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상도 높은 장면
표면 연습
기억 속의 게임을 찾아 헤맨 적이 있으신가요? 게임을 둘러싼 경험을 더듬다 보면 게임이 단순히 화면 안에서 진행되는 게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죠. 때로는 텍스트와 사운드만으로도 장면과 인물, 관계와 공간이 출현하고 사건이 발생합니다. 이번 호에서 김영주와 위지영은 '텍스트-게임'을 공통의 출발점으로 삼아 서로 다른 방향으로 글쓰기를 전개했습니다. 위지영이 만든 필드 레코딩 기반의 사운드를 게임의 청각적 환경으로 삼아, 김영주는 사라진 게임에 대한 기억을 프롬프트와 증언을 통해 복원합니다. 위지영은 게임 플레이를 사운드와 중첩시켜 게임(혹은 꿈)에 몰입한 나머지 자신과 픽션의 경계를 잃어버린 인물들을 그려냅니다. 게임이라는 인터페이스와 그것을 둘러싼 경험의 여러 층위를 가로지르는 두 사람의 작업은, 게임을 플레이하는 경험 역시 기억과 상상, 추측과 해석이 얽히며 세계를 읽고 써나가는 문학의 작동 방식과 맞닿아 있음을 보여줍니다.
두 개의 복원 경로가 선택되었습니다. 복원하시겠습니까?
[복원 경로 a] 게임의 한 장면
사용자의 구술 데이터를 기반으로 유실된 게임의 특정 공간을 실시간으로 복원하는 과정입니다.
그 게임의 공간을 구현해봐.
벽 색깔이 왜 이래. 사용자 기억 40퍼센트, 다른 플레이어 언급 30퍼센트, 동시대 게임 레퍼런스 20퍼센트로 구성했네. 이런 식으로 평균 내버리면 당연히 내가 기억하는 장면하고 달라지지. 다른 사람들이 언급한 건 옆으로 치워두고 일단 내 기억을 우선순위로 둬. 다른 레퍼런스들은 나중에 정말 비는 데가 있을 때만 쓰자. 지금은 그냥 흔한 옛날 게임처럼 보이잖아. 이 게임은 좀 많이 이상했었다고. 서랍이 이 정도 컸던 것 같아. 문처럼 보이지만 문은 아니야. 서랍에 손잡이가 있네. 이 모양은 내가 최근에 저장한 이미지에서 참고한 거 아냐? 그런 거 빼. 지금 내 상황을 참조하지 말라고. 내가 원하는 건 내 취향을 반영한 장면이 아니라 그때 있었던 것 같은 장면이야. 아 잠깐만, 이 사람 또 연락 왔네. 내일 내가 직접 가서 해결해줘야겠지? 사람이 와야 해결될 거라고 믿는 부류야.
내가 직접 가겠다고 답장 보내줘. 내가 직접 쓴 것처럼 써야 돼.
지금 버전은 창고 같은데 좀 더 일반적인 방의 느낌이었으면 좋겠어. 바닥이랑 벽이 만나는 경계선이 딱 맞지 않고 조금씩 어긋났던 것 같아. 검은 틈새에서 바람소리가 새어 들어왔어. 당시에 내 컴퓨터 사양이 낮아서 그런 건지 모르겠는데 텍스처가 깨지고 프레임이 밀리던 감각이 있었어. 너무 무섭게 만들지는 말고. 공포 장르처럼 몰아가지 말라고. 내 묘사에 의미를 넣지 말고 그냥 상태만 복원하는 게 중요해. 다른 사람들은 저쪽으로 이동했대? 글쎄. 그래야 다음 단계로 갔었는지, 그렇게 플레이하면 안 되는 거였는지는 기억 안 나. 아무튼 저쪽에도 문은 없었어. 가만히 있으면? 갑자기 이 방 전체가 외부 공간처럼 열렸어. 벽은 그대로 있는데 뭔가 벽이 투명하게 느껴진다고 해야 하나? 그렇다고 투명하다는 얘긴 아냐. 공간이 겹친 것 같았어. 방에 있는데도 길 한복판에 있는 느낌? 공간이 갑자기 외부로 열린 것처럼. 하지만 동시에 내부는 안전하게 닫혀있는 느낌이 들기도 했어. 닫힌 공간과 열린 공간을 넘나들 수 있었는데 그 사이에 다른 무언가가 자리 잡고 있는 것 같아서 불안했는지도 몰라.
길거리를 만들고 그 위에 방을 겹쳐봐.
이건 무슨 상황이야? 다른 플레이어들이 많이 언급한 건 알겠어. 네가 찾아낸 자료에도 있었네. 근데 나는 그게 확실하지가 않아. 그래도 빼진 말아봐. 지금 만든 거리는 내가 살고 있는 여기랑 비슷한데. 아니야. 느낌은 그 당시에 내가 살았던 동네하고 차라리 가까워. 이십 년 전에.
그 당시에 내가 살던 곳 거리뷰를 보여줘.
좋아. 기억난다. 내가 저쪽에 살았었어. 그날 찍힌 거라고? 그럼 이게 마지막 모습이었겠네. 저기가 우리집이었어. 저 창문. 삼각형 방에 있던 창문. 어 맞어. 지금 우리집 화분이랑 비슷해. 비슷한 게 보이길래 샀어.
이 거리의 분위기를 추상화해서 게임 장면에 넣어봐. 디테일은 빼고 분위기만 가져와줘.
거리 한복판. 거기 겹쳐서 방이 있고. 벽도 있고 엄청 큰 서랍도. 나는 여기 있고. 좋아. 일단 내가 한 번 움직여볼게. 게임 안의 장면을 복원해야 하는 건데 자꾸 내가 그때 게임을 했던 자리가 떠올라. 해 질 무렵에 내 방에 내 책상 앞에 앉아 있는. 좀 더웠는데 바람이 불어서 펄럭이는 커튼이 얼굴에 닿았어. 벨소리가 울렸던 것 같아. 근데 게임이었는지 실제 우리집 벨소리였는지 헷갈려. 그때 누군가 왔었던가. 모르겠어. 이 장면에서 내가 확신할 수 있는 건 서랍뿐이야. 그걸 열어봤는지 기억이 안 나. 서랍 안에는 뭐가 있었을까? 뭐였는지 너무 궁금하네.
서랍을 열어. 네가 한번 채워봐. 뭐든.
이게 뭔데. 열면 이렇게 전부 밀려나는 구조라고? 다시 닫아도 원래대로 안 돌아가네. 너무 이상해. 그때 나는 이걸 열지 않았나 봐. 무서워서 못 열었던 것 같아. 일단 이런 식으로 저기까지 가볼게. 천천히 가보는 거야. 나는 재빠른 플레이어는 아니었어. 주변에 있는 모든 걸 다 체크하는 타입이었지. 특히 이 게임에서는 지나치면 다시는 볼 수 없는 것들이 있을지도 몰라. 멈출 때마다 공간이 조금씩 달라 보였어. 멀어질수록 방 안에 있는 것 같았고, 다시 돌아보면 길 위에 있는 것 같았어. 거의 이해할 것 같은데 또 바뀐다. 좀 슬프네. 왜지?
왜 이런 기분이 드는지 설명해줄 수 있어?
[복원 경로 b] 아카이브 포럼의 게시글
유실된 게임을 추적하는 포럼에 업로드된 증언입니다.
표면 연습
지난해 후속 운용이 중단된 탐사선이 마지막으로 우주에서 전송해온 정보가 무엇이었는지는 여전히 분명하지 않다. 올해 초 폭격 이후 사실상 폐쇄된 연구센터의 인공지능이 그 데이터를 이렇게 해석했다는 것이 알려졌을 뿐이다.
“이 명명되지 않은 물리적 전이를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가장 근접한 표현은 죽음 이후이다.”
정부는 문장의 진위를 공식적으로 밝히지 않았고, 과장된 해석을 경계했다. 이후 유출된 자료에 근거하면 문장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을 가능성도 있다. 인공지능은 죽음에 대한 이해를 인간에게 설명하기 위해 비디오 게임을 인터페이스로 선택했다. 죽음이라는 것이 다른 방식으로는 인간의 이해에 도달할 수 없고, 반복과 유예를 통해 오직 거쳐 가는 방식으로만 이해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일부 연구자들은 ‘Thanatological Interface 0’이라고 불리는 이 게임을 분명 경험했지만, 그들이 쏟아낸 수식들은 대중에게 아무것도 설명하지 못했다. 사람들은 게임을 공개하라고 요구했지만 정부는 응답하지 않았다.
죽음을 구현한 게임에 대한 관심이 폭발한 결정적인 계기는 익명의 글이었다. 연구센터의 인공지능이 만든 게임을 경험했다고 밝힌 누군가는 이 게임을 오래전에 이미 해본 적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했다. 그는 장면 몇 가지를 적었다. 그러자 자신도 그 게임을 안다고, 그 장면을 정확히 기억한다는 사람들의 반응이 뒤따랐다. 어떻게 이십여 년 전에 만들어진 게임이 지금 인공지능이 죽음을 설명하기 위해 설계한 게임과 닮아 있을 수 있는가. 그렇게 잠시 배포되었다가 사라진 게임에 대한 추적이 시작됐다.
문제는 그 게임이 로스트 미디어로서 남아 있는 자료가 거의 없다는 점이었다. 실행 파일은 남아 있지 않았고, 플레이 영상도 훼손되어 검은 화면뿐이라고 했다. 지금까지 발굴된 것은 몇 개의 플레이 기록에 불과하다. 게임을 만든 사람이 정치적 검열의 희생자였다느니 의문의 죽음을 맞았다느니 하는 말까지 더해지면서 소문은 빠르게 확산됐다. 사람들은 사라진 게임 안에 무언가가 있었다고 믿기 시작했다.
당시의 플레이어들은 그 게임이 죽음에 대한 것이었다는 것을 상상할 수 없었을 것이다. 사람들의 증언에서도 그 게임은 그저 난해하고 이상한 작품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사정이 달랐다. 남아 있는 사운드 기록에 기반한 스크립트, 짧은 감상이 적힌 텍스트들, 저마다 어렴풋하게 떠올리는 기억이 쌓이면서 사람들은 그 게임을 복원하기 시작했다. 각자가 사용하는 인공지능에 자료를 제공하고 자신이 기억하는 장면을 덧붙여 새로운 버전을 만들었다. 하지만 저마다 떠올린 공간의 특징이 달랐고, 플레이 타임에도 편차가 컸다. 어떤 복원판이 오리지널에 가까운지에 대한 논쟁이 뒤따랐다. 제목은 더 심했다. 어떤 사람은 ‘Exercises on Surface’로 기억했고, 또 다른 사람은 ‘Dark Surface’라고 주장했다. 그러다 ‘Dark Surface’는 자료가 남아 있어서, 다른 게임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사람들은 자기가 기억하는 게임이 정말 그 게임이 맞는지, 서로 다른 게임들의 기억을 섞어서 하나의 게임처럼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했다.
지난달 플레이엑스사는 출처가 불분명한 원본 파일을 입수했다며, ‘Exercises on Surface: Last Understanding’이라는 이름으로 게임을 재발매했다. 오리지널 게임의 제작자가 오래전 플레이엑스의 직원이었으며, 그의 천재적인 실험들을 시리즈로 내놓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게임은 단기간에 엄청난 판매고를 올렸지만, 열기는 오래가지 않았다. 오리지널 게임을 해보았다고 주장하던 사람들이 기억과는 다르다고 항의하기 시작했다. 장면도, 분위기도 맞지 않을뿐더러 게임의 목표도 달랐다고 분석했다. 더군다나 새로운 사실이 드러났다. 게임의 제작자는 차별과 혐오를 반대하는 상징이었던 수박을 지지했다는 이유로 플레이엑스에서 해고되었던 것이다. 당시 인기 게임의 캐릭터였던 커맨더 딤의 성기 부분에 총을 조준하면 수박이 발사되는 것으로, 당시에는 수박 버그 사건으로 유명했다. 해고한 직원을 홍보에 사용하다니, 플레이엑스의 주가는 서서히 하락하고 있다.
해고된 이후 게임 제작자에게 끔찍한 사이버불링과 협박이 이어졌고, 결국 그가 새 직장을 찾지 못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그때부터 그는 익명으로 자신이 만든 게임을 공유하고 방송을 하기 시작했다. 얼굴도 목소리도 나오지 않았지만 그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에게 연대하기 위해 남긴 이메일로 게임 방송 링크가 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가 직접 자신의 게임을 플레이한 방송 파일이 남을 수 있게 되었다. 역시 영상은 없고 사운드뿐이다. 이 파일이 특별한 이유는 만든 사람이 직접 플레이한 기록이기 때문에 그의 의도대로 플레이되었을 것이라는 점이다.
그는 플레이 중에 말을 하지 않았지만 마이크는 켜두었다. 그래서 여기에 공개하는 파일에도 게임의 사운드와 그의 공간에서 들리는 소리가 섞여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때 사람들은 채팅창에서 떠들고 있었다.
사람들이 거의 동시에 비슷한 장면을 말하고 있었다. 모두가 무언가를 보고 있는 것처럼 말했다.문 열렸다.
아니 안 열림.
방금 그 소리 들었냐.
복도 끝에 뭐 있는 거 같은데.
돌아가지 마.
아니지 여기서는 돌아가야 됨.
나는 게임 실행 파일을 먼저 받아두지 않았던 것을 후회한다. 나는 플레이를 방송하고 있는 그가 어느 장소, 어느 시간대에 있는지 알지 못했다. 엄청난 폭발음이 들리고 동시에 방송이 중단되기 전까지는 우리가 같은 도시에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폭발음은 기록되지 않았지만 이 파일의 끝에서 나는 항상 그 폭발음을 듣는다. 세상의 모든 소리가 한꺼번에 소거되던 찰나의 정적을 듣는다. 나는 살아남았고 그는 그러지 못했다. 그날은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전쟁의 시작점이었고, 사람들은 이제 죽음을 이해하고자 그 게임을 복원하려고 한다.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게임이 이 게임이 맞는지도 모르겠지만, 나 역시 죽음을 이해하고 싶다.
마지막 방송은 나 이외에 297명의 시청자가 있었다. 그들이 증언해주리라 믿는다. 그래서 한 가지를 분명히 말해두어야겠다. 처음부터 그 게임에는 이미지가 없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비슷한 장면을 기억해냈다. 그는 이미지를 보여주지 않고 이미지를 남기는 법을 알고 있었다. 당신도 이 파일을 들으면서 그 게임을 상상해보기를 바란다. 이것을 듣는 동안 당신은 몇 개의 공간을 지나치게 될 것이다. 어떤 사람은 계단을 내려갔다고 말할 것이고, 어떤 사람은 문이 열렸다고, 또 다른 사람은 끝내 열리지 않았다고 말하게 될 것이다. 그러니 당신이 곧 보게 될 것들은 본 것이 아니다. 이 게임이 당신 안에 남긴 것들이다. 눈앞에 나타나는 대신, 지나간 뒤에야 분명한 장면을 남기는 방식으로.
*첨부 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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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주
룹앤테일에서 조호연과 함께 활동하며, 비디오 게임, 인터랙티브 설치, 공동창작 워크숍을 통해 연대의 감각이란 무엇이고 어떻게 얻어질 수 있는지 질문하고 있다. 게임은 인간이 명확한 개념으로 붙잡을 수 없는 어떤 상태를 직접 통과하게 만드는 미디어라고 생각한다.
2026/08/05
80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