. 아파트 앞 커다란 상가에는 정형외과가 들어와 있었다. 건물의 온 벽이 커다란 통유리로 되어 있는 병원이었다. 여름이 오면 덥겠지. 창이 크니까. 나는 생각했다.
  이제 나는 카르멜라보다 마리아와 자주 팀이 되었다.
  더이상 손쓸 수 없을 때쯤 병원을 찾았을 때, 의사는 나를 이상하게 쳐다보았다. 그러고는 할 수 있는 많은 말들 중에서 딱 한 마디를 골라서 했다.
  다음부터는 바로 병원에 오세요. 그냥 두지 마시고.
  국소마취를 하고 염증의 뿌리를 제거했다.
  시간이 지나 상처가 아물었지만 왼쪽 발에 무게를 싣지 않는 것이 습관이 되어 있었다. 청소하다가 만난 내 또래 중 하나는 나에게,
  참는 게 능사가 아니야. 늦었다고 생각했을 때가 늦은 거야,
  라고 말했다.
  나는 그녀에게 그래도 보이스 피싱 같은 건 안 당해, 아무에게나 턱턱 안 내어줘, 라고 말하려다가 말았다. 나한테 전화 한 통에 무언가를 턱 내놓을 정도로 소중한 것도 없으니. 그녀는 항상 퇴근 가방 안에 옷 하나를 더 가지고 다녔다. 그녀는 요즘 춤을 배운다고 했다. 배운 지 일 년이 넘어간다고.
  이렇게 몸 쓰는 건 개운해.
  그녀가 말했다.

나는 전처럼 일을 많이 하지 않았다. 참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라는 말을 떠올릴 때마다 그녀에게 조금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나는 아주 드문드문 카르멜라를 보았다. 나는 그녀를 보고 웃지도 울지도 않았다. 화장실 구석에서 변기 뒤축을 닦고 있을 때쯤 카르멜라가 나에게 다가왔다.
  카르멜라 로사린 가르시아 몰리나.
  카르멜라는 그것이 자신의 이름이라고 했다. 그러고 보니 카르멜라의 이름을 카르멜라로만 생각했지, 전체 이름에 대해서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카르멜라는 멀뚱히 그런 카르멜라를 바라보고 있는 나를 보면서 한 번 더 말했다.
  축약하면,
  카르멜라 R.G 몰리나, 라고.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카르멜라가 가만히 나를 보고 서 있자, 나도 내 이름에 대해서 말해주었다. 그러고는 덧붙였다. 한때는 참 흔한 이름이었다고.
  카르멜라는 옹알이하듯이 그 이름을 여러 번 중얼거렸다. 그러고는 무언가를 말할 듯 말 듯 한 얼굴로 내 앞에서 서성였다. 나는 카르멜라에게 그것을 물어서 대답을 얻어낼 수도 있었지만 일부러 그러지는 않았다.

시간이 지나 카르멜라는 더이상 만날 수가 없었다. 다른 업체로 옮긴 것인지 혹은 다른 일을 하러 간 것인지는 정확히 알 수는 없었다. 어쨌거나 돈이 되는 일을 하러 갔겠지. 다만 시간이 지나 몇 가지 전해들은 것은 있었다. 다시 필리핀으로 돌아갔다는 이야기와 한국 남자를 만나 결혼을 했다는 이야기였다. 그중에는 카르멜라에게 이상한 조롱을 날리는 남자애 둘 중 하나와 결혼했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아이가 생겨 도중에 일을 그만두었다는 말도 있었다. 나는 괜스레 그 말에 흠칫 놀랐다. 언젠가 보았던 그녀의 물먹은 눈동자가 눈앞에 어른거렸다.
  배가 불러서는 그 조그만 스포츠카 같은 데서 내리더라니까, 걔랑.
카르멜라가 사라진 자리에는 이상하게 카르멜라의 이야기가 가득차 있었다. 카르멜라가 없을 때는 아무도 카르멜라에 대해서 알지 못했으면서. 나는 카르멜라를 닮은 어린아이를 떠올렸다. 해가 잘 들고 커다란 거실에서 둘이 누워서 낮잠을 자는 모습을 떠올렸다. 그 모습을 떠올리면 가만히 앉아 있다가도 잠이 쏟아졌다.
  막 태어난 애는 그렇게 작다던데. 신발 한 짝만하다던데.
  언젠가 내가 카르멜라에게 그렇게 물었을 때, 수줍게 고개를 끄덕이던 모습이 여전히 눈에 선했다.
  나는 좋은 집에 가면 그녀를 먼저 떠올렸다. 그녀를 떠올리면 잘 가라고 하는 말이 먼저인지 미안하다고 하는 말이 먼저인지 늘 헷갈렸다. 결국 나는 둘 다 하지 못했다. 여전히 알 수 없는 기분만 느낄 뿐.
  여기 집 참 좋아. 해가 잘 들어.
  나는 나와 팀이 된 마리아에게 쓸데없는 질문을 자주하곤 했다. 나는 날로 수다스러워졌다. 마리아는 내 질문에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창밖에는 물놀이를 하는 아이들이 보였다. 물방울이 햇볕에 눈부시게 부셔졌다. 아이들은 그 모습을 좋아했다. 나는 자꾸만 무언가를 까먹을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그게 기억나지 않아서 아무런 이름도 붙이지 않았다. 대신 가끔 카르멜라, 라는 이름을 떠올렸다. 그녀가 자신의 긴 이름에 대해서 차분히 말해주던 모습을 떠올렸다. 그녀의 비밀 같지 않던 비밀을 떠올렸다. 그리고 너무 소중해서 부러웠던 것에 대해 나는 가끔, 아주 가끔만 떠올렸다.

김남숙

2015년 문학동네신인상을 수상하여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아이젠』『파주』, 산문집 『가만한 지옥에서 산다는 것』이 있다. 제15회 젊은 작가상, 제25회 이효석문학상 우수작품상을 수상했다.

나와 결부된 무언가를 끊고 나아가는 것이 매번 너무 어려운 일 같다. 그럼에도 소설은 소설인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 나에게는 외로운 것이면서 동시에 외로워서 하는 것.

2026/06/03
79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