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상도 높은 장면
제목 없는 문서들
기억 속의 게임을 찾아 헤맨 적이 있으신가요? 게임을 둘러싼 경험을 더듬다 보면 게임이 단순히 화면 안에서 진행되는 게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죠. 때로는 텍스트와 사운드만으로도 장면과 인물, 관계와 공간이 출현하고 사건이 발생합니다. 이번 호에서 김영주와 위지영은 '텍스트-게임'을 공통의 출발점으로 삼아 서로 다른 방향으로 글쓰기를 전개했습니다. 위지영이 만든 필드 레코딩 기반의 사운드를 게임의 청각적 환경으로 삼아, 김영주는 사라진 게임에 대한 기억을 프롬프트와 증언을 통해 복원합니다. 위지영은 게임 플레이를 사운드와 중첩시켜 게임(혹은 꿈)에 몰입한 나머지 자신과 픽션의 경계를 잃어버린 인물들을 그려냅니다. 게임이라는 인터페이스와 그것을 둘러싼 경험의 여러 층위를 가로지르는 두 사람의 작업은, 게임을 플레이하는 경험 역시 기억과 상상, 추측과 해석이 얽히며 세계를 읽고 써나가는 문학의 작동 방식과 맞닿아 있음을 보여줍니다.
타이피스트의 수기
잠과 물 없는 나흘이 지나자, 나는 사바세계에서 방출되었다. 내가 실험에 자발적으로 가담했거나, 고문에 강제로 동원된 것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여전히 나는 부인하겠다. 내가 죽었다는 것을. 낙관적이지 못한 시간의 문지방을 넘어 몸은 전해질로 이루어진 듯 가벼워졌고, 계시는 음악처럼 찾아왔다.
사이먼.
그래, 나는 사이먼이다. 동시에 가펑클이기도 하다. 나는 흔들의자고, 독수리 타법이며, 네모진 타일 바닥에 나무 그림자처럼 어른대는 단어 퍼즐 조합이다. 그레고리력을 따르는 인도네시아는 올해로 서기 천구백육십구 년을 맞이하였다. 그리고 나는 격자 타일이 깔린 자카르타의 한 교실에서 모니터를 노려보고 있다. 타이핑을 멈추면 커서가 깜빡거린다. 나는 커서를 메트로놈 삼아 노래를 흥얼거려본다. 죽어서도 노래나 부를 작정이기는 했다. 그런데 내가 이 교실에서 떵떵대며 노래한다 한들, 사바세계의 누가 귀를 기울이기나 할 것인가?
교탁 안에서 나무젓가락을 발견했다. 이 문서가 독수리 타법으로, 젓가락 끝으로 작성되고 있다는 뜻이다. 학생이 된 지 나흘 만에, 내 타자는 꽤 빨라졌다. 나는 독수리 타법을 발전시켜 나만의 노래를 받아적기로 마음먹었다. 그레고리력이 유효한 동안에만 가사를 다 완성하면 될 것이다. 그 가사가 이 문서는 아니다. 내가 멀미도 없이 흔들의자에서 깨어났을 때, 즉, 사바세계에서 자카르타의 빈 교실로 옮겨졌을 때, 내 손목은 공예적으로 얽힌 몇 겹의 로프로 묶여 있었다. 징그러운 프랙탈 패턴 매듭이 똬리를 틀어버린 것이다. 그래서 나는 젓가락을 한 짝씩 쥐고 손목 돌리는 스트레칭을 하고 있다. 이 문서는 스트레칭의 일환이다.
은회색 격자 타일 바닥을 쪼개고 또 쪼개다보면, 단어 퍼즐의 아름다운 질서를 발견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타일 바닥 위로 교차되어 번져가는 저 단어는 사이먼, 그리고 가펑클이다. 맞다, 그건 노래 교실에 홀로 남아 흥얼거리는 나를 가리킨다. 사이먼과 가펑클은 문자 n을 공유하는데, n을 뒤집으면 u로, 회전 대칭을 이루게 된다. 마찬가지로, 교실에 머무는 한 나는 멀미 완화용 매듭, 반세기 동안 쪼개지지 않은 나무젓가락, 자카르타로 반품된 삼성 모니터와도 호환될 수 있을 것이다.
해가 지지 않는 운동장에 공 하나가 굴러다닌다. 공은 가끔 하늘로 붕 떠오른다. 저걸 두고, 공이 쇠구슬처럼 솟아났다고 적어도 될까? 진짜 쇠구슬일 수도 있다. 해가 지지 않는 운동장에서 까마귀로 여겨지는 새가 울어댔다. 반 층 떨어진 복도에서 누가 슬리퍼를 끌며 지나갈 때도 있다. 하지만 학교는 반세기 전 자카르타에서 탕그랑으로 이전했으며, 학생들은 조용히 해방되었다. 그러므로 누가 아직도 복도를 거닐고 있다면, 그건 까마귀가 먹다 남긴 반세기 전의 시체에 고인 소리에 불과하다.
운동장에서 쇠구슬이 가볍게 튀어 올랐다. 탕그랑에서 날아온 쇠구슬이다. 저걸 쇠구슬이 공처럼 튀어 올랐다고 적어도 될까? 젓가락질을 멈추는 즉시 커서는 껌뻑인다. 졸음마저 바닥난 올해의 나는 커피도 없이 글자들을 입력하고 있다. 쇠구슬은 나를 보며 떠 있다. 하지만 멈춰버린 구체의 방향을 읽는 것이 애초에 가능한가? 그냥 내 시력이 나빠진 것일지도. 서기 천구백육십구 년에는 누구도 노안을 피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노안과 싸우는 만학도에게 공부란 영 쉬운 일이 아니다.
벌써 나흘 전 일이다. 나는 작사를 시작하지도 않았는데, 화단 쪽에서 누군가 내 노래에 엉터리 가사를 붙여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고양이 창법이 간헐적으로 지속되었다. 사바세계에서 가펑클이 건너왔구나. 내 노래를 예상 표절한 고양이, 공예적으로 땋은 매듭 팔찌를 목에 건 가펑클. 그건 나다. 사이먼으로서, 나는 기꺼이 나의 주인이 되어줄 수도 있있다. 고양이에게 필요한 건 깊은 잠과 깨끗한 물이겠지. 이쯤에서 문서를 저장하고 교실 밖으로 나가봐야 할까? 선택지는 두 개다. n/u.
마가린 인간의 수기
일요일
나는 첫번째 팝콘을 입에 물었다. 침을 삼키자 싸구려 마가린 맛이 감돌았다. 백마흔다섯번째 팝콘을 입에 넣었을 때, 나는 팝콘과 함께 내 혀를 조금씩 녹여 먹고 있었다. 팝콘 한 봉지를 끝내자 혀는 사라졌다. 나는 약간 말랑해진 머리를 차가운 돌바닥에 댄 채 잠들어버렸다. 고소한 구역질이 은은하게 올라왔다. 잠든 사이 역류한 마가린 기름은 입안에서 혀의 형태로 굳어있었다. 손가락끼리 문지르면 광이 돌면서 지문이 잠시 녹았다가 돌아왔다. 그렇게 나는 식물성 마가린 인간이 되었다.
서늘한 지하실로 팝콘을 주문하자, 박스들은 단숨에 도착했다.
일요일
지하실에 배송된 팝콘은 총 사백 봉지다. 작은 박스 하나당 스무 봉지가 들었고, 박스는 총 스무 개다. 마가린 인간이 된 후로, 나는 총 네 봉지의 팝콘을 먹었다. 지하실로 이사한 지 이제 막 나흘이 되었다는 뜻이다. 내가 하루에 팝콘을 한 봉지씩 먹는다면, 앞으로 삼백구십육 일 동안 팝콘을 섭취할 수 있겠다. 그런데 내 조사에 따르면, 터진 것과 터지지 않은 것을 합쳐, 팝콘 한 봉지에는 대략 사백 개에서 오백 개의 옥수수 알갱이가 들어있다. 꽃잎을 떼어내 표본을 만드는 식물학자처럼, 나는 다이닝 테이블 가득 하얀 팝콘과 누런 옥수수 알갱이를 늘어놓았다. 그걸 눈이 빠지도록 세느라 요 며칠은 식어 빠진 팝콘을 삼켜야만 했다. 자고로 팝콘은 뜨거워야 하는데 말이야! 하지만 손가락이 녹아버리면 곤란하니 조심해야 한다. 김이 나는 팝콘 한 알을 급하게 삼켰을 때, 팝콘의 온기가 입안과 혀, 식도를 할퀴는 느낌이 들었다. 마치 뜨거운 포크로 마가린 덩어리를 살살 긁어낼 때처럼 말이다. 나는 기름진 침을 꿀꺽 삼켰고, 곧 혈중 마가린 농도가 높아졌으며, 장기들은 굴곡 없이 매끈한 상태로 되돌아왔다.
아무튼, 나흘 동안 네 봉지의 팝콘을 뜯은 결과를 발표하겠다. 팝콘 한 봉지당 터지지 않은 옥수수 알갱이의 비율은 약 10%로 추산된다. 한 봉지당 약 마흔 개에서 쉰 개 사이의 알갱이가 터지지 않은 셈이다. 이 터지지 않은 알갱이만 따로 모은다면, 대략 팝콘 열 봉지당 보너스 팝콘 한 봉지를 얻게 되는 셈이다. 처음에 팝콘 사백 봉지가 있었다고 할 때, 보너스 팝콘은 약 마흔 봉지가 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미 팝콘을 네 봉지나 부주의하게 먹어 치웠고, 방치된 옥수수 알갱이는 잠든 사이 쥐들이 몽땅 물고 가버렸다. 그러므로 현재 남은 삼백아흔여섯 봉지의 보너스 팝콘은 약 서른아홉 봉지다. 여기서 잠깐, 서른아홉 봉지로 예상되는 보너스 팝콘에서 또다시 보너스 팝콘이 발생한다면? 보너스 팝콘의 10%인, 네 봉지 정도의 재활용 보너스 팝콘까지도 기대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쥐들에게 도난당한 알갱이마저 온전히 되찾게 되는 셈이다. 이처럼 보너스의 원리란, 이상적으로 마흔세 봉지쯤 공짜 팝콘이 돌아오는 마법인 것이다. 아직 보너스 팝콘을 튀겨보지 않았으므로, 재차 터지지 않을 낙오 알갱이의 비율을 모르기에 소수점 이하는 제외했다.
이것이 앞으로 대충 일 년 이 개월 치의 계획이었다. 사백삼십구를 구성하는 숫자들을 하나의 숫자가 될 때까지 더해보니, 수비학적으로 완벽한 럭키 세븐, 7이라는 숫자가 도출되었다. 팝콘이 고갈된 후에는 팝콘 회사에 연락을 취해, 팝콘을 영원히 제공받는 조건으로 기꺼이 포장지 모델이 되어줄 생각이었다. 소비자를 우롱하는 그들의 교묘한 수법처럼, 나도 동물성 버터 인간을 사칭하면 그만이었다.
계획을 실현하려면 우선 팝콘을 튀길 여분의 종이봉투가 필요했다. 침을 발라 빈틈없이 밀봉할 수 있는, 팝콘광들이 뒷거래로 수집하는 그런 종류의 봉투 말이다. 팝콘을 이미 사백 봉지나 주문했으므로, 이번 건으로 인해 나의 고객 레벨은 플래티넘, 즉 최상위 백금으로 확정되었다. 이 몸이 백금처럼 단단하지는 않더라도 말이다. +39-6394-43916. 플래티넘 고객을 위한 종이봉투 서비스를 요청하기 위해, 나는 팝콘 박스에 인쇄된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일요일
위층 집주인은 고령에도 불구하고 원맨 밴드를 포기하지 않았나 보다. 하지만 최근에는 체력이 부치는지, 매일 지하실 천장을 울려대는 연주는 삼십 초를 넘기지 못한다. 그것이 음악가로서 수명을 연장해온 비법인지, 음악을 포기하고 싶은 마음을 담은 행위인지는 모르겠다. 그 짧은 간주는 마가린 인간의 귀에도 상당히 느끼하게 들렸다. 노인은 절망하고 있는 것일까? 그렇다면 절망감이 사망의 가속도에 미치는 영향을 계산해보고 싶다. 집주인이 사라지면 이 집은 자연스레 내 집이 될 테고, 밤낮으로 에어컨을 틀어 집을 냉장고로 만들어버릴 텐데.
집주인이 지하실에 처박은 쓰레기들은 내 살림살이나 마찬가지다. 내 손을 타서 번들거리게 된 물건들은 빠르게 내 차지가 되었다. 크리스마스에 버려진 것 같은 루돌프 인형, 그리고 소형 카세트 플레이어. 매립식 자석으로 고정된, 두껍게 코팅된 종이박스도 발견했다. 박스 안에는 카세트테이프가 세 줄로 빼곡히 꽂혀 있었다. 젊은 집주인의 사진. 함께 있는 사람은 파트너일까, 밴드 멤버일까? 어쨌거나 지금은 죽었겠지. 열렬히 사랑했을까? 행진곡이라 적힌 테이프를 꺼내 틀어보았다. 팝콘 권총을 쏘며 질주하는 듯한, 얼치기처럼 위풍당당한 곡이다. 그러나 집주인은 이제 찬송가 같은 느끼한 곡을 연주한다. 그마저도 좀 흐느끼다가 만다.
젊을 때 만든 음악이 낫지 않아? 나는 떡진 루돌프 인형에게 묻는다. 루돌프가 껴안은 하트 쿠션을 누르자, 이번엔 루돌프가 내게 묻는다. 안녕! 어떻게 지내? 만화적인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응, 너를 버린 집주인은 잘 지내. 널 새까맣게 잊었거든. 누가 널 집주인에게 선물한 거야? 말해봐. 그 인간이 누구였니? 이제부터 네 이름은 럭키다.
럭키야, 올해 크리스마스는 지상에서 보낼 수 있을 거야.
노인네 눈깔에 이 꾸덕한 손가락을 쑤셔 넣기만 하면…… 비루한 마가린의 삶에도 마침내 단칼의 행운이 찾아오리라.
월요일
팝콘 회사가 전화를 받지 않는다.
배달 크루의 수기
다섯 번째 체크 포인트를 지나자, 곳곳에서 중도 포기를 선언하는 초인종 소리가 들려왔다. 러닝 벨트에 꽂아놓은 클립형 버튼을 누르는 순간, 배달의 의무는 종료되며 크루에서 자동 탈락할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불안한 초인종 소리를 내는 이 버튼을 절대 누를 생각이 없었다. 풀코스 배달 완주는 나의 유일한 꿈이었기 때문이다. 결승선을 통과하기만 한다면, 그리하여 상자를 열 수만 있다면, 내가 42.195km를 달려온 이유를 깨닫게 될 것이다. 물건은 상자의 심장처럼 달리기의 리듬에 맞춰 두근대고 있었다. 애당초 그것이 무엇이든, 내가 배달 중인 상자 속 물건은 결국 영광의 메달이 될 것이었다.
프로 대회는 처음이었기에, 배달 품목이 변경될 수도 있다는 규정은 생소하게 느껴졌다. 품목이 변경된 크루들은 급수대에서 대기 중이던 진행 요원에게 또 다른 상자를 건네받았다. 진행 요원들은 산타클로스처럼 상자로 가득 찬 자루를 쥐고 있었다. 길에서 전단을 나눠주는 사람처럼, 그들은 아무나 붙잡고 갑자기 상자를 건넸다. 아무 상자나 건네받은 크루는 여태껏 들고 뛰던 상자를 내팽개치고 앞으로만 달려나갔다. 나는 발에 채는 상자들과 생수통을 피해 달려야만 했다.
남은 생수를 정수리에 쏟아부으며 잠시 걷고 있을 때, 진행 요원 하나가 내 팔뚝을 붙잡아왔다. 품목 변경이요. 나는 러닝 벨트에 단단히 매달아뒀던 상자를 내밀었다. 진행 요원은 난감하다는 듯 하늘을 가리켰다. 육교 너머로 헬리콥터 한 대가 낮게 날아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프로펠러가 일으킨 거센 바람으로 빈 생수통들이 마구 굴러다녔다. 양손으로 귀를 막은 배달 크루들이 생수통을 뻥뻥 차면서 나를 지나쳐갔다.
이제부터는 선생님이 배달되시는 거예요.
네 개의 로프를 길게 늘어뜨린 헬리콥터에는 대형 기저귀 같은 것이 연결되어 있었다. 나를 둘러싼 진행 요원들은 어서 저 기저귀에 올라타라는 듯 다급하게 소리쳤다. 나는 기저귀를 차듯 엉겁결에 그 안으로 두 다리를 끼워 넣었다. 생각보다 방석이 푹신했다. 그러자 착륙하지도 않은 헬리콥터가 다시 공중으로 붕 떠올랐다.
그리고 나는 배달되기 시작했다.
배달 크루는 나인데, 내가 왜 배달되고 있는가?
이건 반칙이 아닌가?
헬리콥터가 저공비행을 이어갔다.
풀코스 배달의 꿈을 향해, 수많은 배달 크루가 연어 떼처럼 빽빽하게 나아가고 있었다.
정정당당하게 승부하고 싶었는데.
잘 들리지도 않는 야유가 계속되었다.
나를 손가락질하며 초인종 버튼을 집어던지는 크루도 보았다.
나는 공포의 회전 그네를 탄 듯 급격히 중심을 잃고 흔들리고 있었다.
위험천만한 비행을 견디느라 멀미가 났다.
버드 스트라이크처럼, 건물이나 육교에 정면충돌해 언제라도 짜부라질 수 있었다.
고글은 진작에 날아갔다.
공중에서 토하면 누군가는 그걸 뒤집어쓰겠지?
사무실에서 일하던 사람들이 통창에 다닥다닥 붙어 나를 구경하는 중이었다.
식은땀이 싸늘하게 말라가는 것을 느끼며, 나는 미지근한 물을 꼴깍 삼켰다.
제대로 본 게 맞다면, 헬리콥터는 여덟 번째 체크 포인트를 지나치고 있었다.
몇몇 배달 크루들이 하늘을 향해 손가락으로 욕지거리를 해댔다.
넘어지는 크루가 보였다.
저 멀리, 붉은색 풍선 아치로 세운 결승선이 보였다.
나는 드론을 든 서커스 단원이라도 된 것 같았다.
헬리콥터의 조도가 서서히 낮아지고 있었다.
지상은 함성과 욕설로 난장판이었다.
배달 크루들은 공중에 생수병을 던지며 발아래로 모여들고 있었다.
결승선을 목전에 둔 헬리콥터는 움직이지 않은 채 떠 있었다.
이빨로 여러 번 시도한 끝에야 상자가 찢어졌다.
그 안의 물건은 그대로 추락했다.
이루지 못할 꿈을 포기하기 위해, 나는 항복하듯 초인종 버튼을 눌러댔다. 버튼을 열두 번쯤 눌렀을 때, 로프가 동아줄처럼 수직으로 감겨 올라가기 시작했다. 헬리콥터의 문을 열고 튀어나온 누군가 내게 손을 뻗어왔다. 그 사람은 내 팔을 가뿐히 끌어당기더니, 구조대원처럼 나를 번쩍 들어 올려 조수석에 태운 후 출입문을 닫았다. 나를 헬리콥터 내부로 배달한 크루였다. 배달이 완료된 나에게 즉시 안전 벨트가 채워졌다. 그는 상공으로 퇴근하듯 힘껏 조종 레버를 당겼다. 떠들썩하던 세상이 순식간에 느려졌다. 멀리서 내려다본 세상은 건축 모형처럼 오밀조밀했다.
그날 이후 나의 배달 의무는 종료되었고, 나는 크루에서 자동 탈락했다. 나는 헬리콥터의 전면 유리에 비치던 그와 나의 모습을 기억한다. 당장 뛰어내리고 싶을 정도로 새파랗던 하늘도. 그가 씌워준 노이즈 캔슬링 헤드폰에서 흐르던 노래는 내가 아는 노래였다. 꿈을 버렸던 날, 나는 모르는 사람과 하염없이 날아올랐다. 그것이 우리의 첫 만남이었다.
위지영
음악을 만들고 소설을 쓴다. 사운드 픽션 『4‘44"』 『여성×전기×음악』(공저)와 앨범 ’Accept All Cookies‘ 등을 펴냈다.
일요일 오후, 사이먼 앤 가펑클의 〈험한 세상의 다리가 되어〉를 피아노로 연주하며 노래할 수 있는 조용한 삶이 내게 허락되기를. 그런 먼 일요일의 게임을 기다린다.
2026/08/05
80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