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문학
이번 생은 망했어
배구 수업 시간. 태균이 넣은 서브가 엉뚱한 방향으로 휙 날아갔다. 생뚱맞은 곳에 떨어진 배구공을 보며 아이들이 까르르 웃어댔다. 정신 바짝 차리자. 이건 좋은 기회다. 잘만 하면 환호성이 내게 쏟아질 거다. 마침 내 쪽으로 공이 날아온다. 멋지게 공을 때리려는데 최대영이 빠르게 다가온다. 놀라운 점프력으로 튀어 오르더니 시간차 공격으로 득점을 해낸다. 구경 중이던 아이들이 크게 함성을 질렀다. 아이들이 목청껏 “최대영! 최대영!”을 외쳤고 녀석은 거만한 표정으로 네트에 바짝 붙어 블로킹 연습을 했다.
나는 입술에 침을 묻히며 중얼거렸다. 긴장해야 한다. 한 번의 실수가 일 년 내내 따라다닐 수 있다. 우리 쪽에서 넘긴 공이 곧 다시 올 것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막아야 한다. 공이 뜬다. 상대편 공격수가 공을 친다. 나는 힘껏 점프해 블로킹을 시도한다. 삐익. 호루라기 소리가 울린다.
“뭐야 또?”
나는 잔뜩 짜증을 내며 물었다.
“네트 범실이야.”
태균이 힘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땅이 꺼질 듯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숙였다. 아이들이 단체로 내게 화를 냈다.
어차피 나는 글렀다. 이번 생은 망했다. 나는 잘하는 게 아무것도 없고 사는 건 정말 재미 대가리가 일도 없다.
아이들이 땀 냄새를 풀풀 풍기며 교실에 들어섰다. 교복으로 갈아입느라 바쁜 와중에 아이들은 최대영을 흘낏 바라봤다. 드디어 최대영이 웃통을 까자 모두 부러운 눈길로 녀석의 복근을 훔쳐봤다. 완벽하게 매끈한 초콜릿 복근을 기본 장착하고 있는 녀석은 우리 학교 서열 1위 싸움짱이다. 저런 몸과 민첩한 운동 신경과 아이들 얼굴에 마음껏 펀치를 날릴 수 있는 싸움 실력을 하루만 가져봤으면. 하지만 모두 부질없는 소원이다. 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있다. 어차피 나는 안 된다는 걸. 이미 늦었다는 걸.
“의리에 살고 의리에 죽는 의리파래.”
태균이 은밀한 목소리로 소곤거렸다.
“누가?”
“최대영.”
“쳇, 싸움짱이 의리는 무슨.”
선풍기가 달달 소리를 내며 돌아갔다. 수학 시간이 시작됐다. 선생이 칠판에 그리는 함수 그래프를 멍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으니 어제 망친 게임 생각이 났다. 하나씩 되짚어보면 전략 자체가 잘못된 셈이었다. 맵을 제대로 파악하지 않고 덜컥 도전장을 내민 게 실수였다. 그다지 화가 나지도 않았다. 어차피 승리와는 거리가 먼 인생. 그 많은 실패에 하나의 실패를 살포시 얹는다고 더 쪽팔리거나 슬퍼할 것도 없다.
왼쪽 가운데 손가락에 솟아있는 사마귀는 오늘따라 더 부풀었다. 베루말을 바른 후 잠시 동안 사마귀를 골똘히 들여다봤다. 비릿한 약 냄새 때문인지 옆자리 태균이 인상을 팍 찌푸렸다. 나는 여유롭게 주머니에서 면도칼을 꺼냈다. 칼날을 교복에다가 쓱싹 문지르고 사마귀를 긁어냈다. 몇몇 놈들이 내 행동을 주의 깊게 살피는 시선이 느껴졌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눈앞으로 왼쪽 손을 바짝 끌어당겨 사마귀를 긁었다. 오로지 사마귀와 나만 존재하는 이 순간, 이 치밀한 극도의 몰입. 어차피 글러 먹은 인생을 살지만 이렇게 가끔 행복을 느끼기도 한다. 주책맞게도.
어쨌든 나는 책상 밑으로 왼손을 처박고 가운데 손가락으로 퍽큐를 날렸다. 선생한테 퍽큐를 날리려는 건 아니었다. 면도칼로 사마귀를 긁어내면 살짝 아프기 때문에 이런 포즈를 해주는 게 좋다. 욱신거리던 사마귀 부위가 이렇게 퍽큐 포즈만 해주면 얌전해진다. 엄지손가락으로 사마귀를 다시 문질러봤다. 면도칼로 긁어내도 사마귀는 금세 자랐다. 털을 자주 자르면 억센 털이 나오듯 사마귀는 깎을수록 더 강하고 커졌다. 아무리 잘라내도 다시 자라는, 그러면서 하루가 다르게 커지는 사마귀가 어쩐지 기특했다.
수학 선생의 별명은 빙그레 좀비였다. 선생은 서울역 노숙자처럼 후줄근한 옷만 입고 다녔다. 오랫동안 감지 않은 머리카락은 자기들끼리 엉켜 있고 웃통을 까면 뼈가 보일 것 같은 바싹 마른 몸을 겨우 지탱하며 허우적허우적 걸어 다녔다. 서울역을 배경으로 한 좀비물 영화가 흥행한 뒤 선생은 좀비로 불렸다. 그런데 기운이 도통 없어 보이는 사람이 수학 문제를 풀 때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인 양 빙그레 웃었다.
반에서 일등, 이등인 놈을 힐끔거렸다. 놈들은 목이 아래로 푹 꺾어질 정도로 책상에 머리를 박고 수학 문제를 풀고 있다. 공부를 잘 한다는 건 어떤 느낌일까? 공부를 잘하면 나를 바라보는 마더의 눈빛도 분명 달라지겠지?
마더는 사마귀를 당장 빼야 한다며 매일 난리를 쳐댔지만 난 꿋꿋이 버텼다. 마더가 난리를 칠수록 사마귀를 빼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방치하면 계속 번질 수 있다니까?”
“번지면 어때서?”
몇 년 째 사마귀를 품고 살았지만 불편한 건 없었다. 면도칼로 사마귀를 긁어내는 나를 아이들이 이상하게 생각하는 것도 상관없다. 공부 못하고 개성 없는 멍청이보다 또라이가 나으니까. 나는 오히려 사마귀가 커질수록 친근하고 듬직하게 느껴졌다. 베스트프렌드를 손가락에 얹고 있는 것 같았다. 부지런히 자란 사마귀를 면도칼로 저미며 몰입하는 것도 좋았다. 그러고 있으면 신기하게도 지루한 수업 시간들이 후딱 지나갔다.
아무도 믿지 않겠지만 사마귀가 커질수록 숨겨둔 욕망이 커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동안 꾹꾹 누르며 살아온 욕망이 스멀스멀 기어 올라왔다. 나도 하나쯤은 잘하는 게 있었으면 좋겠다는 욕망.
마더는 심리치료사라나 뭐라나. 하여튼 마더는 엄청 바쁘다. 내가 똑똑하고 멋지게 자라줄 거라 믿었던 마더에게 나는 실패작이다. 내 존재 자체가 스트레스겠지. 마더 방에는 자기 환자들이 그린 그림이 가득 걸려 있다. 어떤 그림은 괴기스럽고 어떤 그림은 따뜻하다. 마더는 그 그림들을 나보다 아꼈다. 마더가 바빠 방을 자주 비우니까 그림들이 그 방의 주인 같다. 어두운 방에서 색깔을 잃고 죽어있는 그림들을 보면 싹 다 불태워 버리고 싶다.
그림 한 장으로 사람의 마음을 분석한다고? 나는 진짜 묻고 싶다. 마더,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그래도 전문가잖아. 그런데 아직도 그렇게 사람 마음이 단순하다고 생각해?
마더는 나를 혼낼 때마다 내게 그림을 그리라고 강요한다. 내가 그리는 그림으로 내 심리를 파악하려는 것이다. 내가 그림을 그리면 온순해지고 자기 말을 잘 들을 거라고 믿는다. 대체 그림이 뭐라고. 진짜 짜증 난다. 난 오히려 마더를 치료해주고 싶다. 파더와 이혼하면서, 아니 그 전부터 마더는 워크홀릭이었다. 애정 결핍을 일로 죽어라 채우는 거다. 쯧쯧, 모두 조금씩 미쳐 가고 있다.
마더와 파더가 사는 꼴을 보고 있노라면 어른이 되고 싶지 않다. 고등학생인 사촌형은 죽지 못해 산다고 했다. 고딩이 얼마나 피곤한지 중딩은 상상도 못할 거라나. 아직도 백수인 막둥이 고모는 좋은 대학을 나와도 취직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몸소 증명해주고 계신다. 취업준비생인 막내 고모는 그래도 대학생 때가 좋았다 그러고, 대학생인 동네 형은 고딩 때가 좋았다 그러고, 고딩인 사촌형은 중딩 때가 최고라고 한다. 이러니 어른이 되고 싶겠는가.
마더는 자주 협박한다. 수도권 내에 있는 대학에 가지 못하면 아무 지원도 해주지 않겠다고. 계산이 빠른 태균이 말에 따르면 수도권 내의 대학을 가려면 지금부터 반에서 3, 4등은 해야 한단다. 마더는 모른다. 공부를 잘 했던 사람들은 정말 모른다. 공부 못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답답하고 힘든지. 성적 이야기만 들으면 얼마나 숨이 막히고 도망가고 싶은지.
태균과 함께 피시방에 갔다. 컵라면 두 개를 시켜놓고 게임에 접속했다. 가슴이 쿵쾅거린다. 배경으로 흘러나오는 노래를 흥얼거리며 따라 했다. 나는 1인칭 슈팅 게임만 한다. 상대를 죽이지 못하면 내가 죽는 경기이기 때문에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하다. 게임을 조금만 해보면 바로 알 수 있다. 게임도 인생과 똑같다는 것을. 영원한 1등은 없다. 고수는 자기보다 더 센 고수가 나타나면 바로 꼬리를 내려야 한다. 어제 이겼던 방식으로 한다고 해도 오늘 또 이긴다는 보장이 없다.
게임을 할 때만큼은 누구보다 강인한 집중력을 발휘하지만 나는 게임도 못 한다. 게다가 1인칭 슈팅 게임은 요새 한물갔다. 요즘 유행하는 게임은 태균이가 하는 리그오브레전드, 일명 롤인데 나는 이것도 못 한다. 태균조차 “너 손 장애냐?”고 정색하며 물을 정도다.
그래도 나는 게임이 좋다. 피시방에 와 컵라면 냄새를 맡으면 마음이 편해진다. 가끔 게임 속이 현실인지, 지금 내가 살고 있는 현실이 게임인지 헷갈릴 때도 있지만 그건 문제 될 게 없다. 어차피 멀쩡한 정신으로 산다고 달라지는 건 없다.
태균이 녀석이 트림을 하며 대뜸 물었다.
“게임, 잘하고 싶지 않냐?”
“존나 잘하고 싶지.”
이 새끼가 지금 누구 염장 지르나. 나는 엄지손가락으로 사마귀를 만지작거리며 태균이를 살짝 노려봤다.
“야, 과외 받을래?”
“뭔 과외.”
“게임 과외.”
“그런 것도 있어?”
“우리 형이 완전 롤 고수잖아. 요즘 과외 많이 해준대.”
태균은 내 눈치를 잠깐 보더니 비장의 무기를 척 하고 꺼냈다.
“너랑 편먹기 나도 쪽팔린단 말이야.”
“그래서 그냥 이거 한다니까.”
“야, 요새 누가 그거 하냐. 다 롤하지.”
그건 태균이 말이 맞다. 나는 괜히 민망해져 마우스를 거칠게 두들겼다.
“얼마인데?”
“일대일 과외는 비싸. 최소한 십만원은 할 걸? 문화상품권도 받는대.”
이미 이번 달 용돈은 다 썼다. 나는 못 들은 척 헤드셋을 꼈다. 볼륨을 높이는데 그 틈으로 태균이 목소리가 파고든다.
“돈 더 주면 원하는 레벨까지 올려주기도 한대. 전문 강사가 게임을 대신 해주는 거지.”
돈으로 레벨을 산다. 말 되는군. 나는 엠피세븐이나 씨엠 같은 반동이 적은 총을 고르고 게임에 들어갔다. 게임에 집중하려 하는데 태균이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돈만 있으면 게임 과외도 할 수 있대. 레벨도 살 수 있대.
태균과 헤어져 집에 왔다. 텅 빈 집안을 서성였다. 마더 방문 앞에 서서 망설였다. 마더가 비상금을 숨겨두는 책을 나는 알고 있다. 아주 급할 때마다 조금씩 빼 썼는데 지금은 조금 빼 쓰는 걸로는 안 된다. 마더가 알면 완전 난리를 치겠지. 가슴이 밖으로 튀어나올 듯 세게 뛰었다. 나는 사마귀를 만지작거리며 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사마귀가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게임 레벨이 오르면 친구들이 널 어떻게 보겠어.
내가 대답했다.
다른 눈빛으로 보겠지.
그럼 기분이 어떻겠어.
죽여주겠지.
그런데 뭘 머뭇거려?
문손잡이를 돌렸다. 마더 방에 걸린 그림들을 보고 싶지 않아 책장만 바라보며 걸었다. 책장에서 『주식 재테크 비결』을 빼 책장을 휘리릭 넘겼다. 5만원짜리 지폐 몇 장을 얼른 주머니에 쑤셔 넣고 재빨리 마더 방을 나왔다. 몸을 잠깐 돌려 방문을 바라보는데 여전히 가슴이 쿵쾅거렸다. 침착해. 마더는 요새 정신없이 바빠. 한참 후에나 알 거야. 그렇게 다독여도 불안은 사라지지 않았다. 책을 제자리에 잘 꽂고 나왔나? 불을 켜놓고 나온 건 아닌가?
방으로 돌아와 컴퓨터 전원을 켰다. 게임 배경음을 듣자 졸아들었던 가슴이 금세 흥분으로 가득 찼다. 태균이 알려준 롤 강사에게 메일을 보냈다. 강사 또한 곧바로 답메일을 보내 계좌번호를 알려줬다. 나는 사마귀를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며칠만 참으면 돼. 강사가 레벨을 올려줄 거고 애들은 더이상 나를 무시하지 못할 거다. 느닷없이 사마귀 부위가 간지러웠다. 나는 손톱을 세워 사마귀 주위를 벅벅 긁어댔다.
유명중학교에 떠도는 전설은 세 가지였다. 첫 번째 전설의 주인공은 최대영이다. 이 녀석은 학교에 입학할 때부터 키가 175cm가 넘고 온몸이 근육이었다. 우리 학교와 바로 붙어있는 초등학교에서 주먹 좀 쓰는 일짱이었다. 이 녀석은 한 번 미끼를 물면 정신없이 싸대기를 연달아 퍼부은 뒤 상대방이 가드를 치기도 전에 얼굴에다가 하이킥을 날렸다. 코뼈를 부러뜨리거나 쌍코피를 흘리게 하거나 정신을 살짝 놓치게 만들었다. 일명 핵 하이킥이다.
전설의 시작은 상고 씨름부에서 힘 좀 쓴다는 뚱보형의 방문으로 시작한다. 뚱보가 학교로 찾아와 최대영에게 일대일로 붙자고 운을 떼는 순간 녀석은 하이킥을 연타로 날렸다. 몸무게를 전부 실은 발차기로 머리, 코, 가슴에 충격을 주자 뚱보는 윽 소리를 내며 뒤로 나자빠졌다.
두 번째 전설의 주인공은 태균의 형 이태주다. 형은 우리 학교는 물론 이 구역 최고의 롤 고수다. 아깝게 프로게이머가 되기 직전 손목 터널 증후군이 심해져 잠시 쉬고 있지만 형이 곧 프로게이머가 될 거라는 사실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다. 형이 프로게이머가 되면 태균이까지 유명해질 거다. 부러운 놈.
세 번째 전설은 빙그레 좀비다. 좀비가 노숙자처럼 학교를 배회하며 학교에서 먹고 자고 한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원래는 선생들이 돌아가면서 당직을 섰는데 좀비가 자청해 매일 당직실에서 잔다는 거다. 이상하게도 이 소문은 학부모들에게 알려지지 않았다.
약속한 날짜가 지났는데도 내 레벨은 여전히 바닥이었다. 강사에게 메일을 보냈지만 수신확인조차 하지 않았다. 답답한 마음에 태균이 녀석을 족쳤다. 내 추궁에 태균은 땀을 뻘뻘 흘렸다.
“바쁘겠지. 곧 해줄 거야. 믿을 만한 사람이라니까.”
“정말이야?”
“그, 그렇다니까.”
“말은 왜 갑자기 더듬어? 분명히 금방 해준다고 했어?”
“곧 해준대. 형이 요새 손목이 안 좋아서……”
“형?”
“아, 그게, 그, 그러니까.”
태균의 눈빛이 흔들렸다. 내가 녀석을 날카롭게 째려보자 녀석은 어깨를 움찔하며 뒤로 물러섰다.
“강사님이 바쁘다고 해서 형한테 부탁했거든.”
“뭐? 나한테 구라친 거야?”
속에서 뜨거운 불이 올라왔다. 이제는 친구 녀석도 나를 개밥 취급하는구나. 화가 나니 사마귀 부위가 미친 듯이 가려웠다. 볼록 튀어나온 사마귀가 오늘따라 나를 거슬리게 했다.
“미안해.”
“당장 돈 돌려줘.”
“안 돼. 형이 급히 쓸 때가 있댔어.”
“야! 너 정말!”
빡치는 일의 연속이다. 잘 하는 건 없고 이번 생은 망했고 친구라는 녀석은 거짓말로 뒤통수를 치며 삥 뜯을 생각만 하다니.
“형이 꼭 해준다고 했어. 한번만 날 믿어봐.”
거짓말로 날 속인 놈이 자기를 믿어달란다. 나는 녀석의 말을 씹고 그대로 피시방을 빠져나왔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컴퓨터를 켰다. 골치 아플 때는 게임이 최고다. 게임의 세계에서 몰두하면 중요하다고 생각한 일들이 얼마나 하찮은 일들인지 알게 된다.
“김영욱!”
마더가 방문을 두드렸다. 늘 그랬듯이 노크 소리는 규칙적인 간격으로 울렸다.
“너 또 게임하니? 당장 나와 봐.”
웬일로 이 시간에 마더가 집에 있지? 오늘 기분 정말 엉망인데 마더까지 내 속을 긁을 모양이군. 나는 마른세수를 하며 게임 접속을 끊었다.
“왜?”
나는 얼굴을 잔뜩 찡그리며 방문을 열었다. 오늘은 제발 건드리지 마. 심리치료사면 내 마음도 좀 읽으라고.
“여기 앉아 봐.”
마더는 식탁 의자를 가리켰다. 자기 맞은편에 나를 앉히더니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예감이 안 좋다. 또 오래도록 혼을 내겠지. 나는 마더를 보고 싶지 않아 옆으로 앉았다. 팔로 고개를 괴고 딴청을 피웠다.
“학원 빠지면 엄마한테 미리 이야기해달라고 했잖아. 그게 그렇게 어렵니?”
마더는 모른다. 마더 목소리에서 매번 무엇을 느끼는지.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말해야 심리치료사 체면을 지킨다고 믿지만 나는 그 목소리에 깔려 있는 분노를 고스란히 느낀다. 가식적으로 웃으려고 노력한 상냥한 얼굴 뒤에 숨어 있는 미움을 알아차린다.
“게임 완전 개발려서 지금 빡 돌겠으니까 오늘은 이만하시죠.”
“김영욱.”
마더 목소리가 한층 낮아지고 어두워지면, 감췄던 분노와 미움이 조금씩 얼굴을 드러내면 나는 그만큼 마더를 더 자극하고 싶어진다.
“학원 다녀도 소용없다니까.”
“엄마한테 말투가 그게 뭐니. 응?”
아무리 눌러도 드러나고야 마는 실망감을 알아차리면 나는 그만큼 마더를 더 미워하고 싶어진다.
“말투가 뭐 어때서? 별거 가지고 다 트집이야. 좆나 짜증 나게.”
마더의 입술이 부르르 떨렸다. 이제 마더도 한계에 다다른다.
“엄마 방에 들어왔었지.”
마더의 말 한 마디에 상황이 역전됐다.
“아니.”
나는 모른 척 시치미를 떼며 애꿎은 벽만 바라본다. 마더가 다시 목소리를 깔았다.
“서재에서 뭘 했는지 솔직히 말해봐. 혼 안 낼게.”
정말요, 마더? 마더 아들은 친구한테까지 삥을 뜯기는 병신에, 아무리 학원을 다녀도 성적이 오르지 않는 멍청이에, 밥만 축내는 식충이인데 도둑질까지 하거든요. 그 사실을 알고도 화 안 낼 자신이 있어요? 마더는 그 정도로 인내심이 세요?
“샤프 찾으러 갔어.”
나도 모르게 눈을 굴리고야 말았다. 젠장, 마더가 거짓말인 걸 눈치 챘겠군.
“뭣 때문에 돈이 필요한지 모르겠지만 솔직히 말했다면 넘어갔을 거야. 한 번은 그럴 수 있으니까. 그런데 끝까지 거짓말이구나.”
흘깃 마더 쪽을 바라보니 두 눈이 빨갛게 충혈 되어 갔다.
“이번 주말 그림 치료, 빠질 생각하지 마렴.”
마더는 성인군자처럼 도도하게 자리에서 일어섰다. 마더가 서재로 들어가 방문을 찰칵 닫았다. 나는 다리를 덜덜 떨며 사마귀를 이로 물어뜯었다. 마더는 도둑질을 한 쓰레기한테 화 한 번 내지 않고 그림 치료를 명령했다. 혹독한 상담 시간이 되겠군. 이번 주말이 벌써부터 기다려졌다.
아까까지만 해도 조용했던 사마귀가 입을 열기 시작했다.
마더가 화내 봤자지. 넌 잘못한 거 없어. 마더가 용돈을 두둑이 줬더라면 애초에 이럴 일도 없잖아.
더는 사마귀가 지껄이는 얘기를 듣고 싶지 않아 손가락 끝으로 사마귀를 세게 눌렀다. 하지만 놈은 입을 다물 생각이 없었다.
아빠한테 말해. 엄마랑 살기 싫다고. 그러면 다 해결돼. 그리고 사내놈들은 가끔 사고도 치고 그러는 거야. 안 그래?
입에서 깊은 한숨이 튀어나왔다. 그냥 죽어 버릴까? 어제 검색창에서 본 뉴스가 떠올랐다. ‘다음 생에는 공부 잘할게요, 미안해요.’ 이런 문자를 부모에게 보내고 스물 몇 살 형이 자살을 했단다. ‘다음 생에는 착한 아들로 태어날게요, 미안해요.’ 나도 이런 문자를 마더에게 보내고 그냥 목이나 맬까? 그럼 마더가 아무것도 잘하는 거 없는 나를 용서해주지 않을까? 그림 그리는 걸 강요한 내게 미안해하지 않을까?
아빠 얼굴이 떠올랐다. 나를 볼 때마다 배시시 웃던 아빠 미소가 생각났다. 아빠와 엄마가 이혼하기 전에는 아빠와 자주 놀았다. 야구도 보러 가고 배드민턴도 치고 노래방도 같이 갔다.
“누구 아들이 이렇게 노래를 잘하냐.”
아빠는 내 노래 듣는 걸 좋아했다. 나보고 폐활량이 좋다고, 목소리가 멋지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아들 기 살려주려고 하는 말인 걸 알면서도 나는 기분이 좋았다.
아빠가 짐을 챙겨 집을 나갔을 때 나는 버림받았다고 느꼈다. 그런데도 가끔은 견딜 수 없이 아빠가 보고 싶었다. 이혼하기 전에도 아빠는 집을 자주 비웠다. 아빠가 누구 때문에 돈을 열심히 버는지 알면서도 아빠가 회사에서 잘렸으면, 출장을 안 다녔으면, 하고 어린아이처럼 바란 적도 있었다.
이번 생은 망했지만 죽을 용기조차 없는 한심한 인간은 무작정 집을 나왔다. 갈 곳이라곤 태균이네 뿐인데 오늘은 꼴도 보고 싶지 않았다. 목적 없이 걸었다. 발길이 닫는 대로 헤매다가 학교 정문 앞에 도착했다. 문득 학교에 떠도는 소문이 생각났다. 소문이 사실일까? 정말 빙그레 좀비는 매일 학교에서 잘까?
학교는 어두컴컴했다. 금방이라도 귀신이 튀어나올 것처럼 기괴했다. 1층 행정실을 지나 계단을 올랐다. 2층 교무실을 지나 복도 맨 끝에 위치한 교사 휴게실로 향했다. 휴게실에서 흘러나오는 빛이 어둠 사이로 가늘게 보였다. 용기를 내 문을 두드렸다. 잠시 침묵. 다시 똑똑 두드리자 벌컥 문이 열렸다. 빙그레 좀비가 나보다도 당황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삼 반 김영욱?”
좀비가 내 이름을 알고 있다니. 나는 좀비보다 더 눈을 동그랗게 뜨고야 말았다.
“이 시간에 여기서 뭐하니?”
좀비는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수업 시간에 수학 문제를 풀며 내는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아니었다.
“뭐 찾으려다가……, 불빛이 보이길래……”
“들어오렴.”
좀비가 문에서 물러서며 말했다. 나는 멀뚱멀뚱 망설이다가 마지못해 들어갔다. 좀비가 소파에 앉았고 내게 의자에 앉으라고 손짓했다. 나는 좀비에게 물리고 싶지 않은 순한 양이 되어 의자에 앉았다. 휴게실을 찬찬히 둘러보는데 좀비가 손가락으로 머리를 박박 긁었다. 하얀 점 같은 비듬이 후드득 소파 위로 떨어졌다. 아까까지만 해도 배가 고팠는데 왕비듬을 보자 식욕이 싹 사라졌다.
“무슨 고민 있니?”
두피로 파고드는 손가락처럼 좀비가 예리하게 나를 파고들었다.
“아뇨.”
“네 얼굴에 다 씌어 있다. 나는 억지로 살고 있수다, 이렇게.”
좀비가 마더보다 낫군.
“사마귀 땜에요.”
“사마귀?”
내가 왼손을 내밀어 사마귀를 보여주자 좀비는 입을 삐죽 내밀었다.
“그게 왜?”
“전 빼기 싫은데 엄마는 계속 빼라고 해요.”
“넌 왜 빼기 싫은데?”
솔직히 말하기는 싫고 그럴듯한 거짓말을 하고 싶은데 나는 거짓말에도 재능이 없다.
“그냥요.”
좀비가 손가락으로 코를 파더니 다 늘어난 면바지에 묻혔다. 우웩. 나오려는 구역질을 간신히 참았다. 잠깐의 침묵이 이어졌다. 역공을 펼칠 기회였다.
“선생님은 왜 여기서 자요?”
“당직이니까.”
“왜 선생님만 당직을 해요?”
먹혔다. 묵직한 한 방에 좀비의 귀가 살짝 빨개졌다. 좀비는 입맛을 다시며 적당한 거짓말을 찾는 듯 보였다.
“애들 사이에서 선생님 별명이 뭔지 아세요?”
마지막 한 방은 내가 생각해도 셌다. 좀비는 뺨이 얼얼하고 정신이 좀 없을 거다. 나는 내심 자신만만했다.
“빙그레 좀비?”
헐, 어떻게 알았지? 선생들 별명은 애들끼리만 공유하는데.
“왜 노숙자처럼 여기서 이러고 사냐, 이걸 묻는 거지?”
대꾸할 말을 찾지 못해 입을 다물었다.
“남의 시선이나 인정이 엄청나게 중요하다고 생각하니?”
선생이 나를 빤히 쳐다봤다. 그 눈길은 좀비의 것이 아니었다. 선생은 꽤나 진지하고 꽤나 따뜻한 눈빛으로 내 눈동자를 바라봤다.
“남들이 날 어떻게 생각하는지, 나에 대해 뭐라고 떠드는지 난 관심 없거든.”
선생이 무심코 바지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냈다. 나를 한 번 흘깃 보고는 담배를 주머니에 도로 넣고 껌을 꺼냈다. 나한테 껌을 내밀더니 껍질을 까 자기 입에도 넣었다.
“학창 시절에 난 수학 천재였어. 수학 문제만 풀면 시간 가는 줄 몰랐지. 근데 어른들은 날 가만히 두지 않았어. 올림피아드 대회에 나가야 한다는 둥, 하버드 수학 천재들과 경쟁해야 한다는 둥, 미국 NASA에 들어가야 한다는 둥 끊임없이 내 삶에 간섭했지. 나는 천재로 불리는 대신 내가 즐거운 걸 하기로 마음먹었어.”
껌을 씹다가 두 손을 마주 잡았다. 손에 땀이 가득 찼다는 걸 깨닫고 손바닥을 바지에 문질렀다.
“선생님은 몰라요. 공부 못하고 잘하는 거 하나 없는 게 얼마나 비참한지.”
어느새 나는 입을 열고 속마음을 얘기하고 있었다.
“엄마도 저를 창피해한다니까요.”
나는 돌출된 사마귀를 손가락으로 문지르며 고개를 푹 숙였다.
“넌 아직 중2다. 햇병아리라고.”
고개를 천천히 들어 올렸다. 선생은 껌을 손가락으로 늘이며 소파에 몸을 기댔다.
“키는 더 클 거고, 잘하는 걸 하나라도 찾을 거야. 그리고 엄마는 너를 사랑한다.”
선생의 목소리가 어느 때보다 부드러워서일까. 나는 아무 반박도 하지 못했다.
“그만 가볼게요.”
내가 벌떡 일어나자 선생은 그러라고 했다. 나는 학교 건물을 빠져나와 동네 놀이터로 걸어갔다. 그네에 앉아 하늘을 바라봤다. 꽉 차오른 달이 가까이 떠 있었다. 달의 표면이 손에 만져질 듯 제법 자세히 보였다. 달에 어울리는 노래가 있을까. 나는 이어폰을 꽂고 즐겨 듣는 노래를 틀었다. 눈을 감으며 노래를 따라 불렀다. 답답했던 마음이 금세 풀리면서 기분이 한결 좋아졌다.
체육관을 돌아 집으로 향하는데 휴대폰이 울렸다. 마더인가? 바짝 긴장한 채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냈다. 다행히 아빠였다.
“영욱아, 아빠야. 잘 지내지?”
나는 묵묵부답으로 버티다가 마음속에 응어리진 말을 내뱉었다.
“아빠, 나 아빠랑 살고 싶어. 엄마랑 살기 싫어.”
“영욱아……”
아빠가 길게 한숨을 쉬었다. 그러더니 한 박자 쉰 다음 말했다.
“아빠가 엄마한테 큰 잘못을 했어. 엄마한테 잘 해주렴. 아빠가 부탁할게. 응?”
무슨 잘못? 잘못한 사람은 아빠인데 왜 나보고 엄마한테 잘 하래? 아빠 이렇게 비겁한 사람이었어? 이런 식으로 나를 또 버리려는 거지? 내가 힘들든 말든 상관없다 이거지? 따발총처럼 따져 묻고 싶었지만 나는 순순히 전화를 끊었다.
울적했다.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고는 길거리에 굴러다니는 돌멩이를 발로 걷어찼다. 그러고도 기분이 나아지지 않아 숨을 씩씩대고 있는데 이상한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 체육관 뒤편에 있는 어둑한 곳이었다. 세 명이 한 아이를 코너로 몰며 때렸다. 여러 개의 발이 사정없이 아이에게 꽂혔다. 퍽, 퍽, 윽, 윽. 장단을 타듯 리드미컬하게 구타가 진행됐다. 아이는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더니 발길질을 견뎠다. 경찰에 신고할까? 신고한 사람이 나라는 게 알려지면 어떡하지?
내가 주춤대는 사이 아이의 신음소리가 커졌다. 이대로 놔두면 죽을지도 몰라. 그런데 죽고 싶은 사람은 나잖아? 내가 대신 맞자. 죽으면 그만이고 죽지 못하고 병원에 실려 가면 마더와의 상담 시간을 피할 수 있고. 눈을 질끈 감고 아이한테 뛰어갔다. 내가 뛰어들려는 순간 체육관 뒷문에서 키 큰 애가 날아왔다. 최대영이었다. 아이들은 최대영의 발차기에 낙엽처럼 쓰러졌다. 나는 입을 쫙 벌린 채 괴로움으로 일그러진 아이들의 얼굴을 바라봤다.
최대영은 쓰러진 아이를 일으켜 세웠다. 다친 아이를 부축하는 모습이 힘겨워 보였다. 갑자기 힘을 많이 써서 그런가. 나는 얼른 뛰어가 아이의 남은 팔을 내 어깨에 걸쳤다. 최대영은 나를 씩 돌아보더니 고맙다고 했다. 녀석의 미소가 깨끗했다.
다친 아이를 집까지 데려다준 다음 최대영과 나는 다시 체육관으로 걸어갔다. 나는 집이 체육관 근처였고 최대영은 체육관에 놔두고 온 짐이 있다고 했다.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리는데 최대영이 다짜고짜 물었다.
“운동 안 하냐?”
“안 하는데.”
“좀 해라. 팔이 그게 뭐냐. 같이 체육관 다닐래?”
하아, 싸움짱과의 헬스 트레이닝이라. 이건 또 얼마짜리인가. 게임 레벨 올리는데 십만 원을 요구했으니 이건 이십? 삼십?
“얼만데?”
내 말에 최대영은 키득거렸다.
“뭔 말이냐?”
“몸짱 만들어주겠다는 거잖아. 얼만데?”
“새꺄, 몸짱은 스스로 되는 거지 남이 어떻게 만들어줘? 어린놈이 왜 그러냐? 벌써부터 돈돈거리고.”
민망해진 내가 뜸을 들이자 최대영이 이어 말했다.
“운동하면 기분 쩔어. 키도 크고.”
싸움짱이면 당연히 거만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최대영은 그렇지 않았다. 나이 차이 많이 나는 형이 있다더니, 최대영은 어쩐지 늙탱이 같았다.
“너, 노래 잘 하더라?”
최대영이 불쑥 말했다.
“내가? 누가 그래?”
“놀이터에서 가끔 너 봤거든. 그네에 앉아 노래 불렀잖아. 목소리 좋던데?”
머릿속이 하얗게 변해 아무 대꾸도 할 수 없었다.
“부럽더라. 난 완전 음치거든.”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나는 고개를 홱 돌렸다. 최대영이 새빨개진 내 얼굴을 못 봤기를 바라면서.
“아, 씨. 아직도 중딩이라니. 시간이 확 갔으면 좋겠다.”
최대영이 주머니에 손을 쑥 집어넣으며 말했다.
“난 어른 되기 싫은데.”
“그래봤자 뭐하냐. 어차피 될 건데.”
과연 그럴까? 어른이 될 수 있을까? 이 시간들이 지나가버리긴 할까? 차들이 빠른 속도로 우리를 스쳐 지나갔다. 그새 자란 사마귀가 욱신거렸다. 손가락으로 사마귀를 박박 긁었다.
“근데 아까부터 뭘 그렇게 긁어대냐?”
“어? 사마귀.”
초록색 불이 들어왔다. 최대영이 성큼성큼 횡단보도를 건넜다. 나는 최대영의 걸음 속도에 맞추려고 부지런히 걸으며 말했다.
“곧 뺄 거야.”
더는 사마귀를 만지지 않으려고 주먹을 단단히 말아 쥐었다. 횡단보도를 건넌 뒤 우리는 헤어졌다. 최대영은 체육관으로, 나는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낮게 내려온 달을 바라보며 계속 걸었다. 주먹 안에 갇힌 사마귀는 잠잠했다.
나는 입술에 침을 묻히며 중얼거렸다. 긴장해야 한다. 한 번의 실수가 일 년 내내 따라다닐 수 있다. 우리 쪽에서 넘긴 공이 곧 다시 올 것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막아야 한다. 공이 뜬다. 상대편 공격수가 공을 친다. 나는 힘껏 점프해 블로킹을 시도한다. 삐익. 호루라기 소리가 울린다.
“뭐야 또?”
나는 잔뜩 짜증을 내며 물었다.
“네트 범실이야.”
태균이 힘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땅이 꺼질 듯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숙였다. 아이들이 단체로 내게 화를 냈다.
어차피 나는 글렀다. 이번 생은 망했다. 나는 잘하는 게 아무것도 없고 사는 건 정말 재미 대가리가 일도 없다.
아이들이 땀 냄새를 풀풀 풍기며 교실에 들어섰다. 교복으로 갈아입느라 바쁜 와중에 아이들은 최대영을 흘낏 바라봤다. 드디어 최대영이 웃통을 까자 모두 부러운 눈길로 녀석의 복근을 훔쳐봤다. 완벽하게 매끈한 초콜릿 복근을 기본 장착하고 있는 녀석은 우리 학교 서열 1위 싸움짱이다. 저런 몸과 민첩한 운동 신경과 아이들 얼굴에 마음껏 펀치를 날릴 수 있는 싸움 실력을 하루만 가져봤으면. 하지만 모두 부질없는 소원이다. 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있다. 어차피 나는 안 된다는 걸. 이미 늦었다는 걸.
“의리에 살고 의리에 죽는 의리파래.”
태균이 은밀한 목소리로 소곤거렸다.
“누가?”
“최대영.”
“쳇, 싸움짱이 의리는 무슨.”
선풍기가 달달 소리를 내며 돌아갔다. 수학 시간이 시작됐다. 선생이 칠판에 그리는 함수 그래프를 멍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으니 어제 망친 게임 생각이 났다. 하나씩 되짚어보면 전략 자체가 잘못된 셈이었다. 맵을 제대로 파악하지 않고 덜컥 도전장을 내민 게 실수였다. 그다지 화가 나지도 않았다. 어차피 승리와는 거리가 먼 인생. 그 많은 실패에 하나의 실패를 살포시 얹는다고 더 쪽팔리거나 슬퍼할 것도 없다.
왼쪽 가운데 손가락에 솟아있는 사마귀는 오늘따라 더 부풀었다. 베루말을 바른 후 잠시 동안 사마귀를 골똘히 들여다봤다. 비릿한 약 냄새 때문인지 옆자리 태균이 인상을 팍 찌푸렸다. 나는 여유롭게 주머니에서 면도칼을 꺼냈다. 칼날을 교복에다가 쓱싹 문지르고 사마귀를 긁어냈다. 몇몇 놈들이 내 행동을 주의 깊게 살피는 시선이 느껴졌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눈앞으로 왼쪽 손을 바짝 끌어당겨 사마귀를 긁었다. 오로지 사마귀와 나만 존재하는 이 순간, 이 치밀한 극도의 몰입. 어차피 글러 먹은 인생을 살지만 이렇게 가끔 행복을 느끼기도 한다. 주책맞게도.
어쨌든 나는 책상 밑으로 왼손을 처박고 가운데 손가락으로 퍽큐를 날렸다. 선생한테 퍽큐를 날리려는 건 아니었다. 면도칼로 사마귀를 긁어내면 살짝 아프기 때문에 이런 포즈를 해주는 게 좋다. 욱신거리던 사마귀 부위가 이렇게 퍽큐 포즈만 해주면 얌전해진다. 엄지손가락으로 사마귀를 다시 문질러봤다. 면도칼로 긁어내도 사마귀는 금세 자랐다. 털을 자주 자르면 억센 털이 나오듯 사마귀는 깎을수록 더 강하고 커졌다. 아무리 잘라내도 다시 자라는, 그러면서 하루가 다르게 커지는 사마귀가 어쩐지 기특했다.
수학 선생의 별명은 빙그레 좀비였다. 선생은 서울역 노숙자처럼 후줄근한 옷만 입고 다녔다. 오랫동안 감지 않은 머리카락은 자기들끼리 엉켜 있고 웃통을 까면 뼈가 보일 것 같은 바싹 마른 몸을 겨우 지탱하며 허우적허우적 걸어 다녔다. 서울역을 배경으로 한 좀비물 영화가 흥행한 뒤 선생은 좀비로 불렸다. 그런데 기운이 도통 없어 보이는 사람이 수학 문제를 풀 때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인 양 빙그레 웃었다.
반에서 일등, 이등인 놈을 힐끔거렸다. 놈들은 목이 아래로 푹 꺾어질 정도로 책상에 머리를 박고 수학 문제를 풀고 있다. 공부를 잘 한다는 건 어떤 느낌일까? 공부를 잘하면 나를 바라보는 마더의 눈빛도 분명 달라지겠지?
마더는 사마귀를 당장 빼야 한다며 매일 난리를 쳐댔지만 난 꿋꿋이 버텼다. 마더가 난리를 칠수록 사마귀를 빼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방치하면 계속 번질 수 있다니까?”
“번지면 어때서?”
몇 년 째 사마귀를 품고 살았지만 불편한 건 없었다. 면도칼로 사마귀를 긁어내는 나를 아이들이 이상하게 생각하는 것도 상관없다. 공부 못하고 개성 없는 멍청이보다 또라이가 나으니까. 나는 오히려 사마귀가 커질수록 친근하고 듬직하게 느껴졌다. 베스트프렌드를 손가락에 얹고 있는 것 같았다. 부지런히 자란 사마귀를 면도칼로 저미며 몰입하는 것도 좋았다. 그러고 있으면 신기하게도 지루한 수업 시간들이 후딱 지나갔다.
아무도 믿지 않겠지만 사마귀가 커질수록 숨겨둔 욕망이 커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동안 꾹꾹 누르며 살아온 욕망이 스멀스멀 기어 올라왔다. 나도 하나쯤은 잘하는 게 있었으면 좋겠다는 욕망.
마더는 심리치료사라나 뭐라나. 하여튼 마더는 엄청 바쁘다. 내가 똑똑하고 멋지게 자라줄 거라 믿었던 마더에게 나는 실패작이다. 내 존재 자체가 스트레스겠지. 마더 방에는 자기 환자들이 그린 그림이 가득 걸려 있다. 어떤 그림은 괴기스럽고 어떤 그림은 따뜻하다. 마더는 그 그림들을 나보다 아꼈다. 마더가 바빠 방을 자주 비우니까 그림들이 그 방의 주인 같다. 어두운 방에서 색깔을 잃고 죽어있는 그림들을 보면 싹 다 불태워 버리고 싶다.
그림 한 장으로 사람의 마음을 분석한다고? 나는 진짜 묻고 싶다. 마더,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그래도 전문가잖아. 그런데 아직도 그렇게 사람 마음이 단순하다고 생각해?
마더는 나를 혼낼 때마다 내게 그림을 그리라고 강요한다. 내가 그리는 그림으로 내 심리를 파악하려는 것이다. 내가 그림을 그리면 온순해지고 자기 말을 잘 들을 거라고 믿는다. 대체 그림이 뭐라고. 진짜 짜증 난다. 난 오히려 마더를 치료해주고 싶다. 파더와 이혼하면서, 아니 그 전부터 마더는 워크홀릭이었다. 애정 결핍을 일로 죽어라 채우는 거다. 쯧쯧, 모두 조금씩 미쳐 가고 있다.
마더와 파더가 사는 꼴을 보고 있노라면 어른이 되고 싶지 않다. 고등학생인 사촌형은 죽지 못해 산다고 했다. 고딩이 얼마나 피곤한지 중딩은 상상도 못할 거라나. 아직도 백수인 막둥이 고모는 좋은 대학을 나와도 취직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몸소 증명해주고 계신다. 취업준비생인 막내 고모는 그래도 대학생 때가 좋았다 그러고, 대학생인 동네 형은 고딩 때가 좋았다 그러고, 고딩인 사촌형은 중딩 때가 최고라고 한다. 이러니 어른이 되고 싶겠는가.
마더는 자주 협박한다. 수도권 내에 있는 대학에 가지 못하면 아무 지원도 해주지 않겠다고. 계산이 빠른 태균이 말에 따르면 수도권 내의 대학을 가려면 지금부터 반에서 3, 4등은 해야 한단다. 마더는 모른다. 공부를 잘 했던 사람들은 정말 모른다. 공부 못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답답하고 힘든지. 성적 이야기만 들으면 얼마나 숨이 막히고 도망가고 싶은지.
태균과 함께 피시방에 갔다. 컵라면 두 개를 시켜놓고 게임에 접속했다. 가슴이 쿵쾅거린다. 배경으로 흘러나오는 노래를 흥얼거리며 따라 했다. 나는 1인칭 슈팅 게임만 한다. 상대를 죽이지 못하면 내가 죽는 경기이기 때문에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하다. 게임을 조금만 해보면 바로 알 수 있다. 게임도 인생과 똑같다는 것을. 영원한 1등은 없다. 고수는 자기보다 더 센 고수가 나타나면 바로 꼬리를 내려야 한다. 어제 이겼던 방식으로 한다고 해도 오늘 또 이긴다는 보장이 없다.
게임을 할 때만큼은 누구보다 강인한 집중력을 발휘하지만 나는 게임도 못 한다. 게다가 1인칭 슈팅 게임은 요새 한물갔다. 요즘 유행하는 게임은 태균이가 하는 리그오브레전드, 일명 롤인데 나는 이것도 못 한다. 태균조차 “너 손 장애냐?”고 정색하며 물을 정도다.
그래도 나는 게임이 좋다. 피시방에 와 컵라면 냄새를 맡으면 마음이 편해진다. 가끔 게임 속이 현실인지, 지금 내가 살고 있는 현실이 게임인지 헷갈릴 때도 있지만 그건 문제 될 게 없다. 어차피 멀쩡한 정신으로 산다고 달라지는 건 없다.
태균이 녀석이 트림을 하며 대뜸 물었다.
“게임, 잘하고 싶지 않냐?”
“존나 잘하고 싶지.”
이 새끼가 지금 누구 염장 지르나. 나는 엄지손가락으로 사마귀를 만지작거리며 태균이를 살짝 노려봤다.
“야, 과외 받을래?”
“뭔 과외.”
“게임 과외.”
“그런 것도 있어?”
“우리 형이 완전 롤 고수잖아. 요즘 과외 많이 해준대.”
태균은 내 눈치를 잠깐 보더니 비장의 무기를 척 하고 꺼냈다.
“너랑 편먹기 나도 쪽팔린단 말이야.”
“그래서 그냥 이거 한다니까.”
“야, 요새 누가 그거 하냐. 다 롤하지.”
그건 태균이 말이 맞다. 나는 괜히 민망해져 마우스를 거칠게 두들겼다.
“얼마인데?”
“일대일 과외는 비싸. 최소한 십만원은 할 걸? 문화상품권도 받는대.”
이미 이번 달 용돈은 다 썼다. 나는 못 들은 척 헤드셋을 꼈다. 볼륨을 높이는데 그 틈으로 태균이 목소리가 파고든다.
“돈 더 주면 원하는 레벨까지 올려주기도 한대. 전문 강사가 게임을 대신 해주는 거지.”
돈으로 레벨을 산다. 말 되는군. 나는 엠피세븐이나 씨엠 같은 반동이 적은 총을 고르고 게임에 들어갔다. 게임에 집중하려 하는데 태균이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돈만 있으면 게임 과외도 할 수 있대. 레벨도 살 수 있대.
태균과 헤어져 집에 왔다. 텅 빈 집안을 서성였다. 마더 방문 앞에 서서 망설였다. 마더가 비상금을 숨겨두는 책을 나는 알고 있다. 아주 급할 때마다 조금씩 빼 썼는데 지금은 조금 빼 쓰는 걸로는 안 된다. 마더가 알면 완전 난리를 치겠지. 가슴이 밖으로 튀어나올 듯 세게 뛰었다. 나는 사마귀를 만지작거리며 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사마귀가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게임 레벨이 오르면 친구들이 널 어떻게 보겠어.
내가 대답했다.
다른 눈빛으로 보겠지.
그럼 기분이 어떻겠어.
죽여주겠지.
그런데 뭘 머뭇거려?
문손잡이를 돌렸다. 마더 방에 걸린 그림들을 보고 싶지 않아 책장만 바라보며 걸었다. 책장에서 『주식 재테크 비결』을 빼 책장을 휘리릭 넘겼다. 5만원짜리 지폐 몇 장을 얼른 주머니에 쑤셔 넣고 재빨리 마더 방을 나왔다. 몸을 잠깐 돌려 방문을 바라보는데 여전히 가슴이 쿵쾅거렸다. 침착해. 마더는 요새 정신없이 바빠. 한참 후에나 알 거야. 그렇게 다독여도 불안은 사라지지 않았다. 책을 제자리에 잘 꽂고 나왔나? 불을 켜놓고 나온 건 아닌가?
방으로 돌아와 컴퓨터 전원을 켰다. 게임 배경음을 듣자 졸아들었던 가슴이 금세 흥분으로 가득 찼다. 태균이 알려준 롤 강사에게 메일을 보냈다. 강사 또한 곧바로 답메일을 보내 계좌번호를 알려줬다. 나는 사마귀를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며칠만 참으면 돼. 강사가 레벨을 올려줄 거고 애들은 더이상 나를 무시하지 못할 거다. 느닷없이 사마귀 부위가 간지러웠다. 나는 손톱을 세워 사마귀 주위를 벅벅 긁어댔다.
유명중학교에 떠도는 전설은 세 가지였다. 첫 번째 전설의 주인공은 최대영이다. 이 녀석은 학교에 입학할 때부터 키가 175cm가 넘고 온몸이 근육이었다. 우리 학교와 바로 붙어있는 초등학교에서 주먹 좀 쓰는 일짱이었다. 이 녀석은 한 번 미끼를 물면 정신없이 싸대기를 연달아 퍼부은 뒤 상대방이 가드를 치기도 전에 얼굴에다가 하이킥을 날렸다. 코뼈를 부러뜨리거나 쌍코피를 흘리게 하거나 정신을 살짝 놓치게 만들었다. 일명 핵 하이킥이다.
전설의 시작은 상고 씨름부에서 힘 좀 쓴다는 뚱보형의 방문으로 시작한다. 뚱보가 학교로 찾아와 최대영에게 일대일로 붙자고 운을 떼는 순간 녀석은 하이킥을 연타로 날렸다. 몸무게를 전부 실은 발차기로 머리, 코, 가슴에 충격을 주자 뚱보는 윽 소리를 내며 뒤로 나자빠졌다.
두 번째 전설의 주인공은 태균의 형 이태주다. 형은 우리 학교는 물론 이 구역 최고의 롤 고수다. 아깝게 프로게이머가 되기 직전 손목 터널 증후군이 심해져 잠시 쉬고 있지만 형이 곧 프로게이머가 될 거라는 사실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다. 형이 프로게이머가 되면 태균이까지 유명해질 거다. 부러운 놈.
세 번째 전설은 빙그레 좀비다. 좀비가 노숙자처럼 학교를 배회하며 학교에서 먹고 자고 한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원래는 선생들이 돌아가면서 당직을 섰는데 좀비가 자청해 매일 당직실에서 잔다는 거다. 이상하게도 이 소문은 학부모들에게 알려지지 않았다.
약속한 날짜가 지났는데도 내 레벨은 여전히 바닥이었다. 강사에게 메일을 보냈지만 수신확인조차 하지 않았다. 답답한 마음에 태균이 녀석을 족쳤다. 내 추궁에 태균은 땀을 뻘뻘 흘렸다.
“바쁘겠지. 곧 해줄 거야. 믿을 만한 사람이라니까.”
“정말이야?”
“그, 그렇다니까.”
“말은 왜 갑자기 더듬어? 분명히 금방 해준다고 했어?”
“곧 해준대. 형이 요새 손목이 안 좋아서……”
“형?”
“아, 그게, 그, 그러니까.”
태균의 눈빛이 흔들렸다. 내가 녀석을 날카롭게 째려보자 녀석은 어깨를 움찔하며 뒤로 물러섰다.
“강사님이 바쁘다고 해서 형한테 부탁했거든.”
“뭐? 나한테 구라친 거야?”
속에서 뜨거운 불이 올라왔다. 이제는 친구 녀석도 나를 개밥 취급하는구나. 화가 나니 사마귀 부위가 미친 듯이 가려웠다. 볼록 튀어나온 사마귀가 오늘따라 나를 거슬리게 했다.
“미안해.”
“당장 돈 돌려줘.”
“안 돼. 형이 급히 쓸 때가 있댔어.”
“야! 너 정말!”
빡치는 일의 연속이다. 잘 하는 건 없고 이번 생은 망했고 친구라는 녀석은 거짓말로 뒤통수를 치며 삥 뜯을 생각만 하다니.
“형이 꼭 해준다고 했어. 한번만 날 믿어봐.”
거짓말로 날 속인 놈이 자기를 믿어달란다. 나는 녀석의 말을 씹고 그대로 피시방을 빠져나왔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컴퓨터를 켰다. 골치 아플 때는 게임이 최고다. 게임의 세계에서 몰두하면 중요하다고 생각한 일들이 얼마나 하찮은 일들인지 알게 된다.
“김영욱!”
마더가 방문을 두드렸다. 늘 그랬듯이 노크 소리는 규칙적인 간격으로 울렸다.
“너 또 게임하니? 당장 나와 봐.”
웬일로 이 시간에 마더가 집에 있지? 오늘 기분 정말 엉망인데 마더까지 내 속을 긁을 모양이군. 나는 마른세수를 하며 게임 접속을 끊었다.
“왜?”
나는 얼굴을 잔뜩 찡그리며 방문을 열었다. 오늘은 제발 건드리지 마. 심리치료사면 내 마음도 좀 읽으라고.
“여기 앉아 봐.”
마더는 식탁 의자를 가리켰다. 자기 맞은편에 나를 앉히더니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예감이 안 좋다. 또 오래도록 혼을 내겠지. 나는 마더를 보고 싶지 않아 옆으로 앉았다. 팔로 고개를 괴고 딴청을 피웠다.
“학원 빠지면 엄마한테 미리 이야기해달라고 했잖아. 그게 그렇게 어렵니?”
마더는 모른다. 마더 목소리에서 매번 무엇을 느끼는지.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말해야 심리치료사 체면을 지킨다고 믿지만 나는 그 목소리에 깔려 있는 분노를 고스란히 느낀다. 가식적으로 웃으려고 노력한 상냥한 얼굴 뒤에 숨어 있는 미움을 알아차린다.
“게임 완전 개발려서 지금 빡 돌겠으니까 오늘은 이만하시죠.”
“김영욱.”
마더 목소리가 한층 낮아지고 어두워지면, 감췄던 분노와 미움이 조금씩 얼굴을 드러내면 나는 그만큼 마더를 더 자극하고 싶어진다.
“학원 다녀도 소용없다니까.”
“엄마한테 말투가 그게 뭐니. 응?”
아무리 눌러도 드러나고야 마는 실망감을 알아차리면 나는 그만큼 마더를 더 미워하고 싶어진다.
“말투가 뭐 어때서? 별거 가지고 다 트집이야. 좆나 짜증 나게.”
마더의 입술이 부르르 떨렸다. 이제 마더도 한계에 다다른다.
“엄마 방에 들어왔었지.”
마더의 말 한 마디에 상황이 역전됐다.
“아니.”
나는 모른 척 시치미를 떼며 애꿎은 벽만 바라본다. 마더가 다시 목소리를 깔았다.
“서재에서 뭘 했는지 솔직히 말해봐. 혼 안 낼게.”
정말요, 마더? 마더 아들은 친구한테까지 삥을 뜯기는 병신에, 아무리 학원을 다녀도 성적이 오르지 않는 멍청이에, 밥만 축내는 식충이인데 도둑질까지 하거든요. 그 사실을 알고도 화 안 낼 자신이 있어요? 마더는 그 정도로 인내심이 세요?
“샤프 찾으러 갔어.”
나도 모르게 눈을 굴리고야 말았다. 젠장, 마더가 거짓말인 걸 눈치 챘겠군.
“뭣 때문에 돈이 필요한지 모르겠지만 솔직히 말했다면 넘어갔을 거야. 한 번은 그럴 수 있으니까. 그런데 끝까지 거짓말이구나.”
흘깃 마더 쪽을 바라보니 두 눈이 빨갛게 충혈 되어 갔다.
“이번 주말 그림 치료, 빠질 생각하지 마렴.”
마더는 성인군자처럼 도도하게 자리에서 일어섰다. 마더가 서재로 들어가 방문을 찰칵 닫았다. 나는 다리를 덜덜 떨며 사마귀를 이로 물어뜯었다. 마더는 도둑질을 한 쓰레기한테 화 한 번 내지 않고 그림 치료를 명령했다. 혹독한 상담 시간이 되겠군. 이번 주말이 벌써부터 기다려졌다.
아까까지만 해도 조용했던 사마귀가 입을 열기 시작했다.
마더가 화내 봤자지. 넌 잘못한 거 없어. 마더가 용돈을 두둑이 줬더라면 애초에 이럴 일도 없잖아.
더는 사마귀가 지껄이는 얘기를 듣고 싶지 않아 손가락 끝으로 사마귀를 세게 눌렀다. 하지만 놈은 입을 다물 생각이 없었다.
아빠한테 말해. 엄마랑 살기 싫다고. 그러면 다 해결돼. 그리고 사내놈들은 가끔 사고도 치고 그러는 거야. 안 그래?
입에서 깊은 한숨이 튀어나왔다. 그냥 죽어 버릴까? 어제 검색창에서 본 뉴스가 떠올랐다. ‘다음 생에는 공부 잘할게요, 미안해요.’ 이런 문자를 부모에게 보내고 스물 몇 살 형이 자살을 했단다. ‘다음 생에는 착한 아들로 태어날게요, 미안해요.’ 나도 이런 문자를 마더에게 보내고 그냥 목이나 맬까? 그럼 마더가 아무것도 잘하는 거 없는 나를 용서해주지 않을까? 그림 그리는 걸 강요한 내게 미안해하지 않을까?
아빠 얼굴이 떠올랐다. 나를 볼 때마다 배시시 웃던 아빠 미소가 생각났다. 아빠와 엄마가 이혼하기 전에는 아빠와 자주 놀았다. 야구도 보러 가고 배드민턴도 치고 노래방도 같이 갔다.
“누구 아들이 이렇게 노래를 잘하냐.”
아빠는 내 노래 듣는 걸 좋아했다. 나보고 폐활량이 좋다고, 목소리가 멋지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아들 기 살려주려고 하는 말인 걸 알면서도 나는 기분이 좋았다.
아빠가 짐을 챙겨 집을 나갔을 때 나는 버림받았다고 느꼈다. 그런데도 가끔은 견딜 수 없이 아빠가 보고 싶었다. 이혼하기 전에도 아빠는 집을 자주 비웠다. 아빠가 누구 때문에 돈을 열심히 버는지 알면서도 아빠가 회사에서 잘렸으면, 출장을 안 다녔으면, 하고 어린아이처럼 바란 적도 있었다.
이번 생은 망했지만 죽을 용기조차 없는 한심한 인간은 무작정 집을 나왔다. 갈 곳이라곤 태균이네 뿐인데 오늘은 꼴도 보고 싶지 않았다. 목적 없이 걸었다. 발길이 닫는 대로 헤매다가 학교 정문 앞에 도착했다. 문득 학교에 떠도는 소문이 생각났다. 소문이 사실일까? 정말 빙그레 좀비는 매일 학교에서 잘까?
학교는 어두컴컴했다. 금방이라도 귀신이 튀어나올 것처럼 기괴했다. 1층 행정실을 지나 계단을 올랐다. 2층 교무실을 지나 복도 맨 끝에 위치한 교사 휴게실로 향했다. 휴게실에서 흘러나오는 빛이 어둠 사이로 가늘게 보였다. 용기를 내 문을 두드렸다. 잠시 침묵. 다시 똑똑 두드리자 벌컥 문이 열렸다. 빙그레 좀비가 나보다도 당황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삼 반 김영욱?”
좀비가 내 이름을 알고 있다니. 나는 좀비보다 더 눈을 동그랗게 뜨고야 말았다.
“이 시간에 여기서 뭐하니?”
좀비는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수업 시간에 수학 문제를 풀며 내는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아니었다.
“뭐 찾으려다가……, 불빛이 보이길래……”
“들어오렴.”
좀비가 문에서 물러서며 말했다. 나는 멀뚱멀뚱 망설이다가 마지못해 들어갔다. 좀비가 소파에 앉았고 내게 의자에 앉으라고 손짓했다. 나는 좀비에게 물리고 싶지 않은 순한 양이 되어 의자에 앉았다. 휴게실을 찬찬히 둘러보는데 좀비가 손가락으로 머리를 박박 긁었다. 하얀 점 같은 비듬이 후드득 소파 위로 떨어졌다. 아까까지만 해도 배가 고팠는데 왕비듬을 보자 식욕이 싹 사라졌다.
“무슨 고민 있니?”
두피로 파고드는 손가락처럼 좀비가 예리하게 나를 파고들었다.
“아뇨.”
“네 얼굴에 다 씌어 있다. 나는 억지로 살고 있수다, 이렇게.”
좀비가 마더보다 낫군.
“사마귀 땜에요.”
“사마귀?”
내가 왼손을 내밀어 사마귀를 보여주자 좀비는 입을 삐죽 내밀었다.
“그게 왜?”
“전 빼기 싫은데 엄마는 계속 빼라고 해요.”
“넌 왜 빼기 싫은데?”
솔직히 말하기는 싫고 그럴듯한 거짓말을 하고 싶은데 나는 거짓말에도 재능이 없다.
“그냥요.”
좀비가 손가락으로 코를 파더니 다 늘어난 면바지에 묻혔다. 우웩. 나오려는 구역질을 간신히 참았다. 잠깐의 침묵이 이어졌다. 역공을 펼칠 기회였다.
“선생님은 왜 여기서 자요?”
“당직이니까.”
“왜 선생님만 당직을 해요?”
먹혔다. 묵직한 한 방에 좀비의 귀가 살짝 빨개졌다. 좀비는 입맛을 다시며 적당한 거짓말을 찾는 듯 보였다.
“애들 사이에서 선생님 별명이 뭔지 아세요?”
마지막 한 방은 내가 생각해도 셌다. 좀비는 뺨이 얼얼하고 정신이 좀 없을 거다. 나는 내심 자신만만했다.
“빙그레 좀비?”
헐, 어떻게 알았지? 선생들 별명은 애들끼리만 공유하는데.
“왜 노숙자처럼 여기서 이러고 사냐, 이걸 묻는 거지?”
대꾸할 말을 찾지 못해 입을 다물었다.
“남의 시선이나 인정이 엄청나게 중요하다고 생각하니?”
선생이 나를 빤히 쳐다봤다. 그 눈길은 좀비의 것이 아니었다. 선생은 꽤나 진지하고 꽤나 따뜻한 눈빛으로 내 눈동자를 바라봤다.
“남들이 날 어떻게 생각하는지, 나에 대해 뭐라고 떠드는지 난 관심 없거든.”
선생이 무심코 바지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냈다. 나를 한 번 흘깃 보고는 담배를 주머니에 도로 넣고 껌을 꺼냈다. 나한테 껌을 내밀더니 껍질을 까 자기 입에도 넣었다.
“학창 시절에 난 수학 천재였어. 수학 문제만 풀면 시간 가는 줄 몰랐지. 근데 어른들은 날 가만히 두지 않았어. 올림피아드 대회에 나가야 한다는 둥, 하버드 수학 천재들과 경쟁해야 한다는 둥, 미국 NASA에 들어가야 한다는 둥 끊임없이 내 삶에 간섭했지. 나는 천재로 불리는 대신 내가 즐거운 걸 하기로 마음먹었어.”
껌을 씹다가 두 손을 마주 잡았다. 손에 땀이 가득 찼다는 걸 깨닫고 손바닥을 바지에 문질렀다.
“선생님은 몰라요. 공부 못하고 잘하는 거 하나 없는 게 얼마나 비참한지.”
어느새 나는 입을 열고 속마음을 얘기하고 있었다.
“엄마도 저를 창피해한다니까요.”
나는 돌출된 사마귀를 손가락으로 문지르며 고개를 푹 숙였다.
“넌 아직 중2다. 햇병아리라고.”
고개를 천천히 들어 올렸다. 선생은 껌을 손가락으로 늘이며 소파에 몸을 기댔다.
“키는 더 클 거고, 잘하는 걸 하나라도 찾을 거야. 그리고 엄마는 너를 사랑한다.”
선생의 목소리가 어느 때보다 부드러워서일까. 나는 아무 반박도 하지 못했다.
“그만 가볼게요.”
내가 벌떡 일어나자 선생은 그러라고 했다. 나는 학교 건물을 빠져나와 동네 놀이터로 걸어갔다. 그네에 앉아 하늘을 바라봤다. 꽉 차오른 달이 가까이 떠 있었다. 달의 표면이 손에 만져질 듯 제법 자세히 보였다. 달에 어울리는 노래가 있을까. 나는 이어폰을 꽂고 즐겨 듣는 노래를 틀었다. 눈을 감으며 노래를 따라 불렀다. 답답했던 마음이 금세 풀리면서 기분이 한결 좋아졌다.
체육관을 돌아 집으로 향하는데 휴대폰이 울렸다. 마더인가? 바짝 긴장한 채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냈다. 다행히 아빠였다.
“영욱아, 아빠야. 잘 지내지?”
나는 묵묵부답으로 버티다가 마음속에 응어리진 말을 내뱉었다.
“아빠, 나 아빠랑 살고 싶어. 엄마랑 살기 싫어.”
“영욱아……”
아빠가 길게 한숨을 쉬었다. 그러더니 한 박자 쉰 다음 말했다.
“아빠가 엄마한테 큰 잘못을 했어. 엄마한테 잘 해주렴. 아빠가 부탁할게. 응?”
무슨 잘못? 잘못한 사람은 아빠인데 왜 나보고 엄마한테 잘 하래? 아빠 이렇게 비겁한 사람이었어? 이런 식으로 나를 또 버리려는 거지? 내가 힘들든 말든 상관없다 이거지? 따발총처럼 따져 묻고 싶었지만 나는 순순히 전화를 끊었다.
울적했다.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고는 길거리에 굴러다니는 돌멩이를 발로 걷어찼다. 그러고도 기분이 나아지지 않아 숨을 씩씩대고 있는데 이상한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 체육관 뒤편에 있는 어둑한 곳이었다. 세 명이 한 아이를 코너로 몰며 때렸다. 여러 개의 발이 사정없이 아이에게 꽂혔다. 퍽, 퍽, 윽, 윽. 장단을 타듯 리드미컬하게 구타가 진행됐다. 아이는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더니 발길질을 견뎠다. 경찰에 신고할까? 신고한 사람이 나라는 게 알려지면 어떡하지?
내가 주춤대는 사이 아이의 신음소리가 커졌다. 이대로 놔두면 죽을지도 몰라. 그런데 죽고 싶은 사람은 나잖아? 내가 대신 맞자. 죽으면 그만이고 죽지 못하고 병원에 실려 가면 마더와의 상담 시간을 피할 수 있고. 눈을 질끈 감고 아이한테 뛰어갔다. 내가 뛰어들려는 순간 체육관 뒷문에서 키 큰 애가 날아왔다. 최대영이었다. 아이들은 최대영의 발차기에 낙엽처럼 쓰러졌다. 나는 입을 쫙 벌린 채 괴로움으로 일그러진 아이들의 얼굴을 바라봤다.
최대영은 쓰러진 아이를 일으켜 세웠다. 다친 아이를 부축하는 모습이 힘겨워 보였다. 갑자기 힘을 많이 써서 그런가. 나는 얼른 뛰어가 아이의 남은 팔을 내 어깨에 걸쳤다. 최대영은 나를 씩 돌아보더니 고맙다고 했다. 녀석의 미소가 깨끗했다.
다친 아이를 집까지 데려다준 다음 최대영과 나는 다시 체육관으로 걸어갔다. 나는 집이 체육관 근처였고 최대영은 체육관에 놔두고 온 짐이 있다고 했다.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리는데 최대영이 다짜고짜 물었다.
“운동 안 하냐?”
“안 하는데.”
“좀 해라. 팔이 그게 뭐냐. 같이 체육관 다닐래?”
하아, 싸움짱과의 헬스 트레이닝이라. 이건 또 얼마짜리인가. 게임 레벨 올리는데 십만 원을 요구했으니 이건 이십? 삼십?
“얼만데?”
내 말에 최대영은 키득거렸다.
“뭔 말이냐?”
“몸짱 만들어주겠다는 거잖아. 얼만데?”
“새꺄, 몸짱은 스스로 되는 거지 남이 어떻게 만들어줘? 어린놈이 왜 그러냐? 벌써부터 돈돈거리고.”
민망해진 내가 뜸을 들이자 최대영이 이어 말했다.
“운동하면 기분 쩔어. 키도 크고.”
싸움짱이면 당연히 거만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최대영은 그렇지 않았다. 나이 차이 많이 나는 형이 있다더니, 최대영은 어쩐지 늙탱이 같았다.
“너, 노래 잘 하더라?”
최대영이 불쑥 말했다.
“내가? 누가 그래?”
“놀이터에서 가끔 너 봤거든. 그네에 앉아 노래 불렀잖아. 목소리 좋던데?”
머릿속이 하얗게 변해 아무 대꾸도 할 수 없었다.
“부럽더라. 난 완전 음치거든.”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나는 고개를 홱 돌렸다. 최대영이 새빨개진 내 얼굴을 못 봤기를 바라면서.
“아, 씨. 아직도 중딩이라니. 시간이 확 갔으면 좋겠다.”
최대영이 주머니에 손을 쑥 집어넣으며 말했다.
“난 어른 되기 싫은데.”
“그래봤자 뭐하냐. 어차피 될 건데.”
과연 그럴까? 어른이 될 수 있을까? 이 시간들이 지나가버리긴 할까? 차들이 빠른 속도로 우리를 스쳐 지나갔다. 그새 자란 사마귀가 욱신거렸다. 손가락으로 사마귀를 박박 긁었다.
“근데 아까부터 뭘 그렇게 긁어대냐?”
“어? 사마귀.”
초록색 불이 들어왔다. 최대영이 성큼성큼 횡단보도를 건넜다. 나는 최대영의 걸음 속도에 맞추려고 부지런히 걸으며 말했다.
“곧 뺄 거야.”
더는 사마귀를 만지지 않으려고 주먹을 단단히 말아 쥐었다. 횡단보도를 건넌 뒤 우리는 헤어졌다. 최대영은 체육관으로, 나는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낮게 내려온 달을 바라보며 계속 걸었다. 주먹 안에 갇힌 사마귀는 잠잠했다.
탁경은
아이들은 물론이고 많은 사람들이 남의 시선에서 자유로웠으면 좋겠습니다. 아이들이 누구보다도 자기 자신을 좋아하고 아끼기를 바랍니다. 이번 생은 망하지 않았다고,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잘 안 될 때도 있지만 매일 글을 쓰려고 노력합니다. 글쓰기를 통해 더 괜찮은 인간이 되고 싶습니다.
2019/04/30
17호