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얼음 구멍을 보고 있었다. 원은 내 손바닥보다 조금 컸고, 안에서 형광 물고기가 춤을 추고 있었다. 아빠 손이 움직이는 리듬에 맞춰서. 나는 아빠한테 물었다.
  “이런다고 송어가 올까?”
  “그럼. 다들 이렇게 잡고 있잖아.”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다들 아빠처럼 낚싯대를 열심히 흔들고 있었다. 우리와 다른 점은 벌써 송어 두세 마리를 잡아 통 속에서 송어가 파닥거리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만 빈 통이었다. 다른 낚시꾼들의 장비는 전문 낚시 장비처럼 보였다. 아빠가 들고 있는 낚싯대는 오늘 아침 민박집 앞 문구점에서 만원 주고 사온 것인데 플라스틱 재질에 장난감 낚싯대처럼 보였다. 어쩌면 정말로 장난감일 수도 있겠다. 물론 문구점 아저씨는 다들 이걸로 잡는다고, 송어 잡기에 충분하다고 했었다. 만약 이걸로 송어를 한 마리도 못 잡는다면 장비의 문제는 아니라고 했다. 장비의 문제가 아니라면 실력의 문제겠지. 문제는 우리가 장비도 변변찮고 실력도 변변찮다는 것이다. 애초에 갑작스럽게 송어 축제에 온 것이 문제였다.
  어제 수업이 끝난 후 교문을 나와 학원 통학버스를 타러 가는 길에 아빠를 발견했다. 아빠는 납치하듯 나를 차에 태우고 세 시간을 달려 송어 축제가 열리고 있는 강원도로 왔다. 학원도 빠지고 송어 축제에 가는 걸 엄마가 허락했을 리가 없는데, 아빠는 엄마 허락도 받고 학원에도 미리 연락해두었다며 다 괜찮다고 했다. 아빠가 괜찮다고 하면 어쩐지 불안하다. 역시나 민박집 앞에 걸린 현수막에 의하면 송어 축제는 이미 한 달 전에 끝났다. 아빠는 그래도 다 길이 있다며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국밥집에서 아침을 먹고 바로 송어 축제장으로 왔는데 역시나 송어 축제장은 텅 비어 있었다. 철거중인 듯 군데군데 시설물이 쌓여 있었다. 철 지난 해수욕장처럼 쓸쓸한 느낌이 났다. 그럼 그렇지…… 하고 있는데 아빠가 신이 난 목소리로 저기 봐라! 하고 저쪽 얼음판을 가리켰다. 스무 명 정도가 띄엄띄엄 얼음 위에 자리를 잡고 낚시를 하고 있었다. “축제가 끝나도 송어는 남아 있어. 끝나도 끝난게 아니야.” 하고 아빠는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우리는 미끄러지지 않게 신발에 아이젠을 창작하고 얼음판 위를 조심스럽게 걸어 그쪽으로 다가갔다. 군데군데 낚시 구멍이 뚫려 있었다. 우리는 구멍 하나에 자리를 잡았다. 캠핑 의자 두 개 펴고 앉아서 문구점에서 산 송어 낚싯대에 가짜 미끼를 끼우고 얼음 구멍에 드리우는 것으로 모든 준비가 끝났다. 이제 송어를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두 시간 동안 얼음 구멍을 쳐다보았지만, 송어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아빠는 두 시간 내내 낚싯대를 흔들어 가짜 물고기가 살아 있는 것처럼 연기했다. 하지만 송어를 속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3월 초였지만 강원도의 바람은 여전히 차가웠다. 롱패딩 속에 교복을 입고 위에 운동복까지 껴입었지만 그래도 발밑에서 한기가 올라왔다. 엄마라면 분명 히트텍을 챙겨주셨을 텐데…… 분명 핫팩을 챙겨주셨을 텐데…… 아마도 아빠의 주장과는 달리 엄마는 내가 송어 축제장에 온 걸 모르는 게 틀림이 없었다. 나는 우리가 어쩌다가 철 지난 송어 축제장에 와서 송어를 기다리고 있는지 아빠한테 자세한 이유를 묻지는 않았다. 전날 밤에 엄마와 아빠가 다투시는 소리를 듣다가 잠들었다. 어릴 때는 두 분이 싸우시면 불안해서 잠을 못 잤다. 이제는 그러거나 말거나 잘 잔다. 두 분의 싸움을 말릴 수가 없다는 걸 이미 알고 있고, 싸움을 말릴 생각도 없다. 그건 두 분의 문제고, 어른들의 세계니까. 나는 그저 잘 자고 일어나서 자식답게, 학생답게 등교해서 학업에 충실하며 하루를 잘 보내고 오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학원도 빠지고 얼음 구멍을 들여다보고 있네. 갑자기 한숨이 나왔다. 아빠한테 질문하고 싶은 게 많았지만, 나는 시답잖은 질문만 했다.
  “아빠, 우리도 장비를 좀 좋은 걸로 바꿔야 하지 않을까? 가짜 미끼 말고 진짜 먹이로 바꾸고?”
  “송어는 그렇게 잡는 게 아니야.”
  “그럼?”
  “장비가 아니라 의지와 기세로 잡는 거야.”
  “기세는 인정. 송어를 잡겠다는 의지도 인정. 근데 우리는 가장 중요한 송어 낚는 기술이 없잖아.”
  “기술이 딱히 있겠어? 어차피 다 커뮤니케이션이야. 송어와의 커뮤니케이션! 그게 제일 중요해.”
  “하지만 걔는 물고기잖아. 우리는 사람이고.”
  아빠는 한 손을 허리에 올리고 낚싯줄에 매달린 가짜 미끼를 들어올려 현란하게 흔들었다.
  “이 춤을 보고 찾아올 거야. 송어가.”
  “아빠, 송어 몇 마리 잡아봤어?”
  “고양이는 많이 키워봤어. 설탕이, 후추, 까미…… 내 현란한 낚시 실력을 봐.”
  “왜 갑자기 고양이? 송어 몇 마리 잡아봤냐고.”
  “그렇게 물어보면 내가 대답할 수가 없지. 기간을 정해줘. 언제부터 언제까지?”
  “태어난 이래로 오늘 아침까지?”
  “0마리”
  “아빠, 송어회 먹어본 적은 있어?”
  “오늘 처음 먹어보겠지.”
  그럼 그렇지. 아빤 늘 그런 식이다. 송어 축제도 나를 만나기 직전에 즉흥적으로 결정한 게 틀림이 없다. 엄마와 나는 미리 계획을 세우고 그것을 그대로 지키는 것을 선호한다. 아빠도 계획은 한다. 즉흥적으로. 결과도 즉흥적으로 나오길 바라신다. 나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미끼를 던지면 당연히 송어가 물고 당연히 잡아서 점심으로 먹을 수 있는 것처럼, 학원에 나를 던져놓으면 당연히 내 성적이 오를 거라고 생각하신다. 그건 엄마도 마찬가지여서 내가 왜 공부를 못 하는지 이해를 못 하겠다고 하셨다. 그렇게 열심히 공부하는데. 정말로 몰라서 물으시는 걸까? 왜 그렇겠어? 나도 열심히 하지만 다른 애들은 더 열심히 공부하니까 그렇겠지. 어쨌든 나도 나름대로는 최선을 다하지만, 어쩔 수가 없는 건 어쩔 수가 없는 거다. 세상일이 다 뜻대로 되지는 않는다는 걸 매일매일 배우고 있는데 그건 내가 학교에서 배운 것 중 가장 위대하고 유용한 가르침이다. 그러므로 나는 기대 없이 얼음 구멍을 몇 시간 동안 그냥 바라볼 수 있다. 송어를 내 뜻대로 할 수는 없다. 가짜 미끼를 무는 건 송어 마음이니까. 내 마음이 아니니까. 그러니까 아무런 기대 없이 송어를 몇 시간이고 기다리는 건 어렵지 않다. 그런데 발이 시리고 추웠다. 아빠가 말했다.
  “얼음 구멍 들여다보는 거 재밌지? 이 구멍이 인류의 가장 오래된 티브이야. 16만 2천 년 전부터 인간은 이걸 보고 있었어. 아무것도 없는 것 같지만 구멍 안에 송어가 나타나는 순간, 그리고 뜰채로 건져지는 순간, 아드레날린이 폭발하는 거지. 그 쾌감은 어디 비할 데가 없어.”
  “아빠 송어 낚시해본 적 없다며”
  “간접경험이라는 게 있잖아”
  솔직히 말하면 그 구석기시대 티브이보단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싶었다. 하지만 충전기를 두고 와서 스마트폰 전원이 꺼져 있었다. 사실 아까부터 내 마음은 계속 꺼져 있는 스마트폰에 가 있었다. 민우한테 온 메시지가 궁금했다. 어쩌면 안 왔을 수도 있고. 내가 스마트폰을 열어 메시지를 확인하기 전까지, 민우가 보낸 메시지는 오기도 했고 안 오기도 했다. 그런 걸 양자 중첩이라고 부른다고 들었다. 나는 민우의 메시지가 왔는지 궁금했지만 동시에 보고 싶지 않은 마음도 컸다. 스마트폰이 꺼져 있어서, 메시지 확인 시간이 유예되어 차라리 다행이었다.
  민우는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까지 같이 다닌 내 인생의 베프다. 우리는 같은 게임을 좋아하고, 같은 운동을 좋아한다. 유치원 때 같은 반이 된 이후로 뭐든지 늘 같이했었다. 게임도, 수영도, 검도도, 축구도. 민우가 전자기타로 실용음악과에 진학한다고 했을 때는 좀 놀랬다. 음악을 좋아한다는 건 알았지만, 대학 진학까지 고려할 정도로 열정이 있는지는 몰랐다. 민우는 나하고 상의를 한 게 아니라 통보했다. 그전까지는 늘 함께 상의하고 무엇이든 함께 했었기 때문에 그런 민우가 낯설었다. 민우가 내게 추천해줬던 음악을 안 들은 게 뒤늦게 후회가 되기도 했지만, 취향은 어쩔 수가 없지. 민우가 내가 추천한 웹소설을 안 보는 것도 어쩔 수가 없는 것처럼. 민우는 1학년 여름방학 때 학교 밴드부에 들어갔다. 밴드부에는 초등학교 동창인 다희랑 미리가 있었다. 다희는 보컬로 입시 준비 중이고 미리는 드럼을 친다. 중학교 1학년 때까지는 친했지만 다른 여자애들이 그렇듯이 갑자기 사이가 어색해졌다. 싸우거나 그런 건 아니고 언제라도 다시 친해질 준비가 되어 있었으나 둘은 내게 연락을 거의 하지 않았다. 그 여름방학이 지난 후부터 민우의 SNS는 다희랑 미리랑 함께 찍은 사진으로 도배되기 시작했다. 밴드부 연습을 함께 하니까 연습실에 함께 있는 건 당연했다. 그런데 셋은 학교 밖에서도 자주 어울렸다. 셋이 함께 마라탕집에서 찍은 사진이 올라왔을 때 조금 서운했다. 나도 마라탕 좋아하는데. 나한테 연락하면 오 분 내로 달려갔을 텐데. 민우는 왜 나한테 연락을 안 했을까. 참고 참다가 어제 학교에 가면서 민우한테 메시지를 남겼다. 서운하다, 라고. 딱 네 글자로. 그렇게만 말해도 내 마음을 알 거라고 생각해서 더 자세히 적지는 않았다. 우리 사이에는 서운하다. 그 네 글자로 충분하다. 나는 민우가 사과하길 기대했지만, 민우는 메시지만 확인하고 답장하지 않았다. 쉬는 시간에 복도에서 마주쳤을 때, 민우는 다희랑 대화하면서 나를 지나쳐갔다. 설마 나를 못 보지는 않았을 텐데? 수업이 시작되었는데 점점 화가 몰려와서 수업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공책에 너 때문에 화가 난다고 열 번을 적었다. 화가 나긴 났는데 내가 무엇에 화가 났는지 알 수가 없었다. 민우가 나한테 잘못한 게 있나? 잘못한 게 없는데 나는 왜 화가 났을까? 사과받고 싶은 마음인데, 민우는 무엇을 사과해야 할까? 그러니까 계속 궁금했다. 민우는 내게 뭐라고 메시지를 남겼을까? 민우가 학원에 갔으면 내가 학원에 오지 않은 것을 알게 되었을 텐데. 내 걱정을 하긴 할까? 우리는 아직도 ‘베프’인 걸까?
  마음은 복잡하였지만, 얼음 구멍을 들여다보면 그 안에는 고요가 있었다. 그 구멍 안은 시간이 멈춰 있는 것 같았다. 집과 학교는 그대로 시간이 흐르는데 이곳에서만 시간이 얼음처럼 꽝꽝 얼어 멈춰 있는 것 같았다. 아빠는 아마도 그래서 나를 이곳으로 데리고 왔을 것이다. 이러다가 집으로, 학교로 돌아가면, 얼음 녹듯 멈춰 있던 시간이 그제야 움직이기 시작하면 어떻게 될까? 다른 나라로 여행을 가면 시차가 생기듯 삶에 메꿔지지 않는 구멍 같은 게 생기면 어쩌지? 그런 걱정을 하지 말라는 듯 동쪽 산에 걸려 있던 해는 어느새 머리 위까지 올라왔다. 멈춰 있는 듯해도 시간은 여기서도 여지없이 흐르고 있고 바닥의 얼음은 어느새 약간 녹아서 질척거렸다.
  옆자리 아저씨들이 다가오셔서 핫팩을 나눠주셨다. 고맙다는 인사를 한 뒤에 그분들을 따라가서 송어 잡는 모습을 구경했다. 확실히 그분들이 흔드는 형광 물고기는 살아 있는 것처럼 움직였다. 특히 꼬리만 움직이도록 흔드는 기술이 있었다. 아저씨들 말에 의하면 원래 송어가 이 하천에 사는 것은 아니고 축제를 위해서 미리 송어를 넣어 가둬놓은 것이라고 했다. 축제는 끝났지만, 사람들이 못 잡은 송어들이 남아 있어서 다들 이렇게 취미 삼아 송어 잡으러 와있는 거라고 했다. 나는 제일 가장자리 낚시터까지 구경을 갔다. 가장자리로 갈수록 얼음의 두께가 얇아졌다. 얇아진 얼음 위를 걸을 땐 심장이 두근거리면서 도파민과 아드레날린이 솟구치는 것 같았다. 얼음 바로 아래는 커다란 안전망 그물이 있었기에 설사 얼음이 깨진다 해도 안전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도 심장이 두근거리는 걸 어쩔 수가 없었다. 고개를 돌려 아빠를 보니 옆자리에서 낚시하던 여성 분과 대화를 하고 있었다. 나는 다시 걸어서 아빠한테 돌아갔다. 내가 다가오자, 아빠는 빙그레 웃으면서 비닐 팩을 하나 들어 보였다. 안에는 송어 한 마리가 들어 있었다.
  “옆자리에서 낚시하시는 분이 너랑 함께 먹으라고 한 마리 나눠주셨다. 이거 식당으로 가면 회 떠주신대. 가자.”
  “간다고? 지금? 우리는 송어 먹으러 온 게 아니라 직접 잡으러 온 거잖아.”
  “배고프기 전까지는 계획이 그랬지. 점심 먹고 다시 오자.”
  그렇게 되지는 않았다. 식당에서 회를 떠서 민박집에서 먹었는데 아빠는 반주로 먹은 소주 한 병에 취해서 잠들어버리셨다. 아빠의 휴대전화도 내 휴대전화도 모두 배터리가 없어서 꺼져 있었다. 민박집 주인한테 가서 충전기를 빌려오면 된다는 걸 알았지만 귀찮았다. 취한 채로 코 골면서 자는 아빠 옆에 누워있었다. 누워서 스스로에게 물었다. 나는 휴대전화 전원을 켜는 게 두려운가? 두렵다면 왜 두려운가. 무엇이 두려운가. 그러다가 깜박 잠이 들었다.
  아빠가 나를 흔들어 깨웠을 때 바깥은 이미 어두워져 있었다.
  “지금 몇 시야?”
  “일어나. 송어 만나러 가야지.”
  나는 일어나 대충 세수를 하고 아빠를 따라 밖으로 나왔다. 조명이 적어 어두웠지만 산 위에 밝은 보름달이 걸려 있었다. 달이 너무 밝아서 별이 많지는 않았지만, 집에서 보는 것보다는 확실히 많았다.
  “컴컴한데, 지금 가려고?”
  아빠는 말없이 손전등을 켜서 발 아래를 비추며 앞장서서 걷기 시작했다. 민박집에서 몇십 미터만 걸어가면 송어 축제장이었다. 아빠가 무슨 일을 진행할 때 절대 말릴 수 없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잠자코 아빠를 따라갔다. 신발에 아이젠을 다시 장착하고 얼음 위로 올라갔다. 송어 낚시 구멍이 군데군데 나 있으므로 손전등을 비추며 조심스럽게 걸었다. 이윽고 한 구멍을 찾아서 미끼를 달은 낚싯대를 드리웠다.
  “네가 손전등으로 구멍 안을 비추고 있어. 송어가 빛을 보고 찾아올 거야.”
  “송어가 빛을 좋아할까?”
  “물속에서 보면 손전등 빛이 태양처럼 보일 거야.”
  “그럼, 아빠 미끼 좀 잘 흔들어봐. 아까 다른 분들 하는 거 보니까 진짜 살아 있는 물고기처럼 흔드시더라.”
  아빠는 내가 알려준 대로 꼬리가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미끼를 흔들기 시작했다. 우리는 말없이 한참을 그렇게 얼음 구멍을 들여다보며 송어를 기다렸다. 지루해지면 손전등을 들어서 주변을 천천히 비추었다. 전등 빛이 얼음에 반사되며 아름답게 빛났다. 그 빛을 보면 ‘이대로 좋다’는 기분이 들었다. 송어를 못 잡아도, 이대로 좋았다. 아빠와 함께 얼음 위에서 송어를 기다리는 이 순간이 좋았다. 다시 손전등으로 얼음 구멍을 비추고 있는데 아빠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 네 작은아버지 말고, 막냇동생이 한 명 더 있었어. 눈이 크고 별을 심어놓은 곳처럼 빛났어. 잘 울기도 했고. 모두 예뻐했지. 막내니까. 밤에 자다가 일어나보면 옆에 없을 때가 많았어. 아빠가 어릴 때는 시골에 살았잖아. 막내 찾으러 나가면 마당에 쪼그려 앉아 있을 때도 있고. 집 밖까지 나가서 개울가에 가만히 쪼그려 앉아 있을 때도 있었어. 왜 여기 나와 있냐고 물으면, 달빛이 얼음 위에 비추는 게 아름다워서 보고 있었다고 했어. 그 말을 듣고 보면 실제로 달빛이 비치는 게 아름답긴 했거든. 그래도 밤에 밖에 있으면 감기에 걸리니까 담요를 덮어주고 방으로 데리고 들어오곤 했지.”
  “그분은 지금은 어디에 계세요?”
  “모르겠어. 어딘가에서 여전히 이렇게 쪼그려 앉아서 달빛을 보고 있겠지. 막내가 내 인생에서 사라진 이후로 내 속 안에도 이런 얼음 구멍이 하나 생긴 것 같은데, 이걸 이렇게 보고 있으면 그 구멍이 밖으로 꺼내진 것 같아. 손에 잡힐 듯이.”
  “아빠 속에 오래 있었다는 그 구멍에도 송어가 살아?”
  아빤 말없이 빙그레 웃었는데 어둠 속에서 눈빛이 반짝이는 게 아무래도 눈물로 덮여 있는 것 같았다. 한참 뒤에 아빠가 말했다.
  “늘 기다리고 기다렸어.”
  “갑자기 사라진 사람들은 어디에 살까?”
  “사람이 살 수 있는 곳은 누군가의 마음 속뿐이래. 우리는 우리가 세상에 살고 있다고 착각하지만 그렇지 않아. 누군가가 나를 마음속에 담아주었기 때문에 내가 세상에 존재하는 것뿐이야.”
  “그럼, 막내삼촌이 사라지셨을 때 아빠의 마음속에는 막내삼촌이 없었어?”
  아빠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고요한 침묵 끝에 나는 말했다.
  “어제 학교에서, 내가 잠시 사라진 사람이 된 것 같았어. 아주 잠깐 세상 사람 모두가 나를 잊은 것처럼.”
  “그랬을 수도 있지. 그래도 괜찮아.”
  그때 갑자기 아빠가 앗 하고 소리를 지르며 낚싯대를 당겼다. 송어 머리가 얼음 구멍으로 반쯤 올라왔다. 아빠는 뜰채를 손으로 가리켰다. 나는 뜰채로 송어 꼬리를 담아 밀어올리려고 했지만 당황해서 잘되지 않았다. 아빠가 기세 좋게 뜰채를 들어올려서 송어를 얼음 밖으로 꺼냈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역시 아빠 말대로 송어 낚시는 의지와 기세였다.
  얼음 위에서 송어가 파닥거렸다. 아빠는 송어 입에서 낚싯바늘을 빼내었다. 그리고 비닐 팩에 송어를 담으려고 했지만, 송어가 양옆으로 요동치며 얼음 위를 미끄러져서 옆에 있던 다른 얼음 구멍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너무 아쉬워서 탄식했다.
  “놓쳤네.”
  “놓친 게 아니라 잠시 만난 거지.”
  나는 손전등으로 얼음 구멍을 비추면서 물에 얼굴을 가깝게 대고 안을 들여다보았다. 안에 여러 마리의 송어가 보였다. 빛을 보고 몰려든 송어였다. 얼음 구멍을 키워서 뜰채를 넣으면 다 건져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이 얼음이 다 녹으면 이 송어들은 어떻게 되는 거야?”
  “결국에는 누군가 다 잡아가겠지.”
  “송어 불쌍해.”
  “그게 자연의 법칙인걸. 우리는 애초에 다른 생명체의 고통에 기대어 생존하게 되어 있어. 그래서 늘 미안함과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살아야 해.”
  “나는 타인의 고통을 배터리 삼아 생존하고 싶지 않아.”
  “인간이란 존재가 원래 그래.”
  “그럼 인간답게 산다는 게 뭔데?”
  “글쎄. 인간답게 사는 게 뭘까? 살다보면 인정하고 싶지 않은 내 모습을 뭉쳐서 한쪽 구석으로 밀어놓게 되거든. 내가 만든 그 그림자를 피하지 않고 대면하는 게 인간답게 사는 거지. 얼음 구멍에서 송어를 기다리듯 가만히 지켜보는 거야. 두려움을 견뎌내면서.”
  “그러면?”
  “그러면 그 얼음 구멍 속으로 빨려들어가지 않아.”
  “그러면?”
  “그 안이 보름달처럼 빛나고 아름답다는 것을 알게 될 거야.”
  “지금, 이 순간처럼?”
  “응. 송어는 못 잡았지만.”
  아빠와 나는 잠시 침묵 속에 서 있었다. 보름달이 얼음 위를 비추면서 빛나고 있었다. 멀리 병풍처럼 둘린 산에 남아 있는 흰 눈도 빛났다. 우리는 다시 송어 낚시를 시작했지만, 송어는 오지 않았다. 점점 추워져서 우리는 손전등으로 발아래를 비추며 민박집으로 돌아갔다.
  다음 날 아침 막국수를 먹고 일찍 집으로 출발했다. 차에서 휴대전화 충전을 하고 둘 다 떨리는 마음으로 휴대전화 전원을 켰는데 별다른 메시지가 없었다. 나는 엄마한테 전화해서 달밤의 얼음 위에서 송어를 잡았다가 놓친 이야기를 했다. 민우한테도 전화해서 똑같이 송어를 잡았다가 놓친 이야기를 했다. 민우는 내가 학원에 안 와서 걱정했다고 말했다. 나는 다음에 친구들과 마라탕 먹으러 가면 나도 불러달라고 했다. 민우는 그러잖아도 저번에 나도 부를지 생각했다면서 다음에는 같이 가자고 했다. 그리고 무엇이 서운했냐고 물었다. 나는 그냥 내가 사람으로 태어났다는 게 서운하다고 대답했다. 민우는 뭐래? 하고 전화를 끊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고속도로에서 나는 아빠한테 주저리주저리 온갖 이야기를 다 했다. 나를 서운하게 한 사람들에 대해서 주로 말했다. 아빠는 속상했겠다, 속상했겠다, 하고 맞장구쳐주었다. 세상에는 서운한 일도 많고 속상한 일도 많고 어쩔 수 없는 일도 많고. 그렇지만 아름다운 일도 많고. 산다는 건 그런 건가봐. 산다는 건 그런 건가봐. 둘이 주문처럼 중얼거렸다. 나는 아빠한테 물었다.
  “근데 아빠, 엄마랑 싸웠어? 싸워서 나랑 같이 송어 잡으러 간 거야?”
  “싸웠다기보다는 우리 방식의 대화를 했다고 해야 하나?”
  “싸움과 대화를 나누는 기준이 뭐야?”
  “인정. 감정의 인정이지. 우리는 둘만의 대화 방식을 찾는 중인 거야. 안 싸우고 그냥 덮어두고 사는 방식도 있겠지만 엄마랑 나는 그러지 않기로 서로 합의했거든. 서로 서운한 게 있으면 다 얘기하고, 감정을 끝까지 세밀하게 다 분석한 다음에 인정하고 털어버리는 거야. 감정을 정확히 보게 되면 그 감정이 힘을 못 쓰게 되어 있어.”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데?”
  “그러고 싶은데 그렇게 되지가 않은 일들을 평생 시도하고 실패하며 살아간다는 뜻이야. 그래도 괜찮아.”
  “아빤 슬프고 괴로울 때 어떻게 해?”
  “그럴 땐 어제 본 풍경 같은 걸 떠올려. 네가 알고 있는 가장 아름다운 순간들. 그래도 괜찮다, 괜찮다 싶은 순간들 ”
  나는 어제 본 달밤의 송어를 둘러싼 풍경을 떠올렸다. 시간이 멈춘 것처럼 영원한 풍경을. 하지만 차가 막히는 고속도로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아빠와 주저리주저리 대화하는 이 순간도 그런 영원한 풍경이라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그래도 괜찮다, 괜찮다. 가만히 중얼거리게 되는.

정은

청소년소설 『산책을 듣는 시간』 『포커스아웃 보이』와 산문집 『커피와 담배』 『기내식 먹는 기분』을 썼습니다. 대학에서 컴퓨터공학과, 영화, 서사창작을 공부했고 지금은 대학원에서 명상수행코칭을 배우고 있습니다.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배우고 도전하며 살고 있습니다. 앞으로 제가 새롭게 배울 것들이 늘 기대가 됩니다.

매일 산책을 합니다. 산책길에 송어 축제장이 있는데 거기서 축제가 끝난 후에 송어 낚시를 하는 사람들을 실제로 보게 되었습니다. 짧은 숏폼을 보는 것에 익숙해지고 AI의 빠른 답변에 익숙해져서 그런지, 몇 시간 동안 얼음 구멍만 쳐다보며 고독하게 송어를 기다리는 모습에 경외심을 느껴서 이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리처드 브라우티건이라는 작가의 『미국의 송어 낚시』라는 책을 좋아하던 시절이 있었는데 송어에 관한 글을 쓰게 된 것에는 그 책의 영향도 있는 것 같습니다. 최근의 고민은 길고 지루한 순간을 견디는 능력이 점차 사라지고 있는 것 같다는 겁니다. 그래서 다음 겨울에는 저도 송어 낚시에 도전해보고 송어와 함께 길고 지루한 대화를 해보려고 합니다.

2026/06/17
79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