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오래전 아버지는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을지로에 건재상을 차렸다. 여러 업체와 계약을 맺고 시멘트며 벽돌 따위를 전국 각지의 현장으로 보내주는 일을 했는데, 지금도 별반 다르지 않겠지만 건설업이라는 게 대부분 후결제 방식으로 일이 이뤄지다보니 미수금 문제를 겪을 때가 종종 있었다. 건축주가 제때 자금을 풀지 않으면 건설사가 하도급 업체에 밀린 대금을 지급하지 못했고, 그러면 아버지가 고스란히 손해를 떠안는 구조였다. 게다가 일반 상거래에서 발생하는 미수금에는 이른바 ‘소멸 시효’라는 게 있어서 거래 후 삼 년이 지나면 법적으로도 회수할 도리가 없어지고 마는 문제가 있었다. 그런 이유인지는 몰라도 어린 시절부터 나는 아버지가 전화기를 붙들고 거래처 상대에게 읍소하는 장면을 보곤 했다. 보이지도 않는 사람을 향해 허리를 굽히고 울먹이는 목소리로 사정하는 아버지. 내가 이해할 수 없었던 건 돈을 받아야 하는 쪽은 아버지인데도 불구하고 과하다 싶을 정도로 굽실거리는 그의 태도였다. 잘못은 저들이 했는데 왜 우리 쪽에서 우는소리를 하고 또 곧 중학교에 들어갈 나를 들먹이는지. 더욱 의아했던 건 아버지가 어렵사리 전화를 끊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근엄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더라는 사실이다. 보았느냐, 세상살이가 이렇다, 돈을 벌어 가족을 건사하는 게 이렇게나 고역스러운 것이다. 오직 나를 위해 그런 굴욕을 감내하고 있다는 듯한 아버지에게 내가 보여야 마땅한 반응은 무엇이었을까. 그게 무엇이든 당시 내가 느낀 감정은 감사함이나 존경심보다는 창피함에 가까운 것이었다.
  내가 중학교를 졸업하기 전 아버지는 호형호제하던 골재상 사장에게 연대보증을 서주었고, 바로 그 일로 인해 우리집은 망했다. 창고에 쌓여 있던 자재를 헐값에 넘긴 다음 건재상을 정리하고 승용차와 트럭을 팔았는데도 집에 압류 딱지가 붙는 것을 막지 못했다. 아버지가 떠안은 빚은 내가 살면서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액수였다. 어머니는 곧장 장충동의 대형 호텔 세탁부에 취직해 매일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일했다. 어머니는 유일한 휴일인 일요일 저녁마다 커다란 들통에 미역국을 한가득 끓여놓았다. 그러면 아버지와 나는 매일 그것으로 끼니를 해결했다. 나야 하루 중 한끼는 학교에서 급식을 먹는다고 하지만 아버지는 정말로 매끼 미역국만 먹었다. 애당초 미각이라는 게 없었다는 사람처럼 물려 하지도 않고 맹물을 떠먹듯 국을 훌훌 먹었다. 그런 걸 나름의 속죄라고 생각했던 걸까. 빈 그릇을 물로 헹궈 널어놓은 다음 아버지가 한 일은 건재상에서 쓰던 낡은 장부를 뒤적이는 것이었다. 아버지는 끝내 외상값을 받아내지 못한 채 소멸 시효를 넘기고 만 업체들의 연락처를 찾아 전화를 걸었다. 당신들이 제때 미수금만 갚았어도 내가 이렇게 되진 않았다, 이게 다 네놈들 때문이다, 개 같은 새끼들아, 내 돈 떼먹고 너희가 얼마나 잘될 것 같냐? 전화기를 붙든 채 망하라며 저주를 퍼붓는 아버지가 나는 부끄러웠다. 굳이 따지자면 아버지를 망하게 한 건 저들이 아니라 당신이 그토록 믿고 따르던 골재상 사장인데 왜 그에게 할 수 없는 말을 저들에겐 하는지. 그때는 하지도 않았고 할 생각도 없던 말을 왜 이제야 하는 건지. 소멸시효는 이미 한참 전에 지나버렸는데 아버지의 분노는 왜 여전한 건지……
  나는 아버지처럼 되고 싶지 않았다. 주기적으로 무언가를 떼이며 전전긍긍하는 점도 그랬지만, 따져야 하는 사람에겐 쩔쩔매고 괜히 애꿎은 사람들에게 화풀이하며 그들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다. 철 지난 분노보다는 제때 정확한 요구를 하는 사람이 되길 바랐다. 좋은 걸 좋은 때에 좋다고, 나쁜 걸 나쁜 때에 나쁘다고 말하는 사람. 안타깝게도 아버지는 끝끝내 그러지 못했다.

물론, 골재상 사장에 대해서라면 아버지는 내내 우호적인 태도를 견지했다. 한번은 미역국을 안주로 놓고 소주를 마시던 아버지가 오래전 두 사람이 함께 청평으로 붕어 낚시를 다녀온 일에 대해 말해준 적이 있었다. 토요일 새벽부터 함께 차를 타고 길을 나섰는데, 지방도로에서 신호를 받고 정차해 있는 동안 두 사람은 ‘목격자를 찾습니다’라고 적힌 현수막을 발견했다. 치매에 걸린 어머니가 집을 나가버렸다는 설명 옆엔 분홍색 점퍼를 걸친 나이든 여자의 사진이 인쇄돼 있었다. 아버지는 운전을 하느라 미처 신경쓰지 못했지만, 조수석에 앉은 골재상 사장은 그걸 유심히 읽더라고 했다.
  “저수지에 가서도 형님은 도통 찌를 쳐다보질 못하더구나. 뚝방길에 누가 지나가기라도 하면 보면 그 치매 걸린 할머니가 맞는가 아닌가 기웃대느라 붕어가 미끼를 물었는데도 신경을 안 쓰는 거야. 낚싯대를 들어올리기만 하면 손바닥만한 붕어가 딸려나오는 곳이었는데도 말이다, 그날 형님은 납자루 한 마리조차 건져내질 못했지. 알겠냐? 그 형님이 원래 그런 사람이다. 남들에게 마음을 쓰느라 생전 자기 걸 챙겨본 적이 없는 사람이야. 내가 처음 가게를 차렸을 때도 그랬어. 자기가 아는 거래처를 내게 연결해주고, 트럭을 빌려주고, 내가 차를 쓰는 바람에 그 형님이 쇄석을 현장에 배달하지 못했던 적도 있었지. 너, 요즘 같은 세상에 그런 일이 어디 쉬운 줄 아냐? 그런 사람은 없다. 응, 없지. 없고말고.”
  아버지는 국그릇에 달라붙은 미역 조각을 숟가락으로 닥닥 긁으며 한참 침묵하다가 느릿느릿 입을 열었다.
  “……나는 형님을 믿는다.”
  가게 문을 닫고 잠적했던 골재상 사장은 일 년쯤 지나 두 사람이 낚시를 갔던 청평의 저수지에서 물에 퉁퉁 불은 시신으로 발견됐다. 타살 혐의점은 없었다. 보증기관에선 원 채무자가 사망하더라도 연대보증인의 채무상환 의무는 사라지지 않는다고 했다. 어머니는 세탁부 출근을 그만두지 못했고, 어느 날부터는 집으로 돌아오는 것을 그만두었다. 청소 근무자 휴게실에서 먹고 자며 틈틈이 내게 연락해 아버지의 안부를 챙기면서도 말끝마다 아버지를 원망했다. 아버지의 믿음은 대체 무엇이 되어버렸나. 장례식장에 다녀온 뒤로 아버지는 더이상 믿음 같은 단어를 입에 올리지 않았다. 가장의 지난함을 내게 증명하려 들지도 않았다. 다만 그는 전에 알던 거래처 사장이 알선해준 현장에서 허리가 부서지도록 일용직을 뛰었을 뿐이다.

그러니까 벌써 이십 년도 훌쩍 지난 이야기를 택시 안에서 권영오에게 죄 들려준 이유가 다 무엇이었겠나.
  설 연휴를 앞두고 가진 사업팀 전체 회식 자리가 전에 없이 길어져 전철도 버스도 모두 끊긴 시각이었다. 택시 두 대를 잡아 팀장과 차장을 차례로 태워 보내고 남은 사람들끼리 무엇을 할지, 볼링장에 갈지 노래방에 갈지 고민하던 즈음 인턴 권영오가 대뜸 집까지 걸어가겠다며 손을 들었다. 누가 봐도 취기를 빌려 객기를 부리는 모양새였다. 2월이라곤 했으나 아직 영하권의 날씨였다. 그대로 집에 보냈다간 무슨 일이 나도 나겠지 싶어 지나가는 택시를 잡아 그를 태우고 나도 옆자리에 앉았다.
  “같이 가요, 집까지 데려다줄 테니까.”
  그때는 권영오가 정규직 전환형 인턴으로 들어온 지 이제 막 한 달을 넘긴 시점이었다. 간단한 업무 지시를 제외하면 그와 단둘이서 이야기를 나눠본 적은 전무하다시피 했으므로 나는 이 상황이 꽤 어색했다. 나도 이럴진대 권영오라고 다르진 않았을 것이다. 단지 상사들이 따라주는 술을 넙죽넙죽 받아먹고 취해버린 그가 택시에서조차 긴장을 유지하려 애쓰는 모습이 안쓰러운 나머지 “괜찮아요?” 하고 물었을 뿐이었는데, 그게 발단이 되어 그의 집으로 향하는 삼십 분 남짓 시간 동안 우리는 꽤 많은 대화를 나눴다. 일은 할만한지, 사람들은 괜찮은지를 묻고 답하던 우리는 어느새 사무실 구성원 개개인에 관한 것으로 화제를 좁혔다. 그중에서도 4년 차 대리이자 권영오의 담당 멘토인 H에 대해서는 좀더 길고 자세하게 이야기했다. 그로서도 남들보다 아는 바가 한 뼘쯤은 더 있겠지 싶었다. 택시를 잡는 동안 함께 차도까지 나와 손을 흔들어준 것도 H가 유일했고. 그녀가 매사에 싹싹하고 밝고, 그러면서 맡은 일은 야무지게 해내는 모습이 보기 좋다는 말에 권영오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H님은 너무…… 너무 좋죠.” 올림픽대로를 달리는 동안 나는 권영오에게 뭐 대단한 사람들을 롤모델로 삼기 이전에 H 같은 사람을 보고 배워야 한다고, 그러는 편이 나중의 회사생활에도 도움이 될 거라고 조언했다. 이미 다 아는 이야기인데도 기억에 새기겠다는 듯 눈을 빛내는 권영오를 보다가 문득 장난기가 들기도 했다.
  “그런데 영오씨, 나한테는 솔직히 얘기해도 돼요.”
  “네? 뭘요?”
  “H 말이에요, 그 친구한테 호감 같은 거 가져본 적 없어요?”
  그때에도 지금도 나는 사내 연애에 관해 별다른 의견은 없는 편이다. 각자가 맡은 업무에만 지장을 주지 않는다면 누가 누구와 만나든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식의 막연한 생각 정도뿐이고. 그때 내가 상정한 권영오의 반응 역시 아니다, 놀리지 말아라, H는 좋은 선배이니 앞으로도 잘 따르고 배우겠다는 식의 뻔한 말들에 불과했다. 에이, 아닌 게 아닌 것 같은데? 하며 장난도 치고 너스레도 떨고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분위기도 풀릴 거라고 기대했었다.
  “아…… 네, 뭐…… 솔직히 없진 않죠.”
  그랬으므로 나는 착잡하게 속마음을 털어놓는 권영오 본인보다 내심 더 당황하고 말았다. 대체 언제부터였냐, 어디가 어떻게 좋은 거냐 캐 물어야 할까, 우선 그가 무안해하지 않도록 태연하게 반응해야 했지만 달리 떠오르는 말도 없었고, 그래서 나는 창밖으로 펼쳐지는 한강을 내다보며 “그렇구나, 음, 아무래도 매일 보는 사이니까 그렇게 될 수도 있겠지…… H가 또, 뭐, 참 괜찮은 친구니까……” 하고 중얼거렸다. 그러다 기껏 뭐라도 떠올려서 말한다는 게 바로 내 아버지에 대한 것이었다. 강 건너의 어딘가를 무작정 손으로 가리키며 “을지로가 저쪽인가? 원래 을지로 3가인가 4가인가에 우리 아버지 가게가 있었거든요” 하는 식으로. 끝내 아버지가 개인회생으로 빚을 어느 정도 탕감받았고, 그럼에도 남은 빚을 내가 대신 갚느라 여태 모아둔 돈도 없다고 말한 후에는 다만 뭐라도 덧붙이는 게 낫겠다는 생각에 “그러니까 영오씨,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항상 제때 말하도록 해요. 나중에 말해봤자 꼴사납기만 하거든. 이게 진짜로 그렇더라고” 같은 말을 주절주절 늘어놓고 말았다.


2
꼭 그날의 대화 때문은 아니겠지만, 이후로 나는 권영오를 평소보다 아주 조금 더 유심히 지켜보았다. 그러면서 새삼 다시 깨닫게 된 것도 더러 있었는데, 바로 그가 훤칠한 외모만큼이나 매끈하게 잘 닦인 예절의 소유자라는 사실이었다. 아직 이십대 후반도 채 안 된 친구가 어디서 이런 걸 다 배워 왔을까 생각이 들 정도였다. 여럿이서 차를 탈 때 상석의 위치를 정확하게 파악해 상급자에게 안내한다든가 식당에 가면 자연스럽게 냅킨과 수저통이 놓인 쪽 자리에 앉는 등, 별것 아니지만 의외로 사람들이 종종 놓치는 것들을 그는 정확히 숙지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그는 주도(酒道)에 대한 이해가 동년배의 사원이나 대리급보다 뛰어났다. 술병을 파지하는 방법과 술을 받을 때 잔을 기울이는 각도, 술을 따라주면 잔을 테이블에 곧장 내리지 않고 잔 끝에 입술을 살짝 대는 것까지, 물 흐르듯 이어지는 동작엔 조금의 흠잡을 구석도 없었다. 그게 또 필요 이상으로 과한 것도 아니라서 마주 앉은 사람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지도 않았으며 외려 어떤 경탄 같은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잘 배웠다, 누구한테 배웠는지는 몰라도 참 잘 배웠네.” 언젠가 회사 앞 닭한마리집에서 K차장이 큰 소리로 권영오를 칭찬한 적도 있었다.
  몇몇만 그렇게 생각한 것도 아니었는지 권영오가 없는 자리에서 그의 출신 성분이나 성장 배경을 짐작하며 떠드는 사람들을 본 적도 여러 번이었다. 행동거지가 저렇게 반듯한 데엔 나름의 이유가 있지 않겠느냐는 것인데, 직업군인이나 경찰 출신이라는 등 그럴싸한 추측에서 점점 비약이 더해지더니 나중엔 아버지가 대기업 CEO라느니 재벌 3세라느니 하는 말까지 나왔다. 닭한마리집에서 평상에 오르느라 신발을 벗는 동안 권영오의 구두 안창에 찍힌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의 로고를 봤다는 사람도 있었다. “사람들이 잘 모르는데, 그게 진짜 올드머니들이 애용하는 브랜드거든.”
  “과장님은요? 뭐 아는 거 없어요?”
  그러다 누군가가 내게 권영오에 대해 질문하는 적도 있었는데, 그때마다 나는 사람들에 동조하며 의견을 보태기보다는 관망하는 쪽을 선택했다. “나야 뭐, 잘 모르지……” 있지도 않은 사람을 놓고 떠드는 것도 내키지 않았지만, 그보다는 지난 회식 때 권영오를 내려다주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느낀 어떤 수치심이나 모멸감 같은 감정이 자꾸 떠오르는 탓이었다.

살면서 나는 누군가에게 나를 설명할 때마다 어려움을 느꼈다. 붙임성 없는 성격 때문도 있었으나 근본적으로는 사람들이 내 설명을 단번에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탓이었다. 그러고 보면 나는 취미나 취향이랄 것도 딱히 없고 특별히 새로운 무언가를 원하고 쟁취하기보다는 이미 내게 주어진 것, 이미 내게 충분히 익숙한 것을 선호했다. 이를테면 두 끼 연속 같은 음식을 먹어도 그리 물려 하지 않았고, 자취를 시작한 이래 줄곧 한 동네에서만 살았으며, 고장난 가전제품을 바꿀 적에도 더 나은 스펙의 제품 대신 원래 쓰던 것과 동일한 모델을 골랐다. 주말에 혼자서 밥을 먹을 때는 집 근처 한식 뷔페를 즐겨 찾았는데, 거기에 내가 좋아하는 음식이 있어서라기보다는 특별히 먹고 싶은 게 없을 때 고를 수 있는 적당하고 만만한 음식들이 많기 때문이었다. 그간은 그런 내 모습을 일관성이나 항상성 같은 단어로 설명해왔지만, 언제부턴가 그게 가난의 다른 표현은 아닌가 생각하게 될 때가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나에 대해 말할 때마다 사람들은 무성의하게 고개를 끄덕이다가도 문득 그게 뭐냐, 뭐 그런 게 다 있냐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으니까.
  회사 동료는 물론이고 지인의 주선으로 이뤄진 소개팅 자리에서도 그런 일은 빈번하게 일어났다. 마치 이런 사람은 처음 본다는 듯한 얼굴로 나를 쳐다보고, 금세 다른 쪽으로 화제를 돌려버리고, 어느새 내가 모르는 이야기만 줄줄 늘어놓게 되는 게 다 내게서 가난의 냄새를 맡았기 때문은 아니었겠나. 뭐, 아주 이해할 수 없는 일도 아니다. 사람들은 부유함에 대해 아는 척하고 싶은 것 이상으로 가난에 대해 모른 척하고 싶어하는 법이니까.

권영오에 대한 추측 중 일부는 사실이었다. 그가 택시 기사에게 서초구에 있는 고급 주상복합 아파트의 이름을 대는 걸 나도 들었으니까. 가까운 전철역이나 큰 교회 이름을 설명할 필요도 없이 “○○팰리스로 가주세요”라고 말하는 모습이 기억에 남았다. 권영오에겐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을 남들도 모르지 않으리라는 은은한 확신 같은 것이 엿보였는데, 과하게 겸손을 떨거나 으스대는 대신 담담하게 드러내고 인정하는 태도를 유지했다. 이를테면 “어유, 좋은 데 사시네요”라는 택시 기사의 말에 “감사합니다”라고 대답하는 식이었다.
  그에 반해 내가 사는 빌라로 돌아가는 길은 어땠나. 외대와 의릉 사이의 고갯길에서 샛길로 빠지고도 골목을 이리저리 꺾어 들어가야 했다. 길이 좁고 불법 주정차 된 차들도 많아 한번 길을 잘못 들면 차를 돌려 나오기도 어려웠고, 심지어 빌라 이름도 흔해 빠져서 택시 기사가 내비게이션에 검색을 하니 똑같은 이름의 건물이 스무 개도 넘었다.
  “어디가 어딘지 하나도 모르겠는데. 일단 외대 쪽으로 갈 테니까 근처에서 길 좀 알려줘요.”
  어찌저찌 골목에 진입하고 나서도 그는 어귀를 한참 동안 헤맸다. 어린이집 앞의 음식물 쓰레기 수거함을 끼고 좌회전하면 재가요양센터가 하나 나오고, 거길 지나 다음 블록에서 우회전하면 빌라가 나온다는 설명을 좀처럼 알아듣지 못했다. 전에는 본 적도 없는 일방통행 길을 맞닥뜨린다거나 웬 콘크리트 벽이 나오기까지 했으므로 어느 순간부터는 나도 여기가 어딘지, 이미 내가 사는 곳을 넘어 다른 동으로 가버린 건 아닌가 헷갈렸다.
  “하, 별 거지 같은 동네가 다 있네.”
  그러나 감추려는 기색도 없이 들으라는 듯 말하는 택시 기사에게 나는 화가 나기보단 어딘가 미안한 마음이 먼저 들었다. 나름대로 쉽게 설명한다고 했는데, 음식물 쓰레기 수거함이나 재가요양센터 따위는 내게만 익숙한 것이었구나 싶었다. 한편으로 이미 내가 한 것보다 더 나은 설명도 딱히 없다는 사실이 부끄러웠다. 그 근처에 남들이 알 만한 게 뭐가 있더라, 떠올려봤자 네일숍이나 개인 카페, 피아노학원 따위가 전부였다. 참다못한 택시 기사가 편의점 앞에 차를 세우고 담배를 한 갑 사오는 동안에도 미터기에 찍힌 금액은 착실하게 올라가고 있었다. 이윽고 차로 돌아온 그는 담배를 한 개비 꺼내어 입에 물고는 여기서 내려줄 테니 그냥 알아서 걸어가지 않겠느냐고 내게 부탁했다.
  “동네도 동넨데 어쨌든 내가 길눈이 어두운 것도 있을 테니까, 요금은 반만 받을게요.”
  그런 식의 어쭙잖은 호의가 나를 더 초라하게 만들었다는 사실을 그는 알까. 그럼에도
  “네, 뭐. 어쨌든 저도 죄송하게 됐습니다.”
  끝내 나는 그렇게밖에 말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하물며 권영오는 어땠나. 내가 아버지에 대해 말할 때 그는 내 쪽으로 몸을 돌려 경청하는 자세를 유지하려 애썼고, 때때로 “정말요?”라든가 “그러셨구나” 따위 추임새를 넣어가며 정말로 다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엔 단지 H에 대해 대한 마음을 들킨 일 때문에 민망해서 그러는 줄 알았는데 찬바람을 맞으며 집을 찾아 걸어가는 동안엔 그가 정말로 나를 이해하려 노력했으리라고 짐작하게 됐다. 어스름 속에서 빌라가 나타날 무렵 나는 권영오로부터 메시지를 한 통 받았다. 그는 내게 집까지 데려다주셔서 감사하다고, 약소한 마음이라도 보태고 싶다며 모바일 페이로 삼만원을 이체해 보냈다. 명절을 잘 보내시라는 공손한 인사와 이모티콘도 빠지지 않았다. 텍스트에서 술기운이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 게 대단하다 싶었지만, 한편으로는 조금 고까운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지랄, 달에 이백만원도 못 받는 인턴 주제에 누가 누구를 이해한다고. 나도 이해할 수 없는 아버지를, 네가? 웃기는 소리지…… 나는 길가에 쌓여 여러 날 동안 녹지 않은 더러운 눈을 발끝으로 툭툭 건드렸다. 그날 신발과 바지에 마구 튀는 눈 조각을 바라보며 내가 나름대로 내린 결론은 이랬다. 언제나 이해받는 사람은 자기도 남들을 금방 이해할 수 있다고 착각한다고. 그렇지 않은가, 따지고 보면 누군가에 대한 이해라는 것도 상대가 지닌 배경과 맥락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만 가능한 고도의 인지적 과정이다. 그런데 언제나 이해받는 쪽은 그 ‘배경과 맥락’이라는 걸 종종 간과하고 말지 않나. 굳이 노력하지 않아도 남들이 알아서 내가 가진 것, 내가 이룬 것을 헤아려줄 테니까. 문제는 그러는 게 사람을 자꾸만 납작하게 만든다는 사실이다. 밥이 없으면 빵을 먹으면 되고, 돈이 없으면 일을 구하면 되지 않느냐는 식의 발언이 나오는 이유가 다 뭐냐는 말이다. 나는 나를 이해하려 한 권영오가 나쁜 게 아니라, 오히려 나쁜 건 권영오를 그때그때 너무 쉽게 이해해버리고 또 모든 걸 다 좋은 쪽으로만 해석하려 드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다. Y부장, K차장, J대리, 그 밖의 많은 사람들 때문에 내가 지금 이렇게 모욕감을 느끼는 거라고, 나쁘다…… 너희는 정말 나쁜 사람들이다…… 나도 모르는 새 애꿎은 사람들을 내내 원망했었다.

다만, 이런 이야기를 왠지 H에게는 해줘도 될 것 같았다. 그녀에게 사적인 감정이 있었다는 말을 하려는 게 아니다. 그녀는 남들이 권영오에 대해 가타부타 떠들 때 같이 껴서 말을 얹거나 하지도 않았고, 외려 그녀 쪽에서 먼저 “영오씨가 한식을 좋아하더라고요”라는 식으로 교묘하게 화제를 돌리는 걸 보기도 했었으니까. 적어도 내 눈에 그녀는 누군가를 쉽게 이해하고, 단정하고, 그것으로 누군가를 납작하게 만들지 않는 사람 같았다. 무엇보다 권영오 또한 그녀의 그런 모습을 좋아했던 것 아니었겠나. 그래서였나, 언젠가 K차장의 부탁으로 팀원들의 커피를 사러 그녀와 함께 회사 앞의 카페에 간 적이 있었는데, 바깥에 교복을 입고 돌아다니는 학생들을 보다가 자연스럽게 학창 시절에 대해 말하게 됐다. 반드시 말해야겠다고 생각한 건 아니었으므로 고등학교 때 급식비를 내지 못해 학교에 제공하는 차상위계층 지원을 받았다는 사실까지 말하고 나서 나는 어딘가 조마조마한 기분이 되기도 했다. “H씨도 알겠지만 그때는 ‘야만의 시대’였잖아요.” 괜히 큰 소리로 웃으며 때마침 나온 음료 캐리어를 두 손으로 받아들었다. 그때에도 나는 H가 그게 뭐냐, 왜 그런 걸 나한테 말하냐는 식으로 반응하진 않을지 초조한 마음으로 기다렸다. 그녀는 다만 캐리어 하나를 나누어 들고는 “저는 무상급식 세대라서요……”라며 멋쩍게 반응할 뿐이었다. 오히려 그쪽이 나는 더 고마웠었다.


3
내가 뭘 어떻게 생각하든 권영오는 예정된 인턴 기간을 착실하게 채워나갔고, 그러는 사이 계절이 바뀌어 정규직 전환 심사를 앞두게 됐다. 그동안 나는 그와 H를 데리고 자주 외근을 다녀오기도 했다. 그 무렵엔 사업팀에서 서비스하는 모바일 멤버십 플랫폼에 입점한 제휴사 중 계약 만기가 임박한 곳들을 돌며 갱신을 종용하는 업무가 있었다. 제휴사 목록이 큰 폭으로 바뀌거나 원래 제공하던 할인율에 변동이 생기면 기존 고객의 이탈이 가속화되기 때문에, 가능한 한 원래의 혜택을 유지하면서 신규 업체를 늘려나가는 쪽으로 사업 방향을 도모해야 했다. 그 과정에서 인턴이 할 만한 일은 마땅치 않았으나 전환이 유력한 그에게 미리 제휴사 사람들과 안면을 트게 하는 건 그리 나쁘지 않은 생각 같았다.
  회의실에서 담당자와 인사를 나누고 각자가 원하는 조건을 공유하고, 자세한 내용은 메일로 보내겠다는 말과 함께 사무실을 나와서는 셋이 늦은 점심이나 이른 저녁을 먹었다. 그때마다 권영오는 특유의 싹싹함을 발휘해 인근의 가볼 만한 식당을 알아본 다음 몇 개를 추려 우리에게 공유했다. 그 모습이 기특한 나머지 상사에게 현장에서 퇴근하겠다고 말한 뒤 술을 사준 적도 있었다.
  모르는 새 권영오와 H는 제법 가까운 사이가 된 것처럼 보였는데, 두 사람이 함께 앉아 있는 모습에서 단순한 멘토와 멘티 이상의 무언가가 얼핏 느껴지기도 했다. 그게 꼭 권영오의 일방적인 감정만도 아닌 것 같아 괜히 더 눈길이 갔다. 웃을 때 H가 옆에 앉은 권영오의 어깨를 손으로 툭 짚는다거나, 그녀가 바지에 국물을 흘리자 권영오가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물티슈를 가지고 오는 등, 물론 단순한 호의나 친밀감의 표시일 수도 있었겠지만 그렇다면 술에 취한 권영오가 H를 향해 “누나”라고 부른 일은 뭐라고 설명할 수 있을까. 다른 데선 조금의 흐트러짐도 없던 그가 대체 왜 H 앞에서만큼은 구멍난 튜브처럼 맥을 못 췄을까. 좋아하는 마음이라는 게 그런 건가. 그럼에도 나는 권영오를 제지하지도, H더러 직장 후배에게 너무 곁을 준다며 경고하지도 않았다. “두 사람, 뭐야? 정말로 그런 사이야?” 하며 사이를 캐묻지도 않았다. 단지 나는 권영오를 보며 다 알겠다는 얼굴로 씩 웃어주었을 뿐이었다. 그때마다 그는 같이 쑥스럽다는 듯 시선을 피하고 고개를 푹 떨궜는데 그와 나 사이에 무언가 한 겹의 비밀이 더해졌다는 사실에 기분이 썩 나쁘지 않았다.

금요일 늦은 오후부터 역삼의 한 식당에서 어복쟁반을 놓고 술을 마신 날을 기억한다. 그날 우리는 연말정산 환급금과 주식, 부동산, 그보다 두 주쯤 전 K차장이 외근을 나갔다 오는 길에 겪었다는 접촉 사고에 대해 두서없이 떠들었다. 구로에 있는 F&B업체 본사에 들러 회의를 마치고 시내 사거리에서 우회전을 하던 중, 자기도 모르는 새 왼쪽 차선을 물고 달리느라 사각에서 오토바이가 들어오는 걸 보지 못했다고. 차가 크게 출렁이는 바람에 목과 허리를 삐끗한 그는 한방병원에서 비급여로 통원 치료를 받았는데, 과실 비율을 이유로 상대측 보험사가 치료비 지급을 거절하면서 일이 복잡해진 듯했다. 그는 이 건을 산재보험으로 처리할 마음을 먹었으나 H의 말에 따르면 얼마 전 공단으로부터 불인정 통보를 받았다고 했다. 사고 지점이 우리 회사와 제휴사의 통상적 이동 경로로 보기에 다소 애매하다는 이유였다. 그래서 요즘 차장님, 기분이 말이 아니에요, 라며 H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나도 알지. 짠돌이인 양반이 쌩돈 깨지게 생겼으니.”
  권영오는 요즘 차장의 목이 한쪽으로밖에 돌아가지 않는 터라 보고하러 갈 때마다 반대 방향으로 빙 돌아가야 한다며 웃었다. 그러고는 소주병을 들어 각자의 잔에 술을 따랐고, “한잔하시죠”라며 건배를 제의했다. 잔을 비우고 나서는 만두와 고기를 건져 먹으며 곧바로 다른 주제로 넘어갔다. 북중미 월드컵과 여름휴가 계획과 한 달 앞으로 다가온 J대리의 결혼식 등등, 그때그때 떠오르는 것들을 이야기하며 술을 마시던 와중 권영오가 근데요 과장님, 하며 다시 K차장의 일을 입에 올린 건 대체 왜였을까.
  “그런 것도 일종의 횡령 아니에요?”
  어느새 셋이서 소주를 다섯 병쯤 비우고 맥주도 각각 한 병씩 마신 뒤였다. 그렇게 말하는 권영오는 아주 진지한 얼굴을 하고 있었고, 그래서 나는 그가 사용한 ‘횡령’이라는 단어가 직장인들이 종종 사용하는 유머로서의 횡령과 전혀 다른 의미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말하자면, 진짜 횡령, 공적인 자본을 부당한 방식으로 취득하는 행위.
  “지금 뭐라고 했어요, 영오씨?”
  만약 권영오가 K차장의 사고와 이후의 과정에 대해 정말로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건 오해가 맞았다. 경로가 애매하다손 치더라도 회의를 마치고 복귀하는 길에 벌어진 일이었으므로 업무의 연장이라고 간주할 여지가 충분했다. 또 서울 시내 교통이라는 게 언제나 최단 거리로만 달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결국 중요한 건 행위 자체가 아니라 그 행위가 이뤄진 의도와 목적이다. 똑같이 청계천을 걷더라도 어디서 나와서 어디로 가느냐에 따라 ‘산책’과 ‘도보 이동’으로 갈리듯이. 투기가 아닌 투자, 담합이 아닌 협력, 탈세가 아닌 절세, 모두 같은 행위를 어떻게 인식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단어들이 아니겠는가. 나는 권영오에게 K차장의 일 또한 횡령이 아니라 근로자의 정당한 권리 행사로 이해해야 한다고 시간을 들여 설명했다. 그래요, 물론 좀 궁상맞아 보이고 멋도 없겠지, 하지만 나였어도 그랬을 거야, 나뿐만이 아니지, 다 그랬을걸? 비급여라는데, 그게 어디 한두 푼이어야지, 세상이 원리 원칙만으로 돌아가는 게 아니잖아, 고용이니 산재니, 우리가 사대보험을 들고 매달 월급에서 그 돈을 공제하는 이유가 다 뭐겠냐고. 그러는 동안에도 어복쟁반은 보글보글 끓으며 졸아붙고 있었고, 때마침 H가 타이밍 좋게 손을 들어 육수를 추가 주문했다. 권영오는 설명을 듣다가도 중간중간 고개를 갸웃하며 무언가를 중얼거렸다. 그러다 왠지 풋 웃어버리는 것 같기도 했는데, 그게 내 심기를 아주 조금 건드렸다.
  “왜요, 영오씨, 설명이 부족해요?”
  그러나 권영오는 대답 대신 골똘한 표정으로 젓가락으로 만두 찍어 먹는 간장을 휘휘 젓기만 했다. 그걸 보는 내 목이 왠지 뻣뻣하게 굳는 것 같았다. 그가 한 번 더 그런 반응을 보인다면 그때는 나도 좌시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물론 술에 취하면 누구나 실수할 수 있는 법이다. 때로는 절대 실수해선 안 되는 관계라는 것도 있는 법이고, 그의 나중을 생각한다면 지금 여기서 한 번쯤 짚어주며 경각심을 심어주는 것도 나쁘지 않을 성싶었다. 그러는 편이 그는 물론 H에게도 도움이 될 게 분명했다. 조직생활에서 사적인 마음은 때로 문제가 되는 법이고, 일상에서도 우리는 종종 좋아하는 마음으로 인해 실수를 저지르기도 하니까.

그러나 내가 나서기도 전에 H가 먼저 권영오를 나무라면서 내 결의는 김빠진 맥주처럼 미지근해지고 말았다. 평소의 H였다면, 또 이곳이 식당이 아니라 사무실이었다면, 상대가 결코 멋쩍어하지 않을 방식으로 무엇을 잘못했는지 조목조목 짚어줬을 터였다. 하지만 그날의 우리들은 술기운 탓인지 평소보다 한 뼘쯤 더 격앙되어 있었다. 그랬으므로 최근 주식 투자 실패로 큰돈을 날렸다는 K차장의 사연을 언급하며 손가락으로 권영오의 어깨를 쿡 찌르는 H가 나는 그렇게까지 낯설지 않았다. “네가 가난이 뭔지나 알아? 재수 없는 새끼.” 오히려 나는 H도 권영오를 자연스럽게 생각하는구나, 역시 둘 사이엔 편한 것 이상의 무언가가 있나 보구나, 지레짐작하며 분위기를 타버렸다. 나는 “그래요, 영오씨. 영오씨는 잘살잖아. 아무래도 잘 모를 수 있지”라고 말하며 맥주잔을 들었다. 그때에도 권영오는 H에게 찔린 어깨를 손으로 가만 짚고만 있었다. 삐쳤나? 괜히 불안한 마음에 “영오씨, 얼른 잔 들어요. 나 팔 떨어져” 하며 웃기지도 않은데 애써 하하 웃었다.
  대체 그날 나는 뭐가 그리도 기분이 좋았을까. 평소라면 잘 먹을 일이 없는 음식을 먹어서였나. 오래전 상사들이 사주는 어복쟁반을 몇 번 먹어보긴 했으나 비싸기만 비싸고 굳이 찾아 먹을만한 음식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권영오가 찾아낸 이 집은 국물이 시원하면서도 담백한 게 입에 꼭 맞았다. 채소와 버섯 등 건더기가 풍성해서 건져 먹는 맛이 있었고, 사리로 나오는 만두와 국수도 좋았다. 심지어 가격까지 나름 합리적인 편이라 두 사람에게 사주는 게 그렇게까지 부담되지도 않았다. 나는 이 순간을 망치고 싶지 않은 마음이 되어, “그러는 누나는, 가난이 뭔지 알아요?”라고 떨리는 목소리로 따져 묻기 시작하는 권영오를 말려야겠단 생각조차 하지 못한 채, 보글보글 끓는 국물을 황홀한 표정으로 내려다보기만 했던 것이다. 권영오는 공격적인 말투로 H를 몰아세웠다. 목덜미가 붉었고 말할 때마다 입안에 있는 것들이 자꾸 튀어나왔는데 스스로도 자기 감정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모르는 상태 같았다.
  “솔직히 누나도 모르잖아요. 집이 망해서 빚더미에 앉아본 것도 아니고 사고 싶은 것도 못 사고 먹고 싶은 것도 못 먹고 그래본 적 없잖아요. 그냥 적당한 집에서 적당하게 자랐으면서 왜 다 아는 척하는데요. 왜 자꾸 나보고만 모른다고 하는데요. 누나 그러는 거, 그거 존나 별로예요.”
  만약 그가 단순히 주정을 부리는 거였다면 나는 좀더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었을지 모른다. 영오씨, 취했으니까 거기까지만 해, 상급자의 권위를 내세워서라도 그를 제지하고 자리를 끝냈을 것이다. 정규직 전환 심사를 무기로 그를 찍어 눌렀을 수도 있다. 하지만 권영오는 그보다도 무언가를 주장하거나 이해를 갈구하는 쪽에 가까웠다. 적어도 내가 듣기엔 그랬다.
  “나도 다 알아요. 저번에 누나가 나한테 한 말 무슨 뜻인지 안다고요. 부담된다, 더 좋은 사람 만나라, 그런 거 다 변명이고 개소린 거 나도 안다고요.”
  그랬으므로 나는 들고 있던 맥주잔을 슬그머니 내려놓고는 숨이 다 죽은 쑥갓을 건져 먹기 바빴다. 국물을 잔뜩 머금어 무척 짜고 뜨거웠지만 그럼에도 젓가락질을 쉬지 않았다. 솔직히 말해 눈치가 보였다. 언제 고백하고 언제 차였던 걸까. 한편으로는 다 안다고 생각했는데 아무것도 몰랐다는 사실이 부끄러웠다. 권영오를 제지하고 나섰다가 역으로 그에게서 한 소리 듣는 게 아닌지 염려도 됐다. 저들이 모르는 걸 나는 알고 있는데, 가난이 무엇인지 내가 이 중 누구보다도 잘 아는데, 그런데 그걸 왜 알기만 할 뿐이냐, 알면서 왜 가만히만 있느냐 따져 물을 것이 나는 두려웠다.
  “……차장님 때문이잖아요. 누나 그날 연차였잖아요. 차장님이 누나 만나러 가다가 사고 난 거잖아요. 내가 모를 거 같아요? 그걸 나만 모르는 거 같아요? 아닐걸? 사람들 다 알 걸? 심지어 여기 과장님도 알 걸?”
  거기까지 말하고서 권영오는 손으로 눈물을 문질러 닦고서 잔에 담긴 미지근한 맥주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그 와중에도 그는 잔을 한 손으로 가리고 몸을 옆으로 돌리는 걸 잊지 않았다. 무섭도록 정확한 동작이었다. 잔을 비운 권영오는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가버렸다. 나는 따라 나가야겠다는 생각조차 못 하고 그가 앉았던 자리와 H를 번갈아 쳐다보기만 했다. H는 좀전의 나처럼 보글보글 끓는 어복쟁반을 내려다보기만 했다. 사실이 아니라거나 권영오가 많이 취해서 있는 말 없는 말 지어내는 거라는 변명이라도 해주길 바랐지만, 그녀는 단지 내게 죄송하다고, 그런데 자기를 그렇게 빤히 쳐다보지 말고 그냥 모른 척해주면 안 되겠냐고 말했다. 그렇게 말하는 그녀는 무척 화가 난 것 같았는데 정확히 누구에게 화가 난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어쩌면 그게 나였을 수도 있다는 생각은 그때는 조금도 하지 못했다.


4
한창 취업을 준비하며 이력서를 돌리던 시절, 나는 여러 회사의 채용 사이트에서 사훈을 찾아 읽고 외우려 노력했던 적이 있었다. 언젠가 면접 스터디에서 면접관이 인사말이나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을 묻는다면 그때는 꼭 사훈을 언급하라고, 회사가 추구하는 인재에 자신이 부합한다는 점을 어필하는 게 좋은 인상을 심어주는 데에 여러모로 도움이 된다는 선배의 말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회사원으로 십여 년 가까이 일한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그건 지극히 상투적인 조언임에 틀림이 없었지만, 어쨌든 그때 외운 ‘기업보국(企業保國)’이라든가 ‘근면·검소’ ‘인간 중심 경영’ 등등의 몇몇 대기업들의 슬로건은 여전히 내 기억에 남아 있었다. 그렇다고 그게 내 업무의 방향이나 삶의 태도에 영향을 미치는 것도 아니었지만.
  얼마 전 나는 사무실에서 엑셀에 수식을 입력하던 와중에 ‘이해와 존중’이라는 문구를 부지불식간에 떠올린 적이 있었다. 아마 인사팀의 호출로 회의실에서 면담을 가졌을 때, 벽에 그런 문구가 인쇄되어 붙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게 내가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 사훈의 일부라는 걸 나는 그제야 알았다. 오래전에 분명 외우려 애쓰고 또 면접에서도 써먹었을 텐데도 기억에서 지워져 있다는 게 나름대로 신기했다.

면담이 이뤄진 건 K차장의 아내라는 사람이 사무실로 와 한바탕 소란을 피우고 간 뒤의 어느 날이었다. TV 드라마에서나 보던 광경, 그러니까 K차장의 아내가 “그 여자, 어딨어?” 같은 상투적인 대사와 함께 사무실로 쳐들어오고, 이내 화장실에서 돌아온 H의 머리채를 움켜쥐고(“여기 있었네. 내가 모를 줄 알았지?”), 놀란 K차장이 두 사람을 떼어놓으려 낑낑대다가 사고 후유증으로 여전히 뻣뻣한 목덜미를 손으로 주무르며 비틀거리고, 나를 비롯한 사무실 사람들이 어어, 사모님 잠깐 진정하세요, 하며 다가가 한데 뒤엉켜버리는 촌극이 눈앞에 펼쳐졌었다. 기실 상황이 마무리된 것도 코미디가 따로 없었는데 육탄전이 이어지던 와중에 누군가의 손이 내 코를 때렸고, 별안간 코에서 피가 줄줄 흐르기 시작한 탓이었다.
  “아, 씨발.”
  일순간 사무실에 정적이 흘렀고, 나는 내게로 쏠리는 시선에 당황해 손으로 피를 문질러 닦았다. 그럴수록 손이며 옷소매에 피칠갑을 하는 꼴이라 한층 더 우스꽝스럽고 기괴한 광경이 연출되더라고, 그래서 종내 K의 아내조차 더이상 화를 못 내더라고, 다른 직원으로부터 전해 들었다. 병원에 가서 엑스레이를 찍어 봤더니 코뼈에 실금이 가긴 했지만 당장 수술이 필요하다거나 한 건 아니니 가급적 코가 무언가에 닿지 않도록 조심하라는 조언을 들었다. 안경도 코에 하중을 주니 가능한 한 렌즈를 끼라는 말도 들었다. 처음엔 산재보험으로 치료비를 내볼까 하는 생각도 잠시 해봤지만, 딱히 치료라고 할 게 없었으므로 이내 포기했다. 어차피 업무 연관성도 인정받지 못할 게 불을 보듯 뻔했다.
  팀장의 직권으로 K차장과 H는 모두 근신 통보를 받고 한동안 집에 머물렀다. 빠른 시일 내로 징계 절차가 진행될 거라고 했는데, 둘 중 한 사람은 해고까지 고려되는 상황이었다. 직장인들이 이용하는 익명 커뮤니티에 먼젓번의 소동을 다룬 글이 게시됐기 때문이었다. 사명이 초성으로 처리되긴 했으나 직무나 업종 등의 설명이 이어져 특정이 어렵지 않았고, 심지어 사무실 사람으로 보이는 사람의 ‘사실 인증’ 댓글이 달리면서 해당 게시글이 여타 커뮤니티로 퍼지기 시작한 정황이 포착됐다. 이와 관련해 인사팀에서 사업팀 사람들을 하나씩 불러놓고 K와 H의 평소 근태나 두 사람의 정확한 관계를 조사하는 와중이었다. 간혹 스마트폰에 최초 유포지인 커뮤니티 앱이 깔려 있는지, 있다면 인사팀 직원이 보는 앞에서 로그인해 작성 게시물 목록을 보여달라 부탁받은 사람도 있다고 했는데, 그게 또 직장 내 인권침해의 소지가 있다 보니 직원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했다. 그러나 다행히 내게는 아무런 해당 사항이 없었다. 둘 사이의 관계를 알고 있었느냐는 물음에 나는 말없이 고개를 저었다. 근태에 대해서도 내가 평소 두 사람에 대해 생각했던 바를 전달했을 뿐이었다. 인사팀 직원도 뭘 더 물어보려다가도 내 퉁퉁 부은 콧잔등을 보고선 이내 포기하는 듯했다.

“저기, 과장님.”
  면담을 마무리하고 맹물이 담겼던 종이컵을 정리할 때쯤 인사팀 직원은 내게 전혀 다른 것을 물어왔다.
  “권영오씨 말인데요.”
  K와 H의 일을 물을 때와는 다른 한층 조심스러운 어투에 나는 마른침을 삼켰다. 권영오라면 무사히 정규직 전환을 마쳐서 회사에 잘 다니고 있지 않나. 심사 때 멘토인 H와 더불어 나도 그의 레퍼런스 체크를 해줬는데, 그때 나는 별다른 얘기 없이 그가 무난하게 인턴생활을 보냈다고 말했다. 권영오는 사업팀이 아닌 경영지원팀으로 발령을 받아 이제는 거의 못 보는 사이가 됐지만 이후로도 역삼에서 술을 마신 날이 머릿속을 문득문득 스쳐 지나간 적은 있었다.
  “왜요? 영오씨가 업무를 잘 못하나요?”
  “아, 그게, 일은 나쁘지 않게 하는 것 같은데…… 최근에 여직원 몇 분들한테서 권영오씨가 불편하다는 식의 얘기가 들어와서요……”
  인사팀 직원은 영오씨가 무슨 고백 비슷한 걸 여러 사람한테 했나봐요, 라는 말을 시작으로 그간 수집한 권영오의 행적을 내게 들려주었다. 보아하니 비단 경영지원팀뿐만이 아닌 듯했다. 여직원 몇 명에게 좋아한다고 고백하고, 그러다 정말 교제로 이어졌다가 헤어지는 일이 고작 몇 달 내에 반복적으로 이뤄졌다고 했는데, 진짜 문제는 교제 기간이 겹치면서 여직원들 사이에 서로 반목하는 분위기가 형성된 듯했다. 인사팀 직원은 부적절한 일이 두 번이나 공론화가 된다면 언론에서도 주목하게 된다고, 그 전에 회사 차원에서 어떤 식으로든 해결하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어이가 없다는 듯 웃었다.
  “뭐 그런 얘기도 하나봐요. 좋은 걸 좋은 때에 좋다고 얘기해야 한다? 나중에 후회하기 전에 지금 말한다나 뭐라나. 나 참, 여기가 대학굔 줄 아나…… 회사라는 자각이 없나봐요. 혹시나 여쭤보는 건데요 과장님, 권영오씨가 원래 사업팀 인턴 때부터 그런 조짐이 좀 있었어요? 막 아무한테나 들이대는 식으로? 그래도 같은 부서였으니까 아시는 게 좀 있으실 것 같아서요……”
  그때 나는 손에 든 것이 종이컵이 아니라 무엇이더라도 단숨에 으스러뜨릴 수 있었을 것이다. 얼굴이 뜨거워지고 뒷덜미가 딱딱하게 굳는 것 같았다. 그건 분명 내가 해준 말에 틀림이 없었으나 그런 의도로 말해준 건 결단코 아니었다. 그보다는 내 아버지처럼 애꿎은 사람들을 탓하지 않기 위해 가져야 할 태도 같은 거였다고. 그러나 정작 나는 결정적인 순간에 아버지를 닮아버린 게 아닐까. 끝내 말해야 할 때에 말하지 못하고, 후회하는 사람이 되어버린 게 아닐까.
  “글쎄요……”
  나는 동전만해진 종이컵을 주먹에 꼭 쥔 채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때 내 눈에 들어온 것이 바로 그 종이였다. 이해와 존중을 바탕으로 하는 윤리 경영……


5
지난 주말엔 어머니와 함께 짧은 여행을 다녀왔다. 남해 금산에 보리암이라는 암자가 있는데 기도 도량으로 유명한 곳이다, 산 정상에 있긴 해도 중턱의 주차장에서 평탄한 오르막을 한 시간쯤 오르기만 하면 된다더라, 라는 말에 하는 수 없이 차를 끌고 남해까지 내려갔다. 생각해보니 아버지의 건재상이 망한 뒤로 둘이서만 어딘가에 가본 게 그때가 처음인 것 같았다. 어머니는 몇 해 전 호텔 출근을 그만두고 이모나 친구들과 함께 절에 다니기 시작했는데 다들 면허가 없다보니 남해에 가려면 버스를 타야 했다. 어머니는 몇 해 전부터 요실금을 앓기 시작한 터라 그게 영 엄두가 안 나서 내게 부탁한 듯했다.
  산인 걸 감안하면 어머니의 말마따나 비교적 평탄한 편이었으나 그래도 오르막은 오르막이라 숨도 차고 땀도 났다. 회사에서 그 흔한 등산 동호회 한번 나가본 적 없으니 당연했다. 얇은 외투를 허리춤에 묶고 어머니가 집에서 얼려 온 500밀리 생수 페트병을 목덜미에 문지르며 한참을 걸으니 어느새 암자가 나왔다. 바다와 면한 산 위에 지어진 암자라고 했으나 제법 큰 절 같았고 사람도 무척 많았다. 다들 어머니보다 열댓 살쯤 어려 보이는 아주머니들이었는데, 가만 생각해보니 수능이 50일도 채 남지 않은 시점이었다. 어머니는 대웅전과 해수관음상과 지장전 등등을 돌며 절을 올리고 무언가를 열심히 빌었다. 어머니의 부탁으로 이만원을 내고 기와 불사도 했다. 어머니는 묵직한 기왓장에 흰 펜으로 아버지의 건강과 나의 결혼을 아주 신중하게 적었다. 고작 저걸 적기 위해 여기까지 왔나, 그렇게 당했으면서도 아버지의 건강을 비나, 하는 생각에 웃음이 나왔다.
  어머니가 기와에 글씨를 적는 동안 나는 괜히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며 암자를 돌아다녔다. 그러다 문득 메신저의 지난 대화 목록에서 권영오의 이름을 발견하기도 했다. 정규직 전환 이후 시작된 수습 기간을 채 마치기도 전에 권영오는 다른 회사에 면접을 봐 이직하게 됐는데, 인사팀에서도 벼르고 있는 게 있다보니 별달리 문제 제기는 하지 않은 듯했다. 간다는 인사도 따로 없었으므로 나도 경영지원팀에 물건을 가지러 갔다가 우연히 그 사실을 듣게 됐다. 권영오와 내가 나눈 대화는 단 세 개였다. 서로 주고받은 설 연휴 인사와 그가 보냈던 삼만원의 이체 메시지. 그때 나는 차마 수락 버튼을 누르지 못했고, 그대로 사흘을 넘기자 이체가 자동으로 취소됐었다. 취소를 알리는 메시지에 그도 나도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았던 일이 있었다.

이후로 나는 그 일을 곧장 기억에서 지워버렸는데, 남해에서 하루를 묵고 서울로 올라오며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다가 문득 그때 그 돈을 받을 걸 그랬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랬으면, 나중에 내가 따뜻한 커피라도 한잔 사서 그에게 나눠주지 않았을까, 그러면서 나는 그에게 무언가 더 이야기하려고 했을 테고, 그게 우리의 미래를 어떤 식으로든 바꿔 놓았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박현옥

2022년 《현대문학》 신인추천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결국 말해버린 것과 끝내 말하지 못한 것 중 나는 말해버린 것을 더 후회하는 편이다. 소설도 마찬가지다. 끝내 쓰지 못한 것보단 결국 써버린 것이 언제나 더 후회된다.

2026/06/17
79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