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젊은 유령은 어떻게 말하는가?
1
지난해 가을, K군에 위치한 한 작은 서점에서 북토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었습니다.
K군과 광주광역시를 잇는 15번 국도 석거리재 터널에 막 들어섰을 무렵, 버릇처럼 힐끔 룸미러를 올려다보았다가, 그만 거기, 제 차 뒷좌석에 조용히 앉아 있던 유령과 눈이 마주치고 말았습니다. 남루해 보이는 갈색 카디건에 둥그런 안경, 쇼트커트를 한 이십대 후반의 여자 유령이었습니다.
헉!
저는 숨이 턱 막힐 만큼 놀랐습니다. 무의식적으로 브레이크에 발이 먼저 갔지요. 차는 날카로운 마찰음을 내며 왼쪽으로 비스듬히 미끄러지나 싶더니 중앙분리대 앞에 겨우 멈춰 섰습니다. 자정에 가까운 시간, 터널엔 다행히 양방향 아무런 차도 지나다니지 않고 있었습니다. 노르스름한 터널 조명등 아래 웅웅, 낮은 바람 지나다니는 소리만 들렸습니다.
깜빡깜빡.
유령은 호기심 가득한 큰 눈으로 제게서 시선을 떼지 않고 있었습니다.
뭐야, 이게.
저는 핸들 쪽으로 고개를 숙였습니다.
잘못 봤나? 그랬겠지? 마그네슘 부족인가? 그러면서도 저는 룸미러를 다시 쳐다볼 용기는 나지 않았습니다. 뜬금없이 오 주여, 당신께 감사하리라. 실로암 내게 주심을…… 그 노래가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저는 마음을 가다듬고 우선 조심스럽게 비상등 버튼부터 눌렀습니다. 터널이니까, 2차 사고를 조심해야 했습니다. 이런 게 바로 사고의 전조일지도 몰라. 어깨를 잔뜩 옹송그린 채로 핸들을 반대 방향으로 틀었습니다. 차는 느리게 움직였고, 종아리가 약간 당기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깜빡깜빡. 비상등이 점멸할 때마다 마치 살아 있는 짐승의 꼬리처럼 터널 지붕이 들썩거렸는데, 그래서였는지는 몰라도 주변이 서서히 서서히 무너져 내리는 듯한 기분도 들었습니다.
터널을 빠져나오자마자 저는 갓길에 차를 세웠습니다. 그러곤 바로 차 밖으로 튀어나왔죠.
119를 불러야 할까? 핸드폰을 꺼내 들며 그 생각을 먼저 했습니다. 저기요, 지금 제 차에 유령이 타고 있어서 그러는데요, 사람 좀 보내주시면 안 될까요? 저는 속으로 그 말을 웅얼거리다가 연극배우처럼 도리질을 쳤습니다. 119에겐 119의 역할이 있지요. 작가에겐 작가의 역할이, 선생에겐 선생의 역할이, 독자에겐 독자의 역할이 있듯이 말이죠. 119가 무슨 성 바오로수도회 소속 구마 사제도 아니고……
아내,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볼까, 고민하기도 했습니다. 젊은 시절, 아내는 가끔 유령을 본다고 제게 털어놓은 적이 있었습니다. 아내가 만난 유령은 대부분 낯선 할머니나 할아버지 유령이었는데, 시도 때도 없이 나타나(그러니까 낮밤 가리지 않고) 호통을 쳐댄다는 것이었습니다. 밥 안 하고 뭐 하냐? 설거지도 아즉 안 했네? 호박 하나 숭숭 썰어서 된장찌개 끓여다오. 저는 그 말을 건성건성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래서 자기는 어떻게 했는데? 어쩌긴, 할머니 할아버지가 시키는 대로 했지. 그렇게 지은 밥을 당신이 먹었고……
저는 아내에게도 전화를 걸지 않았습니다. 아내는 새벽기도회에 빠지지 않고 나가는 사람인데(아내는 어쩌면 자신이 만난 유령 때문에, 그 두려움 때문에 교회를 나가게 된 것은 아닐까, 그때 처음 짐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늘 밤 11시 이전엔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그런 사람을 깨워서 내 차에 유령이 타고 있다고 말한다면…… 돌아올 답은 빤할 거 같았습니다. 그거 봐라, 진즉에 내가 같이 교회 다니자고 하지 않았더냐?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추수감사절 예배부터 같이 가자. 그거 다 당신을 위한 주님의 예비하심이다……
저는 한동안 갓길과 면한 흰색 가드레일에 걸터앉아 있었습니다. 국도 저편에서 달려오는 차는 없는지 고개를 빼 바라보기도 했습니다. 도로엔 여전히 차 한 대, 오토바이 한 대, 경운기 한 대 지나다니지 않았고, 별빛 가득한 밤하늘 사이로 새 한 마리가 낮게 날아가는 것이 보였습니다.
하아.
저는 일부러 크게 숨을 내쉬었습니다. 느닷없이 팔굽혀펴기를 빠르게 대여섯 번 하기도 했고요. 다른 방법은 없는 거 같았습니다. 누군가의 조언도, 도움도, 구하긴 어려울 것이다. 대신 용기, 담대함, 사람으로서의 권위, 그런 말들이 무작위로 떠올랐습니다. 별일 없을 것이다, 눈을 마주치지 않으면 된다, 뒤돌아보지 않으면 된다…… 저는 다시 운전석 쪽으로 걸어갔습니다. 어두운 밤에 캄캄한 밤에 새벽을 찾아 떠난다. 저는 일부러 소리내어 실로암을 부르며 차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다시 시동을 켜고 액셀러레이터에 발을 올렸습니다. 종이 울리고 닭이 울어도 내 눈에는 오직 밤이었소. 창문을 모두 내리고(그러면 무언가 밖으로 날아가 버릴 거라고 기대했습니다) 속도를 서서히 올렸습니다. 다행히 아무런 일도, 그 어떤 목소리로 들려오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처음 만난 그때는 차가운 새벽이었소. 당신 눈 속에 여명 있음을 나는 느낄 수가 있었소. 아니, 내가 어떻게 이 가사를 다 알고 있지? 저는 스스로를 대견해했고, 정말로 주님이 저를 지켜주고 있다는 마음까지 들었습니다(하지만 후에 생각해보니 그건 아무래도 군대의 힘이었습니다. 초코파이 하나 얻어먹겠다고 매주 연대 교회에 찾아가 춤추며 부르던 실로암의 힘). 제 노랫소리는 점점 더 커졌고, 광주광역시는 조금 더 가까워졌습니다(그러니까 사십 분 가까이 실로암을 반복해서 부른 것입니다). 그래, 그래.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뒤돌아보면 아무도 없을 것이다, 내가 잘못 본 게 맞을 것이다, 유령이라니, 뭘 잘 모르는가 본데 이래 봬도 나 리얼리스트야! 세계를, 인간을, 충실히 재현해내는 사람이라고!
저는 살고 있는 아파트 입구 사거리 신호등에 걸렸을 때, 용기를 내 룸미러를 다시 바라보았습니다.
헉.
여전히 그 젊은 유령은 제 차 뒷좌석에 앉아 있었습니다. 깜빡깜빡. 제게서 눈을 떼지 않는 모습도 그대로였습니다.
하지만 저는 처음처럼 그렇게 놀라진 않았습니다. 주변엔 함께 신호에 걸린 택시도, 택배 트럭도 있었습니다. 여차하면 그들에게 도움을 구할 수도 있었으니까요. 무엇보다 도시의 불빛이, 교회의 붉은 십자가와 불 밝힌 편의점과 그 앞 파라솔에 앉아 있는 대리기사들이, 저를 안도하게 해주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슬쩍 한 번 더 유령의 얼굴을 바라볼 용기가 생겼습니다.
깜빡깜빡.
분명, 북토크 자리에서 본 그 얼굴이 맞았습니다. 워낙 소수의 사람만 참석한지라 다 기억할 수 있었습니다. 그때도 깜빡깜빡 말없이 나를 바라보기만 했던, 왼쪽 두번째 의자에 앉아 있던 사람…… 사인회를 할 때 소리 없이 자취를 감춘 사람……
그러다가 문득 이런 생각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뭐야, 그럼? 오늘 북토크에 참석한 사람은 달랑 네 명이었던 거야? 다섯 명인 줄 알았는데, 그중 한 명은 유령이었던 거야……?
저는 괜스레 자존심이 상했습니다. 네 명이라, 네 명이란 말이지…… 그 마음으로 아파트 주차장에 들어섰습니다. 시동을 끄고 차에서 내릴 때까지도 유령은 그 모습 그대로, 뒷좌석에 앉아 있기만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더이상 실로암을 부르지 않았습니다.
대신 한 독자의 얼굴을 떠올렸습니다.
2
사실 그날 북토크에서부터 약간의 문제가 있긴 있었습니다.
참석한 독자 중 한 명과, 그러니까 그 네 명 중 한 명과, 제가 언쟁 아닌 언쟁을 벌였는데, 그때부터 마치 에어컨 실외기 바람을 정면으로 맞은 것처럼 어떤 열패감에 휩싸였던 게 맞습니다.
이래서 안 하려고 했는데.
K군 읍내 농협 건물 바로 옆에 위치한 그 서점은 ‘맥문헌(脈文軒)’이라는 간판을 달고 있었습니다. 열댓 평 남짓한 작은 공간에 카페까지 겸하고 있었죠. 주인인 오십대 남자는 자신을 시인이라고 소개했습니다. 지역서점 활성화 사업의 일환으로 북토크를 준비하고 있다고, 그에 따른 사례금도 군청 예산으로 맞춰 드린다는 메일 끝에 주인은 자신과 잘 알고 지낸다는 몇몇 시인들의 이름을 적었습니다. H시인 잘 아시죠? H시인께서 작가님을 적극 추천해주셨습니다. 광주광역시에 거주하시니까 그렇게 먼 거리도 아니고……
자동차로 한 시간 삼십 분이 걸립니다. 왕복이면 세 시간.
모르긴 몰라도 서울에 사는 다른 시인이나 작가를 섭외하다가 잘 안된 모양이라고, 그런 의구심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저를 먼저 염두에 두었다면 누구누구의 추천 같은 말은 하지 않았겠죠(메일을 읽어보니 제 소설은 안 읽어본 티가 팍팍 났습니다). 그래서 거부하려고 했지만……H시인이 마음에 걸렸습니다. H시인은 한때 제가 열심히 전작 읽기를 했던, 그만큼 좋아하고 존경하는 시인이었습니다. 수년 전, 한 문학상 시상식 뒤풀이 자리에서 처음 만났을 때, 제대로 눈도 마주치지 못한 채 인사를 나눴는데, 그분이 저를 기억하고 누군가에게 추천까지 해줬다니, 그게 제 마음을 흔들었습니다.
그냥 바람이나 쐬러 갔다 올까?
K군은 유자가 많이 나는 곳이니, 그것도 사오고.
하지만 그러고도 저는 결정하는 데 며칠 더 걸렸습니다.
그것도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고백하자면 저는 북토크에 약간의 트라우마를 갖고 있었습니다. 작가가 된 지 벌써 이십칠 년이나 지났고, 책도 열 권 이상 냈고, 대학에서 문학을 가르치는 일도 하고 있지만, 아직도 독자를 만나는 일은 어렵고 어색하기만 한, 명절날 아침 자다 깬 상태로 멀뚱멀뚱 친척 어르신들 앞에 불려 나가 있는 시간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학생들을 가르칠 땐 안 그러는데 이상하게 남 앞에서 제 책에 대해 이야기할 때면 발음이 새고 다리가 덜덜 떨리기까지 했습니다.
요즈음엔 북토크를 참 많이들 하지요.
예전엔 책을 내도 그런 자리가 흔치는 않았습니다(첫번째 두번째 책을 냈을 땐 아예 그런 게 있다는 걸 모르고 있었으니까요). 설령 있다고 해도 ‘작가 강연’이나 ‘작가와의 대담’ 같은 형식이었죠. 그것도 다 어느 정도 문학적 성과를 낸 중견 작가나 설 수 있는 자리였습니다. 그게 북토크와 같은 거 아니냐고 물을 수도 있겠지만, 아니죠. 엄연히 다르죠. 그건 분명 ‘작가’가 중심인 자리였습니다. 작가가 해주는 어떤 이야기를 의자에 앉아 가만히 경청하는 자리. 반대로 북토크의 중심엔 언제나 ‘책’이 있습니다. 책을 가운데 두고 작가와 독자가 대화하는 자리……인 것 같지만…… 그것도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지만…… 사실은 책 홍보에 방점이 찍힌 시간이 맞습니다. 책 홍보라고 하면 너무 대놓고 뻔뻔한 것 같으니 ‘대화’라고 포장을 한 것이죠. 그러니 사실 그 자리의 주인은 책도 아니고, 작가도 아닙니다. 오직 독자, 독자인 것이죠.
하지만 저는 그것도 문제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어쨌든 책도 팔아야 하는 소비재가 맞으니까요. 그래야 출판사도 힘내서 다른 책을 더 펴낼 수 있고, 출판사 직원들도 생업을 유지할 수 있을 테니까요.
문제는 그 자리가 갖는 어떤 폭력성, 어떤 적나라함이었습니다.
예전에 한 출판사 마케팅팀장과 저녁을 먹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그 팀장은 얼마 전 자신의 출판사에서 책을 펴낸 한 작가 때문에 마음고생하고 있다고 털어놓았는데, 사정을 들어보니 다른 출판사들처럼 북토크를 열어주지 않는다고, 작가가 많이 서운해하고 그러다가 결국 삐져버렸다는 것이었습니다.
“작가님들이 잘 모르시는 게…… 저희도 무진장 북토크 하고 싶습니다. 저희도 북토크 좋아해요. 책상에만 앉아 있다가 독자들 만나면 나름 힘도 얻고 그렇습니다. 한데요, 저희가 왜 못하는지 아십니까? 모객이 안 돼요, 모객이…… 힘들게 자리를 만들었는데 독자가 열 명도 안 오면……”
그게 바로 저였습니다.
네번째 소설집이 나왔을 때였던가요? 출판사에서 야심차게 북토크를 준비해준 적이 있었습니다. 성수동에 있는 꽤 큰 뮤직홀을 대관하고 트위터와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에 열심히 홍보도 하고 그 바닥에서 나름 지명도 있는 인플루언서까지 사회자로 섭외를 마쳤다는 연락을 받고 나니, 저 역시도 긴장이 되었습니다. 북토크 전날까지 제 책을 다시 읽어보고, 해설도 살펴보고, 입고 갈 옷도 미리 입어보고…… 그렇게 만반의 준비를 하고 갔는데……
열두 명이 왔습니다. 삼백 석 규모의 뮤직홀에 찾아온 독자는 더도 덜도 아닌 딱 열두 명. 예수의 열두 제자도 아닌데 마치 짠 것처럼 숫자가 맞은 열두 명(그때 차마 출판사 담당 편집자에겐 말하지 못했지만…… 그중 세 명은 서울에 사는 제 제자들이었습니다. 아이 그냥, 오랜만에 만나서 밥이나 먹자고. 그렇게 제가 일주일 전 전화해서 부른 제자들. 베드로 같은 진짜 제자들).
북토크를 담당했던 직원과 저는 서로 무안해했고, 서로 미안해했습니다(그러니까 그때까지만 해도 ‘사전 예약제’ 같은 게 없었습니다. 저 같은 사례가 반복되고 나니, 저절로 생기게 된 절차이겠죠).
비싼 대관료를 쓴 것도, 몸값 높은 인플루언서를 부른 것도, 그 자리에서 혹여 책이 더 팔릴까 박스째 이고 온 마케팅팀 직원에게도, 그 책들을 고스란히 다시 이고 갈 그 어깨에게도, 그저 면목이 없을 뿐이었습니다.
그날이 제겐 상처가 되었습니다.
이상한 무력감과 제 몫이 아닌 수치심 같은 것이 마치 길바닥에 내팽개쳐진 가방처럼, 그 위에 새겨진 누군가의 발자국처럼, 제 기억 속에 남았습니다.
독자는 소비자일까요, 심판관일까요?
그도 아니면 저의 또다른 분신일까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한 가지 확실한 건, 독자가 더 줄어들면 줄어들수록 독자의 힘이 더 커진다는 것. 그것을 저는 몇 번의 북토크를 통해서 느낄 수 있었습니다(그뒤로도 책이 나올 때마다 제 의사와는 무관하게 북토크를 한 번씩 했습니다. 찾아온 독자의 수는 늘 엇비슷했습니다). 소수의 소중한 사람들이니, 그들이 원하는 것은 그들이 원하는 대로 다 해주고 싶은 마음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게 진짜 맞는 일일까요?
저는 K군에 가기로 마음먹었습니다.
H시인의 호의를 무시해선 안 된다는 생각도 물론 있었지만, 무엇보다 그 무렵 글이 잘 안 써졌습니다. 저는 이곳저곳 옮겨 다니면서 글을 쓰는 버릇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래서 나중에 말하겠지만 남들과 좀 다른 방식으로 작업을 하는 작가이기도 합니다. K군에 다녀오면서 글 쓸 만한 장소를 물색하겠다, 그쪽은 인적도 드문 곳이니…… 뭐 그런 계획을 세운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정말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이젠 그런 것쯤 신경 쓰지 않는 작가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더 앞섰습니다. 내가 그래도 27년 차 작가인데, 독자니 판매부수니 좌고우면하지 말고…… 우리가 뭐 언제 독자보고 글을 썼나! 쓰다 보니 독자도 생긴 거지! 작가가 결기가 있어야지, 결기가!
비록 그 결기는 맥문헌에 모인 다섯 명(아니, 네 명)의 독자를 보고 다시 한번 사그라졌지만, 어쨌든 제 기대는 분명 그런 것이었습니다.
작가를 작가로 다시 세우는 결기.
3
“이런 말을 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사실 저는 좀 답답했어요.”
북토크가 거의 끝나갈 무렵, 한 여자가 말을 꺼냈습니다. 그녀는 위아래 세트로 된 검은색 추리닝 차림이었는데, K군 소재 고등학교 국어교사라고 자신의 직업을 먼저 밝혔습니다.
“아유, 우리 박 선생님이 뭐가 또 그렇게 답답했을까요?”
사회를 본 서점 주인이 그렇게 말하자, 다른 참석자들이 모두 웃었습니다. 처음부터 느꼈지만, 그날 북토크에 온 독자들은 서로 친분이 있는 듯했습니다. 나이도 엇비슷해 보였고(오십대 중반에서 육십대 초반 사이로 보였습니다), 헤어스타일도 단체로 같은 미용실을 다니는지 단발 파마로 통일한 여성들이었습니다(다른 사람이 두 명 있었는데, 한 명은 박 선생이었고, 다른 한 명은 저를 쫓아온 바로 그 유령이었습니다).
“아니 그렇잖아요? 어느 순간부터 작가님이 쓰는 소설 속 주인공은 모두 소설가이고, 일인칭이고, 남자이고…… 저는 좀 다른 걸 보고 싶거든요.”
그녀가 그렇게 말하자, 바로 옆에 앉아 있던 한 독자가 “난 그래서 좋던데?”라고 끼어들었습니다.
“그게 왜 좋아요?”
박 선생이 그 독자를 보면서 물었습니다.
“웃기잖아요? 좀 찌질해 보이기도 하고.”
그러자 다시 모두 와. 그 와 속에 저도 포함되어 있었지만(그래야 좀 대범해보일 것 같았습니다), 사실은 그때부터 기분이 상하기 시작했습니다.
“다른…… 어떤 걸 보고 싶으세요?”
저는 최대한 사람 좋은 표정으로 물었습니다.
“낯선 거요.”
박 선생은 바로 대답했습니다.
“소설이 원래 낯선 걸 보여주는 장르 아닌가요?”
그녀의 말에 모두의 시선이 다시 저에게로 쏠렸습니다.
“낯선 게 사람마다 다 다를 수 있는데……”
저는 제 옆에 앉은 서점 주인을 바라보며 말했습니다.
“저한테 만족을 못 하신다면 다른 한국 작가들은 어떠신가요? 요즈음 한국문학이 굉장히 다양한데……”
“아니요.”
박 선생이 단호하게 제 말을 끊었습니다.
“작가님이 뭔가 좀 오해하시는 거 같은데요, 저는 작가님뿐만 아니라 한국문학 전체가 다 그렇다는 거예요. 다 거기에서 거기인 자기 이야기들뿐이고…… 다 같은 계급에서 자라서 그런가? 생활도 엇비슷한 거 같고……”
야아, 계급 이야기까지 나오는구나. 저는 비아냥대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그런 작품들이 비평가들한테 호평받는 거 같고…… 하긴, 우리나라엔 가난한 집 출신 비평가는 아예 없겠네요. 다들 대학원까지 나오셔야 했을 테니까……”
박 선생의 어조엔 어쩐지 유리 알갱이 같은 것이 묻어 있었는데, 그래서 저는 이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저 여자는 원래 파이터인가? 그래서 추리닝을 입고 온 것일까?
“무슨 본드처럼 자기들끼리만 끈끈한 거 같아요. 자기들끼리만 이해해주고 안아주고 다정하고.”
깜빡깜빡.
저는 왼쪽 두번째 의자에 앉은 사람(그러니까 그때까지만 해도 사람인)을 바라보았습니다. 이쯤 되면 저도 가만히 있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윤리라는 게 있어요.”
모두가 다시 제 말에 집중하는 게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저는 목소리를 조금 더 낮게 깔았습니다.
“제가 아닌 누군가를 함부로 쓸 순 없다는 윤리 같은 거요.”
깜빡깜빡.
“제가 뭐라고 누구를 대변하고 누구의 마음을 대신 쓸 수 있겠어요? 그러다보니 제 이야기에 집중하는 건데……”
“저는 그게 비겁하다는 거예요.”
박 선생이 또 제 말을 끊고 나섰습니다.
아이 씨, 진짜.
“그러려면 왜 소설을 쓰죠? 그냥 에세이를 쓰면 되죠.”
“저는!”
그때, 저도 모르게 제 목소리가 높아졌습니다.
“저는, 저는 그것도 대단한 용기가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자, 하면서 서점 주인이 나섰습니다. 그는 여기에서 북토크를 마무리하고 바로 사인회를 열겠다고 말했습니다(다섯 명 아니 네 명뿐인데 사인회라고 말하는 것도 좀 창피했습니다). 박 선생도 저에게 사인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다른 독자들처럼 제게 그 어떤 말도 걸지 않았습니다(다른 독자들은 같이 사진을 찍어도 되냐고, 그걸 자신의 SNS에 올려도 되냐고 물었습니다. 저는 흔쾌히 괜찮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박 선생에겐 묵묵히 ‘원한 없이, 명랑하게. 2025년 가을 이기호’라고 서명해주었습니다. 그것으로 끝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돌아오는 길에 저 친구, 유령을 만난 것입니다.
4
유령은 다음 날에도 사라지지 않고 제 자동차 뒷좌석에 앉아 있었습니다.
깜빡깜빡.
환하게 태양이 떠 있는 오전에 보면 그래도 좀 덜 무서울 줄 알았는데……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더 오싹했습니다. 실감이라고 해야 할까요? 어쩐지 금방이라도 제 어깨에 손을 올릴 것만 같았고, 성난 목소리로 제 이름을 부를 것만 같았습니다. 쓰고 있는 안경에 태양이 반사되어 반짝거리는 것 같기도 했고, 카디건에 인 작은 보풀들이 힘없이, 마치 연기처럼, 일렁이는 것 같기도 했습니다.
저는 차를 두고 걸어서 학교로 출근했습니다(사십 분쯤 걸렸습니다). 환기라도 시키는 듯 차 유리창을 살짝 내려놓는 것도 잊지 않았습니다. 강의를 준비하는 틈틈이 인터넷에 귀신을 쫓는 법을 찾아보기도 했습니다(프라이팬에 말린 쑥을 태워 연기를 피워 올리라는 글을 보고 차 옆에 휴대용 버너를 두고 웅크려 앉아 있는 제 모습을 상상해보기도 했습니다). 제 제자 중엔 대학교 4학년 때 신내림을 받고 무당이 된 친구도 있었습니다(다행히 학기 말에 신내림을 받아 간신히 졸업은 했습니다). 그 친구가 무당이 되겠다고 했을 때, 그 친구 어머니가 두 번인가, 저를 찾아 학교로 오기도 했었습니다. 하나뿐인 아들을 좀 말려달라고, 작가가 되겠다고 대학교에 들어간 애가 왜 무당이 돼서 나오냐고, 애원하듯 때론 힐난하듯 제게 도움을 청했죠. 그래서 만나본 그 친구가 제게 했던 말도 새삼 떠올랐습니다.
“교수님, 이것도 그냥 다 스토리텔링이에요. 심각하게 생각하지 마세요.”
저는 그 친구라도 찾아가볼까, 고민하다가 이내 그만두었습니다. 너무 먼 곳에 있고(동탄에 있다고, 그쪽도 신도시에 입점하는 게 중요하다고 들었습니다), 어쩐지 제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그래도 내가 가르친 아이인데…… 그런 생각들 말이죠(더 결정적으론 이미 이름도, 전화번호도 다 바꿨다는 말을 어렴풋이 전해 들었던 기억이 났기 때문입니다).
저녁엔 곧장 집으로 돌아와 열심히 집안일을 했습니다. 아이들 밥을 짓고 빨래를 하고 내친김에 창문턱과 가스레인지 후드 청소까지 했습니다.
그런 저를 보고 아내가 물었습니다.
“뭐지?”
“뭘?”
저는 식기세척기 안에 들어 있던 컵들을 꺼내면서 되물었습니다.
“뭔 일 있어?”
아내는 다시 물었고, 저는 속으로 여기도 귀신 한 명 추가요, 라고 말했습니다.
“글이 잘 안 써져?”
“언제는 뭐 잘 써졌나……?”
저는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습니다.
“그럼 가서 써. 여긴 내가 마무리할 테니까.”
아내는 그러면서 제 옆에 다가와 섰습니다. 학원 강사로 일하는 아내는 매일 여섯 시간 이상(시험 기간엔 열 시간 이상) 강의를 하고 퇴근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집으로 돌아와선 한동안 멍하니 거실 소파에 널브러져 있곤 했습니다. 그런 세월이 벌써 십 년째였습니다. 그래서 저녁 집안일은 제가, 오전 집안일은 아내가, 그게 우리 부부의 패턴이 되어버렸습니다. 글 쓰는 일은 그다음에.
“다했는데 뭘.”
“그러니까 얼른 가라고.”
아내는 제 손에 있던 고무장갑을 벗기면서 등을 떠밀었습니다.
그래도 제가 뭉그적거리자 심각한 표정으로 물었습니다.
“왜 그래 정말? 어디 아픈 거야?”
저는 그때 아내에게 모든 걸 다 털어놓을 뻔했습니다. 사실은 지금 내 차에 유령이 타고 있다, 당신도 예전에 유령을 만난 적 있다고 하지 않았느냐, 당신은 시키는 대로만 했더니 유령이 사라졌다고 했지만…… 이 친구는 말도 없다, 눈만 깜빡거리고 있다, 뭘 요구하는지도 모르겠다, 나이가 들면 이런 게 하나도 안 무서울 줄 알았는데, 더 떨린다, 나 어떡하면 좋냐……
하지만 저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일에 지친 아내가 애처롭기도 했고, 그런 아내에게 제 말들이 어떻게 다가갈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교회 가자고 할까봐 두려웠던 것도 사실입니다).
“어디가 좀 아팠으면 좋겠네.”
저는 그렇게 말하고 집 밖으로 나왔습니다.
자, 그러니까 이제 진짜 저의 곤경에 대해서 말할 차례입니다.
앞에서 말한 남들과 좀 다른 작업 방식, 그 상태에 대해서 말입니다. 그게 뭐, 대단한 것은 아니지만.
저는 몇 년째 작업실이 아닌, 차 안에서 소설을 쓰고 있습니다.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니었고요, 우연한 경험이, 그러니까 마치 신을 영접한 사람이 개종을 하듯, 그렇게 저를 이끈 것입니다.
몇 년 전 세 들어 있던 작은 월세 오피스텔이 계약 만료되어 새로 작업실을 구할 일이 생겼었습니다. 하지만 그게 생각처럼 쉽게 되질 않았죠. 좀 괜찮은 곳은 보증금과 월세가 너무 비쌌고, 가격이 맞는 곳은 주변이 너무 시끄러웠습니다. 집에서 좀 떨어진 나주와 화순, 담양군까지(그래 봤자 모두 삼십 분밖에 걸리지 않는 곳입니다) 둘러봤지만 마땅한 곳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하필 또 그때 문예지 단편소설 마감도 닥쳐와서 마음이 급했습니다. 집에는 제가 글을 쓸 수 있는 공간이 없었고(아이들이 셋입니다. 그 아이들이 유치원에 입학할 무렵부터 제 방은 없었죠), 카페도 여의치 않았습니다(광주에는 24시간 문을 여는 카페가 흔치 않았습니다). 급한 대로 주방 식탁에 노트북을 펼쳐놓고 쓰기도 했지만 역시나 집중이 잘되지 않았습니다(사춘기 아이들은 왜 이렇게 자주 물을 마실까요? 왜 이렇게 아빠 일에 간섭을 잘할까요?). 마음은 초조해지고, 그래서 더 멀리 보성군까지 작업실을 보러 갔던 날, 국도에서 2, 30미터 떨어진 공터에 차를 세우고 그 안에서 노트북 전원을 켰습니다. 막혔던 부분만, 원고지로 딱 다섯 장 분량만 쓰고 돌아가자. 그렇게 마음먹었습니다(나중에 찾아보니 그곳은 보성과 가까운 화순군 이양면이라는 곳이었습니다). 주변엔 인가도, 가로등도 없었고, 작은 도랑과 초등학교 담장만큼 자라난 수풀, 등고선처럼 휘어진 오래된 나무, 오직 그것이 전부인 곳이었습니다. 물 흘러가는 소리 위로 풀벌레와 개구리 울음소리가 불규칙적으로 얹어지던 곳.
다섯 장만 쓰고 갈 작정이었지만, 이게 웬일, 정신없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원고에 집중했습니다. 고개를 들어보면 캄캄한 밤하늘 위로 별들이, 너무 많아서 적막하고 고요한 별들이, 한눈에 다 들어왔습니다. 넋 놓고 그 별들을 바라보다가 다시 노트북 화면으로 시선을 옮기면, 그때마다 마치 다른 시공간으로 이동하는 것처럼 몸이 약간 떠오르는 듯한 기분을 느꼈습니다. 그 몸을 주저앉히기 위해서라도 저는 노트북 자판에서 손을 뗄 수가 없었습니다. 모스 부호처럼 무언가를 쉬지 않고 타전했고, 무언가를 계속 받아 적었습니다.
그날 제가 그곳에서 쓴 문장은 대략 원고지 삼십 장 분량이었습니다(저는 평상시 하루 작업량이 원고지 여덟 장을 넘지 못합니다). 후에 그날 쓴 원고의 많은 부분을 고치기도 했지만, 큰 줄기는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 원고를 다시 볼 때마다 그날의 별들, 그날의 풀내음이 고스란히 기억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저는 차로 이곳저곳 이동하면서 글을 쓰기 시작했죠. 담양 관방제림 근처와 나주 드들강 상류 까리따스 수도회 정문 옆 공터, 화순 고인돌 공원 후문과 세량지 초입 등등, 심지어 목포 신항까지 다녀온 적도 있었죠. 밤마다 부지런히 차를 몰았습니다. 매일 글만 쓴 것은 아니고, 어떤 날은 가만히 오디오북만 듣고 돌아온 적도 있었고, 또 어떤 날은 학생들이 쓴 원고를 읽다가 다시 핸들을 돌린 날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더 많은 날은 그곳에 앉아 제 원고를 썼습니다. 아무도 침범하지 않는 고요, 선택한 것만 볼 수 있는 자유, 그리고 넉넉한 시트가 주는 안락함. 저는 매일 밤 그렇게 돌아다니다가 집으로 돌아왔고, 아내에게도 더이상 작업실을 구하지 않겠다고 선언했습니다(대신 차를 바꿔야 할 것 같다고, 아무래도 휘발유 차는 기회비용이 너무 많이 든다고, 전기차를 알아보겠다고 넌지시 통보 아닌 통보를 했습니다. 아내는 그냥 솔직하게 차를 바꾸고 싶으면 바꾸고 싶다고 말하라고 했습니다. 저는 이 년 전부터 전기차를 타고 있습니다). 밤 10시부터 새벽 2시까지, 저는 마치 택시기사처럼 일을 하러 나갔습니다.
그런 제 차에, 제 작업실에, 불청객이, 그 어떤 허락도 구하지 않은 채 불쑥 끼어든 것이죠. 그것이 저의 진정한 곤경이었습니다. 유령이 나타난 것이 문제가 아니라, 제 작업 공간이 침범당한 사실. 그 어떤 글도 쓸 수 없게 되었다는 것.
저는 그날 한참 동안 아파트 주변을 돌아다녔습니다. 그러다가 피시방에 들러 멍하니 유튜브만 보다가 새벽 2시 넘어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차 근처로는 가지도 않았습니다.
5
저는 몇몇 사람의 얼굴을 떠올려 보기도 했습니다.
누가 다시 내 앞에 나타난 것일까?
누가, 말하지 못한 누가, 내게 말하려고 하는 것일까?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럴 만한 사람은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제 주변엔 일찍 죽은 사람도 드문 데다가 어떤 원한이나 참을 수 없는 증오를 품고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진 친구도 거의 없었습니다(물론 제가 생각하기에 그랬습니다). 사회적 참사나 재난에 희생당한 이웃도 없었고, 외롭고 쓸쓸하게, 아무도 돌봐주는 이 없이 고독사한 사람의 소식도 듣지 못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너무 멀리 있었고, 제 주변엔 다 고만고만한 이웃들뿐이었죠. 아침이나 저녁엔 호수공원에서 러닝을 하고, 사춘기 자식의 사소한 반항이나 일탈에 감정적으로 대응하지 않으며, 이웃이나 친척의 실수에도 ‘그래, 그럴 수도 있지’ 하면서 넘어가주는, 외적 내적 다정함을 ‘추구미’로 정해놓고 살아가는 사람들 말입니다.
저는 사흘째 되는 날, 용기를 내 차를 몰고 학교로 출근했습니다. 언제까지 이렇게 지낼 순 없다고 마음을 다잡은 부분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그날은 아침 일찍 단과대 회의가 잡혀 있었습니다(꾸물거리다가 회의 삼십 분 전에야 겨우 집에서 나섰습니다). 시동을 걸기 전 저는 룸미러부터 먼저 보았습니다. 유령은 변함없었습니다. 마치 송풍구에 부착된 디퓨저처럼, 뒷좌석에 덩그러니 놓인 쿠션처럼, 깜빡깜빡, 거기 앉아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또 이런 생각도 했습니다.
혹시 나에게 나타난 유령이 아니고, 그냥 차에 달라붙은 유령은 아닐까?
전기차를 사랑하는 유령이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그나마 저에겐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날 저녁, 학교 주차장에서 막 시동을 걸려던 순간, 몇몇 학생들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제 차 문을 벌컥 열었습니다. 같은 과 소설 소모임 친구들 네 명이었습니다(세 명은 뒷좌석으로, 한 명은 조수석으로).
저는 “어어, 거기 유령 탔는데” 하고 놀란 목소리로 말했지만, 그 친구들은 전혀 개의치 않았습니다. 오히려 까르르 웃으면서 “어머 어머, 실례하겠습니다. 같이 좀 타겠습니다” 하곤 허공에 대고 고개를 숙이기까지 했습니다(당연하게도 유령은 제 눈에만 보이는 게 맞는 것 같았습니다). 유령은 그 친구들 때문에 상체를 앞으로 내민 채, 조금 구겨진 상태로, 깜빡깜빡 저를 쳐다보았습니다.
학생들은 밥을 사달라고 했습니다. 교수님이 밥을 사주기로 약속한 게 벌써 백만구만 년 전 일이다, 허기가 져서 문장이 잘 써지지 않는다, 타인의 곤궁함을 외면하지 말라고 교수님께서 말씀하시지 않으셨냐…… 말이 많았습니다.
저는 학생들을 태우고 근처 샤부샤부 집으로 차를 몰았습니다. 가는 도중, 조수석에 앉은 소모임 회장 친구(남자 친구인데, 학과 내에서도 진지하기로 명성이 드높은 학생이었습니다)가 “아까 교수님이 말씀하신 유령이 탔다는 말이 혹시 저희 세대를 일컫는 뜻입니까?”라고 물어서 모두에게 원성을 샀습니다. 저는 “어, 그래”라고 짧게만 대답해주었습니다.
우연한 일이었지만, 학생들을 차에 태운 것이 저에겐 도움이 되었습니다. 유령은 학생들이 식사를 마치고 나올 때까지(바로 옆 설빙에서 디저트로 ‘순수요거블루베리설빙’까지 야무지게 해치우고)도 역시나 제자리를 지키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웬걸, 저에겐 좀 안쓰럽게 보이기도 했습니다. 존재의 본질이야 어찌 되었든 유령 역시 제 학생들 또래로 보였던 게 맞았으니까요. 학생들이 웃고 떠드는 중에도 불편한 자세로 깜빡깜빡거리기만 하는 그 친구의 표정이 쓸쓸하고 어쩐지 더 어리둥절해 보이기도 했습니다. 표정이란 게 원래 보는 사람의 몫인 거잖아요? 그 표정을 읽어내는 제 마음이 그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게 재현의 한계일지 몰라도, 그 한계를 감당하더라도, 저는 그렇게밖에 느낄 수 없었습니다.
내친김에 그날 밤, 저는 차를 몰고 아파트 단지에서 가까운 초등학교 후문 옆 이면도로로 나갔습니다. 등하교 시간엔 번잡하고 정신없는 장소였지만, 밤 10시 이후엔 지나다니는 차도, 인적도 드문, 가로등 불빛에 만들어진 플라타너스 잎사귀 그늘이 차 보닛 위에 드리워지는, 제법 괜찮은 포인트 중 한 곳이었습니다.
저는 그곳에 차를 세우고 운전석 좌석 위로 노트북 테이블을 설치했습니다. 늘 하던 대로 텀블러에 커피도 가득 담아왔고, 생수도 따로 한 병 준비해왔습니다. 노트북에 전원을 넣고, 휴대폰으로 임윤찬의 바흐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재생시키고, 에어컨 온도는 ‘Lo’로, 그런 다음 책상다리하기. 모든 준비를 다 마친 후, 저는 슬쩍 룸미러를 바라보았습니다. 왼쪽 뺨과 콧잔등에 플라타너스 잎사귀 그늘이 진 유령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너는 잠도 없니?
저는 혼잣말을 중얼거리면서 노트북 화면으로 시선을 돌렸습니다. 유령만 빼곤 모든 게 다를 바 없었습니다. 직장도 그대로고, 가족도 무사하고, 작업환경도, 임윤찬도, 실내 온도도, 변한 게 없었습니다. 유령도 이제 익숙해졌으니 몰입만 하면 되는데……
한데, 왜 커서, 너도 깜빡거리기만 하는 거니?
저는 유령이 들으라는 듯 또 혼잣말을 했습니다. 너희들이 무슨 반딧불이니? 여기가 무슨 무주구천동이야? 저는 커피를 마시고, 밤하늘을 바라보며 중얼거렸습니다(왜 나이가 들면 혼잣말에도 자꾸 리듬을 넣게 되는 걸까요? 왜 모든 혼잣말이 창이 되고 랩이 되는 걸까요?). 그러다가 다시 숨을 길게 내쉬고 노트북 키보드에 손을 올려보았지만…… 결국 눈을 감고 임윤찬의 피아노 연주곡에만 귀를 기울였습니다(깜빡 졸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두 시간 가까이 그곳에 머물다가 저는 다시 차를 몰아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이렇게는 안 되겠구나, 이렇게는 안 되겠어.
저는 마치 시조시인처럼 중얼거렸습니다.
6
열흘쯤 지난 뒤, 저는 차를 몰고 다시 맥문헌이 있는 K군으로 향했습니다.
처음부터 K군을 가기 위해 마음먹고 나선 길이 아니라, 핸들을 잡고 멀거니 아파트 정문 출입구를 빠져나와 차가 막히지 않는 쪽으로, 신호가 걸리지 않는 방향으로 움직이다보니 어느새 15번 국도에 올라타 있었고, 그때부터 어떤 의지가 생겨났던 것입니다.
토요일 오후 4시 무렵이었습니다.
아내는 출근했고, 아이들도 모두 학원이나 친구를 만나기 위해 집을 비운 시간. 평상시 같았으면 아이들 침대 시트도 갈고 재활용품도 정리한 후, 함께 사는 강아지 ‘이시봉’과 호수공원과 아파트 단지 뒷산으로 산책을 나섰겠지만, 저는 그 어느 것도 하지 못했습니다. 대신, 차에 가야 한다는 생각과 가면 안 된다는 마음 사이에서 상승과 하강만 반복했습니다. 하강은 이해됐지만, 상승은 또 무엇이었을까요? 왜 두려운 것과 떨리는 것, 긴장과 흥분은 같이 오는 것일까요? 왜 그래서 사람을 더 지치게 만드는 것일까요?
지난 열흘 동안의 제 모습이 딱 그랬습니다.
유령은 변함없이 깜빡깜빡 제자리를 지키고 있었던 반면, 저만 분주하게, 무언가에 닿고 스치는 소리에도 소스라쳐 놀라는 일상이 이어졌습니다. 생가지가 부러질 때 나는 냄새, 그 비릿하고 잠깐 났다가 사라지는 냄새가 제 주위를 맴도는 것만 같았는데, 저는 그것 또한 다 유령의 탓으로 돌렸습니다.
K군에 가면 모든 것이 다시 원래대로 돌아올 것이라는 기대, 그런 게 왜 없었겠습니까? 그곳에서부터 시작된 일이니, 그곳에서 마무리될 수 있다는 마음. 분명 그런 게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아마도 저는 일부러 그쪽 방향으로 핸들을 돌린 게 맞을 겁니다. 짐짓 그렇지 않은 척 제 자신을 속이고 핑계를 대려 노력했을 뿐이지만, 어쨌든 저는 모든 일의 ‘인과(因果)’를 믿는 사람, 거기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사람이 맞았습니다.
하지만 맥문헌 간판이 보이는 K군 유일의 메가커피 매장 앞 도로에 차를 세우고 난 뒤에도, 저는 뭘 어찌해야 좋을지 알 수 없었습니다. K군에 도착하기 전부터 맥문헌 주인을 만나 이런저런 사정을 이야기해볼까, 궁리해본 것도 사실이지만, 막상 그 앞에 닿고 나니 다른 무엇보다도 무안함이, 어떤 부끄러움과 구차함이, 그 자리를 대신했습니다. 불과 열흘 전 북토크를 했던 곳을 다시 찾아가다니. 그 자체만으로도 제가 좀 이상한 사람처럼 여겨졌습니다. 마치 옛 연인과 함께 가던 단골집 앞을 머뭇거리는 기분, 그런 감정도 느껴졌습니다.
유령은 K군에 도착하고 난 뒤에도 오직 저에게만 집중한 채 말이 없었습니다. 풍경을 둘러보지도 않았고, 자세를 바꾸지도 않았습니다.
여기 너희 동네야.
저는 룸미러를 보면서 속엣말을 했습니다.
깜빡깜빡.
이제 가서 눈 좀 붙여.
저는 차 유리창을 조금 내려주기도 했습니다.
K군은 크리스마스이브 저녁에도 길가에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곳이라고, 맥문헌 주인이 농담 삼아 말했던 기억이 났습니다. 과연 그의 말처럼 토요일 이른 저녁 시간이었지만 거리는 한산하고 조용하기만 했습니다. 학교 체육복을 입은 아이 두 명이 바쁘게 뛰어갔고, 지팡이를 짚은 할머니 한 분이 느릿느릿 도로를 건너는 모습도 눈에 들어왔습니다. 거리는 자주 텅 비었고 가로등들은 일찍부터 불을 밝히기 시작했습니다. 글라스 갓을 씌운 빈티지 가로등이었는데, 간격을 맞춰 늘어선 소나무처럼 곧고 튼튼해 보였습니다. 그 불빛들 사이로 산에서부터 내려온 안개가 스멀스멀 퍼져나가고 있었습니다. 살짝 열어둔 차 유리창 사이로 퍼지는 나무뿌리 냄새, 구덩이 안에 들어 있던 오래된 흙냄새. 밤이 되면 더 짙어지는 냄새들.
순간 저는 조금 이상한 감정에 휩싸였습니다.
이걸 감정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까요? 몸이 먼저 떨리는가 싶더니 간질간질 잔기침이 나올 것처럼 가슴과 목 부위가 불편해졌습니다. 무언가 터져나올 것만 같은데, 속 시원하게 해결되는 것은 없어서 더 답답해지는, 그러다가 결국 스스로에 대한 자괴감이 더 심해지는 상태.
저는 까닭 없이 분노했습니다. 뭘 잘 몰라서 화가 나기도 했고, 뭘 제대로 표현할 수 없어서, 그 상태를 고스란히 문장으로 옮길 수 없어서 적의를 품었습니다. 그것밖에 아는 감정이 없는 것 같았습니다. 두려움을 받아들이는 감정, 그것을 모른 척하려고 안간힘을 쓰는 마음. 오직 그것뿐인 거 같았습니다.
저는 차 뒷좌석을 바라보며 소리라도 지르고 싶었지만, 그러진 않았습니다. 대신 바로 옆자리에 놓인 노트북을 펼쳐 제 무릎 위에 올렸습니다(노트북 거치대는 트렁크에 있어서 꺼내지 못했습니다). 늘 차 안에 두는 작업용 노트북이었습니다. 그곳에 무언가를 적어나가기 시작했습니다. 마감이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저는 상관없었습니다. 유령에 대해서 쓰진 않았습니다. 저에게 중요한 것은 유령이 아니라, 침해받은 제 공간이었습니다. 고통받는 제 이야기였고, 어지러워진, 문장으로 표현할 수 없는 제 감정이었습니다. 제가 유령에 대해서 무엇을 안다고 함부로 유령에 대해서 쓸 수 있겠습니까? 쓰더라도 그것은 저와 관계된, 제 이야기였습니다. 에세이이든, 소설이든, 제가 쓸 수 있는 문장들. 오직 그것이 궁금했습니다.
결기.
그것을 해내겠다는 결기.
그곳이 어디든 쓰겠다는 의지.
나에게 최대치로 집중된 감각.
그렇게 한참을 노트북에만 집중하고 있을 때 톡톡, 조수석 유리창을 두들기는 소리가 났습니다. 저는 화들짝 놀라 그만 노트북을 바닥을 떨어뜨릴 뻔했습니다. 유령이, 깜빡깜빡거리기만 하던 그 존재가, 드디어 말을 건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유령이 아니었습니다.
한 여자가 살짝 열린 조수석 유리창에 이마를 댄 채 저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작가님……?”
검은색 세트 추리닝을 입은 여자, 파이터처럼 보였던 여자.
박 선생이었습니다.
7
“여기서 뭐 하세요?”
박 선생은 조수석 유리창 가까이 얼굴을 댄 채 물었습니다.
저는 갑자기 좀 멍해졌습니다. 그리고 당황했죠. 하지만 그것도 잠깐이었고, 민망하고 숨고 싶은 마음이 더 커졌습니다. 고개를 숙인 채 그대로 차를 몰고 도망치는 상상을 잠깐 하기도 했습니다.
결국 그러지도 못했습니다.
“아, 네……”
저는 유리창을 더 내린 후 인사를 했습니다.
“진짜 맞네. 난 잘못 본 줄 알았는데.”
박 선생은 유리창에 손을 올린 채 차 안을 두리번거렸습니다.
“무슨 일이 또 있으신 거예요?”
“그게……”
제가 얼버무리자, 박 선생의 시선이 무릎 위 노트북에 와 닿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글을…… 쓰고 계셨던 거예요?”
저는 두 눈을 아래로 깐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귓불이 벌겋게 달아오르고, 피로감이, 꼼짝도 할 수 없을 것 같은 무력감이 밀려왔습니다.
“제가 방해했나보네요.”
박 선생은 그렇게 말한 후, 고개를 살짝 숙여 인사했습니다. 그러곤 차 앞쪽으로 천천히 걸어갔습니다.
저는 멀어져가는 박 선생의 뒷모습을 보다가 쿵쿵, 이마로 두 번 핸들을 찧어댔습니다. 무릎 위에 있던 노트북도 뒷좌석으로, 유령이 있는 쪽으로 내팽개쳐버렸습니다. 이상한 사람, 구차한 작가. 제 자신이 끝내 그런 사람이 되어버린 것만 같았습니다. 아니, 기어이 그것을 확인해버린 것만 같았습니다. 제 자신이 딱 거기까지인 것만 같았습니다.
딱 그런 줄로만 알았는데,
그로부터 다시 이십 분도 지나지 않아 저는 조수석에 박 선생을 태우고 15번 국도를 향해 차를 몰았습니다.
8
어둠은 이미 짙어질 대로 짙어진 상태였고, 안개가, 누군가의 거친 숨처럼 불규칙한 안개가, 굽잇길마다 자욱했습니다, 그래서 마치 어떤 무성한 덤불을 밀어내며 앞으로 앞으로 조심스럽게 나아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했습니다. 국도변엔 메타세콰이아 나무들이 일정한 간격으로 심겨져 있었고, 그 너머론 바로 작은 강이었습니다. 나무들이 지켜주고 있다. 나무들이 부딪쳐오고 있다. 그 두 문장이 머릿속에서 반복해서 떠올랐습니다. 슬쩍 본 룸미러엔 변함없이 깜빡깜빡거리며 앉아 있는 유령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처음으로 그 유령의 존재가 다르게 보이기도 했습니다. 마치 무슨 말을 하려는 사람처럼, 그 깜빡임이 느껴졌던 것입니다.
“제가 정말 방해가 됐네요.”
박 선생이 전방을 주시한 채 입을 열었습니다. 좀 전, 다급하게 부탁하던 그 목소리와는 또다른 톤이었습니다.
“아니에요. 저도 막 돌아가려던 참이었습니다.”
저 또한 되도록 심상한 목소리로 말하려고 노력했습니다.
박 선생과 저는 한동안 침묵을 지켰습니다. 임윤찬이라도 틀까, 오디오 버튼으로 손을 뻗다가 바로 멈췄습니다. 박 선생에겐 지금 음악보다 고요가 더 도움이 될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지난번엔 저 때문에 기분이 많이 상하셨죠?”
박 선생은 고개를 아래로 내리며 말했습니다.
저는 아니라고 대답하려 했지만, 생각처럼 쉽게 말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묵묵히 앞 유리창만 응시했습니다.
“제가 원래 말이 좀 세요. 그래서 학생들도 절 싫어하죠.”
박 선생은 다시 앞을 바라보았습니다.
“없이 자라서 사람이 좀 못됐어요.”
국도엔 과속 단속 카메라가 많아서, 저는 자주 속도계를 내려다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속도를 조금 낮출 때마다 공연히 조급해졌는데, 그 감정이 사실 미안한 마음이라는 걸 나중에야 깨닫게 되었습니다.
좀 전, 박 선생은 제 차로 달려와 조수석 유리창을 손바닥으로 내리치며 다급하게 저를 불렀습니다. 그때까지도 핸들에 이마를 대고 있던 저는 굳은 표정으로 박 선생을 바라보았습니다. 저 여자는 정말 왜 저러는가! 정말 파이터인가! 나에게 왜, 나에게 왜 함부로 하는 건가! 저는 조수석 유리창을 내렸습니다. 소리라도 지르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러지 못했죠.
“작가님, 저 좀, 저 좀 도와주세요.”
박 선생이 먼저 애원하듯 말했습니다. 그녀는 고통을 참듯 한 손으로 자신의 윗옷 지퍼 부위를 꽉 움켜쥐고 있었습니다.
“광주까지만, 전남대병원까지만 태워주세요.”
박 선생의 눈엔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있었습니다.
“언니가, 언니가……”
“언니분께서 연세가……?”
“저보다 여덟 살 위예요. 제가 작가님보단 세 살이 더 많구요.”
저는 말없이 고개를 주억거렸습니다.
“언니집이 광주 월산동이에요.”
박 선생은 잠깐 자신의 휴대폰을 내려다봤습니다. 그러곤 또 한동안 말이 없었습니다.
황색 점멸 신호등이 켜진 교차로를 지나고, 강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하나 건넌 뒤에, 저는 뜬금없이 혼자 이런 기억을 떠올렸습니다.
그냥 해줘요.
저는 걸어서 작은 다리를 건너다 말고 마케팅팀장에게 불쑥 그렇게 말했습니다. 파주였습니다. 커다란 버드나무의 잎사귀들이 바람에 따라 느리게 흔들리는 모습이 보였는데, 그래서인지 자주 밤하늘의 경계 같은 것이 지워지고 있었습니다.
네? 뭘요, 작가님?
그 작가님이요. 북토크 열어주시라고요.
제가 그렇게 말하자, 그 자리에 같이 있던 다른 마케팅팀원이 빤히 이쪽을 바라보는 게 느껴졌습니다.
모객이 되든 안 되든.
저는 제가 멈춰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제 자신이 무례하다고 여겨졌습니다. 마케팅팀장에게도, 그 작가에게도…… 하지만 그게 잘 안됐습니다.
그 작가님이 두려워서 그런 거잖아요.
깜빡깜빡.
자신이 몇 년 동안 죽어지낸 것만 같아서……
“사실 제가 언니한테도 못되게 굴었어요.”
박 선생이 말을 꺼냈습니다.
“사 년 동안 연락도 안 받고 그랬어요.”
저는 와이퍼를 한 번 작동했습니다. 안개 때문인지 유리창에 자주 습기가 올라왔습니다.
“저는 언니 때문에 대학을 졸업할 수 있었거든요.”
박 선생은 잠시 고개를 옆으로 돌렸습니다.
“그 말을 사십 년 가까이 들었어요.”
“네.”
“언니가 고마운데, 그 말을 들으면 자꾸 웅덩이에 빠지는 기분이 들었어요”
저는 고개를 끄덕거렸습니다.
“그 웅덩이 속에 언니도 저도 빠져 있고, 다른 사람도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고.”
박 선생은 크게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저는 창문을 조금 내렸습니다.
“작가님, 차가 참 좋아요. 깨끗하고.”
다른 때 같았으면 그 말이 저에겐 아프게 들렸겠지만, 그땐 그렇지 않았습니다.
“택시 같은 거예요.”
“네?”
“여기서 일을 하니까요.”
석거리재 터널에 막 진입했을 때, 저는 용기를 내서 박 선생에게 물었습니다.
“선생님, 젊었을 때도 작가 강연회 같은 곳 자주 가셨나요?”
박 선생은 룸미러 속 제 얼굴을 보면서 말했습니다.
“맞아요. 일부러 찾아다니고 그랬어요.”
“그땐 좋으셨어요?”
“좋았어요.”
박 선생은 그때마다 작은 수첩을 갖고 다녔는데, 끝나고 나면 거기에 메모가 빼곡히 되어 있었다고 했습니다.
저는 박 선생의 그 모습을 잠깐 상상해보았습니다. 맨 앞줄에 앉아서 무언가를 받아 적고 있는 가난하고 젊은 독자. 그 모습이 떠오르자 왠지 모르게 마음이 먹먹해져버렸습니다.
“저에겐 그게 유일한 낯선 경험이었거든요. 작가를 만난다는 게……”
저는 박 선생에게 조심스럽게 물어봤습니다.
“선생님…… 선생님 그때도 안경을 쓰셨나요?”
“네?”
“안경이요. 지금 쓰고 계시는 거 같은……”
“아, 이거요? 이거 몇십 년 된 거예요. 평소엔 렌즈를 끼는데, 주말엔……”
그러니까 박 선생이 황급히 손바닥으로 조수석 유리창을 두들겼을 때, 그 유리창을 온전히 다 내렸을 때, 제가 봤던 그 얼굴, 그 표정. 짧은 헤어스타일에 하얗게 머리칼만 새어버린 얼굴.
“선생님, 이제 조금 쉬세요. 밤이 길 것 같은데.”
저는 다시 창문을 다 올렸습니다. 밤의 국도는 그새 더 쌀쌀해져 있었습니다.
깜빡깜빡.
뒷좌석의 유령은 제게서 계속 시선을 떼지 않았습니다.
9
그날 밤, 박 선생과 저는 전남대병원 응급실 앞 도로에서 헤어졌습니다.
“작가님, 제가 어떻게 고마움을 표해야 할지……”
저는 아니라고 했습니다. 얼른 들어가보시라고, 가만히 박 선생을 기다려줬습니다. 박 선생은 제 차에서 내린 뒤, 뒤도 돌아보지 않고 곧장 응급실 쪽으로 뛰어갔습니다. 저는 박 선생의 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속으로 한 번도 본 적 없는 박 선생 언니의 건강을, 그 손길들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
저는 요즈음엔 차에서 글을 쓰지 않고 있습니다.
대신, 걸어서 삼십 분쯤 떨어진 진월동의 한 24시 무인카페로 노트북 가방을 메고 나가고 있습니다. 거기에서 1500원짜리 아메리카노 한 잔을 뽑아 새벽 2시까지 앉아 있다가 돌아오곤 합니다(좀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 유자차도 한 잔 더 뽑아 마십니다. 맛은…… 맛이 뭐 중요하겠습니까?). 글은, 좀 써지는 날도 있지만, 안 써지는 날이 더 많습니다. 그러면 그냥 태블릿 PC로 전자책이나 학생들 원고를 읽다가 돌아옵니다. 에어팟으로 임윤찬도 간간이 들었는데, 임윤찬이 조용히 저를 돕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때때로 무인카페에 들어오는 대학생들이나 청년들이 작은 목소리로 말하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기도 했습니다. 시험공부를 하러 오는 친구들도 있고, 호기롭게 첫차가 다닐 때까지 거기에서 버텨보겠다며, 나 무릎담요도 갖고 왔다고 누군가에게 한참을 전화로 떠드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한 번은 웬 취한 아저씨가 내 옆에 앉더니 자꾸 부장님이라고 불러서, 한 잔 더 하러 가자고 졸라대서, 난처했던 적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날은 조용했고, 소곤거리는 목소리들이 들렸고, 거리를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얼굴을 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아, 그리고 유령.
믿기지 않겠지만 그 친구는 요즘도 계속 제 차에 머물고 있습니다.
얼마 전엔 차를 몰고 지산유원지에서부터 충장사까지 드라이브를 하기도 했는데, 룸미러를 바라볼 때마다 깜빡깜빡, 그 친구와 눈이 마주쳤습니다. 저는 차 유리창을 조금 열어주고 조용히 물어보았습니다.
“여기도 좋죠?”
제가 택시기사처럼 정중하게 묻자, 그 친구는 제 얼굴을 바라보며 대답했습니다.
깜빡깜빡.
죽어지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
그것을 믿어보겠다는 결기.
저는 속으로 그 말을 몇 번 되뇌어보았습니다.
지난해 가을, K군에 위치한 한 작은 서점에서 북토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었습니다.
K군과 광주광역시를 잇는 15번 국도 석거리재 터널에 막 들어섰을 무렵, 버릇처럼 힐끔 룸미러를 올려다보았다가, 그만 거기, 제 차 뒷좌석에 조용히 앉아 있던 유령과 눈이 마주치고 말았습니다. 남루해 보이는 갈색 카디건에 둥그런 안경, 쇼트커트를 한 이십대 후반의 여자 유령이었습니다.
헉!
저는 숨이 턱 막힐 만큼 놀랐습니다. 무의식적으로 브레이크에 발이 먼저 갔지요. 차는 날카로운 마찰음을 내며 왼쪽으로 비스듬히 미끄러지나 싶더니 중앙분리대 앞에 겨우 멈춰 섰습니다. 자정에 가까운 시간, 터널엔 다행히 양방향 아무런 차도 지나다니지 않고 있었습니다. 노르스름한 터널 조명등 아래 웅웅, 낮은 바람 지나다니는 소리만 들렸습니다.
깜빡깜빡.
유령은 호기심 가득한 큰 눈으로 제게서 시선을 떼지 않고 있었습니다.
뭐야, 이게.
저는 핸들 쪽으로 고개를 숙였습니다.
잘못 봤나? 그랬겠지? 마그네슘 부족인가? 그러면서도 저는 룸미러를 다시 쳐다볼 용기는 나지 않았습니다. 뜬금없이 오 주여, 당신께 감사하리라. 실로암 내게 주심을…… 그 노래가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저는 마음을 가다듬고 우선 조심스럽게 비상등 버튼부터 눌렀습니다. 터널이니까, 2차 사고를 조심해야 했습니다. 이런 게 바로 사고의 전조일지도 몰라. 어깨를 잔뜩 옹송그린 채로 핸들을 반대 방향으로 틀었습니다. 차는 느리게 움직였고, 종아리가 약간 당기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깜빡깜빡. 비상등이 점멸할 때마다 마치 살아 있는 짐승의 꼬리처럼 터널 지붕이 들썩거렸는데, 그래서였는지는 몰라도 주변이 서서히 서서히 무너져 내리는 듯한 기분도 들었습니다.
터널을 빠져나오자마자 저는 갓길에 차를 세웠습니다. 그러곤 바로 차 밖으로 튀어나왔죠.
119를 불러야 할까? 핸드폰을 꺼내 들며 그 생각을 먼저 했습니다. 저기요, 지금 제 차에 유령이 타고 있어서 그러는데요, 사람 좀 보내주시면 안 될까요? 저는 속으로 그 말을 웅얼거리다가 연극배우처럼 도리질을 쳤습니다. 119에겐 119의 역할이 있지요. 작가에겐 작가의 역할이, 선생에겐 선생의 역할이, 독자에겐 독자의 역할이 있듯이 말이죠. 119가 무슨 성 바오로수도회 소속 구마 사제도 아니고……
아내,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볼까, 고민하기도 했습니다. 젊은 시절, 아내는 가끔 유령을 본다고 제게 털어놓은 적이 있었습니다. 아내가 만난 유령은 대부분 낯선 할머니나 할아버지 유령이었는데, 시도 때도 없이 나타나(그러니까 낮밤 가리지 않고) 호통을 쳐댄다는 것이었습니다. 밥 안 하고 뭐 하냐? 설거지도 아즉 안 했네? 호박 하나 숭숭 썰어서 된장찌개 끓여다오. 저는 그 말을 건성건성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래서 자기는 어떻게 했는데? 어쩌긴, 할머니 할아버지가 시키는 대로 했지. 그렇게 지은 밥을 당신이 먹었고……
저는 아내에게도 전화를 걸지 않았습니다. 아내는 새벽기도회에 빠지지 않고 나가는 사람인데(아내는 어쩌면 자신이 만난 유령 때문에, 그 두려움 때문에 교회를 나가게 된 것은 아닐까, 그때 처음 짐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늘 밤 11시 이전엔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그런 사람을 깨워서 내 차에 유령이 타고 있다고 말한다면…… 돌아올 답은 빤할 거 같았습니다. 그거 봐라, 진즉에 내가 같이 교회 다니자고 하지 않았더냐?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추수감사절 예배부터 같이 가자. 그거 다 당신을 위한 주님의 예비하심이다……
저는 한동안 갓길과 면한 흰색 가드레일에 걸터앉아 있었습니다. 국도 저편에서 달려오는 차는 없는지 고개를 빼 바라보기도 했습니다. 도로엔 여전히 차 한 대, 오토바이 한 대, 경운기 한 대 지나다니지 않았고, 별빛 가득한 밤하늘 사이로 새 한 마리가 낮게 날아가는 것이 보였습니다.
하아.
저는 일부러 크게 숨을 내쉬었습니다. 느닷없이 팔굽혀펴기를 빠르게 대여섯 번 하기도 했고요. 다른 방법은 없는 거 같았습니다. 누군가의 조언도, 도움도, 구하긴 어려울 것이다. 대신 용기, 담대함, 사람으로서의 권위, 그런 말들이 무작위로 떠올랐습니다. 별일 없을 것이다, 눈을 마주치지 않으면 된다, 뒤돌아보지 않으면 된다…… 저는 다시 운전석 쪽으로 걸어갔습니다. 어두운 밤에 캄캄한 밤에 새벽을 찾아 떠난다. 저는 일부러 소리내어 실로암을 부르며 차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다시 시동을 켜고 액셀러레이터에 발을 올렸습니다. 종이 울리고 닭이 울어도 내 눈에는 오직 밤이었소. 창문을 모두 내리고(그러면 무언가 밖으로 날아가 버릴 거라고 기대했습니다) 속도를 서서히 올렸습니다. 다행히 아무런 일도, 그 어떤 목소리로 들려오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처음 만난 그때는 차가운 새벽이었소. 당신 눈 속에 여명 있음을 나는 느낄 수가 있었소. 아니, 내가 어떻게 이 가사를 다 알고 있지? 저는 스스로를 대견해했고, 정말로 주님이 저를 지켜주고 있다는 마음까지 들었습니다(하지만 후에 생각해보니 그건 아무래도 군대의 힘이었습니다. 초코파이 하나 얻어먹겠다고 매주 연대 교회에 찾아가 춤추며 부르던 실로암의 힘). 제 노랫소리는 점점 더 커졌고, 광주광역시는 조금 더 가까워졌습니다(그러니까 사십 분 가까이 실로암을 반복해서 부른 것입니다). 그래, 그래.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뒤돌아보면 아무도 없을 것이다, 내가 잘못 본 게 맞을 것이다, 유령이라니, 뭘 잘 모르는가 본데 이래 봬도 나 리얼리스트야! 세계를, 인간을, 충실히 재현해내는 사람이라고!
저는 살고 있는 아파트 입구 사거리 신호등에 걸렸을 때, 용기를 내 룸미러를 다시 바라보았습니다.
헉.
여전히 그 젊은 유령은 제 차 뒷좌석에 앉아 있었습니다. 깜빡깜빡. 제게서 눈을 떼지 않는 모습도 그대로였습니다.
하지만 저는 처음처럼 그렇게 놀라진 않았습니다. 주변엔 함께 신호에 걸린 택시도, 택배 트럭도 있었습니다. 여차하면 그들에게 도움을 구할 수도 있었으니까요. 무엇보다 도시의 불빛이, 교회의 붉은 십자가와 불 밝힌 편의점과 그 앞 파라솔에 앉아 있는 대리기사들이, 저를 안도하게 해주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슬쩍 한 번 더 유령의 얼굴을 바라볼 용기가 생겼습니다.
깜빡깜빡.
분명, 북토크 자리에서 본 그 얼굴이 맞았습니다. 워낙 소수의 사람만 참석한지라 다 기억할 수 있었습니다. 그때도 깜빡깜빡 말없이 나를 바라보기만 했던, 왼쪽 두번째 의자에 앉아 있던 사람…… 사인회를 할 때 소리 없이 자취를 감춘 사람……
그러다가 문득 이런 생각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뭐야, 그럼? 오늘 북토크에 참석한 사람은 달랑 네 명이었던 거야? 다섯 명인 줄 알았는데, 그중 한 명은 유령이었던 거야……?
저는 괜스레 자존심이 상했습니다. 네 명이라, 네 명이란 말이지…… 그 마음으로 아파트 주차장에 들어섰습니다. 시동을 끄고 차에서 내릴 때까지도 유령은 그 모습 그대로, 뒷좌석에 앉아 있기만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더이상 실로암을 부르지 않았습니다.
대신 한 독자의 얼굴을 떠올렸습니다.
2
사실 그날 북토크에서부터 약간의 문제가 있긴 있었습니다.
참석한 독자 중 한 명과, 그러니까 그 네 명 중 한 명과, 제가 언쟁 아닌 언쟁을 벌였는데, 그때부터 마치 에어컨 실외기 바람을 정면으로 맞은 것처럼 어떤 열패감에 휩싸였던 게 맞습니다.
이래서 안 하려고 했는데.
K군 읍내 농협 건물 바로 옆에 위치한 그 서점은 ‘맥문헌(脈文軒)’이라는 간판을 달고 있었습니다. 열댓 평 남짓한 작은 공간에 카페까지 겸하고 있었죠. 주인인 오십대 남자는 자신을 시인이라고 소개했습니다. 지역서점 활성화 사업의 일환으로 북토크를 준비하고 있다고, 그에 따른 사례금도 군청 예산으로 맞춰 드린다는 메일 끝에 주인은 자신과 잘 알고 지낸다는 몇몇 시인들의 이름을 적었습니다. H시인 잘 아시죠? H시인께서 작가님을 적극 추천해주셨습니다. 광주광역시에 거주하시니까 그렇게 먼 거리도 아니고……
자동차로 한 시간 삼십 분이 걸립니다. 왕복이면 세 시간.
모르긴 몰라도 서울에 사는 다른 시인이나 작가를 섭외하다가 잘 안된 모양이라고, 그런 의구심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저를 먼저 염두에 두었다면 누구누구의 추천 같은 말은 하지 않았겠죠(메일을 읽어보니 제 소설은 안 읽어본 티가 팍팍 났습니다). 그래서 거부하려고 했지만……H시인이 마음에 걸렸습니다. H시인은 한때 제가 열심히 전작 읽기를 했던, 그만큼 좋아하고 존경하는 시인이었습니다. 수년 전, 한 문학상 시상식 뒤풀이 자리에서 처음 만났을 때, 제대로 눈도 마주치지 못한 채 인사를 나눴는데, 그분이 저를 기억하고 누군가에게 추천까지 해줬다니, 그게 제 마음을 흔들었습니다.
그냥 바람이나 쐬러 갔다 올까?
K군은 유자가 많이 나는 곳이니, 그것도 사오고.
하지만 그러고도 저는 결정하는 데 며칠 더 걸렸습니다.
그것도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고백하자면 저는 북토크에 약간의 트라우마를 갖고 있었습니다. 작가가 된 지 벌써 이십칠 년이나 지났고, 책도 열 권 이상 냈고, 대학에서 문학을 가르치는 일도 하고 있지만, 아직도 독자를 만나는 일은 어렵고 어색하기만 한, 명절날 아침 자다 깬 상태로 멀뚱멀뚱 친척 어르신들 앞에 불려 나가 있는 시간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학생들을 가르칠 땐 안 그러는데 이상하게 남 앞에서 제 책에 대해 이야기할 때면 발음이 새고 다리가 덜덜 떨리기까지 했습니다.
요즈음엔 북토크를 참 많이들 하지요.
예전엔 책을 내도 그런 자리가 흔치는 않았습니다(첫번째 두번째 책을 냈을 땐 아예 그런 게 있다는 걸 모르고 있었으니까요). 설령 있다고 해도 ‘작가 강연’이나 ‘작가와의 대담’ 같은 형식이었죠. 그것도 다 어느 정도 문학적 성과를 낸 중견 작가나 설 수 있는 자리였습니다. 그게 북토크와 같은 거 아니냐고 물을 수도 있겠지만, 아니죠. 엄연히 다르죠. 그건 분명 ‘작가’가 중심인 자리였습니다. 작가가 해주는 어떤 이야기를 의자에 앉아 가만히 경청하는 자리. 반대로 북토크의 중심엔 언제나 ‘책’이 있습니다. 책을 가운데 두고 작가와 독자가 대화하는 자리……인 것 같지만…… 그것도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지만…… 사실은 책 홍보에 방점이 찍힌 시간이 맞습니다. 책 홍보라고 하면 너무 대놓고 뻔뻔한 것 같으니 ‘대화’라고 포장을 한 것이죠. 그러니 사실 그 자리의 주인은 책도 아니고, 작가도 아닙니다. 오직 독자, 독자인 것이죠.
하지만 저는 그것도 문제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어쨌든 책도 팔아야 하는 소비재가 맞으니까요. 그래야 출판사도 힘내서 다른 책을 더 펴낼 수 있고, 출판사 직원들도 생업을 유지할 수 있을 테니까요.
문제는 그 자리가 갖는 어떤 폭력성, 어떤 적나라함이었습니다.
예전에 한 출판사 마케팅팀장과 저녁을 먹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그 팀장은 얼마 전 자신의 출판사에서 책을 펴낸 한 작가 때문에 마음고생하고 있다고 털어놓았는데, 사정을 들어보니 다른 출판사들처럼 북토크를 열어주지 않는다고, 작가가 많이 서운해하고 그러다가 결국 삐져버렸다는 것이었습니다.
“작가님들이 잘 모르시는 게…… 저희도 무진장 북토크 하고 싶습니다. 저희도 북토크 좋아해요. 책상에만 앉아 있다가 독자들 만나면 나름 힘도 얻고 그렇습니다. 한데요, 저희가 왜 못하는지 아십니까? 모객이 안 돼요, 모객이…… 힘들게 자리를 만들었는데 독자가 열 명도 안 오면……”
그게 바로 저였습니다.
네번째 소설집이 나왔을 때였던가요? 출판사에서 야심차게 북토크를 준비해준 적이 있었습니다. 성수동에 있는 꽤 큰 뮤직홀을 대관하고 트위터와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에 열심히 홍보도 하고 그 바닥에서 나름 지명도 있는 인플루언서까지 사회자로 섭외를 마쳤다는 연락을 받고 나니, 저 역시도 긴장이 되었습니다. 북토크 전날까지 제 책을 다시 읽어보고, 해설도 살펴보고, 입고 갈 옷도 미리 입어보고…… 그렇게 만반의 준비를 하고 갔는데……
열두 명이 왔습니다. 삼백 석 규모의 뮤직홀에 찾아온 독자는 더도 덜도 아닌 딱 열두 명. 예수의 열두 제자도 아닌데 마치 짠 것처럼 숫자가 맞은 열두 명(그때 차마 출판사 담당 편집자에겐 말하지 못했지만…… 그중 세 명은 서울에 사는 제 제자들이었습니다. 아이 그냥, 오랜만에 만나서 밥이나 먹자고. 그렇게 제가 일주일 전 전화해서 부른 제자들. 베드로 같은 진짜 제자들).
북토크를 담당했던 직원과 저는 서로 무안해했고, 서로 미안해했습니다(그러니까 그때까지만 해도 ‘사전 예약제’ 같은 게 없었습니다. 저 같은 사례가 반복되고 나니, 저절로 생기게 된 절차이겠죠).
비싼 대관료를 쓴 것도, 몸값 높은 인플루언서를 부른 것도, 그 자리에서 혹여 책이 더 팔릴까 박스째 이고 온 마케팅팀 직원에게도, 그 책들을 고스란히 다시 이고 갈 그 어깨에게도, 그저 면목이 없을 뿐이었습니다.
그날이 제겐 상처가 되었습니다.
이상한 무력감과 제 몫이 아닌 수치심 같은 것이 마치 길바닥에 내팽개쳐진 가방처럼, 그 위에 새겨진 누군가의 발자국처럼, 제 기억 속에 남았습니다.
독자는 소비자일까요, 심판관일까요?
그도 아니면 저의 또다른 분신일까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한 가지 확실한 건, 독자가 더 줄어들면 줄어들수록 독자의 힘이 더 커진다는 것. 그것을 저는 몇 번의 북토크를 통해서 느낄 수 있었습니다(그뒤로도 책이 나올 때마다 제 의사와는 무관하게 북토크를 한 번씩 했습니다. 찾아온 독자의 수는 늘 엇비슷했습니다). 소수의 소중한 사람들이니, 그들이 원하는 것은 그들이 원하는 대로 다 해주고 싶은 마음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게 진짜 맞는 일일까요?
저는 K군에 가기로 마음먹었습니다.
H시인의 호의를 무시해선 안 된다는 생각도 물론 있었지만, 무엇보다 그 무렵 글이 잘 안 써졌습니다. 저는 이곳저곳 옮겨 다니면서 글을 쓰는 버릇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래서 나중에 말하겠지만 남들과 좀 다른 방식으로 작업을 하는 작가이기도 합니다. K군에 다녀오면서 글 쓸 만한 장소를 물색하겠다, 그쪽은 인적도 드문 곳이니…… 뭐 그런 계획을 세운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정말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이젠 그런 것쯤 신경 쓰지 않는 작가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더 앞섰습니다. 내가 그래도 27년 차 작가인데, 독자니 판매부수니 좌고우면하지 말고…… 우리가 뭐 언제 독자보고 글을 썼나! 쓰다 보니 독자도 생긴 거지! 작가가 결기가 있어야지, 결기가!
비록 그 결기는 맥문헌에 모인 다섯 명(아니, 네 명)의 독자를 보고 다시 한번 사그라졌지만, 어쨌든 제 기대는 분명 그런 것이었습니다.
작가를 작가로 다시 세우는 결기.
3
“이런 말을 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사실 저는 좀 답답했어요.”
북토크가 거의 끝나갈 무렵, 한 여자가 말을 꺼냈습니다. 그녀는 위아래 세트로 된 검은색 추리닝 차림이었는데, K군 소재 고등학교 국어교사라고 자신의 직업을 먼저 밝혔습니다.
“아유, 우리 박 선생님이 뭐가 또 그렇게 답답했을까요?”
사회를 본 서점 주인이 그렇게 말하자, 다른 참석자들이 모두 웃었습니다. 처음부터 느꼈지만, 그날 북토크에 온 독자들은 서로 친분이 있는 듯했습니다. 나이도 엇비슷해 보였고(오십대 중반에서 육십대 초반 사이로 보였습니다), 헤어스타일도 단체로 같은 미용실을 다니는지 단발 파마로 통일한 여성들이었습니다(다른 사람이 두 명 있었는데, 한 명은 박 선생이었고, 다른 한 명은 저를 쫓아온 바로 그 유령이었습니다).
“아니 그렇잖아요? 어느 순간부터 작가님이 쓰는 소설 속 주인공은 모두 소설가이고, 일인칭이고, 남자이고…… 저는 좀 다른 걸 보고 싶거든요.”
그녀가 그렇게 말하자, 바로 옆에 앉아 있던 한 독자가 “난 그래서 좋던데?”라고 끼어들었습니다.
“그게 왜 좋아요?”
박 선생이 그 독자를 보면서 물었습니다.
“웃기잖아요? 좀 찌질해 보이기도 하고.”
그러자 다시 모두 와. 그 와 속에 저도 포함되어 있었지만(그래야 좀 대범해보일 것 같았습니다), 사실은 그때부터 기분이 상하기 시작했습니다.
“다른…… 어떤 걸 보고 싶으세요?”
저는 최대한 사람 좋은 표정으로 물었습니다.
“낯선 거요.”
박 선생은 바로 대답했습니다.
“소설이 원래 낯선 걸 보여주는 장르 아닌가요?”
그녀의 말에 모두의 시선이 다시 저에게로 쏠렸습니다.
“낯선 게 사람마다 다 다를 수 있는데……”
저는 제 옆에 앉은 서점 주인을 바라보며 말했습니다.
“저한테 만족을 못 하신다면 다른 한국 작가들은 어떠신가요? 요즈음 한국문학이 굉장히 다양한데……”
“아니요.”
박 선생이 단호하게 제 말을 끊었습니다.
“작가님이 뭔가 좀 오해하시는 거 같은데요, 저는 작가님뿐만 아니라 한국문학 전체가 다 그렇다는 거예요. 다 거기에서 거기인 자기 이야기들뿐이고…… 다 같은 계급에서 자라서 그런가? 생활도 엇비슷한 거 같고……”
야아, 계급 이야기까지 나오는구나. 저는 비아냥대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그런 작품들이 비평가들한테 호평받는 거 같고…… 하긴, 우리나라엔 가난한 집 출신 비평가는 아예 없겠네요. 다들 대학원까지 나오셔야 했을 테니까……”
박 선생의 어조엔 어쩐지 유리 알갱이 같은 것이 묻어 있었는데, 그래서 저는 이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저 여자는 원래 파이터인가? 그래서 추리닝을 입고 온 것일까?
“무슨 본드처럼 자기들끼리만 끈끈한 거 같아요. 자기들끼리만 이해해주고 안아주고 다정하고.”
깜빡깜빡.
저는 왼쪽 두번째 의자에 앉은 사람(그러니까 그때까지만 해도 사람인)을 바라보았습니다. 이쯤 되면 저도 가만히 있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윤리라는 게 있어요.”
모두가 다시 제 말에 집중하는 게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저는 목소리를 조금 더 낮게 깔았습니다.
“제가 아닌 누군가를 함부로 쓸 순 없다는 윤리 같은 거요.”
깜빡깜빡.
“제가 뭐라고 누구를 대변하고 누구의 마음을 대신 쓸 수 있겠어요? 그러다보니 제 이야기에 집중하는 건데……”
“저는 그게 비겁하다는 거예요.”
박 선생이 또 제 말을 끊고 나섰습니다.
아이 씨, 진짜.
“그러려면 왜 소설을 쓰죠? 그냥 에세이를 쓰면 되죠.”
“저는!”
그때, 저도 모르게 제 목소리가 높아졌습니다.
“저는, 저는 그것도 대단한 용기가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자, 하면서 서점 주인이 나섰습니다. 그는 여기에서 북토크를 마무리하고 바로 사인회를 열겠다고 말했습니다(다섯 명 아니 네 명뿐인데 사인회라고 말하는 것도 좀 창피했습니다). 박 선생도 저에게 사인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다른 독자들처럼 제게 그 어떤 말도 걸지 않았습니다(다른 독자들은 같이 사진을 찍어도 되냐고, 그걸 자신의 SNS에 올려도 되냐고 물었습니다. 저는 흔쾌히 괜찮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박 선생에겐 묵묵히 ‘원한 없이, 명랑하게. 2025년 가을 이기호’라고 서명해주었습니다. 그것으로 끝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돌아오는 길에 저 친구, 유령을 만난 것입니다.
4
유령은 다음 날에도 사라지지 않고 제 자동차 뒷좌석에 앉아 있었습니다.
깜빡깜빡.
환하게 태양이 떠 있는 오전에 보면 그래도 좀 덜 무서울 줄 알았는데……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더 오싹했습니다. 실감이라고 해야 할까요? 어쩐지 금방이라도 제 어깨에 손을 올릴 것만 같았고, 성난 목소리로 제 이름을 부를 것만 같았습니다. 쓰고 있는 안경에 태양이 반사되어 반짝거리는 것 같기도 했고, 카디건에 인 작은 보풀들이 힘없이, 마치 연기처럼, 일렁이는 것 같기도 했습니다.
저는 차를 두고 걸어서 학교로 출근했습니다(사십 분쯤 걸렸습니다). 환기라도 시키는 듯 차 유리창을 살짝 내려놓는 것도 잊지 않았습니다. 강의를 준비하는 틈틈이 인터넷에 귀신을 쫓는 법을 찾아보기도 했습니다(프라이팬에 말린 쑥을 태워 연기를 피워 올리라는 글을 보고 차 옆에 휴대용 버너를 두고 웅크려 앉아 있는 제 모습을 상상해보기도 했습니다). 제 제자 중엔 대학교 4학년 때 신내림을 받고 무당이 된 친구도 있었습니다(다행히 학기 말에 신내림을 받아 간신히 졸업은 했습니다). 그 친구가 무당이 되겠다고 했을 때, 그 친구 어머니가 두 번인가, 저를 찾아 학교로 오기도 했었습니다. 하나뿐인 아들을 좀 말려달라고, 작가가 되겠다고 대학교에 들어간 애가 왜 무당이 돼서 나오냐고, 애원하듯 때론 힐난하듯 제게 도움을 청했죠. 그래서 만나본 그 친구가 제게 했던 말도 새삼 떠올랐습니다.
“교수님, 이것도 그냥 다 스토리텔링이에요. 심각하게 생각하지 마세요.”
저는 그 친구라도 찾아가볼까, 고민하다가 이내 그만두었습니다. 너무 먼 곳에 있고(동탄에 있다고, 그쪽도 신도시에 입점하는 게 중요하다고 들었습니다), 어쩐지 제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그래도 내가 가르친 아이인데…… 그런 생각들 말이죠(더 결정적으론 이미 이름도, 전화번호도 다 바꿨다는 말을 어렴풋이 전해 들었던 기억이 났기 때문입니다).
저녁엔 곧장 집으로 돌아와 열심히 집안일을 했습니다. 아이들 밥을 짓고 빨래를 하고 내친김에 창문턱과 가스레인지 후드 청소까지 했습니다.
그런 저를 보고 아내가 물었습니다.
“뭐지?”
“뭘?”
저는 식기세척기 안에 들어 있던 컵들을 꺼내면서 되물었습니다.
“뭔 일 있어?”
아내는 다시 물었고, 저는 속으로 여기도 귀신 한 명 추가요, 라고 말했습니다.
“글이 잘 안 써져?”
“언제는 뭐 잘 써졌나……?”
저는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습니다.
“그럼 가서 써. 여긴 내가 마무리할 테니까.”
아내는 그러면서 제 옆에 다가와 섰습니다. 학원 강사로 일하는 아내는 매일 여섯 시간 이상(시험 기간엔 열 시간 이상) 강의를 하고 퇴근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집으로 돌아와선 한동안 멍하니 거실 소파에 널브러져 있곤 했습니다. 그런 세월이 벌써 십 년째였습니다. 그래서 저녁 집안일은 제가, 오전 집안일은 아내가, 그게 우리 부부의 패턴이 되어버렸습니다. 글 쓰는 일은 그다음에.
“다했는데 뭘.”
“그러니까 얼른 가라고.”
아내는 제 손에 있던 고무장갑을 벗기면서 등을 떠밀었습니다.
그래도 제가 뭉그적거리자 심각한 표정으로 물었습니다.
“왜 그래 정말? 어디 아픈 거야?”
저는 그때 아내에게 모든 걸 다 털어놓을 뻔했습니다. 사실은 지금 내 차에 유령이 타고 있다, 당신도 예전에 유령을 만난 적 있다고 하지 않았느냐, 당신은 시키는 대로만 했더니 유령이 사라졌다고 했지만…… 이 친구는 말도 없다, 눈만 깜빡거리고 있다, 뭘 요구하는지도 모르겠다, 나이가 들면 이런 게 하나도 안 무서울 줄 알았는데, 더 떨린다, 나 어떡하면 좋냐……
하지만 저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일에 지친 아내가 애처롭기도 했고, 그런 아내에게 제 말들이 어떻게 다가갈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교회 가자고 할까봐 두려웠던 것도 사실입니다).
“어디가 좀 아팠으면 좋겠네.”
저는 그렇게 말하고 집 밖으로 나왔습니다.
자, 그러니까 이제 진짜 저의 곤경에 대해서 말할 차례입니다.
앞에서 말한 남들과 좀 다른 작업 방식, 그 상태에 대해서 말입니다. 그게 뭐, 대단한 것은 아니지만.
저는 몇 년째 작업실이 아닌, 차 안에서 소설을 쓰고 있습니다.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니었고요, 우연한 경험이, 그러니까 마치 신을 영접한 사람이 개종을 하듯, 그렇게 저를 이끈 것입니다.
몇 년 전 세 들어 있던 작은 월세 오피스텔이 계약 만료되어 새로 작업실을 구할 일이 생겼었습니다. 하지만 그게 생각처럼 쉽게 되질 않았죠. 좀 괜찮은 곳은 보증금과 월세가 너무 비쌌고, 가격이 맞는 곳은 주변이 너무 시끄러웠습니다. 집에서 좀 떨어진 나주와 화순, 담양군까지(그래 봤자 모두 삼십 분밖에 걸리지 않는 곳입니다) 둘러봤지만 마땅한 곳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하필 또 그때 문예지 단편소설 마감도 닥쳐와서 마음이 급했습니다. 집에는 제가 글을 쓸 수 있는 공간이 없었고(아이들이 셋입니다. 그 아이들이 유치원에 입학할 무렵부터 제 방은 없었죠), 카페도 여의치 않았습니다(광주에는 24시간 문을 여는 카페가 흔치 않았습니다). 급한 대로 주방 식탁에 노트북을 펼쳐놓고 쓰기도 했지만 역시나 집중이 잘되지 않았습니다(사춘기 아이들은 왜 이렇게 자주 물을 마실까요? 왜 이렇게 아빠 일에 간섭을 잘할까요?). 마음은 초조해지고, 그래서 더 멀리 보성군까지 작업실을 보러 갔던 날, 국도에서 2, 30미터 떨어진 공터에 차를 세우고 그 안에서 노트북 전원을 켰습니다. 막혔던 부분만, 원고지로 딱 다섯 장 분량만 쓰고 돌아가자. 그렇게 마음먹었습니다(나중에 찾아보니 그곳은 보성과 가까운 화순군 이양면이라는 곳이었습니다). 주변엔 인가도, 가로등도 없었고, 작은 도랑과 초등학교 담장만큼 자라난 수풀, 등고선처럼 휘어진 오래된 나무, 오직 그것이 전부인 곳이었습니다. 물 흘러가는 소리 위로 풀벌레와 개구리 울음소리가 불규칙적으로 얹어지던 곳.
다섯 장만 쓰고 갈 작정이었지만, 이게 웬일, 정신없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원고에 집중했습니다. 고개를 들어보면 캄캄한 밤하늘 위로 별들이, 너무 많아서 적막하고 고요한 별들이, 한눈에 다 들어왔습니다. 넋 놓고 그 별들을 바라보다가 다시 노트북 화면으로 시선을 옮기면, 그때마다 마치 다른 시공간으로 이동하는 것처럼 몸이 약간 떠오르는 듯한 기분을 느꼈습니다. 그 몸을 주저앉히기 위해서라도 저는 노트북 자판에서 손을 뗄 수가 없었습니다. 모스 부호처럼 무언가를 쉬지 않고 타전했고, 무언가를 계속 받아 적었습니다.
그날 제가 그곳에서 쓴 문장은 대략 원고지 삼십 장 분량이었습니다(저는 평상시 하루 작업량이 원고지 여덟 장을 넘지 못합니다). 후에 그날 쓴 원고의 많은 부분을 고치기도 했지만, 큰 줄기는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 원고를 다시 볼 때마다 그날의 별들, 그날의 풀내음이 고스란히 기억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저는 차로 이곳저곳 이동하면서 글을 쓰기 시작했죠. 담양 관방제림 근처와 나주 드들강 상류 까리따스 수도회 정문 옆 공터, 화순 고인돌 공원 후문과 세량지 초입 등등, 심지어 목포 신항까지 다녀온 적도 있었죠. 밤마다 부지런히 차를 몰았습니다. 매일 글만 쓴 것은 아니고, 어떤 날은 가만히 오디오북만 듣고 돌아온 적도 있었고, 또 어떤 날은 학생들이 쓴 원고를 읽다가 다시 핸들을 돌린 날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더 많은 날은 그곳에 앉아 제 원고를 썼습니다. 아무도 침범하지 않는 고요, 선택한 것만 볼 수 있는 자유, 그리고 넉넉한 시트가 주는 안락함. 저는 매일 밤 그렇게 돌아다니다가 집으로 돌아왔고, 아내에게도 더이상 작업실을 구하지 않겠다고 선언했습니다(대신 차를 바꿔야 할 것 같다고, 아무래도 휘발유 차는 기회비용이 너무 많이 든다고, 전기차를 알아보겠다고 넌지시 통보 아닌 통보를 했습니다. 아내는 그냥 솔직하게 차를 바꾸고 싶으면 바꾸고 싶다고 말하라고 했습니다. 저는 이 년 전부터 전기차를 타고 있습니다). 밤 10시부터 새벽 2시까지, 저는 마치 택시기사처럼 일을 하러 나갔습니다.
그런 제 차에, 제 작업실에, 불청객이, 그 어떤 허락도 구하지 않은 채 불쑥 끼어든 것이죠. 그것이 저의 진정한 곤경이었습니다. 유령이 나타난 것이 문제가 아니라, 제 작업 공간이 침범당한 사실. 그 어떤 글도 쓸 수 없게 되었다는 것.
저는 그날 한참 동안 아파트 주변을 돌아다녔습니다. 그러다가 피시방에 들러 멍하니 유튜브만 보다가 새벽 2시 넘어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차 근처로는 가지도 않았습니다.
5
저는 몇몇 사람의 얼굴을 떠올려 보기도 했습니다.
누가 다시 내 앞에 나타난 것일까?
누가, 말하지 못한 누가, 내게 말하려고 하는 것일까?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럴 만한 사람은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제 주변엔 일찍 죽은 사람도 드문 데다가 어떤 원한이나 참을 수 없는 증오를 품고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진 친구도 거의 없었습니다(물론 제가 생각하기에 그랬습니다). 사회적 참사나 재난에 희생당한 이웃도 없었고, 외롭고 쓸쓸하게, 아무도 돌봐주는 이 없이 고독사한 사람의 소식도 듣지 못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너무 멀리 있었고, 제 주변엔 다 고만고만한 이웃들뿐이었죠. 아침이나 저녁엔 호수공원에서 러닝을 하고, 사춘기 자식의 사소한 반항이나 일탈에 감정적으로 대응하지 않으며, 이웃이나 친척의 실수에도 ‘그래, 그럴 수도 있지’ 하면서 넘어가주는, 외적 내적 다정함을 ‘추구미’로 정해놓고 살아가는 사람들 말입니다.
저는 사흘째 되는 날, 용기를 내 차를 몰고 학교로 출근했습니다. 언제까지 이렇게 지낼 순 없다고 마음을 다잡은 부분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그날은 아침 일찍 단과대 회의가 잡혀 있었습니다(꾸물거리다가 회의 삼십 분 전에야 겨우 집에서 나섰습니다). 시동을 걸기 전 저는 룸미러부터 먼저 보았습니다. 유령은 변함없었습니다. 마치 송풍구에 부착된 디퓨저처럼, 뒷좌석에 덩그러니 놓인 쿠션처럼, 깜빡깜빡, 거기 앉아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또 이런 생각도 했습니다.
혹시 나에게 나타난 유령이 아니고, 그냥 차에 달라붙은 유령은 아닐까?
전기차를 사랑하는 유령이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그나마 저에겐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날 저녁, 학교 주차장에서 막 시동을 걸려던 순간, 몇몇 학생들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제 차 문을 벌컥 열었습니다. 같은 과 소설 소모임 친구들 네 명이었습니다(세 명은 뒷좌석으로, 한 명은 조수석으로).
저는 “어어, 거기 유령 탔는데” 하고 놀란 목소리로 말했지만, 그 친구들은 전혀 개의치 않았습니다. 오히려 까르르 웃으면서 “어머 어머, 실례하겠습니다. 같이 좀 타겠습니다” 하곤 허공에 대고 고개를 숙이기까지 했습니다(당연하게도 유령은 제 눈에만 보이는 게 맞는 것 같았습니다). 유령은 그 친구들 때문에 상체를 앞으로 내민 채, 조금 구겨진 상태로, 깜빡깜빡 저를 쳐다보았습니다.
학생들은 밥을 사달라고 했습니다. 교수님이 밥을 사주기로 약속한 게 벌써 백만구만 년 전 일이다, 허기가 져서 문장이 잘 써지지 않는다, 타인의 곤궁함을 외면하지 말라고 교수님께서 말씀하시지 않으셨냐…… 말이 많았습니다.
저는 학생들을 태우고 근처 샤부샤부 집으로 차를 몰았습니다. 가는 도중, 조수석에 앉은 소모임 회장 친구(남자 친구인데, 학과 내에서도 진지하기로 명성이 드높은 학생이었습니다)가 “아까 교수님이 말씀하신 유령이 탔다는 말이 혹시 저희 세대를 일컫는 뜻입니까?”라고 물어서 모두에게 원성을 샀습니다. 저는 “어, 그래”라고 짧게만 대답해주었습니다.
우연한 일이었지만, 학생들을 차에 태운 것이 저에겐 도움이 되었습니다. 유령은 학생들이 식사를 마치고 나올 때까지(바로 옆 설빙에서 디저트로 ‘순수요거블루베리설빙’까지 야무지게 해치우고)도 역시나 제자리를 지키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웬걸, 저에겐 좀 안쓰럽게 보이기도 했습니다. 존재의 본질이야 어찌 되었든 유령 역시 제 학생들 또래로 보였던 게 맞았으니까요. 학생들이 웃고 떠드는 중에도 불편한 자세로 깜빡깜빡거리기만 하는 그 친구의 표정이 쓸쓸하고 어쩐지 더 어리둥절해 보이기도 했습니다. 표정이란 게 원래 보는 사람의 몫인 거잖아요? 그 표정을 읽어내는 제 마음이 그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게 재현의 한계일지 몰라도, 그 한계를 감당하더라도, 저는 그렇게밖에 느낄 수 없었습니다.
내친김에 그날 밤, 저는 차를 몰고 아파트 단지에서 가까운 초등학교 후문 옆 이면도로로 나갔습니다. 등하교 시간엔 번잡하고 정신없는 장소였지만, 밤 10시 이후엔 지나다니는 차도, 인적도 드문, 가로등 불빛에 만들어진 플라타너스 잎사귀 그늘이 차 보닛 위에 드리워지는, 제법 괜찮은 포인트 중 한 곳이었습니다.
저는 그곳에 차를 세우고 운전석 좌석 위로 노트북 테이블을 설치했습니다. 늘 하던 대로 텀블러에 커피도 가득 담아왔고, 생수도 따로 한 병 준비해왔습니다. 노트북에 전원을 넣고, 휴대폰으로 임윤찬의 바흐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재생시키고, 에어컨 온도는 ‘Lo’로, 그런 다음 책상다리하기. 모든 준비를 다 마친 후, 저는 슬쩍 룸미러를 바라보았습니다. 왼쪽 뺨과 콧잔등에 플라타너스 잎사귀 그늘이 진 유령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너는 잠도 없니?
저는 혼잣말을 중얼거리면서 노트북 화면으로 시선을 돌렸습니다. 유령만 빼곤 모든 게 다를 바 없었습니다. 직장도 그대로고, 가족도 무사하고, 작업환경도, 임윤찬도, 실내 온도도, 변한 게 없었습니다. 유령도 이제 익숙해졌으니 몰입만 하면 되는데……
한데, 왜 커서, 너도 깜빡거리기만 하는 거니?
저는 유령이 들으라는 듯 또 혼잣말을 했습니다. 너희들이 무슨 반딧불이니? 여기가 무슨 무주구천동이야? 저는 커피를 마시고, 밤하늘을 바라보며 중얼거렸습니다(왜 나이가 들면 혼잣말에도 자꾸 리듬을 넣게 되는 걸까요? 왜 모든 혼잣말이 창이 되고 랩이 되는 걸까요?). 그러다가 다시 숨을 길게 내쉬고 노트북 키보드에 손을 올려보았지만…… 결국 눈을 감고 임윤찬의 피아노 연주곡에만 귀를 기울였습니다(깜빡 졸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두 시간 가까이 그곳에 머물다가 저는 다시 차를 몰아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이렇게는 안 되겠구나, 이렇게는 안 되겠어.
저는 마치 시조시인처럼 중얼거렸습니다.
6
열흘쯤 지난 뒤, 저는 차를 몰고 다시 맥문헌이 있는 K군으로 향했습니다.
처음부터 K군을 가기 위해 마음먹고 나선 길이 아니라, 핸들을 잡고 멀거니 아파트 정문 출입구를 빠져나와 차가 막히지 않는 쪽으로, 신호가 걸리지 않는 방향으로 움직이다보니 어느새 15번 국도에 올라타 있었고, 그때부터 어떤 의지가 생겨났던 것입니다.
토요일 오후 4시 무렵이었습니다.
아내는 출근했고, 아이들도 모두 학원이나 친구를 만나기 위해 집을 비운 시간. 평상시 같았으면 아이들 침대 시트도 갈고 재활용품도 정리한 후, 함께 사는 강아지 ‘이시봉’과 호수공원과 아파트 단지 뒷산으로 산책을 나섰겠지만, 저는 그 어느 것도 하지 못했습니다. 대신, 차에 가야 한다는 생각과 가면 안 된다는 마음 사이에서 상승과 하강만 반복했습니다. 하강은 이해됐지만, 상승은 또 무엇이었을까요? 왜 두려운 것과 떨리는 것, 긴장과 흥분은 같이 오는 것일까요? 왜 그래서 사람을 더 지치게 만드는 것일까요?
지난 열흘 동안의 제 모습이 딱 그랬습니다.
유령은 변함없이 깜빡깜빡 제자리를 지키고 있었던 반면, 저만 분주하게, 무언가에 닿고 스치는 소리에도 소스라쳐 놀라는 일상이 이어졌습니다. 생가지가 부러질 때 나는 냄새, 그 비릿하고 잠깐 났다가 사라지는 냄새가 제 주위를 맴도는 것만 같았는데, 저는 그것 또한 다 유령의 탓으로 돌렸습니다.
K군에 가면 모든 것이 다시 원래대로 돌아올 것이라는 기대, 그런 게 왜 없었겠습니까? 그곳에서부터 시작된 일이니, 그곳에서 마무리될 수 있다는 마음. 분명 그런 게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아마도 저는 일부러 그쪽 방향으로 핸들을 돌린 게 맞을 겁니다. 짐짓 그렇지 않은 척 제 자신을 속이고 핑계를 대려 노력했을 뿐이지만, 어쨌든 저는 모든 일의 ‘인과(因果)’를 믿는 사람, 거기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사람이 맞았습니다.
하지만 맥문헌 간판이 보이는 K군 유일의 메가커피 매장 앞 도로에 차를 세우고 난 뒤에도, 저는 뭘 어찌해야 좋을지 알 수 없었습니다. K군에 도착하기 전부터 맥문헌 주인을 만나 이런저런 사정을 이야기해볼까, 궁리해본 것도 사실이지만, 막상 그 앞에 닿고 나니 다른 무엇보다도 무안함이, 어떤 부끄러움과 구차함이, 그 자리를 대신했습니다. 불과 열흘 전 북토크를 했던 곳을 다시 찾아가다니. 그 자체만으로도 제가 좀 이상한 사람처럼 여겨졌습니다. 마치 옛 연인과 함께 가던 단골집 앞을 머뭇거리는 기분, 그런 감정도 느껴졌습니다.
유령은 K군에 도착하고 난 뒤에도 오직 저에게만 집중한 채 말이 없었습니다. 풍경을 둘러보지도 않았고, 자세를 바꾸지도 않았습니다.
여기 너희 동네야.
저는 룸미러를 보면서 속엣말을 했습니다.
깜빡깜빡.
이제 가서 눈 좀 붙여.
저는 차 유리창을 조금 내려주기도 했습니다.
K군은 크리스마스이브 저녁에도 길가에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곳이라고, 맥문헌 주인이 농담 삼아 말했던 기억이 났습니다. 과연 그의 말처럼 토요일 이른 저녁 시간이었지만 거리는 한산하고 조용하기만 했습니다. 학교 체육복을 입은 아이 두 명이 바쁘게 뛰어갔고, 지팡이를 짚은 할머니 한 분이 느릿느릿 도로를 건너는 모습도 눈에 들어왔습니다. 거리는 자주 텅 비었고 가로등들은 일찍부터 불을 밝히기 시작했습니다. 글라스 갓을 씌운 빈티지 가로등이었는데, 간격을 맞춰 늘어선 소나무처럼 곧고 튼튼해 보였습니다. 그 불빛들 사이로 산에서부터 내려온 안개가 스멀스멀 퍼져나가고 있었습니다. 살짝 열어둔 차 유리창 사이로 퍼지는 나무뿌리 냄새, 구덩이 안에 들어 있던 오래된 흙냄새. 밤이 되면 더 짙어지는 냄새들.
순간 저는 조금 이상한 감정에 휩싸였습니다.
이걸 감정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까요? 몸이 먼저 떨리는가 싶더니 간질간질 잔기침이 나올 것처럼 가슴과 목 부위가 불편해졌습니다. 무언가 터져나올 것만 같은데, 속 시원하게 해결되는 것은 없어서 더 답답해지는, 그러다가 결국 스스로에 대한 자괴감이 더 심해지는 상태.
저는 까닭 없이 분노했습니다. 뭘 잘 몰라서 화가 나기도 했고, 뭘 제대로 표현할 수 없어서, 그 상태를 고스란히 문장으로 옮길 수 없어서 적의를 품었습니다. 그것밖에 아는 감정이 없는 것 같았습니다. 두려움을 받아들이는 감정, 그것을 모른 척하려고 안간힘을 쓰는 마음. 오직 그것뿐인 거 같았습니다.
저는 차 뒷좌석을 바라보며 소리라도 지르고 싶었지만, 그러진 않았습니다. 대신 바로 옆자리에 놓인 노트북을 펼쳐 제 무릎 위에 올렸습니다(노트북 거치대는 트렁크에 있어서 꺼내지 못했습니다). 늘 차 안에 두는 작업용 노트북이었습니다. 그곳에 무언가를 적어나가기 시작했습니다. 마감이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저는 상관없었습니다. 유령에 대해서 쓰진 않았습니다. 저에게 중요한 것은 유령이 아니라, 침해받은 제 공간이었습니다. 고통받는 제 이야기였고, 어지러워진, 문장으로 표현할 수 없는 제 감정이었습니다. 제가 유령에 대해서 무엇을 안다고 함부로 유령에 대해서 쓸 수 있겠습니까? 쓰더라도 그것은 저와 관계된, 제 이야기였습니다. 에세이이든, 소설이든, 제가 쓸 수 있는 문장들. 오직 그것이 궁금했습니다.
결기.
그것을 해내겠다는 결기.
그곳이 어디든 쓰겠다는 의지.
나에게 최대치로 집중된 감각.
그렇게 한참을 노트북에만 집중하고 있을 때 톡톡, 조수석 유리창을 두들기는 소리가 났습니다. 저는 화들짝 놀라 그만 노트북을 바닥을 떨어뜨릴 뻔했습니다. 유령이, 깜빡깜빡거리기만 하던 그 존재가, 드디어 말을 건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유령이 아니었습니다.
한 여자가 살짝 열린 조수석 유리창에 이마를 댄 채 저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작가님……?”
검은색 세트 추리닝을 입은 여자, 파이터처럼 보였던 여자.
박 선생이었습니다.
7
“여기서 뭐 하세요?”
박 선생은 조수석 유리창 가까이 얼굴을 댄 채 물었습니다.
저는 갑자기 좀 멍해졌습니다. 그리고 당황했죠. 하지만 그것도 잠깐이었고, 민망하고 숨고 싶은 마음이 더 커졌습니다. 고개를 숙인 채 그대로 차를 몰고 도망치는 상상을 잠깐 하기도 했습니다.
결국 그러지도 못했습니다.
“아, 네……”
저는 유리창을 더 내린 후 인사를 했습니다.
“진짜 맞네. 난 잘못 본 줄 알았는데.”
박 선생은 유리창에 손을 올린 채 차 안을 두리번거렸습니다.
“무슨 일이 또 있으신 거예요?”
“그게……”
제가 얼버무리자, 박 선생의 시선이 무릎 위 노트북에 와 닿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글을…… 쓰고 계셨던 거예요?”
저는 두 눈을 아래로 깐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귓불이 벌겋게 달아오르고, 피로감이, 꼼짝도 할 수 없을 것 같은 무력감이 밀려왔습니다.
“제가 방해했나보네요.”
박 선생은 그렇게 말한 후, 고개를 살짝 숙여 인사했습니다. 그러곤 차 앞쪽으로 천천히 걸어갔습니다.
저는 멀어져가는 박 선생의 뒷모습을 보다가 쿵쿵, 이마로 두 번 핸들을 찧어댔습니다. 무릎 위에 있던 노트북도 뒷좌석으로, 유령이 있는 쪽으로 내팽개쳐버렸습니다. 이상한 사람, 구차한 작가. 제 자신이 끝내 그런 사람이 되어버린 것만 같았습니다. 아니, 기어이 그것을 확인해버린 것만 같았습니다. 제 자신이 딱 거기까지인 것만 같았습니다.
딱 그런 줄로만 알았는데,
그로부터 다시 이십 분도 지나지 않아 저는 조수석에 박 선생을 태우고 15번 국도를 향해 차를 몰았습니다.
8
어둠은 이미 짙어질 대로 짙어진 상태였고, 안개가, 누군가의 거친 숨처럼 불규칙한 안개가, 굽잇길마다 자욱했습니다, 그래서 마치 어떤 무성한 덤불을 밀어내며 앞으로 앞으로 조심스럽게 나아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했습니다. 국도변엔 메타세콰이아 나무들이 일정한 간격으로 심겨져 있었고, 그 너머론 바로 작은 강이었습니다. 나무들이 지켜주고 있다. 나무들이 부딪쳐오고 있다. 그 두 문장이 머릿속에서 반복해서 떠올랐습니다. 슬쩍 본 룸미러엔 변함없이 깜빡깜빡거리며 앉아 있는 유령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처음으로 그 유령의 존재가 다르게 보이기도 했습니다. 마치 무슨 말을 하려는 사람처럼, 그 깜빡임이 느껴졌던 것입니다.
“제가 정말 방해가 됐네요.”
박 선생이 전방을 주시한 채 입을 열었습니다. 좀 전, 다급하게 부탁하던 그 목소리와는 또다른 톤이었습니다.
“아니에요. 저도 막 돌아가려던 참이었습니다.”
저 또한 되도록 심상한 목소리로 말하려고 노력했습니다.
박 선생과 저는 한동안 침묵을 지켰습니다. 임윤찬이라도 틀까, 오디오 버튼으로 손을 뻗다가 바로 멈췄습니다. 박 선생에겐 지금 음악보다 고요가 더 도움이 될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지난번엔 저 때문에 기분이 많이 상하셨죠?”
박 선생은 고개를 아래로 내리며 말했습니다.
저는 아니라고 대답하려 했지만, 생각처럼 쉽게 말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묵묵히 앞 유리창만 응시했습니다.
“제가 원래 말이 좀 세요. 그래서 학생들도 절 싫어하죠.”
박 선생은 다시 앞을 바라보았습니다.
“없이 자라서 사람이 좀 못됐어요.”
국도엔 과속 단속 카메라가 많아서, 저는 자주 속도계를 내려다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속도를 조금 낮출 때마다 공연히 조급해졌는데, 그 감정이 사실 미안한 마음이라는 걸 나중에야 깨닫게 되었습니다.
좀 전, 박 선생은 제 차로 달려와 조수석 유리창을 손바닥으로 내리치며 다급하게 저를 불렀습니다. 그때까지도 핸들에 이마를 대고 있던 저는 굳은 표정으로 박 선생을 바라보았습니다. 저 여자는 정말 왜 저러는가! 정말 파이터인가! 나에게 왜, 나에게 왜 함부로 하는 건가! 저는 조수석 유리창을 내렸습니다. 소리라도 지르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러지 못했죠.
“작가님, 저 좀, 저 좀 도와주세요.”
박 선생이 먼저 애원하듯 말했습니다. 그녀는 고통을 참듯 한 손으로 자신의 윗옷 지퍼 부위를 꽉 움켜쥐고 있었습니다.
“광주까지만, 전남대병원까지만 태워주세요.”
박 선생의 눈엔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있었습니다.
“언니가, 언니가……”
“언니분께서 연세가……?”
“저보다 여덟 살 위예요. 제가 작가님보단 세 살이 더 많구요.”
저는 말없이 고개를 주억거렸습니다.
“언니집이 광주 월산동이에요.”
박 선생은 잠깐 자신의 휴대폰을 내려다봤습니다. 그러곤 또 한동안 말이 없었습니다.
황색 점멸 신호등이 켜진 교차로를 지나고, 강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하나 건넌 뒤에, 저는 뜬금없이 혼자 이런 기억을 떠올렸습니다.
그냥 해줘요.
저는 걸어서 작은 다리를 건너다 말고 마케팅팀장에게 불쑥 그렇게 말했습니다. 파주였습니다. 커다란 버드나무의 잎사귀들이 바람에 따라 느리게 흔들리는 모습이 보였는데, 그래서인지 자주 밤하늘의 경계 같은 것이 지워지고 있었습니다.
네? 뭘요, 작가님?
그 작가님이요. 북토크 열어주시라고요.
제가 그렇게 말하자, 그 자리에 같이 있던 다른 마케팅팀원이 빤히 이쪽을 바라보는 게 느껴졌습니다.
모객이 되든 안 되든.
저는 제가 멈춰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제 자신이 무례하다고 여겨졌습니다. 마케팅팀장에게도, 그 작가에게도…… 하지만 그게 잘 안됐습니다.
그 작가님이 두려워서 그런 거잖아요.
깜빡깜빡.
자신이 몇 년 동안 죽어지낸 것만 같아서……
“사실 제가 언니한테도 못되게 굴었어요.”
박 선생이 말을 꺼냈습니다.
“사 년 동안 연락도 안 받고 그랬어요.”
저는 와이퍼를 한 번 작동했습니다. 안개 때문인지 유리창에 자주 습기가 올라왔습니다.
“저는 언니 때문에 대학을 졸업할 수 있었거든요.”
박 선생은 잠시 고개를 옆으로 돌렸습니다.
“그 말을 사십 년 가까이 들었어요.”
“네.”
“언니가 고마운데, 그 말을 들으면 자꾸 웅덩이에 빠지는 기분이 들었어요”
저는 고개를 끄덕거렸습니다.
“그 웅덩이 속에 언니도 저도 빠져 있고, 다른 사람도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고.”
박 선생은 크게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저는 창문을 조금 내렸습니다.
“작가님, 차가 참 좋아요. 깨끗하고.”
다른 때 같았으면 그 말이 저에겐 아프게 들렸겠지만, 그땐 그렇지 않았습니다.
“택시 같은 거예요.”
“네?”
“여기서 일을 하니까요.”
석거리재 터널에 막 진입했을 때, 저는 용기를 내서 박 선생에게 물었습니다.
“선생님, 젊었을 때도 작가 강연회 같은 곳 자주 가셨나요?”
박 선생은 룸미러 속 제 얼굴을 보면서 말했습니다.
“맞아요. 일부러 찾아다니고 그랬어요.”
“그땐 좋으셨어요?”
“좋았어요.”
박 선생은 그때마다 작은 수첩을 갖고 다녔는데, 끝나고 나면 거기에 메모가 빼곡히 되어 있었다고 했습니다.
저는 박 선생의 그 모습을 잠깐 상상해보았습니다. 맨 앞줄에 앉아서 무언가를 받아 적고 있는 가난하고 젊은 독자. 그 모습이 떠오르자 왠지 모르게 마음이 먹먹해져버렸습니다.
“저에겐 그게 유일한 낯선 경험이었거든요. 작가를 만난다는 게……”
저는 박 선생에게 조심스럽게 물어봤습니다.
“선생님…… 선생님 그때도 안경을 쓰셨나요?”
“네?”
“안경이요. 지금 쓰고 계시는 거 같은……”
“아, 이거요? 이거 몇십 년 된 거예요. 평소엔 렌즈를 끼는데, 주말엔……”
그러니까 박 선생이 황급히 손바닥으로 조수석 유리창을 두들겼을 때, 그 유리창을 온전히 다 내렸을 때, 제가 봤던 그 얼굴, 그 표정. 짧은 헤어스타일에 하얗게 머리칼만 새어버린 얼굴.
“선생님, 이제 조금 쉬세요. 밤이 길 것 같은데.”
저는 다시 창문을 다 올렸습니다. 밤의 국도는 그새 더 쌀쌀해져 있었습니다.
깜빡깜빡.
뒷좌석의 유령은 제게서 계속 시선을 떼지 않았습니다.
9
그날 밤, 박 선생과 저는 전남대병원 응급실 앞 도로에서 헤어졌습니다.
“작가님, 제가 어떻게 고마움을 표해야 할지……”
저는 아니라고 했습니다. 얼른 들어가보시라고, 가만히 박 선생을 기다려줬습니다. 박 선생은 제 차에서 내린 뒤, 뒤도 돌아보지 않고 곧장 응급실 쪽으로 뛰어갔습니다. 저는 박 선생의 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속으로 한 번도 본 적 없는 박 선생 언니의 건강을, 그 손길들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대신, 걸어서 삼십 분쯤 떨어진 진월동의 한 24시 무인카페로 노트북 가방을 메고 나가고 있습니다. 거기에서 1500원짜리 아메리카노 한 잔을 뽑아 새벽 2시까지 앉아 있다가 돌아오곤 합니다(좀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 유자차도 한 잔 더 뽑아 마십니다. 맛은…… 맛이 뭐 중요하겠습니까?). 글은, 좀 써지는 날도 있지만, 안 써지는 날이 더 많습니다. 그러면 그냥 태블릿 PC로 전자책이나 학생들 원고를 읽다가 돌아옵니다. 에어팟으로 임윤찬도 간간이 들었는데, 임윤찬이 조용히 저를 돕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때때로 무인카페에 들어오는 대학생들이나 청년들이 작은 목소리로 말하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기도 했습니다. 시험공부를 하러 오는 친구들도 있고, 호기롭게 첫차가 다닐 때까지 거기에서 버텨보겠다며, 나 무릎담요도 갖고 왔다고 누군가에게 한참을 전화로 떠드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한 번은 웬 취한 아저씨가 내 옆에 앉더니 자꾸 부장님이라고 불러서, 한 잔 더 하러 가자고 졸라대서, 난처했던 적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날은 조용했고, 소곤거리는 목소리들이 들렸고, 거리를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얼굴을 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아, 그리고 유령.
믿기지 않겠지만 그 친구는 요즘도 계속 제 차에 머물고 있습니다.
얼마 전엔 차를 몰고 지산유원지에서부터 충장사까지 드라이브를 하기도 했는데, 룸미러를 바라볼 때마다 깜빡깜빡, 그 친구와 눈이 마주쳤습니다. 저는 차 유리창을 조금 열어주고 조용히 물어보았습니다.
“여기도 좋죠?”
제가 택시기사처럼 정중하게 묻자, 그 친구는 제 얼굴을 바라보며 대답했습니다.
깜빡깜빡.
죽어지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
그것을 믿어보겠다는 결기.
저는 속으로 그 말을 몇 번 되뇌어보았습니다.
이기호
1999년 《현대문학》 신인추천공모에 당선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최근작으로 『명랑한 이시봉의 짧고 투쟁 없는 삶』이 있다.
저는 요즘도 가끔 차에서 글을 씁니다.
2026/08/05
80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